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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달빛-62화 (62/123)

이번에야말로 정말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희완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다리를 벌렸다.

-사타구니 안쪽에 물어 놓은 자국 있습니다.

“…아.”

남자의 말대로였다. 고개를 숙여 안쪽을 확인하니 그가 새겨 놓은 잇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위치가 깊어 다리를 붙이고 있으면 전혀 보이지 않을 터였으나 자국이 뚜렷해 다리를 벌리면 확연히 눈에 들 정도였다. 남기는 걸 본 기억도, 느낀 기억도 없어. 잠든 사이 물어 놓은 건가, 하는 희완이 다리를 붙이며 새삼 주변을 살폈다. 막 화장실에서 나온 우진이 매점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몰랐습니다.”

-거기 말고는 건드린 곳 없으니 걱정할 거 없습니다.

“걱정 안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매대에 엎드려 졸고 있던 알바생을 흔들어 깨워 간단한 목욕용품을 계산하는 우진을 보던 희완이 이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이 시간에 세신 없습니다.”

-자주 갑니까.

“시간 나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자주는 못 왔습니다.”

스무 살 이후엔 뭐 그런저런 사정들로 여유가 없었고, 남자와 한참 붙어 있을 무렵엔 몸에 흔적이 가시는 날이 없어 못 왔고, 근래 들어 조금씩 다시 발을 들이기 시작한 참이었다. 집 없이 떠돌아다닐 때 간간이 묵기도 했던 찜질방에서도 옷을 갈아입을 땐 항상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었다. 지금이야 남자가 무심히 남겨놓는 것들이 없어서 그때만큼 신경을 덜 쓰게 되었지만.

“무슨 통화를 그리 길게 해.”

희완의 몫까지 챙겨 온 용품을 근처 벤치에 올려놓는 우진이 옷을 벗으며 눈치를 줬다. 적당히 보기 좋은 몸매였던 우진의 몸엔 근육이 많이 빠져 있었다. 희게 질려 있는 피부가 드러나는 걸 보던 희완이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알았다는 남자와 통화를 마치니 우진이 벌써 욕탕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커를 잠그고 그가 챙겨준 것을 주워든 희완도 곧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어간 시간의 탕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청소를 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아담한 욕탕은 이제 막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하는 바람에 쏟아지는 물소리로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대충 샤워만 하고 사우나실로 가자는 우진의 말에 동의를 한 희완도 거세게 뿌려지는 샤워기에 몸을 맡겼다.

“사우나 오가는 것까지 일일이 보고를 해?”

“아. 오늘 계속 통화를 못 해서.”

“세상 남자가 다 게이도 아니고, 지나친 노파심이라 전해.”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속살 하나 남들 앞에 내놓기 싫어하는 남자의 편협한 독점욕을 단편적인 통화내용만으로도 단숨에 읽어 내린 우진이 얼굴에 맺힌 땀을 훑어내며 등을 기대었다. 후끈하게 달궈진 사우나는 땀 빼기 딱 좋을 정도로 습해서 들어앉은 지 이제 십 분이 되어가는 우진과 희완은 맺혀 나온 땀으로 눅진하게 젖어 있었다.

“정말 그렇게.”

제 사생활을 통제해 오지 않는 사람이라 부연하려 했던 희완이 미간을 째푸리며 저도 곧 나무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저 별 뜻 없이 던진 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고, 사실이 어떠하든 우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별로 제재하는 게 없어.”

그래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말은 진심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었고.”

희완이 그가 준 돈을 들고 도망가려 했었을 때는, 둘 다 반쯤 이성이 나가 있었으니 예외로 쳐도 될 것이었다. 아니, 그는 그때도 무섭게 냉정했었지만, 희완이 알기론 아마 최고치로 화가 난 상태였을 것이었다.

“아까 무슨 얘기 했어.”

“그냥.”

“그냥?”

머뭇거리던 희완이 귓불을 긁적이며 답했다.

“잠자리 흔적 남겨둔 거 있다고.”

퍽이나. 희완에겐 배려로 느껴졌겠지만 제삼자인 우진에겐 그 또한 독점욕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저도 남자면서 그러한 수컷의 본능엔 무심하다 못해 무지한 희완을 빤히 쳐다보던 우진이 땀을 훑어내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걸 본 희완이 그에게로 돌아앉으며 어깨를 만져주었다. 꽤 뭉쳐 있는 어깨 아래로는 어느 정도 희미해진 흉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제법 시원해 얌전히 희완에게 어깨를 맡겨두고 있던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첫사랑이 언제라고 했지.”

뜬금없는 질문에도 거부할 것 없이 잠시 옛 기억을 더듬던 희완이 답했다.

“열일곱.”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테고. 여자 안아본 적도 없지?”

“형.”

“여자가 안 되는 건 아니잖아.”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스무 살 이전에는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개념 자체가 희완의 머릿속엔 없었다. 성정체성을 고민할 계기 자체가 없었으며 동성애에 대해서는 호불호 없이 막연한 거리감만 있었을 뿐이었다. 우진이나 학정이 동성애자라도 희완은 그들을 달리 보지 않았겠지만, 동성애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희완에겐 현실감이 없는 주제였다. 누이가 살아 있을 때도 희완은 사는 게 쉽지 않았고, 누이가 결혼한 후에는 더욱 팍팍해져만 갔었다. 하여 종반엔 그런 고민은 사치나 다름이 없는 것이 되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질 수는 없어.”

“왜 안 돼. 업소가 괜히 있는 줄 알아.”

잠시 말을 잃은 희완의 손놀림도 멈추었다. 그걸 가볍게 치워내며 도로 벽에 등을 기대는 우진이 팔을 길게 뻗으며 관절과 근육을 폈다. 맨살에 맺혀 있던 땀방울들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툭 떨어졌다.

“그놈은 너 말고도 여기저기 성질대로 싸지르고 다녔을걸.”

적나라한 표현에 미간을 좁히면서도 반박을 하지 않는 희완의 목울대가 기울어지며 빗장뼈 아래 피부가 희게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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