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70화 (70/123)

한바탕 일을 치르고 사무실에 딸려 있는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온 희완을 벽에 붙여 놓고 입술이 도로 빨갛게 부어오르도록 쭉쭉 빨던 승도가 귀밑에 입술을 붙인 걸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조수석 문을 열어 안에 앉히고 운전석에 올라타며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도 되느냐 물었더니 오늘은 연습을 마치고 나온 것이라 답한다. 내일까지 쉰다는 희완이 벨트까지 매는 걸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키던 승도가 급정거를 하였다.

끼이익-!

브레이크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덜컹 멈춰 선 차체의 흔들림에 앞으로 튀어 갔다 나온 희완의 가슴을 커다란 손이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승도의 눈이 검게 일그러져 있었다. 당황한 얼굴로 바깥을 둘러보던 희완의 얼굴이 희게 질린다. 큰길로 나가는 차도가 각각 낡은 밴으로 막혀져 있었고 멈춰 선 세단 주변으로는 각기 손에 연장을 하나씩 든 사내들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들며 매었던 안전벨트를 푸는 남자가 콘솔박스에서 가죽장갑을 꺼내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절대 문밖으로 나오지 말라던 남자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거의 집어 던지다시피 희완에게 건네고 벌컥 운전석 문을 열고 뛰어 내려간 건 찰나였다. 높이 치켜 올려진 야구방망이가 정면의 유리창을 세게 후려쳤다.

우지끈 패이며 금이 간 곳으로 다시 야구방망이가 휘둘러진 것을 본 희완이 운전석으로 문을 던져 차 문을 죄다 잠갔다.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달려들던 사내 한 명을 차 문으로 후려치고 몸을 날린 남자의 모습이 주변을 에워싼 사내들에 의해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정면 유리창을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던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밑으로 쑥 끌어 내려졌다. 쿵-! 남자의 등이 정면 유리창에 부딪치는가 싶더니 곧 빠르게 쏘아져 가며 사내들 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걸 멍하니 보던 희완이 제 손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경찰을 부르려다 입술을 깨물며 철진의 이름을 찾는다. 그런데 이름 없이 번호로만 저장이 되어 있어 찾을 수가 없었다. 쾅! 이번엔 뒷면 유리창으로 벽돌이 던져졌다.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숨을 삼키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뒤지던 희완이 무작정 통화버튼을 눌렀다. 곧 한 번의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진이었다. 급하게 입을 열려던 희완의 눈으로 남자를 향해 휘둘러지는 알루미늄 방망이가 비추어졌다. 소리를 지르는 희완의 손에서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병실 바깥쪽에서 벌컥 소리를 지르는 철진의 성난 음성이 들려왔다. 한 번만 더 이딴 식으로 수작 부리면 두고 보지 않겠다는 협박성 짙은 목소리가 멀리서 웅웅거리는 듯했다. 침대 곁에 앉아 두 손을 맞잡고 있던 희완이 시선을 들었다. 문이 여닫히고 팔뚝에 깁스를 한 승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뒤로 통화를 마친 철진이 뒤따라 들어왔다. 옷이 죄다 찢겨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승도가 철진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으며 무어라 지시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북에서 일수 찍는 놈들입니다.”

“한 놈을 놓쳤습니다. 인상착의 설명할 테니 잡아놔.”

“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우지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앞뒤 재지도 않고 애들을 쓸어 모아 사무소 쪽으로 바로 달려온 철진이 발견한 것은 피범벅이 된 몰골로 알루미늄 방망이를 휘둘러대던 승도의 모습이었다. 열둘한테 혼자 맞선 거라 승도 역시 피해를 입었지만 구급차에 실려 와야 했던 용역 놈들에 비하자면 양호한 편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굳이 상대하지 않고 피했을 승도의 성격을 알고 있던 철진은 거의 폐차 수준으로 찌그러져 있던 세단 구석에 처박혀 있는 희완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납득했다.

개, 머저리 같은 놈들.

철진이 이 사무소를 드나드는 걸 포착하고 약점이라도 잡을 셈으로 승도를 공격하였는데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이다. 그쪽으로 일절 관심도 없던 승도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게 보였다. 친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까지 실어 온 놈들을 치료받게 하고 클럽 지하실에 처박아 둔 승도가 불러준 나머지 한 놈의 인상착의는 덧붙일 것도 없이 완벽했다. 앞으로 이놈까지 잡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평일 낮 시간의 병원은 한산했다. 클럽 인근에 있는 개인 병원은 클럽 소유 건물로 윤 박사가 따로 독립해 나와 만든 병원이기도 했다. 까무러친 용역들을 철진에게 던져 주고 구겨진 문짝을 뜯어내다시피 열어 조수석에서 희완을 끌어낸 승도는 왼팔에 금이 가고 등과 옆구리에 깊은 자상을 입은 채였다. 자잘한 상처들은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라 급하게 불려 나온 윤 박사가 치료를 하는 동안 철진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승도가 그사이 보이지 않는 희완을 찾았다.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걸 별실에 데려다 놨다는 말에 인상을 쓰다가 곧 나머지 부분을 확인하곤 옷을 걸쳐 입었다. 팔이야 깔끔하게 부러졌으니 회복하는 데 문제없고, 다른 자상들도 아주 중상은 아니라 크게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곧 나을 것들이었다. 어디 길거리 양아치만도 못한 놈들을 용역이라고 부리는 놈들 수준 한번 알 만했다.

철진이나 승도에게는 별거 아닌 놈들이 대가리 수로 밀어붙인 것에 불과했지만 이런 것에 면역이 약한 희완은 그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치고 제법 말짱해 보였다. 원래도 창백한 얼굴은 저게 놀라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희어져 있었으나 철진이 말한 대로 혼자 알아서 정신을 추스르고 있던 희완을 데리고 승도가 병원을 나섰다. 여느 기집들처럼 생난리를 부리는 것도, 볼썽사납게 오줌을 지린 것도 아닌 희완에게 그래도 몇 년을 그 바닥에서 구른 값을 한다 평하는 철진이 도로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승도의 지시대로 평당 매매가를 후려쳤더니 전화에서 불이 났다. 팔지도 않을 거 내놓는 이유는 이 일에 연관된 놈들 죄다 솎아 내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희완이 셔츠 단추를 푸는 것을 도왔다.

놀라서 꼼짝 못 하는 걸 보고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 희완은 썩 괜찮아 보였다.

“괜찮습니까.”

“네.”

승도의 단추를 풀어 셔츠를 벗겨주는 희완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친 건 남자인데 말이다.

“연희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젖히니 가만 쳐다보던 남자가 입술을 겹쳐왔다.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살갗에서 작은 마찰음이 울렸다. 지척에 있는 눈이 희완의 상태를 가늠이라도 하듯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그러나 불안에 떠는가 하였던 눈은 고요하기만 했다.

“여기 있어도 됩니다.”

기대하지 않고 뱉어 놓은 말에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희완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승도가 다시 이름을 불렀다. 버릇처럼 내리깔렸던 속눈썹이 들리며 눈이 마주친다. 무슨 뜻인지 알고나 이리 답하는지 알 수 없어 재차 확인하는 승도의 시선을 묵연했다.

“정말입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희완이 시선을 피하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남자의 어깨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제법 꼼꼼한 손길에 욕조 난간에 걸터앉았던 승도가 물끄러미 희완의 뺨을 좇는다. 오른쪽 어깨를 닦고 이번엔 깁스가 걸려 있는 왼쪽 어깨를 닦던 희완이 그제야 시선을 맞췄다.

“생활하시는 것도 불편하시잖아요.”

“그래서, 깁스 풀면 도로 나갈 겁니까.”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희완이 이번엔 목덜미부터 등 뒤를 닦아 갔다.

됐다고, 거긴 대충 물 뿌리면 된다고 밀어 낼 법도 하건만 가만히 있던 승도가 제 얼굴에 닿은 희완의 가슴을 응시하다 목 밑으로 하얗게 드러난 빗장뼈를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이제까지 버틴 것치고는 싱거웠지만, 제 입으로 들어오겠다 했으니 이렇게 물었다 놓아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밑이 축축한 느낌에 눈을 뜬 승도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면서 스친 옆이 허전해 미간을 찌푸리며 안력을 돋우니 침대 위에 웅크려 앉은 희완의 눈과 딱 마주쳤다.

“……."

놀란 기색이 역력한 희완의 얼굴이 어둠에 익은 눈에 서서히 맺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서려던 승도가 입을 꾹 닫았다.

어둠 속에서도 희완의 얼굴이 더 파리해질 수 없을 만큼 싸늘하게 식어가는 게 느껴지는 순간 훌쩍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선다. 반대쪽으로 돌아가 웅크린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희완을 끌어다 내려놓는다. 침대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자다가 오줌을 지린 것이다. 공황 상태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석상처럼 굳어 있는 희완을 품 한쪽에 안아 세우고 젖은 시트를 걷어낸 승도가 대수롭잖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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