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픕니다.”
어제 이후로 둘 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늦은 새벽부터 시작된 정사가 정오 무렵까지 이어졌고 까무룩 잠들었다가 깬 시간이 같은 날 밤 11시경. 그것도 남자의 상처가 벌어져 눈을 뜬 것이었다. 아마 어깨를 축축하게 적셔오던 게 없었다면 그대로 다음 날 까지 세상모르고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승도의 몫으로 남은 유자차를 저가 대신 비우며 후루룩 한 모금 넘기던 희완의 눈가가 이지러졌다. 뜨거운 것이 닿으니 헌 입속과 퉁퉁 부은 입술이 쓰라렸다. 손끝으로 그걸 누르려던 거를 데려가 입술만 쪼옥 빨아 당기는 승도가 넘어오는 단 맛에 슬쩍 미간을 눌렀다.
“먹을 게.”
“없습니다.”
승도가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이미 냉장고를 다 뒤져 본 희완이었다. 전과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주전부리 따위를 할 남자가 아니니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따로 먹을 건 이 차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힘들어서 죽겠는데. 어쩐지 배고픈 설움까지 더해진 희완의 대꾸에 빤히 그 뺨을 응시하던 승도가 입을 열었다. 유자차가 남은 찻잔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은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배고픕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내내 들어차 있던 남자의 것이 빠져나가 느껴지는 허전함 때문인 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기운이 없어 좀처럼 편히 움직일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속이 이상합니다.”
체력이 넘치는 승도는 어떤지 몰라도 한번 본격적으로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질 대로 빠지는 희완은 텅 비어있는 냉장고가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식탐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배가 고프다 느끼니 속까지 쓰라렸다. 무엇보다 생활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서 승도의 생활 패턴을 느껴 답답해져 오는 것도 있었다. 아무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남자였다. 하다못해 사사로운 일상을 보내는 이 공간에서조차도, 그의 자취는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진짜 먹을 게 없어 한탄스러워하는 듯한 희완을 말없이 응시하던 승도가 몸을 일으켰다. 그걸 뒤늦게 올려다보는 희완이 안쪽에서 재킷을 걸치고 나오는 승도를 발견하곤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어디 가시는.”
“배고프다면서.”
그게 왜 남자가 이 야밤에 옷을 걸쳐 입고 나가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희완이 눈살을 찌푸린다. 이윽고 손바닥으로 제 배를 문지르며 슬쩍 허리를 숙이는 걸 본 승도가 성큼 다가갔다. 꾀병이었는데 승도는 금방 넘어왔다.
저를 부축하며 제 배를 만져보려는 승도의 입술로 희완의 입술이 닿았다.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겠습니다.”
좀 전에 윤 박사에게 시키지도 않은 차까지 내어 온 희완을 보는 눈이 검었다.
어디 가지 말고 그냥 같이 있자는 희완이 제 팔뚝을 잡은 남자의 손을 끌어다 제 옆에 도로 앉히며 턱께를 문질렀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멋쩍어진 것이다.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지만 이 밤에 남자를 밖에 내보내서까지 뭘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입 안이 꺼끌해서 잘 들어갈 것 같지도 않고, 그런다고 이 허전한 속이 채워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아직도 열려 있는 것 같은 밑을 허상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이물감을 되레 떠올려낸 희완이 슬쩍 얼굴을 붉혔다.
자다가 깨서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거의 울먹거리던 희완을 데려가 겨우 볼일을 보게 해주었다. 지금은 절룩거리나마 편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그땐 정말 후들거리는 다리를 세울 수도 없을 정도여서 절절 매는 것을 안아다 변기에 앉혀 놓고 오줌을 누게 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욕조 난간에 걸터앉아 희완이 볼일을 다 보기를 기다리던 남자 앞이라 안 그래도 알알한 성기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그건 다 기우였다. 그의 입에서, 손에서, 하도 굴려지고 빨려져 여러 의미로 혹사당한 성기는 시원찮게나마 제 기능을 다 했다. 희완 역시 의외로 그렇게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못했다. 그에게 시달려진 심신이 무거운 까닭도 있었고, 자다가 그런 꼴까지 보인 마당에 더 무어가 부끄러울 게 있겠느냐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볼일을 다 보고서도 기운이 없이 축 늘어져 있던 희완을 끌어다 변기 물을 내리고 욕조 근처에 서게 한 승도가 내친 김에 밑도 닦아주었다.
밤새 쏟아낸 것들이 거미줄처럼 엉겨 붙어 있는 곳을 따뜻한 물로 깨끗이 씻어 주며 이왕 이렇게 된거 씻겠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었다. 이대로 물에 빠지면 익사라도 할 것 같았다. 그보다는 수마의 유혹이 더 강했다. 더 말할 것 없이 싹 헹궈낸 희완의 밑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고 게스트 룸으로 향하는 남자에게 안겨 매달려 있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안방을 보고 잠깐 낯을 찌푸렸었다. 뒤처리를 제대로 한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시트를 걷어 간 남자가 세탁기를 돌린 것 까진 기억을 하는데, 도우미든 누구든, 저걸 누가 알게 되기라도 할까 봐 일순 긴장을 한 희완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등을 문지르던 남자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제야 뒤늦게 쥐꼬리만큼의 부끄러움이 되살아나 귓불을 빨갛게 물들인 희완이 이불 속으로 고치처럼 기어들었다. 그걸 이불째로 끌어안고 잠든 승도의 어깨가 터진 상처에서 흐른 피로 젖어가면서 둘 다 잠에서 깬 것이었다.
그걸 보고 잠결에 또 어찌나 놀랐던지. 하얗게 질려선 마른 수건으로 벌어진 상처를 꾹 눌러주고 있던 희완을 다리사이에 끌어 앉혀 놓고 그 어깨에 턱을 대던 남자는 또 별거 아니라고 했었다. 별거 아닌 상처 따위들로 무수히 덮어져 있는 남자의 육신이 새삼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소파에 기대 앉아 새로 간 붕대가 붙어 있는 남자의 어깨 뒤쪽을 흘긋 쳐다보던 희완이 그의 손을 잡은 채로 슬쩍 소파위로 누웠다. 딸려 오는 남자 역시 희완을 안쪽에 두고 소파에 길게 눕게 되었다. 제 배 위에 깁스를 감은 남자의 손을 올려놓고 좀 더 소파 구석으로 들어가 비스듬히 몸을 세우니 남자의 가슴이 코끝에 닿아온다.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남자의 일상을 온몸으로 겪고 나서 몸살을 앓듯 충격을 앓았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지만 그 폭력적인 공간을 더욱 폭력적으로 대응하며 날뛰던 짐승은 남자의 본성에 깃든 것이었다. 마구 잡이로 난립하던 폭력의 야만성에 기대선 그가 무서웠던 게 아니라, 그 끔찍한 폭력의 잔해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던 그를 잃을까 무서웠다. 희완이 맞설 수 없는 공포를 느낀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캐스팅된 배우 중 가장 일정이 바쁜 아이돌 페어가 연습 시간 조정을 요청해 와서 희완과 우진의 연습 일정이 이틀 뒤로 밀렸다. 한창 컨디션이 올라와 있는 중에 스케줄 변동은 썩 좋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우진과 희완이 아예 형편없지는 않았다. 덕분에 뒤늦게 일정을 조정하게 된 우진과 오늘 하루는 예정대로 쉬고 밀린 연습 일정은 둘이 만나서 학정에서 따로 보충하기로 했다. 수화기 너머의 우진은 밀린 잠을 자다 연출의 전화를 받고 일찍 눈을 뜬 모양이었고, 희완은 남자가 나가는 것도 모르고 거의 죽어 있다가 연거푸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겨우 눈을 떴었다. 그렇게 됐으니 이해해 달라는 연출과 통화를 마치고 한참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출근 전에 희완의 귓가에 입술을 붙인 남자는 드나들 사람 없으니 편히 있다 가라 했었다. 이런 집에 드나들 사람이라 봐야 희완과 도우미 정도가 전부일 텐데, 새삼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아파트 내부를 훑어보던 희완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하였다.
8월의 초입을 지난 한창의 여름은 그리 뜨거운데도 혼자 남겨진 이 아파트는 목덜미가 서늘할 정도로 기온이 낮았다. 겨우 한 장 걸치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내자 훤히 드러나는 몸이 맞은편 거울에 고스란히 비쳐졌다. 밤새 시달린 육신은 남자가 남긴 흔적들로만 채워져 빈곳을 볼 수가 없었다. 윤 박사가 다녀간 후에도 그 품에 안겨져 구석구석을 끊임없이 빨려졌다.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견딜 수 없이 자극적이라 힘이 들었다. 유두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빨려졌고, 발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성기를 빨려지고, 주름을 훑어대는 듯한 감각이 아직도 선연할 정도로 밑이 빨려졌다. 그의 애무는 안타까우리만치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마음이 그의 몸짓에서 읽혀졌다. 단순히 삽입과 욕망의 분출을 위해서 저를 끌어안는 게 아니라, 강하게 파고들어 희완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남자는 정말 순수하게 희완을 뼛속까지 씹어 먹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어떤 꼴을 보여도 희완을 향한 남자의 욕망은 한결같았다. 어제 그런 추태를 부렸음에도 오히려 꽉 닫힌 밑을 열어, 제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을 아낌없이 핥고 빨아주던 남자 앞에서 수치심과 터부란 그리 무용지물이었다.
괜찮다고, 그럴 거 없다고, 저를 다독여 오던 남자의 부드러운 손길이 이 몸 구석구석을 매만졌다. 언제든 쑥 꺼져버릴 것 같은 검은 구덩이는 남자의 품 안에 있어야만 사라지는 것들이었는데, 어제 그 구덩이를 남자의 발치에서 발견하고 숨죽여 웅크린 희완을 다시 끌어낸 건 남자였다. 애닳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이 끓어오르는 마음이었다. 불현듯, 이 빈한하게 할퀴어진 몸뚱이를 어느 때고, 가득 휩쓸어 왔던 남자가 그리워져 제 손으로 남자의 흔적을 더듬는 희완이 새삼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만큼은 제 곁에 있어 주었어도 좋았을 것을.
그렇게 밤새, 저를 가득 채워 놓고, 이리 혼자 남겨 둘 것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계속하여 이 몸을 품어주고 있었어도 좋았을 것을. 꾹꾹 차올랐던 것들이 갑자기 쑤욱 꺼져 가며 느껴지는 허전함에 제 뱃속을 가만 누르던 희완이 거울을 보았다. 가장 뜨거운 불덩이에 던져지고서도 춥다 으슬거리는 빈한한 것이 거기에 있었다.
철진은 어쩐지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은 승도를 의아한 눈초리로 보았다. 읊어준 대로 작성한 몽타주가 뿌려지자마자 잡혀 들어온 놈은 양아치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조무래기였다. 지하실에 끌려온 것만으로도 잔뜩 겁에 질려 개거품을 물고 자지러지던 놈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음에도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줄줄 풀어댈 정도로 어이없는 놈이기도 했다. 어차피 가장 더러운 짓을 가장 싼값에 처리해주는 쓰레기다. 그런 놈을 승도가 무슨 볼일이 있어 힘들여 잡아 오라 했겠는가. 찌그러진 차 속에 처박혀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던 희완의 모습이 정답이었다. 친히 구급차까지 불러 치료를 받게 한 용역들이 피똥을 쌀 때까지 지하실에 가둬놓고 폭력을 휘두르던 남자에게서 다른 일면을 보았다. 다분히 기계적이었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이 실린 폭력이었다. 그 역시 이런 놈들을 족쳐 봐야 그 사달 냈던 놈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풀릴 때까지 폭력을 휘둘렀다. 말 그대로 화풀이였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도 그 손으로 그놈들 인생을 조지고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지하실을 나서던 남자가 손수건을 꺼내어 묻어 나온 피를 닦았다. 지하실을 올라오는 내내 딴 생각에 잠겨 있더니 결국 미리 잡아뒀던 일정을 취소하고 일찍 귀가를 하였다.
희게 질려 웅크려 있던 어깨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별 볼 일 없는 놈들한테 분풀이를 하면서도 승도는 때때로 희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꽉 닫혀 열리지 않았던 곳이 비굴하기 까지 한 애무에 서서해 열렸다. 처음 닿았을 땐 무서운 것을 보기라도 한 마냥 경직되어 바짝 수축되었던 곳이 뜨거운 숨을 흘려 넣고 부드럽게 빨아주고, 훑어주자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마음을 놓으며 속을 보여줬다.
어떤 창부도 겨우 상대의 몸을 열기 위해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하진 않는다. 이지란 게 없는 창부 아닌 음부만이 습관적으로 길들여진 대로 그런 굴욕적인 짓을 서슴없이 해대는 것이다. 그러나 승도는 굴욕적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만 열리는 것이라면 몇 번이라도 더 할 수 있다. 진즉에 했었을 것이다. 희완이 쏟는 것이라면 오물이라도 다 받아먹을 수 있다. 고작 오줌한번 지렸다고 죽을 것 같이 반응하던 희완의 울 것 같은 얼굴을 떠올린다.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바로 그 얼굴에서 비롯 된 것이다. 어떠한 것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다. 어떠한 것이라도 달게 해치울 수 있다. 그 알량한 희완의 몸뚱이를 온전히 열어 부드럽게 채울 수 있다면 스스로 창부가 되어 굴종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굴종이 아닌 기쁨일 것이다.
제 것을 받으며 그리 희락하던 희완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던가. 흉기 보다 더 난폭한 제 것을 어제처럼 그리 희열하며 안달하던 희완을 또 볼 수 있었던가. 항상 불안에 떨고, 겁에 질려 있고, 아파 괴로워하며 자괴감으로 일그러지던 그 얼굴들이, 사라진 채 온전히 쾌락에만 심신을 맡겨 환희하던 희완을 또 보았던가.
일 년 전의 희완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그 서러운 기쁨을 승도는 지난 밤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그 밑을 한번 빨아줬다고, 고작 거기 한번 빨아줬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끊임없이 젖어가던 희완을 승도는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이 난폭하고 무거운 짐승이 도사리고 있는 검은 우물 속에 고인 것이 그리 허무하게 형태를 드러냈다. 그보다는 더 검고 어둔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희완에게 향하는 마음을 쏟으면서도 승도는 이 안에 담긴 것은 그리 단 것이 아니라 좀 더 어둡고 짙고 음산한 마음이리라 했다. 빈껍데기의 누이를 묻으며 그런 것들로 꽉 찬 마음이 뱉어낼 것들은 한정되어졌다. 오로지 파괴와 정복을 일삼으며 무수히 깨부수어 가고 단련시켜 갔던 곳에서 파생되어져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리 한정되어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안으면 희락하면서도 한없이 일그러져 가는 희완의 얼굴은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으리라 했다. 아무리 그리 애가 닳도록 안달하여 그 속에 박아주어도 어찌 할 수 없이 이지러져 가는 눈 끝은 별수 없이 그러리라 했다. 단순히 좆부리의 크기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승도는 제가 상대를 안는 방법은 그 뿐이라 했다. 기억도 나지 않던 어느 때의 정사는 거친 묵정밭을 지나쳐 오며 전혀 다른 것으로 용도변경 되었다. 폭력의 해소, 폭력의 정당화, 또는 폭력의 사유화였다. 밑에 깔리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에 순응하며 살아남기 위한 나약한 것의 본능일 뿐이다. 동정과 연민을 구걸하는 것 또한 나약한 것의 생존본능의 발로였기에 거기에 의의를 두는 건 영양가 없는 짓이다. 욕구의 해소는 단지 욕구의 해소로만 남아. 그런 역할만 충실히 이행할 것이 필요하다. 때때로 승도에겐 폭력의 연장선에 불과했던 섹스는 그렇기에 난폭하고 과격하고 사나울 수밖에 없다. 몸에서 가장 나약한 곳을 내보이면서 갈구하는 그따위 감정의 찌꺼기들은 또 다른 찌꺼기를 양산할 뿐이다. 파괴나 욕구해소 외엔 달리 이유가 없다. 하여 희완 자체도 승도에겐 욕구해소였다. 그러나 그에겐 폭력을 쓸 수 없었고, 닥치라며 아가리를 갈길 수도 없었고, 변기통 취급하여 오물 따위 등을 갈길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승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희완의 본능적인 거부감에서 승도 역시 어떠한 감정의 찌꺼기를 보았다. 손수 갈기갈기 찢어 밟아 저 깊은 곳에 버려뒀던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흰 얼굴은 그 자체로 모순이었다.
너를 안게 된다면 그것은 이보다 좀 더 시커먼 그 어떤 것이리라 생각했다.
낡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창문 밖의 복잡한 전선줄을 응시하던 남자의 눈이 먼지 쌓인 데스크에 가닿는다. 다리를 벌린 희완이 바르르 몸을 떨며 이 시커먼 아가리에 정액을 쏟아내던 자리였다. 입을 벌린 희완이 젖은 속눈썹을 밀어 올리며 울컥울컥 쏟아지던 남자의 정액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깨끗이 삼켜내던 자리였다.
좀 더 부드럽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그리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하던 희완을 좀 더 부드럽게 안아주고 싶었으나 제 것을 달라고 오물거리며 안달하던 주름에 좆을 박는 순간 더 자제할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머리 가득 욕망처럼 번지는 것은 아무리 깊이 쑤시고 들어가도 채워지지 않는 정복욕이며 파괴욕이었다. 고작 그 알량한 몸뚱이에 승도가 그 속을 갈기갈기 찢어가며 쏟아내 버리고 싶은 그 강렬한 욕망이었다.
그러나 그걸 잠재우는 것 역시 희완이다. 사납게 달려드는 짐승의 밑에 깔려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결코 밀어 내지 않는 희완은 그 자체로서 승도의 목에 고삐를 거는 것이었다. 길게 한숨을 쉬듯 진 숨을 토해내며 제 품에서 지친 몸을 쉬던 희완의 그 꿀 같은 몸뚱이를 그려내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 하루만큼은 되도록 떨어져 있고 싶었으나 그런다고 이 욕망이 내일 더 옅어지진 않을 것이다.
찌그러진 차 대신 끌고 온 세단에 몸을 실은 승도가 시동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