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88화 (88/123)

눈을 뜬 건 남자의 허벅지 위에서였다. 어느새 침대 위로 옮겨져 있었고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은 남자의 허벅지 위에 앉혀져 두 다리는 힘없이 벌어진 채였다. 지금도 벌어져 있는 것 같은 밑에서 고여 있던 뭔가가 뚝뚝 떨어졌다. 정신을 잃은 사이 남자가 또 안에다 사정을 하기라도 했나 하는 희완이 따가운 눈을 그 어깨에 놓으며 나른한 몸에 힘을 뺐다. 길게 숨을 들였다 놓는 것도 무리가 가서 짧게 숨을 들이쉬는데 코끝으로 스며드는 연고 냄새가 뒤늦게 희완의 뇌리에 와 닿았다. 벌어진 밑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 그게 남자의 정액이 아니라 어쩌면 연고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희완은 그만 또 까무룩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작품이 지속된 2개월간은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여유가 있었던 것은 정말 딱 일주일이었다. 그 후로는 집에 들어오기도 힘들어 거의 학정의 아파트에서 신세를 지며 우진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연습 시간은 매번 바뀌기 일쑤였고 중간에 한 페어가 예정에도 없이 도중하차하는 바람에 그 스케줄까지 소화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터치를 않던 남자는 작품이 끝남과 동시에 희완을 낚아채고 단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엔 희완도 좋았다. 그동안 몸이 너무 달아 있었고, 바빠서 풀어주지 못하는 욕구에 드물게 초조해하기도 했었다. 때로는 학정의 낡은 아파트 구석에 처박혀 남자를 떠올리며 여러 번 자위를 하기도 했다. 작품을 마치고 남자를 품에 안았을 때 희완은 그것만으로 희락하였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르지 않는 샘처럼 희완을 요구하는 남자 때문에 사흘째부터는 거의 울면서 매달렸다. 힘들어서 그렇게 버르작거리면서도 그만하라는 소리는 않고 잠시만 쉬었다 하자며 어르고 매달리고 애원하던 희완은 그런 보람도 없이 꼬박 일주일을 시달려졌다. 아니, 희완 역시 충분히 즐겼으니 시달려졌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안에 굳어 있어서 연고 발라 놨습니다.”

그러면 연고에 의해 눅진해지는 것들이 한데 뭉쳐 우두둑 떨어지는 것이었다. 관장으로 빼낼 기운도 없으니 이러는 게 효과적이긴 했다. 잘 기억도 안 나는 처음 몇 번만 콘돔을 사용하고 주욱 체내 사정을 하다 희완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밖에다 했는데 그것도 매번 그런 건 아니라 여전히 속은 엉망이었다.

“볼일은 봤습니까.”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희완의 배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울렸다.

배가 고픈 건지, 배가 아픈 건지, 배가 허한 건지,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자는 동안 영양제 맞혔으니 좀 쉬고 내일부터는 죽이라도 먹읍시다.”

“어….”

목소리가 잘 안 나와 한참 뜸을 들이다 간신히 입을 여는 희완의 목소리는 끔찍했다. 그리 소리소리를 질렀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오늘도 하, 합니까.”

저도 모르게 묻는 말이 더듬어져 나왔다.

“삽입하면 죽을 것 같습니까.”

외려 그렇게 되물어 오는데 괜히 서러워져 왈칵 눈물이 게워져 나올 것 같았다. 몸이, 정말 으깨졌다는 표현에 걸맞을 정도로 잔뜩 짓씹어져지고 나니 눈물샘도 약해지고 사고력도 약해졌다. 결론은 조금만 자극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되는 것이다.

“그, 감각이, 감각이 없습니다.”

“윤 박이 다녀가긴 했습니다.”

그만하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매달릴 기세였다. 성고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 기저귀 차고 다니는 거 갈아 줄 생각 아니면 제발 좀 그만하시라고 답지 않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 유약하고 소심한 양반이. 그만큼 희완의 몰골이 형편없기는 했다.

“망가진 정도는 아니니 겁낼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벌어져 있어 희완은 반신반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것이 들어오면 내벽이 움틀거리는 감각도 이젠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한번은 방광이 터질 것 같았는데 남은 카데터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남자가 아래를 쑤셔 전립선을 자극해도 나오지 않고, 손가락으로 마사지를 해도 나오지 않아서 입으로 빨아 겨우 해결을 시켜주었다. 남자의 정액이나 장액 등이 잔뜩 엉켜 굳은 것이 꽉 들어찬 밑을 입으로 빨아 닦아주는 것은 이제 예사였다.

“오늘은 안 할 테니 그렇게 벌벌 안 떨어도 됩니다.”

저도 모르게 떨었는가 보다. 그래도 자각이 없어 힘없이 남자의 품에 늘어져 있던 희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안 힘드십니까.”

“그럭저럭 버틸 만합니다.”

“안 질리세요.”

“약이라도 탄 것 같습니다.”

“헌 것 같습니다.”

희완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의 것도 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조금만 쉬게 해주면 그새 회복을 하는 그것은 정말 그 말대로 어디서 약이라도 맞고 오는 것 같았다.

“처음엔 끊어질 것 같더니, 지금은 물속을 유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헐렁합니까.”

감각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던 희완의 가슴이 간신히 들썩여졌다. 가끔 이렇게 숨을 쉬는 것도 힘에 부쳤다.

“내 좆에 딱 맞게 벌어졌습니다.”

어… 그럼 많이 헐렁하겠네요….

또 제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그리 중얼거리던 희완이 배가 아프다 한다.

“이제 안에다가는 그만하세요.”

“싸달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요. 좀 아픕니다.”

“나중에 밑에 긁어줄게.”

“그거 말고, 빨아주세요.”

그게 덜 아프다며 그렇게 해달라는 희완의 밑을 더듬던 승도가 그대로 옆으로 뉘여주며 그도 옆에 누웠다.

“지금 빨아줄까.”

“아니, 나중에요.”

그냥 지금은 이렇게 있자는 희완이 또 그새 선잠에 빠져들었다.

자고, 박히고, 싸고, 빨고, 빨려지는 것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부터는 밤인지 낮인지도 구분이 안 갔고, 퉁퉁 부은 눈은 뜨고 있어도 감은 것 같아, 앞뒤 분간이 잘 안 되었다. 그나마 남자가 옆에 있으면 최소한의 어떤 것들은 유지가 되어 겨우 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막 굴리실 거면 어디 가시지 말라 하는 희완은 선잠에서 깨어 남자를 보다 또 꾸벅 잠에 들었다. 잘 때나 안 잘 때나 남자가 맘 내킬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매만져지니 이렇게 자다 깨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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