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97화 (97/123)

고개를 끄덕이는 희완은 그러나 별반 관심도 없어 보였다. 설사 너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온 거라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다. 확실히 석주경의 말대로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씻은 손으로 뜨거워진 제 목덜미를 덮어주는 희완을 올려다보던 우진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 하얗던 피부가 죄다, 헐어 있었다. 이렇게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이고 저 티셔츠 한 장 걸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희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안 아파.”

한 이틀간은 정말 몸뚱이가 죄다 헐어 있었는데 희완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 헐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서부터였다. 안 그랬다면 희완도 애초 돌아다니기 힘들었을 터였다. 무엇보다 우진이 우려한 대로 처음엔 얇은 티가 살갗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팠으니까. 그런데 이젠 보이는 건 이래도 실제로 헐어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짓을,”

“아무것도.”

남자와 희완이 하는 짓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도, 무슨 원한이 있어서도, 무슨 미움이 있어서도 하는 거 같지 않은 그냥 아무 의미 없는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오줌을 누고 똥을 누는 것처럼 그저 불필요한 것들을 배설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자.”

조금 늘었는가 하였던 대화는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둘이 붙어있는 시간엔, 정말 딱 몸만 붙이고 있었다. 순간 희완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우진이 밑까지 벗겨 봤었더라면 구역질이 아니라 아주 메스꺼운 속을 주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희완아.”

“어, 형 떄문이 아니야.”

그러니 걱정 말라며 가볍게 웃는 희완이 하고 왔던 머플러를 도로 목에 둘렀다. 귀밑은 작정하고 남자가 남긴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정도 봤어?”

“바쁘셔. 단장님 오신다는 시간은 내가 피해 있기도 하고.”

남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학정이 무서워서였다. 아니, 정확히는 이 꼴을 보고 분명 화를 낼 학정에게 남자가 무슨 짓을 할지가 무서운 거였다. 그래도 예전엔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이젠 남자도 희완이나 그 주변사람들이 기어오르면 기어오른다고 그대로 밟아 놓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랬었나, 모르겠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밑은 어때.”

우진도 이런 쪽에 경험이 있어 아무래도 선선히 넘어가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희완은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매번 뒤처리해줘.”

윤 박사를 불러 봐야, 맨날 하는 소리가 그 소리라, 언젠가부터는 남자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이러다간 진짜 큰일 난다고, 정말 왜 이러시느냐고, 연희완 씨 기저귀 차는 꼴을 꼭 보셔야겠느냐고, 똑같은 레퍼토리를 그는 매번 떨면서 뱉어 놓았다. 남자가 무서우면 그냥 아무 말도 않으면 될 텐데.

“많이 안 좋으면 나도 이러고 못 돌아다녀, 형도 알잖아.”

질려있는 눈초리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아마 희완이 이렇게 당하는 걸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희완은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 당하고 있는 건지는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진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 일은 신경 쓰지 마.”

희완을 꼼짝없이 품에 안고 굴리는 동안에도 남자는 바깥소식을 전해주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날 우진이 약을 얻게 된 경로까지 말해주며 그리 애틋하냐고 물었었다. 당시 입으로 그의 것을 받으며 아주 잠시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 그의 것이 목구멍으로 쏟아져 결국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사를 나눈 후 지쳐 쓰러진 희완을 억지로 깨워 먹을 걸 넣어 주며 그는 무심히 몇 마디 던져주곤 했었는데 서로 오가는 말이 없었으니 대화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우진을 걱정하는 희완에게 조건을 걸어 그 상태에 대해 언급하여 주기도 했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사실 이제 와서는 크게 무리가 없는 것으로, 스스로 밑을 벌리거나 허리를 흔드는 등,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어. 시간 끌 거 없으니까.”

정신과 상담도 병행한다더라.

덧붙이며 먼저 앞서 간 우진이 자판기에서 음료 두개를 빼어 왔다. 그간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 걷는 게 힘이 부치는지 근처 벤치에 앉은 우진의 곁에서 희완은 달달한 음료를 끝까지 비워내었다. 한번은 입을 우물거리는 것도 귀찮아서 그가 먹여주는 걸 도로 뱉어냈었는데, 그 뱉어낸 걸 항문으로 들이 밀어서 결국 먹던 걸 다 비워야 했다. 그렇게 지독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학정 형하고는 이야기 된 거야?”

“온다는 걸 못 오게 했다.”

저와 같이 있던 그 반나절만도 내내 울리던 핸드폰을 결국 꺼뜨리는 걸 보고 우진은 입을 열었다. 요양원으로 갈 것이란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던 학정에게 옷을 벗어 직접 그 눈에 들이밀어 주었다. 우진이 자해한 흔적들, 약을 담았던 흔적들, 결코 나아지지 않은 흔적들, 그 역시 이미 알고 있던 흔적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언제까지 날 문드러진 채 서서히 썩어 들어가게 만들 것이냐고, 이제 그만 하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우진을 보던 눈은 잿빛이었다. 그것이 또다시 우진의 속을 들끓게 했다. 언제까지 이럴 순 없습니다. 이번에 날 놓는다고, 예전처럼 그렇게 망가져서 돌아오는 거 아닙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 가는 거라고, 당신이 단 한 번도 날 쥐고 놓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진심으로 망가지길 원했던 적 없었다고, 할 만큼 다 했고, 오히려 과분할 만큼 받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 혼자 하게 해 달라 하는 우진이 학정의 손을 잡았다. 그로서는 처음 내밀어 잡아본 손이었다.

항상 학정에게 붙잡혀 끌려가거나 뿌리치기만 했던 손을 처음으로 먼저 내밀어 잡아보았다. 뜨겁고 거친 손이었다. 닿기만 해도 데거나 타버릴 것처럼 화득한 것이 아닌, 그저 남들보다 좀 더 뜨겁고 거칠기만 한 손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사실 단장님도 그동안 썩 좋은 동거인은 아니었잖습니까. 농을 치는 우진의 머리칼이 가만히 흩뜨려졌다. 우진이 입단을 하고 처음 무대 위에 서게 됐을 때, 그 밑에서 잘하고 내려오라며 머리를 흩뜨려주었던 그 손이었다.

극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관계자가 한창때 즐겼던 약을 슬쩍 주머니에 넣어주었던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었다. 희완에게 그 꼴을 보일 것도 아니었으나 그래야만 했다. 빈 깡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희완의 머리칼을 건드리니 그 손에서 떠난 깡통 역시 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쓰레기통에 처박아졌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어깨로 내려오며 그대로 희완을 가만히 끌어당긴다.

“다녀올게.”

미안하단 말보다도, 고맙다는 말보다도, 희완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연습 후 마무리를 하고 내일 뵙겠다며 하나 둘 귀가하는 단원들이 죄다 나가길 기다리고 있던 희완이 몸을 일으켰다. 불을 전부 끄고 사무실 하나에만 불을 켜 놔 문밖으로 길게 내비치는 그림자가 음산했다.

한동안 쏟아지던 섭외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던 경성은 요즘 또 뚝 끊긴 섭외 전화에 의해 본래 부단장 직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와 있었다. 우진이 다시 약에 손댔다는 사실도 알고, 요즘 희완이 살짝 삐딱하다는 것도 알고, 학정이 그놈이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도 경성은 특별히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여전히 가벼웠고 밝고 쾌활하고 잘 웃었다. 말 안 듣는 놈들 혼내주고 패주기도 하고, 말 잘 듣는 놈은 침이 마르도록 예뻐해주고, 우진의 입원소식을 듣고선 말없이 희완의 머리칼을 헤집어 놓기도 했다. 그 역시 학정의 근간이었다. 그의 조력 없이는 학정이 그렇게 제 뜻만 고집스레 세우진 못했을 것이다.

크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소소하게는 잔소리도 많은 경성이 날갯죽지가 툭 불거져 나온 희완의 등짝을 툭 치며 한 소리 했다. 그런 것에까지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매번 남자가 먹여 주는 것들로 끼니를 거른 적은 없었지만, 그만큼 체력소모가 심하기도 했다. 제 살 깎아 먹는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러나 희완은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남자가 정말 그렇게 자신을 취급한다면 희완 본인도 남자를 그렇게 취급해 주겠다는 마음이었다. 중요하지 않다고, 이깟 몸 섞는 거 하나, 알량한 그거 하나, 몸정 붙어 그러는 거라고, 그거 떨어지면 자기도 언제든지 쓰다 버린 물건 취급할 남자한테, 더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가 바지를 벗은 희완이 거울을 보고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진득한 연고가 피에 섞여 허벅지에 눌어붙어 있었다. 항문은 남자의 말대로 그의 크기에 맞게 딱 늘어져 있어 이제 웬만해도 찢어지거나, 그럴 정도로 아프진 않았지만 매양 부딪치고 비벼지며 마찰하는 연한 속살은 또 달랐다. 며칠은 괜찮았는데 한번 헐기 시작하니 그 뒤부터는 계속이었다. 그의 것을 빼놓은 지 반나절이 지나 있음에도 전처럼 주름이 잘 보이지 않는 구멍에 휴지를 대고 살살 닦아낸다. 이러다간 정말 기저귀를 차야 할지도…. 중얼거리던 희완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우당탕탕!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오래 낡아 고장 나 있던 샤워실 문밖으로 검은 것이 휙하니 지나갔다. 그 검은 것이 뛰어가다 부딪쳐 넘어진 듯 연습실 안쪽에서 쌓아 둔 소품이 우당탕탕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쾅, 문이 닫히는 소리, 이윽고 정적이었다. 거울 가까이 엉덩이를 붙이고 허리를 숙이고 있던 희완이 창백해진 얼굴로 굳어 있다 문득 제 뒤를 보았다. 엎드리기만 해도 헤벌쭉 벌어지는 항문 안쪽으로 벌겋게 보이는 속살이 정액과 비슷하게 생긴 연고를 연신 밀어내고 있었다. 가볍게 호흡을 하면 그것은 더욱 두드러졌는데, 잊고 있던 어느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러고 밑을 보고 있으니, 업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맨 정신으로 보아야 했던 창부들의 음부가 이렇게 생겼었다는 게 기억났다.

“그럼.”

희완이 들어 살게 된 뒤로 겨우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로 드나들었던 철진의 방문이 근래 들어 늘었다. 방문하는 시간은 밤이나 낮이나 대중이 없었는데, 더러는 그와 섹스를 하는 중에도 많이 와서, 여러 번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안방이나 화장실 등으로 숨어들었던 적도 있었다.

굳이 침대가 아니더라도 남자는 성욕이 동하면 어디서든 희완을 깔아 눕혔다. 퇴근하고 들어오다 마중 나온 희완을 현관에 눕혀놓고 하기도 했고, 이젠 식탁에서 먹게 해주는 밥도 그 중에 동하면 식탁에 엎드려 놓고 남은걸 다 비울 때까지 사정을 안 하기도 했다. 속에 묵직한 그의 것을 담고 뭘 먹는 건 처음엔 되게 생경했었는데 이젠 그럭저럭 익숙해진 정도였다. 소파에 앉아서도 입으로 그의 것을 세우고 스스로 올라타서 엉덩이를 흔드는 내내 뉴스를 보던 그가 벨소리를 듣고 희완을 밀어 냈었다. 철진인 걸 확인한 후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 해서 그의 것이 뚝뚝 떨어지는 밑을 닦던 중에 안으로 쫓겨 왔다. 별짓을 다 시키면서, 아직은 희완과 그러는 걸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가 했다. 아무리 그 같은 사람이라도 터부란 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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