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113화 (113/123)

희완을 학정에 다시 데려다 놓은 남자가 귀가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연습을 마치고 가면 열한 시쯤 될 거라 하니 알았다며 데리러 올까, 하고 묻는다.

“괜찮습니다. 일 가시잖습니까.”

낡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한동안 클럽에 머물면서 철진의 일을 거드는 승도였다. 별반 하는 일 없고, 실상으로도 승도의 일을 철진이 거드는 것이었지만 희완은 동업 정도로 이해하는 중이었다. 아직도 남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등의 용 문신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간혹 불을 켜지 않은 실내의 어둠 속에서 은연히 드러나는 그의 등을 보고 있자면 희완은 저도 모르게 그리로 손을 뻗곤 하였다. 만져지는 것은 보이는 것만큼 매끄럽고 단단하지 않았다. 손을 더듬으면 우둘투둘한 흉터들이 자갈처럼 매만져졌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맺힐 것 같지 않은 단단함은 의외로 희완의 손끝만으로도 잘 눌려졌다.

거기에 입술을 대고 길게 핥아본 적도 있었다. 남자는 늘 희완의 몸을 핥아주었는데 희완은 그런 적이 드물었다. 핥으니 반응하는 남자의 등 뒤로 잔뜩 웅크려있는 용이 희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꺼지라는 것 같기도 하고, 꺼지지 말라는 것 같기도 한, 두 마리의 용은, 희완을 떠밀기도 하고, 잡아채기도 하고, 건져주기도 하고, 내동댕이치기도 했던, 남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다정하다가도 무섭게 거세어지고, 냉담하다가도 묵묵히 부드러워지는 남자의 이중적인 면을 희완은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뱉어지는 좋다는 말의 무게는 여느 사랑고백과 비해도 손색이 없었다. 가끔 정말 정신이 나갈 정도로 흔들려져, 울면서 좋다고, 그래도 너무 좋다고 하면 남자는 천천히 이 몸에 그를 각인이라도 찍듯 아주 깊숙이 들어오며 입을 맞춰주었다. 이윽고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나 역시 좋다고, 비할 데 없이 좋노라고.

“연습 중에 왜 넋을 놓고 있어?”

바로 대사를 치고 들어왔어야 할 상황에 가만 땅만 쳐다보고 있던 희완의 어깨를 우진이 툭 쳐왔다. 그제야 생각에 잠기느라 흐려졌던 초점이 돌아오는 희완이 빤히 잘생긴 그 얼굴을 보다가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단둘이 맞춰보는 것이었기에 망정이지 이 자리에 학정이라도 있었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그러나 우진은 정신 차리라며 가볍게 머리를 한번 쓸고는 좀 전에 제가 끝내 놓았던 대사를 짚어 주었다. 단정하게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엔 혈색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퇴원 후에도 꾸준하게 이어온 재활치료와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심리상담은 우진의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되는 듯했다. 학정에게 의지를 함으로써 약간의 체념적인 면모를 보였던 것도 요즘에 들어선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디 허공을 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고, 난간 아래 저 밑을 내려다보고 갈등으로 뒤채이는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랫말이자 시처럼 그저 물결에 휩쓸리며 헤적이는 수초 같았던 그는, 말없이 고여 있는 흐린 우물 같았던 그는, 서서히 맑아져 가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 갠 구름처럼 그렇게 차츰 화사해져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경질적인 면모가 많이 감소되어 우진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하던 후배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비 그쳤던데, 그래도 우산 챙겨 가라. 또 떨어질지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형은?”

“학정이 데리러 온단다. 장미호랑 주여욱이랑 한잔하려나 봐.”

장미호랑 주여욱은 결국 못 찢어질 모양인가 보다고, 저번엔 술자리에서 울면서 난동을 피우던 장미호를, 결별 후 완전 폐인 꼴을 면치 못하던 주여욱이 짠 하고 나타나 정말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처럼 번쩍 들어 안고 룸을 나섰더랬다. 그 정도면 게임 끝난 거 아니겠느냐며, 이제 그만 장미호가 백기를 들어도 좋고, 주여욱이 꼴통 짓 그만하고 들어앉아도 좋고, 한 가지로 결론을 맺는 게 좋을 것이라는 우진의 옆에서 학정은 드물게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장미호와의 오랜 동행이 끝난 후 그노무 히스테릭한 사랑 타령 따위 안 들어서 학정은 정말 후련해하는 듯했다.

에이, 저는 장미호랑 학정 형이랑 썸씽 생기는 줄 알고 엄청 기대했었는데!

승원의 한마디에, 학정의 복귀와 장미호와의 징글징글한 동행의 끝을 축하하는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우우 야유를 보냈다가, 깜짝 등장한 장미호와, 그녀의 손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골드카드에 가열찬 환호성을 보냈었다.

실물로 보는 여배우는 언제든 아름다웠고, 먹고 마시는 물과 공기조차 다를 것처럼 신비롭게 여겨지던 장미호가 여신에서 사람으로 돌변한 건 그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희완을 발견하고서였다.

“어?! 여배우보다 예쁜 배우!!”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희완에게로 향하였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경성에게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어휴, 우리 장미호 배우님 얼굴만 예쁘신 줄 알았더니 안목도 탁월하시고 유머 감각까지 겸비하신 것 같다며 요상해진 분위기를 풀어 내려는 경성은 아랑곳도 않고 살짝 치켜떠진 눈으로 구석에 앉은 희완을 응시하던 그녀가 흥, 어디가 나보다 예쁘다는 거야? 그 한마디로 장내의 침묵을 정리했다.

여기저기서 그럼요, 그럼요, 아무리 연희완이가 잘생겼기로서니 장미호 배우님과 비교를 하다니요, 그건 천하의 불경입니다, 불경. 솜씨 좋게 알랑방귀를 뀌는 단원들의 넉살에도 희완을 흘겨보는 걸 멈추지 않던 장미호의 앞으로 빈 잔이 채워졌다.

“팬입니다. 역시 실물이 훨씬 아름다우시네요.”

싱긋 웃으며 건네는 찬사는 낯부끄러울 정도로 노골적이었지만 담백한 목소리로 흘러져 나오니 제법 들어 줄 만한 구석이 있었다. 초면부터 다짜고짜 저에게 가시를 세우는 여배우를 데면데면해하기는커녕 외려 수더분하게 웃으며 술을 권하는 희완이 지난 작품 정말 잘 봤다며 말을 덧붙였다. 이유 있는 뒤끝에다 여배우 특유의 콧대까지 세우는가 하였던 장미호도 제 작품 이야기가 나오니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그래도 쉬이 넘어오지 않고 뭘 봤는데요? 라고 물어오는 그녀의 최근작을 대는 희완은 실제로 그 드라마를 즐겨 보기도 했다.

일찍 끝나는 날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틀어 놓고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를 시청하곤 했는데, 종종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과 남자의 귀가 시간이 겹치기도 했다. 혼자 사는 버릇이 오래 든 그는 초인종을 거의 누르지 않았고, 가끔이라도 희완이 문을 열어주면 그리 싫은 눈치를 보이지도 않았다. 열리는 문틈 사이로 흘긋 희완을 내려다보다 안으로 들어서며 허리를 안아오는 그와 입을 맞추는 것은 예사였다. 제 작품 이야기에 금세 화색을 띠며 차츰 경계를 풀어가는 여배우를 앞에 두고 또 딴 생각에 빠져 있던 희완이 슬쩍 귓가를 문질렀다. 정말 대책 없이 푹 빠져 있다는 생각이다. 아무 때고 그를 떠올리는 것도 버릇 아닌 일상이 된 듯했다.

남자는 섹스를 할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 손으로 희완을 준비시키는 걸 즐겨했다. 옷을 벗겨 주었고 샤워볼을 끌고 와 깨끗하게 몸을 닦아 주었으며, 관장액도 직접 주입시켜 주었다. 변의를 참느라 고통스러워하는 희완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아 같이 욕조 바닥에 누워 있어 주기도 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일찌감치 귀가해 피트니스 룸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던 그는 희완을 발견하자마자 입부터 맞춰 왔다. 약 한 달간 삽입섹스를 자제해 왔으니 그의 몸이 달아 있는 것도 이해는 갔다. 희완도 그러했으니까. 그의 손에 의해 옷이 벗겨지면서 우선적으로 온몸에 죄 키스를 당했다. 땀 흘리고 와서 씻지도 않았는데 개의치 않고 입술로, 옷이 떨어져 나가는 곳마다 살을 빨아주며 기대감으로 흥분해 있는 신경들을 일시적으로 만족시켜 주었다. 희완 역시 그만큼 안달이 나 있었다. 욕실에서는 그의 손에 머리를 맡기고 욕조 난간에 기대어 있다가 입술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농밀한 키스에 사정을 했다.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던 것을 입으로 샅샅이 빨아 삼키고 다시 입술을 겹쳐 오던 그에게서 짙은 열기를 느껴야 했다. 그리고 고무 튜브대신 카데터를 통해 관장액을 주입한 후에는 거의 배앓이를 하는 사람처럼 그의 품에서 끙끙 앓아야 했다. 이런 건 의외로 면역이 되어서 잘 참을 수 있는데 오늘은 관장액의 농도가 너무 짙었다. 단 5분도 못 참겠는 걸 호소하니 그럼 쏟아버리라 하는 그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의사의 당부가 있었고, 시작하면 밑부터 핥아 올 그를 알기에 최대한 버텼다.

키스는 부드러웠다. 먼저 촉촉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입술을 붙여오고, 부드럽게 틈새를 가르고 들어오는 혀가 치열을 핥고 안쪽 깊숙이 밀려들어 오면 그때서야 혀를 섞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단막극에 같이 출연했었던 상대 여배우는 키스신 촬영을 마치고서도 한참을 멍하니 희완의 젖은 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끝에 흘린 이야기는 키스에 대한 찬사였는데, 단지 희완은 저에게 해주던 남자의 키스를 떠올리며 그녀와 입을 맞췄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밤새 입이 닳도록 키스만 해 와서 다음 날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입안이 얼얼했었다.

양팔을 무릎 아래에 끼워 넣고 스스로 다리를 올려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던 희완이 밑을 보았다 훤히 드러난 선홍빛 항문을 깨끗이 핥아내던 남자가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고 있었다. 평소엔 입으로만 근육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삽입해 오던 그가 오늘은 손가락으로 먼저 풀어 내려는가 보다 했다. 길게 집어넣었던 하나를 한번 휘저으며 혀로 주름을 핥아 온다. 움찔움찔, 희완의 살결이 떨렸다. 양 무릎 밑에 끼워 놓은 두 손을 아예 맞잡고 다리를 좀 더 위로 끌어 올리는 희완의 항문이 더할 수 없이 예쁘게 드러났다.

“음, 으음.”

하나였던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나고, 또 세 개로 늘어났을 때 희완은 거의 삽입에 가까운 유사 행위를 당하고 있었다. 높이 들어 올린 다리를 최대한 가슴에 붙여 허벅지를 꼭 붙잡고 있던 두 팔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끝까지 집어넣은 손가락 세 개를 푹푹 찔러 넣을 때마다 느슨하게 벌어졌다 바짝 오므려지는 그곳을 그 혀가 진득하게 핥아 왔다. 그러면 감전이라도 되는 마냥 움찔움찔 진저리가 쳐지는 몸이 매번 이완과 수축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네 개까지 들어갑니다.”

그가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감각이 있었다. 어느새 질척질척하게 늘어난 항문을 쿨쩍쿨쩍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으로 피스톤 질을 하던 그가 항문 주변으로 흐르는 장액 따위 등을 핥았다. 그리고 회음부로 늘어져 있는 음낭을 물고 가볍게 빨아준다.

“흐으.”

아찔한 자극에 꽉 안고 있던 다리를 놓치는 희완에게서 헐떡이는 숨이 뱉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잘 느끼는 희완이었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밑이 쑤셔지는 것만으로도 발기한 성기가 벌써 말간 액체를 툭툭 게워내고 있었다. 거의 옆으로 널브러지다시피 떨어진 희완의 다리가 밑으로 끌어 내려지며 몸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때까지도 밑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남자의 손가락이 쑤욱 빠져나갔다.

매트리스에 완전히 엎드리게 된 희완의 엉덩이가 불쑥 솟게 되고 그 밑으로 구겨진 베개가 밀려들어 왔다. 훤히 드러난 엉덩이 가운데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빨간 속살을 드러내는 구멍이 개폐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걸 혀를 내어 다시 빨아 주는 남자가 손을 뻗어 콘돔을 꺼내었다. 벌써 들어오려는가 하는데, 정말 겨우 형태만 갖춘 그의 것이 벌어져 있던 곳을 부드럽게 헤집으며 안으로 쑤욱 들어왔다. 벌어진 희완의 입에선 흡, 숨이 막히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뱉어졌을 뿐이었다.

푹, 푹, 푹.

완전히 삽입된 채 안에서 부피를 늘려가던 그의 것이 뽑혀 다시 내리꽂힐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매트리스에 온몸을 딱 붙이고 엎드려 거기만 볼록 솟아 올린채 푹푹 처박히고 있던 희완에게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비켜 때린 전립선이 움찔하여 내벽을 수축시킨다.

“아앗!”

헉.

“으흐, 으, 으읏.”

한 번에 퍽 쑤시고 들어온 남자가 이번엔 하체를 딱 붙인 채 허리만 느른하게 돌렸다. 동시에 깊숙이 박혀 있던 음경이 내벽을 안에서부터 건드리며 크게 돌려진다. 개미 수백만 마리를 구멍 속에 밀어 넣은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것들이 수천개의 다리로 내벽을 긁으며 간질이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돌려지던 것이 다시 퍽, 안쪽으로 깊숙이 박힌다. 그리고 귓가에 뜨거운 숨이 쏟아졌다.

“녹아버릴 것 같습니다.”

희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미 녹아버린 것 같다.

이제 겨우 한 번의 삽입이었을 뿐인데, 노골노골하게 녹아버린 밑이 아주 흘러 버리는 것 같았다.

“만져봐.”

그런 희완의 속내를 알아차린 남자가 매트리스를 꽉 틀어쥐고 있는 손을 끌어다 밑을 만지게 했다. 빈틈없이 물어 찬 음경이 일부분 빼어지며 그 결합된 부위로 희완의 손끝이 스쳤다. 남자의 것이 희열하며 희완의 손을 반겼다. 그걸 희완이 쥘 수 있을 만큼 더 빼낸 남자가 주무르라 한다. 귀두 밑까지 삽입을 한 남자의 음경이 곧 희완의 손 아래서 쿨쩍쿨쩍 주물러지며 첫 번째 사정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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