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121화 (121/123)

무겁게 얼굴을 굳히는 승도가 이불을 걷고 기어들어 가 희완을 제 품에 꽉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뒤척거리는 희완이 몸을 뒤집어 제 품으로 굴러 들어오는 걸 받으며 그 작은 머리통을 뜨겁게 쓸어주었다.

“연희완.”

이렇게 부르면 차츰 그 눈에 이지가 서리며 잔뜩 흐려진 초점이 바르르 세워지는 게 보였다.

“희완아.”

그리고 또 이렇게 한 번 더 부르면 겨우 정신을 차린 얼굴로, 그러나 여전히 눈앞의 사물을 알아보지 못한 채로 울먹이면서 승도에게 손을 뻗었었다. 학정에게로만 매양 뻗어 나가던 손이 저에게로 향해졌을 때 승도는 그걸 당겨 얼마나 뜨겁게 안았었던가. 너를 이렇게 안을 자격이 없는 놈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안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다.

“연희완.”

잠결에 미간을 찌푸리며 길게 숨을 내놓은 희완이 작게 무어라 중얼거린다.

그걸 꼭 끌어안으며 눈가에 입술을 붙여주는 승도가 다시 말했다.

“희완아.”

제 품에서도 바들바들 떨어가며, 도무지 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혼란스러워하던 희완을 떠올리며 승도는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리 멀쩡하게 살고 있다 해도 어느 한 점, 어느 한 날의 지독한 고통과 성에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서로가 서로를, 매어 놓는 까닭이었다.

눈을 뜬 희완은 제가 남자의 품에 있다는 걸 깨닫고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어제 분명 남자는 안방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하면서, 혹시 이 남자가 화가 풀린 건가  하며 조심스레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데 아랫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알람소리로 그만입니다.”

“…….”

나른한 눈을 길게 뜨던 희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어젯밤에는 말도 못 붙일 만큼 그리 싸늘하더니, 오늘 아침엔 또 평소 잘하지도 않던 농을 치며 희완을 안아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희완의 팔이 이끌려 앉혀졌다. 사고가 있던 날부터 놀라고 이리저리 수습하고 다니고, 또 사과하러 다니고, 집에서는 남자 눈치를 보느라 바빠서 배고픈 것도 모르고 밥을 굶고 다녔다. 평소에는 밥 굶고 다니는 걸 챙겨주던 사람들이 그리 화를 내니 이틀을 꼬박 굶게 된 것이다.

그보다, 배가 고픈 건 고픈 거고.

아침부터 이 모양인 제 가랑이 사이를 난감하게 내려다보던 희완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윽고 제 입술에 떨어지는 남자의 입술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속으로 그가 화가 풀렸다는 걸 깨닫고는 좀체 의아한 심정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희완은 그 생각을 더 지속할 수 없었다. 키스를 마침 남자가 목덜미를 미끄러져 내려가 깁스를 감은 희완의 팔을 가만 훑고 마지막으로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기 때문이었다.

“으, 읏!”

남자라면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 곤란할 건 아니었지만, 또 그간에 아침마다 서로의 것을 풀어주는 게 특별할 만큼 낯선 일도 아니었지만, 오늘은 참 이상했다. 불룩 솟은 제 것을 가만 빨아주는 남자의 입술이 너무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남자는 오럴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그 느낌자체가 너무 달랐다. 부드러웠고, 부드럽다 못해 솜사탕 같았다.

“…….”

솜사탕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목뒤를 빨갛게 물들인 희완이 제 가랑이에 얼굴을 박고 있는 승도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으음.”

아무리 아침이라지만 절정이 너무 빨랐다.

남자의 입 안에서 사정을 하고도 한참 허탈하고 민망해 그의 등에 살짝 기대고 있던 희완이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러고서도 남자는 한참 고개를 숙인 채 희완의 것을 빨아주고 그 주변을 닦아주고 있었다. 원래도 이런 것들을 잘해주는 남자였지만 확실히 오늘은 무언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는 희완이었다.

훈방 조치된 범인이 민사소송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르고 지나쳤을 일이었지만 그쪽 부모가 합의해 달라고 찾아와 희완도 겨우 알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영문도 모르고 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어르신들을 송구스러운 얼굴로 맞았던 희완이 자초지종을 알게 되고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짓게 되었을 때 마침 곁에 있던 우진이 그 인간들을 바깥으로 죄 내쫓았다. 그리곤 희완에게 정신이 있는 거냐며, 저런 인간들 이야기는 뭐 하러 들어 주고 있느냐고, 만약 저 인간들이 그 새끼 부몬 거 모르고 들였다 해도 알면 썩 내쫓을 것이지 뭘 그걸 다 들어 주고 있느냐며 잔소리를 하고는 벌컥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우진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속상함이 가시지 않는 거다. 그도 그때 희완하고 좀 더 같이 있었어야 했다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그러면 희완이 마음 쓸 걸 알면서도 우진은 그게 잘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어떻게 사람한테 각목을 휘둘러, 그것도 사람 머리에.

며칠 전에 찾아온 검사가 조서라며 들고 온 내용에 있었다.

머리를 깨부수어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소릴 다 듣고 있었으면서 초범이라고, 반성의 기미를 보인다고, 군소리 없이 훈방 조치한 경찰에게는 이가 갈릴 정도였다. 더구나 빽인지 뭔지, 남자가 손을 쓰고 나니 검찰 나으리까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걸 보고는 더 심사가 뒤틀린 우진이 합의 따윈 할 생각도 없으니까 그딴 소리 지껄일 거면 다신 찾아오지도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질러 쫓아내었다. 찾아온 검사가 민사소송 담당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니 그 소식은 틀림없이 전해졌을 것이고, 오늘까지 단 한 번도 그쪽에서 사람이 찾아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걸 저 등신이, 어휴. 연희완 이 미련한 새끼.

알게 됐으니 또 합의를 해주려고 마음먹을지도 모른다.

부모 없이 자란 놈이 자식새끼 때문에 한없이 초라해지고 나약해지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으니 합의를 안 해주고는 못 배길 터였다. 그때 거기서 머리가 깨졌어야 하는 게 차라리 저였으면. 훅, 한숨을 뱉어내는 우진이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입을 맞춘 희완이 눈을 깜박거렸다. 역시 좀 이상하다.

그래서 다시 입을 맞추려던 걸 관두고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 맞은편에 앉아 신문을 넘기던 남자가 그 시선을 눈치채고도 한참 후 희완을 보았다. 뭡니까. 묻는 시선에 멀쩡한 손으로 이마를 긁적이는 희완이 고개를 갸웃한다.

“왜 요즘은 안 넣어주십니까.”

딱히 대체할 말도 떠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이제 와 그런 거에 민망해할 사이도 아니라 저렇게 말을 뱉은 희완이 대꾸를 않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는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을 느껴야 했다. 평소라면 그도 왜, 간지럽습니까. 라거나, 쑤셔지고 싶습니까. 라거나, 그런 말을 해야 맞는 건데. 저리 묵묵히 저를 쳐다보기만 하니 그만 멀뚱했던 희완의 귓불이 화르륵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 민망함을 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는 희완의 손을 남자가 잡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당겨 제 허벅지 위에 앉혀 놓는다.

“하고 싶습니까.”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주는 남자의 위에 앉아 머쓱한 얼굴로 이마를 긁적이던 희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아직도 화가 나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남자의 행동이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었다. 뻔뻔스럽게 천박할 정도로 농도 아닌 진담으로 희완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던 남자가 너무, 신사적이었던 것이다. 말을 꺼내 놓고 생각하게 되니 남자가 너무 신사적이어서 그게 불편하고 어색해하는 스스로가 굉장히 변태처럼 느껴진 희완이 다시 볼가를 문질렀다. 민망하고 어색하다는 뜻이었다. 그걸 빤히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화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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