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쿵. 심장이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 같았다. 불안함이 폭발하듯 태범의 사지를 꽉 조였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태범은 우선 최대한 이성적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유원에 대한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 유원이, 우짜면 좋아… 이걸 어쩌면 좋아….”
“할머님.”
준석은 태범을 향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할머니의 몸을 일으켜 소파로 데려갔다. 무릎에 담요를 덮어주고 따뜻한 차를 내어준 준석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님, 우선 상황을 설명해주셔야 저희도 방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자 또다시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입을 연 할머니가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게 땜시 늦게 들어 왔는디 나는 당연히 자는 줄 알고 일부러 안 깨우려고…. 근디 아침에 보니까 애가 없는겨.”
“네. 그래서요?”
“그래서 난 잠깐 어디 좀 간 줄 알았지…. 그래서 한참을 또 기다리는데 오지도 않구, 전화기도 집에 두고 가고.”
“그게 언제였습니까?”
할머니는 답답한 듯 가슴을 세게 내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한 사흘 됐어.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 돼….”
“할머님, 우선 손주분부터 찾으셔야죠. 이렇게 벌써 포기하시면 안 돼요.”
태범의 얼굴은 서슬 퍼렇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지만 어느 때 보다 매서운 분위기에 준석은 두려울 지경이었다.
“신고는 하셨습니까?”
태범에게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어 태범을 바라보곤 자신도 모르게 흠칫 숨을 들이마셨다.
무감정한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시선이 닿는 곳이 칼날에 베이듯 따끔거렸다. 그게 할머니에게만 느껴지는 게 아닌 듯 다른 남자들도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형님.”
“신고. 하셨냐고 물어봤습니다.”
준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태범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태범도, 그리고 할머니도 유원이 가출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혹시나 유원이 나쁜 마음을 먹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라면….
태범은 상상만으로 끔찍한 생각에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생각을 멈추었다.
“했어… 저녁에 바로 했어.”
“근데도 아직 아무 연락도 없었습니까? 위치 추적은 못해도 주변 cctv만 확인했으면 소재파악 정도는-”
태범은 익히 일 처리를 개같이 하는 경찰을 떠오르며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도드라지도록 분노를 삼킨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운언동으로 애들 보내서 주변 cctv 수거해오고, 블랙박스든 뭐든 뒤져서 차유원 찾을 만한 거 있음 전부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범은 곧바로 준석에게 지시를 내리며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경찰과 검찰에 협조 부탁했고 지금부터 곧바로 특수 수색으로 전환되어 사건 진행할 겁니다. 이외에도 사적으로 최대한의 인력을 동원 시켜 어떻게 해서라도 찾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자네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고마워. 정말 고마워….”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는 태범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태범은 그간 얼굴이 많이 상한 할머니의 모습에 입 안이 썼다. 막연히 잘 지낼 거라고 외면하며 억지로 잊으려 했는데, 유원의 소식을 이렇게 알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상상도 못 했다.
“그동안 유원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작년 10월에 유원이가 오메가로 발현을 했어….”
“오메가로… 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태범의 손등에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터져 나오려는 페로몬을 최대한 억제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태범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작게 끄덕일 뿐이었다.
태범은 유원에게 있어 ‘오메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 이유도,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거기서부터 있다는 것도.
“그때부터 애가 많이 힘들어 혔어… 밖에 잘 나오지도 않고, 또….”
할머니의 눈이 태범을 응시하다 고개를 숙였다. 태범은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의미를 알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모습을 감추고, 찾아오지 않는 자신을 기다렸겠지.
정이 많고 태생적으로 착한 아이다. 태범은 힘든 상황에도 제 할머니를 돕고 항상 밝게 웃는 유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원이가 자네를 많이 기다렸는데… 아닐세, 내가 괜한 말을….”
그러나 내뱉은 말과 다르게 할머니는 여전히 속상한 눈으로 태범을 바라보았다. 준석이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태범의 손에 가로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선은 유원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그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없었어….”
“알겠습니다. 우선은 댁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유원이를 찾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유원이를 찾아주겠다는 말에 할머니는 그제야 안도감이 서린 얼굴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동안 경찰서에 신고를 해도 단순 가출로 판명되어 일이 진척되지 않았었다.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태범을 찾아온 할머니였다.
기운이 빠져 잘 일어나지도 못한 할머니는 준석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님은 자택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영상은.”
태범은 피곤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었다. 유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선 회수된 영상 파일입니다.”
준석이 태블릿에 영상을 재생했다. 빌라 입구 cctv 였다. 빠르게 돌려보자, 할머니가 출근을 하고 나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서는 유원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대충 껴입은 옷과 그 아래로 보이는 마른 몸이 태범의 시선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지난 몇 달간 유원은 살이 너무 많이 빠져있었다. 원래도 마른 몸이었지만 지금은 심각할 정도로 빼빼 마른 손목이 자꾸만 태범의 시선을 빼앗아갔다.
저런 몸으로 매일 어디를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태범이 초조한 마음으로 준석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매일 똑같은 시간이라면 목적지가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준석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미간을 찡그렸다. 준석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걸 태범에게 전하는 게 그를 위한 일인지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박준석.”
“…1층 커피숍에서 찍힌 cctv 영상입니다.”
“어디-, 설마….”
태범의 채근에 준석이 결국 사실을 실토했다. 1층 커피숍이라는 말에 태범의 눈이 흔들렸다. 태범은 창백해진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지만 준석은 조용히 다른 영상을 재생했다.
회사 건물 맞은 편에 있는 작은 커피숍. 유원은 매일같이 거기에 있었다. 그가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는, 시선을 따라가지 않아도 명백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끔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움에 사무친 눈과 표정은 유원의 애달픈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영상을 눈도 깜빡이지도 않고 지켜본 태범의 얼굴은 아까 전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결국….
“형님.”
준석이 조심스럽게 태범을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여 유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
역시 그때,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태범은 1월 1일. 수줍은 얼굴로 꼬깃꼬깃한 소원권이라고 날려 쓴 종이를 들고 저를 찾아온 유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형, 저… 형을 좋아해요.’
수줍은 얼굴로 제게 고백하는 유원이 떠올랐다.
‘형…! 형, 가, 가지 마요, 제발…. 흐윽, 형… 좋아해요…. 태범이 형!’
그리고 그런 유원을 무시하고 가차 없이 고개를 돌렸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심장도 지끈거렸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스스로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저 어린 동생으로만 생각했는데 왜 자꾸만 유원의 눈물에 마음이 아픈 건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의 자식인데 왜 자꾸 털어내지 못하는 건지.
그날을 회상하던 태범은 벨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급히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유원의 흔적을 쫓던 부하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해졌다.
-형님, 찾았습니다!
“어디야. 아니, 차유원은… 어떻게 됐어.”
태범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유원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뒤이은 보고에 태범은 이를 악물었다. 납치라니.
곧바로 유원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태범의 발걸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
“아… 윽, 머리야….”
머리를 반으로 가르는 것 같은 통증에 잇새로 흐느끼듯 신음이 흘러나왔다. 겨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몹시 좁다는 것밖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김… 상철….”
무조건 형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돌린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