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복수하는 회귀자를 사랑하는 법-101화 (101/193)

#101

“형, 여기 커피요.”

“아, 고마워. 마침 커피 생각이 간절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온 사영은 언제 준비했는지 뜨거운 커피를 건네주는 우종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우종은 그 미소에도 마음 편히 마주 웃질 못했다. 이제는 제법 자신을 편하게 여기는 듯한 사영의 변화가 기쁘긴 했지만 우종은 요즘 걱정이 많았다.

우선 가장 큰 걱정은 사영의 건강이었다. 지난번 새벽에 갑자기 유준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매니저로 일하며 맡은 연예인이 갑자기 아픈 상황을 처음 겪어 본 것도 아닌데 그날은 어찌나 놀라고 당황했는지 어떻게 사영의 방으로 가 약을 주고 그를 간호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사영의 몸 상태가 완전히 다 회복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사영은 괜찮은 척했지만 우종은 알 수 있었다. 사영은 여전히 컨디션이 온전치 않았다.

어쩌면 오랜만에 다시 일을 시작해서 유독 피곤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종의 감은 단지 그뿐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우종은 사영이 자주 먹던 안정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우종이 걱정을 내비친 이후로는 약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정말로 약을 끊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리 우종이라고 해도 하루 24시간을 온종일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사영이 만약 우종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몰래 약을 먹으려 든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날 우종이 약을 들고 찾아갔을 때에도 사영은 단순히 몸살인 것 같다고 얘길 했으나 우종은 왠지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따뜻해서 좋다.”

우종의 걱정도 모르고 사영은 양손으로 일회용 커피 잔을 감싸 쥐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추운 날씨에 아침부터 촬영하느라 덜덜 떠는 게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우종은 라디에이터를 사영 쪽으로 더 가까이 놓아 주며 입을 열었다.

“다음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핫팩 싹 다 바꿔드릴게요.”

“응. 고마워.”

“고맙긴요.”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매번 고맙다는 말을 빠트리지 않는 사영에게 우종이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영이 주변 사람들에게 건방지고 무례하게 군다는 루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였는지를 실감했다.

사영은 우종에게는 물론이고 촬영장에서 스치는 그 누구에게도 늘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잠깐 눈 좀 붙이실래요?”

아직도 사영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것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 우종이 그의 무릎 위에 도톰한 담요를 올려 주며 물었다. 사영은 자연스럽게 대본을 다시 손에 쥐며 대답했다.

“대본 조금만 보다가 쉴게.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를 테니까 너야말로 가서 좀 누워 있어.”

“아니에요. 저는 하나도 안 피곤해요. 그럼 전 옆에 있을게요.”

“응. 편하게 있어.”

우종은 거듭 저를 챙겨 준 뒤 벌써 해진 것처럼 보이는 대본을 다시 들여다보는 사영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다시 무거운 표정이 되어 근처에 앉았다.

우종의 걱정은 비단 사영의 건강 문제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우종은 요 며칠 자신에게까지 느껴지던 촬영장의,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사영을 둘러싼 두 남자의 불편한 기류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한재우는 요즘 지나치게 집요하게 사영을 의식했다.

차라리 전처럼 대놓고 다가와서 말을 건다든지 수작을 부리면 짜증은 날지언정 이렇게 찝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 사영을 괴롭히는 방식을 바꾸기라도 한 건지, 최근 며칠간 한재우는 사영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행동하는 대신 유달리 적의를 가득 담은 시선으로 사영을 노려보곤 했다.

전에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티를 내지 않았는데 요즘은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는 눈치였다.

저러다 또 무슨 사달이 나는 건 아닌가 싶어 소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종을 더 불편하고 예민하게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김유준이었다.

물론 유준이 한재우처럼 음흉하고 불편한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사영이 아프다는 말을 유준에게 전해 들은 그날부터, 유준은 의식적으로 사영을 피하고 있었다.

처음 유준이 촬영장에서 사영에게 접근할 땐 영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와 내외하자 또 마음이 편칠 않았다.

그간의 일 때문에 알게 모르게 그를 의지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솔직히 유준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수상쩍게 구는 건 사영도 마찬가지였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유준과 스치기라도 할 때면 어색한 기색을 감추질 못했다.

한재우가 보이는 적의와는 분명히 다른 종류였지만 둘 사이에도 뭔가 편치 않은 감정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게다가 김유준과 한재우 사이에 흐르는 냉기는 이미 온 스태프가 알아챘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우종은 그것조차 왠지 사영과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운 분위기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으니 이제는 몇몇 스태프들이 은근히 우종에게 와 혹시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실정이었다.

모든 게 그 밤부터였다. 사영이 아팠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도대체 그날, 세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차마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일을 두고 우종의 근심이 깊어졌다.

이따가 이어질 사영의 촬영은 유준과 둘이 찍는 신이었다. 부디 별일 없이 잘 넘어가길 바라며, 우종은 사영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야 니들 오늘 뜬 연예야담 이니셜 기사 봄?

그거 진심 누가 봐도 한재우랑 윤사영 얘기 아님? 진짜 걍 이름 밝힌 수준이던데....ㄷㄷㄷ

뭐 촬영하다보면 순간적으로 몰입해서 힘조절이 안 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적이 많았던 것처럼 반응했다는 게 좀 읭스럽긴 하네

그리고 난 몰랐는데 진짜로 전에 사실은 한재우가 윤사영 학대한다는 소문이 있었어?

연예야담이 찌라시 취급 받긴 해도 따지고보면 아예 없는 소리 한 적은 거의 없어서 괜히 붙인 말 같진 않아가지구..

암튼 진짜 이 둘은 끝날 것 같으면서도 뭐가 끊이질 않네 영화는 어떻게 잘 나올지 걱정...

└ 네 다음 물타기~

└ 이니셜 루머 가지고 와서 실명 대며 확정하듯 말하는 인성... 각도기도 못재고 모르는 척 개쳐맞고 오만년전에 사장된 루머 또 끌고오기 오지죠

└ B는 지버릇 개못주고 또 이딴 식으로 언플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개질린다 ㅋㅋㅋㅋㅋㅋ

└└ 2222 피해자 코스프레 오져 진심ㅋㅋㅋㅋ 연예야담 어그로 찌라시인 거 모르는 사람? 아주 죽이 잘 맞아가지고 갑자기 없는 소리 한 적은 없는 ㅇㅈㄹ 진짜 한심하다 어휴...

└ 근데 윤사영 아직 회사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누가 언플을 한다는 거??

└└ 지금 윤40이랑 같이 다니는 매니저가 예전 회사에서 붙여 준 매니저잖아 그거 보면 뭐 구두로 계약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정식계약 전 당연히 언플 하겠죠? 윤4 이미지 관리 하려고 들겠죠?

└ 음.. 난 모르겠다 예전에는 윤사영에 대한 말 다 믿었는데 요즘 인터뷰하는 거 보면 사람이... 뭐 배우니까 연기는 잘하겠지만 진짜 그런 사람인가? 솔직히 그런 생각 듬 현장 영상 공개해 주는 거 보면 다들 분위기도 좋고? 스태프들한테도 되게 잘하는 거 같던데...

└└ 야나두 ㅋㅋㅋㅋㅋㅋ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있었던 이미지랑 너무 다른 모습 보니까 뭔가 어..? 어어...? 이렇게 되는ㅋㅋㅋㅋ 솔직히 부부사이의 일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나 싶고?

└└ 난 딴 것보다 김유준이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내서 그게 좀ㅋㅋㅋㅋ 솔직히 김유준이 뭐 걔한테 잘보일 이유도 없고 눈치볼 이유도 없고 누가 언플한다고 맞춰줄 사람도 아니자나 그래서 걍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가 싶엇ㅋㅋㅋㅋㅋ

└└ 그리고 솔직히 얼굴이 너무 시바.... 얼굴이 너무 잘하니까 사람 마음이.......ㅋㅋㅋㅋ

└ 범죄자 옹호하고 ㅈㄹ

└└ 전부터 윤사영 글마다 나중에 와서 막댓사수하는 애 존나 웃김ㅋㅋㅋㅋ

***

“유준 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유준은 먼저 인사를 해 오는 사영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대답했다. 가까스로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심장이 진짜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지난 며칠간, 유준은 의도적으로 사영을 피했다. 함께 촬영을 하고 있으니 완전히 마주치지 않는 건 불가능했지만 촬영 외적으로는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다행인지 무언지 그사이에는 단둘이 오래 찍어야 하는 장면도 없었던지라 큰 어려움 없이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떨어져 있던 시간이 유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시간을 보내면 윤사영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준은 사영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영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과도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자신이 윤사영을 그리워할 리가 없다고 끊임없이 제 감정을 부정하면서 말이다.

“오늘 촬영도 잘 부탁드려요.”

“네.”

이어서 말을 붙이는 사영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웠다. 유준을 마주 대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은 듯했다.

마치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날 일은 이미 모두 없던 일로 치고 잊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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