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소속사를 통해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한 윤사영의 공식 입장이 발표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사진까지 공개된 마당에 반박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고 장담했지만 발표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영은 최근 게재된 사진에 담긴 행위는 전적으로 한재우의 강압에 의해 벌어진 일이며, 사진은 누군가 불법적으로 촬영해 공개한 것이라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악할 만한 일인데 폭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영은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한재우에게 지속적으로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당했음을 밝혔다.
한재우가 뒤로 교묘히 루머를 퍼트리고, 의도적으로 사영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말이다.
고발문과 다를 바 없는 입장문에는 유준과 관련된 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다. 회사에서는 사영이 원하면 성적 학대 부분은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사영은 그러지 않았다.
회사의 제안도 이해는 갔다. 혹시라도 그로 인해 사영이 더러운 소리를 들을까 염려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에는 이골이 난 사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듣던 사영은 한재우가 제게 저지른 일을 모조리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들을 욕이나 또 다른 소문 같은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늘 듣고 있는 말이었다.
간결하지만 적나라한 내용이 담긴 입장문의 마지막에는 고작 몇 줄의 글자로 된 말은 믿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일 이들을 위한 증거가 더해졌다.
이혼 후 촬영장에서 사영을 따로 불러낸 한재우가 쏟아 내던 폭언이 담긴 녹음본이었다. 선명하고 깨끗하게 녹음된 음성 속에서 한재우는 사영을 향해 모욕적이고 쓰레기 같은 말을 쏟아 냈다.
그간 한재우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언사였다.
늘 한재우의 위에 군림하고, 조종하고, 그를 교묘히 망가트렸다던 사영은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하고 떨었다. 무성한 소문 속에서 희대의 악인이었던 윤사영이었으나 실제로 악인은 그가 아니었다.
입장문에서 공개한 건 하나였지만 그와 같은 녹음본이 몇 개나 더 있다고 했다.
공식 문서답게 말을 고르긴 했지만 만약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면 얼마든지 더 공개할 수 있으니 원한다면 시비를 가려 보아도 좋다고 덧붙인 말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영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렸다. 그는 한재우가 이번 논란의 원인이 되었던 행위를 비롯해 그간 제가 했던 악행을 공개적으로 전부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랐다.
이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윤사영을 향한 악의적인 행위를 직접 행하거나 사주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요구했다. 오랜 악연에 확실한 매듭을 지어 달라는 뜻이었다.
벌어진 일에 비해 지극히 짧은 입장문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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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우............
요즘 벌어지는 일이 믿기지 않는다 실감이 안나
윤사영 말을 못믿겠다는 게 아님 걍 넘 현실성이 없다는 말임
한재우 무명일 때부터 좋아하기 시작해서 지금 벌써 8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감
윤사영이랑 결혼하면서 커리어 풀렸을 때 나도 윤사영한테 존나 고마웠거든 근데 그 뒤로 들리는 얘기들에 진짜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단말임
윤사영 진짜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야 진짜 얼굴만 보고는 사람 모른다 그러면서 ㅋㅋ
근데 진짜 진짜 모를 사람이 내 배우였다는게 넘.....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걍 허무하고... 어이가 없고.... 다 거짓말인거 아닌가 싶다가도 시발.....
덕질을 그만두던가 해야지 염병... 뭐 어쩌라고 싶은 글이겠지만 걍 뭐라도 떠들어대지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한탄해봄 소주 까러 간다....
└ ㅌㄷㅌㄷ..... 걔네한테 별로 관심없던 나도 이렇게 충격적인데 팬들은 오죽하겠어
└ 너=나... 며칠째 밥도 안들어간다......
└ 음성이 가짜일 확률은 당연히 없겠지..? 요즘 딥페이크 같은 것도 유행하잖아
└└ 미쳤다고 소속사 끼고 내는 입장문에 조작음성을 쓰냐? 뇌 좀 거치고 말해
└ 조작은 한재우가 했지 ㅋㅋㅋㅋㅋㅋ 그동안 가식떤 거 생각하면 존나 소름돋아 진짜 ㅋㅋㅋㅋㅋ 아무리 연예인 인성덕질 다 소용 없다지만 이 정도면 싸패 아니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솔직히 이런 글도 나는 개웃겨 그동안 한재우 팬들 윤사영이라면 이를 갈면서 온갖 악플 달고 깽판치고 다닌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ㅋㅋㅋㅋ 사과문을 써도 모자란 판에 상처받은.... 나.... 불쌍한.. 나... 킄..... 개노답이다 진짜 ㅋㅋ
└└ 원글러가 욕하고 다녔다는 증거 있어? 왜 싸잡아서 지랄임?
└└ 인간적으로 한재우팬들은 반성할 거 아니면 아닥해야하지 않냐? 억울해? 니들이 억울하면 윤사영은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겠냐? 5년을 시발? 불쌍한 건 윤사영이 제일 불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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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집혔는데, 김유준과 윤사영의 일상만은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얼마나 많은 이목이 쏠려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두 사람은 마치 그 소란이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시간을 보냈다.
스스럼없이 손잡고 거리를 걸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애정을 표현했다. 좋은 기사로든 나쁜 기사로든, 행복하게 웃는 사영의 얼굴이 연일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어떤 이들은 조금도 불행해 보이지 않는 사영의 얼굴을 근거로 들며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했다.
저 얼굴을 보라고. 저게 어디가 피해자의 얼굴이냐고. 당신이라면 그런 일을 겪고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겠냐고.
사영의 회사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피해자라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영이 조금 더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사영은 그런 의견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한재우 때문에 망가지고 불행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영은 진실이 밝혀져 안 그래도 마음을 다쳤을 팬들 앞에 불쌍한 사람으로 서고 싶지 않았다.
불행했던 적이 있었다. 미련하고 멍청하고 가여운 사람으로 살았던 날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게 지금의 윤사영은 아니었다.
유준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리하여 지금처럼 두 발로 다시 삶을 지탱하고 서지 못했다면 분명 그와 같은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한재우의 방식처럼, 남들 앞에 자신을 약자로 만들어서 동정과 연민을 얻고 상대를 더 지독한 악인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게 사영이 보고 배운 방법이니까.
하지만 지금 사영은 행복했다. 불행한 과거를 뒤에 두고 당당하게 걸어 나가고 있었다. 고작 한재우 따위를 무너트리자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순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영은 생존자였다. 그 오랜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생존자가 꼭 지난날의 고난에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었다. 사영은 그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사영의 현재 삶이 비극적이지 않아도 한재우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영은 한재우를 극복한 채로 그의 몰락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사영은 제 눈물을 기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았고, 제 아픔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웃어 주었다.
제 웃음과 한재우의 잘못에 같은 값을 매기는 이들은 스스로 한재우와 다를 바 없다고 자인하는 꼴이었다.
“후….”
바로 그런 이유로 팬 카페에 팬들을 위로하는 글을 막 올린 사영은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이었으나 시리게 추웠던 겨울밤이 연상되진 않았다.
‘좋은 하루 보내셨어요?’라는 지극히 평범한 제목으로 팬 카페에 올린 글은 팬들을 위한 다정한 위로의 편지였다.
그간 사영이 홀로 겪었을 아픔을 되짚으며 울고 힘들어하는 팬들을 도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을 믿어 주고 응원해 주었던 팬들이 있었기에 저는 지금 행복하다고, 더 이상 혼자 아프지 않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잠시 창밖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내려놓았던 휴대폰을 들었다. 그대로 남아 있던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니 고작 1분 전에 올린 글에 벌써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사영은 팬들이 제게 남긴 답장을 빠짐없이 읽었다.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았다. 수많은 이가 제게 보내 주는 공감을, 위로를, 응원을 빼곡히 마음에 담았다.
사영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영은 앞으로도 홀로 불행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