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8
막 일어나서인지 평소보다 따뜻하고 말랑한 몸과 그보다 조금 더 뜨거운 입 안의 여린 살결의 감각이 순식간에 목을 타고 내려가 아랫배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으음… 읏…!”
일어나자마자 속수무책으로 희롱당하는 사영이 끙끙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유준의 혀가 집요하게 안 곳곳을 문지르고 자극하자 절로 허리가 움찔거렸다.
급기야 숨이 차오른 사영이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고 나서야 유준은 제멋대로 그를 빨아 대던 입술을 뗀 채 그럴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윤사영 씨, 잘 잤습니까?”
“하아… 흐….”
사영은 대답할 틈도 없이 밭은 숨을 내쉬었다. 몸이 예민하게 달아오른 게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유준이 조금만 더 자극했다면 아침부터 액을 흘려 댈 뻔했다.
숨을 조금 고른 뒤 사영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무슨 아침 인사를 이렇게 짓궂게 해요.”
“짓궂다니? 다정한 인사라고 해야죠.”
“숨 막혀 죽을 뻔했는데….”
“그랬어요? 미안해요.”
순순한 대답에 사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로 장난스럽게 농담하는 분위기였기에 사과를 해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탓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상황이 역전된 기분이었다. 사영은 오히려 자신이 고약하게 군 것 같아 애꿎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사랑스러운 반응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유준이 이마에 다시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곤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몸은 어때요…?”
“아….”
“어디 많이 아픈 곳 있어요? 아무래도 내가 좀 과했던 것 같아서….”
유준의 손이 섬세하게 이마를 덮었다가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그가 보이는 모든 언어와 몸짓이 온통 달고 간지러워서, 사영은 이번엔 이불 속에서 발가락도 꼼질거렸다.
“…괜찮아요. 아픈 곳 없어요.”
“정말?”
“네에…. 그리고 유준 씨가 심하게 한 것도 없었어요. 다… 내가 졸랐잖아요….”
유준이 걱정할까 봐 둘러댄 건 아니다. 실제로 사영은 생각보다 몸이 가뿐해 놀라는 중이었다. 근육통 비슷한 미미한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이전에는 잠자릴 가진 뒤에는 늘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온종일 앓곤 했는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단순히 이전의 잠자리가 폭력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사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알파와 오메가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정적으로 친밀할수록 잠자리는 오히려 몸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통설을 사영은 처음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같은 감각을 느낀 유준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사영의 얼굴에 마구잡이로 입을 맞췄다.
장난스럽게 흩어지는 사영의 웃음소리가 좋아서 유준은 진심으로 살아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김유준의 삶이 고단하거나 불행했던 것도 아닌데 마치 사영을 만나기까지 무수히 많은 날을 견뎌 왔던 것 같았다.
그때, 가만히 유준의 애정 공세를 받던 사영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준 씨….”
“응?”
“유준 씨가 나… 다 닦아 주고 정리해 준 거예요?”
사실 하나 마나 한 물음이긴 했다. 사영은 어제 노팅 후 사정과 동시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사영은 온몸이 뽀송뽀송할 뿐만 아니라 잠옷까지 말끔하게 입은 상태였다.
유준이 아니고서야 누가 기절한 사영의 몸을 이렇게 닦아 주고 챙겨 주었겠느냔 말이다. 유준은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왜요. 불편한 곳이 있습니까?”
사영은 잠시 말없이 유준을 쳐다보았다. 어지러운 감정이 순식간에 폭풍처럼 사영을 덮쳤다.
기절했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일어나 피와 정액이 엉켜 굳은 몸을 혼자 닦는 게 일상인 날이 있었다.
유준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 순간 실감하면서도 이렇게 문득 맞닥뜨리는 섬세한 지점에서는 마음이 일렁이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울먹임이 넘어올 것 같아 몇 번이나 침을 삼키다가, 사영이 말했다.
“유준 씨.”
“네.”
“어제는 한 번도 제대로 말을 못 한 것 같아서요….”
“……?”
“…사랑해요.”
이까짓 말은 사영이 가진 감정을 천만분의 일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유준이라면 그 아래에 차오르는 온전한 제 사랑을 알아줄 거라 믿으며.
“사랑해요. 사랑해요, 유준 씨.”
사영은 유준이 다시 입술을 겹쳐 올 때까지 몇 번이나 말했다.
***
아침을 먹은 뒤 유준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사영은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에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 아래로 미묘하게 사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사영은 곧 어렵지 않게 정체를 알아챘다. 유준의 페로몬이었다.
유준이 장난을 치는 모양이었다. 사영은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영의 표정은 곧장 심각해졌다. 유준이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유준 씨? 괜찮아요?”
놀란 사영이 물었다. 페로몬을 흘리는 게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몸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유준 씨.”
사영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유준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가까이에 서자 몸에서 나는 열기까지 전해졌다.
“나 좀 봐요. 어디가 안 좋아요?”
사영은 손을 뻗어 유준의 양 뺨을 감싸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그리고 제 향을 조심스럽게 풀어 유준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성적인 의도는 완벽하게 제거된 향이었다.
유준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사영의 양 손목을 조심스럽게 붙들었다. 손목에 닿은 손바닥이 뜨거워서 사영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준이 말했다.
“그… 아픈 게 아니라….”
“유준 씨 지금 페로몬 흘러나오는 건 알고 있어요? 열도 있고… 아픈 거 같은데….”
사영의 목소리가 초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나름대로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해 오면서도 유준이 아픈 건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유준은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좀처럼 앓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심각한 상태든 아니든 사영은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하나. 아니면 정민에게 먼저 연락해야 할까. 아니면 우선 약을 사 와야 하나.
자신이 아플 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영이지만 유준이 아플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쿵쾅거리고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유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아직 제 뺨에 닿아 있는 사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픈 게 아니라 흥분한 겁니다.”
“네, 그러니까 흥분… 네?”
“흥분해서 페로몬을 흘리는 거라고요.”
“…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사영이 얼빠진 얼굴로 연신 되묻기만 했다. 평소 같으면 그 표정이 귀엽다며 웃을 만도 한데, 유준의 표정이 심각해서 사영은 장난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뜨거운 숨을 깊이 내쉰 유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
“이게 조절이 안 됩니다.”
“조절이… 요?”
“페로몬이 내 통제를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그런 적이 없었는데 지금 윤사영 너 때문에 내가….”
사영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유준이 페로몬 조절을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한다는 건 누구보다 사영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서로 애무를 쏟다가도 유준은 사영이 물러서는 기색을 보이면 순식간에 제 페로몬을 단속하여 사영이 그것 때문에 곤란하지 않게 해 왔다. 심지어 발기한 상태에서도 말이다.
그런 유준이 자신 때문에 페로몬 조절을 하지 못한다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동안은 사영의 향을 맡으면서도 조절을 해 왔던 유준이었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러트가 온 건가 싶기도 했지만 러트 증상이라고 하기엔 그의 향이 너무 약했다. 김유준 정도 되는 알파의 러트 증상이 이렇게 미약할 리가 없었다.
사영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이고 있으려니 유준이 말을 더했다.
“너랑 또 하고 싶어서, 사영아.”
“아….”
“네 안이 너무 좋아서, 머릿속이 온통 너랑 섹스할 생각으로 가득 차서 이게 컨트롤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뻔뻔하게 설명하곤 있었지만 사실 유준이라고 이 상황이 당황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윤사영과 잔 게 좋았다고 해도 그렇지, 동정 딱지를 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머릿속이 온통 섹스 생각으로 가득 찰 수가 있는 건가.
사영이 특별히 자신을 유혹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커피를 내려 주겠다는 말에 고맙다며 유준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춰 준 게 고작이었다.
그걸로 유준은 지금 제대로 발정이 나서 페로몬을 질질 흘리고 있는 거다.
러트가 온 것도 아닌데 제 성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건 사춘기 이후로 처음이었다.
윤사영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스스로 정도를 모른다는 자각은 늘 있었지만 유준도 자신이 이 지경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어디가 아파도 단단히 아픈 게 분명했다.
고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이 순간에도 사영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기를 키워 가는 제 좆을 슬쩍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쉰 유준이 안간힘을 써 사영의 붙잡고 있던 사영의 손을 놓아 주고 말했다.
“커피 마시면서 잠깐 쉬고 있어요.”
“…유준 씨는요?”
“나는 찬물로 샤워라도 좀 하고 나올 테니까.”
어차피 연인 사이니 사영에게 발정 좀 한다고 크게 문제일 건 없겠지만 어제 사영이 고된 정사를 치르기도 했고, 또 오늘 촬영 일정도 있어 제 욕정을 풀어 달라 투정을 부릴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