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리턴 1권
1. 리턴
비명, 고함, 살려 달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불타는 강당을 가득 울렸다.
도망칠 곳은 없었고 연기는 점점 차올랐다. 이글거리는 열기와 매캐한 연기에 숨 쉴 때마다 목구멍이 턱턱 막히며 뜨거웠다. 비상문마다 사람들이 몰렸고 서로를 짓밟으며 문을 두드렸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한주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멍하니 아비규환을 바라보았다.
“아아악! 사람 살려!”
“뜨거워! 싫어! 여기서 죽기 싫어!”
대강당 사방이 불타올랐다.
32회 졸업식이라 쓰인 플래카드는 사나운 불길에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래를 이끌어 갈 알파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재강원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미래를 축복하기 전에 난장판이 되었다.
대강당에 있던 사람들이 이리저리 불길을 피하려고 도망쳤지만 비상문은 막혀 있었다.
옷에 불이 붙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다가 다른 곳으로 불이 옮겨붙었고 어떤 사람들은 제 몸이 불타기 전에 스스로 죽음으로 도망쳤다.
강당 안의 대부분이 지능이 높고 리더십이 있다는 알파였지만 이 상황에 이성적인 이들은 없었다. 냉철한 알파들은 패닉에 빠졌다. 화재 초기에 그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불길이 크게 일어난 후에야 얼음이 깨진 것처럼 현실을 직시했다.
눈앞에 보이는, 비명을 지르고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곧 자신의 미래였으니 침착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과 함께 삶이 끝난다.
“나쁘지 않지.”
이렇게 죽어도 나쁘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오기로, 악에 버티며 견뎌 왔던 고등학교 생활이었지만 미련은 없다.
‘아들? 그래서?’
18년 만에 아들이라고 나타났는데 바라보는 시선에는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목표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이렇게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했고 죽음은 알파든 베타든 가리지 않고 공평했다.
불에 녹고 타오르는 자재가 벽에서 떨어져 사람을 덮쳤다.
“위험해!”
누군가 한주의 몸을 감싸 바닥을 굴렀다. 서 있던 자리에 콰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장 자재가 떨어졌다.
거칠게 한주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너! 너 정체가 뭐야?”
우강희가 다그쳤다.
당황과 희망, 복잡한 감정이 얼굴에 담겼다.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의 첫마디처럼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정체? 미쳤나.
이 화재에서 사람을 잡고 물을 소리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도 웃겼다.
“어떻게 내 페로몬이…… 통하지 않지?”
“비켜! 베타잖아.”
이런 상황에서 할 질문이냐.
거치적거리는 우강희를 밀쳤다.
재강원 고등학교에서 우강희는 외떨어진 섬과 같았다. 무시를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알파들조차 다가가기 어려워하면서 경외의 시선으로 보는 존재였다.
한주와는 그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접점밖에 없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뜨거운 공기가 목구멍을 긁었다.
“베타라도 페로몬의 영향을 받아! 넌…… 뭐야?”
눈앞의 모든 것이 불타는데 페로몬 얘기나 나누다니, 비현실적이라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그게 그렇게 궁금해? 페로몬 무감증이라 그런가 보지!”
죽는 마당에 숨길 이유가 없어 웃으라고 한 얘기였다.
어릴 때 페로몬 무감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페로몬을 사용하는 알파나 오메가로 발현한다면 치명적이기에 한주의 엄마는 아들이 베타로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주는 알파로 발현하길 소원했다.
알파들이 다닌다는 고등학교에 베타로서 입학할 정도로 간절하게.
알파들의 영향을 받으면 베타라도 알파로 발현할 수도 있다는 도시 전설을 믿었다.
졸업식인 오늘까지도 소용없었지만.
“페로몬 무감증? 페로몬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 얘기가 우강희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는지 덥석, 한주의 턱을 잡았다.
“뭐야? 놔!”
발버둥 쳐도 억센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빌어먹을 알파! 이 자식도 똑같았어! 죽기 직전까지 이런 꼴이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사방이 불타올랐지만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한주만을 보았다. 흐트러지고 눈물 자국이 있지만 우강희의 미모에 흠집을 내지는 못했다.
한주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파도 위의 배처럼 흔들렸다.
“진짜 통하지 않아. 페로몬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어…….”
“야.”
턱을 잡은 손을 치우려는데 그가 돌연 눈물을 흘리며 혼잣말을 했다.
“널 일찍 만났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뭐?”
알파가 아니라 버려졌다.
아버지는 한주가 태어나자마자 알파로 발현할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한주와 엄마를 버렸다. 외할머니는 한주가 알파로 태어나지 않아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탓했다.
어미의 짐이라고.
페로몬 무감증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어서 알파가 되어도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죽어도 좋으니 알파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알파만 된다면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베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씨발, 뭐라는 거야?”
재강원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써서 엄마는 빚을 져야 했고 돈 때문에 남자와 결혼했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이었고 때로 엄마의 몸에 멍이 생겼다.
뒤늦게 새아버지의 폭행을 알았지만 막대한 학비를 내주기에 엄마는 감내했고 저 또한 모른 척 눈을 감아 버렸다. 가끔 본가에 가면 새벽에 엄마는 제 방에 들어왔다. 자는 아들을 보며 우는데도 한주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알파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알파를 잉태하지 못해 버려진 엄마를 저가 더 불행하게 했다. 알파가 되길 원했지만 되지 못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우강희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베타인 자신을 일찍 만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일찍 만났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내 인생이 뭐가 달라질 수 있다고!”
“널 만났다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 텐데…….”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우강희는 감정에 빠져 중얼거리기만 했다. 한주가 아니라 그의 인생을 거론했다.
고작 베타. 그저 평범한 인간이 우강희에게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놀려? 나 같은 베타를 일찍 만난다고 뭐가 달라져? 난 오메가가 아니야!”
“너는…… 이성을 잃지 않았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그를 보는데 와르르, 반대편의 구조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장 패널이 사람들을 덮쳤다.
비명이 들렸지만 우강희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한주의 어깨를 아프도록 꽉 움켜잡고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알파로 발현했을 때 너만 있었다면, 아니, 입학식 전의 한국 호텔 자선 파티에 네가 있었다면…….”
머리카락 아래로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지난 시간을 아쉬워했다.
더 일찍 한주를 만나지 못해서.
한주는 숨을 잠시 멈추었다. 전율이 흘렀다.
베타여도, 페로몬 무감증이어도, 절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무, 무슨 소리야? 일찍 만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난 베타니까!”
“그래도 구할 수 있겠지. 너만이 날…….”
“……내가 우강희, 널?”
그때 끼이익 불길한 쇳소리가 귀를 긁고 지나갔다. 천장 한쪽이 기울어졌다. 빠른 속도로 한주가 있는 곳을 향해 순차적으로 무너졌다.
불타는 자재가 쏟아져 내렸다. 그들을 덮치는 것들에 우강희는 한주를 감싸 안았다.
소용없는데.
이미 사방이 불타고 있어 도망칠 곳도, 벗어날 방법도 없는데 그는 필사적으로 한주를 껴안았다.
그 품이 따뜻해 눈물이 났다. 혼자라고 생각한 고등학교의 마지막에 절 구하려는 사람을 만나다니.
일찍 그를 만났다면 달라졌을까.
베타여도, 페로몬 무감증이어도, 알파가 아니어도.
자신이 알파가 아니라도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다시 삶을 살 수 있다면.
* * *
“박한주!”
박예주의 카랑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이불을 뺏어 간 엄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보이던 지치고 포기한 얼굴이 아닌 생생한 표정 때문인지 훨씬 젊어 보였다.
“어서 일어나. 지영이는 너와 입학식 간다고 벌써 왔는데 넌 아직도 자고 있으면 어째. 어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엄마?”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큰일이다.”
예주는 이불을 한주의 발치에 던지고는 방을 나갔다.
“지영아, 한주 이제 일어났으니까 좀 기다려야겠다. 과일 줄까? 망고 있는데.”
“네, 주세요. 망고 좋아해요.”
“아유, 우리 아들이랑 바꾸고 싶네. 기다려, 잘라 줄게.”
“네.”
열린 문으로 엄마와 친구 김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의 목소리가 앳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알파로 발현한 지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체격도 목소리도.
알파가 된 친구가 부럽고 질투나 한주는 그 후 지영을 멀리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눈이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었다.
한주는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거실에 있던 김지영이 한주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주 너 머리 다 떴어.”
발현하기 전의 어린 김지영이었다.
여배우인 엄마의 미모를 타고나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랑스러운 외모의 친구.
한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살던 집이었다.
“한주야, 얼른 씻어. 중학교 입학식에 늦겠다.”
“중학교 입학식?”
엄마의 목소리에 한주는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거울 속에는 지영처럼 어린 박한주가 있었다.
알파들을 위한 재강원 고등학교에 베타로 들어가 괴롭힘을 당했다. 알파들 속에서 베타는 하층민 취급을 받았고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때 평생 갈 흉터가 뺨에 남았는데 거울 속의 한주는 그것이 없었다.
진짜 자신은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죽은 것일까.
눈물이 흘렀다.
모든 것이 사실일지 아닐지는 판단이 되지 않았다. 다만 진짜든 아니든, 죽어 과거로 다시 돌아온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의 자신으로도 충분했는데, 지금 그대로의 베타인 박한주를 원하는 사람도 세상에 있었는데.
“어, 한주야? 왜 울어? 아줌마! 한주 울어요!”
“뭐? 왜? 한주야, 어디 아파?”
아들의 이마를 만지며 걱정하는 박예주와 어쩔 줄 몰라 바라보는 김지영을 보며 한주는 울었다.
삶을 리셋할 기회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