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학생회 임원 선발 캠프(1) (3/31)

3. 학생회 임원 선발 캠프(1)

“한주야, 또 2학년이 괴롭혔다면서?”

담임 이무열이 종례 후 상담실로 불렀다. 이 용건일 줄 알았다.

무열의 맞은편에 앉아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았다. 이전의 삶에서는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걱정만 하는 무능력한 담임이라고 속으로 욕했었는데 2학년이 되어 담임이 바뀌고서야 그가 얼마나 자상했는지 실감했다.

알파들만을 위한 재강원 고등학교는 직원 대부분이 베타다. 초빙 교수로 간혹 오메가가 오지만 그들은 사전에 페로몬 억제제를 먹어 알파의 페로몬에 대비했다.

담임은 학생들을 케어하기 위해 존재했고 그들은 자신이 베타이면서 베타 학생을 무시했다. 알파들을 위주로 생각했고 소란이 일어도 훈계로 끝날 뿐 대개는 방치했다.

그것이 재강원 고등학교에서의 일반적인 담임의 태도였다. 이무열만 유독 세심하게 한주를 살펴 주었다.

한주가 대답하지 않자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잡아 왔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2학년에게 괴롭힘당하는 일은 알고 있어.”

2주 전부터 2학년은 한주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감추려 하지 않는 가해자의 태도 때문에 담임인 무열이 모를 수 없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담임의 표정에 한주는 툭툭 바닥을 찼다.

“이 학교는 징계도 내리지 않잖아요. 말해도 소용없는 거 알아요.”

“……미안하다.”

“선생님이 미안할 일이 아니에요. 학교 방침이 그렇잖아요.”

한주의 말은 위로되지 않았다.

“네가 재민석의 일을 신고했을 때 담임으로서 강하게 나섰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무열은 자책했다. 삽질하며 땅굴까지 파 깊이 들어갔다.

위로해도 상대에게 들리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네, 당신이 좀 더 나서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하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도 고마운 사람인데.

한주는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오늘 대강당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학생회 임원 선발 캠프가 있잖아요. 기숙사에서 좀 쉬다가 가려고요.”

무열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아, 맞다. 한주야.”

급히 한주의 손을 잡았다. 어딘가로 도망갈까 봐 잡는 사람처럼 다급했다.

“오늘 밤 캠프에서…… 널 도와줄 알파를 찾아. 쉽진 않겠지만 계약을 거론해서라도 지켜 줄 수 있는 알파를 찾아서 도움을 청해. 알았지?”

한주는 그가 좀 안쓰러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하고 걱정만 한다. 고용된 입장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해하는 무열의 손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요, 선생님.”

“한주야, 지금 몰라서 그러는데.”

“무열 선생님. 퇴근 안 하세요?”

말을 막듯이 학생 주임이 끼어들었다.

체육계 스타일보다는 나라 팔아먹었을 인상의 마른 학생 주임은 무열의 어깨를 툭툭 장난처럼 쳤다.

“오늘 같은, 정시 퇴근하는 날을 놓치면 안 되죠. 잊지 않으셨겠죠? 오늘 교내에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한주를 힐끗 보는 학생 주임의 눈매에 즐거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학생 주임은 겨우 알파로 판정받을 정도로 형질이 낮았다. 수치로는 베타와 1 또는 2의 차이였는데도 그는 베타를 싫어했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무열이 가려는 한주를 잡았다. 학생 주임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속삭였다.

“어떻게든 도망쳐. 최대한 숨어서 버텨야 해.”

“내일도 볼 텐데 뭐 그리 할 말이 많아요.”

학생 주임이 무열의 어깨를 치듯이 밀어 한주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어서 돌아가세요. 퇴근합시다, 퇴근. 일 그만하고 가라는데도 왜 안 갑니까.”

학생 주임은 학생이 아닌 무열을 상담실에서 몰아냈다.

“너도 열심히 해라. 쯧. 친구처럼 알파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아.”

학생 주임이 한주의 어깨를 치고 밖으로 나갔다.

곧 잡아먹힐 돼지를 보듯이 불쌍히 여기면서도 포식을 기다리는 개의 시선이었다.

오늘 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베타 학생들이 어떻게 당할지 알면서도 직원이며 담임들은 수수방관했고 어떤 이들은 즐겼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으니 다르게 느껴지네.”

오늘 밤, 짐승들이 학교를 활보한다.

이전의 삶에서는 캠프라고 해서 그저 하룻밤 학교에서 밤을 지내며 웃고 떠들며 보낼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참가했다가 호되게 당해 버렸다.

학생회 임원 선발이고 캠프라는 명칭이 붙어 가볍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했다.

* * *

형질 우월주의의 알파들이 가득한 이 고등학교에서 베타는 차별을 받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재력을 가진 부모들은 베타 자식을 재강원 고등학교로 보냈다.

미래를 이끌어 갈 리더들과의 인맥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의도도 있었다.

알파들 사이에서 지내면 페로몬에 자극받아 베타에서 알파로 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희박해도 불가능한 확률이 아니었다.

한주의 친구 김지영이 그런 케이스로 발현한 사람이었다.

지영은 한주와 같은 베타였는데 알파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중학교 때 발현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발현될 가능성이 컸기에 지영의 어머니는 아들을 재강원 고등학교에 넣기로 했다.

엄마를 닮아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지영은 같은 또래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었고 중학교 때 한주는 항상 지영을 도와주며 같이 싸워 주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고 여렸던 지영은 한주도 재강원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 말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렇게 둘 다 기숙사제인 재강원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고 입학식 날, 지영은 알파로 발현했다.

선배와 동급생들은 예쁜 지영을 보고 놀리는 마음에 페로몬을 보냈는데 알파의 페로몬이 잠들어 있던 알파 형질을 자극했다.

지영은 알파로 발현하더니 태도가 바뀌었다.

발현 후, 한주가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큰 성장통을 겪고 있어 힘들 거라고 엄마 박예주는 설명했었다. 주말에는 외출할 수 있어서 문병 가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전화 통화도 아닌 예주를 통해서 거절당했고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았다.

한주는 지영이 알파로 발현했으니 베타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거만해져서라고.

지영이 알파로 발현해서 부러워 질투를 억누를 수 없었다. 생각이 삐뚤어졌고 그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악감정이 쌓여서 결국 멀어졌다.

안타깝게도 멀어진 관계는 졸업할 때까지 좁혀지지 않았다.

한주가 재강원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의 10퍼센트 정도는 김지영 때문이다.

엄마들끼리 친구이기에 지영과는 100일 때부터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로, 기억이 시작되는 이전부터 같이 있었다. 각자 다른 집에 살지만 서로 외동아들이라 형제나 마찬가지였고 친구였으며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했지만 사과도 필요 없이 금방 풀어졌다.

서로 다른 게임을 하고 다른 책을 읽고 있어도, 말하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았고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나는 그런 친밀한 사이였는데 질투심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잃었었다.

이전에는 말이다.

[알파로 변했다고 유세 부리는 거야? 문자에도 답 안 하면 찾아가서 쥐어 팬다. 나 말하면 지키는 거 알지? 이제부터 연락 한 번 씹을 때마다 딱밤 한 대씩 적립할 거니까 적당히 고집부리고 연락해라. 경고다.]

지영에게 문자를 보내고 힙 팩에 핸드폰을 넣었다.

알파로 변해 서로 무시할 정도로 멀어졌다 하여도 그때나 지금이나 두 사람은 불알친구였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기에 지영도 알파로 변해 혼란스러울 거라고 이해하면서도 용서가 되지 않았었다. 먼저 손 내밀면 간단한 일을 자존심과 열등감에 미루고 미루다가 틀어져 버렸다.

연락을 먼저 거부한 사람은 지영이니까 괘씸하니 몇 대 때리면 어떤가.

다시 화해하면 되지.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만 그래도 화해하니까 친구다.

학생회 임원 선발 캠프 때문에 대강당으로 향하는데 교내에 아나운스가 울려 퍼졌다.

- 금일, 교내에서 1학년 캠프가 열릴 예정입니다. 본관 건물을 이용하오니 1학년 학생들과 관계자들을 제외한 모든 분은 본관을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금일 본관에 남아 있다가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는 학교 측에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관계자 외 분들은 속히 본관을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아예 교내의 사람들까지 내보냈다.

창밖을 보니 직원들은 이른 퇴근에 기뻐하며 본관을 떠나고 있었다.

사고가 나도 학교에서 책임지지 않겠다니.

두 번째 듣는 아나운스지만 참 살벌했다.

* * *

대강당에 1학년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본관 4층에 있는 대강당은 학교 행사 때 주로 썼지만 평소에는 외부 학술 세미나로 더 사용되고 있었다.

졸업생이나 재학생 가족이 아니면 대관조차 해 주지 않기에 재강원 고등학교의 대강당을 대관해 행사를 연다는 것은 일종의 과시가 되기도 했다.

모이는 시간에 맞추어 한주도 다른 학생들처럼 대강당으로 향했다.

알파는 대체로 천성이 무심했는데 그런 알파들이 오늘은 유독 한주를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았다. 자기들끼리 속닥이며 은밀한 시선을 교환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을 무시하며 걷는 한주의 앞으로 우강희의 무리가 가고 있었다.

“뭐야, C반은 벌써 끝났대? 재미없게 만드네. 아니 선배들이 잘 놀아 보라고 만들어 준 캠프인데 같이 즐기면 어때서 벌써 빼돌리냐.”

차원구는 투덜거리며 옆을 보다가 한주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 보였다.

“그편이 효율적이지. 체력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C반은 한석영이 있고. 그 반은 그를 이길 알파가 없지만 너는, 뭐.”

“왜? 우리 치운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뭐? 까놓고 말하지?”

“안타깝게도 우리 반에는 우강희와 이성진 외에도 뛰어난 알파가 여럿 있어서.”

냉정하고 현실적인 치운은 원구를 비웃었다.

“와, 우리 치운이. 형님 면전에서 침을 뱉네. 그러니까 우리 반에서 나는 잽도 안 된다고 비꼬는 거지? 그것도 우리 치운이가, 응?”

“객관적인 평가야. 그래도 희망은 있잖아. 이성진이 로열 알파지만 나서는 타입은 아니니 학생회에 들어가진 않을 테고 우강희 역시 학생회는 관심 없지.”

“그래서 남은 건 쭉정이다, 그거지? 우리 치운이는 참 셀프 디스를 잘해. 너 포함이잖아.”

“난 불가능한 일에 힘쓰지 않아.”

“쫄아서 발 빼기는. 그럼 확률을 높여 볼까?”

차원구는 한주를 돌아보았다.

“어때, 박한주. 오늘 밤 나와 함께? 앙앙?”

원구는 입학 이래 오늘 처음으로 한주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친근한 말투였다.

한주가 그들을 보고만 있자 원구가 이어 말했다.

“너도 괜히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것보다 나랑 손잡으면 편하고 좋잖아. 응?”

“차원구, 학생회에 관심 많네?”

“관심은 없지만 기회가 왔는데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안 그래? 이성진, 우강희, 정말 참가 안 할 거지?”

잠시지만 한주는 이성진과 눈이 마주쳤다.

“……귀찮아.”

치운은 강희에게도 확인했다.

“우강희, 너는?”

그는 평소처럼 과묵했다. 대화를 다 들었을 텐데 힐끔 치운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치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로써 둘은 확실히 빠지네.”라고 말했다.

“자! 그럼 박한주는 내 거! 침 발라 놓아야지.”

발랄하게 외치며 원구가 한주를 껴안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한주가 빠르게 몸을 피했다.

허공을 껴안아 버린 원구는 엉거주춤 몸을 세우더니 충격받았다는 듯이 울먹거렸다.

“너무해! 날 버렸어!”

“버리고 말고 할 사이가 아니지, 남남인데. 그리고 미리 계약해도 소용없어. 학생회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까.”

시큰둥하게 말하며 한주는 발을 빠르게 움직여 그들을 앞질렀다.

“우와, 기껏 좀 편하게 해 주려고 했더니 자기가 거절하네?”

“학생회 임원 선발 캠프가 뭔지 아나 본데. 일반 고등학교에만 다녔으니 재강원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을 텐데. 누가 가르쳐 주었나?”

“그럴 사람이 있을까? 아, 난 박한주가 오늘 밤 제법 버틴다에 한 표!”

“……왜?”

드물게 이성진이 관심을 가졌다.

“올, 우리 성진이도 박한주에게 관심이 있나? 안됐지만 우리 성진이라도 양보 못 하지.”

“베타치고는 몸놀림이 빨라. 조금은 버틸지도 모르겠는데.”

“……어떨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우강희는 대강당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주를 보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대강당에는 이미 반끼리 1학년들이 모여 있는데 다들 베타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 시선의 방향이 한주에게도 보였다. 같은 반이 아니라 해도 베타가 지나가면 확인하듯이 알파들의 눈길이 따라갔다.

“이렇게 노골적이었는데 몰랐네.”

두 번째 삶을 사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주의력이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학교에서 벌이는 학생회 임원 선발 캠프.

그동안에도 알파와 베타를 차별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을 뿐 학교 측의 입장은 아니었다.

방관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장려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강당 안은 기묘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같은 반끼리 모여 있었지만 그들을 통솔하는 담임이나 어른들은 없었고 대강당 연단에는 2학년 학생회 임원들만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한주를 괴롭히는 이창원도 있었다.

알파들의 재강원 고등학교에서 학생회는 파워가 강했다. 입학 초기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이전에 3년간 지내면서 한주는 학교의 교사나 이사장보다 학생회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체감했다.

누군가 죽기 직전까지 맞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덮어 버리고 전학 보낼 정도로.

약속된 저녁 9시가 되자 학생회장인 우천희가 마이크 앞에 섰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냉정한 외모의 우천희.

2학년 때 알았지만 우천희와 우강희, 두 사람은 배다른 형제였다.

한주는 시선을 돌려 우강희를 보았다. 눈이 마주쳐 시선을 흘리며 다른 곳을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종종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날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입학식 때 반 배정을 받아 교실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한주의 턱을 붙잡은 적이 있었다.

코 아래를 손으로 가리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그는 한주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나 곧 언제 먼저 닿았냐는 듯이 밀쳐져 멀어졌다.

그는 한주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간혹 고개를 돌리다 보면 눈이 마주치곤 했다.

“학생회장 우천희입니다. 지금부터 재강원 고등학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학생회 임원 선발을 시작하겠습니다.”

알파 학생들은 자신을 과시하는 페로몬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전투 직전의 긴장감으로 호전적인 페로몬을 뿜어내며 다른 이들을 견제했다.

“학생회 임원 선발은 Hide and Seek, 숨바꼭질로 합니다.”

여기저기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범위는 본관 전체입니다. 현재 본관 건물은 폐쇄되었습니다. 건물 밖으로는 나갈 수 없고 외부 통로는 가드들이 막고 있습니다. 억지로 본관 밖으로 나가려는 학생은 가드가 무력을 써서 막으니 조심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천희는 긴장하는 어린 짐승들을 둘러보았다.

그 시선은 강희에게서 멈췄다. 강희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오늘 밤 교내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일도 없었던 일로 처리될 예정입니다.”

한번 겪어 본 일이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한주는 어깨가 굳어졌다.

“학생회 임원에 선발된 1학년은 학생회 일을 도우며 2학년이 되면 정식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숨바꼭질의 룰을 설명하겠습니다.”

대부분이 알고 있음에도 침묵했다. 긴장감이 높아졌다.

천희는 설명을 시작했다.

“숨바꼭질의 룰은 간단합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정해진 술래는 귀신을 잡아 여기, 대강당 학생회 임원 앞으로 데려오면 됩니다. 학생회 임원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귀신은 베타로 한정합니다. 술래 알파가 귀신 베타를 잡으면 됩니다.”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강한 어조였다. 강당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 행사를 이미 아는 분들도 있어 편법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1학년생은 빠짐없이 다 참가해야 하며 가장 늦게 귀신을 잡아 데리고 오는 알파에게 높은 점수가 부여됩니다. 그리고 같은 반의 베타가 아닌 다른 반의 베타도 잡을 수 있지만 점수는 같은 반 베타로만 채점됩니다.”

전체 조회 때 정중하게 말하던 학생회장의 말투와는 달랐다. 고압적이며 자신만만했고 자신의 힘을 드러냈다.

한주는 달라진 공기에 턱에 힘을 주었다.

사내들의 체취가 진해졌다.

“우리는 알파입니다. 세상을 지배할 알파. 누구보다 우월하고 뛰어나며 누구보다 강하죠. 달리고 위협하고 머리를 써서 베타를 사냥해 이곳으로 데려오세요.”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려 어디에 베타가 있는지 위치를 확인했다. 안광이 번뜩이며 떨어지는 나뭇잎도 베어 버릴 듯이 공기가 날카로워졌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한주는 흔들림 없이 정면에 있는 연단 위의 학생회장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참가한 베타 학생들이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 부모의 직위가 높은 이들이었다. 학교에서 여타의 베타처럼 취급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항의했다.

“베타에게 불리한 조건 아닙니까? 이럴 거면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우천희는 저항을 가볍게 잠재웠다.

“베타가 알파에게 잡히지 않고 일출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그 사람이 학생회 임원이 됩니다.”

베타도 학생회 임원이 될 수 있다.

항의하던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재강원 고등학교의 학생회는 알파들로만 이루어져서 들어간다면 거대한 알파 인맥이 생기게 된다. 베타이기에 학생회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의 눈에 욕심이 찼다.

항의가 사라지자 우천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학생회에서 책임지고 없었던 일로 처리하니 남의 것을 빼앗고 약한 자는 굴복시키고 자신의 힘을 발산해도 됩니다. 자신이 알파임을 느끼며 당신들이 미래의 지배자라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우와아아,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벌써 어른이 된 것처럼 점잖게 굴던 학생들이 발을 구르고 주먹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감정을 드러냈다.

광기의 시작.

한주는 슬금슬금 거리가 가까워지는 학생들을 보았다. 공기가 바짝 긴장했고 주변의 시선에 솜털이 삐죽 섰다.

학생회 임원이라는 포상에 눈이 멀어 베타에게도 괜찮은 게임이라 생각했던 학생들의 낯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야! 놔! 난 기숙사에 있을 거라니까! 참가 안 한다고 했잖아!”

재민석이 가드들에게 끌려 들어왔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지 어느 때보다 안색이 창백했다. 민석은 다급히 천희가 서 있는 연단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전 이 학교 이사장의 아들이에요. 재강원이 제 아버지라고요!”

그러나 천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선배님! 이사장 아들을 이런 취급을 하다니!”

“그래서 네가 알파인가?”

민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1학년 전체가 보는 앞에서 무시당했다.

“질문 있습니다.”

높지 않은 목소리가 연단까지 닿았다.

강희는 목소리를 낸 한주를 보았다.

우천희는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질문을 받아 주었다.

“뭐지?”

“오늘 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없었던 일이라고 했는데 베타든 알파든 학생이 다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 겁니까?”

한주의 질문에 주변에 있던 알파들이 피식, 웃었다.

누구보다 집안의 힘을 잘 아는 이들이었다. 일개 사업가의 가문도 하는 뒤처리를 재강원 고등학교란 거대한 알파들의 집합소에서 못 할 리가 없다.

우천희는 느릿하게 강희에게 시선을 주며 답해 주었다.

“오늘 밤 일어나는 일은 다 개인의 실수가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가해자에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 순간 한주는 이창원과 눈이 마주쳤다. 창원은 짙게 미소를 지으며 혀로 날름 입술을 핥았다.

“지금부터 30분 동안 술래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귀신인 베타는 신속히 움직여 숨으십시오. 본관 어디에도 숨을 수 있습니다.”

우천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 몇 명이 욕을 뱉으며 대강당을 뛰쳐나갔다. 문을 지키고 있던 가드들은 달려 나가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숨바꼭질을 시작합니다!”

외침에 재민석은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도망쳤다.

환호는 잦아들고 알파들은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베타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주는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주위의 학생들이 내뿜는 호전적인 기가 오감을 찔렀다. 페로몬을 느끼지 못하는 베타지만 공기로 그들의 분위기를 느꼈다.

이전에는 초반에 괴롭힘을 당했지만 강도가 학생들도 학생회 임원 캠프가 있음을 알기에 적당히 자제했던 것이다.

다시 들어온 학교에서 한주는 같은 일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주위에 있는 같은 반 학생들이 한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성진은 서서 자는지 눈을 감고 있었고 차원구는 한주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황치운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우강희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학생들처럼 베타를 잡겠다는 사냥 의지나 긴장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다.

한주는 대강당을 빠져나갔다.

‘이전처럼 당하지 않아.’

* * *

우강희도 대강당을 나가는 한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박한주는 이미 알고 있었네. 학생회장이 이렇게 나올 것까지 예상한 모습인데.”

“어디서 주워들었겠지. 상황 파악 못 하고 질문 던지는 것 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 못 하는 꼴이잖아.”

원구는 치운의 어깨에 기대며 한주가 나간 강당 문을 보았다.

“글쎄. 정말 상황 파악을 못 했다면 일이 벌어지고 난 후의 처리를 질문했을까? 오히려 반대로 다른 베타들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거 같던데. 당황하지도 않았고.”

“관심 없다더니 유심히도 봤네. 그래 봤자 조금 일찍 잡히느냐 한 시간 뒤에 잡히느냐의 차이야. 베타가 도망쳐 봤자 알파 상대로 얼마나 버티겠어.”

“……그럴까?”

성진이 눈을 떴다. 관심 없어 보이더니 다 듣고 있었다.

“……피곤해. 좀 자야겠어. 끝나면 깨우러 와.”

학생회를 위해 준비해 둔 소파로 가더니 성진은 허락도 받지 않고 누웠다. 로열 알파가 그러니 옆에서 보고 있던 2학년은 화내지 않았다.

“우리 우강희, 넌 어쩔래?”

강희는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관심 없어.”

“하긴 우리 우강희가 그렇게 나올 거 같았지. 아, 어서 30분 지나가라. 오래간만에 운동할 생각 하니 몸이 근질근질하네.”

강희는 천희에게 질문하고 강당을 나서던 한주를 떠올렸다. 한주는 치운의 말처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아는 사람 같았다.

잔잔한 수면처럼 파동도 없이 고요했다. 괴롭힘을 당해도 깊게 뿌리내린 단단한 나무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 봤자 베타지.”

굳어 있던 그의 입매가 올라갔다.

* * *

본관 외부로 나가는 통로는 잠겼고 문 앞에는 가드들이 두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학생이 지나가도 모른 척, 못 본 척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

별관으로 통하는 각 층의 통로 앞도 마찬가지였다. 방화문이 내려졌고 외부로 나갈 방법을 철저히 차단했다.

1층 창은 아예 방범창으로 막혀 창을 깨고 밖으로 탈출도 못 하게 막았다.

본관은 완전히 밀폐된 상태였다.

학생회 임원 선발이란 이벤트가 단지 학생회뿐만이 아니라 학교의 허락하에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부우웅, 친구 고용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왜?”

- 오늘이 재강원 고등학교 학생회 임원 선발이라며?

“정보는 귀신같다.”

용진은 컴퓨터로 하는 일에는 특출 났다. 이전 삶에서 알파가 되고자 살았던 한주가 소홀히 대했던 친구 중 하나다.

- 검색해 보니까 무슨 짓을 하는지 임원 선발 때 매년 부상자가 나오고 몇 주를 입원하기도 한다는데?

“알파들이 거칠잖아. 걱정해서 전화했어?”

- 걱정은. 괜한 사고 치지 말라고.

“그러잖아도 물어봤는데 사고가 나도 피해자 개인의 실수로 처리한대.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더라.”

- 와, 당한 놈이 책임까지 지라고? 살벌하네.

“그렇지.”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이전의 삶에서는 한주 본인이 당한 일이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한주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도 어디선가에서 인기척은 느껴졌지만 적막했다. 때때로 들리는 소리가 스산함을 주었다.

양호실 문도 열려 있었다.

양호실을 오픈해 놓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열어 보니 주사기와 뾰족한 가위 등 무기가 될 수 있는 물건들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과학실도 열려 있지만 마찬가지였다.

철두철미하게 미리 준비해 놓았다.

오늘 밤 정말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학교에서는 은폐하리라.

누군가 하나 죽는다 하여도.

교무실을 둘러보다가 한주는 책상 밑에 숨은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뭐, 뭐야?”

한주가 왔는데도 숨죽이며 없는 척 숨어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화를 냈다.

재강원 고등학교에 베타가 몇 없기에 아는 얼굴이었다. 3학년 때까지 버텼지만 결국 자퇴한 베타였다.

“뭘 봐! 어서 나가! 5분 뒤면 시작이야! 여긴 내가 먼저 선점했어!”

- 어, 무슨 소리야?

“개소리.”

“야, 뭐 해? 나가라니까!”

저가 소리쳐 놓고 벌벌 떨며 책상 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불안한지 중얼거렸다.

“씨발, 베타라 불리한데…… 그 자식들이 페로몬을 묻혀 놨을지도 모르는데…… 추적하면 어쩌지…….”

“아!”

한주는 힙 팩에서 스프레이형 소취제를 꺼내 몸에 뿌렸다. 숨어 있던 베타가 스프레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거 소취제야? 나, 나도 줘!”

던져 주자 허둥대더니 몸에 뿌렸다. 너무 진하게 뿌려 멀찍이 떨어진 한주에게까지 소취제 특유의 시트러스 향이 맡아질 정도였다.

“너무 많이 뿌리면 오히려 소취제 냄새 때문에 위험해.”

“내, 내가 알아서 해!”

- 뭐가 그리 시끄러워?

“아아.”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본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본관의 불이 꺼지더니 붉은 비상등이 켜졌다.

“우와아아!”

“베타를 잡아!”

“베타 어디 있어? 베타!”

두두두두 일제히 달리는 소리와 함께 알파들의 목소리가 학교 내에 울려 퍼졌다. 목줄이 풀린 짐승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학생회 임원 선발, 지금 시작했어.”

- 사고 치지 마라.

“끊어. 이제 바빠.”

한주는 전화를 끊었다.

짐승들이 사냥을 시작했다.

* * *

고용진은 핸드폰 키패드를 터치하던 손을 멈추었다.

“검색하면 할수록 개 같네. 이게 정말 학교냐? 뭐 이딴 곳이 다 있어.”

재강원 고등학교에 다녔던 학생의 개인 계정 하나를 발견했다.

베타인 학생이 알파들 사이에서 지내기는 쉽지 않았는지 힘들다는 글을 수시로 올렸다. 혼자만 아는 암호를 쓰는데 암호를 몰라도 내용은 암울했다. 계속 보다 보니 암호의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알파벳으로 알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횟수를 표시했고 ‘화’는 화장실에서 당했다는 뜻으로 ‘쓰’는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는 표시였다.

앞 날짜를 확인하던 도중 고용진은 한동안 빈 공백을 발견했다. 학생회 임원 선발이 있을 거라는 글 뒤로 두 달간은 글을 올리지 않았다.

같은 아이디를 검색하니 다른 곳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시 검색을 통해 그 베타가 한 달간 입원했다가 퇴원한 이력을 찾았다.

“아, 박한주. 이래서 비싼 돈 들여 가며 그런 구슬을 만들었구나. 괜히 학교에서 그런 거 썼다고 퇴학당하는 거 아니야? 일을 크게 벌이지는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은 되지만 걱정되는 대상은 한주가 아니라 상대방이었다.

한주는 또래답지 않게 얌전해 보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이상한 소리도 가끔 하지만 대체로 괜찮은 친구였다.

가끔 이상한 짓을 벌여서 그렇지.

고용진은 편안한 자세로 다시 핸드폰을 검색했다.

* * *

사이렌이 울리며 학생들의 환호성이 복도로 쏟아졌다. 잠시 조용해졌다고 생각해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뒤이어 복도를 타고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아!”

흠칫 몸이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비명이었다.

날카로운 검이 공간을 베듯이, 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히이익!”

베타가 책상 아래에 몸을 옹송그리며 새된 숨을 뱉었다. 작은 소리에도 숨소리가 커졌고 교무실 밖에서 큰 소리라도 나면 책상을 건드려 요란을 떨었다. 겁을 먹어 숨어 있어도 쉽게 들킬 모양이었다.

‘오래 못 버티겠어.’

교무실을 나가려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본관의 직원 휴게실 안쪽으로 숨을 만한 장소가 있다. 겉으로는 낮은 캐비닛이 줄지어 붙어 있어 보이지만 직원들이 관리자 눈을 피해 한숨 자는 공간으로 썼다.

그곳에서 일출 때까지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1층으로 내려온 알파들이 복도 끝에서부터 교실 문을 열어 베타를 찾고 있었다.

“왜, 뭔데? 왜 안 나가는 거야?”

바람이 빠진 듯 새된 소리에 한주는 상황을 알려 주었다.

“목소리 죽여. 복도 끝에서부터 뒤지고 있어.”

“버, 벌써?”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말소리조차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다급히 입을 막는다. 베타는 몸을 더 웅크리고 책상 밑으로 숨었다.

한주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반대쪽 입구로 향했다. 옆의 휴게실과 이어지니 알파들이 교실을 뒤지기 위해 들어갈 때 이동할 생각이었다.

“뭐, 뭐 하려고?”

앞문으로 이동하는 한주를 보며 숨어 있던 베타가 벌벌 떨며 다가왔다. 한주는 문을 조금 열어 핸드폰 카메라로 복도 상황을 살폈다.

알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도 없어! 옆쪽 뒤져 봐.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어.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어.”

“우리 반 놈을 잡아야지.”

“뭘 모르는 소리 하네. 다른 반 놈을 잡으면 딜을 걸어 우릴 도우도록 만들 수 있잖아. 비싸게 팔아도 되고. 학생회 임원을 우리 입맛에 맞는 놈으로 넣을 수도 있어.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 우리가 이득이지.”

“그렇긴 하네. 인간 미끼인가.”

낄낄거리는 웃음이 교무실까지 들렸다.

교실 두 개를 사이에 두었을 정도로 알파들이 가까워졌다.

히익, 히익 긴장으로 새된 숨을 내쉬는 소리가 한주의 뒤에서 들려왔다. 심하게 긴장한 모습이 신경 쓰이지만 교무실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알파들이 옆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한주가 몸을 옮기려는데 옷이 잡혔다. 언제 다가왔는지 숨어 있던 베타가 한주의 옷을 잡고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 다른 학생들이 모습을 보였다.

한주는 다시 안으로 몸을 숨겼다. 옆 휴게실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넘어가지 못했다.

베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구명줄을 잡듯 한주의 옷을 놓지 않았다. 하얗게 질려 언제 패닉을 일으킬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살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니 화를 낼 수 없었다.

“뭐야, 벌써 뒤지고 있었어?”

“야, 빨리 교무실로 들어가 봐.”

이제 시간이 없다.

그들이 교무실로 들어오기 위해 뒷문을 여는 타이밍에 한주는 휴게실로 이동해야 한다.

“뒷문이 열리면 옆 휴게실로 뛰어.”

소곤소곤 말했다.

답은 없었지만 더 거칠어진 숨소리를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드르륵, 뒷문이 열렸다.

한주가 옆으로 뛰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퍽, 등이 떠밀리며 엉거주춤 복도로 나와 버렸다.

알파 네 명과 눈이 마주쳤다. 복도 끝에서 무리 지어 내려오는 학생들도 한주를 발견했다.

“베타다! 저기 베타가 있어!”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알파들이 소리쳤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욕이 절로 나왔다.

등을 떠민 베타를 돌아보았다. 교무실 안쪽으로 몸을 숨긴 그는 창백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겁을 먹어서 옷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노린 거였다.

혀를 차며 몸을 돌려 달렸다.

“잡아!”

“저 녀석, 이성진네 반 놈이야!”

“저놈을 잡아서 이성진과 딜 하자!”

“차원구와 황치운이 돌아다니던데 그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잡아야 해!”

한주를 잡으면 어떤 알파와 거래를 할지 논하며 그들은 빠르게 쫓아왔다. 발견한 것만으로 이미 잡았다는 듯이 승리에 취해 있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학생들의 기운은 광기였다.

“베타다! 잡아!”

교실들을 뒤지고 있던 알파들이 소란을 듣고 복도로 뛰어나왔다.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한주를 쫓는 알파들이 많아졌다.

“그때와는 다르지.”

숨을 헐떡이며 복도 코너를 돌았다. 쫓기지만 한주는 웃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