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오랜 관계 (8/31)

8. 오랜 관계

알코올에 약한 한주는 종일 양호실에서 잤는데도 술이 깨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고 무열이 양호실에 들러 깨우자 숙취에 휘청였다. 혼자 놔둘 수 없어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화장실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우강희도 걱정이었다.

B동 기숙사까지 들어올 리는 없겠지만 그가 한주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무열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강희의 위압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오한이 든 듯 몸이 떨렸다.

방으로 오는 내내 욱욱거리며 속이 울렁거린다고 숙취 진상을 부리던 한주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맛있어…….”

제발 에너지바는 먹지 않기를.

입을 우물거리며 꿈에서 뭔가를 먹는 한주에게서 등을 돌려 무열은 전날 보던 상담 사례를 보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자주 핸드폰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침에 오메가라는 폭탄을 던졌으니 재강원의 귀에 들어갔을 텐데 연락이 없었다. 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확률이 높았지만 전화는 울리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상대를 너무 잘 알아도 힘드네.”

30년 이상을 알아 왔고 그중 20년은 살을 맞대면서 재강원의 감정을 받아 냈다.

어떨 때는 세상에 다시없을 다정한 연인으로 행동하며 무열을 원하는 대로 조종했고, 어떨 때는 폭군이 되어 상처 입혔다. 그래도 떠나지 못하고 관계를 이어 왔지만 더는 견딜 수 없다.

한주의 일을 핑계로 그만 정리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 자자.”

한주가 누워 있지만 침대는 넓었다. 그 옆에 누우려는데 조용하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차 보냈습니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이무열은 잠든 한주를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외출 준비를 했다.

* * *

양평 주변에는 별장이 많았다. 무열을 태운 검은 승용차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별장으로 들어섰다.

재강원 고등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한 후 멀다는 이유로 재강원의 부름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의 별장을 샀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별장은 정원에서 소리를 질러도 달려올 이웃이 없는, 고립을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라 사방이 적막했다. 이전 주인이 이 별장에서 애인을 지내게 했다는 얘기를 하며 재강원은 웃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별장을 준비했다는 생각에 처음 며칠은 들떴었다. 그런데 별장을 산책할 때 조깅을 나온 사람에게 불길한 얘기를 들었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별장에서 몇 년 살다가 자살해서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집주인의 애인이 살았다더니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단다.

그 후 무열은 이 별장에 오는 것이 께름칙했다.

재강원은 여전히 바빴고 여전히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무열의 스케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었다.

오늘도 그랬다. 밤에 자는지 다른 일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불러냈다.

그와 무열은 사적인 관계인데 직원처럼 명령만 내렸다. 처음에는 반항도 하고 짜증도 냈지만 변하지 않는 태도에 먼저 포기하고 익숙해졌다.

20년 동안 천천히 길들여졌다.

일상이 되어 버린 관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고착된 관계. 요즘은 그만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기분이 술렁이며 가슴이 불안하게 뛸 때가 많았다.

재강원을 생각하면 좋다가도 짜증이 났고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TV를 보다가도 눈물이 툭 떨어졌다. 무언가 변했지만 무엇이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별장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

불 켜진 별장 안으로 들어가며 인사했지만 곧 걸음을 멈추었다.

재강원은 무열을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다른 남자를 불러 즐기고 있었다. 태블릿을 보던 그는 성인이 된 아들이 있음에도 한창때의 젊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로열 알파답게 어디에 있어도 존재감이 강했다.

바에 허리를 기대고 서 있는 모습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들고 있는 태블릿 아래로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그의 것을 빨고 있었다.

그에게는 당연한 상황이었고 무열도 처음 보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 역한 느낌에 속이 울렁였다. 속의 것을 토해 내고 싶었다. 불쾌감에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야 하나.’

질척이는 젖은 소리를 내며 그의 것을 애무하는 남자를 보면서 무열은 멍하니 생각했다.

“이리 와요.”

온화한 짧은 명령.

은은한 페로몬이 무열의 발치까지 퍼졌다.

딱히 상대를 유혹하려는 페로몬은 아니지만 그를 애무하는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흥분했는지 허리를 뒤틀며 추잡한 소리를 키웠다. 게걸스럽게 더 깊이 입에 넣어 빨았다.

머리가 바쁘게 피스톤질을 하며 자극했지만 그의 얼굴에 열기는 없었다. 무열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그의 페로몬이 짙어졌다.

농도가 짙은 페로몬이 무열의 다리를 감싸며 타고 올라와 다리 사이의 고간을 스쳤다. 부싯돌을 튕긴 듯이 화끈한 열기가 그 사이에서 퍼졌다. 평소라면 무열도 몸이 달구어지기 시작했겠지만 오늘은 성욕이 바닥을 찍었고 젖어야 할 은밀한 구멍도 건조했다.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우강희가 박한주에게 관심을 보이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한주에게 애정이 갔고 친근감이 들었다.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무열.”

재강원의 부름에 생각이 끊겼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무열을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조급해했다.

고작 그 잠깐도 참지 못한다. 무열은 20년 이상을 기다렸는데.

“하앙, 응…… 하아.”

질척이는 소리와 젖은 살을 빠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무열은 난잡하게 머리를 움직이는 남자를 무심히 보았다.

그가 오늘 무열에게 원하는 것이 저것이었다. 일부러 보여 주고 있었다.

“오늘 이상한 말을 했다던데요.”

여섯 살 차이는 어릴 때는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으니 차이가 없어졌다. 사회적 지위의 격차도 커졌고 그는 이사장, 이무열은 직원에 불과했다. 고용인으로서 반말을 해도 되는데 그는 항상 이무열에게 존대했다.

“맞아. 나 프라이머 오메가야.”

재강원의 입매가 길어졌다.

“당신이 오메가라니, 믿지 않아요. 당신과 살 맞댄 시간이 한두 해도 아닌데 내가 그걸 몰랐다는 겁니까? 오메가라니, 그렇게 내 관심을 끌고 싶습니까?”

무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24살, 처음으로 그와 관계를 가졌다.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던 재강원은 생일날 무열의 몸을 가졌고 첫 관계 직후 병원으로 데려가 형질 검사를 다시 했다.

그의 계열사에서 한 병원 검사는 주민 등록증에 나와 있는 대로 ‘베타’로 나왔다.

“네가 날 데려갔던 병원, 너네 회사 계열이야. 네 어머니인 큰 사모님은 내가 오메가로서 네 옆에 있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어. ‘베타’인 이무열만이 있을 수 있었지.”

이미 오래전 일이었고 세월에 바래서 아픔도 되지 않는 과거였다.

처음으로 관계를 가지고 병원으로 데려간 재강원의 행동이 무열의 가슴에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진찰한 의사가 “베타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안심했다는 듯이.

하찮은 피에서 제 자식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인지, 아니면 마음껏 놀아도 된다는 안심인지는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 쪽도 무열에게는 좋은 뜻이 아니었다.

그때의 재강원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네 관심을 끌려고 밝힌 것이 아니야. 오히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 그만 만나자. 이 정도 만났으면 서로 질릴 때도 되었잖아.”

“아, 그 말은, 오메가라는 소리보다는 재미있네요.”

계속되는 존대에 재강원의 하체에 얼굴을 묻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무열을 돌아보았다. 재강원은 절대로 타인에게 존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은 그의 발아래 있고 지배하에 있는데, 그런 재강원이 다른 사람에게 존대하니 의아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남자는 눈이 풀어져서 약을 한 듯이 보이지만 재강원의 페로몬에는 누구든 쉽게 취했다.

약해진 자극에 그는 남자의 머리를 움켜잡아 샅으로 눌렀다. 익숙한지 저항도 없이 요구를 따른다.

그의 페로몬에는 기본적으로 성적인 느낌이 있어 조금만 성욕이 섞여도 상대가 누구든 그에게 쉽게 넘어왔다. 그 대상은 오랜 시간을 알아 온 무열이어도 다를 것 없었다.

“우선…… 오메가라는 말은 믿어 주죠. 그런데 오메가면서 재강원 고등학교에 계속 있겠다는 겁니까? 알파가 우글거리는 학교에서 오메가가 일하겠다고요? 알파가 숨어 들어올 수 있는 기숙사에 계속 살겠단 말입니까?”

그는 무심히 바라보는 무열의 얼굴을 시선으로 훑었다. 서서히 몸의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갈증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 여전히 무열을 소유하려 했다.

재강원은 자신의 것을 아끼지는 않았지만 소유욕은 컸다. 애인의 투정을 달래기 위해 선물은 사 주지만 시간을 쏟지 않았고 애정은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것에 타인의 손이 닿거나 남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애착을 가지는 물건이라도 남이 쓰면 결코 이용하지 않았고 한 번 쓰고 버리더라도 남에게 주지 않았다.

“난 이 학교 선생이야.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게 싫으면 해고해. 해고당하면 ……일도 없어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나도 궁금하네.”

“…….”

그가 입을 닫았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못마땅해했다.

한 왕국의 유일무이한 후계자로 자랐고 순리대로 왕이 된 재강원에게 누구도 거부한 적이 없었고, 있으면 쉽게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거부하는 무열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많이 봐주는 상태였다.

자신은 여러 사람과 몸을 섞고 만나면서 무열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싫어했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어릴 때는 그것이 달콤한 애정이라 생각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성난 페로몬 때문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아픔이 아니었다. 몸이 익숙한 페로몬을 반기고 있었다. 그의 페로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무열의 마음은 차가워졌다.

“네 페로몬 때문에 아파.”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그의 페로몬이 무열을 감쌌다. 어디를 어떻게 자극하며 어루만져야 하는지 서로 잘 알았다.

“네 페로몬 때문에 아프다고 해도 들은 척하지도 않지.”

“단지 아픈 것만은 아니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재강원의 페로몬이 멈췄다.

“고집부리지 마세요. 당신은 결국 제가 원하는 대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를 떠나지 않겠어. 기숙사에서 쫓아낸다면…… 숲에서 노숙하는 한이 있어도 계속 근무할 거야. 우리 그만 끝내자. 더는 나한테 상관하지 마. ……피곤해.”

〈피곤합니다.〉

그 말은 재강원이 잘하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피곤해서 그러는 줄 알고 피로를 풀어 주려 노력했고 기분을 맞추었지만 오래지 않아 그 말이 거부라는 걸 깨달았다.

피곤하게 엉겨 붙지 말라는 뜻이다.

‘너도 이 말에 상처를 받을까.’

상처받길 원해 말해 놓고 그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는 자신이 싫었다.

애인이 이별을 얘기하는데 재강원은 남자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추잡한 젖은 소리와 신음이 침묵을 메꿨다. 같이 지낸 세월이 오래라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은 되었다.

재강원은 무열이 헤어지자고 해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오메가라고 말했지만 자신이 지시한 조사 결과가 아니면 믿지 않을 사람이다.

그에게 무열은 소유물이었고, 그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소유물은 주인이 버리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다. 그러나 망가져 버린 소유물을 계속 가지고 있는 주인도 없다.

무열은 그가 버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버리고 싶었다.

“좋아요.”

그런데 너무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그의 것을 빠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옆으로 밀치고 재강원이 허리를 폈다. 방금까지 타인의 입 안에 있었던 그의 물건은 타액에 젖어 번들거렸지만 온전한 발기 상태는 아니었다.

성기를 보여도 아무렇지 않은지 흐트러진 옷을 여미지도 않고 무열의 앞으로 다가왔다. 새삼스럽게 얼굴을 뜯어보았다. 샅샅이, 핥듯이 훑는 시선에 무열은 그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밀려난 남자는 페로몬에 자극당해 혼자 자기 성기를 손에 쥐고 흥분했다. 다른 손으로 엉덩이 사이를 문질렀다.

남자는 베타였다. 페로몬에 무딘 베타조차 재강원의 페로몬에 자극당해 성욕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치 약을 먹은 사람처럼 흥분했다. 페로몬과 상관없는 베타도 자극할 수 있는 것이 로열 알파의 페로몬이었다.

무열은 오메가라 자극이 더 강하게 와야 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달아오르지 않았다. 재강원도 무열이 평소와는 다름을 알아차렸다.

“계속 근무하고 싶으면 성의를 보이세요.”

그가 무열의 고개를 끌어당겨 시선을 붙잡았다.

“……성의?”

“일하고 싶다고요? 해고해도 계속 남아 있겠다니, 그게 당신 마음대로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재강원 고등학교는 애초에 오메가는 채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일하고 싶다면 예외를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재강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해고당하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지만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면 무열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지도 모른다.

“안 해.”

뒤로 물러났지만 허리가 잡혔다. 성성한 그의 것에 하체가 눌렸다. 여태껏 타인의 입 안에 있던 것은 뜨거웠다.

“재롱을 떨어 제 마음을 움직여 보세요. 목적이 있으니 그동안 숨겨 왔던 오메가라는 사실을 밝혔겠죠.”

안하무인에 무엇의 아래에도 있어 본 적이 없는 남자에게 존댓말은 결코 자신을 낮추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반대로 상대를 조롱했고 성욕을 돋웠으며 상대의 민낯을 보이게 만드는 무기였다.

다가온 남자의 입술이 무열의 목을 훑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단단한 살덩이가 나와 무열의 피부를 맛보았다. 흥분을 돋우기 위한 감질나는 애무에도 무열은 흥분이 일어나지 않았다.

방은 그의 페로몬으로 가득 차 있고 속수무책으로 당해 자위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늘 무열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미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은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니야.”

“정말 그런 것 같네요.”

뒤에서는 신음이 들려왔지만 무열의 얼굴에는 흥분이 없었다.

재강원은 목덜미에 키스하며 무열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볼기 사이로 가운뎃손가락을 찔러 넣어 구멍을 훑었다. 항상 그를 만나면 젖어 있던 주름이 건조했다.

“젖지 않았네요.”

“……몸이 좋지 않아. 저 사람과 마저 놀아.”

팔뚝으로 밀어 빠져나오려 했지만 오히려 그는 무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단단한 살이 그의 억센 손안에서 모양이 일그러졌다.

하고 싶어 불렀고 눈앞에 있는데 그가 놓아줄 리 없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겠죠. 싫어하는 당신의 뒤를 억지로 여는 상황도. 강제로 범하는 것 같아서 색다르네요.”

말을 증명하듯이 무열의 하체를 누르고 있는 그의 것이 더 단단해지며 부피를 키웠다. 허리를 밀어 슬쩍슬쩍 움직이며 자극했다.

역시 그는 무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치 포르노를 틀어 놓은 것처럼 한쪽에서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누워 자위하는 남자를 내버려 두고, 재강원은 무열의 허리를 들어 몸을 테이블에 올렸다.

“싫다고!”

반항은 소용없었다.

그는 간단히 손목을 잡아 테이블에 누르고 바지를 끌어 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맨살에 닿았다. 흥분해 더 단단해진 그의 것이 엉덩이 사이에 닿았다. 두툼한 두께가 주름을 눌렀다.

“싫어! 싫다고 했잖아! 오늘은…… 입으로 해 줄게.”

“이미 늦었어요.”

윤활제도 없는 마른 곳으로 단단해진 성기가 서서히 밀고 들어왔다. 타인의 타액으로 젖어 있지만 잠깐 사이 말라서 뻑뻑했다. 강제였는데 몸은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

날카로운 아픔은 잠시뿐이었다.

싫다고 했는데 그의 강제적인 침입에 몸은 젖어 갔다. 슬프게도 너무 오래 남자에게 길들여져 버렸다.

몸은 그의 것을 반겼다.

무열은 저항을 포기하고 몸에 힘을 빼며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손을 내려 무열의 앞을 만졌다.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비웃음은 아니지만 그는 낮게 웃었다. 무열의 귀가 벌게졌다.

“이러면서 그만 만나자고요?”

그가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묵직하게 빈틈없이 안을 채우며 누른다. 안쪽까지 눌러 오는 느낌은 익숙하지만 매번 꽉 채우는 만족감을 주었다.

이무열은 어깨를 부르르 떨며 소리를 냈다.

“아…….”

재강원은 다시 웃었다.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겨우 새벽에 돌아와 깜빡 잠이 들었는지 짧은 진동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책상 위의 전자시계를 확인하니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이었다.

진동음을 들은 기억이 난 무열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안쪽에서 올라오는 뭉근한 아픔에 신음이 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학교 공지사항이 문자로 도착해 있었다.

웃음이 났지만 입맛이 썼다. 원하는 방향으로 재강원이 움직였지만 이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선생님? 여기 내 방인데 왜…….”

눈을 비비며 일어난 박한주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 아파…….”

숙취를 호소했다. 무열은 침대 옆에 있는 생수병을 손에 쥐여 주었다. 작은 생수통을 한 번에 달게 마신 한주는 방을 둘러보았다.

“어……. 제가 어제 선생님 방에서 잤어요?”

“기억도 안 나? 필름까지 끊기다니, 참 나. 건포도에 묻은 럼주에 취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야.”

“아…….”

한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선생님 방에서 먹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우유와 같이 먹어서 알코올이 흡수가 안 됐나 봐. 일어나서 방에 가서 옷 갈아입고 와. 해장은 해야지.”

무열이 한주를 놀렸다.

“네……. 저 어제 괜찮았어요?”

“글쎄, 반 녀석들에게 물어봐.”

“네? 반 녀석들? 설마…….”

한주는 난감해 목을 울렸다.

“그런데 선생님, 저 때문에 못 주무셨어요? 얼굴색이 안 좋은데…… 제가 발버둥이라도 쳤어요?”

“아, 그래. 그래서 다음부터는 못 재우겠다.”

“잠버릇이 심하지는 않은데. 죄송합니다.”

무열은 흐느적대며 방을 나가려는 한주를 불렀다.

“한주야, 일주일 후, 월요일부터 B동 기숙사를 리모델링해서 A동이랑 합친대. 집에서 다니는 것도 허용한다니까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고 결정해서 알려 줘. 이 기회에 학교 인근에서 자취해도 재밌을 거야.”

“……네?”

한주는 눈을 끔벅이며 방금 자신이 들은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뇌를 열심히 굴렸다.

“그런 일 없었는데…….”

“방금 학교 공지사항에 떴어.”

“선생님도 A동 기숙사로 가요?”

“아니. 직원에게는 사택을 준비해 준대.”

“아직 멀쩡한데 왜 리모델링을 한다고……. 집이 너무 먼데.”

웅얼거리며 한주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2학년에게서 한주를 지키기 위해 그저 외부에서 다니게 하자는 의도였지만 우강희가 한주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최대한 두 사람의 접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주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좋았다.

기숙사가 다르다고 해도 강희가 원한다면 자주 마주치겠지만 최대한 떨어뜨려야 한다.

이것이 담임으로서 한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교실 뒷문을 열기 전에 한주는 멈춰 섰다.

팔을 들자 배에 통증이 올라왔다. 옷 갈아입을 때 배에 생긴 멍 자국을 발견했다. 얼마나 세게 찼는지 색이 짙었고 아직도 맞은 곳이 아렸다.

‘무엇 때문에 변한 거지?’

B동 기숙사의 리모델링은 지난 생에서는 없던 일이다. 주변 알파들이야 한주가 변했으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숙사 리모델링은 학교 자체의 결정이다. 개인의 변화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었다.

한숨이 나왔다.

담임인 무열은 어머니와 상의해 보고 결정하면 알려 달라고 했지만 한주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등·하교가 가능하다지만 양평에 있는 재강원 고등학교는 강남에서 차로 한 시간이 걸렸고 출근길 도로 사정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걸릴 수 있었다.

매일 왕복 세 시간을 차 타고 학교 다녀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한주는 등·하교를 시켜 줄 운전사도 없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면 앉아 가기도 힘들었다.

거기다 2학년의 괴롭힘이 끝났다고 할 수 없는데 집에서 등교하면 아무리 숨긴다 해도 엄마는 금방 눈치챌 테니 더욱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고 자취는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테고.

“당장 융통할 수 있는 돈은 없는데.”

알파를 위한 재강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학비만 마련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해 여분의 돈은 묶어 두었는데 난감한 일들이 터졌다.

자취로 돈을 쓰고 싶지 않으니 A동 기숙사인 알파 기숙사에 들어가 산다는 선택지만 남는다. 한주는 한숨을 쉬며 교실로 들어갔다.

“괜찮냐?”

자리로 향하던 자신에게 묻는 말 같아 한주는 고개를 들었다. 차원구가 저를 보고 있었다.

“진짜 골 때린다. 어떻게 건포도에 묻은 럼주에 그렇게 취할 수 있어? 만취 수준이던데?”

캠프 이전에는 제대로 얘기해 본 적 없는 원구가 한주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한주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시야를 넓혔다.

남의 일에 관심 없고, 베타라면 무시하던 반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몸을 반쯤은 돌려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기대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내가, ……어제 뭐 했어?”

“푸핫, 뭐야. 그걸로 취해서 필름 끊겼어? 진짜 대단하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다지만 건포도에 묻은 럼주에 취하는 사람 처음 봤어.”

원구는 키득거렸다.

“……알코올에 약해서 평소에 조심하는데, 전날에도 우유랑 같이 먹었을 때는 괜찮아서 방심했어.”

“그럼 우리 성진이한테 에너지바 다섯 개 준 것도 기억 못 하겠다? 다른 녀석들 다 하나씩만 주는데 우리 성진이한테는 다섯 개나 줬어.”

“어, 어쩐지! 그래서 박스가 반은 비었구나!”

한주는 애써 이성진을 보지 않았다. 눈이 마주쳐서 왜냐고 물으면 뭐라 말할까.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이전의 삶에서 성진에게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

원구가 짓궂게 물었다.

“너 우리 성진이를 좋아해? 너무 직접적인 고백 아니야? 우리 성진이만 다섯 개를 주다니, 러브러브하네.”

“좋아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강희는 빨개진 한주의 귀를 보았다. 유치한 말에 보다 못한 치운이 나섰다.

“차원구, 에너지바 두 개 받은 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는 거야? 질투해?”

“하나였어. 남들처럼 하나 받았다고. 내가 왜 하나만 주냐고 물으니까 겨우 하나 더 주었잖아. 말 안 했으면 안 줬고.”

“네 용돈으로 몇백 박스는 사 먹을 수 있는데 그런 거에 뭘 욕심을 내?”

“남이 준 것과 내 돈으로 사 먹는 건 다르지. 저 베타가 우리 성진이만 다섯 개를 주었어. 우강희, 너는 짜증 나지 않아? 임원 선발에서 네가 도서실에 숨겨 주었으니 너는 열 개는 받아야지.”

원구는 한주의 뒤를 보며 물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강희가 서 있었다. 바로 뒤에서 한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기에 흠칫 놀라며 한주는 옆으로 비켜 주었다.

“몸은 어때?”

전날 양호실로 데려다준 일은 어쩌다 일어난 사고라 생각했는데 강희는 다정히 묻기까지 했다. 치운까지 눈이 커졌다.

“……박한주를 양호실에 데려다주었다고 챙기는 거냐?”

억지로 웃으며 말하는 원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주도 놀랐다.

“네가 양호실에 데려다주었어?”

“그래. 양팔로 이렇게 안았지. 그렇게 양호실까지 갔으니 학교 내의 사람들이 대부분 봤을 거야. 오메가들이 봤으면 완전 부러워했을 텐데. 그 정도면 에너지바 스무 개는 받아야 하지 않아?”

원구는 강희가 어떻게 한주를 안아 옮겼는지 몸소 동작을 보여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주는 우강희를 다시 보았다. 그에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고, 고마워.”

강희의 미간이 좁아졌다.

도와준 사람이니 감사 인사는 했다. 진심으로 고맙지는 않았다. 차라리 질질 끌고 갔다면 지금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컸을 텐데.

안고 가는 모습을 전교생이 지켜보았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마셔.”

작은 병을 내미는 손을 보고 한주는 경계하며 다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강희의 미간에 주름이 졌지만 한주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펴졌다.

숙취 해소제. 기숙사와는 반대 방향에 있는 직원들을 위한 편의점에서만 파는 것이었다.

어서 받으라는 듯 강희가 손을 흔들자 한주는 슬금슬금 손을 뻗어 작은 병을 가져갔다. 얼핏 그가 웃는 듯도 했지만 순간의 변화였다.

“잘 마실게.”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불길했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드니 학생들이 한주와 강희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다들 한주와 같은 마음으로 놀라 있었다.

우강희가 베타를! 알파도 안 챙기는 우강희가!

“그런데, 박한주. 너 어쩔 거야? B동 기숙사 리모델링해서 A동과 합친다던데.”

원구가 물었다. 알파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느 알파가 룸메이트를 허용하겠는가. 집에서도 혼자 방을 쓰며 영역을 중시하는 알파가 제 사적인 영역을 베타와 공유할 리 없다.

“생각 중이야. 집에 물어봐야 하고.”

흥미를 보인 알파 하나가 말했다.

“남는 방은 없을 텐데 어떻게 합친다는 거야? 학교에서 베타들 쫓아내려고 수를 쓰나 본데.”

“서울에서 등·하교하기는 머니까 이 근처로 집 사서 다니겠지.”

얘기는 근처 땅 시세로 넘어가더니 최근의 부동산 경향과 자기가 가진 서울의 어디 빌딩이 얼마가 올랐다느니 하는 말이 나왔다.

“내 방으로 와, 박한주.”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박한주는 옆자리를 보았다. 반의 모두가 우강희를 보았다.

“너라면 같이 지낼 수 있어. 나한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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