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B동 기숙사 폐쇄(1) (9/31)

9. B동 기숙사 폐쇄(1)

다들 경악했다.

“뭐?”

당황한 한주의 말에 뒤를 이어 반의 알파들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뭐라고? 방금 우강희가 뭐라고 한 거야?”

“지금 내가 무슨 소릴 들었지?”

당황은 황당으로 진화했다.

“우강희가 왜 베타와 한방을 쓰려는 거야? 아니, 왜?”

“미쳤어? 박한주를 양호실에 데려갈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베타와 한방을…….”

“아, 혹시 가사 도우미가 필요한가? 그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여기저기서 추측이 난무했다.

멋대로 떠드는 알파들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한주는 이전 삶과는 다른 수치를 느꼈다.

“왜 유럽에서는 하인이 침대 밑에서 자면서 주인이 부르면 일어나서 수발을 들었잖아.”

“아, 그런 용도?”

“우강희도 우상진 의원처럼 정계 진출을 노린다면 수행원이 붙어도 괜찮지.”

그리고 추측은 당사자가 앞에 있음에도 19금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밤에 필요한 건가?”

“뭐? 밤? 아아.”

은근히 눈길을 던지며 위아래로 훑어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오메가와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데 저 얼굴을 보고 세울 수 있겠어?”

“하긴.”

어디까지 하나 조용히 들어 주던 한주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룸메이트 안 해! 절대 그런 짓 안 해!”

“너에게 그런 짓을 요구하지 않아.”

우강희가 순순히 그런 의도는 없다고 말하니 다시 주위가 조용해졌다.

한주는 교실에서 대화했다가는 호기심 가득한 알파들이 무슨 말을 생산해 낼지 몰라서 강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야, 나가서 얘기해.”

“조례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

그때 무열이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들은 엉거주춤 제자리에 앉으면서 연신 한주와 강희를 힐끔거렸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무열은 아침의 공지사항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며 조례를 시작했다.

“오후에 학부모님들에게도 공지가 발송되겠지만 2주 뒤부터 B동 기숙사가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합니다.”

알파들이 일제히 강희와 한주를 보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 시선이 분산되지도 않았다. 무열은 의아해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B동 기숙사생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 거취를 정해서 알려 주시면 됩니다. A동에 일부 남는 방이 있지만 몇 개 되지 않아서 A동 기숙사에 합치게 되면 알파와 같이 방을 쓰게 될 겁니다.”

베타들끼리 A동 기숙사 룸메이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알파끼리의 룸메이트가 생긴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이므로 기존 알파의 방에 베타가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물론 알파가 베타와 같이 방을 쓰고 싶어 할 리 없고 만약 강제로 베타와 방을 쓰라고 하면 학교 측에 항의하고 기숙사를 나가면 된다. 재력이 좋은 알파들에게 문제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방을 배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모욕인 셈이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나선 우강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베타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던 우강희가 먼저 룸메이트 하자고 말하다니.

몇 가지 사항을 얘기하고 무열이 나가려는데 우강희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어, 우강희. 왜?”

불길한 느낌에 한주가 강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설마 얘기하려고? 우리끼리 먼저 얘기하고! 내 의사가 먼저야!”

“미리 말해야 일을 수월하게 처리하겠지.”

“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강희는 다시 폭탄을 던졌다.

“박한주라면 방을 같이 써도 됩니다.”

조례가 끝나 교수가 앞문으로 들어오다가 멈춰 섰다.

“뭐? 우강희, 뭐라고?”

“박한주가 A동 기숙사로 들어오면 저와 방을 같이 써도 됩니다.”

무열도 한주의 의향을 묻지 않고 우강희를 호출했다.

“……우강희, 점심시간에 상담실로 와.”

* * *

소수로 한 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키와는 상관없이 자리를 정했다. 재민석은 오른쪽으로 복도 벽을 둔 맨 뒷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리면 박한주과 우강희가 한눈에 보였다.

‘박한주를 보는 거야?’

수업 중, 민석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강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교단을 향하지 않고 약간 삐뚜름하게 비껴 있었다. 그 시선 범위에 한주가 있었다.

한주가 시선을 우강희 쪽으로 돌리면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교단으로 돌렸다. 잠시 후 시선은 다시 한주에게로 돌아갔다.

‘박한주…….’

우강희가 먼저 한주에게 룸메이트가 되자고 청하다니, 충격적이었다. 민석의 형과 있을 때는 무뚝뚝하고 먼저 무언가를 하자고 말하는 법이 없는 그가 베타인 한주만은 다르게 대했다.

알파 동급생의 무리에 끼어들려고 했던 민석은 무시당했는데 한주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었다. 베타를 싫어하는 우강희까지도.

그 시선의 안에는 민석에게 향하지 않는 호감이 있었다.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강희가 베타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잠깐의 변덕이 분명했다.

‘같이 방을 쓰겠다니,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닐 거야.’

민석은 한쪽 손에 턱을 괴고 노트에 볼펜으로 끄적였다. 교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저 자식만 다들 신경 쓰는 거야?

박한주 죽어 버려.

어떻게 눈에 안 띄게 만들 수 있지?

거슬려거슬려거슬려거슬려거슬려〉

글씨로 노트 한 면이 까맣게 변해 갔다.

* * *

무열은 우강희와 마주 보며 상담실에 앉았다. 강희는 말을 기다렸다. 침묵이 무열에게 어서 말을 하라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무슨 짓이야?”

강희는 고개를 기울였다.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무열은 잠시 입술을 깨물며 주저했지만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한주를 죽일 셈이야?”

우강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무열은 8년 전 재씨 가문이 운영하는 재성 대학 병원에 입원했었다. VIP 병실에 입원해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그 정도 호사는 필요 없지만 재강원이 병원으로 끌고 왔던 터라 마음대로 퇴원할 수도 없었다.

그때 VIP 병동 같은 층에 우강희도 첫 발현 때문에 입원했었다.

첫 발현 때는 페로몬 제어가 되지 않아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데 우강희가 그 케이스였다.

페로몬을 차단하는 안전복을 입고 의료진이 병실을 들락거렸고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었다. 원하지 않는 입원을 한 무열의 심심함이 그 보안을 뚫었다. 의료진의 단편적인 대화를 엿들어 우강희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박한주는 안 돼.”

우강희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긴장하니 입술이 말랐다. 무열이 마른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하는 등의 사소한 작은 행동을 우강희가 주시했다.

“만약 다른 학생이 그런 말을 했다면 환영했겠지. 고마워했을 거야. 그런데 우강희, 너는 안 돼. 왜 그런지 너 자신이 더 잘 알잖아.”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우강희는 짧게 이무열의 말을 끊었다.

“우강희. 한주는 평범한 베타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2학년에게 괴롭힘당하는 애를 왜 너까지……. 호기심이라면 그만둬. 네 호기심에 누군가는 죽을 수 있어.”

가만히 듣고 있던 강희의 입에서 하, 짧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부터 공기의 무게가 달라졌다. 깊은 물에 들어간 듯이 몸을 누르는 압박이 시작되었고 기압이 달라지며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이제까지 봐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방관자로 지내 온 사람이 왜 박한주 일에는 이렇게 끼어드는 겁니까?”

“흡!”

이무열은 숨이 막혔다.

“이제까지처럼 지내세요. 당신의 간섭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 본인 몸에 더 신경 써야 할 때일 텐데요.”

‘페로몬을 쓰는 것도 아닌데…….’

오메가이기에 페로몬을 느낄 수 있지만 현재 우강희는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열은 위압감을 느끼며 숨이 막혔다. 헉헉 숨소리가 나도록 힘겹게 숨을 쉬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자기 감정에 빠져 자신의 잣대로만 섣부르게 판단하죠. 내 페로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내가 그런 판단을 내렸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우강희.”

“그동안 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남을 괴롭히고 좋아하던가요? 건드리지 않는 한 조용히 살아왔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알파이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넌…… 사람을 죽였어!”

짧은 외침이 끝나자마자 무열의 온몸에 있는 솜털이 삐쭉 섰다. 코와 입, 피부의 숨구멍까지,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은 듯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이 비닐에 휩싸인 듯이 온몸이 밀폐된 느낌이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래?’

눈앞의 우강희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평온하게 저를 보고 있는데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이 숨이 막혔다. 컥컥 목을 잡으며 무열은 숨을 뱉었다.

죽을 수도 있다.

공포는 무열을 더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강희가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그제야 무열은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공기에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눈물이 쏟아지며 언제나 당연하게 들이마시던 공기에 감사했다. 이어서 공포가 밀려왔다.

페로몬이 아님에도 우강희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타인의 머리에서 부분적으로 지우며 기억을 조작했고 숨통을 조였다. 강희는 페로몬이 아니라도 원한다면 타인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서워도 포기할 수 없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널 믿으라는 거야? 사자 우리에 어떻게 한주를 넣겠어? 아무리 풀만 먹는다 하여도 사자는 사자야!”

숨을 헐떡이며 자기 하고픈 말을 하는 무열에게로 우강희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움찔, 무열의 몸이 떨며 긴장했지만 강희는 다시 압박하지 않았다.

무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우강희, 한주는 놔둬. 그 애 방은 내가 어떻게든 구할 거니까 한주에게 접근하지 마.”

어두워진 우강희의 얼굴에 이무열은 입을 다물었다.

음울한 그늘이 졌다.

문득 무열은 방에 돌아가 휴대폰만 바라보는 자신이 떠올랐다.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는 외로움이 가슴으로 밀려왔다. 강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전부는 몰랐지만 결코 쉽지 않으리라.

“읏! 안 돼!”

우강희의 감정이 전이되자 무열은 입술을 깨물었다. 따끔한 아픔과 피 맛이 현실로 데려왔다.

한주를 돕고 싶다. 일시적인 알파의 호기심으로 인생이 망가지는 사람은 자신만으로도 충분했다.

강희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무열은 상담실 안의 온도가 1도씩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허락이 있지 않은 한, 무열은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무열의 배에 머물렀다.

몸이 떨렸다. 만약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안 돼. 한주도 널 두려워하게 될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박한주는 스스로 날 선택할 겁니다.”

“우강희!”

상담은 그것으로 끝났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멜로디가 학교 안에 울려 퍼졌다.

무열은 숨을 헐떡이며 마라톤을 끝낸 듯한 피로감에 사로잡혔다. 허리에 힘이 빠져 등받이에 눕듯이 기댔다.

“……반에서는 많이 참고 있었어.”

오래간만에 재강원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난 우강희는 학생들과 문제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안심했다. 대부분이 알파라 하더라도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강희는 잘 지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자제력이 강한 덕분이었다.

그래도 불안하다.

페로몬도 전혀 쓰지 않았는데 무열은 그의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 배야. 너무 긴장했었나…….”

배가 단단하게 뭉치는 느낌에 무열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겨우 한고비를 넘긴 기분에 기운이 빠졌다.

* * *

금요일 저녁부터 알바 하기 때문에 한주는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사복으로 갈아입고 서울로 향해야 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우강희와 끝내야 할 얘기가 있다.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자고 아침부터 터뜨린 우강희. 자세한 얘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방해가 들어왔다. 원구가 옆에서 놀리고, 쉬는 시간에 얘기하려고 하면 금방 수업이 시작했고, 점심시간 때는 담임과의 상담으로 강희가 자리를 비우고.

도통 얘기할 시간이 나지 않다가 그나마 수업이 다 끝나고서야 단둘이 있을 수 있었다.

한주는 강희와 과학실로 들어갔다.

암막 커튼이 한쪽으로 묶여 정리된 과학실은 햇빛이 들어와도 차가운 느낌이었다. 창과 창 사이의 벽기둥에 강희는 기댔다.

“문 닫아.”

실험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에게 다가갔다.

“담임과 얘기는 어떻게 되었어? 정말 너와 방 써도 된대? 아니, 너 진심이야? 정말 나와 방을 같이 써도 돼?”

말을 걸어도 강희는 한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길했다.

“마음이 바뀌었어? 그럼 다른 방을 찾아보고.”

한주로서는 누가 룸메이트가 되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호감을 보이는 강희 쪽이 좋았다. 아무리 강희가 먼저 허락했어도 변심할 수 있으니 방을 옮기는 순간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벽에 기대고 있던 강희는 허리를 펴며 똑바로 섰다. 덩치가 훨씬 커진 듯이 느껴졌다. 그가 다가온 것도 아닌데 한주는 뒤로 물러날 뻔했다.

“담임은 우리가 방을 같이 쓰지 않길 바라고 있어.”

“뭐? 왜?”

학교에서 유일하게 한주에게 신경 써 주며 챙겨 주는 어른이기에 무열이 반대했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랬다고? 왜 그러지? 내가 선생님과 얘기해 볼게.”

강희의 미간이 움찔 움직였다. 표정에 큰 변화는 없지만 한주의 말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꼬리는 없지만 그의 등 뒤로 붕붕거리며 움직이는 꼬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넌 좋아?”

“다른 사람보다는 같은 반인 너와 룸메이트 되면 좋지만…… 안 된다면 다른 룸메를 찾아 주시겠지. 어쨌든 우선 집에 얘기해 봐야 하고.”

한주는 덧붙였다.

“그래도 A동 기숙사에서 살게 될 거야. 자취하거나 서울에서 학교 다닐 여건은 안 되니까.”

무조건 ‘안 돼!’라거나 ‘좋아!’라고 할 수는 없으니 다른 변수를 위해 여지를 남겨 두었다.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날려 강희의 얼굴을 가렸다.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잖아.”

강희는 단호히 부정했다.

“네가 선택해야 해. 나와 지낼 거라고, 네가 원한다고 말하면 담임도 반대하지 못할 거야.”

어느새 강희는 한주 앞에 다가와 있었다.

“날 택해.”

그의 손이 한주의 턱을 잡았다. 커다란 손에 힘이 실리며 한주의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턱을 만지며 목을 감쌌다.

한주는 어깨를 움츠렸다. 간지러웠다.

그의 손끝이 귀밑 오목한 곳에 닿자 부드럽게 문질러 왔다. 귀밑은 알파와 오메가들에게는 페로몬이 분비되는 부위 중 하나였다.

그가 고요한 눈빛으로 한주와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날 붙잡아.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해.”

“뭐?”

그의 얼굴이 한주의 얼굴로 점점 가까워졌다.

귀밑의 오목한 곳을 누르던 손에서 힘이 빠지며 그의 손길이 부드러워졌다. 삐뚜름하게 강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시선이 한주의 얼굴을 훑었다. 이마, 눈, 코,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한주는 강희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말투는 협박에 가깝고 강압적인 분위기로 제압했지만 그의 눈에 스며든 진실함까지 포장하지는 못했다.

그의 몸이 한주에게 숙어졌다.

“어?”

상대에게서 투기를 느꼈다면 한주도 피했겠지만 강희에게 그런 기운은 없어 방심했다. 뒤로 물러나다 한주의 엉덩이가 차가운 금속 실험대에 닿았다. 몸이 더 뒤로 눕혀지지 않게 실험대를 손으로 짚었다.

“내가 싫어?”

다른 손이 한주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손끝은 차가웠지만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알파라서?”

“그건 상관없어, 알파든 오메가든. 단지…….”

“단지?”

한주의 말이 끝나자 강희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진해졌다. 호흡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숨을 죽이게 하는 긴장감.

좀 당황했다. 누군가와 겨루는 분위기에 익숙한 한주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긴장감이었다. 그래도 할 말은 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네 의도를 모르겠어.”

냉정한 말인데 강희는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강아지를 보듯이 눈빛이 부드러웠다.

“네 도움이 필요해.”

의외의 말이다. 강희에게 도움이라니,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물론 이전 생을 통해 그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대략 알았기에 입학하기 전에 도와주기는 했지만 이후에는 그런 위험이 더는 없었다.

졸업식 때를 제외하고는.

졸업식의 화재는 우강희와는 상관없는 사건이었다.

“아버지와 약속한 것이 있어.”

재강원 고등학교에 보내며 아버지는 우강희와 약속을 했다.

‘재강원 고등학교 기숙사에 살며 사람들과 문제없이 지내며 졸업한다면, 더는 너에게 간섭하지 않으마.’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그에게 아버지는 조건을 걸었다.

졸업.

“그게 왜?”

“나는 우천희를 거스를 수 없어. 그는 날 탐탁지 않게 여겨서 때때로 건드리지. 신경은 쓰지 않지만 가끔, 가끔 참지 못해서 페로몬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발생하는데, 그럴 때 네 도움이 필요해. 페로몬에 영향을 받지 않는, 페로몬 무감증의 네가.”

“날 조사했어?”

우강희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주의 페로몬 무감증은 큰 비밀은 아니었다. 학생 특이 사항에 알코올 분해 효소 결핍증보다 아래에 적혀 있었다. 건강에 영향을 주는 병이 아니니 알코올 분해 효소 결핍증보다는 덜 위중한 병으로 취급했다.

그러니 알아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전에는 페로몬 무감증이란 병명이 절대 알파가 될 수 없다는 반증 같아서 숨기며 말하길 싫어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덕분에 고시급 알바도 하게 되었고.

“우천희면…… 네 형이잖아. 거스르다니. 마치 형이 널 어떻게 한다는 듯이…….”

한주의 추측을 들으면서도 우강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문득 도서실에서 우강희의 뺨을 때리던 우천희가 떠올랐다. 경멸하며 멸시를 서슴지 않던 날카로운 말도.

육체적인 건강 상태보다 정신적인 문제로 페로몬에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가 오메가이고 페로몬 관련의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기본적인 사항은 알고 있었다.

우강희는 우천희 앞에서 의연했다.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한주에게 도움을 청했다.

불안한 것일까.

‘널 만났다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 텐데…….’

같은 알파들조차 경외하는 우강희도 삶을 후회했다. 이전의 한주가 그리 부러워했던 그도.

가슴이 꽉 막힌 듯이 조여 왔다.

“내가 필요하다면…… 옆에 있을게. 하지만”

은원의 부채는 이미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그를 구해 준 것으로 끝이었지만 이전의 삶에서 우강희가 해 준 말이 한주에게 힘이 되어 주었듯이 그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너는 괜찮을 거야.”

겉으로 보기에 우강희는 졸업식 때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속이야 어떻든 간에 그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최소한 남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정도의 여유는 남아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우강희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만 그래도 엄마 동의도 얻어야 하니까 집에 물어보고.”

“하, 박한주, 너…….”

마치 페로몬을 맡듯 우강희의 얼굴이 한주의 목덜미에 가까워졌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지 못했다.

“왜 담임이 반대하는지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의 뒷말은 흐려졌다.

같이 방을 써도 좋다고 했는데 강희는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한주 얼굴도 그의 어깨에 가까워졌다.

“나한테 와, 박한주.”

조용히 속삭이듯 귓가에 뿌려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주는 낯선 향기를 맡았다. 이제까지 맡아 보지 못했던 향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어?”

갑자기 향기?

역하다던가 기분 나쁜 향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부드럽게 스며드는 것이 과하지 않아 좋았다.

한주는 눈을 감고 흐읍, 냄새를 들이켰다.

그것은 잘 익은 황금빛 밀 사이를 바람이 지나는 건초의 냄새와 닮아 있었다. 몸 옆으로 늘어뜨린 손끝에 바짝 마르기 전의 황금빛 밀 수염이 부드럽게 스쳤다.

그 촉감에 눈을 떴다.

끝도 없는 지평선을 다 채운 넓은 황금빛 밀밭이 바람에 따라 파도를 만들며 부드럽게 움직이는 장관이 펼쳐졌다.

건조하지는 않았다.

디디고 있는 맨발에 닿은 흙은 부드러워 한주가 꼼지락거리면 발가락 사이로 흙이 밀고 올라왔고 깊은 산의 이끼 냄새도 났다.

바람은 멀리 있는 숲의 향기까지 한주에게 실어다 주었다. 물기를 담뿍 먹은 나무와 풀의 냄새. 비 온 직후 나무가 많은 공원에 갔을 때 나는 향.

바람이 세져 한주는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을 구름이 덮어 가고 있었다. 비를 잔뜩 머금었는지 거무튀튀한 먹구름이 점점 하늘을 어둡게 가렸다. 먹구름은 부피를 키우며 거대해졌다. 비를 머금은 그것은 한여름의 비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먹구름이 한주를 삼키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주는 향기가 준 환상에서 빠져나와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 자신이 무엇을 느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였지?’

강희가 고개를 들자 코앞에 그 얼굴이 보였다. 짙은 속눈썹 아래 눈동자에는 온통 한주만이 비쳤다. 갈색 눈동자가 황금을 뿌린 듯이 반짝였다.

“박한주.”

그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주는 등줄기가 근지러워졌다. 피부가 아닌 그 안의, 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와 두피에 닿았다. 솜털이 삐쭉 서며 소름이 돋았다.

그가 속삭였다.

“아껴 줄 테니 내 방으로 와.”

* * *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에 박한주는 허둥지둥 확인했다.

‘어, 알바 가야 할 시간이야. 월요일에 보자.’

그러고 급히 과학실을 빠져나갔다.

우강희는 한 시간 전의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무열이 문제다. B동 기숙사 폐쇄 건을 읽었을 때 재고할 틈도 없이 박한주와 방을 같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이무열이 반대했다. 조급해졌다.

그래서 자신답지 않게 박한주에게 매달리듯이, 안 해도 될 말까지 했다.

우천희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말해 줄 필요도 없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감정적이 되었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처럼 말을 제어할 수 없었다.

‘너는 괜찮을 거야.’

우강희는 옅은 한숨을 뱉었다.

감정이 가슴에 꽉 차올랐다.

“박한주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식으로 살았는지, 무엇을 참는지 모르면서 한주는 그렇게 내뱉었다.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강희라는 알파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모르면서.

그런데 그 말을 듣자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망망대해에서 발견한 무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처럼, 발에 닿은 땅에 감사하는 표류자처럼 심장이 뜨거워졌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피부에 느껴지며 감사함까지 우러나왔다.

“우강희.”

차가운 부름이 우강희를 현실로 끌고 왔다.

A동 기숙사 입구에서 2학년들과 얘기하던 우천희가 그를 불렀다. 신경질적이며 날카롭게 생겼지만 미소가 그 분위기를 상쇄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사근하게 눈웃음 짓더라도 강희를 향할 때면 잔인해졌다.

여타 다른 학생들이 강희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천희는 느끼지 않는 듯이 표정은 건조하다 못해 무딘 날을 지닌 칼과 같았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으며, 무딘 만큼 고통을 깊게 남겼다.

“우강희, 이리로.”

입 안에서 맴도는 호칭을 삼키며 강희는 숨을 뱉었다.

우천희.

형이라 부르면 천희는 더 잔인해졌고 바퀴벌레를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질색했다. 그렇다고 우천희라고 부르면 건방지다고 화냈다.

“너희는 먼저 가.”

강희가 다가가자 천희는 2학년들을 보냈다.

“이번 주말에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우천희의 심기가 좋지 않았다. 피곤했지만 무시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불렀습니다.”

천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시였다. 천희는 강희에게 표정을 보이는 걸 싫어해서 곧 무표정으로 감추었다.

“12시에 내 방으로 와.”

그 말을 남기고 천희는 본관으로 향했다. 한수원은 조용히 강희에게 물었다.

“도와줄까, 도련님?”

“필요 없어.”

주저함 없는 거절에 수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천희를 따라갔다. 자정까지 운이 나쁠 예정인 강희는 방으로 향했다. 우천희를 만나서 짜증이 나지만 한주와 지낼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설레다.

낯선 단어였다.

형질로 따지면 제일 약한 베타인데 그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 주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기댄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지만 한주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장할 수 있다.

* * *

- 뭐? 그럼 이번 주말에 못 와?

“응, 그렇게 되었어. 다음 주부터 A동 기숙사로 합쳐진다니까 물건을 정리해야 하고.”

엄마 박예주는 기숙사가 합쳐진다는 말에 한주의 의향을 먼저 물었다. A동의 알파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다는 한주의 말에 염려했지만 허락했다.

- 아니, 그 학교는 그렇게 시설 좋고 커리큘럼도 좋다면서 학생에게 이사를 시키는 거야?

물론 아니다. 다음 주말에 직원이 물건을 새로운 방으로 옮겨 줄 거라고 들었지만 한주는 이번 주말에 본가에 가지 않을 핑계가 필요했다.

약간의 거짓말은 때로는 삶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윤활제가 되기도 있다.

엄마에게 멍든 몸을 들키면 안 된다. 사부와의 대련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에는 아직 눈썹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 기회에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게.”

- 에이, 주말에 너 올 줄 알았는데. 이제 엄마 품을 떠나네. 내일 할머니가 너 좋아하는 반찬 만들어 온다고 했는데, 정말 못 들러?

“할머니가 오셔?”

- 응, 너 좋아하는 갈비찜 해 온다고 했는데, 정말 못 와? 잠깐이라도 들르지?

한주는 찜으로 익힌 고기보다 불에 구운 고기를 더 좋아했다. 갈비찜은 엄마 박예주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음…… 냉동실에 얼려 줘. 다음에 먹을게.”

- 안 넘어오네. 알았어. 밥 잘 챙겨 먹고.

“응. 끊어.”

한주는 아파트 단지 앞의 마트 옆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의 유리문에는 영어로 ‘SIM STUDIO’라는 글자 시트가 붙어 있었다.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 왔어요, 사부.”

인사를 하자 스튜디오 중앙에 서 있던 검은 도복을 입은 한주의 사부 오지한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쒸발 놈! 지금 영상 찍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 다시 찍어야 하잖아!”

사부는 갑자기 온 한주를 반기기보다 스튜디오 한쪽에 서 있는 삼각대로 달려갔다. 동영상 녹화를 중지시켰다.

지하 스튜디오는 이전에는 발레 학원이었고 그 후 성인 댄스 연습실로 운영했지만 강사와 학원생의 불륜 관계로 배우자가 쳐들어와 머리채를 잡으며 수라장을 만들고 위자료를 청구당한 후에 매물로 나왔다. 빨리 처분하려는 것을 한주의 사부인 오지한이 저렴하게 인수해 운영하게 되었다.

방송 댄스며 춤을 추어야 할 댄스 스튜디오인데 도복을 입은 통통한 남자가 반기니 궁금함에 스튜디오 문을 열었던 학생들은 뒷걸음질 치며 가 버렸다.

수입에 타격을 입은 오지한은 한주의 제안으로 새로운 수익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너튜브에 뛰어들었다.

물론 도전한다고 다 성공하지는 않는다.

“에이, 다섯 번째 초식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한주는 신발을 벗고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제자에게만 대대로 전해 준다는 비전 아니에요? 그렇게 인터넷에 올려도 괜찮아요?”

“보고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 있는 놈이면 날 찾아오겠지. 이런 거라도 올리지 않으면 이놈들이 자꾸 날 액션 특수 효과 장인이라고 부를 거 아냐.”

한주도 사부 오지한이 운영하는 너튜브 채널을 봤기에 입 안쪽 살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사부 오지한이 너튜브를 시작하고 처음 올린 영상은 SNS상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너무 잘 만든 액션 특수 효과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은 열광했다.

경이적으로 뛰어난 무술 실력 때문에 사람들은 오지한의 실력을 믿지 않았다. 물론 외모도 한몫했다.

작은 키의 통통한 남자가 듣도 보도 못한 무술을 한다고 날아다니니 ‘무술 하는 사람이 왜 이리 통통해?’라면서 개그맨으로 치부했다.

첫 영상이 많은 조회 수를 얻으며 구독자가 많아졌지만 저작권이 있는 배경 음악 때문에 금전적 혜택은 전혀 받지 못했다. 뒤늦게 통탄하며 오지한은 앱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초보자의 결과물은 처참해 한주는 한 번 들은 후 다음부터는 무음으로 영상을 보았다.

“어허, 손 봐라, 손. 또 한바탕했네. 어이구, 얼굴에 상처까지 입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한주에게 다가온 오지한은 손목을 잡고 이리저리 보더니 혀를 찼다. 손등의 관절 부분이 까지지는 않았지만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학교에서 사고 친 건 아니겠지? 그럴 땐 어떻게 하라고 했지?”

“몰래 아작 내라고요.”

“그리고.”

“우발적인 사고이고 전 무술을 전혀 배운 적이 없다고 발뺌합니다.”

“좋았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오지한이 어느 틈엔가 한주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앗! 사부! 기습하면 안 되죠!”

“연습도 실전처럼!”

재빨리 몸을 숙여 사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주말 훈련이 시작되었다.

* * *

한주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은 후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궁리했다.

재강원 고등학교에서의 폭행은 꿈에 나올 정도로 한주를 괴롭혔다. 두 번째 삶이라 리셋된 몸은 멀쩡해도 아픔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이전의 삶에서 본 영상을 떠올렸다.

어설프게 시작한 오지한의 너튜브 영상. 한국 정통 무술의 하나인 무영권의 전승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초식을 올렸다. 무술 외에 일상생활이나 살아온 얘기, 스튜디오를 차렸으나 망했던 일 등을 풀어놓았었다.

영상은 조악했지만 오지한의 동작은 날카로워서 제법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오지한을 찾아갔다.

알파에게 맞서고 싶다든가 힘을 가진다는 생각보다 폭행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한주는 오지한의 1호 제자가 되었고 점점 실력이 늘어나면서 졸업식의 화재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재강원 고등학교에 들어갈 결정을 할 수 있었다.

* * *

한바탕 오지한과 대련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바닥에 드러누우며 항복하고 나서야 대련이 끝났다.

온몸이 땀에 젖어 한주는 헐떡였다.

사부 오지한은 마룻바닥에 누운 한주의 몸을 여기저기 건드렸다. 멍든 곳만 귀신같이 찾아 만지니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파요!”

“움직이는 걸 보니 특별히 크게 다친 곳은 없고, 몸을 아껴. 그러다 진짜 다친다. 적당히 조절하면서 참아. 괜히 쌓아 두었다가 터뜨려서 대형 사고 치지 말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저도 무작정 참지 않아요.”

“그래, 적당히 참고, 적당히 풀어. 무식하게 참지만 말고.”

“네네, 아, 그만 좀 만지세요! 아프다니까.”

“엄살은.”

오지한은 일부러 귀여운 제자의 몸 몇 군데를 더 야무지게 만져 주었다.

커다란 손이 오지한의 손목을 움켜잡아 행동을 저지했다. 그는 놀라지도 않고 등 뒤에 선 남자를 보며 웃었다.

“계무원, 왔냐?”

짙은 군청색 슈트를 입은 남자는 안경을 써서 깔끔하며 능력 있는 인상을 주었다.

“만지지 마. 추행으로 신고당해.”

“야, 내 제자거든?”

“제자든 아니든 요즘 애들 무서운 거 몰라?”

얼핏 듣기에는 박한주를 위하는 말이었지만 그저 질투였다. 계무원은 알파이고 오지한의 오랜 친구이며 현재 10년 넘게 그 친구를 짝사랑 중이었다.

오지한을 보던 시선이 한주를 향하자 대번에 차가워졌다. 한주는 마루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무원 아저씨.”

한주가 오지한을 찾아와 가장 크게 얻은 행운이 계무원이라는 존재였다.

“왜 쟤가 여기 있어? 수업 없잖아.”

계무원은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한주가 도장에 오는 게 왜 수업이야? 놀러 온 거야.”

“도복 입고 땀 흘리면서 놀았다고?”

“재미있으면 다 노는 거지.”

“……너 나와 저녁 먹기로 했잖아.”

미간을 찌푸리지만 결코 오지한에게는 차갑게 말을 하지 않는 계무원은 한주를 노려보았다. 데이트를 방해받아 기분 나빠한다. 오지한만 없었다면 빨리 가라고 한주의 등을 떠밀었을 사람이다.

‘난 중요 고객인데 너무 푸대접한단 말이야.’

눈치 없는 오지한은 해맑게 웃었다.

“한주도 데려가면 되지. 쟤 학교 급식만 먹어서 오래간만에 고기로 몸보신 좀 시켜 줘야 해.”

그 말에 계무원이 폭발했다.

“도장에 학원비 내는 학생이 단둘뿐인데 누가 누굴 사 준다고 그래? 여기 월세 내고 공과금 내면 남는 돈도 없어서 매번 나한테 밥 사 달라고 하면서 네가 고기를 사 준다고? 쟤 재강원 고등학교 다녀. 거기 급식 한 끼가 네 하루 세 끼 식사보다 더 비싸.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팩트 폭격에 오지한은 발끈했다. 그러잖아도 최근에 아침은 간장 계란 밥을, 점심에는 참치 캔을 반찬으로 먹고 있었다. 그나마 저녁에 계무원이 사 줘서 제대로 밥다운 밥을 먹는데 서러움이 폭발했다.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운데 가난한 사부의 현실을 제자 앞에서 지적하니 참을 수 없었다.

“계무원! 그게 아무리 진실이라지만 너 한주 앞에서 사부 체면 안 서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한주야, 너 고기 사 줄 돈은 있어. 기다려! 내가 콩팥이라도 팔아서 고기 사 줄게! 샤워하고 나올 테니 너랑 나만 고기 먹으러 가자!”

“콩팥까지 팔 필요는 없어요, 사부.”

금 간 자존심이 아파서 눈물까지 찔끔이며 오지한은 탈의실로 들어갔다. 탈의실 안에서 “야박한 놈!”이라며 밖에 다 들리게 계무원을 욕했다.

언제나 이런 식의 대화로 오지한이 발끈해서 계무원의 뜻과는 반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알면서도 계무원 또한 성질을 참지 못했다.

“좀 살살 달래요. 사부 성격 뻔히 알면서 왜 똑같이 긁어요.”

박한주와 단둘만 남자, 계무원의 미간이 팍 좁아졌다.

“이 애늙은이. 너야말로 눈치껏 빠져. 빨리 나가!”

“지금 나가면 무원 아저씨가 쫓아냈다고 오해해서 냉전 기간이 더 길어질 거예요. 사부 삐지면 오래가잖아요. 뻔히 알면서 똑같이 행동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봐요.”

“네 충고는 필요 없어! 어른스럽게 굴었다가 지금까지 시간만 끌고 왔어.”

계무원은 거칠게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깔끔하게 스타일링한 머리가 흐트러지며 조금은 인간미가 살아났다.

“내가 애를 데리고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넌 고1짜리가 아니야. 예전에 나한테 찾아왔을 때도 애늙은이였지만.”

한주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사부 오지한과 계무원은 오랜 친구이고, 무술 외에는 능력치 전무하고 눈치도 없는 오지한이 그나마 먹고살 수 있는 건 계무원 덕분이었다.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계무원은 오지한의 약한 부분을 한없이 감싸 주었다.

계무원은 한주를 싫어하면서도 오지한을 위해 적극적으로 쫓아내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탈의실에서 들리는 샤워 물소리가 멈추었다. 한주는 도복을 벗고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물끄러미 한주의 몸을 보던 계무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몸이 왜 그따위야? 학교에서 따 당해?”

“잘 다니고 있어요.”

“그 비싼 학비 처바른 곳에 다니니 학교에서 밥 한 끼라도 더 먹어. 너는 그래도 돼. 베타가 왜 알파 고등학교에 다니겠다는지 아직도 이해 못 하겠지만 학교 다닐 때 시설이라도 많이 이용해. 졸업하면 동창회도 참가 못 할 테니까. 알파 고등학교라 베타는 동창회에도 안 끼워 줄 거다.”

“동창회 관심 없어요.”

“참 희한해, 박한주. 알파 고등학교를 일부러 찾아 들어간 거 보고 알파가 되길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단 말이지.”

“말했잖아요. 졸업만 하면 돼요,”

“그러니까 굳이 왜 재강원 고등학교인데?”

“아이덴티티를 위해 넘어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랄까요.”

미래에 대형 화재로 200명 이상이 죽는 걸 막아 보려고 한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미친놈 취급받아 정신 병원으로 떠밀릴 얘기였다.

“……어린놈이 아이덴티티는 무슨.”

시간을 확인하고 한주는 가방을 들었다.

“저, 이만 갈게요. 친구랑 요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어딜 가. 이대로 가면 널 내쫓았다고 생각할 거라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저 자식 일주일은 내 전화도 안 받고 피할 거야.”

숨 쉴 틈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에 한주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거 아니라고 사부님에게 말할게요. 저, 정말 친구랑 약속 있어요. 아, 차라리 이쪽으로 오라고 할게요. 걔도 여기 알고 있으니까. 고용진이라고 전에 본 적 있으실 거예요.”

한주가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계무원은 놀라며 말렸다.

“야! 보내지…….”

“네? 보냈는데?”

요즘 애들의 키패드 속도를 얕본 계무원은 거하게 한숨을 쉬었다.

한주는 친구가 보낸 톡을 읽고 웃으며 알려 주었다.

“5분 뒤에 도착한대요.”

30초 이내로 결정되었다.

“하아, 잡몹 치우려다가 보스를 불러 버렸네.”

계무원은 한주의 친구가 오면 오지한이 어떻게 행동할지 눈에 그려져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한주의 친구 고용진이 도착하고 오지한이 탈의실에서 나왔다.

* * *

오지한은 고용진을 격하게 반겼다.

“어, 용진이 왔네! 우리 용진이!”

“제가 왜 사부의 용진이에요?”

오지한은 고용진을 제자로 두고 싶어 볼 때마다 꼬셨다. 마른 몸을 볼 때마다 무영권을 배우면 살이 찔 거라면서 제자로 들이고 싶어 안달했다.

“용진이 잘 불렀다, 한주야. 같이 고기 먹으러 가자. 사부가 쏠게!”

계무원은 헤실거리며 웃는 금전 감각 없는 오지한을 보았다. 어제 이번 달 월세 내면 남는 돈이 없다면서 우는소리를 하던 오지한이 고기를 쏜단다.

대책 없는 모습이 귀여울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뒤통수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계무원, 빨리 나와.”

한주와 용진을 양쪽에 끼고 지한이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무원은 핸드폰을 꺼냈다.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져 줘야지.

“먼저 가. 전화 좀 하고 갈게.”

한 달 전에 걸었던 전화번호를 찾았다.

“네, 예약 취소하려고요.”

몇 달 전부터 오늘 약속 잡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제자가 뭐라고 또 방해받았다. 계단을 오르는데 위에서 “고기! 고기!” 열창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의 대책 없고 앞뒤 안 가리는 ‘사부 부심’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뭐라 할 수 없어 무원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 * *

오지한이 검색한 갈비 맛집은 좁은 골목에 있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공용 주차장에 주차했다. 주차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먹어 봐야 할 갈빗집이라는 말에 무원은 불평을 누르며 꾸역꾸역 가게로 향했다.

“어, 박한주, 너네 호텔이다.”

한국 호텔 앞을 지나며 용진이 말했다.

“누가 들으면 호텔이 내 명의인 줄 알겠다.”

“고기 먹고 곧장 일하러 오면 되겠다?”

“그래야지.”

커다란 현수막이 한주의 눈에 들어왔다.

강희를 구하기 위해 한국 호텔에서 일했지만 목적을 이루어서 이전만큼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국회 의원 출판 기념회? 누구지? 처음 보는 이름인데.”

지한의 말에 용진은 현수막을 힐끔 보고 한숨을 쉬었다.

“뉴스 좀 보세요. 야당 국회 의원이잖아요.”

“네가 우리 도장을 다니면 나도 뉴스를 볼 텐데.”

언제나 삐쩍 마른 용진을 가르치고 싶어 지한은 호시탐탐 노렸다.

“그럼 사부는 평생 뉴스 볼 일 없겠네요. 골치 아플 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어서 가기나 해. 배고파.”

무원은 그들을 지나쳐 앞서 걸으며 대화를 방해했다.

한주는 현수막을 훑어보고 뒤를 따랐다.

‘설마 차원구가 말하던 출판 기념회가 저건 아니겠지?’

서울이 얼마나 넓은데 설마 여기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를 따라 갈빗집으로 향했다.

* * *

우강희가 참석한다는 국회 의원의 출판 기념회는 한주가 지나가던 한국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 주인공인 국회 의원은 가장 큰 야당에 들어가 활동을 했지만 원래 인지도가 낮은 사람이라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강희는 테이블 위의 물잔을 보았다. 연단에서 누가 연설을 하든 관심 없었다. 무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살집이 있는 60대의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우강희의 아버지 우상진에게 말을 걸면서도 옆자리의 강희를 힐끔댔다.

“우상진 의원님까지 오신 거 보니 저 사람의 자리가 많이 격상된 걸 느낍니다. 아들 하나 있는 거 재벌 사위 되니 이렇게 출판 기념회에 모이는 사람들 급도 달라집니다, 그려.”

열두 살은 어린 우상진의 기분을 맞춰 주는 말에 우상진은 웃으며 응대해 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실지 기대가 되는 분이니 사람들도 주목하는 겁니다.”

“네, 그렇죠.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옆의 자제분이 소문의 그 둘째 아들인가 봅니다, 그려.”

우강희는 자신이 언급되자 천천히 일어나 인사했다. 남자는 흡족한지 어깨를 두드렸다. 일순 불쾌해 강희의 미간이 좁아졌다.

“정말 듬직하겠습니다. 이런 알파 아들이라니, 언제 가족들끼리 같이 식사나 하죠.”

“저야 언제든 좋은데 이 녀석이 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더 바쁜 놈이라. 재강원 고등학교가 기숙사제라 아버지인 저도 주말에만 겨우 얼굴을 보는 정도입니다.”

부드러운 거절에 남자는 허허 웃었다. 거절임을 알지만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낼 정도로 미숙하지는 않았다. 그때 우상진의 보좌관이 다가와 순서를 알렸다.

“의원님, 다음 차례입니다.”

“아, 실례하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며 가 버린 우상진 때문에 우강희와 남자만 남았다.

우상진의 다른 쪽에 앉아 있던 우천희가 일어났다. 앳된 얼굴이 남아 있지만 성인의 태가 났다. 날카로운 인상을 안경으로 상쇄하여 남자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이 곧 있을 전당 대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으실 거라고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신다니 꼭 약속 잡아 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우천희를 알아보았다.

“아, 첫째 아들인…….”

“우천희입니다. 의원님이 발의하신 물가 상승에 따른 세액 기준 변동 개정 법안에 관심이 많은데 직접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상진의 첫째 아들이 살갑게 다가오자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그는 미래의 원동력보다는 현재의 인맥을 우선시했다.

“고맙군. 젊은 친구가 그런 일에도 관심을 가지다니, 장래가 기대돼. 관심 있으면 내 사무실로 연락하게나. 인사 다닐 곳이 많아서 가야겠어.”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우상진 의원은 정말 든든하겠어. 이렇게 아들 둘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정말 부럽군, 그려.”

남자가 자리를 뜰 때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단상의 주인공이 우상진을 맞이했다.

50도 안 된 젊은 국회 의원을 대하는 자세는 멀리서 보아도 극진했다. 누구에게 제일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였다.

우상진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자 주인공이 인사하던 때와는 데시벨이 다른 박수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굴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상진을 이 자리에 불렀다는 자신감에 뿌듯해했다.

우강희는 남자가 두드렸던 어깨를 냅킨으로 툭툭 털었다. 역한 페로몬이 몸에 묻어 불쾌했다.

그때 강희의 앞으로 플라스틱 카드가 놓였다.

“여덟 시에 올라와.”

조금 전 남자를 대할 때와는 다른 온도로 우천희는 우강희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강희의 의사는 필요 없는 통보였다.

호텔의 룸 카드키.

호텔 로고와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강희야, 너도 왔구나.”

부드럽게 부르는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 우강희는 카드를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짙은 자주색의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주변의 남자들이 힐끔 돌아보았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우상진이 앉았던 빈자리에 앉았다.

움직임에 따라 꽃향기가 풍기듯이 손의 움직임이나 발걸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남자’라고 칭하기에는 다른 느낌이었다. 다갈색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흘러내리자 수줍게 웃으며 귀 뒤로 넘겼다.

“천희도 안녕. 며칠 전에 모임에서 봤지.”

“민용이 형을 여기에서 다시 볼 줄은 몰랐네요. 이런 곳에는 잘 안 오잖아요.”

“강희가 온다고 해서 오래간만에 얼굴 보려고 왔어. 이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얼굴도 못 보니까.”

재민용은 우강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강희가 몸을 틀어 그 손을 떨어뜨렸지만 민용은 무시했다. 허락하지 않아 팔짱을 끼지는 못해도 닿는 정도는 허용해 달라는 듯이 팔을 잡았다.

그게 못마땅해 우강희는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강희야, 학교에서 신경 쓰이거나 너한테 실수하는 직원이 있으면 말해. 당장 해고해 줄게. 나 그 정도 힘은 있어.”

“그런 직원 없습니다.”

“다행이다. 그런데 서울 오게 되면 연락 달라니까. 강희는 내 전화도 안 받고…… 그렇게 바빠?”

“네.”

“너무해. 미안한 표정도 없이. 대학교 2학년인 나보다 더 바쁘지? 못됐어.”

탓하듯 말하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다는 감정이 듬뿍 들어 있었다.

민용은 강희에게 몸을 붙였다. 어깨에 턱을 올리고 속삭였다.

“전화 자주 안 하는 사람인 거 아니까 문자에 답장이라도 해 줘. 주말에 학교에서 나오지 않아서 만나지도 못하는데…… 나 외롭게 하지 마.”

풍겨 오는 향기에 우강희는 더는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의자가 덜컹거릴 정도로 떠밀린 재민용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켜보고 있던 천희가 목소리를 낮추어 주의를 주었다.

“우강희, 예의를 갖추어. 사람들이 보고 있어.”

“참석은 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직 8시까지는 시간이 있잖아, 우강희.”

8시. 우천희가 룸으로 부른 시간이다.

“아, 8시에 약속이 있어? 잘됐다. 그럼 그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 강희야.”

달큼하게 풍겨 오는 꽃향기 같은 오메가의 페로몬에 인내심이 닳아 갔다. 적나라한 유혹 페로몬은 숨을 막았다.

주저하며 팔을 잡으려는 손을 쳐 냈다.

“만지지 마.”

“아, 스킨십 싫어하지. 미안해.”

민용은 자신이 잘못했다며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었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에서 강희는 우상진의 옆에 있으려고 바둥거리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우강희, 민용이 형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되잖아. 중요한 사람인데.”

“아냐, 천희야. 내가 잘못했어.”

“……잠시 바람 쐬고 오겠습니다.”

뻔히 보이는 희극을 뒤로하고 우강희는 연회장을 나왔다.

국회 의원의 출판 기념회이기에 페로몬이 가득하리라는 예상은 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숨기지 않고 보란 듯이 뽐내는 페로몬들이 오메가 페로몬에 섞이니 더 역겨웠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페로몬 제어를 잘하는 알파가 인정을 받지만 어른이 되면 무기로 마음껏 활용했다. 자신은 이런 사람이라는 또 다른 명함이 되었다.

탁탁,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말도 없이 따라오는 재민용 때문에 밖으로 나와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족쇄에 연결된 쇠사슬이 끌려오듯이 민용이 따라왔다.

숨이 막혔다. 그저 기분적인 문제임을 알지만 견딜 수 없었다.

“우강희!”

복도 끝에서 차원구가 손을 팔랑이며 다가왔다.

“안녕, 원구야.”

“아, 안녕하세요. 민용이 형.”

그들 사회는 풀이 작다. 어릴 때부터 온갖 모임에 참가하기에 친하지는 않아도 서로의 얼굴 정도는 알았다. 외국에 나가 있더라도 누구네 집 자식이라고 말하면 통할 정도로 좁은 세계이니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였다.

원구는 민용에게 인사하고 강희를 보았다.

“안 보여서 찾았잖아. 여기서 뭐 해?”

“아, 강희가 바람을 좀 쐰다고 해서 같이 나왔어. 원구 너도 재강원 고등학교라고 했지? 학교에서 불편한 일 있으면 얘기해 줘. 처리해 줄게.”

“우리 집에서 처리 못 하면요.”

“그래, 그럼.”

해맑게 웃는 민용에게서 눈을 돌린 원구는 우강희의 안색을 살폈다. 미미하게 찌푸려진 미간만으로 그의 감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구는 지금 온 거야? 뭐 가져오라고 할까? 배고프지 않아?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데 오랜만에 같이 얘기하자.”

강희는 민용을 피하려고만 하니 원구를 끼워 넣었다. 거절하려는데 우상진의 보좌관이 다가왔다.

“우강희 님, 우상진 님께서 찾으십니다.”

“네, 가겠습니다.”

“나도 같이 가. 인사도 드릴 겸.”

“그럴 생각이었으면 아마 민용이 형도 같이 불렀겠죠. 형은 여전히 눈치 없다니까.“

“아, 그래, 그렇지. 생각이 짧았네.”

“차원구, 월요일에 보자.”

우강희는 보좌관을 따라가면서 차원구에게만 인사했다.

“재미없게, 금방 가 버리네.”

“8시에 약속 있어서 그때까지는 강희도 호텔에 있을 거래.”

“그래요?”

“들어가자. 라희는 잘 지내?”

연회장으로 앞서 걷던 민용은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걸음을 멈췄다. 따뜻한 주황빛 조명으로 물든 복도가 서늘하게 변했다.

돌아보니 언제나 웃던 차원구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서 민용을 보고 있었다.

“민용이 형.”

“어, 어?”

처음 보는 분위기에 민용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나 웃고 친근하게 굴어 잊고 있었는데 차원구도 알파였다.

“기분 잡쳤는데 전 이만 갈게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어, 미안.”

경고를 날리고 차원구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 * *

보좌관을 따라가니 우상진이 연회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배웅하며 문 앞까지 따라 나왔지만 우상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로비까지만 같이 걷자.”

아버지의 분 단위 스케줄을 알기에 강희는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대연회장이 있는 3층에서부터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우상진은 계단을 내려갔다.

“아직 별다른 말이 들려오지 않는 거 보니 학교에서는 잘 지내고 있나 보구나.”

의례적으로 오갈 수 있는 말임에도 강희의 다문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우상진은 거래를 상기시키고 있었다.

“무사히 졸업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은 하지 않아. 넌 천희와는 다르니까. 그래도 상담은 빠지지 않고 다니도록 해.”

2층으로 내려서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연인과 가족 단위로 호텔을 찾은 사람들, 업무로 얘기 중인 사람들이 우상진 부자보다는 분위기가 더 살가웠다.

그들 옆을 한 연인이 지나며 우강희를 돌아보았다. 페로몬을 드러내지 않아도 본능이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저기에 너희보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가 지나가고 있다고.

알파든 오메가든 베타든 형질을 떠나 넘보지 못할 유전자에 대한 본능적 갈망이 있었다. 그 본능이 사람들의 시선을 우강희에게 향하게 했다.

우상진은 몰리는 시선을 느끼며 강희에게 말했다.

“네가 남들과 다른 알파임을 짐으로 여긴다는 걸 안다.”

뒤에서 쫓아오는 우강희의 기분이 다운되었음이 느껴졌다. 우강희는 페로몬을 내보내지 않지만 우상진은 아들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등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널 제한하는 구속으로 느끼겠지. 하지만 너도 알 거다. 그건 나약한 자의 변명일 뿐이야.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위안일 뿐이지.”

날 선 비판을 뱉자마자 우상진은 몸의 변화를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참았다.

자신 역시 많은 알파들 사이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자신이, 아들이지만 아직 열일곱에 불과한 애송이의 기색에 몸이 긴장했다.

자식을 향한 혐오는 없었다. 그저 짐승의 순수한 기쁨이 올라왔다.

상대를 걱정하지 않고 맞서 싸워도 된다는 짐승의 본능적 희열이 잠시 우상진의 머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페로몬이 풀렸는지 “음…….” 소리를 내며 우강희가 한 발짝 멀어졌다.

우상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그래도 아직 애송이다. 아직은 우상진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페어’를 만들어. 그러면 ‘알파’라는 짐승이 무엇인지, 너에게 페로몬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큰 능력인지 알게 될 거다. 남들보다 뛰어난 알파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며 네 ‘페어’를 지키는 힘이 있음을 고마워하게 될 거다.”

자신에 찬 우상진의 말을 듣고 있던 우강희가 일침을 날렸다.

“어머니를 정부로 두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상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열일곱 살의 어린 아들을 보는 눈에는 나약한 자식을 향한 사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페어’가 딱 하나일 필요는 없지.”

우강희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아버지의 말에 적대감조차 사라지는 걸 느꼈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굴레가 아니었다면 상종도 하지 않을 인간임을 재확인하자 마음이 한 발짝 더 멀어졌다.

1층 로비에 다다랐다.

미리 내려와 있던 보좌관이 우강희의 뒤에서 따라 걸었다. 우상진은 회전문을 통과하지 않고 직원이 열어 준 문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차로 향했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었다.

우상진은 우강희를 돌아보았다.

“집으로 갈 거면 데려다주지. 그 사람이 널 보면 기뻐할 거다.”

기숙사에서 나와 곧장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 우강희에게 우상진은 집으로 가라고 종용했다.

우강희는 거절했다.

부인을 생각해서 아들에게 집에 들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인의 푸념을 피하려는 방편이었다.

“형님이 불러 호텔로 올라가 봐야 합니다.”

“그렇구나.”

우상진은 우강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듯 꾹 아들을 붙잡았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다정한 부자지간이었다.

목소리가 조용히 강희의 어깨에 떨어졌다.

“네가 천희를 귀여워하는 건 알지만, 적당히 상대해. 그 녀석이 망가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우상진은 아들을 격려하듯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떠났다. 차가 호텔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우강희는 돌아섰다.

오물을 떨어내듯 어깨를 터는 그의 손이 거칠었다.

* * *

우강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카드키를 터치하고 층수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곧 원하는 층에 도착했다. 복도 객실 문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카드키에 적힌 방을 찾아가 망설임 없이 카드를 터치해 들어갔다.

우강희가 들어오자 떠들던 소리가 뚝 멈추었다.

소파에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많아 봤자 대학생 정도였고 그중에는 강희의 같은 반 알파도 한 명 끼어 있었다. 제일 나이 많은 대학생 정도의 남자가 손을 들어 우강희를 불렀다.

“약속 칼같이 지켜 좋은데, 왔으면 이리 와.”

“자기 말이면 동생이 꼼짝 못 한다더니 우천희 말이 사실이었네.”

“소문의 알파도 별거 없네. 우천희가 널 우리에게 ‘대여’해 주었어.”

“돈 받은 만큼 잘 봉사해.”

남자들이 와르르 웃었다. 우강희의 눈치를 보던 동급생도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렸다. 학교에서 말도 붙여 보지 못한 우강희가 밖에서 보자 별거 아닌 듯이 느껴졌다. 만만하게 느껴지자 웃을 여유도 생겼다.

우강희는 서늘한 눈으로 한 명 한 명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 * *

“어우, 배불러. 잘 먹었어요, 무원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

“돼지 새끼들. 가성비 더럽게 낮네.”

17세 고딩 남자애들을 너무 얕봤다고 후회하며 계무원은 영수증을 갈무리했다.

오지한이 계무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한주와 용진 둘이서 8인분을 먹으니 뻔뻔한 지한도 친구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산다니까. 네가 계산하면 어떡해.”

“법인 카드로 긁었어. 접대는 비용으로 처리하니까 괜찮아.”

“야, 법인 카드면 회사 돈이잖아. 그걸로 처리하면 어떡해. 너 공금 유용으로 걸리면 큰일 나.”

“내가 대표야. 그리고 접대 맞으니까 걱정 마.”

“날 사 주는데 왜 접대야?”

한주와 무원의 투자에 관한 부분은 지한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사비로 처리할게. 걱정돼서 잠 못 자면 안 되니까.”

“누가 그런 일로 잠을 못 자냐.”

기특한 말에 코끝이 찡하게 고마워진 무원은 지한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손을 잡으려는데 용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계무원은 한주보다 용진이 더 짜증 났다.

“사부, 너튜브 영상 말인데요. 배경 음악 어떻게 좀 안 돼요? 무료 음원들 많잖아요.”

“왜? 열심히 만들었는데.”

제자로 삼고 싶은 용진이 가장 흥미를 가지는 주제인 너튜브에 대해 말하자 지한의 관심이 순식간에 옮겨 갔다. 게다가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배경 음악 건을 얘기하니 낚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귀가 있으면 사부도 들어 봐요.”

이어폰을 지한의 귀에 끼워 주며 용진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었다. 지한을 귀찮아하지만 오늘 갈비를 사 준 고마움의 표시로 용진은 적당히 어울려 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뻔히 그 중2병 같은 생각이 보이는데 계무원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둘을 떼어 놓지 못했다.

용진은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구독자도 많았다. 경험자의 조언을 들으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덕분에 평가해 달라고 보내는 오지한의 영상도 조금은 참을 만해질 테고.

“얘기가 조금 길어지겠는데요.”

무원은 옆으로 다가온 한주를 보았다.

지한이 용진과 배경 음악 얘기에 빠지자 무원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려고 말을 걸어 준 것이다. 용진도 그렇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미성년자는 한주였다.

계무원은 게임에 빠져 삼촌이 왔는데도 고개도 들지 않는 중2의 조카를 떠올렸다. 원래 초딩, 중딩, 고딩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제멋대로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 중1 때 박한주가 그를 찾아왔었다.

투자하고 싶다고.

단순히 오지한의 중1짜리 제자였다면 코웃음 치며 돌려보냈을 텐데 한주는 계무원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해 여름, 사고가 있었다.

지금의 스튜디오로 이사 오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원래 오지한은 지하의 허름한 도장에서 얇은 패널로 가벽을 만들어 공간을 구분하고 썼었다. 연습 중의 충격으로 가벽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위험하니 제발 도장을 옮기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때도 여전히 가난했던 오지한은 곧 옮길 거라는 대답만 했다. 그리고 비슷한 가격으로 이사할 곳이 없어 어영부영 계속 쓰게 되었다.

그날도 저녁에 혼자 연습하던 오지한을 데리러 갔던 계무원은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배에 부러진 패널이 박힌 오지한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뿐인데 계무원은 죽었다고 생각해 패닉을 일으켰다.

페로몬이 폭발했다.

그 현장에 한주가 왔다. 페로몬이 폭주해 이성을 잃은 계무원을 기절시키고 119에 전화를 해 오지한을 구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신장이 손상되어 평생 투석했을 수도 있었다는 의사의 말에 계무원은 자책했다.

그 일로 계무원은 한주의 체질을 알게 되었다.

베타라도 페로몬에 미미한 영향을 받는데 한주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의사는 페로몬 무감증이라고 말했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논문에서는 페로몬 무감증의 베타를 평범한 베타보다 아래 단계로 구분하기도 했다.

그 후 한주가 한국 호텔에 일하고 싶어 할 때 페로몬 무감증이라는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부서에 계무원이 소개해 주었다.

그런 은인이 투자를 원하니 듣는 척은 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척’이었다.

‘한국 대학 게임 동아리에 스타트업 회사가 있는데 어떻게 투자하면 되나요?’

박한주는 그 동아리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고 실제로 3년이 지난 뒤 수익률은 고공 행진 중이었다. 덕분에 계무원의 회사 홍보에 톡톡히 이용 중이었다.

중1이 투자를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알파라면 그럴 수 있었다.

재벌이거나 집안에 돈이 좀 있거나 사업을 하는 부모의 영향으로 중1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오지한을 찾아와 무영권을 배우던 한주는 베타에 집안도 평범했다. 흔한 일반인이었다.

“나한테 할 말 없냐?”

“뭐요?”

“다른 투자 아이템 없냐고.”

계무원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요즘 일 안되세요?”

“아니. 아주 승승장구 중이야.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으면 더 좋지.”

“너무 욕심부리면 위험해요.”

“네 정보는 확실하잖아.”

한주는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다는 믿지 마세요. 여름쯤에 준비할 게 있기는 한데 아직 손댈 정도는 아닌 거 같으니 시기 봐서 말할게요.”

“너 그러다가 투자 시기 놓쳐서 재작년에 꽤 손해 본 거 생각 안 나? 미리미리 알아보고 정보를 모아야 해.”

“너무 미리 준비해서 작년에 직원이 정보 흘려서 결국 날려 버렸죠.”

“……그래서 그 직원은 지금 감옥에 있잖아.”

“이제는 투자 시기를 가늠할 줄 알아요. 여름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계무원은 쓰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한주를 보았다.

조금 곱상한 정도의 고1의 베타.

그런데 투자 정보는 틀린 적이 없었다. 간혹 시기가 빠르거나 늦을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100퍼센트 적중했다.

무섭게도.

“……도대체 학교 다니면서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아는 거야?”

오지한의 주위에서 알짱대며 방해하는 한주가 얄밉지만 절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고객이었다.

재강원 고등학교 학비가 비싸다며 제대로 뽑아 먹으라고 말했지만 한주 몫의 하루 수익이 1년 학비를 넘는다.

“그래 봤자 졸업식 때까지예요. 그 후는 몰라요.”

“그게 더 이해가 안 돼. 무당이야? 신기 있어? 어떻게 타임 리미트가 있을 수 있어?”

“그런 능력 없어요. 평범해요.”

“참 나, 미래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하하, 한주는 웃어 버렸다.

“이해하지 않아도 돼요.”

“이해하고 싶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2년 뒤면 끝이라는데 이해를 해야 배라도 가르지!”

적절한 비유에 한주는 몸을 들썩였다.

지옥 같던 고등학교 시절을 견디려면 다른 것에 집중해야 했다. 한주는 텍스트에 몰두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무엇이든 읽었고 그중에는 경제 관련도 있었다.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관심 있던 게임 회사 관련이나 몇 날 며칠이고 메인 뉴스에 나올 정도의 큰 사건은 기억했다.

그 기억을 이용하고자 오지한의 친구이고 애널리스트인 계무원을 찾아갔다. 종잣돈을 구해 그의 고객이 되었다. 투자 전문 회사의 대표가 된 계무원은 여전히 한주를 담당했다.

“오늘도 알바 가냐? 고등학교 들어가면 한국 호텔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애초에 한국 호텔에서의 알바는 우강희를 구하기 위해 한 거라 더는 일하지 않아도 된다.

“시급이 세서 그만두기 아까워요.”

“차라리 그 시간에 제대로 투자를 배우지?”

“더는 글자 읽기 싫어요.”

아쉬워 넌지시 던져 봤지만 한주는 거절했다. 언제나 거절당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는 투자 정보도 끝난다고 말했지만 계무원은 믿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마음은 한주도 이해한다. 정보를 분석하는 센스라도 갈고 닦자며 한 번씩 계무원이 제안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고용진, 가자. 나 알바 가야 해. 저희는 이만 갈게요. 두 분이서 오붓하게 돌아가세요.”

“왜? 나는 데려다줘도 되잖아. 가는 길이니까.”

용진의 말에 계무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가는 길이 돌고 돌아서 40분은 걸린다는 말은 하지는 않았다. 오지한 앞에서 쪼잔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너 전에 먹고 싶다는 떡볶이집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포장해서 집에 가.”

“좋아. 맛보기로 1인분만 먹자. 1인분만 나눠 먹고, 맛있으면 싸 가자.”

“그래.”

듣기만 해도 혈당이 올라가는 고등학생의 대화에 계무원은 속이 니글거렸다. 위장이 거북해졌다.

갈비 8인분과 냉면 1인분씩에, 속이 차갑다면서 잔치 국수까지 야무지게 먹었으면서 떡볶이집 들러 또 무엇을 먹을지 얘기하다니 10대에나 가능한 얘기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오지한이 끼어들고 싶어 했다.

“나도 갈까? 그 집이 그렇게 맛있어?”

“넌 참아. 우리는 건강 생각해야 할 나이야. 이대로 병원 갈 생각 아니면 참아. 쟤네는 더 먹어도 되지만 우린 안 돼.”

“야, 우리가 뭐 얼마나 늙었다고.”

계무원은 오지한이 또 다른 소리를 할까 봐 얼른 한주와 용진을 보냈다.

* * *

모퉁이를 돌자 용진은 벽에 붙어 오지한과 계무원을 훔쳐보았다. 어른들은 도란도란 얘기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 가서 맥주 마시자.”

“떡볶이도 먹으면 안 되는 나이인데 맥주를 어떻게 마셔. 건강 생각해야 한다며?”

오지한은 삐져 있었다.

“그럼 와인 마시자. 하루 와인 한 잔은 약이라잖아. 너 와인과 하몽 먹는 거 좋아하잖아. 너와 먹으려고 주문한 하몽이 낮에 도착했어.”

“하몽? 하몽 맛있지.”

“스페인에서 주문한 제품이야.”

“스, 스페인!”

계무원은 거의 넘어온 오지한의 귀에 속삭이며 웃었다. 오직 오지한만 보인다는 듯이 그는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자연스럽게 등을 감쌌다.

“먹고 싶은 다른 안주 있어? 만들어 줄게.”

“……떡볶이 먹어도 돼?”

끝내 오지한을 이기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계무원은 허락했다.

“아, 갑자기 춥네. 감기가 오려나. 주머니에 손 넣을게.”

“5월인데?”

사리사욕도 챙겼다.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애정의 방향이 보였다. 시선, 얼굴의 방향, 몸을 기울인 각도에서 누가 더 좋아하는지 느껴졌다.

“아주 꿀이 떨어지네. 좋아 죽는다. 어휴, 눈꼴시려.”

“무원 아저씨가 사부를 많이 좋아하지.”

“고기 먹는데 두 점 집으면 광선 쏘는 거 봤냐? 눈치 팍팍 주더라.”

“그래서 세 점씩 집어 먹었어?”

“당연히. 그래 봤자 결국 무원 아저씨가 카드 줘서 그걸로 냈잖아.”

“적당히 긁어. 화나면 무서운 사람이야.”

“내 뒤에는 사부가 있어. 못 건드려.”

낄낄거리며 용진은 한국 호텔을 올려다보았다.

“일 끝나고 오늘도 우리 집으로 올 거지? 어제 못 깼던 던전 돌자.”

“알았어. 떡볶이도 사 갈게.”

“거기 24시간 하는 집이야. 너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튀김만두도 같이 사 와.”

용진은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주는 아직 아르바이트가 남아 있었다.

* * *

- 3109호실 출동 바랍니다.

인이어로 호출이 들어왔다.

알파와 오메가의 성페로몬이 강해지는 호텔 룸은 아무런 보호구 없이 들어가면 베타 직원도 힘들어했다.

최근에 신축한 호텔들은 자동 환기 시스템이 잘되어 있지만 대형 호텔일수록 오래되어 미흡했다. 대부분 전용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페로몬은 향기만이 아니라 피부로도 흡수되어 영향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한주가 하는 일은 간단한 룸서비스였다.

손님이 요구한 룸서비스를 서빙했고 대부분 식사나 물건 전달이었지만 때로는 위급한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룸에 들어가기도 했다.

호텔 인사 관리 팀에서는 미성년자라고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계무원이 신원 보증을 서고 페로몬 무감증 진단서와 함께 어떤 부분에서 효과적인 인재인지 어필을 하자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공식 계약 직원이지만 능력 덕분에 안전 관리 팀 관리자급의 시급을 받게 되었다.

- 안전 관리 팀, 박한주, 3109호실, 3109호실로 출동 바랍니다.

안전 관리 팀은 객실 내에서 사고가 났을 때 출동한다. 단순한 건강 사고와 비밀을 요구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반드시 한주가 필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하니 3109호실 문 앞에 안전 관리 팀 직원들이 먼저 대기하고 있었다.

“체크아웃 전이야. 강한 페로몬에 의한 경고음이 울렸어. 프런트에서 전화해 보았지만 받는 사람이 없어.”

팀장은 빠르게 상황을 브리핑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한주는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았다.

방 안은 조용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자들은 멀쩡히 옷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몸을 살피지는 않았다. 고객의 생사는 책임질 수 없는 미성년자가 확인할 문제가 아니다.

우선 창문을 열고 환기 시스템에 관리자 패스워드를 눌러 긴급 환기를 가동했다. 페로몬은 환기만으로는 부족했다. 허리춤에 매달린 스프레이를 꺼내 남자들 몸 위로 뿌렸다.

페로몬 소취제 특유의 시트러스 향이 강하게 퍼졌다.

욕실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인이어로 문밖의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20대로 보이는 남자 6명 의식 없음, 외상 보이지 않음. 출혈 없음. 의복 다 입고 있음.”

간단한 알림만으로도 밖에서는 많은 도움이 된다. 걸음을 옮기던 한주는 낯익은 얼굴에 멈췄다.

같은 반 학생이 있었다.

한주의 목소리가 멈추자 대기하고 있던 팀장이 걱정했다.

- 한주야, 무슨 일 있어? 왜 말이 없어?

“아니요. 문 열겠습니다.”

재강원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이 호텔에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한주가 문을 열자 전용 마스크를 쓴 안전 관리 팀이 방으로 들어가 빠르게 정리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한 명씩 데려갔다.

- 3015호실, 배스타월.

“네. 갑니다.”

곧 호출이 와 한주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바빴다.

한 층 아래라 엘리베이터보다는 비상구가 빨랐다. 비상계단으로 들어가자마자 우선 소취제를 몸에 뿌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페로몬을 지웠다.

“이 정도면 안 갈아입어도 되겠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한주의 팔을 잡아당겼다. 공격으로 생각해 한주는 등 뒤의 사람을 벽으로 밀어붙여 팔뚝으로 상대의 목을 눌렀다.

“몸놀림이 다르네.”

목이 눌려도 힘들지 않은지 우강희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우강희?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아는 얼굴에 한주는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우강희가 멀어지는 한주를 끌어안았다.

그는 한주의 목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이런 일을 했구나.”

“야?”

“잠시만. 내 것이지만 이런 것은 묻히고 다니지 마. 지워 줄게.”

그는 한주의 목덜미에 턱을 기대며 껴안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오스스 등으로 소름이 끼쳤다. 밀어내야 하는데 어쩐지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 3015호실, 배스타월.

인이어에서 재차 호출이 날아왔다. 한주를 안고 있는 강희도 호출을 들었는지 팔을 풀어 주었다.

“내일,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이지. 학교는 차로 돌아가?”

“뭐?”

“뭐 타고 학교까지 가지?”

빠르게 묻는 말에 엉겁결에 대답했다.

“한국역에서 지하철 타고 가는데.”

“그럼 4시에 한국역 1번 출구에서 보자.”

“뭐?”

“어서 가 봐. 부른다.”

인이어가 끼워진 귀를 톡톡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그가 먼저 비상구를 나갔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 박한주?

“가, 가요!”

창백한 얼굴의 강희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한주는 아래층으로 뛰었다.

* * *

일요일, 용진의 집에서 점심까지 얻어먹고 뭉그적거리며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며 버텼지만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무시하고 싶은데 4시 한국역 1번 출구에서 보자는 우강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어제 한주 덕분에 갈비 먹었다며 한주의 입에 핫도그 하나를 물려 준 용진과 함께 지하철로 향했다. 1번 출구는 한주가 들어가는 3번 출구의 대각선에 있었다.

“진짜 그 알파 기숙사로 들어가게? 알파랑 지낸다고?”

“그렇다니까. 어제 다 얘기했잖아.”

“그러니까, 도대체 왜, 꼭 구태여 그 알파들이 득시글거리는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거야? 그냥 자취해. 돈 많잖아.”

“들어오는 돈은 다 묶였기 때문에 깨고 싶지 않아. 학비에 기숙사비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굳이 돈 쓸 필요도 없고. 상대도 자기 방으로 오라고 했고.”

“수상한데.”

A동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말했을 때부터 용진은 못마땅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고 안하무인에 베타는 같은 인종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알파가 왜 너를?”

“그 정도로 심한 인격은 아니야. 제법 괜찮은 놈이야.”

“어휴, 저 고집. 너 그러다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

한주는 지하철 입구에 서자 입에 핫도그를 욱여넣고 쭉 나무 막대기를 빼 고용진에게 쥐여 주었다.

“더는 후회 안 해.”

고용진은 짧게 찬물을 끼얹었다.

“네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다음 주에 보자.”

“누가 너 건드리려고 하거든 나한테 말해. 이 몸을 팔아서라도 너네 사부를 움직여 줄게.”

살신성인의 자세에 한주는 목이 막혀 컥컥 웃었다.

손을 휘저으며 인사하는 폼이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용진은 한주가 지하철을 내려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지하 통로를 통과해 한주는 1번 출구로 향했다.

알파에게 냉정한 용진이 우강희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는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절대 붙여 놓으면 안 될 상극의 느낌이랄까.

1번 출구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많은 사람이 입구에 서 있었다. 비 오는 날 입구 밖으로 나가길 주저하는 것처럼.

“무슨 촬영 하나?”

문득 우강희가 떠올랐다. 알파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단연 돋보였던 그 외모가.

“에이, 설마.”

사람들 사이를 지나 입구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입구가 보도블록보다 높아서 어떤 광경인지 보였다.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입구 근처에 모여 있었다.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이돌? 배우?”

“몰라. 알파인가? 알파라도 와…….”

주변에서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감탄사가 들렸다.

인기 아이돌이 출몰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가던 길도 멈추고 멍하니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차도 가까이 서 있는 우강희의 주변에는 둥그런 보호 존이 만들어져 있었다.

입학 전에 혼돈의 파티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다가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손을 들었는데 갑자기 검은 승합차 네 대가 섰다. 지하철 근처의 택시 정류장과 버스 정류장, 입구 근처에 분산되었지만 동시에 주차해서 한 팀임을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강희가 서 있는 차도로 검은 세단이 섰다. 뒷좌석에서 깔끔한 짙은 회색의 슈트를 입은 30대 중반쯤의 남자가 내리더니 급히 다가왔다.

가까운 검은 승합차에서 슈트를 입은 네 명의 남자가 우강희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나가세요.”

“촬영해서 SNS에 올리시면 초상권으로 고소장 날아갑니다.”

그들은 익숙하게 사람들을 흐트러뜨렸다.

회색 슈트의 남자는 그래도 남은 사람들을 노려보며 우강희의 옆에 섰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이 시간이면 학교에 가셔야 할 시간인데 계속 한곳에 머무르셔서 걱정되어 와 봤습니다.”

차도 가까이에 서 있는 우강희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차도 쪽에 손을 뻗어 금방이라도 몸을 던져 보호할 모습이었다.

처음 유치원 가는 아이가 걱정되는 불안한 아빠 같달까. 정작 아이는 괜찮은데.

“헉! 설마 버스 기다리시는 겁니까? 버스는 타실 줄 아세요? 카드를 찍고 타야 한다는데. 전용 카드가 필요할까요? 신용 카드로도 되나?”

본인도 타 본 적 없는지 전해 들은 말을 알려 주는 말투였다. 우강희는 남자를 보지도, 시선을 들지도 않았다.

“아니요. 약속 시간이 다 되었으니 가세요.”

“약속? 이 길가에서 우강희 님을 기다리게 한다는 겁니까? 어떤 놈인지 알려만 주시면 제가…… 아니,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오실 때까지 차에 들어가서 기다리시죠. 미세먼지와 공기 청정 기능이 탑재되어 쾌적하게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물론 좋아하시는 탄산수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우강희는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한 자 한 자 힘을 주었다.

“가세요.”

인내심이 끝나 가는 심기를 느꼈는지 남자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세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럼 안 보이게 여기서 지켜보겠습니다.”

우강희의 얼굴이 신경질적이게 찌푸려졌다. 고개가 남자를 향하다가 한주와 눈이 마주쳤다.

한주는 턱짓으로 내려오라고 신호를 보내고 다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는 지하철 안인데! 공기가 정말 나쁩니다! 몸에 좋지 않은데!”

절절한 외침이 입구에서 들려왔다. 곧 빠른 발소리가 다가오며 우강희가 한주의 옆에 섰다.

“교통 카드는 있어?”

“신용 카드도 된다고 들었어.”

우강희도 지하철은 처음인 듯했다. 한주는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가며 그에게 알려 주었다.

“지하철 개찰구 들어가기 전에 역무원에게 신고해야 하는 거 알지? 이름과 주소 적어야 해.”

우강희는 한주의 말에 속지 않았다.

개찰구에 서 있는 역무원을 잠시 보기는 했지만 능숙하게 카드를 터치하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한주가 개찰구를 통과하자 강희가 다가왔다. 플랫폼으로 향하는데 어느새 그가 손을 잡고 있었다.

빼려 하자 꼭 잡아 온다.

‘왜 이러지?’

아무렇지 않게 앞만 보는 강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는데 옆머리 끝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눈을 깜빡이지 않으며 주변을 주시했다.

긴장했나?

“그 아저씨, 누구야?”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려 줄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그저 가볍게 얘기하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면 묻지 않을 텐데 유난스럽게 호들갑 떠니 안 물어볼 수 없었다.

“공무원.”

“널 굉장히 아끼더라.”

쳇, 못마땅하게 혀를 차는 소리에 한주는 웃음을 꾹 참았다.

“짜증 나게 유난스럽지.”

우강희를 유치원생처럼 대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누구에게나 살갑게 구는 차원구도 강희에게만은 조금 달랐는데 공무원은 과보호까지 했다.

“이런 상태로 괜찮겠어? 왜 지하철을 타고 가겠다고 한 거야?”

한주는 잡힌 손을 살살 흔들었다. 손을 놓으라는 뜻은 아니었다. 손을 빼 갈 거 같지 않자 강희의 표정이 풀어졌다. 미소는 없지만 굳었던 긴장이 조금 녹았다.

“일반인 체험.”

“……아, 예. 헬기 타고 학교 가냐? 일반인도 자가용은 타.”

“입학식 때는 헬기 타고 갔었어.”

“……그게 네가 탄 헬기였어?”

입학식을 위해 본관으로 향하는데 유난스러운 소리를 내며 옥상에 착륙하던 헬기를 봤었다. 도대체 누가 오는데 헬기까지 타고 오냐며 한주는 엄마와 웃었었다.

“일반인이 많은 장소는 처음이야. 대중교통도 어릴 때 이후 처음 타 보고.”

재강원 고등학교는 알파가 대부분이었고 입학 전에 간 한국 호텔에서의 자선 파티는 알파와 오메가의 비율이 높았다.

페로몬에 민감해 보였던 우강희를 떠올리며 한주는 물었다.

“베타는 페로몬이 없어서 편하지 않아?”

“그래서 더 불안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래?”

지하철 입구 앞에서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도 핸드폰만 보던 우강희가 떠올랐다.

‘그때도 긴장해서 주변을 보지 않았나?’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손잡아 주는 것이 어렵겠는가.

“몸 안 좋으면 말해.”

플랫폼에 내려가 전광판을 확인했다. 두 정거장 앞에 지하철이 와 있었다.

우강희는 스크린도어의 광고를 의미 없이 보고 있었다. 한주는 비상계단에서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을 생각했다.

‘내 것이지만 이런 것은 묻히고 다니지 마.’

알파들이 쓰러진 방을 나온 직후였다. 그 전에는 문 앞에서 간단히 음료를 배달하는 정도의 룸서비스여서 한주에게 페로몬이 묻을 일이 없었다.

“어제 너 만나기 전에 어떤 룸에 사고가 있었어. 긴급 호출이 있어서 갔는데 알파 여섯 명이 쓰러져 있더라. 쇼크에 의한 기절이라 건강에는 큰 문제 없다고 들었어.”

“그래?”

우강희는 남의 일인 듯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 우리 반 학생도 있었어.”

“아아. 호텔에서 하는 아르바이트, 입학 전부터 한 건가?”

그가 화제를 바꾸었다.

“작년 여름부터? 주로 룸서비스로 물건이나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이라 어렵지 않아. 미성년자라서 과하다 싶은 건 매니저님이 다른 직원 시키고.”

“이상한 짓 하는 사람은 없어? 치근덕댄다든가 이상한 요구한다든가.”

“나한테? 여자 손님이 그런 적은 없지.”

“그럼 남자 손님은 있다는 뜻이야?”

우강희가 한주를 보았다. 서로의 팔이 닿았다.

“나도 남자야. 나 같은 꼬마를 무슨”

알파와 오메가라는 형질이 밝혀진 후로 동성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많이 관대해졌다.

이전의 일로 이성진에게 호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부분으로 성진과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상상까지도 가지 못했다.

“취향이 이상한 사람도 많아.”

“취향이 이상해야 나한테 치근덕거린다고?”

“……지하철 왔다.”

그의 말에 웃음이 섞였다.

“은근 나 맥인다?”

은근히 장난도 치는 강희와 지하철을 탔다.

왕십리에서 환승하는 사람들이 빠지면서 지하철은 한 정거장을 갈 때마다 한산해졌다.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려는 사람들이 많아 빨리 앉을 수 있었다.

외모에 따라 사람들의 친절도가 높아지는구나, 한주는 감탄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 * *

“일어나, 도착했어.”

조용한 속삭임에 잠에서 깼다. 우강희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아, 미안.”

어젯밤 알바에서 돌아와 용진과 게임했고 아침에서야 겨우 잠을 잤기에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리자.”

우강희는 한주의 손을 잡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스무 명 남짓의 사람이 플랫폼에서 내려 밖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 개교 초반에는 버스 노선을 배정해 두었지만 한 달 만에 폐쇄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가용으로 학교에 갔고 직원들은 통근 버스로 다니니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하철을 나온 한주는 근처의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저기서 택시 타고 학교로 가면 돼. 지금 가면 딱 맞게 정문을 통과할 거야.”

“주말에는 매번 이렇게 학교에 와?”

“가끔은 엄마가 데려다주기도 하는데, 이번 주말에는 집에 못 갔어. 보이는 곳에 상처가 떡하니 있는데 걱정하시잖아.”

“그럼 어디서 잤어?”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타자 우강희도 한주의 옆자리에 앉았다.

“친구 집. 고용진이라고 게임 방송하는 애가 있는데 아침까지 같이 게임하다가 잤지. 그 녀석이 좀 독설을 심하게 하는데…… 사람들이 욕을 듣겠다고 그 녀석 방송으로 찾아오거든. 이해해? 별사탕 쏴 주면서 욕해 달라고 한다니까?”

“그런 취향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

“그렇기는 한데 이해가 안 돼. 궁금해서 방송 보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속이 시원하대. 성인이 되어 아무도 자신을 혼내지 않는데 꾸짖어 줘서 좋다나? 욕쟁이 할머니 가게를 일부러 찾아가는 심리라나 봐. 욕을 먹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지?”

말은 그리하지만 한주는 웃었다. 용진은 이전의 생에서도 친구였다. 냉정하고 독설로 때릴 때가 있어 많이 싸우기도 했었다.

고3 때 게임 방송을 시작해 잘나간다는 말은 들었다. 그때쯤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용진과도 멀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도록 옆에서 한주가 부추겼더니 편집본만 올린 너튜브 구독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그런데, 우강희.”

“응?”

“언제까지 손잡고 있으려고?”

한주는 아직까지 잡혀 있는 손을 들어 보였다.

우강희는 개찰구를 통과하거나 뒷좌석에 타는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손을 놓았지만 자연스럽게 다시 잡았다.

택시 안은 운전석과 뒷좌석이 아크릴 가림막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운전석까지 페로몬이 닿으면 자동 감지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창이 내려가며 환기가 된다.

그런데 굳이?

“불편하면 말하지.”

마치 한주 때문에 계속 잡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며 그가 손을 뺐다.

기가 막혀 바라보니 우강희는 웃고 있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이마가 가리어도 외모를 반감시키지 못했다. 깊은 눈매 아래의 눈이 고요한 바닷속처럼 무슨 생각 하는지 읽히지 않지만 한주만을 보고 있었다.

무표정하지만 날을 세우며 주위를 경계하던 우강희는 살짝 입꼬리만 올라간 정도지만 작은 변화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강희란 어떤 사람일까.

이전의 삶에서 봤었던 그와는 달랐다. 날이 서 있어 가까이 가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다.

자신 때문에 우강희가 변했을까.

생각하자마자 얼굴에 열이 몰렸다.

‘자의식 과잉이야. 우강희와 얼마나 가까워졌다고 그런 생각을 하냐.’

부끄러운 생각에 자책하는데 그가 물었다.

“A동 기숙사, 들어올 거지?”

“아, 어. 그럴 거야. 자취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

우강희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를 택했다고 담임 이무열에게 말하라고 강요하던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기가 막혀 한주가 옆자리의 우강희를 보는 사이 택시는 2차선의 도로에 들어섰다. 시골 동네답지 않게 고급 승용차가 앞뒤로 오가거나 반대편 차선으로 지나갔다.

열이면 열, 재강원 고등학교를 향하거나 나오는 차들이었다. 5시까지만 정문을 통과하면 되기에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차들 때문에 시골 도로답지 않게 붐볐다.

한주는 정문까지 늘어선 차를 보고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한주가 먼저 내릴 줄 몰랐기에 우강희가 뒤늦게 카드를 꺼냈지만 이미 계산한 후였다.

“여기서 걸어가자.”

정문에서 출입 확인을 해서 일요일에는 종종 막혔다. 다른 때처럼 산책할 겸 기숙사까지 걸어갈 생각으로 내려서 걸었다.

그런데 한주가 지나가자 도로에 늘어선 차들의 뒤 창문이 내려가며 학생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우강희가 왜 베타랑 가?”

“저거 우강희지?”

“어? 우강희?”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정문 근처의 차에 탄 학생까지 고개를 내밀어 돌아보았다.

몰리는 시선에 빨리 오라고 재촉할 생각에 한주는 그를 돌아보았다.

우강희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전화가 오는지 진동음이 한주에게도 들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주황빛 노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지상이 가장 어두워지는 시간.

어스름해진 하늘에 불이 들어오기 전의 지상은 어두웠다.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보던 우강희가 고개를 들어 한주를 보았다. 상온에 부드럽게 녹았던 버터가 찬 기운에 다시 딱딱하게 굳듯이 그는 교실에서 보던 사람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도 한주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호출이 와서 먼저 간다.”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이 한주의 옆을 지나갔다.

“하긴, 우강희가 베타와 돌아올 리 없지.”

학생들은 호기심이 끝났는지 창을 올렸다.

가로등이 켜지고 줄지어 선 차들의 전조등에 불이 들어왔다. 한주가 서 있는 주위가 밝아서 학교는 더 어두워 보였다.

학교로 향하는 우강희가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 * *

우천희의 전화였지만 용건은 듣지 않아도 알았다.

주말, 우천희의 고객들을 녹다운시킨 일이 우천희의 귀에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예상한 대로 우천희는 화가 나 있었다. 학생회실로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책이 강희의 머리 옆으로 날아가 문에 부딪혀 떨어졌다.

“워, 우천희. 가위까지는 안 되지? 사고 나면 어떻게 무마하려고.”

“한수원, 너는 조용히 있어.”

“넵.”

“우강희, 그 사람들을 기절시켰다고?”

우천희의 미간이 좁아져 짙은 주름을 만들었다. 성큼 다가오더니 짝, 우강희의 뺨을 때렸다.

날아오는 손을 보았지만 피하지 않았다. 뺨이 열을 내며 붉게 달아올랐다. 학생회실 의자에 방만하게 앉은 수원은 핸드폰을 보며 개입하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기껏 널 활용할 방법을 찾았더니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감히 날 망신시켜?”

짝, 우강희의 다른 쪽 뺨을 쳤다.

“네가 알파만 아니었어도 아버지는 너네 모자를 받아 주지도 않았어. 피가 천하니 맞는 게 더 좋지? 알파만 아니면 별것도 아닌 놈이!”

다시 손이 날아왔다.

폭력에 비스듬하게 고개를 숙인 우강희는 뺨을 어루만지든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지도 않았다. 모욕에 상처받지 않고 우강희는 밤하늘 같은 고요한 눈으로 우천희를 보았다.

그 눈을 보자 더 화가 치밀었다.

어떤 짓을 하든 우강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호수와 같았다. 자그마한 조약돌로는 수면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듯이 노력을 비웃는 거 같았다.

우천희와는 급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또렷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우강희를 볼수록 우천희는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겁먹고 울며 매달렸다면 이렇게 폭력적으로 발전했을까.

우천희는 이를 갈며 우강희에게 명령했다.

“윗옷 벗고 뒤돌아. 벽을 짚어.”

게임을 하던 수원이 눈을 돌려 그들을 보았다. 우강희는 태연하게 윗옷을 벗었다.

거부하지 않는 피해자에게 천희는 점점 악이 강해졌다.

수원은 작게 한숨을 쉬며 이어폰을 끼고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게임에 집중했다.

“잘못한 일이 있으니 맞아야지, 우강희. 우리 가문에 걸맞은 인간이 되도록 교육해 주지.”

우천희는 바지에서 벨트를 빼내 벽을 짚고 맨등을 보이는 우강희에게 다가갔다. 버클 쪽을 오른손에 한 바퀴 감아쥐었다.

다가오는 기척에 우강희는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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