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른의 헤어짐
이무열은 고급 주택가에서 내렸다. 손님들의 차는 발레파킹으로 먼 곳에 주차하기 때문에 주택 주변은 조용했다.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한번 와 본 곳이었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어서 올려다보기만 하자 주변에 서 있던 경호원이 수상하게 여기며 다가왔다.
“사유지입니다. 이곳에 머무르시면 안 됩니다.”
“호출이 있어서 왔습니다.”
경호원은 이무열의 신발부터 얼굴까지 스윽 훑어보았다.
깔끔하게 입었지만 대중적인 브랜드의 신발, 낡은 청바지, 실용성을 극대화한 검은 티셔츠를 본 경호원은 매뉴얼대로 확인했다.
차림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도 섣부르게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알파들의 취향이 천차만별이라 곤란한 일을 겪을 때가 많았다.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호출하신 분이 보낸 문자를 보여 주시죠.”
신분증을 주고 무열은 재강원이 보낸 문자를 보여 주었다. 경호원은 만일을 위해 신분증을 사진 찍고 문자의 입장 코드를 확인했다.
대문 앞에 선 다른 경호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들여보내라고 신호했다.
“들어가시죠.”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쪽문을 경호원이 열어 주었다. 중요하지 않은 손님이라서가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는 세컨드 문이었다. 차고를 통해 지하의 파티 룸으로 향했다.
차고를 지나면 작은 창고가 나오는데 한쪽 벽에 선반만 있었다. 사방이 시멘트 벽만 있는 빈 공간에 한쪽의 선반만 채워져 있는 이질감.
선반의 한쪽을 잡아당기자 문이 열리는 것처럼 선반이 당겨졌다. 그리고 소음이 쏟아졌다. 빠른 비트의 음악과 함께 진한 페로몬이 훅 코 속으로 들어오며 눈앞에서 자극이 강한 생생한 포르노가 펼쳐졌다.
“죽여! 죽여 버려! 아아! 더, 더! 찢어지게! 아아아!”
남성 오메가의 뒷덜미를 벽에 누르고 알파는 허리를 거세게 움직이고 있었다. 재강원과 같은 모임의 남자로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벽에 눌렸어도 오메가는 침을 흘리며 신음을 뱉었다. 제 가슴의 유실을 한 손으로 문지르며 잡아당기기도 했다.
“이 썅년! 죽여 달라고 하기 전에 제대로 조여 봐! 하나 더 넣어 줄까? 어? 이걸로는 부족하지?”
“좋아, 넣어!”
페로몬에 젖고 약에 절여져 눈은 쾌감에 풀려 있었다.
무열은 그들의 옆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빛이 번쩍이는 통로로 들어갈수록 신음과 환호성, 음악 소리가 커졌다. 그들의 파티는 질척이고 육욕적이며 본능만을 따르는 원색적인 세상이었다.
서빙을 하는 이들은 알몸이었다. 목에 검은 카라만을 두르고 마치 셔츠처럼 단추 라인이 복부를 타고 내려와 그 끝은 고간만 아슬하게 가린 T 팬티에 연결되어 있었다.
손목에는 검은 소맷단만 걸려 있었다. 깔끔한 검은 양말에 검은색 더비 슈즈를 신고 무릎 아래로 가죽의 가터벨트를 차서 양말이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 주었다. 실용성보다는 비주얼을 위한 착용이었다.
서버나 파티의 알파들과 몸을 섞으며 신음을 하는 이들은 다 남성 오메가였다.
‘파티 코드가 남성 오메가인가.’
성페로몬 때문에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무열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8년 전에 왔었던 곳이지만 구조며 인테리어가 그때와는 달랐다. 돈이 남아도는 이들이니 1년에 몇 번을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직 이 건물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다.
무열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안쪽이지만 전체가 다 보이는 자리에 재강원이 앉아 있었다. 만나자고 한 사람은 무열인데 그가 문자로 장소를 지정했다.
그들의 관계는 원래 그랬다.
오직 일방적으로 재강원이 원해야만 이루어지는 관계.
한숨이 나왔다.
‘여기였으면 안 왔을 텐데. 오래전 일이니 이 집 주소를 기억하는 것도 이상하지. 그때는 제정신도 아니었고.’
재강원에게 다가갔다.
“어, 저거 재강원 그거 아냐?”
“누구?”
“왜, 몇 년 전에 제법 꼴리게 박혔던.”
“아! 이무열! 허, 재강원이 왜 베타를 불렀지? 오늘은 남성 오메가잖아. 룰 위반 아니야?”
무열을 알아보며 알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먹이를 물어뜯던 사자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알아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무열은 오직 재강원을 향했다.
그는 짜증 나 있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눈앞의 오메가를 보고 있었지만 눈가에 짜증이 가득했다.
박한주가 터뜨린 일로 이사회가 소집되었고 재강원은 이사장으로서 교장을 질타했다. 폭력의 심각성 때문이 아니라 왜 일을 조용히 처리하지 못했느냐는 질타였다.
“하앙, 하앙, 아응!”
테이블에 올라가 엎드린 남성 오메가가 뒤에 손가락을 넣다 뺐다 하면서 자위하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는 자기 성기를 만진다고 생각했는데 컵을 잡고 있었다. 컵 바닥에 하얀 액이 손톱 높이만큼 고여 있었다.
오메가는 사정액을 모으고 있었다.
재강원이 페로몬을 조절하며 남성 오메가를 흥분시키며 조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다른 이들의 모습도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성기로 뒤를 쑤시든 장난감을 사용하든 간에 알파들은 남성 오메가의 사정액을 컵에 모으고 있었다.
게임이었다. 누가 더 오메가를 흥분시켜 많이 모으는지.
임신해서인지 타인의 성페로몬은 역하기만 했다. 그러나 재강원에게 가까이 갈수록, 몸에 익숙한 그의 페로몬이 가까워질수록 무열은 몸이 나른해졌다. 절 향한 페로몬이 아닌데도 몸은 반응했다. 특히 임신한 아이 아버지의 페로몬이라 안정감을 느꼈다.
제 것이 아님에도.
무열은 볼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피 맛에 이성이 돌아왔다.
“앙, 흐엉, 어응, 제발 넣어 주세요, 주인님. 주인님, 제발.”
흥분해 애원하는 남성 오메가가 올라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무열은 재강원의 맞은편에 섰다.
이 집의 소유주와 파티 주최자는 다른 사람이지만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은 재강원이었다. 무열을 보자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학교에 사표를 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잘 생각했습니다. 생활비는 충분히 줄 테니 일하지 말고 쉬세요.”
페로몬이 짙어졌다. 남성 오메가를 감싸던 페로몬은 이무열을 향해 넘실거렸다.
“그 얘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야.”
사방에서 들리던 신음이 잦아들었다. 오메가들만 목소리를 내고 알파들은 무열을 주시했다. 그들의 시선이 등줄기를 타고 허리를 지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그 사이를 벌렸다.
재강원도 그들의 시선을 알 텐데 무열을 지켜 주지 않았다. 다른 알파의 시선을 신경 썼다면 애초에 이런 자리에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너와 나, 그만 끝내자.”
그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네 연락처 차단할 거야. 불러도 이제 가지 않아. 그 말을 하려고 왔어.”
“직장도 그만두었으면서 은행에 있는 그깟 1억으로 어떻게 살려고요? 겨우 몸 하나 누일 방도 못 구할 겁니다. 한 달도 버티지 못하겠죠.”
“상관없어. 계속 이렇게 네 개로 지내는 것보다 마음은 편하겠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재강원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느리게 무열의 얼굴을 살폈다.
“무엇입니까? 이제까지 잘 지내 왔으면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다니, 당신에게 내가 모르는 변화가 있다는 건데.”
“오래전부터 생각한 일이야. 너와 처음으로 잤던 그날 이후, 나는 계속 이 관계를 그만두길 원했어.”
저보다 여섯 살 어린, 주인집의 도련님이 성인이 되자마자 침실로 끌어당겼다.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날 좋아하는구나, 달콤한 착각에 빠져 행복했었다.
단 하룻밤 만에 꿈에서 깼다. 길고 긴 지옥이었다. 그저 나락으로만 계속 떨어졌다면 빨리 체념했을 텐데 마치 저한테 마음이 있는 척 흘리며 다정함을 보여 주니 ‘언젠가는’이라는 끝없는 희망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수렁에 빠지는 것도 모르고 그가 언제 동아줄을 내려 줄지 가만히 기다렸다. 아래를 보면 진창이고 절 더럽히며 발목을 잡는 수렁인데 위를 보면 그가 있었다.
곧 손을 내밀어 잡아 줄 거라고 믿었지만 희망은 고문이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그저 거미줄에 걸려 야금야금 골수를 뽑아 먹히고 있었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관계를 끝내겠다는 선언에 재강원은 허락했다. 그러나 진정한 허락은 아니었다.
재강원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몸집을 부풀리며 고개를 드는 짐승처럼 그의 존재감은 더 강렬해졌다. 그가 페로몬을 풀어 공간을 지배했다.
“아, 재강원! 제길!”
사방에서 알파의 신음이 들렸다. 짜증을 내며 욕하지만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잠시 주위에 신경을 돌렸을 뿐인데 어느새 재강원이 무열의 앞에 서 있었다.
지배당한다.
그의 페로몬은 흉포하게 무열의 몸을 공격했다. 문의 빗장을 풀고 흘러넘치는 공기처럼 무형의 그것은 무열에게 쏘아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폐까지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 혈관을 타고 들어와 무열을 함락했다.
페로몬에 절여진다.
무열이 베타라고 생각했을 때도 그는 잠자리에서 페로몬을 감추지 않았다. 아무리 페로몬을 읽지는 못한다 해도 베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자신의 페로몬에 무열이 흥분하며 그의 것을 무는 걸 좋아해 자제하지 않았다.
무열의 몸이 휘청였다.
입에 군침이 고였다. 눈가로 열이 몰리며 자꾸 시선이 내려가려 한다. 저도 모르게 굵고 단단한 그의 것을 떠올렸다.
“다른 남자라도 생겼습니까?”
허리가 잡혀 단단한 고간이 서로 닿았다.
“불쌍한 이무열, 그렇게 발버둥 쳐 봤자 당신은 누구에게도 여길 세우지 못하잖아요. 제가 하나하나 천천히 공들여 길들였으니 남의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의 손이 허리를 스치며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깊숙이 숨어 있는 주름을 문질렀다. 강해진 페로몬 속에서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를 꽉 물며 무열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억지로 재강원의 페로몬을 거부해서 무열의 눈에 핏발이 섰다. 아이 아버지의 페로몬을 거부해서인지 배가 욱신거렸다.
“내가 싫어. 이제, 다시는 너와…….”
말은 그의 입에 삼켜졌다.
두꺼운 혀가 입 안을 훑으며 무열이 좋아하는 부분을 문질렀다. 꿀떡,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그의 혀를 빨았다. 익숙한 남자의 맛에 어깨가 떨렸다. 혀가 빨리며 안이 점령당했다.
그에게 삼켜진다.
마치 먹이를 감싸며 머리에서부터 자근자근 삼키는 뱀처럼 그는 무열을 지배해 갔다. 엉덩이 골로 들어간 손이 움직였다.
그가 원하는 곳. 그 안에서 그의 것이 얼마나 힘있게 움직일지 알기에 머리가 뜨거워졌다.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듯 그의 작은 손길에도 머릿속에 전류가 흘렀다.
그가 구멍 위를 문지르며 혀를 쭈욱 빨았다.
욕구에 충실한 재강원은 원한다면 잠자리 상대의 것을 핥고 빨았으며 수치스러워하는 모습도 즐겼다. 즐길 수 있다면 거침없이 행동했다.
무열의 것을 입에 넣고 빨듯이 혀뿌리부터 빨며 고간을 치댔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다시 재강원에게 휩쓸려 그를 떠나지 못한다면 아이를 지킬 수 없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
무열은 재강원을 밀치고 뺨을 쳤다. 짝, 찰진 소리가 퍼지며 음악이 뚝 멈췄다. 음 소거가 된 듯 신음도 끊겼다.
“그만해, 재강원. 질척거리지 마.”
이무열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만 끝내자.’
공간을 지배하던 그의 페로몬이 움직임을 멈췄다.
재강원의 한쪽 뺨이 붉어졌다. 그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눈은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무열을 보며 멈췄다.
오랜 지인들이 보는 자리에서 뺨을 맞았는데 재강원은 무표정했다. 아니, 재미있어했다.
“허락 없이 내 몸에 손대지 마.”
무열은 그의 표정을 읽었다.
“내가 오메가라고 했을 때 화났겠지.”
그는 이기적이어서 오메가이면서 베타로 살아야 하는 선택을 한 무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감정이 우선이었다.
“오메가든 아니든 너에게는 상관없었을 거야. 너의 다른 애인 중에는 오메가도 있고 베타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화가 났겠지. 네가 몰랐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을 거야. ……나한테 속았다는 것에 화가 나겠지. 오메가인 내가 베타로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의 페로몬에 미세하게 당황이란 감정이 섞였다.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매일 독한 약을 먹었어.”
처음에는 그의 곁에 있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포자기로 체념했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으니까.
웃음이 났다.
진저리가 쳐진다.
그의 페로몬에 금방 반응하는 자신의 몸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풀어지는 기분도. 일방적인 짝사랑에 상처 입었으면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자신도.
“네 집안, 네 가족들, 너도, 다 지긋지긋해. 이제까지 즐겼으면 질릴 때도 되었잖아. 그러니 그만하자.”
조용히 있던 재강원은 예상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무열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의 생각은 얌전한 개처럼 굴던 왜 이무열이 이런 행동을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누구입니까? 당신이 남자를 만난다는 보고는 듣지 못했는데, 오메가임을 밝히고 이렇게 대담하게 나서는 이유, 진짜 그 이유가 뭐지 궁금해지는데요.”
그는 이무열의 부정을 의심했다.
아직 병원 기록이 없으니 조사해도 임신했다는 흔적은 찾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들킬 것이다. 그 전에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너에게 휘둘리는 삶이 지긋지긋해서, 지쳐서 죽고 싶었는데.”
짝사랑에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을 좀먹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죽어야 이 굴레가 끝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귀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 괴롭힌 사람은 너인데 왜 내가 죽어야 하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
“괴롭혔다라.”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 톤인데 조금은 괴로워하는 듯이 들렸다. 착각이겠지만.
“너만 버리면 다 해결되는 문제인데, 너와 끝내면 되는데 너무 멍청하게 굴었지. 그래서 이제 정신을 차리려고. 나도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그 말은 그동안 불행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그러니 줄 때 받았어야죠. 선물도 집도 다 거부하고 궁핍하게 사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웃음만 나왔다. 여전히 그는 무열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네 돈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을 만나면 되겠네. 그런데 나는 싫어.”
가슴이 답답해 한숨만 나왔다.
“불행했어. 불행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놓아 달라고, 끝내자고, 지옥 같으니까 날 놔줘서 좀 살려 달라고 계속 말했는데 듣지도 않았지.”
자동으로 세팅한 조명이 바뀌며 재강원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언제나 무열의 말을 무시하던 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은 잠시였다. 아쉬울 정도로 결론은 빨리 나왔다.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 드리죠.”
“당신 집 식구들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해.”
“약속하죠. 제 허락 없이는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이대로 끝나지 않겠지만 붙잡지도 않고 놓아주자 무열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믿어 보지.”
하지만 미련을 남길 수 없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유일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재강원을 떠나야 한다.
무열은 몸을 돌렸다가 흠칫 놀랐다. 알파들이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알파의 성페로몬이 짙게 주위를 채우고 있었다.
“오메가라고? 페로몬도 맡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저게 오메가야?”
“몇 년 전에 재강원과 섹스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잖아.”
“재강원,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우리가 벗겨 봐도 되지?”
바지만을 걸친 알파가 무열을 들여다보며 목덜미의 냄새를 맡았다. 턱을 쓸며 만질 듯 말 듯 어깨를 타고 내려와 등을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이 옷에 가려진 피부를 야릇하게 더듬었다.
짙은 알파의 페로몬이 무열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구역질 났다.
“재강원이 몇 년씩 끼고 교육한 오메가이니 제법 맛이 괜찮겠지. 한번 빨아 볼래? 비싸게 쳐줄게.”
가만히 있던 무열은 뒤로 한발 물러나 빠르게 손을 휘둘러 알파의 뺨을 때렸다.
“이년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다시 짝, 뺨을 때렸다.
“너!”
한 대 더 때렸다. 이번에는 고개를 들었지만 무열에게 소리치지 못했다. 다시 뺨을 맞을까 알파는 어깨를 움츠렸다.
“개새끼가 발정 났으면 집에 돌아가 네 부인이나 잡고 박아. 밖으로 돌아다니며 씨 뿌리다가 너 같은 자식 만들지 말고. 비켜.”
“어…….”
주춤거리며 알파가 뒤로 물러나자 무열은 그곳을 빠져나갔다. 주변에서 휘파람을 불며 주의를 끌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탕, 거세게 문이 닫히자 얼얼한 뺨을 누르며 알파가 웃음을 터뜨렸다.
“와, 씨. 이무열, 매력적인데? 화끈해!”
재강원은 무열이 서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연타를 날리네?”
감탄하며 좋아하는 목소리에 주위에서 웃었다.
“저거 또 꽂혔네.”
“뺨을 맞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맞았냐? 재강원이 먹던 거야.”
“왜? 괜찮지 않아? 몇 년 전에 재강원과 저 베타, 아니 오메가라고 했지? 둘이 뒹굴 때부터 꽤 꼴렸어. 재강원 거라서 손대지 못했지.”
“하긴, 박아 보고 싶은 엉덩이지.”
여기저기서 동조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재강원이 차였지만 그가 버렸다고 여겼다. 뺨을 맞은 알파가 신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안 돼. 내가 먼저야. 뺨까지 맞았으니 우선권은 나한테 있어.”
무열에게 호감 있다고 말하면서 지나가던 서버를 끌어당겼다. 오메가는 흘겨보더니 알파의 다리 사이에 다리 하나를 끼워 넣고 몸을 밀착했다. 입술이 겹쳐지는 찰나 알파는 제 파트너를 잃었다.
재강원이 오메가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키스했다. 잡아먹듯이 혀를 빨며 질척이는 소리가 나는데 그의 눈은 알파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껌을 뱉어 버리듯이 오메가를 밀쳤다.
바닥에 쓰러진 오메가는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울컥, 키스의 여운에 사정했다.
“좀 더, 잘할 테니까 박아 주세요.”
로열 알파, 파티에서 만나기도 힘든 스페셜이다. 하룻밤 잠자리에 노팅을 당한다면 인생이 바뀔 수 있어서 서버로 일하겠다고 돈을 찔러 주며 얻은 자리였다.
애원했지만 로열 알파 재강원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알파의 복부를 찼다. 알파가 한 방에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 목을 구두로 지그시 밟아 눌렀다.
“재, 재강원! 뭐, 컥! 뭐 하는 거야?”
숨통이 막혀 헐떡대며 재강원의 다리를 밀어냈지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주위에서는 말리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재강원의 페로몬이 사나워 접근할 수 없었다. 잘 벼린 칼처럼 가까이 오기면 하면 베어 버릴 날카로움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형형한 그의 눈이 알파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눈치가 없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 뚫린 입이라고 나불대기만 하면 입을 다물 수 없게 턱을 뽑아 주고.”
“재, 재강원, 그만! 미안해!”
“맛이 괜찮아? 빨아?”
“재강원…….”
“비싸게 쳐주겠다니, 얼마나 부를 건데? 네가 운영하는 사업체 망해서 빈털터리로 만든 다음에 다시 지껄여 봐.”
“재강원, 그만…….”
헐떡대며 숨이 넘어가려 한다. 숨통을 누르는 구두도 괴롭지만 페로몬 때문에 더 힘들었다. 압사하듯 온몸을 눌러 왔다. 곧 눈동자가 넘어가며 흰자만 보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재강원의 눈은 차가웠다.
한 사람쯤 죽어도 상관없다.
“재강원, 그만해.”
훅, 끼쳐 온 페로몬이 칼로 잘라 내듯 공기를 잘랐다. 그러나 잠시였다. 다시 재강원의 것이 공간을 채웠다. 비록 막을 수는 없었지만 잠깐의 다른 페로몬이 그의 이성을 돌아오게 했다.
“아아, 이런 약이 과했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재강원은 약을 먹지 않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목에서 발을 뗐다. 페로몬을 보내 방해한 알파를 보며 쓰러진 알파의 몸을 발로 찼다.
“커헉! 쿨럭! 쿨럭!”
“고작 오메가가 관심받고 싶어 떠드는 소리에 이렇게 흥분하며 진심으로 달려들 줄 알았나. 그러게 굶지 말고 풀어 줬어야지.”
“아, 알지. 장난이야! 장난이었다고!”
“그래, 넌 실수를 자주 하지.”
재강원은 원래 앉았던 소파에 다가가 무열과 키스했던 자리에 섰다. 테이블에 누워 헐떡이는 오메가는 그를 보며 탄성을 지르고 다시 사정했다.
“아아앙! 하앙!”
조용하던 알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며 열정적으로 파트너 오메가를 탐했다. 광란의 파티가 시작되었지만 재강원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무열이 서 있던 자리를 구두로 쓸었다.
짙은 알파 페로몬이 가득 찬 공간에서 무열의 페로몬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잔재를 핥듯이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음미했다.
이 장소에서 8년 전 그는 약에 취한 무열을 안았다.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베타라 생각한 무열에게는 약을 먹였다. 페로몬으로 흥분시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쯤의 무열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해서 두 번 다시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게 강렬한 하룻밤을 선사해 주었다.
핥지 않은 곳이 없고 그의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무열은 울며 허리를 흔들었고 나중에는 쥐어짜이다 못해 사정할 것이 없어 소변을 지려 버렸다.
그날 이후 자해하며 힘들어했지만 결국 그의 옆에 남았다. 아니,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었다.
“귀엽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당신은 날 떠나지 못해.”
재강원은 소파에 앉았다. 그가 다리를 벌리자 오메가가 엉금엉금 기어와 무릎을 잡았다.
“결국 제 발로 다시 돌아올 거야, 이무열.”
그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