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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선전포고 (28/31)

외전 3. 선전포고

한주는 침대에 널브러졌다. 한겨울이라 뜨끈한 물에 샤워했더니 반바지만 입고 나와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볍게 산책로를 두 바퀴 돌고 오자 겨울이지만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운동 후의 뜨끈하게 샤워하는 맛에 몸을 안 움직일 수 없었다.

“좋다…….”

방은 항상 쾌적하게 온도, 습도를 유지해서 건물 안에만 있으면 밖이 여름인지 가을인지 모르게 계절을 보낼 수 있었다.

“흐어…….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감기 걸려.”

강희가 한주의 머리 위에 앉자 매트리스가 움푹 들어갔다.

한주는 항상 엉성하게 머리를 닦고 나오기 때문에 그가 머리를 말려 주는 일은 이제 자연스러워졌다.

한주의 머리를 들어 허벅지에 올리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마른 수건이 촉촉하게 젖도록 가벼운 터치로 머리를 만지자 기분 좋아진 한주는 베고 있는 허벅지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 단단해졌다. 벗고 있는 상체는 물기가 말라 곧 피부가 서늘해졌다.

몸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이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가볍게 머리카락을 말려 주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말리느라 턱이 쇄골에 닿을 듯이 목이 접혀 있었는데 반대쪽으로 턱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코앞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우강희의 호흡이 닿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한주의 눈을 가렸다. 젖은 살이 입술을 핥고 지나갔다. 살짝 떨어지자 젖은 입술이 금방 차가워졌다.

그는 맛을 보듯이 할짝대며 핥기만 했다.

“……간 보냐?”

불퉁하게 내뱉은 말이 뭐가 웃긴지 베고 있는 그의 허벅지가 들썩였다.

그는 한주의 반응을 재밌어하지만 정말 짜증 났다.

어떻게 고등학교 3년간 키스만 할 수 있을까.

처음 그와 입을 맞출 때는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다. 얼굴을 겹치며 입술이 닿고 결코 타인에게 허락하지 않을 거 같은 혀에 그의 혀가 닿았을 때는 ‘이런 게 기분 좋다고?’라는 생각까지 했다.

타액에 미끄덩거리는 살덩이는 징그럽기까지 했다.

그랬던 느낌이 두 번째가 되자 ‘어, 조금은 괜찮네.’가 되고 세 번째가 되자 강희의 목을 붙잡고 고개를 틀며 조금이라도 더 겹치려고 달라붙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 있고 싶다.”

한숨과 함께 입술 위에 강희의 저음이 퍼졌다.

“마음은 알겠지만 난 싫어. 계속 키스만 하겠다고?”

“아, 그건 그렇네.”

“음흉하기는. 읏!”

뜨거운 손이 가슴에 닿았다. 코앞에 강희의 얼굴이 있어 시야가 가려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서 더 놀랐다.

“근육이 안 붙네.”

이미 알고 있으면서 핑계를 대며 그가 읊조렸다.

운동을 오래 했지만 좀처럼 근육이 붙지 않는 몸이라 근육이 굴곡이 잡히기보다는 보기 좋게 마른 정도였다. 뜨거운 손이 가슴을 스치며 갈비뼈 위로 움직였다.

강희가 한주의 머리를 감싸듯이 다시 손으로 눈을 덮었다.

“야…….”

“쉿.”

한주는 머리 위로 강희의 상체가 덮는 것이 느껴졌다. 피부에 옷이 스쳤다. 다른 손이 움푹 들어간 배를 덮으며 배꼽 주위를 동그랗게 문질렀다.

“아!”

놀라 저절로 배에 힘이 들어가 움푹해졌다.

“야, 우강희!”

허리가 저절로 접히며 무릎이 들렸다.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치우려고 팔을 잡아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강희는 한주가 일어나지 않게 머리를 더 깊이 감쌌다.

입술도 눌렸다. 마른 입술이 두어 번 한주의 입술을 가지고 놀 듯이 오물거리더니 살을 벌리며 살덩이를 밀어 넣었다. 손끝이 몰랑한 뱃살을 누르며 반바지의 밴드 아래를 침범했다.

“읍!”

강희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으며 힘을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각도를 틀며 깊게 겹쳐졌다. 혀 아래를 쓸어 올리며 눌러 오는 살덩이에 한주는 몸이 튀며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다리 사이가 모이며 무릎이 겹쳐졌다.

입술을 겹쳤지만 그의 콧바람이 거칠게 턱에 닿으며 간지러웠다.

슥슥, 마치 자기 것을 가지고 놀 듯이 그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으응, 응…….”

신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한주의 것을 감아 오는 손가락에 허리가 뒤틀렸다. 어느새 서로 마주 보며 그의 밑에 깔려 키스하고 있었다. 눈을 가리던 손은 한주의 양 손목을 그러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박제했다.

오금이 움츠러드는 감각에 한주의 눈이 질끈 감겼다.

눈을 감으면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는데 한주는 눈을 뜨면 더 느껴 버렸다. 강희는 오직 한주만을 바라보며 갈구하는 시선으로 어떤 표정을 짓는지 관찰했다. 열렬한 시선은 시간이 지나도 식을 줄 몰랐다. 눈을 뜨면 그가 참는 표정이 보여 배꼽 아래가 뜨거워졌다.

훑어 오는 손길에 한주는 팔에 힘을 주었지만 단단히 잡힌 손목을 빼지 못했다.

“아! 야!”

“조금만 더…….”

“너만 만지면서 뭘 조금만 더라는 거, 읏!”

다리가 겹쳐져서 허벅지에 단단한 그의 세 번째 다리가 눌렸다. 손을 움직이면서 한주의 허벅지에 박자를 맞추며 눌러 왔다.

“나, 나도.”

“응.”

신음과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감질날 텐데 그는 뛰어난 자제력을 보여 주어 항상 한주를 놀라게 했다.

“아니, 나도 해 준다니까. 읏!”

“나중에 확실하게 받아 낼게.”

“야, 그게 더 무서워…….”

또 한주만 보내려 하는 손길에 한주는 무릎을 세워 엉덩이를 들었다. 허벅지로 그의 것을 눌렀다.

끄응, 신음을 삼키며 우강희가 더운 숨을 뱉으며 입술을 뗐다. 허벅지에 닿았던 살이 멀어졌다.

“안 돼.”

“아, 또…… 나만 가라고?”

“이 정도가 딱 좋아. 내가 적당히 참을 수 있는 정도가.”

밭은 숨을 뱉으며 눈가가 붉어진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데 누가 믿을까.

“언제까지 이럴 건데……. 아읏!”

고지에 다가가고 있었다. 허리가 들썩여졌다.

“가만히 있어.”

강희가 허리에 한주의 다리를 끼워 누르며 경고했다. 들썩이는 다리에 제 것이 자극되어 흉흉한 두께가 느껴졌는데 누르지 못하게 아예 아래로 파고들었다.

엉덩이 아래쪽을 그의 샅이 눌러 한주만 더 애가 탔다.

“위험해.”

강희는 한주를 위해서 참는다고 말했다. 그의 고삐가 풀리면 한주가 위험하다고.

강희의 것을 본 적이 있어 걱정되기는 했지만 만져 주는 정도는 해 줄 수 있는데 그는 손길조차도 거부했다. 아니, 몸을 만지거나 닿는 것조차 금지했다. 항상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했다.

“괘, 괜찮잖아. 이제는 읏, 흣. 서로 성인인데…….”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뭐가, 다른데!”

“후우. 참아. 널 위한 거니까.”

“너! 이…….”

빠르게 높은 파도가 밀려왔다.

“읏!”

입술을 깨물며 안에서 터지는 감각에 어깨를 움츠렸다가 눈을 뜨는데 우강희와 눈이 마주쳤다. 다시 강희의 얼굴이 가까워지며 급히 입술이 빨렸다. 헐떡이는 숨과 함께 엉덩이 아래쪽을 뜨거운 것이 눌렀다.

* * *

“어서 와요. 우리, 오랜만에 보죠?”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기 선물입니다.”

박예주가 현관문을 열어 주며 우강희를 맞아 주었다. 그는 탐스러운 꽃다발을 예주에게 내밀었다.

“꽃이네요.”

꽃집을 하고 있지만 타인에게 받는 꽃이 싫을 리 없다. 풍성한 꽃다발에 얼굴을 가져가는 어머니를 지나쳐 한주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주의 집으로 처음 찾아오는 손님이라 일부러 큰길까지 우강희를 마중 나갔다.

“같이 점심 먹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꼭 사 주세요.”

“그래요, 그럼. 다음에 다시 초대할게요.”

방긋방긋 웃으며 박예주는 우강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보다 높은 눈높이의 훤칠한 아들 애인은 어른이 보기에도 듬직하고 매력적이었다. 시원한 이목구비와 늘씬한 몸, 신경 썼지만 과하지 않은 세련된 옷차림과 과시하지 않는 느낌의 한정판 시계 등, 박예주는 빠르게 강희의 외모를 스캔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길에 서 있어도 단박에 눈에 띌 외모, 후광이 느껴지는 사람이 눈웃음까지 치며 박예주에게 잘 보이고 싶어 사근사근하게 말을 하니 아무리 아들 애인이라지만 마음이 녹지 않을 수 없었다.

한주의 룸메이트이고 애인에 알파였다. 그와 엮여서 한주가 입원까지 하고 안 좋은 일들을 겪었고 그 일로 한주는 친아버지를 만난 데다가 여전히 그 가문에서 호시탐탐 한주를 데려가려고 노리고 있었다.

다사다난한 시기를 지나며 아들의 옆에 우강희가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이전에도 그와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일이 더 바빠지기 전에 한 번 보자고 핑계를 대며 불렀다.

곧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한주와는 어떤 계획을 나누었는지 궁금했다.

국회 의원 우상진의 아들이라지만 아버지의 이름값으로 그 자식의 성품이 확정되지는 않는다. 특히 알파 사회에서는.

속내를 감추며 강희를 반겼는데 박예주는 보자마자 무장 해제 되었다. 자신이 어릴 때 길에서 지나쳤다면 번호를 알아내 사적으로 연락해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프라이머 알파라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세상사 겪을 만큼 겪고, 진상 손님도 여럿 처리했다. 다양한 직업군의 알파에게 플러팅을 받기도 했지만 우강희는 그들과는 이질적으로 달랐다.

“언제까지 현관에서 얘기할 거야? 들어와.”

한주가 재촉했다.

“그럼.”

꾸뻑 고개를 숙이고 강희는 한주에게 다가갔다. 박예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한주가 부르자 고개를 돌리며 바라볼 때의 표정이 박예주를 대할 때와는 달랐다.

“와…….”

순간 놀라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희는 예의상 집 안을 둘러보고는 한주의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해도 곧 고향을 찾는 연어처럼 한주에게로 돌아왔다. 이미 고1 때부터 사귀었고 3년이나 지났으면 마음의 뜨거움도 숯불처럼 잔잔해질 만도 한데 강희는 그렇지 않았다.

아들을 좋아해 주니, 기쁜 일인데 그 상대가 알파였다. 게다가 오메가인 자신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알파. 성인이 되면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고 어떻게든 잠자리라도 가지려고 육탄전을 벌일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상대였다.

“엄마, 뭐 해?”

한주를 향하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며 표정마저 바뀌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박예주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두 사람의 곁으로 갔다.

* * *

한주는 눈을 끔뻑이며 박예주와 우강희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중학교는 홈스쿨링을 했다고?”

“네. 초등학교 때 알파로 발현했는데 적응하기 쉽지 않아서요. 그나마 알파들이 많은 고등학교에서 일차적으로 적응 훈련을 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면 다른 학생들에게 페로몬으로 민폐를 끼칠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대번에 박예주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아니, 왜? 페로몬 조절이 아직 어렵나? 설마 지금도?”

“그건 아닙니다만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보낼 수도 있어서요. 지금은 퍼센티지 단위로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멋쩍어하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강희의 모습이 새로워서 한주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우강희가 수줍어하다니!

“프라이머 알파의 페로몬이면 그렇게까지 제어하지 않아도 될 텐데…….”

집요하게 질문이 이어져서 막아 주려는데 강희는 순한 양처럼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처럼 말이다.

“페이퍼에는 그렇게 적혀 있지만 프라이머 알파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랑하는 느낌이 나지 않게 절제하며 덧붙였다.

“담당 직원은 로열 알파 위 단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페로몬 노출에 좀 더 조심하고 있습니다.”

한주는 놀랐다. 우강희의 형질은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비밀이었다. 자신이 먼저 알파 형질을 말한 적이 없었고 자신의 형질을 부담스러워했고 짐으로 여겼다.

세상의 알파나 오메가 형질이 프라이머와 로열로만 나뉜다고 알고 있는 박예주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로열보다 위 단계? 그런 게 있어?”

“네. 그래서 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있고 매달 연금이 조금씩 나옵니다. 해외로 나갈 경우에는 담당자에게 보고를 해야 하지만 그 외에 제약은 없고요.”

담당해 주는 공무원이 따로 있다는 말에 박예주의 상체가 우강희에게 가까워졌다.

“아직 어린데 연금? 따로 국가에서 관리해 준다고?”

“네.”

“어, 얼마나?”

“엄마.”

엄마의 옷을 잡아당겼지만 박예주를 막을 수 없었다. 강희는 잠시 고민하며 눈을 데굴 굴렸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말이다.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척 연기했다.

“큰 금액은 아니고, 그저 아무 일 안 해도 두 명은 충분히 먹고살 정도는 나옵니다. 사회에 나가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연금은 계속 나오고요. 만약에 공무원이 되거나 정치나 그런 일을 하면…… 담당자 얘기로는 다른 혜택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쪽으로 일할 생각은 없습니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이 녀석 왜 이래?

기가 막혀서 한주는 눈을 끔뻑였다. 우강희는 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했다. 연금 얘기가 지금 왜 필요하지? 왜 담당자가 공무원 쪽으로 직업을 추천했다는 말을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명이 사는데 굶을 일은 없다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문득 이 상황이 이상했다. 마치 결혼할 집의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는 예비 신랑 같지 않은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성인이 되어 곧장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헤어질 수도 있다. 왜 절 먹여 살리는 생각까지 할까.

“그래?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이상한 것은 박예주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장래 희망이나 직업 등의 개인적인 일을 눈치 없이 질문할 사람이 아닌데 선을 넘으며 거침없이 물었다.

“창업해서 프로그램 개발을 할 생각입니다.”

“아버님이 국회 의원이라고 들었는데 그쪽으로 이어받을 생각은 없고?”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국회 의원이 의외로 바쁜 직업이라서요. 저는 앞으로 제 배우자가 될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 말을 하면서 한주를 힐끔 보고 강희는 배시시 웃었다. 우강희가 ‘배시시’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한주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긴, 그렇지. 자기 배우자에게 잘하는 사람이 좋지. 연금도 받고…… 좋네.”

박예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더 들어 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한주는 강희의 팔을 잡아끌었다.

“언제까지 그런 얘기 할 거야. 엄마 약속 있다며? 어서 가. 내 방 가자. 방 구경시켜 줄게.”

“방에 뭐 볼 것이 있다고. 난 강희와 좀 더 얘기 나누고 싶은데.”

“얼른 나가. 우리도 곧 도장 갔다가 저녁 먹을 거야.”

강희의 등을 밀며 방으로 들어가는데 박예주가 웃으며 “음료수 줄까?”라고 물었다.

이 모든 상황이 민망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 마셔!”라고 말하고 문을 닫았다. 괜히 엄마가 있을 때 강희를 초대했다.

* * *

강희는 한주의 방을 둘러보았다.

기숙사에서 살았기에 침대와 책상, 책장만 있을 뿐 심플했다. 친구들과는 주로 온라인 게임을 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도장에서 보냈다. 다른 취미 생활은 없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볼 것이 많다고 책장의 책을 살피며 느릿하게 시야에 담아냈다.

“뭐 그리 서 있어? 앉아.”

강희에게 책상 의자를 밀어 주고 한주는 침대에 앉았다.

“일일이 다 대답해 줄 필요 없었어. 알파 친구가 신기해서 이상한 질문까지 하고. 왜 쓸데없는 것까지 물어보는지. 미안해. 대신 사과할게.”

민망해서 뒷머리를 긁었다.

소파에 앉아 호구 조사 하며 수입을 묻는 엄마나 잘 보이고 싶어 고분고분 대답하는 강희나 둘 다 짜증 났다.

“잘 보이고 싶으니까.”

“잘 보일 필요 없어.”

“너 낳아 주신 분이잖아.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어머님이 좋은 사람으로 봐 주면 좋지.”

앉으라고 준 의자는 보지도 않고 강희는 한주의 옆에 앉았다.

“몇 번 뵙기는 했지만 어머니, 미인이시다.”

“나가면 번호 따려고 난리긴 하지. 엄마 보러 꽃집에 오는 단골도 있어.”

우강희의 손이 한주의 머리카락을 훑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듯이 정돈하며 쓰다듬었다. 지그시 바라보는 눈동자 안에 한주가 담겼다.

멍하니 그를 보고 있던 한주는 “아!” 목소리를 높이며 컴퓨터를 켰다.

“이번에 이벤트 때 펫으로 드래곤이 나와서 받았는데 볼래? 디자인이 예쁘게 잘 나왔어.”

후다닥 책상 의자로 옮겨 앉았다.

말을 돌리려고 게임 얘기를 했지만 곧 흠뻑 빠졌다. 새로 얻은 아이템과 장비 얘기를 하며 인벤토리를 열어 스탯이 얼마나 찍히고 얼마나 강화되는지 말하는데 강희가 한주의 뒤로 다가왔다.

책상에 손을 짚으며 모니터를 보았다. 그의 가슴이 한주의 얼굴 옆으로 가까워졌다.

그에게서 특유의 향기가 났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발산한다는 진실의 페로몬.

향기 생각을 하며 그를 보다 보니 굵은 목이 눈에 들어왔다. 톡 튀어나온 아담스 애플, 남성적인 목 근육의 흐름. 어쩐지 입 안이 말라 왔다.

마우스를 달칵거리던 한주가 손을 멈추고 가만히 그를 보고 있자 강희가 고개를 돌렸다.

“왜?”

“어? 아니. 그냥.”

뺨이 홧홧해지고 열이 몰렸다. 고개를 돌렸는데 그는 더 가까워졌다. 어깨에 그의 가슴이 닿고 향기가 진해졌다.

“나도 게임을 해 볼까.”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자 어깨가 근지러워졌다. 움츠러든 어깨를 보고 강희가 웃음을 흘렸다.

“어? 어. 해. 해 봐. 넌 게임 금방 하더라.”

“게임에서 결혼도 한다며.”

아니, 그런 얘길 왜 하는데?

왜 귓가에 속삭여?

왜 자신은 당황하는 걸까?

그의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가까워지며 더운 숨이 얼굴에 닿았다. 조심스러운 호흡에, 한주도 숨을 멈추고 그를 보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주야, 잠깐 들어간다.”

다른 때 같으면 노크하는 것과 동시에 문을 여는데 한 텀을 두고 예고했다. 박예주가 주스 두 잔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놓았다.

“아, 안 마신다니까.”

“손님이 왔는데 어떻게 그래. 엄마는 이제 나갈 테니까 잘 놀아.”

문을 닫기 전에 박예주는 우강희를 불렀다.

“강희야.”

“예.”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예.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그래.”

상큼하게 미소 짓고 박예주는 둘이 잘 놀라며 문을 닫고 나갔다.

한주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만큼 아는 나이였다.

“아, 엄마는 왜 쓸데없이 그런 말을…….”

“널 걱정하니까.”

머리카락을 쓸어 주는 손길에 강희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지 그는 한주를 보고 있었다.

자신을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강희는 욕실로 들어가 혼자 처리했다. 그가 해 준 것처럼 손으로라도 해 준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며 들어주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강희를 보며 한주는 선언했다.

“하게 되면 그때는 나도 안 참아. 꼭 너와 할 거야.”

그런데 강희는 뭉근하게 미소 짓기만 했다. 좋아하지도 않고 놀리지도 않았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귀엽게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왜? 내가 못 할 거 같아?”

한쪽 팔로 책상을 짚고 있던 그가 상체를 숙였다. 얼굴이 가까워지며 눈꼬리 끝에 입 맞추었다.

“천천히 해.”

마치 졸업해도 곧장 하지는 않겠다는 뜻 같았다. 한주의 눈이 세모꼴이 되자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울리고 싶지 않아.”

“안 울어.”

“울 거야. 힘들다고 날 밀어내겠지. 어쩌면…… 헤어지자고 네가 먼저 말할 수도 있어.”

“안 그런다고.”

속이 답답해 한주는 눈을 치켜떴다.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네 것 본 적 있고, 얼마나 큰지는 알지만 그 정도로 피하지 않아! 그렇게 걱정되면 우선 한번 해 보든가! 그럼 피할지, 울지, 알게 되겠지!”

민망해도 질러 버렸는데 강희는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헝클더니 입술을 겹쳤다.

‘아, 이 자식 또 몸으로 무마하려고!’

짜증 나지만 키스를 잘해서 곧 기분이 풀어졌다. 얼굴을 감싸며 입술을 밀었는데 어느새 의자가 기울도록 등을 기대며 그에게 먹히고 있었다.

한주도 그를 만지고 싶었다.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었다. 저가 그에게 받는 것처럼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손은 우강희의 귀를 어루만질 때 잡혀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밑으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천천히.”

그가 입을 뗐다.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해.”

또 속을 뒤집어서 욕이라도 뱉으려는데 혀를 내밀어 한주의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짐승의 눈으로 한주에게 속삭였다.

“그때는 싫어해도, 울며 거부해도 끝까지 할 거니까, 지금은 얌전히 있어.”

경고에 입이 꾹 닫혔다. 등으로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괜히 그런 말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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