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 첫날밤
- 앞으로 찬란한 미래와 영광만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사회자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종이꽃이 터졌다.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들렸지만 요란하게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해외 대학 준비와 기업 인턴십으로 학급의 반이 수업을 빠졌다. 매해 그렇기에 3학년은 11월 말에 빠르게 방학에 들어가 수업을 끝냈다.
이미 사회에 진출하거나 고등학교를 끝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졸업에 감회는 없었다.
“진짜 졸업했다.”
한주는 만감이 교차했다.
1학년 학기 초를 제외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편하게 학교에 다녔다. 우강희와 사귀는 사이임이 퍼져 버렸고 그 이후 누구도 한주를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건드리지 못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강희를 보러 온 신입생들이 한주의 존재에 의문을 품어서 한 번씩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 외 다른 일은 없었다.
“축하해.”
한주는 부드러운 축하 인사에 옆을 보았다. 3년 동안 한결같이 강희는 옆에 있어 주었다.
“너도 졸업이잖아. 너도 축하해.”
차원구가 고개를 내밀어 끼어들었다.
“우리 모두의 졸업이지. 이미 어제 파티 끝냈는데 뭔 축하야.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한주는 삐딱하게 강희와 원구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반의 이성진과 김지영도 확인했다. 황치운은 어제의 파티만 참석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1학년 때는 머리 하나의 키 차이였는데 3학년 졸업 때가 되어도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한주도 이전보다 3센티는 더 컸지만 알파들의 성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졸업식에 정장을 입은 졸업생들은 완전한 성인의 모습이었다.
상념을 깨며 차원구가 말했다.
“애들 몇 명은 저녁에 모인다는데 너희는 어쩔 거야?”
“약속 있어.”
“아, 가족 모임이 있다고 했나? 우강희 너는?”
“같은 약속.”
“좋을 때네. 알았어. 다음에 봐.”
가볍게 인사하고 원구는 가족들에게 향했다.
졸업이지만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다가오면서 원구의 말을 들었는지 지영이 의아해했다.
“가족 모임이라니?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파티 가신다고 들었는데?”
“우리 집 가족 말고 강희네.”
“고용진과 사부가 모이자고 했는데 너와 우강희 다 거절하고.”
“일이 좀 있어.”
한주는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볼에 열이 올랐다.
“우강희, 너도 이런 날까지 일해?”
“너도 낮에 인터뷰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그 후에는 비워 뒀어.”
김지영은 어머니의 소속사와 계약을 하고 간간이 배우로 활동했다.
“무슨 약속인데? 정말 안 돼?”
“나와 가야 해.”
강희는 한주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영은 3년 내내 질리게 본 모습이라 시큰둥했다. 이미 전교생이 두 사람의 교제를 아는 상황이라 한주는 달리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미안.”
“그럼 내일.”
“그래, 내일은.”
대답하려는데 우강희가 한주의 입을 막았다.
“며칠간은 안 돼.”
“뭘 며칠씩까지야? 가족 모임이면 하룻밤이면 될 텐데?”
우강희는 피식 웃었다.
“하룻밤으론 안돼.”
“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귀까지 붉어지며 한주는 강희가 더는 말하지 못하게 얼굴을 손으로 밀었다.
“뭐? 며칠씩이나 뭘 하게…….”
얼굴이 새빨개진 한주는 강희에게서 손을 떼 모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듯이 그는 웃었다. 사랑의 열기가 식지 않은 연인의 모습이라 대번에 지영의 얼굴이 굳었다.
은은하게 나오는 강희의 페로몬이 한주를 휘감았다. 너무 선명해 모를 수 없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말로 알려 주지 않았지만 페로몬으로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 보였다.
한주는 느끼지 못했지만 강희의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다. 지영이 처음 그를 보았을 때는 약간의 페로몬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차단에 소름 끼쳤었다. 그런데 1학년 대강당 화재 사건 이후, 그는 연하게 페로몬을 두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영향은 없었고 주로 한주에게 보란 듯이 묻혀 놓는 데 사용했다. 강희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페로몬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그 페로몬이 한주에게 묻어 있으니 둘 사이를 모르던 사람도 알 수밖에 없었다.
페로몬을 훌륭한 마킹으로 이용했다.
지영은 입술을 슬쩍 깨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속이 쓰렸지만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작은 틈이 생기면 놓치지 않고 사이를 벌리며 차지할 것이다.
“한주야, 몸조심해.”
“어, 어?”
“우강희가 너무 집요하게 굴면 차 버려.”
“뭐, 뭘? 무슨 소리야?”
새빨개진 얼굴로 모른 척하는 얼굴조차 귀여웠다.
지영이 한주를 보고 있자 강희가 불편한 페로몬을 보냈다. 그동안 그의 견제에 저항해 왔지만 한 번도 이긴 적 없어 지영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럼 연락해.”
“알았어.”
멀어지는 지영을 보다가 강희는 한주의 어깨를 잡고 이끌었다.
“가자, 어머님 기다리고 계셔.”
“어. ……인사만 하고 헤어지면 돼.”
평소답지 않게 우물쭈물 말하는 한주를 보며 강희는 눈웃음을 쳤다. 힐끔 그를 보고 다시 시선을 피하며 빠르게 걸었다.
박예주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
“친구들과는 인사 끝났어?”
“어제 학교에서 파티하며 얘기 다 했어.”
“우리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조용조용 끝난 졸업식 분위기가 낯선지 박예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강원은 졸업식에 축하 인사말만 하고 가 버렸다. 그는 이무열이 사라진 후 학교 행사의 대부분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았는데 전에 보았을 때보다 말라서 턱선이 날카로웠다.
한주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가서 점심 먹자. 오후에는 약속 있다고 했지? 졸업식 끝나고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는 건 옛날 일이 되었네.”
“죄송합니다, 어머님.”
잘못한 일은 없는데 강희는 사과했다.
“엄마, 그런 얘기 하면 옛날 사람 취급 당해.”
“얘는.”
“가세요, 식사 예약해 두었어요.”
“그래.”
박예주는 리드하는 강희를 흐뭇하게 보았다. 한주의 손을 잡고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 * *
“그런데 너희는 어디로 가? 약속 있다고는 들었는데.”
식사하고 나오며 박예주는 모른 척 짓궂게 물었다. 오메가이다 보니 강희가 은근히 뿜어내는 페로몬을 읽었다. 기대감이 가득한 애정이라 모를 수 없었다.
“강원도요.”
한주는 처음 듣는 얘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가려고?”
음식점까지는 박예주의 차로 왔었다. 식당 주차장으로 가자 질문의 답이 있었다. 차체가 높은 SUV에서 조은석이 내려 다가왔다.
“차 가져왔습니다. 이 차로 가시면 됩니다. 여기 차 키입니다.”
조은석은 박예주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우강희에게 차 키를 건네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조은석이 내린 차는 새 차였다.
“너 운전면허증 언제 땄어?”
“방학에.”
“아, 같이 따지.”
“시험 삼아 봤는데 그날로 통과했어.”
“학원 안 다니고?”
“응.”
대화를 듣던 박예주가 염려했다.
“그럼 첫 운전이니?”
대답은 조은석이 했다.
“연수는 끝내셨습니다. 베테랑급은 아니지만 사고 내실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요?”
“한주를 태우고 사고 내지는 않으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그래, 그래도 운전 조심하고. 한주뿐만이 아니라 너도 다치면 안 돼.”
“네.”
“그럼 이만 헤어지자.”
박예주는 운전석에 타기 전에 아들보다는 강희를 먼저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한주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우리 한주, 너무 무리시키지는 말고.”
“네.”
한주는 안아 주지 않았다.
“잘 놀다 와. 일 생기면 엄마에게 꼭 전화하고.”
“알았어.”
다 큰 아들이고 든든한 파트너가 옆에 있었다. 혼자서도 잘하지만 박예주는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졸업했다고 당장 한주가 떠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눈앞에 있어도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이 허전했다.
“서울에서 보자.”
박예주가 떠났다. 조은석도 다른 차를 타고 떠났지만 전화 한 통이면 10분 내에 올 것이다.
우강희는 SUV의 조수석을 열어 주었다.
“가면서 마트 들러야 해.”
“강원도로 가?”
한주에게 안전벨트를 채워 주고 강희는 운전석에 앉아 체격에 맞게 룸미러와 사이드미러, 운전석 시트 위치를 조정했다.
“별장이 있어. 며칠 지낼 테니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은 준비해 놓으라고 관리인에게 말해 두었는데 그래도 너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 테니까.”
며칠이라는 말에 한주의 어깨가 움찔 튀었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양평 주변은 이제 익숙한데도 새로운 풍경을 보는 사람처럼 차창 밖으로 한주는 고개를 돌렸다.
강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럼 별장 들러서 있는 거 확인한 후에 마트 가자.”
“너무 멀어. 러트 때 이용하는 별장이라 깊은 산중에 있어. 시즌에는 페로몬 제어가 힘들어서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가능한 한 민가에서 먼 곳의 산 깊은 별장에서 지내.”
“아.”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보았다. 볼이 붉어졌다. 강희의 러트는 2월 말이라 아직 2주는 남아 있었다.
드디어 오늘, 강희와 첫 경험을 한다.
졸업 전까지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면서 그는 한주만 좋을 일을 잔뜩 했을 뿐, 한주가 그를 만지지는 못하게 했다.
3년 내내 같은 반에, 기숙사도 같은 방이었고 키스하다가 간혹 한주의 것을 문질러 해소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서 독하게 그 말을 지켰다.
몇 번은 참지 못하고 덤볐지만 우강희는 철통 방어로 빠져나갔다.
제일 위험했을 때는 그가 처음으로 한주의 것을 만지던 날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3일 전에 미리 기숙사에 돌아왔었다.
강희는 러트라 별장에 있어서 개학 전날 오겠다고 들었다. 그 후 3일은 통화도 하지 못했다. 무료했고 집에 있자니 강희 생각만 나서 기숙사에 일찍 귀소했다.
안면이 있는 관리실 직원과 저녁을 먹었고 밥 잘 먹었다고 우강희에게 셀카를 찍어 보낸 후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침대에 누워 그에게 보낸 셀카를 확인했는데 봤으면서 답장은 없었다.
‘아직 안 끝났나 보네.’
알파의 진성 러트가 어떤지는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만 했다.
약을 먹어도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아 혼자 있는 편이 좋다며 강희는 어김없이 별장에서 보냈다. 연인이 있지만 같이 보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위험하네, 박한주.’
한주가 이번 러트 전에 말을 꺼냈었지만 그는 웃으며 경고했다.
‘너 도망갈까 봐, 안 돼.’
표정은 부드럽고 달콤한데 말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향기 때문에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우강희가 기숙사로 귀소했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방의 불을 다 꺼서 식탁의 스탠드만 켜 놓았다.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에 한주는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우강희뿐이니까.
그리고 문이 열리며 그가 방으로 들어왔다.
* * *
진성 러트라 약을 먹고 보내지만 기간이 평소보다 더 걸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강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한주는 반갑게 문에 등을 기댄 그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사흘 남았는데.”
“……보고 싶어서.”
한 텀 늦은 대답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강희는 종종 이런 느끼한 말을 했다.
“몸은 괜찮아?”
“응.”
“저녁은? 뭐 먹었어?”
“별로.”
질문을 하다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생각에 몰두한 사람처럼 단답형으로 대답했는데 눈은 한주를 보고 있었다.
“뭐 먹을래? 집에서 잔뜩 싸 왔어.”
냉장고 문을 열어 안을 보는데 그가 대답했다.
“박한주.”
이름이 불렸을 뿐인데 등으로 소름이 쫙 지나갔다. 일순 움직일 수 없었다. 맹수가 등 뒤에 서서 노리는 느낌을 받았다. 뒤에는 우강희만 있는데.
“배고프지 않아.”
강희의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다.
냉장고 안을 본다고 상체를 살짝 숙였는데 어깨로 손이 뻗어 가더니 냉장고를 천천히 닫았다. 느린 움직임 때문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그만 자자.”
귓가로 숨이 닿으며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손이 뒤에서 한주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어, 어. 너 씻어. 난 물 좀 마시고.”
“……그래.”
후, 가볍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잠시 텀을 두고 그가 움직였다.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한주는 냉장고 앞에 서서 돌아보지 못했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소리가 들리는 욕실을 보았다. 다른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분명 강희가 맞는데 지난 2년간, 아니, 이전의 삶까지 합쳐 5년 동안 전혀 마주한 적 없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렇다고 살기는 아니다.
물소리가 그치자 한주는 후다닥 침대로 뛰어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마른침을 삼켰다. 본능이 빨간 사이렌을 밝히며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상대는 우강희다.
절 다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리 없는 우강희.
욕실이 열리며 그가 허리에 커다란 목욕 수건 하나만 걸치고 나왔다. 아직 러트가 가시지 않았는지 하체의 음영이 유독 또렷했다.
닦지도 않아 머리카락에서 물이 흘러내려 와 몸을 타고 떨어졌다. 아직 2월인데. 평소라면 수건을 가져와 닦아 주었을 텐데 이불을 잡고 꼼짝할 수 없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강희가 침대에 누운 한주를 보았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한주의 얼굴을 지나 가슴, 그리고 그 아래로 흘렀다. 이불을 덮고 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집요했다.
머리를 쓸어 올려 얼굴이 드러났는데 그의 눈가가 그림자에 짙어진 느낌이었다.
“닦아 줘.”
“어, 어?”
“머리.”
젖은 발로 느릿하게 침대로 다가와 부드럽게 걸터앉더니 한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젖었으니 닦아 줘.”
팔꿈치를 세워 뒤로 물러나듯이 한주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너무 가까워 반만 세울 수 있었다.
“수건, 가져와.”
“그래.”
말은 잘 들었다.
욕실에서 수건을 가져오는 사이 한주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우강희가 확실히 이상했다. 움직임이 평소보다 느릿했고 대답도 한 박자 늦었다. 어딘가 약에 취한 사람 같기도 하고 반응이 평소 같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주에게 수건을 주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닦아 줘.”
“해 주기는 하는데, 그럴 시간에 네가 하면 되잖아.”
툴툴거리며 머리에 수건을 씌우고 비벼 물기를 닦았다. 수건 사이로 눈을 갸름하게 뜬 강희의 얼굴이 가려졌다가 드러났다를 반복했다.
그 눈은 흐트러짐 없이 한주를 보며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가 해 주면 기분이 좋아.”
“그런 부끄러운 말을 참…….”
수건을 잡은 손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강희는 얼굴을 밀고 들어왔다.
입술이 닿았다.
이럴 거 같았다. 그가 바라볼 때부터 키스를 바란다고 느꼈다. 입술이 달싹거리며 마른 점막을 오물거렸다.
평소보다 뜨거웠다.
살짝 떨어진 순간 숨을 뱉으며 물었다.
“……너 아직 러트야?”
“응.”
대답하면서 입술을 열며 붙여 왔다. 열이 가득한 혀끝이 입천장을 훑었다. 어깨가 작게 튀어 오르기는 했지만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각도가 틀어지며 깊어지자 몸이 뒤틀렸다.
이전에 했던 키스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혀를 감으며 들어오는 농밀함이 진했다. 은근히 비비며 느끼는 곳만을 문질렀다.
깊어지는 접촉에 등이 말리며 한주는 점점 뒤로 누웠다. 시트에 허리가 닿고 팔꿈치가 닿더니 이내 등과 함께 머리가 닿았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점점 움직임이 빨라졌다.
처음 성급히 했던 키스를 떠올리게 했다.
부드럽다고 생각했던 입맞춤은 혀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당겨 저돌적으로 영역을 넓히며 한주의 입 안 구석구석을 정복했다.
“읏, 자, 잠깐. 숨!”
헐떡이며 그를 밀어내는데 목을 울리며 한주의 손목을 잡았다. 입술이 턱을 핥고 목으로 내려갔다. 자신이 아이스크림이라도 된다는 듯이 마른 군침을 삼키며 핥았다.
“우강희.”
거부할 생각이 없었는데 입을 막으며 다시 겹쳐 왔다.
강희는 평소의 러트는 약을 먹고 생활했다. 약을 먹으면 미약한 감기 기운 증상처럼 몸이 나른해지는 정도였고 지분거리는 손길이 늘어날 뿐이었다.
그때 키스의 횟수가 늘었기에 한주는 비슷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본능이었고 대자연의 호르몬에 의한 반응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약으로 억누를 수 있지만 막지는 못했고 잔불에 쉽게 타오를 수 있는 위험함은 있었다.
오늘 첫날밤을 치른다고 각오하니 상상이 엄한 곳으로 튀었다.
그때 우강희는 이성을 끌어올려 그 상황에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떠할까.
성인의 우강희였다면.
“한주야, 좀 더.”
열이 높았다. 조르지만 협박과도 같았고 한주도 싫지 않았다. 부드럽게 몸을 더듬는 손길이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신음하면 그의 손 또한 움찔거리며 긴장해 귀여웠다.
손은 마른 가슴을 몇 번 쓸고 아래로 내려가더니 단단해져 사내라고 주장하는 상징 위를 덮었다.
“흣!”
우강희의 손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튀었다. 뺨에 닿는 그의 숨도 밭아졌다.
아, 드디어.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동안 키스만 하며 허리를 지분거리는 것이 다였다.
가끔은 이 녀석이 고자인가 하고 의심했지만 입술이 떨어지며 욕실로 곧장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앞섶이 두툼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한주는 우강희의 인내심을 지켜보아 왔다.
그러니 ‘드디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반바지의 밴딩이 우강희의 손에 걸려 쭉 끌어 내려졌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주었는데 엉덩이 아래까지만 내려갔다. 쪽쪽 입술 끝을 핥고 입 맞추는 부산스러움에 강희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의 것이 어떤지 보이지 않았다.
“아!”
손이 닿자 목소리가 튀었다.
“안 돼?”
뜨거운 숨을 뱉으며 그가 이마를 붙이고 물었다.
“싫어? 싫으면…….”
배려는 하지만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주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해.”
한숨처럼 작게 나온 말인데 그는 용케 알아들었다.
“으!”
약한 부위가 그의 손에 잡혔다. 놀라 강희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모양을 손으로 확인하듯이 더듬더듬 손끝으로 누르더니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 감쌌다.
“흣!”
숨을 뱉고서야 저가 참고 있었구나 알았다. 그리고 그 또한 숨을 참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손목을 놔주어서 어깨를 끌어안았고 다른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었다. 평소 강희의 손이 닿았을 때 기분 좋은 부분들로 손이 향했다.
하지만 곧 그조차도 몰아치는 뜨거움에 멈춰졌다.
어느새 그의 손이 얇은 천도 아쉬웠는지 안으로 들어와 맨살이 닿았다. 굳은살은 없는데 손바닥의 살이 울퉁불퉁하게 표피를 쓸었다.
“아, 읏!”
어깨를 움켜잡으며 상체가 들렸다. 얼굴이 뜨겁고 열이 머리를 잠식했다. 헉헉거리는 자신의 숨소리가 뜨거움을 부추겼다.
마른 살을 훑는 소리와 함께 손의 움직임은 점점 거칠어졌다.
“강희야, 강희야.”
어떻게 해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의 이름만을 뱉었다.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마로 땀이 스며 나오고 습한 냄새가 주위를 채우며 그의 페로몬 향기가 둘러쌌다.
“응, 말해.”
춥, 젖은 살이 입술을 빨았다. 가파른 롤러코스터의 첫 고지에 다다르듯이 빠르게 고조되었다. 마주 보고 있었는데 허리를 틀며 몸을 꼬다 보니 등 뒤에서 안기는 자세가 되었다. 묵직하고 두툼한 것이 엉덩이를 눌렀다.
“나와! 핫!”
꾹 엉덩이를 눌러 오는 질량을 느끼며 한주는 어깨를 움츠려 파정했다.
“응!”
액체로 질척해진 머리의 갈라진 틈을 그가 손마디로 문질렀다.
“아, 아! 야! 그만!”
“더 기분 좋지? 응?”
“흐아!”
절정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빠르게 다시 끌어올려졌다. 예민한 부위를 단단하지만 매끄러운 손가락이 문지르자 다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움직이다 보니 강희의 것을 엉덩이로 문지르고 있었다. 목덜미를 잘근거리던 그가 숨을 삼켰다.
“한주야, 박한주.”
허리를 들썩거리며 그가 엉덩이에 문대기 시작했다. 바지는 내렸지만 속옷은 그대로였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두었지만 뜨거운 부피는 강렬했다.
한 손이 한주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꽉 안았고 다른 손은 여전히 여린 살을 잡고 있었다. 머리의 갈라진 부분을 엄지로 눌렀다. 뒤에서 강희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앞이 흔들렸다.
박동치는 심장 소리와 짙은 페로몬의 향기, 거친 숨이 그의 흥분을 알려 주었다. 엉덩이에 치대는 살덩이만큼 더한 증거는 없었다.
키스만 하고 멈추던 우강희의 흥분에 한주는 기뻤다. 자신도 그를 좀 더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나도…… 해 줄게.”
손을 뒤로 뻗어 그의 것에 닿는 순간 손목이 잡혀 매트리스에 눌렸다.
“박한주.”
뒤통수에 닿는 숨이 더 거칠어지며 하체의 부피가 커졌다.
“만져 줄게. 나도 해 줄게.”
의사를 표현했는데 손목을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한주의 것을 잡았던 손마저 한주의 다른 손목을 잡아 매트리스에 밀어붙였다.
“한주야.”
“읏!”
목뒤를 물렸다. 살에 파고들 듯이 이빨을 세워 따끔했다.
“아파!”
말은 그리했지만 오싹한 쾌감도 있었다. 알파가 뒷덜미를 무는 행위는 강한 소유욕을 나타내며 제 파트너에게 흥분할 때 하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럴 때 때로 페로몬을 쏟아붓기도 하고 각인이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인터넷에서 보았다.
어떤 목적이라도 강희가 흥분해 있다는 뜻이었다.
등에 그가 몸을 바짝 붙였다.
속옷을 뚫을 듯이 누르던 단단한 것은 더 들어갈 곳이 없이 갈라진 살 사이를 밀며 한주의 가랑이를 건드렸다.
“아!”
당황한 사이 우강희의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한주야, 도착했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내렸는지 우강희는 조수석 문을 열어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다.
“어, 어?”
“졸았어? 마트야.”
“아아.”
한주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마트 입구로 향했다.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그날 침울한 표정으로 그는 사과했다.
한주의 사진을 보고 진성 러트가 끝나지 않았는데 충동적으로 기숙사에 와 일을 저지를 뻔했다고. 그래서는 안 되는데.
우울하게 자책하는 강희를 보고 한주는 왜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했냐고 화낼 수 없었다.
그 후 강희는 언제 침울해했냐는 듯이 욕실로 들어가 처리했다. 독하게 1년 동안 한주의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다.
“음식들은 대부분 있으니까 먹고 싶은 주전부리나 음료수를 넣어.”
강희는 카트를 밀며 한주의 옆으로 걸었다. 마트 안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그를 힐끔거렸다.
“라면도 있어?”
“있겠지만 먹고 싶은 종류가 있으면 사.”
“바비큐도 될까?”
“부탁하면 준비해 주시지.”
“그럼 삼겹살도 살까.”
이미 삼겹살 팩을 카트에 넣었다. 별장에 가는 목적도 잊고 한주는 캠핑 느낌에 신이 났다.
“아, 고구마도 구워 먹자. 군고구마.”
활짝 웃으며 고구마 봉지도 잡았다.
강희는 입술을 핥으며 음료 코너로 향했다. 그는 식사 대용이 될 수 있는 망고 주스와 쌀 음료를 넣었고 한주는 탄산음료를 들었다.
살 만한 것을 다 카트에 넣자 반은 차 버렸다. 그래도 아쉬운지 주변을 기웃거렸다.
“왜?”
“음.”
입술을 꾹 깨물며 강희의 눈치를 보더니 아무도 없는 코너로 데려가 속삭였다.
“그건 샀어?”
한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거?”
“그, 콘돔.”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며 입으로는 착실하게 말했다.
“아, 응. 다 준비했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가져오느라 떨어진 손을 다시 맞잡았다.
“그만 가자.”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며 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별장까지 오는 내내 한주와 우강희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차 안에 긴장감은 흘렀지만 마트에서 출발한 이후 그는 계속 오른손으로 한주의 손을 잡고 있었다.
시멘트로 길이 깔린 꼬불거리는 산길을 올라갔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파릇한 풀은 없어 황량했다. 스산한 느낌까지 들었다.
한주는 운전하는 강희를 보았다. 발현 이후 매해 그는 이곳에서 진성 러트를 혼자 보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만 떠오를 정도로 차량 한 대만 오갈 좁은 도로 외에는 사방이 나무뿐이었다.
도로의 끝에 따뜻하게 불이 들어온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산장 같은 통나무 집이었다.
“여기야? 아늑하다.”
“산지기가 살던 곳이라 내부는 좁아. 그래도 지낼 때 필요한 것들은 다 준비해 두었어. 전화하면 10분 내로 관리자도 오고.”
강희와 짐을 하나씩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왔다. 고소한 빵 냄새가 따스함을 더했다. 한주는 테이블 위에 놓인 라탄 바구니로 다가갔다.
“어, 우강희, 웰컴 빵이래!”
가져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따끈했다. 색깔이 진하고 울퉁불퉁한 모양이 통호밀 빵이었다.
한주는 빵 옆에 놓인 메모를 강희에게 보여 주었다.
“관리자분 부인이 제빵이 취미야.”
“아, 먹을래?”
“배고파?”
“아니, 근데 빵은 따뜻할 때가 제일 맛있어.”
점심을 먹고 마트만 들렀다가 왔는데도 도착하니 5시가 가까웠다. 한주는 빵을 찢어 강희 입에 넣어 주고 저도 먹었다.
“이리 와, 구조를 설명해 줄게.”
별장의 구조는 간단했다.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고 침실과 작은 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욕실과 화장실이 일체형으로 부부 혹은 혼자 살기 딱 좋은 아담한 크기였다.
“와서 필요한 물건이 있나 봐.”
장을 봐 온 물건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 강희는 한주를 불렀다.
냉장고는 밑반찬과 간편 샐러드, 과일, 고기, 음료가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그날 먹을 국이 있었다. 냉동실에 몇 가지 국이 냉동되어 있었다. 어떤 국이고 음식인지 라벨이 붙어 있었다.
한주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여기도 있어.”
싱크대 선반을 열자 각종 레토르트 식품과 햇반, 죽, 수프, 사발면 등등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종류별로 있었다.
“와, 한 달은 지내도 되겠는데.”
“술 못 마신다고 말해 두었는데도 준비해 주셨네.”
강희는 와인과 맥주, 소주를 보고 웃었다.
“같이 보낼 사람을 데려온다고 했더니 준비를 더 많이 하셨어.”
“뭐? 그걸 말했어? 아니, 왜?”
“혼자 있을 때와는 필요한 물건들이 다르니까.”
그러면서 우강희는 턱짓으로 침실 헤드 쪽을 가리켰다.
모를 수 없는 콘돔 박스와 티슈, 투명한 액체가 든 튜브 등이 있었다.
“아, 그런 걸 굳이.”
그는 부끄러워하는 한주는 거실로 이끌었다.
“게임기도 있어. 나중에 하자.”
“뭘 여기까지 와서 게임을 해.”
“짐 정리할 테니 와이파이 설정해. 비밀번호는 모뎀에 있어.”
“어.”
모뎀을 보는 척하며 한주는 강희를 훔쳐봤다. 봉지에서 꺼낸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는 모습이 자기 집처럼 편해 보였다.
이날을 위해 한주는 인터넷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오메가와는 다르게 베타는 성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액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으면 다칠 수 있다는 말을 제일 많이 읽었다.
졸업 전날은 기숙사에서 파티가 있었기에 이틀 전에 집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는 엉덩이 사이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곧 빼고 한참을 침대에 엎드려,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심도 깊은 고찰을 했다.
느낌이 괴상해서 절대 그곳으로는 쾌감을 느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전립선이 있어 만지면 느낀다지만 일부는 거부감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읽었다. 자신은 못 느끼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래도 피하지 않았다.
‘우강희가 좋다면야, 좀 참아 줘야지. 그냥 익숙해지다 보면 괜찮을 거야. 저 녀석은 3년을 참아 주었잖아.’
사람이 양심이 있지,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
“저녁 준비할 테니 먼저 씻어.”
“어, 뭐? 왜 벌써 씻어?”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밖에서 왔으니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옷이 없으면 작은 방에 준비해 둔 옷도 있어.”
“아, 가져왔어. 내 옷 입으면 돼.”
과민 반응을 해 버렸다.
강희가 웃으며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한주는 허둥지둥 캐리어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면 안 된다. 다칠 수 있다고 해서 연고도 준비했고 작은 관장 약과 젤이 들어 있었다.
“식사 후에 분위기를 잡고 실전에 돌입하니까, 지금 씻는 게 좋겠지.”
집 안이 따뜻해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 욕실로 들어가 구석구석 정성 들여 씻었다.
‘오늘 밤은 저 녀석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해 주지!’
자고로 연인이었다. 어느 한쪽만을 위함이 아니라 서로가 좋아야 한다. 이제까지는 강희가 한주를 많이 위해 주었다면 오늘은 한주가 노력하는 날이었다.
* * *
오래 씻었는데도 강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주가 욕실에서 나오자 잠깐 TV 보며 기다리라고 하고 짧게 샤워하고 나왔다.
관리인이 냉장고에 넣어 둔 반찬과 국으로 식사를 했다. 산골짜기에만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솜씨라 한주는 밥을 두 공기 먹었다.
물론 이후의 일을 생각해서 든든히 먹어 두자는 생각도 있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적어서 내일 해도 돼.”
싱크대를 내려다보니 밥그릇 두 개와 국그릇 두 개, 그리고 그들이 쓴 수저 세트만 덩그러니 있었다.
“지금 해 둘게.”
미리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거라도 하고 싶었다.
‘도대체 분위기란 어떻게 잡을까.’
‘이제 하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기에는 어딘지 어색했다. 기숙사에서는 과제를 하다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눈이 마주치면 키스를 했다. 그가 멋있어 보일 때 한주가 먼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이디를 통합해 이쪽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쇼핑 앱과 연계하는 거지. 게임을 하면서 가볍게 쇼핑도 하고 상품 정보도 알고.”
이 분위기에서는 어떻게 섹시함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구나. 게임의 성향을 쇼핑에 연계하다니 재밌네.”
“사람의 심리와 성향은 변하지 않으니까. 게임 내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 노출되는 광고도 달라져. 베타 테스터들은 꽤 높은 확률로 쇼핑 앱으로 이동하는 결과를 보여 주었어.”
우강희의 사업 내용을 들으며 한주는 어색하게 호응했다.
그는 코딩에 흥미를 보였다. 페로몬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가졌으면서 외모나 알파 형질에 좌우되지 않는 컴퓨터 세계에 매력을 느꼈다.
처음에는 코딩을 배우면서 테스트 겸 간단한 시간 관리 앱을 선보였는데 이게 대박을 터뜨렸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열에 한 명은 이용한다는 국민 앱이 되어 최근에는 통신사와 계약하기 위해 얘기 중이었다.
그때는 우강희라도 들뜬 모습을 보였다. 순수한 제 실력, 제 능력으로 되었다고 좋아했다.
물론 그 외의 제안 회의나 개발자 인터뷰, 지원 사업 응모 PPT 발표 등등을 통해서 뛰어난 외모와 알파라는 형질을 십분 이용해 제대로 홍보까지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벌여 볼 생각이야. 몇몇 쇼핑몰 업체에서 연락이 와 미팅이 잡혀 있어.”
한주는 얘기를 흘려들으며 그를 보았다.
등이 간지러웠다. 긴장으로 차가웠던 손끝에 온기가 돌았다.
강희가 말이 많아졌다.
거실 소파 옆자리에 앉았는데 평소처럼 무릎을 붙여 오지 않았고 생각해 보니 별장에 들어온 이후 손도 잡지 않았다. 스킨십을 피하고 있었다.
그도 긴장하고 있었다.
천하의 우강희가.
‘으아아아아!’
의식하니 더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깐, 나 방에 좀 갔다 올게.”
이럴 때는 알코올이 최고다.
국가에서도 절대 섭취를 금지할 수 없는, 한주만의 알코올을 가지러 갔다. 에너지바를 꺼내 급히 한입 깨물었다. 초콜릿의 당이 입 안에 퍼지자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조금 진정된다.
“이런 것까지 챙겼어?”
언제 따라 들어왔는지 그가 한주의 캐리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민망한 작은 박스들이 에너지바 옆에 늘어져 있었다.
“으악!”
부리나케 가방을 덮었지만 이미 다 본 후였다. 강희는 한주의 등 뒤에서 어깨를 안으며 웃었다. 등으로 그의 가슴이 닿으며 낮게 흔들렸다.
“긴장돼?”
목소리도 한층 낮아졌다. 한주가 다시 크게 에너지바를 깨무는 모습을 그는 말리지 않았다.
“너도 긴장했잖아.”
“괜찮아, 싫다고 하면 안 해.”
“싫은 게 아니야.”
“응.”
“긴장해서 오늘을 망치고 싶지 않아. 너도 나도 기다린 날이잖아.”
그동안 강희는 한주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알파와 베타의 관계에서 베타가 육체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그래서 강희의 뜻을 존중하며 한주도 섣불리 도발하지 않았다. 좀 겁나기도 했고.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다정한 말에 귀까지 뜨거워졌다. 시선을 내리며 입술을 적셨다.
“그러니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개를 들었더니 강희의 입술 사이에서 나온 숨이 한주의 입술에 닿았다. 짙은 눈두덩이 아래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한주를 담았다.
“너니까…….”
한주는 눈을 감으며 눌러 오는 입술을 반겼다.
* * *
침대 매트리스에 앉았다. 비스듬하게 그의 상체가 한주에게 기울어졌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 귀가 나오도록 한 손으로 뺨을 감쌌고 다른 손은 한주의 엉덩이 바로 옆을 누르며 지탱하고 있었다.
“아, 아무래도 에너지바를 하나 더 먹어야겠어. 저녁을 먹었지만 열량 있는 음식이 더 필요해. 몸이 요구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비겁한 말인 줄 알지만 키스 다음으로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되자 얌전히 그에게 몸을 맡길 수가 없었다. 쪽 그가 입술을 빨았다.
“금방 먹고 올게. 조금만 기다리면.”
“초콜릿 맛이 나.”
“그러니까 좀 더 진하게 나도 괜찮지? 키스할 때 초코 맛도 나고 달콤하고.”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어지러웠다.
머리로는 해야 하는 걸 알고 계속 각오하며 기다려 왔는데 자꾸 손에 땀이 찼다. 꽉 막힌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가슴이 조이며 숨이 막혔다. 몸이 뜨거웠지만 손끝은 차가웠다.
“그래, 좀 필요하겠다.”
“어?”
“기다려, 가져올게.”
가져온다면서 강희는 침대에서 내려가 방 밖으로 나갔다. 그가 한주의 입술에 부딪힐 때는 열이 올라 어쩔 줄 몰랐는데 막상 떨어져 눈앞에 없으니 가슴이 서늘했다.
고개를 내리다가 파르르 떨리는 티셔츠의 소매 끝이 보였다.
“으아, 창피해.”
한다고 했으면서 긴장에 벌벌 떠는 자신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싫지는 않은데 무서웠고 겁이 났다. 영상을 봤을 때도 경악하며 끝까지 보지 못했고 제 손가락 하나도 뒤에 넣지 못했었다.
그런 곳에 영상처럼 우강희의 것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떨렸다.
미지의 세계였다.
‘이렇게 겁쟁이가 아닌데. 이러면 저 녀석에게 미안하잖아.’
뜨끈해진 얼굴을 문지르는데 강희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너와 자는 데 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너무 긴장해서…….”
“나도 그래.”
고개를 드니 침대 옆의 선반에 와인이 놓였다. 그는 잔에 조금 따랐다.
“와인? 아무리 약해도 난 못 마셔. 만취해 버려서 기억도 못 할 수 있어.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 그, 그래도 명색이…….”
명색이 첫날밤인데.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지는 못했다.
“네가 먹을 술은 이게 아니야.”
우강희는 저가 와인을 마셨다. 꿀떡 아담스 애플이 움직이며 목 넘김을 보여 주었다.
“응?”
잔을 놓고 그는 한주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너는 이 술을 마셔.”
와인에 적셔진 입술이 닿았다. 알코올 향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한주가 처음으로 마신 와인은 새콤했다.
* * *
그의 선택은 옳았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주는 키스하다가 한 번만 더 와인을 마시라고 속삭였다. 다시 그의 입술에 묻은 와인을 훔치면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입술이 닿고 열리며 혀가 뒤엉켰다. 양 뺨을 감싸던 강희의 손은 기울어진 한주의 몸을 지탱하며 목을 감쌌다. 다른 손은 어느새 티셔츠 안으로 들어와 더듬거리고 있었다.
습한 땀 냄새가 났다.
강희에게서 나는 진실한 페로몬은 기분 좋게 주변을 제 영역으로 만들었다. 어디 있든 그곳에 강희의 페로몬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싫거나 불편하면 말해.”
입술이 살짝 떨어졌을 때 그가 달싹거리며 속삭였다. 신음이나 헐떡이는 소리는 누구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읏!”
겹친 입 안으로 신음이 튀었다.
가슴의 꼭지에 그의 손끝이 닿았다. 동태를 살피는 조심스러움이 감각을 더 민감하게 만들었다. 이내 강희는 큰 손바닥으로 가슴을 감싸며 엄지로 젖꼭지를 꾹 눌렀다.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남자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는데 한주는 그렇지 않았다. 딱히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지만 타인이, 그것도 강희가 제 몸의 일부를 만지는 행위가 불씨를 지폈다.
등 뒤에서 안으며 한주의 것만을 만질 때 간혹 가슴을 어루만지며 젖꼭지를 손끝으로 문지르기도 했었다. 그때와 같다고 여겼는데 다음이 계속 진행된다고 생각하자 예민해졌다.
“괜찮아?”
“흣, 뭐?”
“기분 나쁘지 않아?”
가슴을 만져지는 게 처음도 아닌데 왜 물을까. 의아해하며 되물으려는데 그가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것을 추웁 빨았다.
“아!”
입을 막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혓바닥 가운데로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며 넓게 가슴을 핥았다. 젖은 소리가 커졌지만 한주의 신음도 높아졌다.
그리고 그의 손이 밴딩 안으로 들어가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바지를 내리며 엉덩이가 끌어당겨져서 상체가 뒤로 눕혀졌다.
속옷과 함께 바지를 내리면서 엄지가 치골의 라인을 눌렀다. 타인에게 만져질 리 없는 연약한 속살을 만졌다.
무릎이 서며 하체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 다시 올라왔는지 입술이 깨물렸다.
한주는 열이 가득 찬 눈을 깜빡이며 상체를 눕히고 손을 뻗었다.
“나도, 나도 만져 줄게.”
그동안 우강희에게 받기만 했으니 저도 하고 싶었다. 그는 허리의 버클조차 풀지 않았다. 그 아래 천이 솟구쳐 있었다.
생각이 멈췄다.
만져야 하는데, 닿지도 않았는데 손이 오그라들었다.
‘더 큰데?’
강희가 행동을 막으려는지 한주의 것을 그러쥐었다. 손을 더 뻗지 못하고 그의 허벅지를 잡았다.
“나중에, 지금 말고 나중에.”
그의 움직임이 조급해졌다. 입술을 빨고 턱을 핥으며 두서없이 입술이 닿았다.
“지금은 우선 한 번 빼고.”
몸 구석구석에서 땀이 스며 나왔다. 강희의 손도 젖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말이 점점 없어지며 숨이 거칠어졌다.
“뒤를 만질게. 처음이라 풀어 줘야 해.”
“뒤?”
“여기.”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아!”
엉덩이가 벌려지며 사이의 주름에 손끝이 닿았다. 제 손이 닿아도 놀라는 곳에 타인의 손이 닿았다. 허리가 떴다.
급히 강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앞을 잡은 그의 손에 밀어 넣는 꼴이 되었지만 한주는 정신이 없었다.
손끝이 주름을 일직선으로 문질렀다.
“흣!”
등으로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허리가 더 뜨며 피하듯이 그에게 몸을 붙였다.
“자, 잠깐, 잠깐만.”
“……필요한데.”
민망한 곳을 재차 손으로 문질렀다. 자신이 몇 번 찔러 넣으려다 실패했을 때는 그냥 쪽 팔린다는 수치심만 있었지만 그의 손이 닿자 자꾸 하체로 힘이 들어갔다.
“우강희, 잠깐만. 이거 좀, 좀 이상해, 잠깐…….”
싫거나 불편하면 말하라고 했으면서 그는 입술을 겹쳐 막아 버렸다. 혀끝으로 입천장을 긁어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한주의 말은 들어주었다. 지분거리던 손끝이 떨어졌다.
안심했다. 그의 페로몬이 한주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향기가 진해 정신이 혼미해졌다. 허리가 가라앉으며 다시 매트리스에 닿으려는 순간 입술이 떨어지면서 그의 손이 다시 안쪽을 만졌다. 꼭 다물린 주름 가운데가 손끝으로 벌어졌다. 무언가를 발랐는지 매끄러웠다.
“아! 야!”
“이렇게 안 하면 다쳐.”
더운 숨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언제 바지가 벗겨졌는지 벌린 다리 안쪽의 맨살에 그의 옷이 닿았다.
책상 위에 들러붙은 스티커를 떼어 내듯이 손끝이 깔짝깔짝 주름 위에서 움직였다. 꾹꾹 누르며 노크했다.
“힘 빼, 한주야. 벌려야 안 다쳐.”
“아, 아는데…….”
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데 막상 손이 닿자 자꾸 허리가 올라갔다. 무릎을 세워 그의 허리에 기대려고 비비게 되었다. 꽉 다문 주름으로 손톱만큼 끝이 들어오자 한주의 입에서 흐느낌이 터졌다.
“미안, 힘을 빼려는데…… 흐읏!”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후우 후우 그의 숨이 더 거칠어졌다.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강희는 상체를 숙였다. 어깨를 안고 있던 한주의 등이 매트리스에 닿았다. 손가락 하나도 이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데 과연 그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도 생각은 했었는데…….”
“미안, 내가…… 배려해 줘야 하는데 못 참겠어.”
“어?”
덜컥 겁이 나 고개를 들자 강희의 정수리가 보였다. 가슴을 지나 고개를 더 내리고 숨이 한주의 것에 닿았다.
“우, 우강희, 잠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아!”
한주의 것이 뜨거운 입에 감싸였다.
“응…….”
입술을 깨물며 울리는 신음이 감미로웠다. 한주의 것을 입에 물며 혀에 힘을 주었다. 단단해진 혓바닥을 머리 부분이 긁었다.
피부에서 나는 비누 향기가 향긋했다. 샤워해서 체향이 약해졌지만 좀 더 강해도 좋을 거 같았다.
페로몬이 없는 베타. 고유의 향기가 없는 존재.
페로몬에 좌우되지 않으니 오롯이 우강희라는 사람에게 빠져 흥분하고 있었다.
“읏, 강희야…….”
목구멍으로 힘껏 빨자 도망치려고 한주의 허리가 빠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뒷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젤을 바른 손가락이 쑥 거부감 없이 들어갔다. 다시 바짝 주름이 손가락을 조였지만 이미 늦었다.
내부의 뜨거움을 느끼자 몸에 힘이 들어갔다.
“강희, 강희야.”
다급히 절 찾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습하게 젖어 울먹거리며 흐트러졌다. 심드렁하게 생활하던 한주가 그를 보며 웃고 장난도 치고 옆자리를 내주었다.
혀로 머리끝의 갈라진 부분을 눌러 문질렀다.
“아으, 흣! 그…….”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상냥함이 기뻤다.
긴장하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그와 계속 진행하려고 에너지바까지 먹었다.
의연하며 위험에 맞서는 강인함이 있지만 이럴 때 보이는 어설픈 차이가 심장을 더 떨리게 했다. 강희는 뜨거운 조임을 느끼며 다음을 말했다.
“하나 더 넣을게.”
살짝 뱉어 냈다가 말을 하고 다시 입에 물었다. 입 안의 체온만큼 따끈했다. 그리고 점막은 더 뜨거웠다.
손가락을 빼서 젤에 적시고 다시 넣었다. 숨을 뱉으며 협조하기까지 한다. 하나를 더해 주름을 누르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직 한참 부족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상처 입힐 텐데 한주라면 용서해 줄 거라는 다정함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이 막았다.
3년을 참았다.
아무리 어른스럽다지만 진성 러트 때 참지 못하고 한주에게 달려갈 정도로 인내심이 얇았다. 겨우 그 정도의 통제력으로는 한주를 다치게 할 수 있어 애초에 절 만지지 않도록 막았다.
한주에게 잊지 못할 첫 밤을 주고 싶었다.
절대 저와 함께하는 밤이 위험하거나 무섭지 않고, 기분 좋은 일임을 알려 주고 싶었다. 나중에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집착해서 한주가 싫어하는 짓을 해도 원래 우강희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착각할 수 있도록.
“그, 그만. 나와!”
어깨를 밀었지만 그는 목구멍을 조였다. 부르르 한주의 허리가 떨리며 그의 입 안에 비릿한 맛이 퍼졌다. 끝까지 털어 낼 수 있게 움직여 주며 세 번째 손가락을 넣었다.
“히익!”
내벽의 어디쯤을 만져 주면 되는지 떠올리면서 그곳을 피했다. 첫 오르가슴은 제 것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제 됐으니까…… 넣어.”
헐떡이며 한주는 위험한 소리를 뱉는다.
고개를 들어 입에서 뱉자 주름이 손가락을 조였다가 풀었다. 조르는 듯한 움직임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우강희는 상체를 들며 끈적해진 입술을 핥았다. 손가락을 빼자 숨을 뱉으며 한주는 시선을 피했다.
땀에 젖어 얼굴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었고 눈가가 붉었다.
강희는 한주의 입술을 빨며 혀를 안에 넣었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한주의 허리를 잡아 슬쩍 들었다.
허리를 밀며 하체를 붙였다.
그의 것 끝에 녹진하게 풀어진 주름이 닿았다.
* * *
헉, 한주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빠듯하게 벌려 오며 안으로 진입하는 것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사부의 생일 축하 대련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제법 풀어졌다고 생각해 그만 넣으라고 했는데 그것도 부족했다.
“아, 조금 천천히…….”
가까스로 말을 뱉었다. 아니, 차라리 빠르게 끝내 버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억지로 엉덩이가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아냐, 그냥 빨리 넣는 게…… 으응.”
튀어 나간 신음이 이상해 입술을 깨물었다.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이어졌다. 그저 입구만 통과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웬만하면 참고 강희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지만 이건 참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잠깐, 그만, 더는 나!”
슥, 그의 것이 어딘가를 눌렀다.
“아!”
턱을 치켜들며 뒷머리를 침대에 눌렀다. 갑자기 전기가 통한 듯이 활처럼 등줄기가 휘었다.
생소한 감각이었다.
그가 앞을 만져 줄 때와는 다른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강렬한 여운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흣!”
우강희는 짧게 숨을 삼켰다.
한주 어깨 위의 매트리스를 짚어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그리고 조금씩 밀어 넣었다.
툭, 한주의 가슴 위로 땀이 떨어졌다. 강희가 흘린 땀이었다.
“힘 빼. 힘들어져.”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느꼈던 감각이 아직 몸속에 남아 있었다. 통증과는 다르지만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박한주, 괜찮아?”
후우, 후우 깊게 숨을 내쉬며 강희가 한주의 상태를 확인했다. 땀이 근육을 타고 흘러내렸다. 언제 이렇게 근육을 만들었는지 한껏 팽팽하게 쪼개졌다.
한주의 턱을 감쌌다.
“박한주, 숨 쉬어.”
“헉!”
“천천히 숨을 쉬며 몸의 힘을 빼. 지금 너무 조여.”
가까스로 숨을 쉬었다. 시야가 선명해지며 강희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조인다고 말하는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미미하게 한쪽 눈을 찡그리기는 하지만 한주를 살피고 있었다.
“우강희, 이 짐승 새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인간의 크기가 아니잖아…….”
엉덩이가 쪼개지고 욱신거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한 기분이 들어 눈이 뜨거워졌다.
“미안한데…… 못 하겠어.”
“괜찮아, 네가 힘들다면 그만해야지.”
다정한 말에 한주는 훌쩍거렸다. 그렇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할 수 없었다. 계속 기다려 준 강희에게 미안하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좀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연습도 하고.
강희는 상체를 숙이며 한주의 입꼬리에 입 맞추었다. 그 바람에 안이 눌렸다.
“힉!”
다시 벼락같은 쾌감이 몸을 때렸다. 본능적으로 강희의 어깨를 밀며 허리를 뺐는데 다시 감각이 훑고 지나갔다.
“흐응, 응! 이, 이상해……. 이거 왜…….”
“느껴? 기분 좋아?”
당황해 죽겠는데 그는 웃고 있었다. 짜증 나 손톱을 세우는데 그가 얕게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전신이 오그라드는 쾌감 불꽃이 튀기듯이 몸을 훑었다. 배꼽 아래의 안쪽이 뜨거워지며 조였다.
분명 그만하겠다고 말했는데 강희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씨발. 너 진짜.”
“좋아? 응?”
기어코 대답을 듣겠다며 그가 상체를 숙였다. 결합이 깊어지면서 안을 더 눌러 왔다.
“윽, 응!”
“느껴?”
“아, 아읏!”
짧게 끊어지는 움직임에 소리가 튀었다. 민망한데 그를 잡느라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눈앞에서 불꽃이 튀는 것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너무 조여.”
후욱 숨을 헐떡이며 민망한 말을 뱉은 그의 입을 가렸다. 더 좋다는 듯이 혀를 내밀어 손바닥을 핥아서 얄미워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그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엉망진창이 된 기분인데 멈출 수는 없었다.
* * *
끄응, 신음을 들으며 한주는 눈을 떴다.
눈꺼풀이 들리지 않았지만 너무 목이 말랐다. 입 안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에 물을 마시려고 일어나는데 허리에 힘을 주자 매트리스에 엉덩이가 눌리며 처음 느껴 보는 아픔이 찾아왔다.
허억, 통증에 숨을 삼켰다.
“누워 있어. 물 갖다줄게.”
강희가 다가와 기껏 일어난 한주를 다시 눕혔다. 옆자리에 앉더니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등을 안아 주었다. 페트병을 입가에 대 주고 기울여 주었다.
반을 비우고서야 한주는 페트병을 놓았다.
“몸은 어때?”
“졸려.”
“배고프지는 않아?”
“몰라. ……다시는 안 해.”
“그래, 그럼 더 자. 죽과 수프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말하고, 옆에 있을게.”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해 한주는 기분이 조금 풀렸다. 눈을 떴을 때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강희만 싱글벙글했으면 한 대 치기라도 했을 텐데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애지중지 옆을 떠나지 않았다. 얼굴은 너무 좋아 보였지만 적어도 가해자가 성의는 보였다.
옆에 앉아 한주의 어깨를 쓸어 주거나 머리카락을 넘겨 주는 다정한 손길이 기분 좋아 다시 눈을 감았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사방이 어두웠다. 작게 열린 문으로 거실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 다른 필요한 물건은 없으시고요?
“네, 그리고 내일 사모님께 빵을 부탁해도 될까요? 한주가 잘 먹어서요.”
- 아이구, 물론이죠. 빵 만드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럼 내일 10시까지 만들어서 가져오겠습니다. 갓 나온 빵이 제일 맛있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나자 우강희는 곧장 침실로 들어왔다. 한주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배고프지?”
누워 있는 옆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면서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소곤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듣기 좋아 다시 나른해지며 잠이 왔다.
“나, 물.”
“여기 있어.”
협탁의 페트병 뚜껑을 여는 모습을 보고 한주는 일어나 앉았다. 아직 엉덩이는 위화감이 있지만 몸은 이전 상태로 거의 돌아와 있었다.
“괜찮아?”
“몸이 많이 풀렸어.”
한 통을 다 비우고 내려놓은 후 한주는 침대에서 발을 내렸다.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지 강희가 팔을 잡아 주었다.
“아냐, 괜찮아. 뭐 먹을 거 있어? 배가 등에 붙었어.”
괜찮다고 하는데도 그는 허리를 붙잡아 주었다.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는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 말리지 못했다.
“내장이 놀라서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해. 관리인이 전복죽 만들어 주었어. 죽이 싫으면 수프도 있고.”
“고기 먹고 싶은데, 고기 먹자, 고기. 삼겹살 사 왔잖아, ……어, 잠깐 관리인이 전복죽을 만들어 줬다고?”
“네가 몸이 안 좋다니까.”
한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별장의 음식과 콘돔 등을 준비해 준 사람이 관리인이니 두 사람이 뭘 하러 온 건지 알 것이다. 그런데 전복죽까지 끓여 왔단다.
너무 격렬하게 보내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겠지.
“우와, 쪽 팔려.”
“왜?”
“절대 관리인 아저씨 얼굴 못 봐.”
“만나기 싫으면 만나지 않으면 돼.”
어우, 어우 열이 오른 얼굴을 비비며 식탁에 앉자 우강희가 싱크대 앞으로 갔다.
“우선 죽을 먹어 보고, 괜찮으면 고기 먹어. 몸이 잘 받는지 봐야 하니까.”
“뭐든 괜찮으니 빨리 줘.”
탁자에 바나나가 있었다. 부드러우니 괜찮을 거라고 여겨서 하나를 떼어 내 껍질을 벗겼다. 한입 먹으려고 보는데 그 모양에서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아.”
“왜?”
“아니! 바나나 좀 먹고 있을게.”
“많이 먹지는 마. 금방 데워.”
“어.”
놀라서 무심코 바나나를 뚝 분질러 버렸다.
잘린 반쪽을 보니 심리적으로 좀 기분이 나았다. 한입에 다 넣고 껍질에 싸인 남은 반쪽은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배를 채우는 것이 급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똑바로 강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의 것이 찔러 댈 때마다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지는 조마조마함과 머리를 하얗게 물들이는 감각, 몸이 민감해지면서 신음만 뱉었다.
한 번 사정한 후에야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이것이 그건가.’
쪽쪽 입술을 빨며 혀를 엮으며 공부하기 위해 봤던 영상을 떠올렸다. 포르노라 연기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뒤로도 느낄 수 있다더니 진짜였다.
손으로 만질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우강희의 것이 넣어지고 넣다 뺐다 하면서 내벽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가 버리고 말았다.
‘괜찮아?’
입술을 떼며 우강희가 물었다.
그도 땀을 흘렸다. 불그레한 눈가가 야하게 보였다.
‘이런 달뜬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저 때문에 강희가 이런 표정도 짓는구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피부를 누르는 손길이 거친데도 그는 좋은지 한주의 손바닥에 쪽 입 맞추었다.
‘다시는 안 해.’
‘그래, 아픈 곳은 없어?’
‘모르겠어.’
정신이 없어 어디가 아픈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가 멍했다.
‘싫었어?’
알면서 짓궂게 물어본다. 앞을 만지지도 않고 가 버리는 모습을 보았으면서.
‘……싫진 않았어. 할 만해.’
‘다행이다.’
말을 끝내자 그가 얕게 허리를 쳐올렸다.
그제야 아직 제 뒤에 들어와 있는 우강희의 것이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한주만 절정에 오르고 그는 아직 사정하지 않았다.
‘그럼 조금만 더 하자. 난 아직이야.’
오늘은 서로를 위한 날이니 이기적으로 굴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강희는 3년을 기다려 주었다.
‘……그래, 해.’
그만 허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실수였다.
3년을 기다렸으니 얼마나 집요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도 쾌감에 빨리 가 버렸으니 강희도 그 정도 걸릴 거라고 무심히 생각했었다. 그 시간 동안 그의 것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계속 몰아치는 파도에 허우적거리는 물을 먹어 가며 수면 위로 한 번씩 얼굴을 내밀어 헐떡이는 느낌이었다.
아래는 쑤석거리며 몸을 홧홧하게 달구고 그의 입술이 여기저기 절여졌다. 다정한 손길로 상체를 만졌다. 두 번의 사정으로 한주가 기운 없어 하자 아예 한주의 것을 잡아 사정하려 하면 끝을 막으며 괴롭히기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느낄 수 있지?’
끝에서는 울기까지 했다. 우는지도 몰랐는데 그가 미안해하면서 눈가를 핥아서 자신이 울고 있다고 알았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열에 들뜬, 흥분이 가득한 목소리가 여태 귓가에 머물러 한주는 식탁에 엎드렸다. 얼굴이 펄펄 끓었다.
“다시 열나?”
죽 그릇을 내려놓으며 강희가 열을 잰다고 한주의 목을 만졌다.
“읏! 괘, 괜찮아!”
커다란 손이 목을 만지자 허리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뜨끈하게 다시 열이 모이려고 한다.
“배고프다.”
허겁지겁 죽을 뜨는데 걸쭉한 죽이 숟가락에서 넘쳐서 툭 그릇으로 떨어졌다.
생각해 보니 콘돔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한주는 베타라 사정액을 빼 주어야 한다고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일어났을 때 몸 상태는 뽀송뽀송했다. 땀과 체액으로 시트가 축축하고 몸도 엉망이었었는데.
‘뒤처리를 우강희가?’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주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다 구워졌어. 이제 먹자.”
밖에서 강희가 바비큐로 삼겹살을 구워 왔다. 한주는 냉큼 식탁 앞에 앉았다.
“고구마는 불에 넣었지?”
“식사 후에 가지러 가면 돼.”
강희의 페로몬 때문에 관리인은 별장 안까지는 오지 않고 빵만 문 앞에 놔두고 갔다. 전날 죽만 먹고 그대로 자 버린 몸은 빵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가서 바비큐를 해 먹고 싶지는 않아서 한주는 이불을 덮어쓰고 아직 몸이 결린다는 핑계로 강희를 부려 먹었다.
그가 싫어하는 표정을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도왔겠지만 전혀 찡그리지도 않았다.
음료수 가져다 달라, 과일 달라, 리모컨이 어디 있냐 등등 자잘하게 부탁하는 걸 오히려 기뻐했다. 업고 다니라고 해도 그렇게 할 기세여서 한주는 소소한 것으로 부탁을 끝냈다.
숯불에 잘 구운 삼겹살은 적당히 기름이 빠지고 적당히 쫄깃했다. 한껏 쌈을 싸 입에 넣고 강희의 것도 싸서 입에 넣어 주었다.
“여기 좋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근처에 계곡이 있어서 여름에 놀기도 좋다고 들었어.”
“계곡?”
“계곡 이름을 검색하면 나와.”
강희는 직접 검색해서 보여 주었다. 한여름에 찍은 사진이 주르륵 나왔는데 계곡도 넓고 놀기 좋아 보였다.
“우와, 애들 데리고 놀러 가면 좋겠다. 여름에도 또 오자.”
“그래. 집은 좁으니까 텐트를 챙겨서 가면 좋겠어.”
“그렇네.”
몇 번 친구들과 캠핑을 하러 갔었다. 물론 우강희도 같이. 지영이 때때로 날카로워지기는 했지만 즐거운 기억만 있었다.
“이런 곳이면 여름에도 오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이곳은 진성 러트 때 쓰던 곳이라 다른 계절에 올 생각은 하지 못했어. 항상 혼자 와서 집 안에만 있었으니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었고.”
한주도 강희의 페로몬 영향력을 알기에 이해는 하지만 좀 외롭게 느껴졌다. 몸도 좋지 않은데 첩첩산중에 사람의 온기 없이 별장에서 혼자 지냈었다니, 생각만 해도 쓸쓸하다.
“다 먹고 산책 겸 둘러보자.”
“몸은 괜찮아?”
“하룻밤 푹 자서 괜찮아. 이런 건 몸을 움직여 줘야 좀 더 빨리 풀려.”
“그렇지. 몸을 움직여 주면.”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를 보지 못하고 한주는 다시 쌈을 싸서 입 안에 한가득 넣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포만감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산책을 가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배부르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끈따끈했고 TV에서는 한주가 전생에 보지 못했던 새 히어로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개봉한 영화인데 한주가 보고 싶다며 아쉬워하자 공무원 조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 인터넷과 연결해서 TV로 틀어 주었다.
소파에 누워 이불을 덮고 햇살을 받으며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 게다가 뒤에는 강희가 한주를 안고 있었다.
간혹 머리에 쪽쪽 입술을 부딪치고 한주의 손을 잡고 엄지로 손등을 쓰는 등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했지만 따끈따끈한 몸이 좋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 * *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는지 간지러운 느낌에 잠이 깼다. TV에서는 여전히 영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강희는 한주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끌어안은 손은 바지 안으로 들어와 한주의 것을 부드럽게 조물락거렸고 목 아래에 들어와 베개가 되어 준 그의 팔은 한주의 어깨를 안고 있었다. 강희는 한주의 목덜미를 핥고 빨았다.
“깼어?”
“이런데 어떻게 자.”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누워 있는지 유리에 비쳤다.
투정이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나른하고 은근히 지펴진 열기가 한주도 싫지 않았다.
“나…….”
고개를 틀어 강희를 보자 입술이 먹혔다. 한주의 목을 지분거려서 입술이 젖어 있었다. 아랫입술을 빨다가 윗입술을 핥더니 비스듬하게 겹치며 혀를 엮었다.
“흣!”
헐떡이며 입맞춤을 하지만 한주의 것을 만지는 손은 여유가 있었다. 엉덩이 아래에 뭉뚝하게 닿은 존재감에 한주는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나도, 만져 줄게.”
“……그래.”
대답은 늦게 나왔다.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떨어질 수 있으니까.”
우강희는 한주를 소파 등받이 쪽으로 밀고 자신은 바깥쪽으로 누웠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도 넉넉한 폭이라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누울 수 있었다.
그는 한주에게 팔베개를 해서 어깨를 안았다.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시선을 내리고 한주는 강희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발기한 그의 것이 속옷을 벌리며 뚜렷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입 안이 말라 와 입술을 적시고 한주는 밴딩에 손가락을 걸어 아래로 내렸다.
강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한주가 어떻게 하는지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볼이 뜨거워졌지만 한주는 멈추지 않고 속옷을 아래로 끌어 내렸다. 툭 발기한 우강희의 성기가 드러났다.
“음.”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더 뜨끈해지고 페로몬 향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지만 한주는 강희의 것만 내려다보았다. 모양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귀두의 한 마디 아래쪽이 약간 도톰했다.
알파가 두 번째 사정 때 그곳이 부푼다. 흔히 노팅이라고 부르는데, 임신하기 쉽게 사정액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마개 역할을 한다고 인터넷으로 보았다.
“이, 이게 그거야?”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 한주는 그 부분을 손끝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순간 어깨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거친 숨이 머리카락을 날렸다.
“흣.”
우강희의 허리가 튀며 성기에 더 힘이 들어갔다. 호기심을 해소할 때가 아닌데.
한주는 기둥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가볍게 쥐었다. 손가락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손끝이 닿지 않았다. 뜨거웠다.
‘이런 게 안에 들어왔단 말이야?’
몰랐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크기를 실감하니 경악스러웠다.
“우, 움직일게.”
“응.”
대답하는 목소리가 낮았다. 한주의 귀가 벌게졌다. 제 손으로 적나라한 성기를 만지고 있으면서 고작 목소리가 더 야하게 느껴졌다.
젤을 쓴다든가 타액으로 적셔야 한다는 생각 없이 자위할 때처럼 메마르게 기둥을 잡고 문질렀다. 강희는 이마에 입을 맞추며 두서없이 입술로 조물락거렸다. 어린 짐승이 할짝거리는 느낌이라 간지러웠다. 한주의 머리를 감싸며 입술은 귀로 내려왔다.
“만져져서 좋았던 부분을 떠올리면 돼.”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등이 오싹했다. 땀 냄새가 진해졌다. 한창 정사 때처럼 공기가 습해졌다.
한주의 손이 어딘가에 닿았는지 음, 그가 신음을 냈다.
“같이하자.”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서 겹쳐 잡을 줄 알았는데 손은 한주의 바지를 내렸다.
“어?”
“같이해.”
쪽, 한주의 입술을 빨았다. 가볍게 입술을 물며 장난치듯이 혀가 핥았다. 깊게 겹치며 질척하게 엮일 때보다 부끄러워졌다.
“읏!”
키스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는 한주의 것을 속옷에서 꺼내 그의 것과 겹쳤다. 한주가 손을 떼지 않도록 같이 잡았다.
엄지의 옆으로 한주의 귀두를 눌러 단번에 욕구를 끌어올렸다.
“그, 그렇게 하면…….”
“응, 여기 약하더라.”
질금질금 쿠퍼액이 나오자 손바닥에 바르더니 다시 기둥을 잡았다. 한주의 손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끈적하지만 미끈한 액에 느낌이 더 적나라해졌다.
“흣, 아, 너무 빨라. 싸, 쌀 거 같아.”
“같이 움직여.”
겹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숨이 입술에 부딪혔다.
슥, 슥 기둥을 잡고 문지르는 소리와 꽉 조이는 아랫배의 감각, 후우 거친 숨소리, 간혹 마주치는 입술, 얽히며 비비는 다리.
정신이 없었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며 끊임없이 밀려왔다.
“나, 나! 읏!”
말을 끝내지 못하고 한주는 입술을 깨물며 파르르 허리를 떨었다. 마지막까지 뽑아낼 것처럼 강희는 손을 흔들었다. 곧 진한 사정액이 느릿하게 우강희의 손과 성기를 적셨다.
숨을 몰아쉬며 한주는 그의 팔에 기댔다. 부담 없는 절정이었다. 그루밍을 하는 사자처럼 그는 한주의 뺨과 턱, 목에 입 맞추었다.
“어, 어?”
손에 느껴지는 부피감이 줄어들지 않았다. 내려다보니 그의 것은 사정하지 않았다.
“너 지루야?”
먼저 가 버려서 민망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생각해 보니 처음에 강희가 한 번 사정할 때도 제법 시간이 걸렸었다.
‘어쩌지?’
힐끔 그를 보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한주만 가고 저는 사정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직 입으로는 못 해.”
“입은 안 돼.”
오히려 단호하게 거부당했다. 당장 해 주지는 못하지만 거부당하니 기분이 상했다.
“왜? 나중에, 익숙해지면 해 줄 수도 있어. 어, 언젠가는. 지금은 못 하겠지만.”
“제어가 안 될 수도 있어, 내가. 지금 말만 들어도 이런데……. 후우.”
숨을 헐떡이며 강희는 제 것만 쥐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주를 껴안고 자위했다. 연인이 있는데.
혼자 느끼는 모습이 매력 있고 섹시했지만 한주는 초조해졌다.
“도와줘? 뭐 해 줄까?”
“부어서 안 돼.”
부었다는 말이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어어, 어?”
“넣지는 않을 테니 허벅지에 해도 돼?”
“허벅지?”
무릎을 비볐다.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아들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하면 돼?”
뚝, 우강희의 손이 멈췄다. 거친 숨소리도.
“그럼 뒤돌아.”
한주는 꾸물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소파 등받이와 우강희의 사이에 낀 자세가 되었다.
침실도 있고 작은 방도 있고 거실도 넓은 편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좁게 몸을 밀착한 자세가 싫지 않아서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어깨로 강희가 턱을 얹었다. 뺨에 그의 숨이 닿았다.
“다리 좀.”
그의 손길에 따라 다리를 조금 들자 그 사이로 불끈 힘이 들어간 두툼한 성기가 들어왔다.
“다리를 꼬아서 힘을 주며 조여 봐.”
귓가에서 명령하는 대로 한주는 힘을 주었다. 굴곡이 다리 안쪽에서 느껴졌다. 가볍게 허리를 움직여 본 강희는 꼬아 놓은 한주의 다리에 무릎을 올려 더 눌렀다.
“음.”
강희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냈다.
“가만히 있으면 돼.”
“어.”
긴장되어 침을 꼴깍 삼키자 그가 웃으며 목뒤에 입 맞추더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젯밤 도대체 어떻게 참은 것인지, 쳐올리는 허리 짓이 강했다. 턱턱 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온몸이 흔들려 한주는 몸이 올라가지 않도록 등받이에 손톱을 세우며 잡았다.
하지만 우강희의 힘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어느새 정수리에 팔걸이가 닿았다.
두꺼운 것이 한주의 가랑이를 범했다. 허벅지에 근육이 제법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것이 들어올 때 살이 밀리고 빠져나가면서 같이 딸려 나갔다.
한주는 고개를 숙여 헐떡이면서 빼꼼 나왔다가 사라지는 귀두를 내려다보았다. 점점 각도가 가팔라지면서 가랑이 안쪽을 찌르기도 하고 주머니를 치기도 했다. 자극을 주자 한주의 것도 꺼덕거리며 힘이 들어갔다.
제 안에 들어와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뒤의 구멍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움찔거리게 된다.
“좀 더 조여.”
습하고 거친 숨이 흩어지며 명령했다.
후우, 후우 거칠게 숨을 뱉으며 우강희는 손으로 한주의 배를 감싸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턱, 살이 부딪치는 타격이 강해졌다.
“조금만, 더…….”
할짝대던 뒷덜미를 깨물며 깊게 밀어 넣었다. 엉덩이가 벌어지며 그의 음모가 주름에 닿을 정도로 안까지 들어왔다.
“읏! 큿!”
한주를 꽉 껴안으며 그는 사정했다. 몸을 잘게 떨었고 한주의 허벅지 안쪽에서 뿌연 사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후우.”
뒤는 쓰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짓을 한 기분이었다.
끝났다.
몸에 힘을 빼는데 곧 허벅지 사이가 뜨거워지면서 그가 더욱 강하게 몸을 조이듯이 안았다. 허벅지 안쪽 살을 밀면서 우강희의 것이 더 커졌다.
“어?”
귀두 아래의 살이 둥글게 부풀었다.
‘노팅!’
“조금만, 이대로 있어.”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우강희는 녹아내렸다. 끄응, 목을 울렸다. 살을 핥아 목을 깔짝거리며 이빨을 세웠다.
“좋아…….”
“읏!”
허스키한 목소리가 귀를 공격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피부를 간지럽혔다. 허벅지 사이로는 두꺼운 그의 것이 존재감을 뿜어냈고 닦지 않은 사정액이 허벅지로 흘러내려 간지러웠다.
남자에게 발정해 사랑받는 것이 괴상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우강희이니 거부감은 없었다. 허리를 안고 있던 손이 가슴에 닿았다. 원하는 바가 또렷해 헤매지도 않고 가슴에 달린 작은 유실을 잡았다.
한주는 더운 숨을 뱉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어색했다.
“가슴이 좋아?”
남자이고 근육이 잘 붙지 않는 타입이라 가슴살도 별로 없는데 손바닥 전체로 그러잡아 뭉근하게 애무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가 더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고민하는지 잠시 손만 움직이다가 말했다.
“한 곳을 고를 수 없어.”
꽤 고민이 되는지 음, 음 소리를 내지만 손은 착실히 움직였다. 목과 어깨와 뺨에 입술이 닿았고 귓바퀴까지 핥았다.
배를 감싸더니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 열이 옮겨 간 한주의 것을 잡았다. 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자 우강희가 후우 깊은숨을 뱉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안에 할 걸 그랬다.”
그럼 더 좋아했을 텐데. 아쉬움에 좀 무리해도 허락할걸, 후회하는데 그가 어깨를 앙, 깨물었다. 따끔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위험해.”
“왜, 자제가 안 돼서?”
“넌 오메가가 아니야. 처음인데 함부로 노팅했다가는 내장을 다쳐. 첫날밤부터 널 병원에 데려가라고? 절대 안 돼.”
으르렁대며 이를 갈았다. 격하게 덧붙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화낼 줄 몰라서 한주는 당황했다.
“그렇게 널 다치면 난 평생 안지 못해. 내 것으로 다치게 했는데 어떻게 다시 넣을 생각을 하겠어.”
끔찍하다며 몸을 떨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트라우마가 남을 일일까?
애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화내서 히죽 웃음이 났다.
“미안, 몰랐어.”
“네가 오메가이길 바라지도 않아. 그러니 허튼 생각 하지 마.”
그는 한주의 생각을 예상하고 미리 말했다.
“박한주 너니까, 베타이고 페로몬 무감증이 있는 네가 날 구해 주었으니까. 너니까 좋아한 거야. 네가 아니었으면 난…….”
목뒤에 입술을 붙였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겠지.”
“읏!”
그가 잠시 쉬었던 손을 움직였다. 꾹 뒤를 누르는 묵직한 체온이 뜨거워 한주는 등받이를 붙잡고 헐떡였다. 이번에는 동시에 사정했다.
* * *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가슴을 간지럽혔다. 맡기만 해도 기분 좋은 체취를 들이마시며 우강희는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품에 안고 있는 따끈한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마에 입 맞추며 손에 닿은 허리를 쓸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낮게 웃었다.
한주가 아침잠이 많아서 이득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주의 비유로는 보너스 코인을 받고, 적립한 포인트로 편의점에서 공짜 음료수 하나를 득템하는 기분과 유사할 것이다.
한주를 만지며 울리는 것도 좋지만 가만히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솟았다. 이제까지 기숙사에서 장난처럼 한주를 안았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더 들어갈 곳 없이 빠듯하게 채워지는 꽉 찬 감정으로 전신이 충만했다.
“한주야.”
그에게 박한주는 온갖 감정의 대표 명사가 되었다.
외로움도, 허전함도, 갈증도, 두려움도 모두 박한주를 만나면서 느꼈다. 그리고 사랑과 행복, 만족, 좋음은 그보다 더 컸다.
손만 잡아도 좋았는데 키스를 하니 더 좋았다. 어깨를 붙이며 옆에 앉아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이 그의 것이 되었다.
“박한주.”
달콤한 꿀을 먹은 사람처럼 머릿속이 하얘지며 목뒤가 저릿해졌다.
“왜에?”
눈을 뜨지도 않고 한주가 대답했다. 잠에 흠뻑 취해서 일어나면 기억도 못 할 대답이었다.
“좋아해, 박한주.”
“그래, 그래. 좀 더 자.”
허리에 두른 한주의 손이 토닥토닥 그를 다독였다. 애를 달래는 사람처럼 귀찮아하며 성의 없었다.
웃으며 그는 한주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진득하게 누르는 입술에 졸린지 미간이 좁아졌다.
“그래, 나도 좋아해. 사랑해, 강희야.”
그러니 건드리지 말라며 가슴에 안겨 왔다. 꾸물거리며 좀 더 밀착했다.
“아.”
우강희는 심장이 뜨거워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 본능적으로 한주의 목을 잡고 입술을 겹쳤다.
“응? 응!”
갑자기 시작된 거친 키스에 한주는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밀어냈다. 손목을 잡아 매트리스에 눌러 속박하고 버둥거리는 다리를 벌려 허리를 끼웠다.
하체를 꾹 누르자 퍼뜩 몸이 튀었다가 그를 받아들였다. 놀랐지만 부딪치며 문질러 오는 혀를 감았다. 타액이 흥건해지며 겹쳐진 입으로 한주에게 흘러갔다.
버거운지 목을 꿀떡였다.
호흡이 급박해지는 걸 느끼고 그는 쪽 입술을 빨며 숨 쉴 틈을 주었다. 눈가가 벌게진 한주가 그를 노려보았다. 잘 자다가 갑자기 깨워져서 날카로워졌다.
“왜 또 발정이야?”
“미안.”
“미안하면 좀 죽여.”
고간을 누르는 살덩이가 묵직해 한주는 끄응 불만을 표했다. 흘겨보지만 정말 싫어하지는 않았다.
우강희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방금,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
그는 허리를 움직이며 한주의 것을 눌러 자극했다.
“왜?”
평온하게 대답했다.
“러트가 왔어.”
허리를 피하려고 움직이던 한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 벌써? 아직 시즌이 아니잖아.”
“며칠이 남았는데 시작했어.”
말하면서 점점 강희의 숨이 거칠어졌다.
“왜, 왜? 예정일이 아닌데.”
진짜 놀랐는지 목소리가 튀었다. 희게 질린 얼굴이 조금 얄미워 강희는 허리에 힘을 주어 증거를 알려 주었다.
몸에 열이 올랐다. 손에 잡힌 손목의 동맥 부분을 엄지로 부드럽게 쓸며 다시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입술이 마르고 갈증이 심해졌다.
“어디 아픈 거야? 몸이 안 좋으면 너 예정이 어긋나잖아.”
그 와중에도 한주는 그를 걱정했다. 위험한 사람은 자신인데.
이유.
이유는 안다. 하지만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부끄럽고, 한주에게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서 심술도 솟았다.
“아프지는 않아.”
“그럼 다행이고…….”
시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 말했다.
“러트면 꼭 노팅까지 해야 해? 그, 노팅까지 하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해? 거기까지는 안 찾아봤는데…….”
왜 이리 사랑스러운 말만 할까.
강희는 와락 한주를 끌어안았다.
숨이 막히도록 폐가 눌리는 압력에 힘들 텐데 한주는 한숨을 내쉬며 받아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맞닿은 심장이 동시에 뛰었다.
“먹여 주고 씻겨 줄 테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한테 다 맡겨.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날 믿으면 돼.”
가능하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도록 감금하고 싶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보고는 받지만 늘 부족했다. 도망치지는 않겠지만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불안이 치솟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 옆에만 있어.”
보상하듯이 눈앞에 한주가 나타나면 불안이 사라졌다.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기분이 되었다.
원한다면 무슨 짓이든.
박한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예 목줄을 채우지?”
“그래도 돼?”
“……다음 러트 때도 원하면 해 줄게.”
달콤함에 흠뻑 취해 강희는 혀를 내어 한주의 입술을 핥았다. 피부를 맛보며 피부 아래의 속살을 핥듯이 혀끝에 힘을 주었다.
“좋아, 너무 좋아. 박한주.”
박한주에게 각인했다.
평소에도 부끄러워하는 한주에게 ‘좋아해, 사랑해.’를 얻어 냈는데 오늘 침대 안에서 듣자 모든 감각이 솟구치며 변했다.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박한주에게 각인했다고.
“그런 취향인 줄은 몰랐지만, 러트 때만큼은 맞춰 줄게.”
한주는 장난이었지만 강희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조용하던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한주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전원을 끄겠다고 했지만 급한 연락을 위해 제발 끄지만은 말아 달라고 조은석이 부탁했다. 힘을 썼는지 강희의 핸드폰은 별장에 온 이후 조용했다.
조은석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자 문자가 도착했다.
[반경 15km 안의 사람들이 이상 반응을 일으켜 대피시켰습니다. 10분 이내에 연락이 없으시면 긴급 팀이 출동할 예정입니다. 이성이 있으시면 상태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밖은 우강희의 페로몬으로 난리였지만 별장 안은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