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5. 대학생 박한주 (30/31)

외전 5. 대학생 박한주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학생은 맨 뒤에 앉아 교수의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가방과 책을 챙겨서 곧장 강의실을 나갔다. 학생들은 뒤늦게 일어나며 뒷문으로 나가는 그 모습을 보았다.

과에서 어울리지 않는 아웃사이더는 특별할 것 없지만 학생들은 한 번씩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 박한주, 베타 맞아?”

한주는 변기에 앉아 목뒤를 찍은 사진을 보다가 제 이름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보다 두 살 많댔나?”

“재수했나 보지. 그 사람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 맨날 후드를 쓰고 있잖아. 얼굴을 가리려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렇게 다닌대?”

학생들이 단순히 한주를 어려워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에 적의가 있었다.

“몰라, 관심 끌고 싶나 보지. 머리나 기르고, 음침해.”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고.’

한숨을 푹 쉬며 한주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이빨 자국과 울혈이 검붉게 남은 뒷덜미가 찍혀 있었다.

‘우강희, 이 자식. 그렇게 물지 말라고 했는데.’

페로몬은 소취제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지만 자국만은 눈에 띄었다. 하도 물어 대는 통에 머리를 좀 기르기는 했지만 다 가리지는 못해서 학교 올 때는 후드를 써서 가렸다.

알파들이 잠자리 상대의 뒷덜미를 무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딱 봐도 척인 상황이라 내놓고 다닐 수 없었다.

“근데 마세라티 탄다는 놈이 왜 그러고 다닌대? OT와 학과 모임은 다 패스하더니 갑자기 마세라티 타고 나타났다며?”

“아니야, 마세라티 모는 남자가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대.”

“뭐야, 그게?”

‘아, 마세라티? 무원 아저씨가 바래다주던 날인가.’

계무원은 가끔 한주 앞에 나타나 한 번씩 자기 회사로 들어오라고 찔렀다. 투자를 찍어 주던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사부 오지한과 잘되도록 오작교가 되어 줘 연애로 바빠지자 그나마 횟수가 줄었다.

“일전에는 〈러브 인 서울〉의 김지영이 만나러 왔잖아. 일주일 전에는 S대의 유명한 의대생 이성진과 카페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던데.”

“와, 뭐냐. 베타가 아니라 오메가인 거 아니야? 알파들만 후리네.”

왜 그리 절 보는 시선이 좋지 않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남의 눈 무서워서 친구도 만나지 말라고?’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세 달째였다. 2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유자적 여행을 했고 그동안 강희와 친구들은 이메일과 전화도 자주 하고 직접 한주를 만나러 비행기 타고 날아오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2년 만에 한국에서 만났다며 쳐들어오니 그냥 가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뭐 하는 놈이래? 입고 다니는 거 보니 금수저급은 아니던데.”

“도대체 인생 어찌 살아야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나. 졸업해도 취직 걱정은 없어 좋겠다. 얼굴은 조금 반반하던데 술집이라도 나가는 거 아니야?”

질 나쁜 헛소리에 한주는 문을 열고 나갔다. 변기 칸에서 그들이 씹고 물고 뜯던 사람이 나오자 그들은 손도 닦지 않고 후다닥 나갔다.

“그냥 학교만 열심히 다녀야겠네.”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글렀다. 애초에 우강희 때문에 쉽지도 않았다.

2년간 종종 여행지로 한주를 찾아왔으면서 아예 한국으로 들어가자마자 참았던 집착을 터뜨렸다.

일주일은 그에게 붙들려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했고 그의 회사 일이 마비된다면서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애걸복걸하고 나서야 출근하면서 한주를 놓아주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주가 일찍 들어가 그의 퇴근을 맞아 주어 그나마 기분이 나았지만 여전히 밤마다 물고 빨며 흔적을 남겼다.

“박한주! 여기 있었구나! 가자!”

화장실에서 나와 한 발 떼자마자 목에 단단한 팔이 걸렸다. 팔꿈치가 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과대인 이천원은 동기보다 다섯 살 위였다. 눈치 없지만 발이 넓어 이제 한 달이 넘었는데 학교 내에서 그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저 가야 해요.”

“아직 5시도 안 됐어. 가긴 어딜 가. 알바도 안 하지? 이 시간에 집에 가도 재미없잖아. 가끔은 같이 어울리자.”

“술도 전혀 못 마셔요.”

“그럼 탄산음료 마셔. 다른 과 애들이 모이는 스터디인데 교수님들도 몇 분 오신다고 하니까 눈도장 찍으면 좋을 거야. 너 학기 초에 몇 번 빠져서 학점 안 좋잖아. 가서 얘기 잘해 봐.”

그러잖아도 우강희 때문에 초반에 일어나지 못해 많이 빠져서 위험했다.

“저 진짜 술 한 방울도 못 마셔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서 한 잔 마시면 병원 실려 가요.”

“그래, 알았어. 내가 잘 커버 쳐 줄게.”

한숨을 푹 쉬자 용케 허락으로 알아듣고 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 * *

[나 과대와 얘기하느라 늦어.]

“근처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요?”

톡을 보내자마자 강희가 읽었다. 답장이 오기 전에 얼른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이천원의 차는 서초에 도착했다.

“학교 근처에는 먹을 곳 없어. 답답하지 않아? 후드를 왜 그렇게 쓰고 있어?”

머리로 뻗어 온 손을 피하며 한주는 냉정하게 말했다.

“벗기면 저 갈 거예요.”

“아이구, 완전 고양이네. 안 만지니 걱정 마. 내리자.”

몇 번 와 보았는지 이천원은 엘리베이터의 14층 버튼을 눌렀다. 안내판의 14층은 비어 있었다.

“경영학과 2학년 윤진이 운영하는 모임 장소인데 같은 과 1학년 로열 오메가 성시우를 꼬시기 위해 만든 자리야. 그러니까 눈치껏 행동해. 괜히 거슬리지 말고.”

“그럴 자리면 절 데려오지 말아야죠.”

이천원이 14층에서 내리면서 한주를 힐끔 보며 눈웃음을 쳤다.

“그 성시우가 널 한번 만나 보고 싶단다.”

“제가 없으면 안 되는 모임이었네요.”

“성시우에게 호감 보이는 교수들도 오시니까 절대 나쁘지 않을 거야. 이 기회에 친해져 봐. 성시우를 친구로 두면 학교생활 편할걸. 인생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로열 오메가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사람이 왜 저한테 관심이 있대요?”

“모르지. 지나가는 말로 널 만나 보고 싶다고 했대. 너 온다는 소리에 정말로 참석했댄다.”

“이대로 제가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아주 학교생활이 고달프겠지?”

이천원이 생글거리며 협박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와, 누가 이 사람이 눈치 없다고 한 거야?’

남들은 쉽게 다니는 학교가 한주에게는 참 어려웠다.

이천원은 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철학과 1학년 박한주 데려왔습니다!”

검은 문이 재강원 학생회 OB의 회원제 클럽을 떠올리게 했다. 그다지 한주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어?”

“어서 와. 쟤가 그 박한주야? 소문대로 여기서도 후드를 눌러쓰고 있네?”

열두 명의 사람이 넓은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그중 셋은 교수였다.

이천원은 한주에게 중앙의 소파에 앉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반대편에는 한눈에도 알아볼 로열 오메가가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이 윤진이야. 잘해.”

조언하고 빠른 걸음으로 이천원은 윤진에게 걸어갔다.

“진아, 기다렸지? 와, 내가 박한주 오기 싫다는 거 설득을 하느라고 고생했지 뭐냐.”

“엄살은. 성시우, 봤지? 진짜 왔다.”

성시우는 멀뚱히 서 있는 한주를 보고 미소 지었다.

가끔 친구들을 따라 파티에 참석해서 로열 오메가의 아름다움은 알지만 성시우는 좀 더 특별했다.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얀 피부,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 눈을 깜빡일 때마다 팔랑거릴 것 같은 긴 속눈썹.

하나하나 뜯어봐도 미형이었지만 모아 놓으니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안녕.”

“용건이 있으면 찾아오지.”

한주는 시큰둥하게 거리를 두고 앉았다. 윤진은 한주를 훑어보았다.

“뭐야, 별거 없는데. 실내 들어와서까지 왜 후드를 쓴 거야? 얼굴 좀 제대로 보게 벗어 봐.”

“놔둬, 콘셉트래. 철학과 애들 좀 이상하잖아.”

“관심 끌려고 별짓을 다 한다니까.”

당사자를 앞에 두고 말을 가리지 않았다. 한주는 재강원 고등학교가 생각났다.

‘우강희를 제외하고 알파들은 왜 다 이렇지? 우리 강희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렇게 보려나?’

조금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 강희는 착한 애인데. 러트 때만 아니면 그래도 괜찮은 알파인데. 아니, 집착만 좀 줄이면 좋을 거 같다.

다른 생각을 하는데 속눈썹을 팔랑이며 성시우가 한주를 보고 있었다. 손에 턱을 괸 모습이 화보 같았다.

“너, GO투자홀딩스의 계무원 대표를 알더라?”

“응?”

“나, 그 사람 차에서 네가 내리는 모습을 봤어. 하얀 마세라티.”

‘그놈의 마세라티!’

윤진이 소문을 들었는지 코웃음을 쳤다.

“마세라티가 뭐 특별하다고.”

“GO투자홀딩스 대표가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는 거야?”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들 주위로 모여들었다. 교수들은 그들끼리 얘기하고 있었는데 한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GO투자홀딩스의 대표를 아나? 작년에 강연을 신청했었는데 거절했다고 하던데.”

“GO투자홀딩스면 300배로 유명한 곳이잖아?”

교수들은 들은 얘기가 있는지 흥미를 보였다.

“다니고 있는 도장 사부님의 친구입니다. 그래서 가끔 만나고요. 그날도 도장에 들렀다가 만나서 바래다주신 거예요.”

계무원을 높여 말하려니 어색했다.

“꽤 가깝네. 그럼 올해 강연 하나 부탁해도 되겠어. 자네가 자리를 좀 마련해 봐. 어떻게 그런 투자 성과를 이뤘는지 비법이 궁금하단 말이야.”

“강연은 이미 상반기 스케줄 다 짜지 않았나?”

“자리 하나 만드는 게 뭐 힘들다고.”

교수의 사심이 들어갔는지 열정적이었다.

“공과 사는 철저하신 분이라 힘들 거예요.”

“시도는 해 봐. 성공하면 자네 학점은 책임지지.”

한주는 애써 웃었다. 한주가 회사에 들어간다고 딜을 걸면 계무원은 무슨 짓이든 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학기 초인데 학점이 아쉽지도 않고.

게다가 학점을 운운한 교수는 철학과와는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그럼 S대 이성진과 배우 김지영은? 동갑이니 그들과 친구야?”

성시우는 꽤 한주에게 관심이 많았는지 소문 얘기를 계속 꺼냈다.

“어, 친구야. 같은 고등학교 나왔고.”

“네가 재강원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베타인데 재강원 고등학교를?”

한주가 다닐 때만 해도 여러 사건으로 그 위상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최근 2년간 다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

재강원 고등학교를 다녔던 베타.

들은 소문이 있는지 비웃음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UP테크놀로지의 대표 우강희가 배우 김지영과 동창이자 친구였지? 자네 설마 그 우강희 대표와 동창인가?”

배우 김지영과 우강희가 친구라는 말에 한주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움직였다.

만나기만 하면 지영은 강희를 화나게 하려고 긁어 댔지만 우강희는 받아 주지도 않았다.

“동창이죠.”

“와, 계무원 대표와 더불어 우강희 대표까지? 우리 학교에 이런 황금 인맥을 가진 인재가 있었다니! 왜 경영학과를 안 왔지?”

“이번에 UP테크놀로지가 상장하자마자 주식이 400배로 뛰었는데 기회를 놓쳤지 뭐야. 가지고만 있으면 10년 내에 대박 칠 회사인데!”

뺨이 굳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내가 다니는 학교인데 왜 주변 사람들 얘기가 나올까.’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성시우가 입을 열었다. 소문에 대해 물을 때보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

“박한주, 나 부탁이 있는데.”

주변에 있던 알파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달콤한 로열 오메가 페로몬이 퍼져 나갔다.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매혹의 페로몬이 퍼졌다. 로열 오메가의 페로몬이다. 알면서도 그 매혹에 눈빛이 변하고 열기가 깃들었다. 어떤 알파라도 강한 오메가를 원한다. 제 씨를 품고 우수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강한 오메가는 매력적인 상대였다.

예상되는 말에 한주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처음부터 로열 오메가가 있는 자리라고 했으면 오지 않았다. 한주에게 관심이 있다고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알파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진과 우강희, 소개해 줄래?”

‘역시.’

시선 끝에 이천원이 닿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언제나 뒤늦게 하기에 ‘후회’다. 떨떠름한 한주의 표정을 보면서도 성시우는 괘념치 않았다.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자리만 마련해 달라는 거야. 그들도 로열 오메가를 소개해 준다고 하면 좋아할걸.”

로열 오메가의 페로몬이 진해졌다.

미미하게 알파들의 뺨이 붉어지며 열기가 돌았다.

거절당해 본 적이 없기에 성시우는 요구하는 입장이어도 당당했다. 한주가 말없이 보고만 있자 성시우는 명함을 두 장 꺼내 내밀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마. 프라이빗 명함이니까. 소개해 주기 불편하면 명함만 그들에게 주면 돼.”

제 명함을 받으면 반드시 연락을 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한주는 이름과 전화번호, 어느 학교 경영학과 등이 적힌 명함의 뒤를 보았다. 큼지막하게 로열 오메가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보다 더 큰 스펙은 없다는 것처럼.

자신감이 대단했다.

“박한주에게 관심 있다더니 그 용건이야? 지금 내 앞에서 다른 알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해?”

인내심이 다 한 윤진이 끼어들었다. 유혹의 페로몬을 성시우에게 보내며, 내가 찍은 오메가라고 광고했다.

계무원이나 이성진은 깎아내릴 수 있었지만 우강희는 달랐다.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앱 개발로 대박 터뜨리고 대기업 통신사와 기본 앱 계약을 했다. 그리고 이후 게임과 쇼핑 앱을 연동하면서 회사의 규모가 커졌고 상장까지 진행되어 기업 가치가 뛰었다.

윤진보다는 한 살 어리지만 고졸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난 로열 오메가니까.”

성시우는 눈웃음을 쳤다.

“나에게 어울리는 알파라면 많이 만날수록 좋지. 날 가지고 싶으면 그만큼의 실력을 보여.”

턱을 살짝 들며 도도하고 오만하게 자신의 가치를 뽐냈다. 성시우의 매혹 페로몬은 수그러들지 않고 윤진의 페로몬과 섞였다.

“아주 매력적이야.”

“잘 알지.”

명함을 지갑에 넣지 않고 보고만 있자 성시우는 깜빡 잊었다며 말을 이었다.

“아, 하긴 너에게도 그에 따르는 대가가 있어야겠지? 걱정 마, 소개비는 두툼히 챙겨 줄게. 아니다, 명함만 건네주어도 사례는 할게.”

“뭘 믿고? 내가 명함을 주었는지 안 주었는지 어떻게 알아?”

“명함을 주었다면 연락이 올 테니까.”

성시우는 싱긋 웃었다.

“베타라 넌 페로몬을 모르겠지만 알파의 본성은 강한 오메가에게 끌리게 되어 있어. 강한 자식을 남기고 싶은 본능이 로열 오메가를 찾게 하지.”

강한 자신감이었다.

한주는 명함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우강희도 그럴까.’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우강희도 러트가 있고 본능적으로 한주에게 소유욕을 보이며 뒷덜미를 깨물었다.

파티에서 로열 오메가를 만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페로몬으로 유혹하면 그도 흔들릴까.

학교 다닐 때 우천희의 괴롭힘으로 오메가의 성페로몬이 퍼진 도서실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영향을 받아 힘들어했었다. 그 이전에는 자선 파티에서 큰일이 날 뻔하기도 했고.

모두 한주를 만나기 전이지만 명백히 오메가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는 증거였다. 얇디얇은 종이가 한주의 손가락 사이에서 팔랑였다.

“저 모습을 보니 허세네. 베타가 우강희와 친구였다니, 믿을 만한 말을 해야지. 그 S대 놈과 김지영도 우연히 만났는데 와전된 걸 거야.”

모임을 주최한 윤진은 다른 사람에게 이목이 쏠리자 못마땅해했다. 게다가 관심을 끌고 싶은 성시우까지 베타 베타에게 관심을 보이자 박한주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재강원 고등학교에서 베타가 어떤 취급인지 모르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 많아. 계무원 대표도 직접 데려다주기까지 했고.”

성시우가 두둔했지만 윤진은 틀어진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렇다고 친하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겠지. 동창이라고 다 친구도 아니고. 재강원 고등학교에 다녔으니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뻔뻔하게 친구라는 말이 나오네.”

다른 알파들도 윤진처럼 한주에게 반감을 가졌는지 동조했다.

“친구라면 지금 전화 걸어 봐. 전화번호 정도는 알겠지.”

“애초에 말이 안 돼. 그 잘난 알파들이 베타와 친구를 하겠어? 재강원 고등학교를 나올 정도면 제법 잘사는 집안인데 저 녀석은…….”

뒷말은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뉘앙스만으로도 다 전달되었다.

‘어쩜 이렇게 커서도 달라지지 않을까.’

철 좀 들어라, 하는 말이 절로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런 자리에 앉아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테이블에 명함을 던지고 한주는 일어났다.

“아무래도 제가 있을 자리는 아닌 거 같으니 이만 가죠.”

그러자 비웃음이 뒤따랐다.

“봐, 꼬리 말고 도망치네.”

“역시 개뻥이었어. 야, 우리 다 속았다.”

“박한주 학생, 진짜인가? 계무원 대표가 데려다주었다면서?”

분위기는 익숙하게 변했다.

“아니요, 제 눈으로 계무원 대표가 박한주를 내려 주는 모습을 봤어요.”

“그건 그렇다 해도 동창들은 그저 우연히 만났겠지.”

“성시우, 괜히 소문 듣고 헛발질한 거야. 말이 되는 사람에게 부탁해야지. 아무리 재강원 고등학교를 나왔다지만 말이 돼?”

아니라고 증명하기도 피곤했다. 어차피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학교 분위기는 별다를 것 없어 보이니 사람에게 치이지 않게 조용히 졸업만 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어떤 소문이 퍼지든 말든 상관없다.

한주는 왈가불가하지 않고 이천원을 보았다. 그래도 절 데려온 사람이니 인사는 했다.

“이 정도면 됐죠? 먼저 갑니다.”

“어? 그래.”

문으로 향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윤진은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마디 더 보탰다.

“이래서 베타는 안 된다니까. 구질구질해. 가진 것도 없으면서 허세만 남았지. 재강원 고등학교도 제 부모 등골 빼먹으며 우겨서 간 거 아니야?”

절로 발을 멈춰 세우는 말이었다.

뼈를 때렸다.

리셋되어 오직 한주만이 기억하는 과거였다. 두 번째 삶을 살면서 과거를 지우고 바꾸었지만 한주에게는 아픈 기억이었다. 윤진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

아직 어리고 철없는 말에 굳이 대학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며 폭력을 휘두를 필요가 있을까.

냉정하게 저울질했다.

“왜? 찔렸어?”

심드렁하던 한주의 표정이 변하자 윤진은 더 불을 지폈다.

“설마 진짜야? 그런데 고작 대출만으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아닌데? 부모가 무슨 짓을 해서 널 그 학교에 보냈기에 그렇게 표정이 변할까? 궁금하네.”

“적당히 해. 교수님도 계신 자리야.”

이천원이 중재했다.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 분란을 일으키면 자신이 곤란해진다.

“교수님들도 궁금하실걸요.”

물러설 생각이 없는 윤진은 한주를 노려보았다. 베타를 향한 우월감이 눈에 보여 한주는 눈에 힘을 풀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

“저, 박한주 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입장할 때 보았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긴장된 분위기를 깼다. 날 선 분위기에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고 주저했지만 더는 밖의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윤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손님? 처음 온 놈에게 무슨 손님이 찾아와?”

“박한주 님을 찾으세요.”

누군지 뻔했다. 한주는 나가겠다고 말하려는데 직원의 말이 더 빨랐다.

“우강희 님이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강희가 누구인지, 조금만 경제 뉴스에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었다. 직원도 알아보았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이름에 모두의 입이 다물렸다.

‘기다리면 되잖아. 왜 찾아와서.’

혀를 찼다. 나가려는데 옆에 서 있던 성시우가 한주의 팔을 잡았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흥분에 목소리가 떨렸다. 팔을 잡은 손이 제법 억셌지만 한주가 힘을 주자 떨어졌다.

직원이 나가고 곧 구두 소리가 들렸다. 정갈하고 단정한, 일정한 걸음이 그 사람의 성격을 알려 주었다.

“진짜 우강희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복도를 따라 우강희가 걸어왔다. 막 회사에서 왔는지 슈트를 입고 걸어오는 모습이 패션쇼의 런웨이의 한 장면 같았다. 어디선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처럼 빛났다.

“맙소사.”

옆에서 탄식이 터졌다. 로열 오메가조차 감탄했다.

겨우 스물두 살의 알파의 등장에 교수들조차 넋을 놓았다.

우강희는 한주에게 곧장 걸어왔다. 한주의 옆에 로열 오메가가 페로몬을 흘리며 유혹하지만 시선은 한 사람을 보았다.

“왜 실내에서 후드를 쓰고 있어?”

그는 한주의 목을 쓸며 후드를 벗겼다. 춥지는 않았지만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한주는 어깨를 움츠리며 그의 팔을 잡았다.

“너 때문이잖아.”

“나?”

“그래, 그…… 남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아아.”

그가 눈웃음을 짓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주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성시우는 끊임없이 내보내는 제 페로몬에 우강희가 눈길도 돌리지 않자 애가 탔다. 알파이니 자신이 로열 오메가임을 모를 리 없었다.

어떤 이들은 무시해서 상대의 관심을 끌기도 하기에 우강희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새초롬하게 인사만 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자기소개도 필요 없고 이름도 필요 없다. 그들 세계에서는 페로몬이 명함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우강희는 힐끔 성시우를 보았지만 다시 한주를 향했다.

“얘기는 끝났어?”

“어, 가려고 했어. 가자.”

후드를 써서 헝클어진 한주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페로몬을 내보내지 않았지만 눈빛과 표정에 담긴 호감이 적나라했다.

성시우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로열 알파를 여러 번 만났지만 우강희 같은 인물은 없었다. 기운만으로도 압도되는 알파였다. 평생에 이런 알파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우강희 씨, 저 로열 오메가 성시우라고 해요. 제 명함이에요.”

한주가 테이블에 던져 놓았던 명함을 들고 있길 잘했다. 우강희에게 내밀었다. 도도해 보인다는 표정을 지우고 수줍게 뺨을 붉혔다.

우강희는 미미하게 미간을 좁히더니 한주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떨듯이 툭, 가볍게 옷을 털었다.

“매너가 있으면 페로몬을 조절하세요. 타인에게 묻히지 말고.”

그리고 한주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이끌었다.

“저녁은?”

“아직. 배고파.”

“내일 주말인데 야외로 나갈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다정한 연인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연인의 말에 웃었다.

“상장해서 회사 바쁘다며?”

“내 회사에서 나보다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은 없어. 대표도 주말은 쉬어야지.”

“진짜 쉴 수 있어? 그럼 춘천 닭갈비 먹으러 가자. 숯불에 구운!”

그가 한주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쓸자 뒷덜미가 보였다. 짙은 울혈 자국이 또렷했다.

우강희는 멍하니 절 바라보는 사람들을 일별하고 한주와 나란히 걸어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괜찮아?”

집으로 오는 내내 우강희의 눈치를 보던 한주가 차에서 내리며 우물거리며 물었다.

“응? 아, 회사는 괜찮아.”

“아니, 그거 말고.”

말하기 불편한지 뒷머리를 거칠게 긁더니 한주는 한숨을 쉬었다.

“내 옆에 있던 사람, 로열 오메가였는데 페로몬 내보냈잖아. 널 유혹했을 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강희는 뒤에서 껴안아 배 앞에서 양손을 맞잡으며 한주를 품에 넣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몇 센티미터가 더 커서 이제 품에 쏙 들어왔다.

한주는 때때로 부러운 눈으로 그의 몸을 보곤 했다. 그는 현재의 한주가 마음에 드는데.

뺨에 입 맞추며 귓가에 속삭였다. 잊지 않고 검은 피어스를 혀로 핥았다.

“말했잖아. 난 너에게 각인해서 다른 사람의 유혹에 영향을 받지 않아.”

알파인 그가 베타인 한주에게 각인하고 연인이 된 일로 한주는 인류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훌륭한 유전자를 쓸데없이 버리고 있다고.

나중에 정자은행에 조금은 보존하자고 장난처럼 말하지만 한주의 진심 같기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는지 강희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일부러 말로 뱉지는 않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죄책감 때문에 한주는 그의 억지를 들어줄 때도 있으니까.

“협상 테이블에서 꽤 도움을 받고 있어. 제아무리 뛰어난 오메가의 유혹에도 난 흔들리지 않거든. 네 덕분에 우강희는 무적이 되었지.”

“내가 무슨 궁극의 아이템인가.”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이 고마워 한주는 그의 얼굴을 붙잡아 입술을 겹쳤다.

그동안 우강희와 지내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짐승에게 칭찬은 제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닿은 입술로 그의 입술이 얇게 늘어지는 웃음이 느껴졌다. 한주의 보상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입술을 벌려 더 게걸스럽게 혀를 섞어 빨았다. 경험이라고는 서로뿐인데 우강희는 실력이 일취월장해 그의 키스만으로도 한주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한주의 배를 감싸 몸을 지탱해 주면서 그는 고개를 틀어 귓불을 핥았다. 빨자마자 반응이 즉각 오며 한주가 어깨를 움츠려 허리를 굽혔다.

“헉! 너 벌써!”

엉덩이에 닿은 묵직한 부피에 한주는 뒤가 뜨거워졌다. 부피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쩐지 전날에도 한주만 물고 빨면서도 손을 묶어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더니 이유가 있었다.

“너, 러트야?”

“걱정 마, 진성은 아니야.”

“이제 차이 없잖아!”

쥐어짜며 항의했지만 다시 귀를 핥으며 빠는 통에 그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보통 알파가 오메가에게 각인을 하면 서로의 사이클에 맞춰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과 알파의 러트 주기가 같아진다.

그런데 우강희는 히트 사이클도, 러트도 없는 베타에게 각인해 버렸다.

맞출 사이클이 없으니 혼란을 일으킨 강의의 페로몬 기관은 곤란하게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각인한 상대에게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규칙적인 진성 러트가 왔다.

가끔 그가 심하게 하고 싶어지는 날이 되면 의지에 따라 러트 시기가 변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강희의 의지로 제멋대로 발생했다.

“야아, 귀는 좀…….”

귀를 직접 핥고 빨리는 오싹함과 질척거리는 핥는 소리, 강희의 거친 숨소리, 귓구멍까지 파고드는 그의 호흡, 모든 것이 다 느껴져 다른 곳을 만지고 빨 때보다 한주는 더 느껴 버린다.

“흣, 우강희…….”

목소리는 울음이 섞였고 강희의 팔에 몸을 기대며 의지했다. 주차장부터 집 안까지 이어져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 내외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집이 아닌 외부라는 생각 때문인지 한주는 거부감이 들었다.

“박한주는 귀가 약하지.”

그가 뒤에서 안고 있는데 무릎이 한주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더니 단단한 허벅지로 엉덩이 사이를 눌렀다. 가볍게 치대며 흥분을 고조시켰다. 그러지 않아도 한주의 것은 충분히 발기해서 괴로운데.

어느새 옷 안으로 파고든 큰 손이 한주의 몸을 지탱하면서 심장 쪽의 가슴을 그러쥐었다. 거유를 쥐듯이 한껏 손을 펴 전체적으로 둥글게 문질렀다.

“나, 나 안 되겠어.”

다급하게 바지 버클을 풀었지만 지퍼를 내리기 전에 양손이 그에게 잡혔다.

“아직 안 돼. 벌써 그렇게 빼면 나중에 힘들어져.”

“아, 우강희, 너 진짜…….”

뒷말은 그에게 삼켜졌다. 한주는 앞으로 진행될 수순이 떠올라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극한의 쾌감은 무섭기까지 했다. 자아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라 한주는 싫었다. 사람이 아닌, 쾌감만을 느끼는 짐승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강희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잘근잘근 밟아 주고는 도망쳤을 텐데 하필 그런 쾌감을 주는 사람이 우강희다.

“한주야, 집까지는 못 참겠어.”

달칵, 다시 차 문을 열고 강희는 한주를 뒷좌석에 눕혔다. 차가운 가죽이 피부에 닿자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던 한주는 눈을 깜빡였다.

주차장에 차가 세 대 있었는데 개중 뒷좌석 공간이 넓은 세단이었다.

한주는 당황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뭐, 뭐야? 여기서 한다고?”

“금방 끝낼게.”

몸을 옥죄는 상의를 벗어 바닥에 던지고 우강희가 몸을 숙여 뒷좌석으로 들어왔다. 거대한 곰이 덮치듯이 뒷좌석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그들만 쓰는 공간인데도 강희는 차 문을 닫았다.

닫힌 공간이라 페로몬 향기가 진해졌다.

폐부 깊숙이 들어와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진한 향기에 그러잖아도 발기한 한주의 것이 아플 정도로 단단해졌다.

페로몬의 영향이 아니라 학습에 의한 효과다.

파블로프의 개가 학습으로 종을 울릴 때마다 침을 흘리듯이 한주는 강희의 진한 페로몬을 맡으면 몸이 달아올랐다.

그의 페로몬 향기는 한주에게 ‘널 안고 싶어.’라는 신호였다.

어쩌다 보니 반대편 문에 등이 닿았다. 차가운 재질에도 몸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강희는 젖은 소리를 내며 한주의 것을 빨 듯이 혀를 빨며 가슴을 어루만졌다.

어느새 바지 버클은 풀고 감질나게 강희의 손이 허벅지의 브리프 틈새를 열며 피부를 문지르고 있었다. 아예 밀어 넣어 만지면 좋으련만 깔짝거리며 살이 접히는 부분만 건드렸다.

한주는 사정감이 몰려들자 강희의 어깨를 움켜잡으며 밀었다.

“자, 잠깐, 나와아.”

“기다려, 보내 줄게.”

바지와 브리프가 한 번에 무릎까지 내려지며 크고 긴 그의 손이 한주의 성기를 잡더니 다른 손으로 뒷구멍을 문질렀다. 언제 적셨는지 젤에 질척해진 손가락이 주름을 벌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야아. 흣!”

강희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한주는 몸을 움츠렸다.

이때가 제일 싫다.

항상 상처 입힐 수 없다면서 그는 정중했고 집요하게 뒤를 풀어 주었다. 빨리 넣어 해소하면 좋겠는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참지 못하고 내가 하겠다면서 뒤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우강희가 눈이 돌아가 핥으며 빨아서 그 후 다시는 한주 스스로 뒤의 근육을 풀지 않았다.

“넣는다.”

“말하지 말고 빨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릎이 가슴까지 밀어붙여지면서 다리 사이가 적나라하게 우강희의 앞에 드러났다. 그때까지 그는 한주가 사정하지 않도록 성기의 요도 구멍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젤에 축축해진 주름은 묵직한 부피의 성기가 누르며 벌리기 시작했다.

“흡!”

“또 숨 참는다. 힘을 풀라니까. 도와줄게.”

“아, 아니! 아으!”

거절했는데도 그의 손가락이 성기의 머리 부분을 눌렀다. 예민해진 곳을 단단한 손가락 끝이 문지르자 온몸에 전율이 지나갔다. 다리가 발발 떨리며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음.”

더 조여 버리는 걸 알면서도 그는 손가락을 다시 세웠다.

“으읏!”

본능적으로 참았다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느슨해진 잠깐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그의 것이 한주의 뒤로 쑥 들어오며 채웠다. 기둥에 불거진 혈관과 단단해진 심지가 한주의 연약한 주름을 문지르더니 안쪽에 볼록한 곳을 눌렀다.

그때 우강희가 손을 놓자 울컥 첫 사정액이 터졌다.

“아으응!”

몸을 떨며 이를 앙 깨물며 내지르는 절정의 모습을 강희는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한주가 얼굴을 돌리지 않도록 턱을 잡아 저를 보게 했다.

“이때의 네 얼굴이 좋아. 나 때문에 한껏 느끼는 얼굴이.”

“이, 이 마조 새끼!”

입 맞추느라 그가 상체를 숙이자 결합한 부분이 눌리며 깊어졌다. 신음이 강희에게 먹혔다. 목뒤를 지분거리며 그는 고개를 틀어 더 깊이 입술을 겹치며 남김없이 핥았다.

“한주야, 한주야.”

한주는 뒷문에 등을 기대고 강희에게 눌려 몸이 구겨졌다. 넓다고는 하지만 남자 둘이 마주 보며 앉아 공간이 좁았다. 그는 허리를 움직였다.

“너, 진짜 가만 안 둬어!”

“응, 그래. 한주야.”

죽인다고 해도 좋다고 목을 내어줄 강희였다. 허리를 치대며 밑을 괴롭히면서 그는 운전석의 헤드레스트를 움켜쥐며 더 한주를 몰아붙였다. 어깨를 미는 한주의 팔에 힘이 없었다.

“아, 하아, 악, 윽!”

그의 움직임에 따라 짧게 끊어지는 신음을 들으며 우강희는 입술을 핥았다.

“한주야, 박한주.”

안아도, 제 것으로 쾌감을 주어도, 절여지듯이 페로몬을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은 갈증에 그는 한주를 꽉 껴안으며 목덜미를 깨물었다. 더는 틈이 없을 정도로 한주가 그의 것을 품어 주었다.

“히익!”

부르르 몸을 떨며 한주의 몸이 확 긴장하며 조였다. 툭툭 얕게 허리를 움직이며 조금 더 자극하자 그의 배가 젖어 갔다. 사정하자 한주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축 늘어졌다. 목을 핥으며 그 뺨에 뺨을 가져갔다.

“음.”

뜨겁게 감싸는 한주의 안이 좋아 깊은 만족감에 목을 울리는데 흠칫 한주가 몸을 떨었다.

“왜 아직도 이 상태야…….”

사정했지만 안을 누르는 부피가 전혀 줄어들지 않아 한주가 앓는 소리를 냈다.

강희는 혀를 내밀어 한주의 입꼬리를 핥고 뺨을 입술로 지분거리며 등을 감쌌다.

심장이 저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두근거리며 목뒤를 타고 약물이 주입되듯이 아찔한 감각이 퍼져 나갔다.

한주의 몸이 다시 움칫 튀었다.

속에서 점점 내장을 누르며 커지는 압박감에 한주는 끄응 신음을 삼키며 강희의 어깨를 껴안았다. 저보다 여리지만 단단한 팔이 감싸자 우강희는 한주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벌써 노팅이야? 왜…….”

힘겨운지 헐떡이면서 항의하는 소리에 우강희는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너무 좋아서.”

뇌가 순두부처럼 물렁해지며 부드럽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우강희를 흥분시킬 수 있는 것은 오메가의 페로몬이 아닌, 순수한 한주의 냄새뿐이다.

한껏 한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그는 좁은 곳에서의 섹스를 좋아했다. 몸을 부딪치고 비비며 도망가지 못하게 가두어 둔 느낌이라 만족감이 높았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그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하는 한주를 느끼면서 우강희는 눈을 감았다.

내 거다.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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