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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소자 뱀이 됐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팽팽 돌면서 한참 동안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죽었는데 일어나니 뱀이 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흔한 개나 고양이도 아닌 뱀. 뱀이었다.
뱀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몸이 나른하다고 느꼈다. 뱀은 온도에 치명적이었던 것이 생각나 이러다가 진짜 죽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따뜻한 곳으로 가자 싶어 몸을 움직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미 일어난 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든 생각은 의식주였다.
인생…… 아니 뱀생 어찌할지…… 인……뱀생 새옹지마라 하였든가…….
뱀으로 환생했으니 사람이었던 난 죽은 게 확실했다. 그렇다고 뱀으로 살아난 것을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뱀으로서의 의식주는 어찌할 것인가. 추위를 피한 다음에는?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 밥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렇다고 운동이랑 담을 쌓아 온 내가 직접 사냥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뱀은 보통 쥐 먹던데…… 쥐 고기는 처음 들었고 먹어 본 적도 없었다. 운 좋게 고기를 구한다고 쳐도 생으로 먹지 못할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구워 먹자니 이 몸으로 불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나…… 생고기는 육회나 회밖에 안 먹어 봤는데……. 아, 복잡해. 먹고 안 죽으면 되지.
기껏 정리했던 마음이 다시 어수선해지면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뱀은 일주일에 한 번 먹는다는 걸 떠올려 아직은 굶어 죽진 않겠다 싶다가도 나중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나를 이딴 곳에 처넣은 새끼는 내 손으로 반드시 죽인다. 신이고 뭐고 내 알 바냐?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확 그놈의 모가지를 부러뜨려…… 아니 뱀 됐으니까 조여서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씩씩대며 신에게 열불을 토해 냈다. 이러다가 뱀생 1일 차 만에 얼어 죽겠다며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직감 따라 움직였다. 그때 사람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향했다. 가면서 역시 내 직감은 죽지 않았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집이 있다는 뜻. 몰래 들어가 들키지 않게 몸 좀 녹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사냥은 무리니까 숨어 지내며 먹을 것도 슬쩍 하려고 했었다.
드디어 좀 쉬는구나!
빨리 쉴 곳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몸이라 기어 오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고 무엇보다 추워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힘이 다해 길거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따뜻한 곳에 들어갈 생각에 신이 나서 열심히 기어갔다. 그런데 하필 내가 딱 나온 곳이 풀숲의 끝이었고 정원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아……. 운도 더럽게 없지.
사람을 발견해서 기쁨은 잠시 몰래 들어가는 건 망한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면 뱀이라고 하고 넘어가겠지…… 은근슬쩍 눈을 피하며 기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정원사는 빛의 속도로 무섭게 나에게 다가오더니 투박한 손에 잡혔다.
“하필 뱀이 이런 곳에 있다니…… 태자 전하께서 보시기 전에 빨리 치워야겠다!”
나를 재빠르게 낚아챈 정원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잡았다. 설마 또 뱀이 나타날 줄은…… 이번에도 전하의 침실에서 뱀이 발견되었다면……. 아무튼 피해가 생기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야.”
정원사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 죽는다!! 뱀 살려!! 얌마 숨! 숨 막힌다!!’
쉬익쉬익 거리며 빠져나오기 위해 애썼지만 안 그래도 나른한 상태라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자루 속으로 들어갔다.
“크기가 작은 거 보니 새끼인 것 같은데 지금 겨울잠 시기인데 새끼가 태어나나? 뭐, 상관없나. 누군가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지.”
정원사는 나를 처리할 속셈인지 길을 나섰다. 난 빠져나오기 위해 열심히 몸을 꼬고 비틀었지만,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내 축 늘어졌다. 이제 진짜 죽는 건가 생각하자 분이 차오르는 걸 참을 수 없어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아니 씨발. 뱀으로 환생했더니 걍 인생이 난장판이야! 당장 풀어!
“아이고, 힘도 넘쳐난다. 덩치와 다르게 힘이 장사네. 그러고 보니 친구가 그리 뱀술이 정력에 좋다고 하던데…….”
정원사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인과응보인지 나를 술로 만들겠다는 정원사의 말이 똑똑히 들렸기 때문이다. 사람이었다면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 소리였다. 정원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루 안을 열어 보더니 나를 슬쩍 훑어보았다. 약간 미간을 좁히다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좀…… 작긴 하지만 뱀만 들어가면 뱀술이지.”
그의 말에 입을 떡 하니 벌렸으나 정원사는 유유히 콧노래를 불렸다.
뱀이라 통탄스럽다…….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지만 나에게 한눈을 판 정원사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앞에 그림자가 지고 나서야 고개를 들은 정원사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고 깜짝 놀라 빨리 허리를 숙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내가 들어 있는 자루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악!
“저, 전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잠깐 산책 중이니 신경 쓰지 말아라.”
남자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이었고 말투는 근엄했다. 정원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약간 울먹이는 투로 이야기했다. 난 땅에 떨어질 때 충격을 받아 절로 신음 소리가 날 뻔했지만, 이때다 싶어 정신을 차리고 빛을 향해 열심히 기어갔다.
“태자 전하! 제르펠 전하! 어디 계십니까?!”
멀리서 누군가를 찾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하지만 이내 찾고 있는 이에게 자신의 위치를 밝혔다. 그런 상황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는 정원사의 손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열심히 기어갔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몸은 내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속으로 열심히 채찍질해서 허우적거리면서 자루 구멍을 찾아 겨우 밖으로 나왔다.
푸하! 드디어 나온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하지?
자루에 담겨 옮겨져서 여기가 어디인지 잘 몰라 주위를 둘러보는 중 시선이 느껴졌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웬 남자가 서 있었다.
응? 저 사람은 뭔데 뚫어져라 쳐다봐. 기분 나쁘…….
짜증을 내려고 했지만, 짜증을 내려던 생각조차 들어가게 하는 미모였다. 차가운 인상이지만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몸에 배어 있는 품위가 돋보였다. 멍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고개를 휙휙 저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내가 남자 얼굴에 넋을 잃을 줄이야. 웬만한 아이돌 뺨치는 미모였다. 잠자코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갈 곳을 모색을 해야 했다.
“하…… 전하. 이곳에 있었습니까.”
“세드릭 시끄럽다. 그건 그렇고 왜 뱀이 이곳에 있지?”
“네? 이런 곳에 뱀이 있을 리가…….”
뱀이라는 소리에 그를 휙 돌라봤고 그들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날름거렸다. 정원사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는 남자의 눈치를 보더니 암담했는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상황이 이상함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난 재빨리 반대편으로 열심히 기어갔다.
“독이 있으면 어쩌려고! 관리를 똑바로 하지 못해!!”
“히힉! 죄송합니다!”
“저번 사태를 잊었느냐? 특히 뱀은 궁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라 명령했지 않느냐!”
세드릭은 정원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질타했다. 정원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겨우 작은 뱀이지 않느냐. 나에게 위협이 될 것 같나?”
“전하께서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번 독살 사건을 잊으셨습니까? 아직 진범도 밝혀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작은 뱀이라 할지언정 함부로 넘길 수 없습니다.”
뒤에서 누군가가 스르릉 하며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고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나름 빛의 속도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뱀이 기어간다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결국 여기까지인가 싶어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뱀생 1일 차. 술독에 빠질 뻔한 걸 겨우 피하나 했더니 썰려 죽는 인생인가 봅니다. 아니 요즘 검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검이 나에게 닿기도 전 제르펠이라는 남자가 그를 막았다.
“쯧. 검을 거두어라. 무서워하지 않느냐.”
“에? 대체 무슨…….”
제르펠은 세드릭에게 단호하게 말했고 눈짓으로 정원사를 물러나게 했다. 세드릭은 당황하면서도 전하의 명령이니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패닉에 빠져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살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시선이 걸리적거렸다.
검에 썰려 죽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얘는 뭐야?
그는 하대가 아주 익숙한 듯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그 말투는 좋은 집안의 도련님 같았다. 계속 쳐다보는 시선에 나도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시선을 거두었다. 그래도 나를 살려 준 은인이었다. 그래도 원래 사람이었던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고개를 숙였다.
구해 줘서 고맙다! 얼른 나갈 테니 제발 신경 쓰지 마.
몸을 돌리고 길을 나서려는 순간 그가 말했다.
“새하얀 비늘이라. 괜찮군.”
그 말은 내 귀에 정확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아직도 나를 샅샅이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표정과 눈빛은 무감각하여 감탄하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얼떨떨했지만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던가. 한참을 무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말하는 게 비늘 칭찬이었다. 오히려 칭찬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니까 잘생…… 아니 예쁘다는 거 아니야? 일종의 외모 칭찬?
비늘은 내 몸의 일부였다.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뭔가 미묘하게 슬프면서도 칭찬을 받으니 입꼬리가 씰룩였다.
“전하. 이제 슬슬…….”
“표정 변화가 다양해. 재미있어.”
“네?”
“기뻐하고 있지 않으냐.”
제르펠은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세드릭에게 말했지만, 세드릭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를 죽이러 들었던 사람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난 턱을 쳐들면서 눈을 부라렸다. 세드릭은 슬쩍 제르펠을 보았다. 제르펠은 팔짱을 낀 채로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
“예로부터 백사는 신의 사자라고 하지.”
“그런 말이 있긴 합니다.”
“아일펠트 제국은 물의 축복을 받은 나라지. 그래서 수신의 존재를 믿고 있지. 백사는 수신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신의 사자라 하더군.”
나를 멀뚱히 보면서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낯선 단어가 있었다. 아일펠트? 수신?
백사가 수신의 사자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아이펠트는 생전 처음 들은 단어였다. 뇌리를 스치는 큰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전하니 뭐니 하던 게 떠올랐다. 말이 통해서 한국인 줄만 알았더니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환생했을 거라고 생각한 나의 착각이 부서졌다. 여기 사람들은 이상하게 검을 착용하고 있었고, 태자 전하라는 말을 썼다. 거기에 이름이 외국식 이름. 알지 못하는 나라. 이곳은 애초에 한국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과 복장으로 유추했을 때 서양 쪽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시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래, 좋게 쳐서 아이펠트라는 나라가 실존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내가 말을 알아듣는 이유는?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 결론으로 이르렀다. 이런 상황은 책 속에서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사고를 당했는데 다른 사람…… 아니 동물이 되어 있다는 것…… 그런데 말은 잘 통한다는 흔한 설정. 도망치느라 급급한 나머지 생각지도 못 한 상황이 들이닥쳤다.
소설 속에서나 봤던 차원 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