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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8화 (8/103)

-8-

꽃들을 헤치고 이제 탐험을 시작할까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소년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화단 옆 풀숲 쪽에 숨어 있었다.

정통으로 마주친 눈에 깜짝 놀라 움찔했다.

뭐야! 이 꼬맹이는?

그 소년은 눈을 빛내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꼬마의 시선이 어색했던 나는 시선을 무시하고 그 앞을 지나쳤다. 하지만 나를 지그시 쫓아오는 눈길에서부터 불길함이 올라왔다. 보통 애들은 호기심 많아서 눈앞에 지나가는 개구리나 뱀을 잡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특히 남자애들이. 난 그랬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역시 나를 낚아채는 손길을 느꼈다.

좆됐다.

철이 없었던 시절을 반성하며 아이에게 소리쳤다. 너도 그러다가 나처럼 뱀으로 살게 된다? 조심해!

그 소년은 정확히 나의 몸통을 부여잡고는 자신의 눈앞으로 가까이 갖다 댔다. 이마에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무시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고개를 옆으로 획 돌렸다. 그 아이는 무엇이 신기한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난 그 시선에 이기지 못해 슬쩍 아이를 보았다.

“형님 궁에서 떨어진 거지……?”

엥? 형님?

불과 밖으로 나오기 전에 황자님이 사라졌다며 시종이 난리 쳤던 게 생각이 났다. 그 말을 들은 난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닮았네……. 그 외에는 닮은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인지 2차 성장도 오지 않아 무척이나 턱선 등이 가냘프고 귀엽게 생겼었다. 거기에 주인은 검은 머리카락이었지만 애는 머리카락조차 금색이었다.

황자인 만큼 그 아이는 금실로 짠 수가 놓여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색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온몸으로 난 고귀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금색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우리 주인도 잘생겼는데…… 이 아이가 화려하다고 한다면 제르펠은 점잖은 편이었다. 그래도 우리 주인이 더 낫네. 고개를 끄떡거리며 감상을 했다. 그때 콜록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아픈 구석이 있는지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기침은 쉬이 그치지 않고 숨이 넘어갈 듯이 콜록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픈 애를 두고 부모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싶었지만 아이가 제르펠의 동생이라면 그 부모는 황제와 황후였다. 중앙 귀족이 참석하는 중요한 회의에 황제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생각해 보니 그의 가족에 대해서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나름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붙어 있었지만 일에 치이는 아들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 그 일은 황태자로서 하는 일임에도. 그는 많은 일을 항상 묵묵하게 처리했다. 보통 안부 인사차 올 수도 있지 않나? 동생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의문스러웠지만 우선 눈앞의 아이가 문제였다. 혹시나 열이 있나 싶어 꼬리를 쭉 뻗어 이마에 갖다 대어 확인해 보았다. 꼬리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지만 뜨겁지는 않았다. 열은 없었다. 한참을 기침하던 아이는 이제 멎었는지 숨소리를 크게 골랐다.

기침도 멎었겠다. 풀숲에 숨어 있는 거로 보아 도망친 것 같은 모양새라 더는 신경 쓰지 말고 내 갈 길이나 가려고 했다. 그 아이 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낑낑대자 아이는 오히려 더 힘을 주어 나를 잡았다. 허약해 보여 손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만만치 않았다.

아픈데 왜 밖을 싸돌아다니고 난리야. 얌전히 집에 들어가.

“형님의 뱀인가?…… 하지만 동물을 그다지 안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형님한테 데려가야지. 도망친 걸 수도 있으니까.”

아이의 말에 펄쩍 뛰었다. 도망쳤다니? 내가 안락한 보금자리를 내가 스스로 버릴 이유가 없었다. 그냥 산책 나온 거야! 항의하듯이 말했지만, 통할 리는 없었다. 아이는 나를 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깜짝아!

“그래! 이 뱀을 건네주면서 사과하는 거야! 그럼 나랑도…….”

아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쁜 듯이 배시시 웃었다. 제르펠에게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나를 건네면서 이야기를 할 건수를 찾은 듯했다. 하지만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 좀 놓아주지 않으렴? 혼자서 가 혼자서!! 버둥거렸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나를 절대 놓아줄 생각은 없는지 아이는 어디론가 열심히 달렸다. 정확한 건 그 방향은 제르펠이 사는 궁이 아니었고 궁과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순간 멍해지면서 멀어지는 궁을 흔들리는 시야로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물어서 벗어날까 했지만 내 양심이 콕콕 찔렸다. 그래도 주인의 동생이니까…… 나는 기다란 몸을 축 늘어놓고는 바람에 따라 사정없이 흔들렸다. 안 그래도 멀미에 약한데……. 대체 어디 가!

분명 나올 때만 해도 산책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었다. 역시…… 보금자리 밖은 위험했다.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겼다. 주인아. 나 좀 구해 줘!! 쉭쉭거리는 소리는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아이는 숨을 헐떡이면서 달렸다. 중간에 숨이 차는지 천천히 걷기도 하고 잰걸음으로 걷기도 하였다. 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바람에 몸을 맡겼다. 여기저기에서 황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찾고 있던 중년 여성에게 달려갔다. 드디어 아이가 멈추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 고개를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유모!!”

“에이든 님! 대체 어디 가셨던 겁니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녀는 한껏 뽐낸 옷차림에 우아함까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유모라기보다는 귀부인에 가까웠다. 아이의 신분이 높을수록 유모를 뽑는 조건이 까다롭다고 하더니 실제 귀족인 것 같았다.

유모는 아이를 찾았다는 기쁨에 품에 안고는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황자를 찾고 있던 이들도 안도감에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유모의 손짓에 따라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겉옷을 에이든에게 걸쳐 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는 궁으로 향했다.

“황후마마께서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럼요! 혼자서 사라지시면 어떡해요?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이 유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셔야죠! 시종들도 따돌리고 대체 어디에 가셨던 것입니까?”

“…….”

그녀의 말에 에이든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그녀가 보지 못하게 숨기는 태도에 의아했다. 왠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형을 만나러 궁에 갔다고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일 텐데 왜 말하지 않는지 이상했다.

유모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겨우 효력이 도는 약을 찾아 나아가는 도중입니다. 한순간의 방심이 병을 키울 수도 있어요.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지요. 오늘은 산책 끝입니다. 추위로 언 몸을 녹이러 가요. 가서 단단히 혼을 낼 겁니다! 이 유모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그녀의 말과 말투는 엄했지만, 표정을 보면 절대 엄격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내 웃고 있었고 에이든도 그걸 아는지 살짝 웃었다. 그녀는 에이든의 한쪽 손을 잡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내가 들려 있었다. 난 멀뚱히 그녀와 에이든을 구경했다. 유모는 그제야 뒤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에이든의 손을 발견했다.

“에이든 님 또 무언가를 주워 오셨나요? 제가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 이리 주세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에이든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연한 그녀의 반응으로 봐서 이게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님을 짐작했다. 에이든은 눈치를 보며 나를 숨기려고 했다.

“에이든 님.”

“…….”

나를 쥔 손에 땀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더니 꼼지락거렸다. 꿀꺽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에이든이 나를 유모에게 불쑥 내밀었다.

“사실 있지…….”

“꺅!! 배, 뱀!!”

그녀는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말을 하던 에이든도 놀라 말이 쏙 들어갔다. 물론 나도 갑작스러운 에이든의 태도에 놀랐지만 그녀의 비명에 더 놀랐다. 귀청이 떨어지는 줄…… 에이든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모. 뱀이 무서워?”

“저하! 당장 내려놓으세요! 물리기라기도 하면 큰일입니다! 이번엔 진짜로 화낼 겁니다!!”

에이든도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보았는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걸 눈치도 못 챘는지 그저 피하기에 급급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위험하다고 어서 치우라며 소리를 질렀다.

말로는 독이 있을 수 있어 위험하니 당장 놓으라며 에이든에게 말했지만 정작 행동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바빴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유모를 바라보다가 에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나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아 제 발 저려 변명을 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자기가 놀라 자빠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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