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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12화 (1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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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앞에 도착하기 전에 제르펠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황태자궁의 소속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거기에 궁에 있던 사람들도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안은 그 상황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허락도 없이 궁에 들어온 것은 보안상의 문제였다. 시종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제르펠을 보고도 스쳐 지나갔다. 어이없는 상황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안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시종들을 불러 세웠다.

“지금 태자 전하의 궁에서 무엇을 하는 겁니까?”

“아, 그것이 지금 황자님이 사라지셨다고 하여 찾고 있습니다.”

황자라는 말에 이안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들의 태도가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명이겠지. 화를 삭인 후 이안이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렇다고 전하의 앞에서 이게 무슨 소란이지? 그것도 허락도 맡지 않은 궁에 멋대로 쳐들어와서는…….”

“정, 정말 죄송합니다. 폐하께서 샅샅이 뒤지라고 하여…….”

“되었다. 아픈 아이가 사라졌으니 폐하께서 걱정이 많은가 보군.”

아차 싶은 그들은 이안의 말에 쩔쩔매며 제르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정작 제르펠은 관심이 없는지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이상하게도 빨랐다. 제르펠은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을 느꼈고 홀로 있는 슈이렌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그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겠다는 듯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세드릭은 이 상황이 문지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신의 실태라고 생각했다.

“전하, 죄송합니다. 문지기에게 확실하게 일러두도록 하겠습니다.”

이안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헛웃음만 지었다. 잠시 궁을 비우니 모르는 자가 궁을 활보한 셈이었다.

“이번 기회에 사람들을 갈아엎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이안은 아직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제르펠은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아닌지 그저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는 집무실에 도착하자 기사가 문을 열어 주기도 전에 먼저 박차고 들어갔다. 그를 반기고 있던 건 아무도 없는 텅 비어 있는 집무실이었다. 슈이렌이 놓여 있던 쿠션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불길함이 그의 몸 전체를 감쌌다.

세드릭은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 제르펠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제르펠은 그 상태로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그러더니 그의 등 뒤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세드릭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집무실 곳곳을 눈으로 뒤지기 바빴다.

“슈이렌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여기에 있던 시종은?”

“네??”

“말을 반복하게 할 셈이냐?”

제르펠의 싸늘한 말에 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차렷한 자세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싸늘한 눈으로 훑어본 그는 이안을 보더니 당장 시종을 찾아오라고 했다. 기사들은 어쩔 줄 모른 채로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그의 분위기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날카로운 눈빛에 끝맺지도 못했다.

“그…… 저하를 찾는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하. 제가 똑바로 교육하겠습니다. 너희 내일 각오하거라.”

헛소리하는 기사들에게 세드릭이 따끔하게 일침을 날렸다. 그 말에 기사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들의 죄를 알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안이 시종을 데리고 왔고, 그 시종 또한 사색이 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시종이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제르펠의 말에 무산되었다.

“그…… 전하…….”

“너도 에이든을 찾는다고 자리를 비웠나?”

정곡을 찌른 제르펠의 말에 시종은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르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러보는 그의 표정은 소름 끼칠 만큼 무감정한 표정이었다. 공기가 몇 배는 싸늘해졌다. 특히 시종은 덜덜 떨리는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너희는 에이든의 사람인가? 아니면 나의 사람인가? 우선순위를 모르는 자를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전하! 제발 한 번만……. 제가 당장 찾아오겠습니다!”

“대체 어디서? 꼴을 보아하니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찾지 못했으니 이미 기회는 사라진 것과 다름없지.”

실제로 그의 차림은 풀숲 등을 뒤지고 있었는지 나뭇잎과 흙이 묻어 있었다. 시종은 자신의 앞에 그림자가 지는 것이 보였다. 제르펠은 숙여 있는 시종에 맞춰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시종은 그 부위부터 자신이 얼어 가는 감각을 느꼈다.

이제 죽겠다고 생각했다.

불과 두 달 전 황자 저하의 궁에서 제르펠을 독살하려고 했던 시녀의 목을 검으로 순식간에 베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시녀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도 못하고 그 상태 그대로 피를 흘리며 쓰려졌다고 한다. 옆에 있었던 다른 시녀는 아직도 전하가 했던 그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아, 이런 실수했군.’

그 일로 7년 동안 전쟁터에서 있었더니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감각이 없어진 것이라는 등 말이 한참 동안 많았다. 그가 오고 나서 다들 시종일관 최대한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필 자신이 그 첫 타자가 되다니 운도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어깨에 손만 올렸을 뿐이지만 숨이 턱턱 막혔다. 제르펠은 음산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말했다.

“다시는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았으면 싶군. 본 순간 어찌 될지 모르니.”

사실상의 해고나 마찬가지였다. 주인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제대로 된 소개장을 받을 수도 없었다. 변명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마주친 살벌한 눈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뒤로 제르펠은 그 시종의 곁을 지나쳐서 갔고 집무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시종은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집무실로 들어가자 의자에 푹 기대앉았다. 얼마나 거칠게 앉았던지 부드럽게 움직이는 의자가 끼익 소리를 내었다. 그의 살벌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이안이 넌지시 말했다.

“조용히 처리할까요?”

이안이 제르펠의 살기를 느끼고 시종의 처분에 대해 물었다. 제르펠은 한번 턱을 쓸고는 말했다.

“슬슬 때가 되었지…… 무능한 자들은 필요 없다. 이번 기회에 골라내도록.”

“네.”

“그것보다 당장 사람들을 풀어서 슈이렌을 찾아오도록 해.”

제르펠은 아까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바로 슈이렌을 찾으라고 명령을 했다. 더는 전하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 싶은 이안은 분주하게 사람들을 모아 분주하게 궁의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뱀은커녕 작은 동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종들은 제르펠의 눈치를 보며 더욱 열심히 찾았지만, 궁내에 없으니 당연히 발견될 리가 없었다. 결국 이안이 제르펠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궁내에는 없는 듯합니다.”

“그럴 리가 그 작은 몸으로 대체 어디까지 간다는 거지?”

그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심기 불편한 그의 모습에 시종인들은 침묵을 지켰다. 제르펠은 이런 상황이 짜증 나는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방금 한 시종을 내쫓긴 걸 본 그들은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까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여러 시종이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던 중 한 시종이 조용히 말을 했다.

“저…… 혹시 모르지만 제가 조금 전에 황자님을 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시종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내쉬더니 말했다.

“그…… 황자님을 찾고 있을 때 멀리서 금발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거리도 멀었고 확실치 않았지만 지금 황자님을 찾고 있다고 들어 혹시나 싶어 말씀드립니다. 황자님께서는 밖에 나오시면 특이한 것을 수집해 가곤 합니다. 그중에는 작은 동물들도 있어 슈이렌 님을 데려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시종들 사이에서 에이든의 수집에 대해서는 소문이 많았다. 에이든은 몸이 약해 방 안에 지내는 시간이 많아 항상 밖에 나가면 무언가를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에이든은 종류 불문하고 관심이 갔던 것, 예뻤던 것, 신기한 것들을 주워 왔다. 그건 곤충일 때도 있었고 굴러다니는 돌멩이 꽃 등일 때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따로 보관함을 만들어서 넣어 두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 물건들을 관리하는 건 그들이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그중에는 작은 곤충이나 동물들도 많아 시종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군. 그러고 보니 몸이 좋아지고 있다 하지?”

“네? 저하께 가시는 겁니까?”

제르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안이 급히 시종들을 물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미 세드릭은 제르펠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이안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 에이든의 궁에 도착했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안은 한 시종을 붙잡아 에이든의 위치에 관해 물어보았고 그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걸어가던 그들에게 말소리가 들렸다.

“제르펠 전하는 저하가 몸이 약했기에 황태자의 자리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하야말로 이 제국의 황제에 어울리십니다.”

제르펠은 그 이야기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저 목소리는 그때 보았던 유모인가. 처음 보았을 때도 불청객을 보듯 자신을 노려보았으니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감각이 예민했던 제르펠과 세드릭 귀에는 대화 내용이 똑똑히 들렸다. 세드릭은 옆에 차고 있던 검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이안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처리할까요?”

“검을 집어넣어라. 멋대로 날뛰게 놔두어야 나중에 처리하기가 쉽지.”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하. 겨우 뱀 따위가 나를 건드려??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꼴이 똑같구나.”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꽤 거리가 되었던 그들에게 똑똑히 들렸다. 뱀이라는 소리에 제르펠의 걸음이 빨라졌다. 나무 사이 틈으로 슈이렌이 그녀의 손을 꽉 물고 떨어지지 않도록 두 눈까지 감고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순간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갈 기세로 있던 제르펠이 멈추니 뒤에 있던 이안과 세드릭 또한 갑자기 멈추게 되었다.

제르펠은 그 광경을 각인하듯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이안이 그를 작게 불렀다. 하지만 그는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이 계속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슈이렌은 바닥에 떨어졌고 정신 차린 제르펠이 나무를 헤치며 말했다.

“뭐 하는 거지?”

* * *

창문 사이로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곧 어둠이 찾아왔다. 창문 앞에는 슈이렌이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제르펠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울까 봐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심히 쿠션째 들어 배게 옆에 놔두었다. 색색거리면서 자는 자세가 쉽게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밥시간은 꼬박 챙겼던 슈이렌이었지만 저녁 시간이 되어도 일어날 기미 없이 곤히 자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제르펠은 잠을 깨우기 위해 슈이렌을 툭툭 건드렸지만 그건 잠을 깨우기 위한 손짓이라고 하기에는 다정한 손길이었다. 오히려 잘 자라는 듯이 목 부분을 긁어 주니 누가 깨우는 손길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기분이 좋았는지 슈이렌은 몸을 움직여 제르펠의 손가락을 꽉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역시 죽이는 것이 좋았나…….

분명 자신에 대해 뭐라고 했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모욕하는 그녀에게 덤벼드는 슈이렌을 보았을 때 그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심장이 철렁하면서도 가슴 깊은 속에서 차오르는 만족감이 있었다. 이 아이는 정말 자신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평소에도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어찌나 빨리 알아차리는지 자신의 옆에서 오두방정을 떠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심기가 풀린 걸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신보다 몇십 배는 되어 보이는 그녀에게 덤벼들었을까? 분명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텐데…….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안은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하지만 저렇게 편안한 제르펠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까의 상황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제르펠에게 말했다.

“확실히 전하를 노리는 세력 쪽에서 보낸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런 것 같군. 말을 알아듣고 그런 것 같나?”

“슈이렌 님 말인가요?”

확실히 그가 봐온 슈이렌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행동을 취했다. 자신도 보았으니 전하께서 보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유모의 말을 듣고 사납게 위협하며 달려들었던 슈이렌의 행동을 우연한 일치라고 하기에는 평소에 보았던 행동들이 있었다.

슈이렌이 자신만을 보고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으니. 전하께서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전쟁터에서는 아무도 믿지 못했고 믿는 자에게 돌아오는 건 배신이었다. 사람과 대할 때 벽을 쌓는 전하께 있어 슈이렌 님은 특별한 걸지도 모르지.

“영특한 분이시니 그럴 가능성이 크겠네요.”

이안의 말을 들은 제르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림자를 붙이는 겁니까?”

“오늘 같은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 그나마 세드릭 다음으로 쓸모가 있으니. 세드릭은 너가 반대할 텐데?”

“당연합니다. 전하를 지켜야 할 자는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오늘 조사도 끝났으니 돌아온다는 서신을 받았긴 했습니다만.”

“그럼 문제없지.”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슈이렌에게 말했다. 누구에게 전하는 말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날 위해 작은 몸으로 달려들다니…… 조금 색다른 기분이군. 이러다간 정말 벗어날 수 없을지도.”

그 말을 하는 제르펠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제르펠은 그렇게 말했지만, 오랫동안 그를 곁에서 모신 이안에게는 그렇게 뱀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제르펠은 이미 조금씩 그 뱀에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안은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약점이 생기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행복하다면 그것 또한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다.

‘정말 신께서 전하를 불쌍히 여겨 내려 준 존재일 수도. 하필 그 자리에 나타난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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