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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14화 (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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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 혼자 식당으로 가는 중이다.

저번의 그 일 이후로 제르펠은 바쁜지 툭하면 회의하러 가고 툭하면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갔다. 처음에는 잠깐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벌써 몇 주째였다. 뭐냐고 방치냐고!!

그나마 아침에는 같이 밥을 먹었다. 하지만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다가도 이안이 찾아오면 정리하고는 다녀오마. 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그때마다 나를 데려가라고 매달렸지만 떼어 놓고 갔다. 마차를 준비했다는 이안의 말을 들어 보면 외부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았다. 직접 와! 주인 보고 오라 하지 말고! 대체 어디 사는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결국 오늘도 집무실은 주인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항상 낮잠을 자던 창가 자리에 몸을 누워도 잠이 영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결국 방문만 열리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늘도 역시나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는지 제르펠이 발걸음을 옮겨야 만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거리도 제법 되는지 한번 나가면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오늘까지의 일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결국 혼자 식당에 가고 있었다.

일이 좀 바빠지니 점심도 거르고 말이야. 하여간 내가 챙겨 주질 않으면 먹지를 않아요. 나는 점점 더 한숨만 느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그나마 믿을 만한 인물이라며 제르펠이 누군가를 붙여 놓았다. 말이 시종이었지 알고 보니 기사였다. 이름은 카사로 세드릭 밑에 있는 기사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어찌나 걸음 소리가 조용한지 사색을 방해하지 않아서 좋지만, 가끔 뒤돌아보면 떡하니 서 있을 때가 많아 깜짝 놀라곤 한다. 게다가 한 번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말 안 해?? 처음에는 이런 심심한 인간이 다 있나 하고 때려 보고 물기도 하고 위협도 해 보았지만, 멀뚱히 지켜보는 눈에 오히려 나 자신이 한심해 보여 나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중이었다.

뱀한테는 말도 안 건다. 이거야? 썩을 놈. 주인은 언제 일이 끝나려나. 카사가 재미없는 인간이라 더 제르펠과 비교가 되었고 제르펠이 그리웠다. 거기에 계속 보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 버렸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된 거지!

눈앞의 스테이크를 보면서 우울한 생각을 저 멀리 집어 던졌다. 내 뒤에서는 카사가 서 있었고 옆에 있는 시종이 식탁을 세팅 중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스테이크를 전투적으로 해치우고 있던 난 의문점을 느꼈다.

음? 뭐지? 항상 먹었던 맛이 아닌데? 비록 내가 뛰어난 미각은 아니었지만 분명 무언가 달라졌다. 미묘한 조미료의 차이인지 항상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곰곰이 고민했다. 시종은 그걸 다른 의미로 착각했는지 주방으로 달려가 주방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주방장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제르펠은 자신의 음식보다 내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먹지 않거나 무슨 문제가 있다면 주방장을 닦달하는 경우가 많아 익숙한 반응이었다.

음식에 딱히 문제는 없었기에 그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드는 순간 그의 행색에 놀랐다. 그의 얼굴은 세상의 근심은 다 짊어진 듯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요리에 혹시 문제가 있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그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 얼른 고기를 먹었다. 먹다가도 그의 낯빛이 궁금했다. 내 맛있는 고기를 책임지는 주방장인데 몸이 아파서는 안 되지. 이런 나의 궁금증을 알았는지 그가 약간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레시피는 다음 주방장에서 전수해 놓았으니 맛은 그다지 변화가 없을 거라 장담합니다. 앞으로 슈이렌 님의 식사를 책임지지 못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폭탄선언에 입이 떡 벌어졌다. 뭐시라?? 요리는 손맛이라고! 내 입을 고급스럽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난 안색이 나빠 보이는 그에게 타박할 수는 없었다. 주방장에게 기운을 내라며 먹던 고기의 그릇을 그에게 밀어주었다. 주방장은 감동하였는지 눈물을 흘렸다. 감격에 겨워하던 그는 나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사실 딸아이가 많이 아파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근무한 곳을 떠나기는 무척이나 아쉽지만 딸아이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정이면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방장은 내 옆에서 고민하는 얼굴로 서 있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시선이 슬쩍 위로 향한 것 같기도 했다.

“슈이렌 님은 신의 사자라 들었습니다. 혹시 저의 딸의 병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주방장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똑똑히 들은 뒤였다. 신의 사자라는 말이 들렸다. 대체 누가? 그러고 보니 제르펠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예로부터 백사는 신의 사자라고 한다고. 그의 말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흐름으로는 딸의 병을 고쳐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사정을 털어놓은 것도 신의 사자라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신의 사자라는 말을 곱씹고 있을 때 큰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진짜 신이라는 작자가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게 아닌가 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냥 뱀이었다. 좀 특이하지만 별다른 힘은 없는 뱀.

설마…….

잠시 생각했던 나는 일단 신에게 기도했다.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했다. 신아…… 뱀으로 환생시켰으면 제발 의식주만이라도 보장해 줘라! 주방장이 떠나면 누가 내 맛있는 고기를 책임질 것인가? 비나이다. 비나이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면서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자 고개를 들고 주방장을 마주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꼬리로 가볍게 손을 툭툭 치고 몸을 치켜세우며 한껏 부풀렸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웠는지 웃음을 흘리다가도 걱정에 한숨을 쉬었다.

한껏 몸을 부풀고 잠깐 기다렸다. 한쪽 눈을 떴지만 역시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상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음…… 역시 아닌 건가? 자신감 있게 시도를 했지만 꽝이었나. 먹다 남은 스테이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먹지 못할 날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고기가 아까워서 최대한 많이 집어먹었다. 배가 빵빵해졌다.

배가 불려서 움직이기도 귀찮았다. 고개만 돌려 카사를 노려보았다. 이제 나를 들어라! 뒤에 대기했던 카사가 나를 들어 올려 내 전용 쿠션에 내려놓았다.

배가 가득 찬 상태여서 그런가 아니면 쿠션이 너무 푹신했던 탓일까? 알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아이야…… 찾아오렴…….]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난 뒤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 * *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긴 통로에 기어가고 있는 새하얀 뱀이 있었다. 그 뱀은 몸을 치켜세우며 기어가고 있었고 길을 비키라는 듯이 혀를 날름날름하며 정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었다. 흰 뱀 뒤에는 기사가 그 뒤를 밟고 있었다. 사람과 뱀의 속도 차이가 크게 나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으면 한 걸음 걸어가고 쉬었다 걸어가기를 반복했다.

지나가는 뱀에게 시중과 시녀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도 기사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그저 뒤를 따라 걸었다.

“신의 사자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다. 그 뱀은 나였다. 그리고 왜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고 이런 호칭이 붙게 되었는가……. 그건 말하자면 길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주방장의 딸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 주방장은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안 간 곳이 없다고 한다. 의원들은 다들 고개를 저은 병이었다. 모아 두었던 월급을 가지고 신관에게 찾아가니 일시적으로 상태는 좋아졌지만 한 달 뒤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한테 부탁을 한 뒤 그 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는 것이다. 아니 진짜 내가 묻고 싶거든? 정말 나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로 소문만 무성하게 자랐다. 그러던 중 한 시종이 와서는 신의 사자라는 소문을 듣고 왔다며 제발 부탁할 일이 있다고 찾아왔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종은 미주알고주알 말하더니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쿠키를 주었다. 물론 일단 음식은 아무 잘못이 없었기에 맛있게 먹었다. 쿠키를 맛있게 먹고는 내 갈 길을 갔다. 시종의 말을 멍한 상태로 들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는지도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시종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난 깜짝 놀랐다. 또, 또 병이 나았단다. 시종의 어머니가 죽을병에 걸렸었는데,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는 그 죽을병이라는 것이 나았단다. 헐…… 주방장 딸이 나은 것도 진짜 나 때문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기도고 뭐고 아무것도 안 했다고! 시종은 나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시종에게 의사가 잘못 진단한 게 아니고? 세상엔 돌팔이도 있다고! 라고 묻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소문이 퍼지자 내 식습관 행동 같은 사소한 것조차 신의 사자를 증명하는 거라며 점점 소문은 부풀어만 갔다. 계속 주위에서 말하다 보니 내가 진짜 신의 사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는 했다. 사실 그때도 설마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리 큰 기대는 없었다. 그 뒤로는 사소한 고민이나 상처, 병들이 생기면 나에게 찾아오기 일쑤였다. 그것조차 해결이 되자 소문은 살을 붙여 과장되기 시작했다. 계속 상황이 이러자 정말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뭔가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있어야지…… 몇 명의 경우 가지고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시중인 사이에서 신의 사자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조아리는 건 기본이었다.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면 사근사근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면 선뜻 도와주기도 했다. 결국, 아주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게 바로 연예인의 기분인가 싶어 좀 즐기기도 했다.

다른 곳에 근무하던 사람들도 몰래 다가와서는 말하고 떠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빌 때마다 음식이나 보석 등을 주면서 부탁을 했다.

앗싸. 공물 획득! 음식은 맛있어서 좋고, 보석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았다. 그렇다. 나름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공물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간식거리 얻고 비자금 얻고 일석이조였다.

쌓여가는 공물을 보고 있자니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정말 신의 사자인가? 라는 고민에 빠졌다. 소문은 믿을 게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말이 있다. 뭐, 사자든 사자가 아니든 무슨 상관이야? 다들 사자로 생각하는데? 공물 받으면 나야 좋지.

게다가 오늘은 나름 괜찮은 장신구를 얻었다. 귀족이 지나가는 나에게 흑요석 브로치를 준 것이다. 귀족이 준 것인 만큼 시종이나 시녀들에게 받은 보석보다는 훨씬 질이 좋았다. 보자마자 이건 주인한테 줘야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귀족도 그걸 노린 것 같았다.

마침 건너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제르펠을 발견했다. 이번에 귀족들을 대거 처리했다며 이안이 이제 일에서 벗어나겠다며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주인아! 내가 선물 들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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