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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24화 (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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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내내 그녀는 옆에서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차이는 미묘했지만 내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 소리에 에이든의 손이 멈칫했다. 막상 유모의 뜻을 따르자니 내 제안이 아쉬운지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사실을 유모가 모를 리가 없었고 비장의 무기를 꺼내었다.

“어서 연습하셔서 검술 실력을 전하께 보여 드려야죠. 그때라도 늦지는 않습니다.”

에이든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말이었다. 동경의 대상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같았고, 에이든 또한 그랬다.

어느새 시종 인들은 유모의 손짓에 따라 피크닉 짐을 하나둘 싸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내가 아니었다. 에이든이 유모의 말에 못 이겨 거절의 말을 하려는 찰나였다.

“죄송해요. 검술 수업이 있어서…….”

“주인이랑 같이 해. 검술. 저번에 가르침 받고 싶다 하지 않았어?”

그때 에이든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그럴까요? 형님이 싫어하지는 않겠죠?”

“당연하지!”

“사자님, 그건 전하께 폐가 됩니다.”

아무리 입가는 웃고 있어도 눈에 가득한 비웃음은 숨길 수 없었다.

저 여자는 대체 뭘 믿고 나대는 거지? 보통 신의 사자면 굽신대지 않아?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지었다. 유모는 제 말이 통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약속을 잡지 않고 찾아가는 건 큰 실례에 해당합니다. 사자님, 신계에서는 어쩔지 몰라도 황궁에는 그에 맞는 법도가 있습니다.”

신계라는 말에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넘어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걸어온 싸움에 물러설 수 없지.

“동생이 형 만나러 가는데 막는 게 법도야?”

“사자님. 그것이 아니라 만남을 요청할 때에는 서신을 전하고 가는 것이 예입니다.”

“아, 그렇구나.”

“네. 그렇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순진한 얼굴이 도움 되었는지 그녀는 의심하지 않는 표정으로 거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그 순간, 픽하고 비웃음이 새어 나갔다. 유모는 자신이 본 게 맞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에이든은 몰라도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안 넘어가지.

“그럼, 서신 보내면 되지. 글 쓰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치?”

에이든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유모의 표정은 선명하게 일그러졌다. 유모의 입이 열렸지만 내 말에 묻혔다.

“근데 한 번도 찾아온 적 없지 않아? 주인 옆에서 있었는데 본 적이 없어서. 많이 바빴어?”

“어…… 사실 제가 몸이 많이 약해서요. 궁 밖으로 자주 나가지 않아요.”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 기침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완쾌한 듯 얼굴색이 좋았다. 유모는 한쪽 눈을 치켜들며 내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 나은 거 아니야? 얼굴색이 좋은데?”

“네!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더니 이제 몸이 좋아졌어요. 요즘에는 목검도 들 수 있게 되었어요.”

에이든은 건강해진 게 기쁜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어설프게 자세를 잡더니 휘두르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딱 봐도 초짜의 모습이었지만 난 잘한다며 손뼉을 쳐주었다.

“그럼, 이제 만나러 가면 되잖아?”

“아…… 그게…….”

응, 알지 주위에서 막았겠지.

옆에서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유모와 뒤에서 어쩔 줄 모르는 시종, 시녀들의 모습만 봐도 눈에 훤했다. 무릎을 약간 구부리며 에이든의 눈을 마주 보고 말했다.

“에이든. 만나러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 몸도 좋아졌다며?”

“하지만 다들…….”

“네가 만나러 가고 싶은데 무슨 상관이야?”

유모의 표정을 본 난 그녀에게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에이든에게 말했다.

“이상하긴 하네? 왜 그렇게 널 주인이랑 만나지 못하게 해서 안달이래? 왜 그래?”

에이든은 뭐라 말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대며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어물거리는 말투에 내가 밀어붙이자 에이든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유모는 이제는 표정을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는 듯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억지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면서 에이든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내가 슬쩍 에이든의 몸을 붙잡는 것으로 무산시켰다. 난 상냥하게 말했다.

“에이든 넌 어쩌고 싶어?”

“보러 가고 싶어요…….”

“저하!”

“아……진짜 시끄럽네.”

에이든은 내가 말한 말에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지만 웃으며 에이든의 손을 이끌었다. 그녀는 이 이상 강경하게 나오기에는 역시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는지 에이든을 잡아끌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서 조잘조잘 수업하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을 불어넣고 있었다.

난 계속 뒤에서 찬물을 끼얹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확 자신이 찬물에 빠져야 정신을 차리지.

짜증이 가장 사람의 힘을 끌어내는 순간이라 했던가. 호수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그녀의 위에만 정확히 떨어졌다. 그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이 그려졌다. 그녀 주변에 있던 시종, 시녀들이 물이 튀는 걸 보고 재빨리 피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유모는 홀딱 젖은 옷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인지 추위인지 모르지만, 정성껏 손질한 머리는 축 늘어졌고, 옷은 물이 뚝뚝 떨어져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난 통쾌함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돌려 입을 막고 웃었다. 대놓고 웃기에는 그렇잖아?

시종, 시녀들은 어쩔 줄 모르며 들고 온 수건을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에이든은 그래도 유모라고 걱정이 되었는지 다가가려고 했지만 내가 막았다. 너도 젖어 임마. 그리고 난 정말로 미안한 것처럼,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미안. 내가 힘을 잘 조절 못 해서…….”

겨우 웃음을 참고 이야기했지만, 씰룩대는 입가는 숨길 수 없었고 유모는 그 미소를 보았다. 그때였다.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수신의 호수에서 느꼈던 기운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고개를 들어 눈살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운이 향한 쪽에는 에이든이 서 있었다. 이상하게 그 주위로 푸른빛이 일렁이는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센 힘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고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슈, 슈이렌 형?”

에이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조차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에이든을 본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슬픔이 차올라왔다. 하지만 이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당황해하는 애한테 무슨 짓인가 싶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때 에이든의 두 눈에 푸른빛이 일렁였지만, 눈을 감았던 나에게 보일 리는 없었다.

“아냐, 아무것도, 가까이 가면 젖으니까 우린 여기에 있자?”

통쾌해야 할 순간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만큼 갑자기 나를 덮친 감정은 속을 울렁거리게 하였고, 나도 모르게 에이든을 노려보았을 정도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푸른 기운이 떠다니고 있었다.

* * *

결국, 유모를 떼어 놓는 데 성공했다. 바득바득 따라오겠다고 하는 걸 젖은 몸으로 어떻게 궁에 들어오느냐면서 겨우 떼어 놓았다. 에이든의 전담 시종이라는 사람이 한 명 붙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아나? 나와 에이든은 손을 꼭 잡고 제르펠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심지어 에이든은 제르펠 궁에 온 적이 처음인지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빴다.

“궁도 처음이야?”

“네.”

“저번에 주인을 한번 보았다고 하지 않았어?”

“아…… 제 궁으로 초대한 거라…… 궁에 온 건 처음이에요.”

“그래? 그럼 내가 안내해 줄게.”

제르펠을 만나기 전에 먼저 궁을 소개해 주기 위해 에이든의 손을 이끌고 궁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궁 내의 시종과 시녀들은 내가 에이든과 같이 있어서 당황함을 금치 못했지만, 표정을 다듬고 예를 갖추었다. 에이든에게 내가 자주 가는 식당, 집무실, 방 등을 소개해 주었다. 얼추 소개가 끝났을 때쯤 에이든이 나에게 물었다.

“슈이렌 형 방은 어디예요?”

“어? 내 방?”

“네.”

“주인이랑 같이 쓰는데.”

“……네? 같이 방을 쓰면 안 되는데…….”

또 법도 뭐시기냐?

“괜찮아. 원래부터 그랬는걸.”

“그래도 지금까지 사자님이랑 같이 방을 쓰시는 거 보시면 무척이나 좋아하시나 봐요!”

에이든은 순수하게 말했다. 쑥스러워진 나는 볼을 긁적였다.

“뭐, 그렇지. 주인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나란히 길을 가던 에이든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뒤로 숨었다. 왜 이러나 싶어 에이든을 쳐다보았지만 내 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만 했다. 이 자세…… 저번에 제르펠을 보았을 때 유모에게 한 행동과 똑같았다.

앞을 보니 제르펠이 보였다. 그는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제르펠에게 달려갔다. 내 옷을 꽉 붙잡고 있던 에이든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주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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