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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34화 (3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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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야?”

키르의 말에 당황한 난 몸 이곳저곳을 보았다. 힘이 빠져나간다고 했지만 그걸 내가 알 길이 없었다.

[뭐냐? 힘을 다룰 줄 모르는 것인가?]

“물만 조금…….”

기가 찬다는 듯이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자세가 가망이 없다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이게 참고만 있으니까……. 아주 사람을 무시하네?

“사람이 처음부터 잘해? 가르쳐 줘야지?”

[갓 태어난 새끼보다 못하는군.]

“뭐??”

[갓 태어난 새끼조차 자신의 힘을 조절한다. 넌 방대한 힘을 받아 놓고서는 주체를 못 하는 꼴이군. 미래가 어두워.]

얄밉게 말하는 키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꾹 참고 말했다. 지금 아까운 건 나니까. 참자…… 잘 아는 것 같으니까 이야기도 듣고, 힘을 다루는 방법도 알아내야지.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화를 꾹 참았다.

“그럼 어떻게 사용하는데? 일단 푸른빛이 일렁이면 힘이 사용되긴 하던데…….”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지만 웃으며 말했다. 내 말에 키르는 그것부터 가르쳐 줘야 하냐면서 나를 보았다.

[이거 참 갈 길이 멀군.]

“야! 너는 그럼 처음부터 잘했어??”

[글쎄…… 나이는 500년 세고 그만두었다. 옛날 일은 기억 안 나지만 그랬던 것 같군. 자신의 힘이다. 다루지 못했을 리가. 넌 수신님께 받은 힘이라 아직 쓰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군…….]

“뭐??”

이무기야 뭐야? 수신의 대리자라고 하더니 키르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좋다. 날 데려가라.]

“하?? 내가 왜?”

잠시 생각하더니 데려가라는 뜬금없는 키르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키르는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내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제 말을 했다.

[빨리 안내하지 않고 뭐 하지? 걱정 마라. 내가 이래 봬도 가르치는 건 잘한다. 넌…… 좀 손이 많이 갈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해 보지.]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네가 내 상전이야?”

“슈이렌 님?”

카사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더는 입씨름을 하기도 싫었고, 지금은 이 상황을 주인에게 말해 주는 게 급선무였다. 우선 교황이 무언가를 하는 건 확실했다. 방금 사람이 죽었고 혹시나 위험할 수도 있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되지.

“카사. 가자.”

키르의 말을 무시하며 카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내 발에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묵직해졌다. 뒤돌아보니 키르가 내 바지 끄덩이를 잡고 있었다. 얼마나 무거운지 발걸음 떼는 게 힘들었다.

[나를 데려가거라. 넌 저자들에 대해 짐작하고 있는 게 있지 않으냐?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해야겠다.]

“야. 떨어져.”

키르는 절대 놓아줄 수 없다며 이제는 내 다리를 칭칭 감고 있었다.

“나도 신세 지고 있는데 거기에 더 객식구를 생기게 하면 되겠어? 주인한테 물어보고 올게. 그니까 이거 좀 놓아. 무겁다!”

[주인이라고? 수신님의 아이에게 그런 호칭을 쓰게 하다니…… 대접도 못 받고 사는 건 아니겠지?]

“구박 안 받거든? 주인은 나한테 착하거든?”

[그럼 괜찮겠지. 겨우 뱀 한 마리가 더 느는 거다.]

자기 일 아니라고…… 나잇값 못하게 징징거렸다. 난 그를 떼어 내기 위해 뱀들을 들먹였다.

“너! 수신의 대리자라며 얘들을 지켜봐야지!”

[……자그마치 1년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들을 지켰지만 그런데도 죽어 나갔다. 그동안 주의사항을 끊임없이 말했고 이제는 깊은 굴속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다. 예전 같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 수위다.]

진지한 키르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져 결국, 같이 가게 되었다. 좋게 생각하자. 힘을 쓰는 법을 알아야 하는 건 맞잖아. 내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사실 카사에게 가라고 말했지만 이 똥고집이 인간은 싫다고 빽빽거렸다. 그러면서 위 전망이 좋은지 풍류를 즐기는 노인네처럼 매달려 있었다.

[경치가 좋구먼.]

아주 팔자가 좋네. 좋아.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느끼며 걸어갔다. 이거 내일 근육통 각이다. 분명 숲 깊숙이 들어간 적도 없는데 빠져나오는 건 길었다. 왠지 숲이 내가 떠나자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키르는 밖을 처음 보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밖은 이리 생겼구먼. 오랜 시간 동안 나간 적이 없었으니…….]

“한 번도 없어?”

[나갈 일이 없으니.]

신문물을 접한 할아버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우리들이 나오자 성기사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뱀은 무엇입니까?”

“신경 쓰지 마라.”

카사는 칼같이 선을 그었다. 뱀들이 숲에서 사냥당했다는 사실을 안 카사의 태도가 곱게 나갈 리가 없었다. 키르를 콕 집어 물어보는 성기사의 말에 시야를 가리듯이 내 앞에 섰다.

“하지만 숲에서는 어떠한 것도 훼손하지 말라는 법도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침입자가 있더군. 혹시 누군지 아느냐?”

카사는 재주 좋게 말을 돌렸고, 성기사는 깜짝 놀랐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성기사는 카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무, 무슨 소리십니까? 이곳은 결계를 해제하지 않는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말을 더듬으며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계속 지키고 서 있었다며, 변명하기에 바빴다.

“그렇군. 언젠가 밝혀질 일이지.”

카사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말에 올라탔다. 나도 그를 따라 말에 올라탔다. 성기사가 뒤에서 무어라 말하는 게 들렸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우리는 제르펠의 궁으로 향했다. 카사는 말에서 내리자 시중에게 말을 데려가라고 전했다.

“카사. 나, 방으로 갈래. 피곤해…….”

드디어 궁에 도착했다는 생각 덕분인지 하품이 나왔다.

“알겠습니다.”

방에는 온기가 없었다. 아직 주인이 들어올 때는 아니지.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카사가 조용히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직도 어깨에 있는 키르를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이제 좀 내려가라.”

[쯧. 불쌍한 것. 정말 구박받고 살고 있었구나.]

생뚱맞은 소리에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들은 말이 믿겨 지지 않았다. 이 완벽한 방을 보고도 내가 구박받다니?? 침대는 푹신해. 방은 화려하고. 내가 착용한 옷이랑 장신구도 주인이 사 준 최고급이었다. 이게 얼마인지는 아는 거야?

어처구니없는 말에 잠도 날아갔다. 벌떡 일어나 키르에게 항의했다.

“대체 어디가?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키르는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는 듯이 머리를 위로 쭉 올리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는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냐? 방은 건조해, 먹잇감도 없어, 숨을 공간도 없지 않느냐.]

“당연하지. 여기가 무슨 숲으로 아는 거야?”

말은 통해도 뱀은 뱀이었다. 뱀 상대로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다시 침대에 누웠다. 베개를 꼭 안고 뒹굴었다. 이 뒹굴뒹굴함의 좋은 점을 모르다니.

[수신님의 아이가 이런 취급을 받다니…… 주인이라는 자도 안 봐도 뻔하군.]

“이 영감이?? 너 계속 주인 욕 할래! 너한테 걱정 받을 이유가 없거든? 난 충분히 행복하거든? 객식구면 객식구답게 주어진 거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라고!”

어디서 불평이야? 다른 말은 다 넘겨도 우리 주인 욕하는 건 내가 못 참지! 영감이라는 단어가 키르의 심기를 거슬렸다. 그도 벌떡 일어나 항의를 했다.

[영감이라니? 수신님에게 받은 키르라는 좋은 이름이 있다!]

“500년 넘게 살았으면 영감이지!”

서로 언성을 높이며 따지다가 현타가 왔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키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요즘 어린 것들은 하며 숨을 고르시더니 고개를 돌렸다. 나도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투덜거리는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키르는 열심히 방 안을 탐색하더니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는지 어디론가 기어갔다. 그곳은 침대 밑이었다. 어둡고 아늑하니 좋다면서 긴 몸을 침대 밑으로 쑤셔 넣었다. 침대 턱을 잡고 침대 밑을 바라보니 저 구석에 몸을 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나마 이곳이 낫군.]

“그래…… 거기에 있어라.”

오늘은 힘들었어. 주인한테 키르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나중에 주인 오면 말해야지……

슈이렌이 잠들고 조금 시간이 흘렀을 때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침대 밑에서 나온 키르는 침대 위로 몸을 쭉 내밀었다. 기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키르가 자는 슈이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아이구먼. 이렇게 힘이 새어 나오니 잠이 올 수밖에.]

키르는 머리를 숙여 슈이렌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슈이렌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기운을 붙잡아 다시 집어넣어 주었다.

* * *

몸이 개운한 느낌과 함께 눈이 떠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피곤이 싹 가셨다.

“잠을 자서 그런가. 개운하네.”

얼마나 잔 건지 밖은 어둑어둑했다. 달까지 정중앙에 떠 있었다. 밥 시간대를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지금 밥을 먹으면 저녁이 아니라 야식이었다. 야식도 괜찮지. 아직 주인이 안 왔고, 마중도 나가고 할 겸 같이 밥이나 먹을까?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발치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불을 치우고 보니 키르가 내 발밑에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침대가 얼마나 좋은데.”

방이 안 좋다고 구시렁대더니 침대의 좋은 점을 알았는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키르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문을 열었다. 카사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주인 안 와? 같이 밥 먹으려고 하는데…….”

“좀 늦으실 것 같습니다. 식당으로 가시겠습니까?”

진짜 오늘 많이 바쁜가 봐. 식당으로 안내하려는 카사를 말렸다.

“아냐. 그럼 방 안에서 먹을래. 갖다 줘. 키르도 주게 고기 많이 부탁해.”

“적당히 가져오겠습니다.”

“쳇.”

카사는 꼼수 따윈 통하지 않는다며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조금만 더 줘도 되잖아. 불만스럽게 투덜거렸지만 말이 통할 상대는 아니었다.

“키르 님도 먹을까요? 슈이렌 님은 그렇다 쳐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뱀이 스테이크를 먹일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카사는 나를 슬쩍 보며 말했다. 내가 이상하다 이거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자 알겠다고 말을 했다. 방 안에서 조금 기다리자 트레이를 끌고 카사가 들어왔다.

맛있는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키르도 냄새를 맡았는지 혀를 날름거리며 일어났다. 내가 먹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어, 일어났어? 밥 먹을래?”

[그건 무엇이냐.]

“고기인데?”

[살아 있지도 않지 않느냐.]

뭘 그런 걸 먹느냐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일단 먹어 보라며 고기를 키르에게 내밀었다. 혀가 살짝 고기에 닿더니 몸서리를 쳤다. 혀를 계속 날름거리고 눈이 찌푸려진 것이 입에 안 맞는 것 같았다. 스테이크를 열심히 먹는 나를 키르는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군.]

“맛있는데. 그럼 내가 다 먹어야지. 넌 밥 안 먹어도 괜찮아?”

[괜찮다. 애초에 식욕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넌 잘 먹는군.]

“밥은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지.”

2인분을 먹으니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나는 배를 두드리며 만족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포식했네. 내가 밥을 다 먹자 키르가 제르펠에 대해 물었다.

[주인이라는 자는 언제 오지?]

“오늘 할 일이 많은가 봐. 곧 올 거야.”

[뭐 하는 자냐?]

“황태자야. 몰랐어?”

[인간 세상에 관심 없다.]

키르는 주인이 황태자인지도 몰랐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몰랐을 수도 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영감 같으니. 주인이 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연습이나 하자. 키르에게 다가가 그 앞에 앉았다.

“힘쓰는 법이나 알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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