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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38화 (3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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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펠의 두 팔이 벌어지고 나를 꼭 마주 앉았다. 그는 얼굴을 내 어깨에 기댔다. 울음을 참듯 살짝 떨리는 그의 몸을 품에 안았다. 내가 그에게 안기는 자세였지만 내 품 안에 제르펠이 쏙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제르펠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이냐…….”

“당연하지.”

“내가 무엇을 해도……?”

“응, 곁에 있어 줄게.”

“언제까지나……?”

“응.”

“거짓이라 해도 도망갈 수 없다…….”

“안 도망가. 오히려 주인이나 나 버리지 마.”

“내가 어찌 너를…….”

그에게는 확언이 필요했다. 그는 내가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의 머리를 껴안고 괜찮다며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항상 그가 나에게 해 주는 것처럼. 머릿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눈물처럼 보였다. 제르펠은 떠나지 말라는 듯이 내 옷을 꽉 잡았다. 그의 귓가에 떠나지 않는다며 속삭였다.

처음에는 제르펠의 지위를 보고 달라붙었지만 시간의 지남에 따라 정이 들었고, 많은 사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시선이 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거기에 그는 이 세계에서 나에게 애정을 보여 준 첫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난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마치 아이를 재우듯이. 내 어깨에서 그가 얼굴을 드는 게 느껴졌다.

“이제 괜찮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르펠의 눈가는 빨갛게 붉어져 있었고,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개운해 보였다. 그는 나를 밀어내며 천천히 떼어 냈다. 순순히 그 힘에 따랐다. 이제 괜찮겠다고 생각해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 시도는 제르펠이 내 팔을 잡으면서 실패로 끝났다.

할 말이 있는가 싶어 제르펠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도통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

내가 말을 하려는 순간 제르펠의 입이 열렸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슈이렌.”

“어?”

“……신기하지. 너의 말은 언제나 나에게 울린다. 그건 네가 특별해서 그렇겠지.”

갑자기 부른 내 이름에 놀라 대답했다. 말이 끝나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항상 내가 보던 그의 미소였다. 붉게 충혈된 눈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온 그의 미소에 나도 마주 보며 밝게 웃었다. 그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내가 말한 적이 있던가. 많이 아끼고 있다.”

“……그런 거 말 안 해도 알아.”

“신을 믿지는 않았는데…… 널 보고 있으니 신이 나에게 준 선물 같구나. 고맙다. 내 곁에 있어 주어서.”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자식. 싱겁긴. 약간 퉁명스럽게 말한 내 말에 제르펠은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실없는 그의 모습에 내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작은 웃음소리가 욕실 내에 울렸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탓에 물은 이미 차가워졌다. 나는 물에 젖은 몸이 춥다고 호소했다. 주인 상태도 좋아졌으니 이제 침대에 눕고 싶었다.

“이제 나가자 춥다.”

“슈이렌, 싫다면 거부해도 된다.”

“뭐가?”

불쑥 바닥을 긁을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엇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르펠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애원하듯이 손이 다가와 내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더니 점점 손이 올라왔다. 내 시선이 그의 손을 따라갔다. 제르펠은 내 볼을 감쌌고 그의 얼굴이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서로의 숨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릴 만큼 거리가 가까웠다.

“잠, 잠깐만…….”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싶은 찰나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닿았다. 제르펠의 눈동자에 놀라 두 눈을 댕그랗게 뜨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기이한 열기를 띠고 있었다. 입술은 아주 잠깐 맞닿았고 금세 떨어졌다.

“씨발…….”

나도 모르게 낮게 욕을 읊조렸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제르펠은 벙찐 내 표정이 웃긴 건지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뭐지?? 방금 뭐야??

“이런, 놀랐나?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게 돌아갔다. 애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급격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었다. 잠깐? 키스? 키스??? 드디어 사태 파악이 되었고, 악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였다.

그는 다시 한번 자기 뜻을 전달하듯이 내 허리를 자신과 더욱더 가깝게 끌어당겼다. 잡아당겨 오는 힘에 손을 제르펠의 어깨에 올렸다. 또다시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혀가 오가는 깊은 키스는 아니었다. 입술이 살짝 마주 닿은 채로 서로의 숨을 주고받았다. 눈이 마주한 채로…… 미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들짝 놀라 그의 가슴을 퍽 쳤다. 입술을 사정없이 팔로 비볐다. 추위로 떨었던 몸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시뻘게져 있다는 걸 알았다.

“너…… 뭐 하는 거야!”

놀라움 반, 황당함이 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숨이 차올라 헉헉거렸다. 제르펠은 쿡쿡 웃고 있었다.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그의 입술이 똑똑히 보였다. 아니, 아까는 암울 그 자체였잖아?? 갑자기 돌변한 분위기도 그의 행동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싫었나?”

“그, 그게 아니라 놀라서…….”

“그럼 다행이군.”

횡설수설하면서 말했다. 어라? 나…… 잘못 이야기하지 않았나? 제르펠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즐겁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용량을 초과한 내 머리는 터져 버렸고 넋이 빠진 채 그를 쳐다보았다. 싫다거나 거부감이 든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놀랐을 뿐. 그 사실에 더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대체 왜?? 내 마음이지만 영문을 몰랐다. 그에게 익숙해져서?

“정말 다행이야.”

제르펠은 내 목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고, 숨 쉬듯 말한 그 목소리는 공중으로 흩날렸다. 난 떨리는 입술을 주체하지 못했다.

“왜 키스를…….”

“음…… 많이 당황했나?”

그는 담백하게 말했다. 뻔뻔한 말이었다. 난 태연한 그의 대꾸에 열이 올라 화내듯 말했다.

“당연하지! 그것도 키스를……. 그런 건 사귀는 사람이랑 해!”

“사귀는 사람이라…… 너와 그러고 싶다면?”

“뭐?”

제르펠은 마치 나에게 시간을 주는 것처럼 더는 말하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를 나와?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고? 대체 왜??

“나랑…… 사귀고 싶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너에게 전하고 싶었다. 싫었다면 미안하군.”

목소리는 낮지도 높지도 않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은 어느 말보다 달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마음은 어디선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심장 박동은 천천히 그리고 크게 뛰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듯이. 긴장감에 입술을 핥았다.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말했다.

“야…… 나 남자인 건 알지?”

“그게 중요한 사항인가?”

제르펠은 고개를 기울인 채 말했다. 흔들림 없이 직시하는 그의 눈동자에 진심이 깃들어져 있었다. 방금까지는 별생각이 바라보았던 그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근사한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눈시울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턱에서 목으로 흘러내렸다. 물에 젖어 드러난 몸매는 딱 봐도 탄탄해 보였다. 자세 또한 내가 그의 무릎에 올라타고 있는 꼴이 아닌가. 손에 느껴지는 그의 근육에 손부터 얼굴까지 열이 올랐다. 달아오른 내 얼굴을 그에게 보여 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창피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응?”

내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자 그도 똑같이 얼굴을 숙였다.

정신 차려! 외모에 흔들리지 말자.

28년 인생 동안 나는 한 번도 남자는 만나 본 적이 없는 이성애자였다. 주변에 게이는 있었지만 취향 존중은 해야지 하며 딱히 거부감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될 거라고는 상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여자한테만 가슴이 뛰었다고! 실제로 몇 번 여자와 만난 적이 있지만 남자와는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남자랑은 어떻게…….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저리 가! 잡생각을 떨치듯이 사정없이 고개를 흔들렸다. 이 두근거림은 놀라서 그런 게 틀림없어. 암, 그렇고말고.

귀에 들리는 심장 박동 소리를 무시하며 애써 진정했다. 그러던 중 제르펠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를 올려 보자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따끔거렸다.

“다리는 아프지는 않나? 너의 상처부터 치료해야 했었는데…….”

“어?”

그의 시선은 정확히 내가 아닌 내 다리 쪽에 가 있었다. 이안이 응급처치로 손수건을 묶어 주었지만 물에 젖으면서 번진 건지 손수건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뭐야…… 난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이 손수건에 닿자 다리가 움찔거렸다. 좀 따갑네…… 물까지 닿았으니. 흉 질려나. 막상 보니 생각 외로 피가 많이 나온 것 같았다.

“괜찮아. 좀 피가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아프지는 않고 따가운 정도야.”

내 말을 들은 제르펠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일종의 공주님 안기 자세였다. 몸의 균형을 위해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렇게 심각한 부상도 아니었고, 충분히 혼자 걸어갈 수 있었다.

“주인아, 내가 혼자…….”

“쉿. 가만히 있어. 금방 치료하자.”

그는 단호하게 내 말을 잘라 내더니 나를 안아 든 채로 성큼 방으로 향했다. 그래서 남자인 나를 좋아한다고? 그런 거야?? 유혹하듯이 고백할 때는 언제고 내 상처를 보자 심각해진 제르펠의 얼굴에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에게 안겨 이동할 때도 내 머릿속에서 그의 고백이 맴돌았다.

고백은 맞는 거야? 확실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르펠을 보았다. 하지만 제르펠은 내 답변은 중요하지 않는지 오로지 내 상처에만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휩싸여 고백에 답할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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