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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41화 (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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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본 방에는 고르게 숨 쉬고 있는 두 명의 숨소리가 어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르펠은 슈이렌을 품에 꼭 안은 채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제르펠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세드릭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에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전하.”

세드릭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응시했다. 제르펠은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세드릭이 서 있었다. 그는 놀란 기색을 감추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뭐가 말이지?”

“깨, 깨어나셨습니까?”

“그래, 목소리가 들려서…….”

제르펠은 졸린 눈으로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을 보며 말했다. 세드릭이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해가 뜨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침인가…….”

자신이 지금까지 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말투였다. 세드릭은 걱정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그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제르펠을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대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 시간대에 일어나는 게 알맞죠.”

“그런가…….”

“네. 제가 전하를 깨우고 말았군요. 좀 더 주무시는 게 어떻습니까.”

“되었다.”

제르펠은 마른세수를 하고 일어나기 위해 이불을 젖혔다. 그런데 슈이렌의 손이 그의 옷깃을 잡았다. 제르펠의 평온한 얼굴에 세드릭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세드릭의 표정이 마뜩잖았는지 제르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지? 그 시선은.”

“아닙니다.”

세드릭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갈무리했다. 이 모습만 본다면 밤에 있었던 일은 모두 꿈만 같았다. 세드릭은 그들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를 피해 주려고 했다. 그는 공손히 예를 표하며 나가려 했다.

“그럼,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나가려는 세드릭을 제르펠이 붙잡았다. 어제 저도 모르게 자 버렸기에 듣지 못한 일과가 있었다.

“잠깐, 카사를 불러오너라.”

“……. 알겠습니다.”

세드릭은 제르펠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를 바랐지만 역시 무리였나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르펠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 호위 기사를 뽑으러 가지. 하루빨리 실력이 우수한 자를 더 붙여 줘야겠어……. 어제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미리 소집해 놔. 내가 하나하나 살펴보지.”

제르펠은 결의에 다부진 눈으로 말했다. 세드릭은 오늘 기사들이 죽어 나가겠다고 생각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예를 갖춘 뒤 조용히 방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탁 문이 닫히고 저벅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 사라졌다. 세드릭이 나가자 방 안은 고요함이 가득했다.

“습관이 깨질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나…….”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는 것은 그가 아주 어릴 적부터 유지해 온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침 해를 보며 일어난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슈이렌을 바라보았다.

“슈이렌. 어서 눈을 떠 주렴.”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슈이렌의 붉은 눈동자가 보고 싶었다. 제르펠이 슈이렌의 귓가에 말을 속삭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카사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르펠은 그의 안부부터 물었다.

“몸 상태는 괜찮나?”

“네. 다행히 가벼운 마취 독이었습니다.”

“몸이 안 좋다면 휴식을 취하도록.”

“괜찮습니다.”

카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르펠은 그를 쭉 훑어보고 말했다.

“이번 습격 어떻게 생각하지?”

카사는 잠시 생각하고는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슈이렌 님을 죽이는 것이 아닌 사로잡는 것이 목표였을 듯합니다. 암살자들이 사용한 게 마취 독이었다는 게 큰 증거입니다.”

범인이 황후라고 생각했던 제르펠의 예상이 빗나갔다. 황후의 입장에서는 슈이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닌 죽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가락이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사로잡는 것이 목표라면…… 범인은 교황일 가능성도 있겠군. 그리고 어제 슈이렌의 일과를 듣지 못했군. 무엇을 했지?”

“그 건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었습니다.”

카사를 부른 이유였다. 제르펠은 항상 카사에게 슈이렌이 어디에 갔는지, 기분 상태는 어떠한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를 일일이 듣고 있었다. 슈이렌은 카사의 태도가 심드렁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의 상태를 예리하게 살펴보는 것은 카사였다. 카사는 침착하게 어제 숲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 나갔다. 카사의 말을 듣는 제르펠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의식이 깨어나자 어제 일이 생각났다. 눈이 번쩍 뜨이고 이불을 거칠게 젖히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가로막힌 팔 덕분에 일어나지는 못했다. 이제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언제 잠들었지……. 열심히 기억을 더듬으며 눈만 깜빡깜빡했다.

몸은 정직하다 했던가. 어지러웠던 머릿속과 다르게 몸은 피곤해 있었는지 양을 세 마리까지 센 기억만 있고 그 뒤는 없었다.

“어휴…….”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비볐다.

“일어났나? 아침부터 한숨이라니…… 고민이라도 있나?”

난 옆에서 들린 말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제르펠의 시선과 똑바로 마주쳤다. 날 이렇게 고민하게 만든 장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몰라서 묻는 건지…… 알면서 묻는 건지……. 님 때문이거든요! 언성을 높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밥 먹으러 가자. 일이 많았으니 주방장에게 특별히 특식을 준비하라고 하지.”

“특식?”

제르펠은 가슴 위에 올린 팔을 치우더니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의 다정한 태도에 화가 사르륵 사라졌다. 특식이라는 말에 혹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먹을 거에 길들어진 것 같지만 착각이겠지?

자고 일어났지만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고, 고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몰라! 의식에 흐름대로 되겠지. 원래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내가 좋다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였다. 우선 밥이나 먹자. 사람은 먹어야 힘이 생겨.

제르펠이 나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는 딱히 언급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나는 평소대로만 하면 되었다.

“주인아. 오늘 맛있는 고기 나와?”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준비하도록 하마.”

“좋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자고 마음먹었기에 그의 허리에 매달렸다. 그도 자상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르펠을 힐끔 보았지만 특별한 점은 없었다. 이것 봐. 별거 아니네. 그냥 평소처럼 하자. 싱글벙글한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르펠은 내 앞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 어제 했던 말은 잘 생각해 줬으면 한다. 결코 재촉은 아니지만 답변을 기다리도록 하지.”

나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살살 짓는 눈웃음이 얄미워 보였다. 무엇보다 눈빛이 재촉하지 않는 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그는 쉽게 넘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

“그럼 가지.”

제르펠이 애써 외면했던 고백을 콕 집어서 말했기에 나는 다소 긴장한 채로 식당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뱀일 적에는 바로 그의 옆에 내가 있었지만 사람이 되고 나서는 서로 마주 앉아서 식사를 했다. 단지 탁자가 너무 길어 서로 간의 거리가 멀다는 게 이전과 달랐다. 평소에도 불만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오늘 갑자기 불만이 생긴 건지는 모르지만 식탁이 길다는 사실이 제르펠의 심기를 거슬렸다.

“식탁이 왜 이렇게 길지?”

“네??”

시종의 얼굴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잘 쓰던 식탁에 무슨 문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황태자의 말이었다. 시종은 제르펠의 살벌한 기세에 뻘뻘 땀을 흘리면서 연신 허리를 굽신댔다.

“내, 내일 당장 짧은 식탁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은 제르펠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잘 먹다 말고 뭐 하는 짓인지……. 그의 의중이 짐작이 가서 내가 다 쪽팔렸다. 나를 보며 눈매를 휘었다. 난 그의 시선을 회피하고 눈앞의 음식에 집중했다.

너무 집중한 탓에 제르펠이 내 옆에 다가온지도 몰랐다. 갑자기 턱을 잡아채는 손길에 깜짝 놀랐다. 놀란 눈으로 바라본 곳에는 나른한 눈빛으로 서 있는 제르펠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왜, 왜?”

“묻었구나.”

그의 시선에 손이 올라갔고 입꼬리 부분을 만지니 살짝 손가락에 소스가 묻어났다.

“진짜네. 고마워.”

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부담스러웠던 그의 손을 치웠다. 난 멀리 있는 냅킨으로 닦기 위해 손을 뻗었다. 내 손은 냅킨에 닿지 못했다. 입꼬리를 스쳐 지나가는 손길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소스가 제르펠의 손가락에 묻어 있었다. 그는 그걸 입속에 넣었다.

“짜군.”

제르펠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입을 떡 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소스가 짜지! 안 짜겠어! 특히 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해 스테이크의 간이 센 편이기도 했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딱딱했던 눈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미친…… 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따라서 제르펠도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고, 머리카락도 옆으로 따라 흘러내렸다. 그는 검은 머리였음에도 화사하게 빛이 나 보였다.

제르펠이 진득한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 시선에 반응을 보이면 잡아먹힌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그는 약간 아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저 먹으렴.”

열망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주제에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뒤로는 어떤 말이 오가지 않은 평화로운 아침 식사가 이어졌다. 그 뒤 난 홀로 방으로 왔다. 그리고 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자식이 내가 지 얼굴을 좋아하는지는 어찌 알고 계속 들이대?”

얼굴이 살인적이니 타격도 컸다. 가까이 들이대면서 웃는데…… 아예 날 홀려라. 홀려. 여우가 따로 없어요. 평상시에는 무표정하던 얼굴이 나를 바라볼 때는 다정하게 풀어지니…… 아니, 평소와 변함없는 표정이긴 했지만 어제의 고백과 적극적인 행동이 더해지니 파괴력이 굉장했다.

방 침대에 누워 있자니 무언가가 어렴풋이 생각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큰일의 연속으로 사소한 걸 잊은 듯한 이 찜찜함…….

“그러고 보니 뭔가를 잊은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내 착각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듯이 똑똑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사인가 싶어서 바라본 방문은 열릴 김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문이었다. 하지만 창문 밖에 비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벌떡 일어나 조심히 창문 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이 창문을 치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가 자세히 보니 키르의 꼬리였다. 키르는 나뭇가지 끝자락에 매달려 꼬리로 창문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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