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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 기사들이 수련하는 장소에는 왜 온 거야?”
“호위 기사가 부족한 것 같아 더 뽑았다.”
“엥? 왜? 카사로도 충분한데!”
카사로도 골치 아픈데 더 호위 기사가 늘어나는 건 귀찮았다. 싫다고 항의를 했지만 제르펠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때 아직 받지 못한 내 목걸이가 생각났다.
“아니면…… 마법 목걸이! 그것도 있잖아. 꼭 호위가 늘어야 해……?”
더는 호위가 늘어나는 건 사양이었다. 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부드럽게 달래면서 말했다.
“어제 같은 일이 생기면 큰일이다. 그리고 마법이 만능은 아니다.”
제르펠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만일의 사태는 생각도 하기 싫다며 괴롭게 일그러졌다. 어제 그의 모습이 아련하게 지나갔다. 난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갔다. 애처럼 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제르펠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을 이었다.
“마법을 해지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목걸이는 네가 목숨이 위협할 때 발동되는 형식이다. 생명의 위협이 없다면 발동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음…… 예를 들면 납치에는 목걸이가 효력이 발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저번처럼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쩔 수야 없는데…….”
“착하지. 이해해 주어서 고맙구나.”
그래, 죽는 것보다는 낫지. 이번에는 잘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왔으면. 어쩔 수 없으면 상황을 즐기라 했던가. 호위가 붙는 건 확정 사항이니 제발 카사 같은 인간만 아니길 빌었다. 신출귀몰해서 심장이 떨어질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세드릭은 서 있는 우리들을 눈치채고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그만! 전하와 사자님께서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세드릭의 말에 여러 명의 장성이 동시에 인사하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순간 귀가 먹먹했다. 제르펠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내가 햇빛에 눈이 부시지 않도록 햇빛 가리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간단한 다과와 차까지 있었다. 준비가 철저하네……. 오느라 목이 말랐던 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역시 주인은 내 취향을 잘 알아. 쓰지 않는 달달한 차였다.
세드릭은 제르펠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검을 전해 주었다. 제르펠은 겉옷을 벗고, 타이를 약간 느슨하게 풀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의 행동에 난 두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뭐 해?”
“여기서 지켜보고 있으렴.”
“기사들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내 뒤에서 다가온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카사였다. 제르펠은 어느새 검을 받아 들더니 연무장 쪽으로 걸어갔다. 연무장이 기사들이 하나같이 웅성거리면서 침을 삼켰다. 빳빳하게 굳은 자세가 긴장했음을 보여 주었다.
“전하와 대련할 기회는 흔치 않다.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네!!!”
흙먼지를 일으키며 대련이 시작되었다. 제르펠은 혼자였고 2명씩 짝을 지어 기사들이 덤벼들고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지켜보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기사들을 상대했다. 하긴 어제 보니까 실력이 대단했지…… 기사들은 힘겹게 손에 차오르는 땀을 무시하게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은 검을 놓치지 않게 버텼다.
제르펠은 기사들의 검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하는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제르펠의 눈은 날카롭게 상대의 검을 주시했다.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어느 정도는 맞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검을 맞대는 자의 얼굴은 오만상으로 찌푸려져 있었다. 힘 싸움에 밀려 검이 튕겨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제르펠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였다.
뒤에 있던 카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날 지켜 주기 위해 다친 사람이었다. 어제 별다른 상처는 없다는 세드릭의 말을 들었지만 걱정이 되었다. 카사를 위아래로 쑥 훑어보았다. 세드릭의 말대로 큰 상처는 없었다.
“몸은 괜찮아?”
“괜찮습니다. 독에 중독되었던 것뿐입니다.”
외상이 문제가 아닌 내상이 문제였다.
“도, 독?? 괜찮은 거 맞아?”
“네, 어느 정도 내성이 있습니다.”
카사의 말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태연한 그의 말투도 한몫했지만 독……. 암살자라서 혹시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하더라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좀 더 쉬지. 주인이 호위를 더 뽑는다고 하던데 휴가 겸 쉬고 와. 혹시 주인 때문이라면 말해 줄게.”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면야. 알아서 해.”
난 미안한 마음에 계속 권했지만 카사는 괜찮다고 말했다. 결국 어깨를 으쓱였다. 계속되는 권유도 상대방에게 폐를 준다. 자신이 괜찮다며 만류하는데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우리들은 계속되는 대련을 지켜보았다. 그때 한 기사의 검이 제르펠의 머리끝을 스쳤다. 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저 자식이! 무릎이 탁자에 부딪혔지만 무시했다. 그 기사도 많이 당황한 건지 검을 들고는 움찔거렸다. 잔뜩 겁에 질려서는 제르펠에게 괜찮으시냐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방한 모습에 방금의 광경을 의심했지만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확실히 그의 검이 제르펠에게 닿았다.
물론 팀을 짠 기사가 틈을 잘 만들어 준 것도 있었다. 다른 기사들에 비해 그의 검 솜씨가 좋은 것이 눈에 보였다. 제르펠은 검이 스친 머리끝을 만지더니 세드릭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뒤에 있던 카사가 한 평의 감상을 말했다.
“재능이 있네요.”
“그러게…… 어려 보이는데.”
주인이 다친 곳이 없다면 괜찮았다. 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사람 정해졌네. 저 기사가 나중에 내 눈앞에 호위 기사로 서 있을 것 같았다. 또다시 이어지는 대련을 하릴없이 보았다. 기사들을 상대로 여유로워 보이는 제르펠의 모습은 확실히 멋졌다.
“진짜 잘생기긴 했어…….”
요리를 봐도 저리 봐도 저 잘난 집 자식이 왜 나를 좋아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생기고, 능력 좋고, 여자들도 많이 울리게 생겼는데…… 나의 어디가 마음에 든 건지…….
[짜증 나는 인간이지만 괜찮군.]
내가 제르펠을 보고 느낀 감상을 작게 말한 순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제 발 저린 내가 말을 더듬었다.
“뭐, 뭐가?”
키르가 어느새 시종한테 벗어나서는 내 옆에 와 있었다. 하나같이 기척 숨기기 신공이 들렸나.
[실력이 좋다고.]
“아…… 검술…… 그렇지.”
얼떨떨하게 말하는 나의 모습을 키르가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타이밍 좋게 카사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슈이렌 님. 가시지요.”
연무장을 보니 이제 대련은 끝났는지 기사들이 하나같이 주저앉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제르펠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난 제르펠에게 다가갔다. 숨을 헐떡이는 기사 두 명이 제르펠의 시선을 받으며 서 있었다. 역시나 아까 보았던 그 기사들이었다.
“이들이 슈이렌 님의 호위가 될 자들입니다.”
제르펠은 그래도 마음에 살짝 들지 않았는지 이마가 살짝 구겨져 있었다. 직접 나서서 상대했고 그중에서 괜찮은 실력자 두 명을 뽑았지만 자신의 기준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았다. 그가 살짝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기사 중 한 명은 무척이나 앳되어 보였다. 멀리서도 젊다고 생각했었다. 기사는 제르펠의 시선에 차렷한 자세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제르펠의 혀를 찬 소리에 움찔한 것이 눈에 보였다. 나머지 한 명은 능숙하게 표정을 감추고 있었다.
“전하. 어떻습니까?”
“이들로 하지. 슈이렌 이리로.”
제르펠은 들고 있던 검을 세드릭에게 넘겨주었다. 제르펠은 그들 앞에 나를 내세우더니 말했다. 기사들은 세드릭에게 언질을 받았는지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너희가 지켜야 할 사람이다. 상처 하나라도 생긴다면 각오하도록.”
살벌한 제르펠의 말에 두 사람이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월이라고 합니다.”
“포, 폴이라고 합니다.”
중년 남자인 월은 눈을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그의 눈가 옆의 주름이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연륜에 맞는 능숙한 태도로 나에게 인사했다. 폴은 긴장한 나머지 말하는 도중 혀를 깨물었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가 선명했다.
둘은 내 입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난 그들을 보며 살짝 볼을 긁적였다. 카사가 호위가 되었을 때는 어느샌가 뒤에 있었다. 이런 자리는 어색하기만 했다. 헛기침을 하고 건넬 말을 골랐다. 무난하게 인사나 해야지.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곁에 있을 사람들이었다. 상냥하게 말하는 게 좋겠지…….
“음……. 일단 난 슈이렌이야. 잘 부탁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폴과 월은 고개를 들었다. 폴은 내 얼굴과 마주하더니 얼굴이 새빨개 물들었다. 어라? 이놈 봐라. 풋풋함이 느껴졌다. 나도 내 웃는 얼굴 보고 눈에 부셨던 적이 있지.
폴은 면역이 없는지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던 제르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등 뒤가 서늘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제르펠이 심통 맞은 얼굴로 서 있었다.
“저놈은 바꾸도록 하지.”
세드릭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한번 한 말을 제르펠이 철회한 것이다. 제르펠의 행동이 이해되었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폴은 반대였다. 갑작스러운 제르펠의 사나운 말에 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세드릭은 제르펠의 반응에 폴이 못 미덥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무척이나 재능이 있는 자입니다. 거기에 슈이렌 님과 별 나이 차이가 나지 않으니 더 통하는 게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주인한테 나이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저 내 얼굴에 볼을 붉히니까 싫었던 것 같은데……. 세드릭은 두 사람의 뒤에 서 있었기에 폴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는 제르펠이 못마땅해하는 이유가 폴의 어린 나이 탓이라 생각했는지 폴을 변호했다.
세드릭은 제대로 헛발질을 했고, 오히려 그의 말에 더 제르펠의 시선이 사나워졌다. 나이 차이가 적어 통하는 게 많을 거라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사실 나이로 따지자면 가까운 건 제르펠이지만…… 내가 당당하게 18살이라고 선언을 했고,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내 본래의 나이를 알지 못했다.
폴은 제르펠 쪽으로 아예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불쌍한 놈……. 내가 더 미안해져 제르펠을 말렸다. 그렇다고 내가 폴을 감싸면 안 될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이제 볼일은 끝난 거야?”
빨리 쉬고 싶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제르펠이 한걸음 물러섰다.
“호위를 맡기도록 하지.”
제르펠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로서도 폴을 빼고 마땅한 다른 기사가 없기도 했는지 순순히 물러섰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드릭을 무시한 채 나에게 말했다.
“아직 볼일이 남았다.”
“무슨 볼일?”
“목걸이를 가지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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