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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45화 (4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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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이렌이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그는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다. 슈이렌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키르로 가로막는 바람에 보인 건 한순간이었지만 귀엽게 눈을 크게 뜬 모습이 보였다. 제르펠은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그러지?”

이안의 피곤함에 찌든 눈이 썩은 동태눈처럼 제르펠을 보고 있었다. 이안은 미세하게 달라진 그의 태도를 눈치챘는지 어이가 없다는 헛웃음을 지었다.

“고백이라도 하셨나요?”

“그래 보이나?”

“네.”

이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뭐, 상상에 맡기지. 아직 허락을 받은 건 아니라서 말이지. 우선 앉아라. 너에게 말할 것이 있다.”

“전하…… 분명 쉬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제 일에 관한 것이다.”

이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제르펠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소파에 앉았다.

“이번 소동 어떻게 생각하지.”

“마법…… 말인가요.”

“그래. 궁에 들어오자 대부분 잠들어 있었지. 네가 느꼈다면 확실히 마법이겠지.”

이안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안은 제르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침에 카사의 말을 들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성역에 침입하여 뱀들을 죽이고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도 모르고 온 방법도 그저 눈을 감고 뜨니 그곳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심증이긴 하지만 슈이렌과 카사가 들어가자 성기사가 당황했다고 하더군.”

“성역에서요?!”

이안은 골치가 아픈지 미간을 꾹꾹 눌렀다.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 난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어떻지?”

“네, 상황만 봐서는 확실합니다. 어제도 그렇고 성역에서도 그렇다고 하니. 마탑과 손을 잡은 것은 확실해 보이네요. 신전을 예상했지만 거기에 마탑까지…….”

“마탑인가…….”

제르펠은 작은 탄식을 뱉었다. 키지노와 노예 매매로 벌어들인 돈이 어디로 유통되었는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슬립 정도의 마법이라면 마법 도구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구하기 힘든 것이 힘들 뿐입니다. 그들은 분명 눈을 뜨니 다른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리 말한 것이 확실합니까?”

“그래.”

“그럼 텔레포트네요. 상당히 고도의 마법이죠. 가능한 자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공간을 넘나드는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제르펠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마탑은 세간과 소통을 하지도 않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데 황위 쟁탈전에 끼어든 셈이었다.

“이유로는 돈이 가장 유력하군. 신전도 귀족들에게 막대한 기부금을 받고 있고 사치도 만만치 않지. 마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프란시아 후작가가 모은 돈의 출처는 아직도 미궁 속에 있지. 황후와 교황의 관계는 이미 기우제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황후든 교황이든 관에 마법의 존재가 확인된 마당에 둘을 따로 볼 수는 없다. 황후가 아버지인 후작에게 부탁해서 교황에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을 노릇이지.”

이안은 제르펠의 말을 들으면서 고심하는 중이었다. 마탑이 후작과 손을 잡을 만한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는지 무릎을 탁 쳤다. 그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연구 비용일 가능성이 있네요. 마탑은 이해득실이 확실합니다. 그들이 엉덩이를 떼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연구죠. 연구를 위해서라면 몸을 불사르는 사람이 수두룩한 곳입니다. 자고로 연구에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법이죠. 그들의 지식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마치 귀족들이 사치를 원하는 것처럼요. 마법을 해 주는 대가로 돈을 얻는다면 좋은 조건이죠.”

“그 돈이 떳떳하지 않을 뿐이지. 그럼, 문제는 조력자가 마탑인가. 아니면 개인 인가의 문제로군.”

이안은 옆에 놓여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평범함 사람은 알아볼 수 없는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이안은 혹시 하는 사태를 방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마법 문자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적던 깃펜을 한번 돌리더니 펜의 끝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성역에 침입한 이유.”

“맞습니다. 신전이 황실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초반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역에서, 그것도 살생을 저질렀다 한다면 교황에게도 큰 치명타입니다. 대체 왜 뱀을 죽인 것인지…… 기부금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다른 조건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

이안은 턱을 잡으며 고심했다.

“교황은 내가 절대 기우제를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지. 슈이렌의 말을 들어 보면 교황이 수신의 힘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군.”

제르펠은 슈이렌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안에게 말한 상태였다. 교황과 황제파 귀족들은 기우제를 해서 비가 온다면 황태자 파들은 끝장이라는 뉘앙스로 자주 말했다. 그렇기에 귀족들을 처단했을 때도 좋을 때는 한순간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겠네요.”

“성역을 지킬 기사도 보내야겠군.”

“세드릭 님에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해야겠네요.”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제르펠은 수리가 끝나면 쉬라고 했지만 방 안에서 정보를 검토해야 할 판이었다.

* * *

“들어가십시오.”

“응.”

난 문을 쾅 닫으며 들어갔다. 문에 기댄 채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키르를 앉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꼬리가 나를 툭툭 쳤지만 신경 쓰지 못했다.

“으…….”

[이놈아! 이번에는 내가 숨이 막힌다!]

난 후다닥 달려가서 침대에 푹 누웠고, 그를 베개 삼아 꼭 끌어 앉고 뒹굴었다. 제르펠은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기다려 준다며? 제르펠의 언행이 너무 따로 놀았다. 키르는 자력으로 나에게서 빠져나왔다. 키르는 능청스럽게 물어봤다.

[짝이냐?]

“엥?”

키르의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내가 들은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짝이냐고.]

“짜, 짝?? 사귀는 사이?”

[사귄다고? 인간은 그리 말하냐? 좋아하는 거 아니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떠보는 시선에 그를 외면했다.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무릎 사이로 꼭꼭 숨겼다. 한참을 있다가 넌지시 키르에게 물었다.

“영감. 오래 살았지? 좀…… 인생 조언해 줘. 내가 주인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걸 네가 아니면 누가 알지?]

“나도 고민이라서 묻는 거잖아! 그것도 남자끼리인데? 이상하지 않아?”

[성별이 무슨 상관이지? 좋아하면 되었지. ]

“……간단하네.”

[연애 이야기라면 나에게 묻지 마라.]

“왜? 경험 없어?”

[없다.]

아…… 이때까지 모태솔로였어? 키르가 불쌍해 토닥이며 곧 좋은 날이 올 거라며 말했다.

[되었다. 어차피 얘들과 나는 살아가는 시간이 달라.]

그를 토닥이는 손길이 멈칫했다. 키르는 숲의 관리자로서 오래 살아왔다고 했다. 심지어 500년까지 세다가 때려치웠다고 했으니 나이가 더 많을 것이다. 다른 뱀들과는 차이가 있는 거겠지.

“영감. 미안.”

그는 정말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침대 구석으로 기어가며 말했다.

[실없기는…… 마음이 있다면 좋아하는 거지 나에게 묻지 마라. 그리고 너는 그전에 힘을 다루는 연습을 해라! 네가 죽는다면 대체 누가 비를 내린다는 말이냐!]

“누가 숲의 대리자가 아니라고 할까 봐.”

내가 퉁명스럽게 투덜거리자 키르는 나를 꾸짖었다.

[저번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나도 알고 있어. 어제 같은 일은 나도 딱 질색이야.”

정말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짐 덩이가 되는 건 내가 사양이었다. 키르의 말처럼 주인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던져두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키르 연습하자.”

[잘 따라올 수 있겠느냐?]

평소의 내 모습과 다른 진지한 모습을 키르가 눈치챘다.

“물론이지.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았다고, 그 지독한 공부도 했는데 이쯤은 아무것도 아냐.”

키르는 아리송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뒤로 맹훈련이 시작되었다.

나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었다. 애초에 잘 나가지도 않으니 당연했다. 그냥 제르펠이랑 밥을 먹고, 집무실에서 놀다가, 일이 바빠진 것 같으면 슬쩍 자리를 피해서 방으로 온다. 그리고 연습을 한다.

이게 은근히 힘들단 말이지. 그리고 이상하게 힘을 사용하고 나면 잠이 쏟아져 시간을 가리지 않고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흠칫하고 일어나면 2시간은 기본으로 지나가 있었다. 키르의 말로는 내가 처음 사람이 되었을 때 잠이 많았던 이유가 힘을 공중으로 분산시키고 있어서라고 말했다.

이제는 적절하게 조절해서 딱 몸에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키르의 말로는 힘을 쓰면 잠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쓰는 게 능숙하지 못해 강약을 조절하지 못한다나 뭐라나.

내 주위에는 비눗방울처럼 물방울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처음에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물을 다루는 연습을 했었다. 반도 다루지 못했던 물을 시간이 지날수록 다룰 수 있는 물의 양이 늘어남과 따라 이제는 모양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었다.

초반에는 물방울이 터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실수는 없었다.

[집중해라!]

그가 큰 소리로 말했지만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나날이 늘어나는 솜씨와 함께 저 멀리 던져두었던 제르펠의 관계에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와 제르펠 사이는…… 굳이 말한다면 썸타는 사이와 비슷해졌다. 제르펠은 평소에도 나를 많이 챙겨 주기는 했었다. 요즘에는 더 업그레이드된 것은 물론이요. 그 행동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눈웃음은 기본에 가벼운 스킨십이 잦았다. 아주 꼬시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던 처음부터 그가 나에게 어필을 했던 것 같았다. 내가 사람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마…… 하는 생각을 꾹 눌려 없앴을 뿐이었다.

“긴가민가했지…….”

나의 딴생각을 알았는지 키르는 옆에서 아예 작정한 것처럼 나를 잡아먹을 듯이 갈궜다.

[집중 안 하나?]

“알겠어. 이제부터 집중한다니까.”

키르가 힘을 다룰 수 있게 옆에서 조언해 주는 것은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쉴 틈을 줘야지. 난 섬세하다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니 기운이 흐려졌는지 바로 호통이 날아왔다.

[뭐 하는 거냐? 집중력이 흐려진다. 정신 차려!]

“예이~.”

이제는 잔소리가 없으면 심심할 지경이었다. 요령을 깨우치니 물을 조종하는 것은 쉬웠다. 가끔 힘 조절을 실패해서 방 안을 물바다로 만든 적도 있긴 했다. 이제는 실수도 없이 노련하게 물은 노련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힘의 사용법을 어니 정도 터득하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난 항상 눈앞에 보이는 물을 이용했다. 물이 있어야만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키르는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르의 말로는 수신의 힘 자체가 물의 힘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도 내릴 수 있는 것이고, 컨트롤만 잘하면 물을 생성한다고 한다.

난 곧바로 시도를 해 보았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안 되는데?”

[그,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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