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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48화 (4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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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심란한 마음을 꾹 누르고 과하게 흥분하고 있는 키르를 진정시켰다. 그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에이든이 뱀을 죽였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일의 정황을 정확하게 가릴 필요가 있다. 에이든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키르의 얼굴을 압박한 채로 에이든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일단 진정해 봐.”

키르의 몸부림을 억압하기 위해 힘이 들었던 난 한차례 숨을 고른 뒤 에이든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점차 씩씩대던 키르가 안정을 찾아갔다. 에이든에게 뱀에 대해 묻고 싶어도 당황해할 게 뻔했다. 우선 에이든에게 키르를 소개해 주었다.

“미안해. 얘는 키르라고 하는데 나랑 같이 지내는 뱀이야. 다른 사람을 봐서 놀랐나 봐…… 정말 미안해. 놀라지는 않았어?”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괜찮아요.”

난 웃으며 그의 안부를 물었다. 볼의 상처도 신경 쓰이고, 제르펠에게서 그의 유모가 추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전에 본 에이든의 눈물 때문에 더욱 눈에 걸렸다.

“그럼 다행이다. 그런데…… 볼은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아…… 그게…….”

에이든은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구나.”

볼에 대한 상처에 대해서는 딱 봐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었다. 왠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입으로 듣지 않는 이상 맞는지 아닌지 모른다.

애초에 황자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항상 해맑게 웃었던 에이든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혹시 고민거리가 있다면 뭐든 말해도 돼.”

에이든이 하염없이 쭈그려 앉아 호수를 응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에이든은 나를 바라보며 눈을 껌뻑껌뻑하더니 손을 꼼지락거렸다. 마치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사실…….”

에이든은 흘끔 나를 보더니 웃는 얼굴을 보고 결심을 했는지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에이든의 입에서 나온 것은 유모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횡령죄로 궁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에이든은 의외로 차분했다. 중간에 울먹이는 소리는 내었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주인을 닮았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했다.

“그렇구나…… 힘들었구나.”

제르펠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들은 것처럼 놀라워했다. 난 에이든의 움츠러든 등을 두드렸다. 토닥토닥. 내 위로에 에이든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 토닥거림이 에이든의 울음을 자극했다. 난 오히려 에이든이 울음을 터트리니 안도가 되었다. 아직 10살인데 너무 울음을 참는 것도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에이든에게는 유모는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 배신당한 충격이 컸을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옆에서 병시중을 들어준 자였다면 특히.

키르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키르는 긴 몸으로 몸부림을 쳤다. 나는 또다시 에이든에게 덤벼드는 줄 알고 꽉 붙잡았다.

[놔라. 아프다.]

“너 또 난리 칠 거잖아.”

[안 한다. 생각해 보니 이런 작은 인간 아이가 뭘 하겠냐?]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지만 그를 놓아주었다. 키르는 에이든에게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그를 계속 주시했다. 형제가 각각 자신의 고민을 끌어 앉고 슬퍼하고 있었다. 난 손에 힘을 끌어올려 모았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에이든의 뺨을 어루만졌다.

에이든은 울다가 나의 행동에 눈이 커졌다. 빨갛게 부어올랐던 에이든의 뺨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에이든의 주위를 맴돌던 푸른 기운들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기운이 생생히 보여 미소가 살짝 흐트러졌다. 에이든은 화끈했던 볼이 괜찮아졌는지 놀란 눈으로 볼을 만졌다.

“형…… 이거…….”

“이제 괜찮지?”

“네!”

난 뒤에 서 있던 카사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폴은 멀뚱하게 내 손을 바라보았고, 카사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월이 눈치 좋게 손수건을 나에게 주었다. 받은 손수건을 에이든의 앞으로 내밀었다. 에이든은 감사하다며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손수건을 받고 눈물을 닦았다.

난 에이든의 붉게 부어오른 눈시울에도 힘을 써서 가라앉혀 주었다. 에이든은 헤실거리며 웃었다.

“이제 웃네. 넌 웃는 얼굴이 어울려. 음…… 너무 슬퍼하지 마.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 괴롭지. 난 소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아니라고?”

에이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든의 말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에이든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에이든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손수건을 뭉개고 있었다.

“아마…… 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저 모른 척했을 뿐이지. 그래서 저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어리광부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편하게 살았던 것 같아서요.”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감정에 예민하고 한다고 하더니 에이든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에이든의 생각에 암담한 심정을 숨겼다. 10살이면 복잡한 사정 같은 건 모르고 활발하게 뛰어놀아도 되는 나이였다. 하지만 에이든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할 행동, 각자 짊어지는 것이 다르다. 에이든의 기특한 생각에 에이든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쓰다듬어 주었다. 장하다는 듯이.

“……대단하네.”

“네?”

낮게 가라앉아 있던 에이든의 눈이 커졌다. 이유를 묻는 듯한 얼굴에 난처하게 웃었지만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 생각을 전달했다.

“음……. 보통은 말이지. 난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왜 아니지…… 라고 분노를 하거든. 넌 대단한 거야. 아픔을 너의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었잖아.”

“그럴까요?”

“그럼, 이번 기회로 다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보는 눈을 길러야겠지.”

“형도 똑같은 말을 하네요.”

“누구랑?”

에이든의 주위에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있나?

“형님 옆에 있던 갈색 머리 분이요.”

“아…….”

지극히 이안다운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에이든은 속을 털어놓으니 후련한지 얼굴의 그늘이 싹 가셨다. 에이든은 무릎에 얼굴을 기대더니 나에게 물어보았다.

“사자님은 형님이 황제가 되기를 원하는 거죠? 수신님이 형님을 황제로 정하셨나요?”

말문이 턱 막혔다. 에이든은 순진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형이라도 불렀던 호칭도 사자님이라 바뀌었다.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에이든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의도를 파헤치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주인 곁에 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자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에이든에게 처음으로, 직접 들을 줄은 몰랐다. 약간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글쎄…… 주인이 원한다면 도와줄 생각이야.”

사실이었다. 만약 에이든이 황제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도 난 주인의 편을 들 것이고, 황제와 황후가 주인에게 거슬린다면 도와줄 것이다. 이미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다. 설령 에이든이 상처를 입는다 하더라도.

에이든은 황제가 되고 싶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을 것이 보였다. 그래서 더 잘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만족이었다. 웃음기가 없는 얼굴로 에이든을 마주 보며 말했다.

내 말에 안심이 된 듯 에이든은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의외의 반응에 난 크게 눈을 껌뻑였다. 고개만 끄덕일 줄 알았지 웃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이다……. 사자님, 전 황제가 되고 싶지도, 될 마음도 없어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저보고 꼭 황제가 되어야 한대요. 전 지금 이대로 있어도 좋은 걸까요?”

에이든은 명쾌하게 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저번에는 주인의 고해성사를 들어주었더니 이번에는 에이든이었다.

아주 형제가 쌍으로 나를 곤란하게 하네…….

나라고 별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이 있다. 에이든을 슬쩍 보았다. 에이든은 여전히 도움을 원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작게 한숨을 삼켰다. 잠시 고민하던 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황제가 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들이 너의 인생을 살아 주는 건 아니야. 넌 어떤 걸 하고 싶은데? 난 지금 바람을 쐬고 싶어서 나왔어. 호수를 보고 싶어서 여기로 왔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누군가는 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에이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하고 싶은 거요??”

“그래. 시간도 충분하고, 돈도 있다면 넌 뭐가 하고 싶어?”

“…….”

에이든은 머리를 싸매며 골똘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답이 나왔는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며 말했다.

“전…… 밖에 나가고 싶어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이 어떤지 알고 싶어요!”

에이든은 내 말을 듣더니 언제 울적했냐는 듯이 씩씩하게 말했다. 어린 애라서 그런지 좌절이 빠른 만큼 일어나는 것도 빨랐다. 안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린 티를 조금이나마 벗어 던진 것 같았다. 아이는 안 본 사이 훌쩍 큰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좋은 꿈이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마.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야.”

“네! 이제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래요. 사실 오늘 어머니한테 갔다가 혼나서 여기로 왔거든요.”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 짐작대로 상처를 낸 인물은 그들 중 하나였다. 황제와 황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에이든에게는 좋은 부모겠지? 라고 말한 내 말에 제르펠이 글쎄…… 라고 말한 것이 상기됐다.

“수업 열심히 듣고 있다며? 즐거워?”

“네!”

“그럼 열심히 배워.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하는 알겠다고 대답하는 에이든의 모습은 기특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안쓰러워 보였다.

“역시 형한테 말하기를 잘한 것 같아요. 형 옆에 있으면 왠지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에이든이 보기와 다르게 선을 철저하게 끊네. 공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사적인 이야기로 넘어오자 바로 호칭을 바꾸었다. 그리고 에이든의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같은 힘이 서로 끌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괜스레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눈을 돌려 호수를 바라보았다. 모처럼의 물이 내 눈앞에 있었다.

“이거 볼래?”

호수의 표면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용까지는 아니지만 뱀처럼 보이는 물기둥이 솟아올라 에이든 주변을 돌았다.

“우와~.”

에이든이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맴도는 물기둥을 바라보았다.

“만져 봐도 돼요?”

“그럼.”

손가락으로 살짝 눌렸다. 그러자 에이든의 손가락이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차가움이 느껴졌는지 손을 확 뺐다. 에이든은 신기한 광경에 볼을 붉히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 그런 에이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힘에 반응하듯 에이든 주위에 있던 푸른빛도 일렁이기 시작했다. 에이든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빛났다. 복잡한 고민거리가 나에게 닥쳤다. 하필……. 슬픈 미소가 얼굴에 자리 잡았다.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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