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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73화 (7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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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지 않았건만 자비심이 넘쳐났군.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봉사할 줄은 몰랐군.”

“전하의 행보에 큰 감동을 하였기에 결심을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제 어리석음에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칭찬이 아닌 비난 섞인 목소리였지만 교황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제르펠은 픽하며 웃었다. 그 웃음 어쭙잖은 짓을 벌이지 말라는 듯했다.

“상심이 크겠군.”

“괜찮습니다. 신께서도 모든 자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황은 나를 보며 말했다.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다. 내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교황은 내 표정을 정통으로 봤음에도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전하. 소문은 극히 들었습니다. 신의 사자님이 전하의 곁에 있으니 앞길이 순탄하겠지요.”

교황은 웃으며 말했다. 경고의 말인지 아니면 아부의 말인지 헷갈렸다. 제르펠은 말을 돌렸다.

“그것보다 사태는 어떻지?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고 슈이렌의 도움을 요청했지.”

교황의 낯이 어두워졌다. 침울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마을 사람 전체가 병에 걸렸습니다. 저희 신관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방도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효과는 있지만 한순간일 뿐 다시 증세가 나타나더군요.”

“어떤 증상이지?”

“기침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더군요. 나중에는 각혈하는 자도 있습니다. 다행히 전염병은 아닌 것 같지만…….”

“의원의 말은 들어 보았나?”

“저희는 신에게 축복받은 힘을 쓰고 있습니다.”

교황의 옆에 있던 신관이 대뜸 튀어나왔다. 그들에게는 의원이 상당히 낮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다. 제르펠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제르펠은 신관을 질타하며 말했다.

“의원의 말은 듣지 않았다. 이 말이군. 정확한 증상을 파악하고 병명을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신성력이 통하는 건 확실합니다. 의원의 도움은 필요가 없습니다.”

“이 무슨 전하께 무례한 언사인가. 진정해라.”

신관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교황은 제르펠의 말에 대꾸하는 신관을 자제했다. 교황은 신관을 감싸면서 말했다.

“전하 죄송합니다. 신의가 높은 아이라 격하게 반응을 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의원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의원이 있었으나 그도 신의 품으로 돌아갔지요.”

교황은 의원을 애도하듯이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제르펠의 한쪽 눈이 삐뚜름하게 치켜세워졌다.

“옆 영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

“소문이 어찌 변질이 된 것인지 전염병이라고 두려워 오지 않았습니다.”

“……확실한가?”

제르펠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교황을 빤히 보았다. 교황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부른 거 맞아? 의심이 널뛰었다. 제르펠도 마찬가지였는지 작은 탄식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슈이렌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였는가? 마치 슈이렌만 온다면 모두가 구원될 것이라 말했다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신의 사자님입니다. 신도들을 구할 수 있을 테지요. 저희와는 격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의 병도 말끔히 나을 것입니다.”

교황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없다는 듯이 내쉬는 제르펠의 한숨 소리가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사자님. 신도들을 구해 주십시오. 신에 대한 믿음이 남다른 이들입니다. 신도들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막아 주십시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기에는 교황이 그들을 위해 신성력이나 썼을까? 의문이었다. 정말 교황이 병자들을 위해 신성력을 쓰며 애썼다면 저 새하얀 의상이 더러움 한 점 없이 유지되지 않았겠지. 난 의자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한번 가 보자.”

난 당당하게 말했다.

“슈이렌…….”

“괜찮아.”

제르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까 천막의 상태를 봤으니 더 했다. 교황은 낮춘 자세로 나를 안내했다. 아까와 같은 곳이었다. 신관들은 두 사람에게 동시에 신성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아픈 사람에 비해 신관의 수가 없어 생긴 일이었다. 그들은 각각의 손에 각기 다른 손을 부여잡고 힘을 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걱정이었지만 신관들의 얼굴색도 새파랗게 질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난 그중 가장 심각해 보이는 신관 옆으로 다가갔다. 뒤에서 어깨를 쿡쿡 찔렸는데도 신관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신관의 태도지. 뒤를 곁눈질했다. 교황은 말로만 신관들을 위로하며 순찰하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성력이나 베풀 생각은 안 하고. 내가 신관의 손을 낚아채서야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어? 사자님?”

“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가서 쉬세요. 이분들은 제가 하겠습니다.”

“영광…… 콜록콜록.”

나를 본 환자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벙긋대다가 목이 콱 막혔는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를 일으켜 등을 두드려 주었다.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아까 신관이 했던 것처럼 손을 통해 힘을 불어넣었다. 교황에게 들은 바로는 꽤 병이 심각한 것 같았으니까……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몰랐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며 힘을 확 불어넣었다. 주위가 잠시 환해지다가 빛이 사그라졌다. 편안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사람이 번쩍 눈을 떴다. 난 깜짝 놀라서 어디가 잘못된 줄 알았다.

“괘, 괜찮으세요?”

난 그를 일으켜 세워줬다. 환자는 자신의 손과 몸, 그리고 목을 만졌다. 그리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불어넣었나?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쌩쌩해진 얼굴에 난 머쓱하게 목덜미를 만졌다. 다음번엔 힘을 좀 줄이자. 그는 나를 보고는 무릎을 꿇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러지 마시고 일어나세요…….”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주변이 술렁였다.

“역시 사자님이십니다. 저희와 다르게 한 번에 치유하시다니…….”

교황의 손뼉 치는 소리는 어찌나 듣기가 싫은지…… 뒤로 휙 돌아보니 교황이 내 뒤에 우뚝 서 있었다. 교황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기이한 욕망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 미간이 좁혀지고 있었다.

“저렇게 좋아져도 한순간이라는 말이냐?”

옆에 서 있던 제르펠이 교황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그렇습니다. 이유를 모르니 답답할 뿐이죠.”

제르펠은 교황의 안색을 샅샅이 살펴보다 심각하게 입매를 굳혔다.

나는 바로 자리를 옮겨 환자를 보살폈다. 보내도 환자들이 다시 들어오고 있었지만 죽을 듯이 간헐적으로 숨을 뱉고 있는 환자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난 기진맥진할 때까지 힘을 퍼부었다. 옆을 보니 제르펠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간호를 도와주는 마을 사람과 신관에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내가 사람들을 치유할 때마다 뒤에서 잡음이 들렸다.

“역시나 정말 대단하십니다.”

교황의 옆에 붙어 다니던 신관이 계속 내 뒤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계속 신경에 거슬리게 하는 저 주둥이를 닥치게 하고 싶었다. 나를 감시하는 건가?

“사자님 덕분에 많은 사람을…….”

“넌 뭐지?”

“아…… 전하…….”

슬슬 짜증이 머리끝까지 찾아올 때쯤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제르펠이 따끔하게 말했다. 난 소란에 뒤를 돌아보았다. 신관은 제르펠을 보고 당황했는지 어찌할 줄을 몰랐다.

“혹시…… 저, 저에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놀고 있는 자가 누가 있지?”

제르펠은 신관을 야멸찬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나불대던 신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제르펠이 주변을 둘러보자 신관도 똑같이 행동했다. 나도 주위를 삥 둘러보았다. 신관들은 신성력을 불어넣고 있었고 손이 비는 자는 환자의 수발을 들었다. 기침이 주 증상이었기에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하는 자에게 등을 두드려 주거나 물을 마시도록 보살피고 있었다.

“다들 마을 사람들을 간호하기 위해 손이 바쁘거늘. 넌 입이 바쁜가 보군.”

교황도 소란이 일자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손 하나라도 부족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놀고 있는 자가 있더군.”

교황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신관을 바라보았다. 다들 바쁜 와중 멀뚱히 서 있는 자는 교황과 그 옆에 있는 신관뿐이었다.

“입으로 떠들 시간이 있다면 가서 일하거라.”

“네!”

신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힘찬 대답과 함께 그는 줄행랑을 쳤다. 그러고는 어설프게 환자의 곁에 가서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교황도 그 신관을 보다가 제르펠에게 사죄의 말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미처 보살피지…….”

“교황. 슈이렌이 오기 전에 힘을 많이 소비했나 보군.”

“…….”

“신관들의 본보기가 되는 자가 신성력을 베풀지 않아 하는 말이다. 몸이 좋지 않다면 가서 쉬는 것이 어떤가.”

제르펠이 말하자 주변 신관들에게 동요가 일어났다. 알게 모르게 곁눈질을 하던 신관들이 내 눈에 목격되었다. 교황의 인자한 웃음에 금이 갔다. 그리고 교황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

“아닌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하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거칠게 몸을 돌리던 교황은 보라는 듯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저의 무지함으로 고생을 하게 만들었군요.”

“아, 아닙니다.”

환자는 손사래를 쳤다.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에 빛이 나는가 싶더니 조금 뒤 교황이 일어났다. 그가 딱 무릎을 꿇은 곳에 검은 얼룩이 졌다.

“감사합니다.”

“신의 자비에 감사하세요.”

옆에 있던 신관이 눈치를 보며 교황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교황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손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슬쩍 자신의 옷을 바라보더니 검은 얼룩이 진 것을 확인하고 입가가 굳어졌다. 교황은 제르펠에게 웃으며 말했지만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 있는 웃음이었다.

“전하의 말씀도 맞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군요. 하지만 저는 이곳을 통괄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제가 쓰러지면 큰일이죠. 그래서 힘을 아껴 두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볼일이 생겨 이만 물러가도록 하죠.”

교황은 고개를 숙였지만 제르펠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교황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뒤로 돌아갔다. 그가 뒤를 돌자 제르펠이 혀를 차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렸다. 나도 교황에게 혀를 내밀었다. 하지만 줄행랑을 치는 것 같아 기분이 통쾌했다.

“진작 갔어야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슈이렌.”

“어?”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네가 쓰러지면 큰일이다.”

그는 환자 옆에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난 제르펠의 옷깃을 잡아당긴 다음 귓가에 속삭였다.

“주인아. 멋졌어. 교황 물리친 거.”

내 말을 듣자 제르펠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너만 고생하게 할 수 없지. 도망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슈이렌. 나는 마을을 둘러보며 원인을 살펴보고 있으마. 월과 폴을 붙이고 가지. 신경에 거슬리는 자가 있다면 말하거라.”

“알겠어.”

“금방 다녀오마.”

제르펠은 손짓을 하여 월과 폴을 내 뒤에 지키도록 했다. 제르펠은 다른 신관의 안내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 거치적거리는 인물이 없으니 그 뒤로 일은 순탄해졌다.

“드디어 끝이다!!”

숙이느라 힘들었던 허리를 쭉 폈다. 그때 종이 땡땡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아하게 울리는 종소리였지만 몸은 이상하게 나른해졌다. 힘을 많이 써서 그런가?

“사자님, 수고하셨습니다. 마침 시간도 되었네요. 식사하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옆에 처음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신관이 서 있었다.

“로이테 맞지?”

“네. 맞습니다.”

“식사 좋지. 근데 이거 무슨 소리야?”

종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신경에 거슬렸다. 그리고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

“아. 교회의 종소리입니다. 식사 시간이라는 걸 알려 주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둘씩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장소를 묻기도 전에 손짓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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