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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를 따라서 교회를 향해 걸어갔다. 아까도 그렇고, 역시 기분이 영 꺼림칙했다. 난 그 교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고개를 올려다보니 아까 울렸던 종이 있었다. 이상하게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뭐지?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려는 순간 저 멀리서 로이테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그에게 달려갔다.
교회 안에서는 음식을 나눠 주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수프가 담겨 있고 한 줄씩 서면 한 그릇씩 나눠 줬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퍽퍽해 보이는 빵 한 조각을 주었다. 신관과 마을 사람들이 섞어서 줄을 서고 있었다. 그 사람 중에 제르펠은 보이지 않았다.
발끝을 세우고 고개를 쭉 빼서 살펴보았다. 제르펠이 작은 키가 아니고 복장이 눈에 훅 들어올 텐데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조사 중인가?
“신의 자비에 감사를…….”
사이비 종교야? 문구가 왜 그래? 신관들은 서로 기도를 했고,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줄 때는 빠지지 않는 말이었다. 교황이 입에 달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난 대충 고개만 까닥였다. 그릇에 담겨 있는 수프는 지금의 사정을 알려 주듯 영양가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말간 수프였다.
자리에 앉았지만 먹지는 않고 말없이 수프를 응시했다. 참자…… 나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더 힘들지. 음식 투정할 때가 아니야. 난 의무적으로 먹었다. 그리고 한 숟가락을 먹고 고개가 갸웃해졌다.
맛이 이상해서는 아니었다. 아니, 맛이 이상한가? 본능적으로 먹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나마 말을 건넬 수 있는 로이테에게 물었다.
“이 수프 좀 이상하지 않아?”
“네?”
그는 수프를 한번 보고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았다.
“평범한데요?”
내가 보기에도 그냥 영양가가 없는 수프긴 하지만…….
“혹시 입맛이 없으신가요? 그래도 힘을 쓰시려면 드셔야 합니다.”
괜한 기우라 치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테의 말이 맞기에 잠자코 수프를 먹었다. 음식 투정을 부리지 말자고 자신을 타박했다. 배가 차지는 않아 입맛을 쩝 다셨다. 하지만 더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교황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옆에서 묵묵히 먹고 있던 로이테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여기 있는 신관들 전부 교황이랑 같이 온 거야?”
“성하님과요?? 설마요. 전 수도 출신이 아니에요.”
“수도 출신?”
로이테는 깜짝 놀라 내 말에 반박했다. 그는 내 의문에 차근하게 답해 주었다.
“네. 성하께서는 수도에 있으세요. 수도에 가기에 저는 아직 경력도 실력도 부족하죠. 거기는 고급 신관들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헤…….”
속으로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봐도 교황 무리와 확연하게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러면 여기는 지원해서 오게 된 거야?”
“네. 사실 저도 국경 마을 출신이거든요. 신께 자비를 받아 전 신성력이 있지만 없었다면 저도 저들도 다를 바가 없었겠죠. 제 마을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여기에 지원한 자들은 대부분 그럴 겁니다. 이런 곳에 오고 싶어 하는 자들은 그다지 없거든요.”
로이테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것도 잠시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내가 와주어서 다행이라고 대답했다.
분명 내가 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거의 마무리 단계라 끝날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병세가 심각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다행히 힘은 덜 들어갔지만 그 수는 아까보다 더 많았다. 그들은 잔기침을 달고 있었다.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다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래……! 끝까지 가 보자!”
* * *
“아…… 나 죽는다.”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었다. 난 로이테가 안내해 준 숙소로 들어갔다. 당연히 황궁보다 좋지는 않았지만 신경 쓴 티가 팍팍 나는 방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신의 사자랑 황태자니까 말이지. 난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딱딱한 침대였지만 누워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했다.
제르펠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며 느린 숨을 내뱉고 있을 때 제르펠이 들어왔다. 나는 일어날 힘없이 팔만 흔들었다. 침대 옆이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생했다. 혼자서 애썼구나.”
“그래…… 나 고생했어…… 나 머리 쓰다듬어 줘.”
내가 칭얼거리면서 말했다. 그는 작게 웃더니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쓸어주었다.
“등도 쓰담, 쓰담 해줘.”
“그래.”
그는 내가 말하지 않았지만 뻐근한 어깨와 허리를 주물러 줬다. 부드럽게 등도 쓸어준 것은 말 안 해도 입이 아팠다.
“많이 힘들었나?”
“뭐, 그렇지. 어떡해…… 신관들이 그동안 고생했는지 안색이 썩 좋지 않아서 쓰러지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다니까? 거기서 그나마 체력이 팔팔한 내가 열심히 해야지…….”
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서 나른해진 몸을 그에게 기대었다. 잠이 오는 걸 꾹 참았기에 고개가 이리저리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는 내 머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피곤하면 먼저 자도 괜찮았다.”
“어떻게 그래…… 너도 안 왔잖아.”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제르펠에게서 들렸다.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더니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 가슴을 토닥거리는 자세가 잠을 재우는 듯했다.
내일도 오늘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깜깜해졌다. 고개를 돌려 제르펠을 보고 물었다.
“주인은 어땠어? 성과는 있어? 조사한다고 나갔잖아.”
“별다른 이유는 발견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힘을 모아 부서진 마을을 복구하고 있더군. 음……. 마을을 둘러보고 숲에 위험한 약초가 있는지 살펴보러 잠깐 다녀왔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그럼 이유가 뭐야? 확실히 병은 고쳤는데…… 계속 다시 병에 걸리니…….”
“넌 환자들을 치유하는데 일념 하렴. 조사는 내가 하지. 오늘 힘들었을 텐데 일찍 자자.”
“응.”
제르펠의 말에 따라 잠을 청했다. 가까스로 잡고 있던 의식의 선이 뚝 끊겼다. 잠결에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약간 격양된 제르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기침을 하고 있다고?”
희미하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고개가 이리저리 사정없이 까딱였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주위는 깜깜했다.
“으…… 뭐야…….”
난 옆을 손으로 더듬었다.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아??”
난 비몽사몽간 채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피로가 회복되지 못했는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휘청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고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르펠이 있었다.
그의 앞에는 폴과 월이 잔기침을 했다. 그들은 제르펠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어제 들었던 로이테의 말이 떠올랐다. 작은 잔기침으로 시작하다가 각혈을 토해 낸다고 했다.
“슈이렌. 넌 나오지 말아라.”
“죄송합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제르펠은 내가 나오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월의 자책 어린 목소리가 잇달았다.
보통 환자와 가까이 있는 자가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설마 나를 호위한다고 서 있다가 걸린 거 아니야??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 제르펠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아까 들린 소리로는 ‘다들’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인지…….
설마 다들이라는 말에 제르펠도 포함됐다면? 난 얼른 그에게 달려가서 안색을 살폈다.
“주인도 기침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는 진정하라며 내 어깨를 잡았다.
“난 아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잘못하다가는 제르펠에게 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당장 뛰쳐나갔다. 나를 만류하는 제르펠을 제쳤다. 그는 힘을 아끼라고 말했지만 이럴 때 쓰지 않고 언제 쓰겠어.
난 차례대로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다. 가벼운 정도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루아침에 병에 걸렸다는 것이.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교황이 서신을 보낸 이유가 있었네…… 난 피곤함으로 감기는 눈가를 주물렀다. 몸의 힘이 쭉 빠졌다. 저 멀리서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교회의 종이 울리고 있었다.
“대체 누가 병에 걸린 거야?”
“조사한 바로는 대부분입니다……. 이상하다면 마을을 조사했던 팀과 슈이렌 님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어제 마을 안에 있던 자들만 걸렸다. 이 말이군.”
“네. 월과 폴은 그렇다고 쳐도. 다른 시중들은 천막 근처에 접근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심각해진 분위기였다. 단 하룻밤 사이에 병에 걸린 것이다. 우리는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의논을 하고 있었다. 난 제르펠의 어깨에 기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난 손을 들었다.
“근데 왜 난 멀쩡했지? 보통 내가 걸려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제일 환자들이랑 접촉이 많았는데?”
“아마도 슈이렌 님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몸을 지키기 위해 힘이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관들도 이상이 없었던 것이겠죠.”
“그럼 공기로 전염되는 병 아니야? 공기는 모두가 들이쉬고 내쉬잖아. 접촉도 하지 않았는데 걸릴 이유가 없는데?”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바로 옆 영지에도 같은 증상이 발견되었을 터.”
우리는 심각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방금 일로 힘을 다 소진해 버렸다. 원래는 낮잠 정도 자면 힘이 회복했는데 오늘은 좀 이상하게 회복하는 속도가 느렸다. 이러는 마당에 병세가 완화되고 사람들이 하루아침 사이에 다시 병에 걸려서 오면 곤욕이었다. 그때 내 뒤에 서 있던 폴이 손을 슬그머니 올렸다.
“저…….”
그는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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