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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는 많은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홍차를 마셨고 내 앞에도 마찬가지로 홍차가 나왔다. 홍차는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았기에 사양하려고 했지만 카밀라가 괜찮다는 말에 한 모금 정도야 하고 마셨는데 달달하고 딱 내 입맛에 맞았다.
“괜찮죠? 전하께 슈이렌 님은 단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기에 준비해 보았습니다. 디저트도 유명하지만 차도 나름 괜찮은 곳입니다.”
일종의 카페와 비슷했다. 세련된 분위기와 장식들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영애들의 모임 장소로 종종 사용되는 듯했다. 남성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기, 사자님과 공녀님 아니신가요? 둘이서 따로 만나시다니…… 설마…… 전하를 두고??”
“글쎄요…… 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어린 영애들도 있다 보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곁눈질하는 시선들이 얼굴에 콕콕 박혔다. 카밀라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보다 동석을 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에…… 뭐…….”
제르펠이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서 동석했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 내가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분명 먼저 말한 사람은 카밀라였지만 능청스럽게 모른 척을 했다.
“전 당연히 저번 일로 미움을 샀으리라 생각했거든요.”
“큽…….”
난 차를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 아…… 연회에서 주인이랑 춤을 춘 거……. 이제는 그 사실은 거의 잊혔다. 오히려……. 그 뒤가 큰 문제였지. 화끈해지는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했다.
“아니, 괜찮아.”
“다음 날 더 보기 좋았지만요.”
그녀도 어떻게 보면 사건의 중심에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난 괜스레 목덜미를 매만졌다.
“큼, 그래서 주인이 뭐라고…….”
“죄송한 마음에 전하께 데이트 장소나 이것저것 조언을 해 드렸죠.”
“조언?”
“제가 추천해 준 레스토랑은 어떠셨나요?”
계속 말이 빙빙 돌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하려고 했지만 카밀라의 말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눈이 커졌다. 그답지 않은 장소 선정이며 선물들이라고 했더니 옆에서 입김이 있었다. 아…… 그래, 왠지 주인이 생각한 발상 같지 않더니…… 공녀에게 들은 건가? 그리고…… 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디저트 중 유난히 낯이 익은 슈크림을 쳐다보았다.
“이것도?”
“네. 제가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살짝 사납게 받아쳤는데 카밀라가 그걸 알아채 냈다. 난 잔뜩 날이 서 있는 고슴도치처럼 경계를 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속은 모를 일이라고 그녀가 제르펠에게 관심이 없다고 누가 장담해?
“슈이렌 님이 그러시는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말한 것처럼 약혼 이야기가 오가기는 하였지만…… 전하의 강경한 반대로 무산되었지요.”
카밀라가 주변에 다 들으라는 식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차를 내려놓고 우리 쪽을 흘끔거리는 시선들을 주시하며 말했다. 짧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연회에서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저와 있을 때의 전하와는 천지 차이더군요. 저와 있을 때는 공과 사가 철저하게 구분된 분으로 무뚝뚝했거든요. 그리고 전…… 무뚝뚝한 남자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카밀라는 몸을 내밀어 나에게만 조용히 말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짓궂은 웃음만 지었다.
“그리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회의 때, 황궁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많고요. 시간이 많이 늦어진다 싶으면 끝났는지 몇 번이나 되물으십니다. 분명 누군가가 기다리기 때문에 그런 걸 테죠.”
“이 자식이…….”
막상 적나라하게 그의 행각을 들으니 더 쪽팔렸다. 그것도 다른 입에서 들으니 배가 되었다. 귓가에 열이 올랐다.
“그리고 전 전하의 옆자리에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
“그래?”
“네, 전 공작이 될 겁니다.”
카밀라는 마시던 차를 내리고 나를 주시했다. 그녀의 반응에 난 눈을 껌뻑였다. 카밀라는 싱긋 웃고 있었지만 나에게 눈을 떼지 않았고 내 반응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 대단하네. 잘할 수 있을 거야”
순수한 감탄사를 말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확고하게 제 의지로 무엇이 될 거라고 말하는 그녀가 당당해 보였다. 그리고 공작이면……. 확실히 제르펠한테 관심은 없나 봐. 가문을 잇는다는 말이잖아.
카밀라의 약간 치켜세워진 눈꼬리가 곱게 휘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유쾌하게 웃었다. 고상하게 웃는 웃음이 아닌 천진난만한 아이가 웃는 듯 호쾌한 웃음이었다.
뭐, 뭐야? 반응이 좀 이상한데……? 그녀의 웃음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고 심지어 눈물이 났는지 살짝 눈가에 맺힌 눈물을 걷었다.
“전하께서 슈이렌 님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난 눈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카밀라는 옆에 있는 우아하게 티스푼을 들었다. 느릿한 손짓에 시선이 집중됐고 티스푼이 향한 곳은 내 눈이었다. 날카로운 그녀의 눈빛에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싱긋 웃더니 각설탕을 하나 넣고는 차를 휘저었다.
“편견 없이 바라보는 눈이 좋았던 것이겠죠.”
그리고는 찻잔을 살짝 돌리더니 남은 차를 다 마셨다.
“이렇게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제국의 지도자가 되실 수도 있는 분, 저도 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요. 전하의 옆에 서는 자라면 제가 보좌할 인물이기도 하니까요.”
제국의 지도자?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국의 지도자는 주인이잖아? 아니면 신전에 대해서 한 말인가?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던 카밀라는 여유롭게 일어나더니 예의를 갖추고 돌아서려는 찰나 무언가를 깜빡한 듯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조용히 속삭였다.
“변장은 하고 다니시지만 조심하십시오. 요즘 행방불명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 디저트는 괜찮으시다면 드시겠어요? 제게 시간을 내주신 보답입니다.”
“어…… 고마워.”
얼떨떨하게 그녀가 샀던 디저트 봉투를 받아 들었다. 내가 봉투 안을 살피는 도중 그녀는 카사를 대동하고 이미 사라졌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여유롭네…… 뭔가 행동도 당당하고…….”
“슈이렌 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어쩌다 보니 디저트를 득템했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면 제르펠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나한테 관심이 있었지……. 나는 디저트 봉투와 제르펠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마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창문 밖만 보면서 황궁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득 꽃집이 보였다.
꽃이라…… 사실 돈도 어느 정도 남기도 했고, 달랑 선물만 주기보다는 곁들일 것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세워 줘!”
내 다급한 소리에 마차가 멈췄다. 월이 커튼을 걷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손가락으로 꽃집을 가리켰다. 월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꽃집 앞으로 마차가 돌려졌다.
“주인도 꽃을 사 들고 오니까. 나도 꽃 좀 사 가야지. 돈도 제법 남았으니까.”
저 꽃집에 분홍색 꽃이 있을까? 제르펠이 들고 오는 꽃다발이 생각났다.
꽃집에 마차가 멈추었지만 길 한복판이라 마차를 세울 여유 공간이 부족했다. 어차피 금방 다녀올 거였기에 폴은 멀리서 마차를 지켰고, 나와 월이 내려서 꽃집을 향해서 갔다. 꽃집 주인은 손님이 다가오자 밝은 미소로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꽃으로 드릴까요?”
“분홍색 꽃이 있을까요?”
“어머, 연인한테 드릴 건가요?”
“뭐, 그렇죠.”
난 쑥스럽게 볼을 긁적였다. 그녀는 호호 웃으며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름다운 꽃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어디론가 걸어가더니 꽃 한 송이를 빼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분홍색 꽃이라면…… 이런 꽃들은 어떠신가요?”
꽃집 주인이 간 쪽은 분홍색 꽃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그중, 꽃말이 좋다는 꽃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꽃은 따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손가락으로 그 꽃을 가리켰다.
“전 저 꽃으로 주세요.”
“아, 이 꽃이요?”
“네.”
색채나 모양이나 제르펠이 사 오는 꽃과 흡사했다. 어떤 꽃다발로 만들어 드리냐는 그녀의 말에 난 너무 화려하게는 하지 말고 심플하게 부탁했고, 내가 고른 꽃 여러 송이와 분홍 꽃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하얀색의 작은 꽃들도 같이 엮어서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손이 움직이는 동안 입이 심심했는지 조잘조잘 말을 늘어놓았다.
“요즘 이 꽃이 잘나가네요.”
“네?”
“전 이 꽃도 무척이나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꽃 모양이 큰 아이들을 선호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꽃을 사시는 손님은 드물었는데 요즘 들어 항상 이 꽃을 사 가시는 손님이 있어요. 그분을 위해서 제가 미리 꽃다발을 만들어 놓는다니까요.”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일 거라고.
“혹시 검은 머리에 금색…….”
“아, 저기 있네요.”
생김새를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예쁘게 장식된 꽃다발 하나가 있었다. 발이 살짝 삐끗했다. 혹시나 했는데……. 오늘은 왜 이리 얼굴이 달아오를 일이 많은지…… 손사래를 치면서 얼굴의 열을 식히기 위해 부채질을 했다.
“두 분이 만나면 통하는 게 많을 것 같네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의심스럽지도 않은지 그녀는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꽃다발을 마무리했다. 그녀의 말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연인에게 선물 주실 건지, 그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지는 거 있죠. 분명 그분에게 사랑받는 분은 행복할 거예요. 손님,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빨간데요?”
“더, 더워서 그런가? 월. 꽃 좀 부탁해.”
꽃집 주인이 되묻기 전에 월에게 돈주머니를 맡기며 꽃다발이 다 완성되면 들고 오라는 말만 하고 도망쳐 나왔다. 난 바람을 쐬며 달아오른 열을 식히고 있었다.
“하필 이 집일 게 뭐야…… 깜짝 놀랐네.”
“저기…….”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데 모르는 여성분이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그녀는 지도를 제 목숨줄처럼 꼭 붙잡고 나에게 도움이 필요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난 얼른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왜 그러세요?”
“제가 길을 잃었는데……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그녀가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지만 내가 알 길이 없었다. 길은 폴과 월이 알았기에.
“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여기는 처음이라서요.”
“……수도는 처음이신가요?”
굳이 따지면 수도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길을 모르니 처음이라고 대답해서 상관없었다.
“네, 그래서 지리를 잘 몰라요.”
“그러시구나…….”
응?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스산한 여자의 목소리가 이상해서 지도를 뚫어져라 보던 여성을 내려다보았고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싱긋 웃었다. 양쪽 입꼬리가 삐쭉 치솟았다. 불안감에 주춤 뒷걸음을 쳤지만 내 뒤로 모르는 손들이 뻗어져 나왔고, 나를 덮쳤다.
“웁!”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를 덮친 괴한을 밀쳤지만 꿈쩍을 하지 않았고 괴한이 나보다 키가 큰 건지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내 코를 때린 알싸한 향이 수면제였는지 점점 잠이 쏟아지면서 힘이 풀렸다. 결국 나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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