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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96화 (9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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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곧바로 에이든의 궁으로 향했다. 에이든의 궁은 초상이라도 치르는 듯한 분위기였다. 제르펠의 말에는 과장이 전혀 없었다. 시녀와 시종들이 제르펠이 왔다는 걸 눈치도 채지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궁의 시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따뜻한 물과 수건을 가져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렸고, 그녀는 뒤늦게 우리를 눈치챘다. 그녀는 미리 인질을 받았는지 놀라는 기색 없이 공손하게 제르펠을 맞이했다.

“전하. 오셨습니까.”

“에이든을 보러 왔다.”

“……이쪽입니다.”

시녀장의 표정은 심란해 보였지만 의외로 순순하게 들여 보내줬다. 에이든의 방에 다가갈수록 지나가는 시종 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기가 죽은 것처럼 우리를 흘끔 보더니 몸을 움츠리고 지나갔다.

“어수선하여 죄송합니다.”

“아니다. 에이든이 아프다고 들었다. 차도는 있는 것이냐?”

시녀장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한 해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이든의 죽음을 확신하는 듯했다. 시녀장이라면 궁을 책임지는 자로 에이든을 오랫동안 보았던 자였을 것이다.

에이든의 방에 도착하자 문을 열기 전에 시녀장은 당부의 말을 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르펠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금으로 도배되어 있는 방이었음에도 내 눈에는 에이든의 방은 온통 푸르게 보였다.

마치 방 안이 심해 속으로 보일 정도로 뱀들이 날뛰고 있었다.

“아파……. 이거 놔!”

에이든은 몸이 계속 아프다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발작하는 것처럼 몸이 펄쩍펄쩍 뛰었다. 그 광경에 제르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에이든은 열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 열이 몸까지 전달된 듯했다. 온몸이 시뻘게진 상태이었고 열 때문에 목숨이 위험해 보였다.

주위에 쭉 서 있는 신관들이 일제히 손을 앞으로 내밀며 에이든에게 기운을 나누어 줬지만 역부족이었다.

발버둥 치는 에이든의 다리를 갈색의 무언가가 칭칭 감고 있었다. 그건 키르였다. 키르가 힘겹게 에이든의 몸을 억누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영감!]

[너……. 이제 오면 어떡하느냐!]

키르가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팩 돌렸다. 난 제르펠의 목을 툭툭 쳤다. 그러자 눈치를 챈 제르펠이 조심스럽게 나를 내려 주었다. 난 재빨리 키르에게 기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나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발작하더니…… 아이들이 날뛰고 있다.]

‘설마 내가 대답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책감이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그만큼 한눈에 보아도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에이든 몸에 쌓였던 힘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었다. 키르가 힘을 전달하며 에이든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그리고 힘을 잡아 억누르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죽겠군…….]

에이든이 그 힘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였다. 키르는 참담하게 제 생각을 중얼거렸다. 그동안 그도 힘을 소비했는지 혈색이 좋지 않았다. 에이든의 모습을 보고 생각난 방법은 있었지만 키르가 반대했던 방법이었다.

[잠깐, 너도…….]

역시 키르의 눈을 피하기는 힘들었는지 의심의 목소리로 끝말을 흐렸다. 카지노에서 그들의 말에 답해 준 뒤로 내 몸속에서도 날뛰었던 힘이었다.

나야 수신의 도움을 받았지만, 에이든은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따진다면 에이든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이성을 잃지 않게 정신만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됐다.

[어쩔 수 없잖아. 얘보단 내가 낫지.]

그리고 의도치 않게 다른 조력자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에이든의 방에는 많은 신관이 에이든을 향해서 신성력을 퍼부어 주고 있었다.

의외로 키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키르를 향해서 물어보았다.

[안 말려?]

[……너의 결정이다. 그리고 이미 저주가 들러붙은 상태에서는 피차일반이다. 그리고…….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다.]

키르의 얼굴이 다가오면서 용기를 전해 주듯 내 얼굴에 부대꼈다. 난 작게 미소를 지었고 슬그머니 에이든의 가슴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신관들의 눈에는 내가 방해하는 것으로 느껴졌는지 큰소리를 쳤다.

“방해됩니다!”

“놔두어라.”

“하지만!”

“너희보다 신력이 뛰어난 자가 슈이렌이다.”

제르펠의 말에 찍소리도 하지 못한 신관은 나를 곁눈질했지만 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믿어 주는 그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뒤를 바라보니 제르펠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그에게는 미안했다. 제르펠은 손에 힘을 꽉 주며 팔짱을 끼고 있는 듯했다. 안 그러면 손등에 솟아올라 있는 핏줄이 말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대충 설명을 한 것은 나였으니 아마 내가 할 일을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난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키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키르. 너는 에이든에게 치유하는 것만 집중해. 내가 에이든의 힘을 가라앉힐게.]

[……알겠다.]

‘사실은 신물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는 에이든을 놓아둘 수 없었다. 내가 흡수한 다음 신물을 이용해도 늦지 않는다.

수신은 신물이 제힘을 담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직접 수신의 힘을 받은 그릇이라 칭할 수 있었다.

그 힘을 받는 건 두렵지 않았다. 따지자면 불쌍한 아이들인 건 똑같았다. 어차피 나한테 들어온 아이들도 있는데 그 전부를 받아들이는 게 무엇이 어렵다고, 단지 걱정이 되는 건 에이든의 몸이 버티는가가 중요했다.

마침 나는 힘이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힘을 흡수하기에는 최적화가 아닐까? 난 절대 단숨에 빨아 당기지 않게 조심했다. 조금만, 조금만을 되뇌며 에이든에게 무리가 가지 않게 조금씩 빨아 당겼다.

[왜 그래?]

[맞아. 왜 그러는 거야? 분노했잖아? 싫어했잖아? 사라지길 원했잖아?]

[우린 말을 들어주었는데…….]

수신이 애써 잠재웠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내 머릿속에서 들렸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았다.

[맞아. 분노했어. 싫어했지. 사라지기도 원했어. 그런데 끝났잖아? 내가 원한 건 이루어졌어. 그러니 너희도 그만해.]

목소리는 슬프게도 들렸고 음산하게 웃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왜?]

[왜? 왜?]

[우리 분노는 아직 안 끝났는데? 더 해야 하는데?]

[복수할 거면 똑바로 해! 애먼 사람 죽이지 말고! 너희를 죽인 장본인은, 이용한 장본인은 따로 있잖아. 그때 되면 내가 부를 테니까 지금은 들어가!!]

싫다고 반항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요동치는 힘을 억지로 꾹꾹 눌렀다. 잠시 정적이 찾아오면서 동조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 중에는 분노에 휩싸인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은 나를 수신으로 착각하기도 있었다.

[……. 좋아. 그렇다면야.]

들쑤시는 힘이 진정됨과 동시에 에이든의 거친 숨소리도 나아졌다. 새빨갛게 물들었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혈색을 찾기 시작했다.

힘을 빨아 당겼으면 힘이 넘쳐나야 하는 것과 반대로 힘이 짝 빠졌다. 다행히 기절까지는 아니었지만 시야는 흐릿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 에이든의 안색이 좋아진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네……. 고생한 보람이 느껴져 어깨가 으쓱해졌다.

에이든의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숨소리가 차분해지자 신관이 황급히 달려와 에이든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살짝 뜬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신관은 나를 곁눈질하더니 말했다.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네. 고비를 넘겼습니다.”

시중 인들은 정말 다행이라며 서로 손을 잡고 축복했다.

“사자님의 힘이 좋은 작용을 했습니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가망이 없었는데……. 저하께서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드립시다.”

신관의 말에 화목했던 분위기가 정리되면서 다급하게 침대를 정리했다. 땀을 많이 흘린 에이든의 몸을 닦아 주고 마찬가지로 젖은 침대 시트와 이불을 정리했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시트와 이불을 준비했다.

에이든의 시녀장이 제르펠에게 말을 걸었다.

“전하 부탁이 있습니다. 사자님을 잠시 저하 곁에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시녀장은 오로지 에이든의 걱정을 해서 권한 말이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신관이 득실한 방과 교황이 들락거리는 곳인데 제르펠이 나를 이곳에 둘 리가 없었다. 싸늘하게 째려보는 시선에 시녀장의 몸이 움찔거렸다.

“실, 실언이었습니다.”

싸늘하게 일침을 가하는 제르펠의 모습에 기운이 없어 움직이기는 힘들지만 그를 향해서 슬그머니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자 나를 집어 든 그는 나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지쳐 있는 나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난 그의 손길이 좋아서 얼굴을 그의 손에 비비적거렸다.

[그래도 에이든이 건강해져서 다행이지?]

내 말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제르펠은 나를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전하.”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는데 시종이 제르펠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의 귀에 말을 속닥였다. 이안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제르펠은 시종을 향해서 금방 간다고 전했고, 시종에게는 편안하게 모셔 오라고 전했다.

이안이 마탑에 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제르펠이 편하게 모셔 오라는 사람이 이안은 아닌 것 같고……. 마법사인가?

제르펠이 가야 할 상황인 건 알았다. 난 에이든의 상태를 보기 위해 힐끔 뒤돌아봤다. 그리고 쉭쉭거리면서 키르에게 말을 걸었다.

[에이든은 이제 괜찮을 것 같아?]

[……그래, 오히려 위험하다면 너지. 넌 괜찮나?]

[괜찮은……. 것 같은데?]

아까 목소리들이 다툰 것 빼고는 의외로 멀쩡했다.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수신의 힘 덕분인가? 그래서 조용한 건가?

사실 한 몸을 불사를 생각하고 저지른 일인데 뭔가 싱겁게 끝나니 허탈하면서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이게 폭풍전야가 아닐까? 불길한 느낌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무튼, 에이든을 잘 부탁해. 주인이 지금 바빠서 가 볼게.]

제르펠은 내가 키르를 향해 쉭쉭거리자 나를 재촉하지 않은 상태로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끝났냐는 말과 함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에이든의 궁을 뒤로한 채 제르펠의 궁으로 돌아갔다.

제르펠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황급히 일어나는 이안과 그의 옆에서 차를 마시면서 쓰다고 툴툴거리는 웬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어디 외진 숲속에서 혼자 살고 왔는지 옷에는 꺼먼 먼지인지, 불에 그슬린 흔적인지 모를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만 매끈하게 정돈되어 있어 그 괴리가 커 보였다.

그 노인은 느긋하게 수염을 매만지더니 제르펠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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