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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100화 (1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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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피하지 말라고 했던 말 기억나지 않느냐?”

그러자 슈이렌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하더니 탁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안개가 걷히듯 맑아지려는 찰나 위에서 빛나던 신물이 더욱 꺼림칙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더니 슈이렌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고 신물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와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때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화려한 마차에서 황제가 내렸다. 그 주위에는 황실 기사단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지진처럼 땅이 흔들렸으니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고, 멀리서도 슈이렌의 모습은 잘 보였다. 웬 괴물이 등장했다며 황실 기사단을 대동하고 온 것이다.

황제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기고만장하게 제르펠을 향해서 말했다.

“태자의 짓인가?”

본론부터 말하는 황제의 모습에 제르펠의 미간이 좁혀졌다.

“폐하. 죄송하지만 상대해 줄 여력이 없습니다.”

“보니 맞는 것 같군. 사자라고 대접해 주었더니 제국을 망치려 하는군.”

“……무슨 말씀입니까?”

급한 상황에 끼어든 황제가 제르펠의 눈에 곱게 보일 리는 없었고, 그리고 황제는 슈이렌을 가리키며 말했다. 황제는 평소에 쌓인 한이 많았는지 한껏 제르펠에게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상황이 즐거운지 입꼬리가 올라가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도를 파괴하는 괴물이 신의 사자라 불리는 이가 아니었는가? 그리고 이 비는 뭐지?”

황제는 비가 닿으려 하자 치를 떨었다. 그의 옆에서 시종이 파라솔 같은 우산을 힘겹게 들고 있었다.

“성역을 지키는 결계가 사라지고 숲이 시들고 있다. 이것이 제국이 망하는 길이 아니고 무얼 뜻하는 거지?”

제르펠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황제를 주시했다. 자신만만한 웃음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교황으로 갔지만 그는 슈이렌의 꼬리에 잡혀 축 늘어져 있었다.

“당장 저것을 포위해라!”

황제의 명. 황실 기사들이 일제히 포위하기 시작했다.

“폐하, 슈이렌입니다.”

“뭐?”

“지금 검을 겨누고 있는 상대가 신의 사자란 말입니다.”

“더는 사자가 아니다! 포위해라!”

제르펠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슈이렌을 다독이려는 찰나 황제가 나타났던 것도 못마땅했고, 슈이렌을 향해 검을 내미는 자태도 용서하지 못했다.

온몸을 꾹꾹 쑤시는 비 때문인지 제르펠의 감정이 요동쳤다. 그는 큰 한숨을 내뱉었다.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살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하자 황실 기사단이 움찔거렸다.

“검을 내리거라. 검을 내리지 않는 자는 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명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 제국의 황제는 짐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포위하지 않고!”

기사들은 돌아가는 상황에 머리가 어지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점차 기울어지던 판도는 카지노의 건으로 확 기울어졌다. 그의 미래를 좌우할 사람은 제르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참이었다.

수도의 분위기도 이상했다. 분명 날뛰고 있는 것은 슈이렌인데 주위의 사람들은 슈이렌을 원망하기는커녕 분노를 풀라고 되레 기도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미처 못 봤지만 그들의 눈에는 축 늘어져 있는 교황이 보였다.

“폐하, 아무래도 사태를 보고 결정하심이…….”

“지금 감히 황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냐!”

그나마 그의 안위를 걱정하던 황실 기사단장이 넌지시 권유를 했지만 단칼에 잘라 버렸다. 황제의 명에 따라 검을 뽑기는 했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멍하니 자신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이 못마땅했는지 슈이렌이 꼬리로 바닥을 쳤다. 쿵. 하는 소리가 울리고 가볍게 꼬리를 휘두르자 기사들은 그 꼬리에 의해 나가떨어졌다. 위협적으로 흔들리는 꼬리에 다들 겁에 질렸다.

끝나지 않는 언쟁에 설상가상으로 모이던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워 쌓았다. 신물은 그저 빛을 내며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었다.

“전하…….”

“정말이지. 가만히 보자 하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구나.”

제1 황실 기사단은 황제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성기사들은 교황을 구하기 위해 합동하여 슈이렌을 물리쳐야 한다고 소리쳤고 슈이렌은 그런 그들을 날려 버렸다.

“가만히 두면 내가 달래거늘…….”

제르펠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돌아올 뻔했던 슈이렌은 이미 자신을 향해 적의를 보이는 기사들 때문에 자극을 받아 더욱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건 물론 더욱 심하게 몸부림쳤다.

제르펠은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단이 얼추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수는 상대편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는 놀고먹는 기사들에게 제 기사단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것들을 막아라. 내가 슈이렌을 달랠 때까지.”

“존명!”

그 말과 동시에 기사단은 검을 뽑아 황제와 성기사를 향해 들었다. 황제는 노발대발하며 반역이라고 소리쳤지만 제르펠은 안중에도 없었다.

“누가 그리 너를 화내게 하더냐.”

* * *

‘눈을 피하지 말라고 했던 말 기억나지 않느냐?’

내가 언제 피했어!! 경고장처럼 으르렁거리는 제르펠의 목소리에 기겁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주위는 그저 새까맣고 내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음……. 우선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아선 뱀의 모습이군. 사방팔방이 어두워서 살짝 겁이 나기도 했는데 멀리서 여러 명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흑…….]

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기어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이쯤에 있을 것 같았다.

[흑…….]

[음……. 저기요?]

역시나 형체는 없었다. 내 꼬리는 허공을 휘저었다. 돌아가고 싶다고 중얼거린 목소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신물을 이용해 비를 내리던 교황의 모습이 떠오르고 내가 흡수한 원한들이 신물로 흡수되는 장면까지 본 기억이 났다.

또 기절했어??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한 의식 세계에서 나가야 했다.

[저기요. 여보세요? 제 말 들리는지??]

말대답 없는 목소리에 화를 내듯 소리치니까 주변의 공간이 울렁이는 듯했다. 겁먹은 듯이 움츠려졌다고 생각하면 나의 착각인가. 여전히 우는 소리도 들렸지만 어떤 이가 내 목소리에 답을 해 주었다.

[누, 누구세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여기서 왜 울어?]

그러자 목소리가 뚝 끊겼다. 우는 소리로 어리둥절했던 소리도, 분노에만 소리를 질렀던 다른 목소리와 사뭇 달랐다. 아니면 내가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건가……

[저희는 그저……. 수신님께 가고 싶지만…….]

[맞아요. 하지만 더럽혀졌어요……. 분노에 몸을 맡기는 바람에…….]

[아직도 원망하는 자들도 있지만 저희는 쉬고 싶어요.]

[한때는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원한에 이끌려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로는 죽었을 때는 원망을 했지만 다 내려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분노를 불태우는 자들이 있고 그 여파로 인해 옴짝달싹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 애들은??]

내가 묻자 마치 텔레비전 화면처럼 내 눈앞에 한 장면이 보였다. 주인아?? 제르펠이었다. 심지어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지금 사자님의 몸을 조종해서 복수하려고 하고 있어요.]

[뭣이??]

뒤에서는 황실 기사와 성기사를 애들이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 때문에 혈투가 일어났나……. 괜히 울컥거렸다.

화면 끝에 보이는 꼬리 끝자락……. 왜 사람 크기랑 비슷해 보이지? 내 눈이 이상한가. 그제야 내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쩐지 주인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했다!

그리고 심지어 제르펠의 근처에 침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내 침. 망할. 욕지거리가 저절로 나왔다.

[저거 좀 막아 봐!!]

난 그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들린 건 부정의 말이었다.

[저희는 어찌할 수도 없어도, 가능한 건 그나마 사자님뿐인걸요.]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르펠에게 도망가라고 외쳤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로 다가오고 있었다. 중간중간마다 나를 달래는 소리와 걱정하는 말에 감동하였지만 별개로 걱정되는 마음은 별수 없었다.

난 제르펠을 위협했지만, 그는 곱게 눈매를 휘면서 말했다. “이리로.” 최대한 다정한 어조로. 속으로 바보냐고 소리쳤지만, 그는 손은 내려가지 않았다. 저 태도는 내가 그의 손에 부대끼기를 바라는 눈이었다.

제르펠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나는’ 그에게 돌진했다. 내가 아닌 ‘그들이’ 제르펠의 말에 따를 리가 없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제르펠과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제르펠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마치 물어뜯을 듯이. 난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저 몸의 주인은 나였다. 내가 이 어두운 곳에 처박혀 있을 이유가 없다.

[맞아요. 사자님은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목소리는 내가 속으로 말한 목소리에 동조했다. 마음을 읽힌 것 같아 꺼림칙해지는 순간 묘한 말을 늘어놓았다.

[빨리 이 비를 멈춰 주세요. 저희는 사자님을 돌려보내는 것밖에 할 수 없어요. 빨리 서두르지 않으며 저희도 감화되고 말 거에요. 그렇게 된다면 비는 세상을 잠들게 만들겠죠.]

[그게 무슨 말이야?]

답을 듣기도 전에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더니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아까의 장면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제르펠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아?]

“슈이렌?”

내 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목을 만져 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제르펠은 내 입 안에서……. 음, 말하지 말자. 어쩐지 입이 뻐근하다 했어……. 황급히 얼굴을 뒤로 뺐다.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보자니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의 얼굴에 묻어 있는 내 침을 얼른 혀로 싹싹 핥아 주었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리고 여전히 팔을 벌리고 있는 그에게 조심히 다가가서 머리를 비볐다. 내 얼굴 하나가 그의 품 안에 버겁도록 가득 찼다. 그의 가슴이 울렁이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이제 정신을 차린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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