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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님이다…….]
신물 속에 있던 뱀들은 수신의 부름을 받고 뱀의 형상을 한 채로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작고 여러 개의 뱀의 형상이 그리웠다는 듯이 수신에게 부대끼는 것이 보였다. 수신은 일일이 뱀들을 살폈다.
수신은 참담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것들이 보였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 현신한 수신은 더는 인간계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힘의 일부인 성역은 바스러지는 중이었다. 그 속의 아이들 또한, 이미 수신의 일부가 됐다.
많은 시간 동안 제국을 지켜보았지만 이제 끝임을 수신은 직감했다. 수신은 자기 힘이 있기에 인간들이 욕심을 내고 이용하려 하는 것이라 깨달았다.
[인간들의 일은 인간들의 손으로 하는 것이 옳다.]
수신은 밑에 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교황이나 황제도 마찬가지로.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치 마지막을 고하는 듯한 수신의 어조에 사람들이 당황해했다. 하지만 차마 떠나는 것이냐고는 묻지 못하고 사람들은 주위의 눈치만 살폈다.
황제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신이라는 존재를 목격했고,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황제의 눈동자와 스치듯이 마주쳤을 때 심장이 쿵 떨었다. 마치 제 잘못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에 대한 두려움과 제국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 사라진다는 불안감이 황제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신이라는 존재에 압도당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카사가 막는 것을 뿌리치고 겁 없이 수신에게 소리를 지른 사람이 있었다. 그건 제르펠이었다.
수신이 현신한 건 슈이렌의 몸이었다. 그렇기에 제르펠에게는 슈이렌의 몸을 이끌고 돌아간다고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수신이라는 존재인가.”
[……아, 아이가 소중히 하는 존재이구나. 그래, 나에게 볼일이 있느냐?]
태연하게 수신과 말을 주고받는 제르펠을 보며 군중들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슈이렌을 데리고 어디로 갈 셈이지.”
[……역시, 아이는 걱정이 없겠어.]
잠시 제르펠과 눈을 맞추던 수신은 눈을 휘어 웃더니 뭉뚱그리는 말만 제르펠에게 남겼다. 제르펠은 수신의 말에 눈썹을 사선으로 비뚜름하게 올렸다. 어느새 수신에 의해 깨끗하게 정화된 신물을 들고 떠나려고 하는 순간 수신이 멈칫했다.
[그래, 벌을 내려야지.]
수신은 슈이렌이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소리친 것을 기억해 냈다. 수신은 신이 자상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슈이렌의 행보를 보며 깨달았다.
“버, 벌 말인가요?”
“누구를 말입니까??”
군중들은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자신이 그 대상이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수신은 제 근처를 맴도는 뱀들을 향해서 말했다. 가라고. 그 말을 들은 뱀들의 형상은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 두 갈래로 나누어졌고 하나는 교황에게 다른 하나는 황궁 쪽으로 날아갔다.
“이, 이게 무엇……!”
교황은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신관들이 밑에서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소용돌이는 무언가를 툭 뱉고는 수신의 곁으로 돌아갔다. 교황을 받기 위해 내민 신관의 손 위에는 작은 뱀이 하나 놓여 있었다. 몸이 약한 연한 노란빛의 뱀이었다.
신관은 깜짝 놀라 뱀을 떨어뜨렸다. 뱀은 고개를 치켜세우며 뭐라 쉭쉭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 뱀은 교황이었다. 교황은 입을 떡 하니 벌렷다. 사정없이 요동치는 눈이 증명했다.
[네가 하찮게 여기며 괴롭혔던 존재로 살아가거라. 절대 다시는 인간이 될 수 없을 거다. 뱀으로 살고, 뱀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해라.]
교황이 아닌 다른 쪽으로 갔던 소용돌이도 수신의 곁으로 돌아왔고, 수신은 아직도 아래에서 노려보는 제르펠을 곁눈질한 다음 하늘로 급상승을 했다. 수신은 제르펠에게만 속삭였다.
[아이가 원한다면 너의 곁으로 돌아갈 테지.]
제르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신이 하늘을 향해서 올라가고 구불구불 물결치는 기다란 몸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수신을 봤다는 기쁨으로 떠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신관은 설마 그 뱀이 교황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교황을 찾아 헤맸다.
제르펠은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안이 한때 언급한 적은 있었다. 신계로 돌아가면 어쩔 거냐고. 그때는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생각했다. 슈이렌이 제 곁을 떠난다니……. 지금도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왜일까. 이 기다림이 길어질 거라는 예감은…….
“성하님! 성하님!! 어디 계십니까?”
뱀으로 변한 교황은 신관에게 내가 교황이라고 외쳤지만 들리지는 않았고 오히려 발에 이리저리 치였다. 한 신관은 계속 다가오는 뱀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발로 가볍게 밀어내기까지 했다.
“…….”
어느새 뒤에 다가온 카사는 힘이 쭉 빠진 제르펠의 어깨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제르펠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모두 내 손으로……. 단번에 끝냈으면 좋았을까.”
“전하.”
“무력이 싫었기에 돌고 돌아온 것이었는데……. 피를 묻혀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그래도 상관이 없지 않았을까 싶군.”
현재 제르펠에게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상태를 안 카사는 말을 아꼈다. 제르펠은 몸을 돌렷다. 그리고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교황에게 갔다.
“……교황을 찾나?”
“저, 전하.”
“찾는 것이 아니냐?”
“아뇨……. 맞습니다…….”
신관은 그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교황의 오른팔을 자처했던 그는 교황이 했던 모든 짓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신관도 마찬가지로.
제르펠은 허리를 숙여 손으로 뱀을 들어 올렸다.
“교황이라면 여기에 있다.”
제르펠은 태연하게 신관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내밀었다. 수신이 내린 벌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딱 알맞은 벌이 아닐까. 한 번에 벌을 내리는 것보다. 하찮게 생각했던 그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제르펠은 황궁 쪽으로 다른 소용돌이가 간 것을 기억했다.
“어, 어찌 이런 모습이…….”
“수신의 말을 듣지 못했나? 벌을 내린다고 했다.”
제르펠은 마지막의 말을 강조했다. 그러자 신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이제 수신이 이곳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신전이라는 존재가 필요할지 의문이군. 이미 더럽힌 자들로 득실거리는 곳이 아니더냐.”
신관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뱀이 되어 버린 교황을 받았다.
“……전하의 말씀이 무슨 말이야?”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수신님이 벌을 내린다고는 하셨는데. 그게 교황님이라고?”
숙덕거리는 소리는 제르펠의 귓가에도 울렸다. 그는 석상처럼 굳은 채 교황을 보고 있는 황제를 보았다.
“여기에 있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교황이 이렇습니다. 그분은 무사할지 의문이군요.”
제르펠은 황제에게 비소를 날렸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황제는 서둘러 타고 온 마차를 이끌고 황궁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돌아가자.”
“존명.”
* * *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터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제국을 아예 뒤집어 놓는 일이 생겨 버렸다. 후작의 일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이었다. 후작과 그를 도와준 마법사는 반즈 일행에게 무사히 체포되었다. 하늘에서 내렸던 비가 마법사가 쳤던 결계를 없애면서 그들의 은신처가 드러났기 때문에 체포하는 일은 쉬웠다.
그를 도와준 마법사는 마탑의 법칙에 맞게 마탑으로 다시 끌려갔고, 후작은 아이펠트의 제국 법에 따라 형벌이 내려졌지만 그 누구의 관심을 받지도 못한 채 조용히 처형대에서 사그라졌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교황이 뱀으로 변했다는 사실과 수신이 말한 벌의 대상이 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퍼졌지만 입 밖으로 섣불리 뱉지 않았다. 그리고 교황과 마찬가지로 황후도 뱀으로 변했다. 갑자기 사라진 황후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황제는 조용한 궁에서 유폐 아닌 유폐를 자처했다.
“눈에 거슬렸던 가시가 뽑혀서 정말 다행입니다.”
“…….”
“이제 정말 황제가 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전하……. 아니, 폐하.”
“……그렇군.”
제르펠은 이안의 말을 듣고 있는 게 맞는지 손안에 꼭 들어오는 펜만 만지작거리면서 아예 등을 돌려 창가 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일하게 남은 키르였다. 이안은 곁눈질로 키르를 보았다. 키르는 철장 안에 갇혀서 풀어 달라고 몸부림을 쳤지만 제르펠은 묵묵부답이었다.
빠져나가고 싶으면 빨리 슈이렌을 데리고 오라는 말과 함께 키르를 철창에 가두어 버렸다. 기다리면 온다고 한 슈이렌이 오지 않은 지가 벌써 한 달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이안은 깊은 탄식을 삼키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앞에는 세드릭이 서 있었다.
“전하께서는……?”
이안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세드릭도 암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큰 한숨을 쉬었다.
곧 돌아온다는 슈이렌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제르펠은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망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곧 황제가 되는데…….”
이제 즉위식만 하면 황제나 다름없는데 모든 일에 관심을 끊어 버린 채 창문 밖을 보는 일이 허다했다. 즉위식을 하자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할 뿐이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대체 슈이렌 님은 어디에 계신 건지…….”
국민은 슈이렌이 제국을 구하고 떠났다고 숭상하고 있었고 제르펠은 하늘로 향해 떠나 버린 슈이렌을 기다리는 날의 반복이었다.
슈이렌 덕분에 느슨해졌던 궁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하게 변해 버렸다. 만약 돌아온다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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