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8)화 (18/76)

18. 

“흐음.”

성기를 만져지는 건 나인데 신음하는 이는 재차의였다. 침대 가장자리를 향해 몸을 뒤로 빼내며 피해 보려 해도, 재차의의 손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옷가지 위로 만져 대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내 바지와 속옷을 움켜쥐고 아래로 당겼다. 부드러운 침대 시트 위로 몸이 쑥 미끄러졌다. 가까스로 앉아 있던 허리가 뒤로 눕혀지고 바지가 쉽게 벗겨졌다. 도망칠 새도 없이, 큰 손이 내 성기를 움켜쥐었다.

붉은 입술을 혀끝으로 훑으며, 재차의가 속삭였다.

“우리 첫 만남만 해도 그래. 다른 놈한테 벌려 주느라고 전화도 안 받고.”

“그런 적 없습니다….”

화가 나서 눈앞이 핑핑 돈다. 약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억울하다.

“저는.”

난 정말, 남자에게 발정하는 변태 새끼가 아니다. 좆 달린 놈들끼리 달라붙어서는 신음하며 느끼는 모습을 생각하면 토가 쏠린다. 특히나 그, 남의 좆을 받는 그 더러운 자리에 내가 놓이는 건 죽어도 싫다. 그따위 추잡스러운 짓은, 짐승만도 못한 더러운 짓은, 그런, 삼촌이 내게 하던 짓거리는….

‘…….’

…아니다.

변명하기도 힘 빠지는 일이다. 구질구질하게 핑계를 대서 뭘 할까? 반항을 해서 또 뭘 하지? 나로서는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조금도 없다. 더 노력하고 더 애써서, 더 힘을 들여 내 생각 따위를 소리쳐 봤자, 감내해야 할 자괴감이나 더 부풀 뿐임을 이미 안다….

그런데 재차의가 웃는다.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좋고 싫고를 떠나 나는 그가 무서웠다. 수치스럽고 역겨운 마음에 일그러진 내 얼굴을, 분노하고 억울하여 붉어진 내 낯빛을 수줍음으로 읽는 그가 무서웠다. 재차의는 사이코라던, 문소여의 말이 맞았다. 이런 내 몸을 더듬어 대는 그는 사이코가 맞다. 내 기분 따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이코가 분명하다.

“이상하네.”

정말로 이상한 요소는 죄 가진 주제에, 재차의는 나를 지적했다. 그의 눈이 닿는 곳에 내 성기가 있었다. 투박하고 우아한 손에 게걸스럽게 잡힌 내, 성기는 전혀 발기하지 않았다. 마찰열로 뜨거워지고 땀이 배어 축축해졌을 뿐 여전히 물렁했다.

이내 그의 움직임에 마가 떴다. 그의 손이 멈춘 틈을 타, 나는 얼른 침대 모서리로 몸을 비켰다. 그리고 흘러내린 바지와 속옷을 제대로 챙겨 입었다.

침대 끄트머리에 등을 돌리고 앉은 날 향해, 재차의가 거듭 질문했다.

“송모래, 혹시 뒤로만 느껴?”

그 말에 절로 주먹이 말렸다.

“그럼 자위도 뒤로 하나?”

분노를 못 이겨 나는 주먹을 휘둘렀다. 이를 악물고 달려들며 내지른 주먹은 재차의의 얼굴로 향했다. 그러나 가 닿진 못했다. 대신에, 나는 곧장 후회했다. 내 주먹을 한 손으로 콱 움켜쥔, 재차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역효과다….

그의 마음 안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가 크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까만 눈동자엔 호기심이 담기고 높은 코끝은 발긋해지고, 입매는 삼각형을 그리며 활짝 열렸다.

“송모래.”

‘도대체 어떻게….’

나는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이 남자의 얼굴이, 이토록 아이 같을 수가 있지? 왜 나를 향해 이렇게, 선물을 받아 신난 아이처럼 웃는 거야?

“너도 느끼지? 우리, 닿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 넌 내가 손만 대도 좋아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데.”

나는 인상을 굳혔다. 두 눈에 힘을 주고, 재차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면서도 두 뺨의 근육이 느슨해졌다. 힘주어 말아 쥔 주먹도 서서히 풀렸다. 혼란스럽다….

“파트너에게 이렇게까지 동화되는 가이드는 드물어. S급 가이드로는 네가 유일하지.”

그 순간에는 표정을 굳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S급 가이드라는 낯선 말을 소화해 낼 수가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나를 바라보는 재차의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그가 말하는 ‘송모래’는 내가 아니라고….

잡힌 주먹을 빼내고자 팔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재차의는 내 주먹을 도리어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압박만큼 고통도 강해서 입이 절로 벌어지고, 손등 뼈가 부러질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의 시선이 뱀처럼 구불구불, 내 얼굴을 시작으로 목과 어깨를 훑더니 팔뚝으로 흘러 내려갔다.

이내 내 오른팔이 위로 높게 들렸다. 재차의가 내 주먹을 휙 추켜든 탓이었다. 무슨 짓이냐는 질문을 뱉는 대신, 나는 그를 따라 내 팔뚝을 살펴보았다. 셔츠 소매가 말려 올라간 팔뚝 위에 빨간 상처가 두어 줄 남아 있었다. 대기조 가이드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상대의 얼굴에 내 얼굴의 불씨를 비벼 줄 때, 그가 버둥거리며 긁어 놓은 손톱자국이었다.

하던 대화를 잊어버린 듯 재차의는 나를 쉽게 놓아주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다시 그, 천사의 눈물이라도 가져와 부을까 봐 나는 얼른 팔을 숨겼다. 옷소매를 내려 손목까지 덮고, 이불을 긁어 쥐어 몸을 덮었다.

그리고 말했다.

“필요 없습니다.”

침 바를 필요도 없는 사소한 상처다.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날 사라져 있을 것이다. 죽을병도 고쳐 준다는 그, 어마어마한 약을 또 한 번 낭비할 필요는 정말 없다.

재차의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너무나 손쉽게, 또 한 번 내 팔을 가져갔다. 이번에 그는 셔츠 소매를 팔뚝 위까지 세게 당겨 걷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북’ 하는 옷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피멍까지 들었는데?”

재차의가 지적했다. 그의 말마따나 내 팔뚝 가득 커다란 피멍이, 바늘을 찌르면 피가 솟구치겠다 싶게 깊이 들어 있었다.

내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이건 그 전에 생긴 겁니다.”

“그 전에? 왜. 누가 이랬어?”

대답해 줄 기력도 나질 않는 질문에, 나는 재차의를 빤히 노려보기만 했다. 그래도 그는 내 눈짓의 의미를 모르는 듯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곤 수 초가 지난 뒤에야 그 ‘누구’가 자신임을 알아차린 듯 입을 벌렸다.

“허.”

재차의가 쉽게 뱉는 그 소리가, 감탄인지 탄식인지 나는 모르겠다. 이마를 콱 구기며 후회하나 싶더니, 다시 내 바지춤을 움켜쥐는 뻔뻔함의 근원 역시 미스터리다.

“구멍도 좀 봐. 찢어졌어?”

“아, 씨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욕설했고, ‘아차’ 싶어 조급하게 이를 콱 악물었다. 순간 치민 걱정과 달리 재차의는 내가 씨발이라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제 흥미대로, 내 몸 곳곳을 훑어보기 바빴다.

그 모습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다시 위기감이 찾아들었다. 그처럼 강하고 대단한 ‘파트너’가, 내 기분이 어떻건 반응이 어떻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조금, 두려운 일이었다.

“약은 필요 없습니다.”

고민은 잠시 뒤로 미루어 놓아야 했다. 더 무서운 일이 생기기 전에 이 방을 떠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최대한 덤덤하게,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전 이만 제 방에서 혼자 쉬겠습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앉았던 몸을 일으키고 자연스럽게 도망치려 했으나 실패였다. 재차의가 내 어깨를 붙잡아 쥐더니 도로 침대에 내리누른 것이었다. 그의 손아귀 힘을 못 이겨 나는 침대에 강제로 드러누웠다.

‘설마. 설마….’

솟구치는 불안감으로 아랫배가 꽉 조였다. 그런데 재차의는 다른 말을 했다.

“알았어, 송모래.”

그러더니 그는 보라색 파일을 챙겨 침대에서 벗어났다. 터벅터벅, 너른 방을 가로질러 걸으면서는 복도 한편에 놓인 삐뚜름한 전등갓을 검지 끝으로 툭 치기도 했다.

“푹 쉬어. 내일부터 아주 바빠질 거니까.”

이내 재차의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덜컹 들렸다. 커다란 침실 안에 나는 혼자 남았다.

“…….”

어리둥절한 마음에 침대를 데우며 누워 있기도 잠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심 이번에는 또, 어떤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이상한 건 재차의가 아니라 이 방의 상태였다. 재차의의 그림자를 찾아 다가선 문 옆에 닳아 빠진 가방이 하나 보였다. 그 옆으로, 백로 어린이 도서관 스티커가 붙은 소설책 수십 권이 일렬로 쌓여 있었다. 전부 내 짐이었다. 구닥다리 빌라 302호를 털어다가 가져온, 허탈하게 작은 이삿짐이었다.

직선으로 쭉 뻗은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밀었다. 그러자 새하얀 복도가 드러났다. 조금 전 빠져나간 재차의의 모습은 발소리로도 존재하질 않았다. 하얀 러그와 하얀 벽지, 하얀 전등으로 환한 복도에는 백색밖에 보이는 게 없었다. 넓은 간격을 두고 놓인 문들마저 모두 하얬다.

딱 하나, 드문드문 놓인 연보라색 사각형들이 있기는 했다. 내 방의 바로 옆에도 사각형 하나가 보였다. 어깨로 방문을 밀면서 살펴보니, 그건 방의 호수가 쓰인 명패였다.

808호

송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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