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23)화 (23/76)

23. 

이내, 재차의는 달리는 릴리의 뒷좌석 문을 벌컥 열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붙잡았다. 릴리의 속도를 못 이겨 휘청거릴 것에 대비하여 좌석 깊숙이 몸을 앉히고, 두 발에 힘을 꽉 준 채였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 곁을 스치는 노란 불빛은 여전히 빠른데, 릴리는 이미 정차한 상태였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재차의가 먼저 차량 밖으로 나섰다. 차체에 팔꿈치를 얹은 채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날 향해 손을 뻗어 왔다.

재차의를 믿고 이대로 밖으로 나서도 괜찮은 건지 확신이 쉽게 서질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여기가 게이트 안이라면…, 나는 릴리 안에서 대기하면서 그를 기다리는 게 훨씬 더 안전하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내 머뭇거림이 길어지자, 재차의가 눈썹을 구겼다. 그리고 말했다.

“이리 나와, 엄지 공주인 척하지 말고.”

“…누구 엄지가 182cm나 되는데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 상정하고 뱉은 말에 냉담한 되물음이 돌아왔다. 당혹감에 입을 벙긋거리며, 나는 한풀 기죽은 목소리를 어영부영 흘렸다.

“…제 말은, 제 키가….”

“왜 거짓말해?”

재차의는 그런 내 말을 끊어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웃는 낯이었고 시선은 내 얼굴에 꽂혀 있었다. 조수의 약점이라도 잡은 악당 같은 웃음이었다. 나를 키나 올려 말하는 거짓말쟁이 취급 하는 그 태도에, 나는 부쩍 억울했다. 어차피 2미터가 넘는 뉴타입인 재차의다. 키를 몇 센티 올려 말한다 한들 어차피 그보다 커질 수도 없는데, 내가 왜 굳이 거짓말을 하겠는가?

“그렇게 커 보이고 싶어? 조그만 게.”

“…커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래, 그래. 그렇다고 쳐 줄게.”

이쯤 되니 이게 조롱인지 진심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인어 공주라는 비아냥을 들은 충격도 채 가시질 않았는데 이젠 엄지 공주라니…. 도대체 재차의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황당한 감정은 묻어 두고 우선 그의 손을 잡았다. 릴리 밖으로 나서 똑바로 서자마자, 더운 바람이 거칠게 불어왔다.

“정신 차리고 따라와, 송모래. 나한테 바짝 붙어.”

재차의가 말했다. 바로 곁을 달리는 차가 내 뺨 옆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일순 눈이 건조해져, 눈꺼풀을 아주 콱 감았다가 떴다.

“송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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