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재차의와 한 릴리를 타고 바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내 안색을 지적했었다.
‘얼굴에 뭘 바른 거야?’
그러곤 내 뺨을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묻어나는 화장품 따위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 자리에서 코피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간 전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것 같아서, 잠을 설쳤다는 거짓말을 해 버렸다. 재차의에게 더 얕보이고 싶지 않았고, 무능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이미 충분히 나를 얕보고, 하찮게 여기는 재차의지만… 적어도 나는 그에게 가이딩 하나는 잘하는 가이드였고 쓸모있는 파트너였다. 그러니 이 명함만큼은 뺏길 수 없다.
“…….”
소리 없는 한숨을 코로 내쉬는데, 로즈에서 ‘우웅’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가 울렸다. 작은 창밖은 이제 완전히 깜깜해졌다. 밖을 내다보아도 보이는 물고기가 없고, 내 얼굴만 반사되어 비칠 따름이었다.
재차의의 말처럼 내 얼굴엔 뭔가 발려 있는 듯 보였다. 혈색을 올리는 블러셔나 립스틱 따위가 아니라, 하얀 밀가루며 회색 쇳가루를 끼얹은 것 같았다. 창백한 낯짝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딱딱한 장막을 내려 버렸다. 그러고 나니 볼만한 것이라곤 재차의밖에 없게 됐다.
한 시간 가까이 무릎베개를 해 주고 있자니 슬슬 발이 저렸다. 그래도 재차의를 깨우고 싶진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갇힌 신세에, 정신 멀쩡하게 깬 재차의가 내게 할 짓이 뻔해서였다. 희롱 혹은 조롱, 그게 아니라면 섹스. 무조건 셋 중 하나일 텐데 나는 전부 싫다.
‘그래도 자는 모습은 이쁘잖아.’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잠든 재차의의 모습은 보기 좋게 예뻤다.
대슈망엔 재차의를 절대자로 여기며 신처럼 추앙하는 이들이 아주 많지만, 그를 두고 ‘예쁘다’고 평가하는 정신 나간 놈은 아마 나뿐일 거다. 모두를 ‘형’ 혹은 ‘누나’라 부르며 살랑살랑 꼬리 흔드는 문소여의 말이 그랬다. ‘재차의 님은 아무 말 안 하고 횡포도 부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멋지다’는 그의 말에 ‘그래, 그럼 예뻐 보이지’ 했더니 칠색 팔색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 생각은 변치 않았다. 잠든 재차의의 얼굴은 예뻤다. 재차의 본인 앞에선 죽어도 뱉을 수 없는 말이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예뻐한다. 까만 속눈썹이 기다랗고 콧대는 꼿꼿하고 짙은 눈썹에는 거슬리는 털이 한 올 없는 그의 얼굴은 아름답다. 주름 한 줄 지지 않는 얼굴에 남은 세월의 흔적은 참 뭉근했다. 젖살 하나 없어 짐짓 단단해 보이는 뺨이며 뻔히 도드라진 눈썹뼈와 턱, 침을 삼킬 때마다 가볍게 옴폭 파이는 볼에서나 그가 아주 젊진 않음이 비칠 따름이다.
안다. 내가 그를 예뻐하는 건 몸통에 이빨 자국이 난 쥐가 고양이를 예뻐하는 셈이라는 걸. 그래도 마음이 참 해괴하다. 혼자서 은밀하게나마 재차의를 예뻐하는 게 이 생활을 버티는 데에 크게 위안이 된다. 재차의라는 남자를 버티는 데엔 더더욱 그렇다.
문득 로즈가 아주 크게, 짧게 흔들렸다. 반사적으로 허벅지 위에 놓인 재차의의 얼굴을 안았다. 그러나 움직임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재차의도 깨질 않은 채였다. 좀 전의 진동이 내 착각이었나 헷갈릴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창의 장막을 걷어 올리자 밝은 빛이 끼쳐 들어왔다. 눈을 좁게 뜨며 나는 재차의의 얼굴로부터 한 뼘 간격 위에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차양 삼아 자는 이의 시야를 가려 주며 살펴본 밖은 어느새 바다 위였다. 수심 5천 5백 미터를 지나 깊이, 더욱 깊이 파고들던 게 몇 분 전인데 로즈가 바다 위로 솟구쳤을 리는 없다. 마침내 6천 미터 심해에 자리한 해일의 원인을 찾아, 게이트의 아가리로 들어온 것이었다.
“…후우.”
재차의를 깨우기에 앞서 나는 심호흡했다. 창밖은 완전한 낮의 바다였다. 푸른 수평선만이 넓게 펼쳐져 있을 뿐 땅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내 몸에 돌돌 말린 포장지 같은 장비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재차의의 단잠을 방해할 시간이었다. 낯선 파견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떨치며, 나는 그의 눈가를 덮었던 손을 천천히 치웠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쳤다.
“…….”
놀라 입을 다문 내 얼굴을 그가 빤히 올려다봤다. 언제 잠들었냐는 듯 말똥말똥하니 이지가 비치는 눈길이었다. 꼭 나처럼 그는 오래 조용했다.
그대로 2분 즈음 흘렀을까. 재차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뚱딴지 같은 질문을 했다.
“송모래. 바다가 좋아?”
난데없는 말에 나는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바다가 좋으냐니, 딱히 그렇진 않았다. 평생 바다 가까이에 살아 본 적도 없고, 바닷가에서 놀아 본 기억도 없다. 실제로 바다를 본 횟수보다 영화나 사진으로 본 경우가 훨씬 많을 정도였다.
그래도, 바다….
“네.”
그 질문이 죽은 형, 송바다를 좋아하냐는 것처럼 생각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재차의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지개를 켜더니, 로즈 한편에 놓인 통신 장비를 확인했다. 회색 화면은 먹통 상태였다. 대슈망 기술팀 직원들이 언질해 주었듯이 보통의 전파도 닿지 않을 심해 속 게이트에선 외부와의 소통이 불가능했다.
재차의가 확인코자 한 것은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연락이 아니었다. 게이트 내부의 심장, 핵의 위치를 찾고자 그는 로즈의 전파 탐지기를 확인했다.
“10분이면 충분하겠군. 송모래, 넌 로즈 안에 꼼짝 말고 앉아 있기만 해. 핵을 박살 내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여길 뜰 테니까.”
“아…, 네.”
그의 말이 달가운 한편 속이 울렁거렸다. 잠수는커녕 수영도 배운 적 없는, 신체적으로 특출난 능력 따위 없는 내 입장에선 당연한 지시였다. 재차의야 혼자서도 게이트의 심장을 기꺼이 박살 내고도 남을 프로 파수꾼이지만, 나는 아니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로즈에 혼자 남기가 어째선지 불안했다.
재차의는 휴양지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의 사람처럼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가 여유로운 만큼 나는 멀미가 났다. 무릎 위의 두 손을 모아 쥐고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재차의가 나를 돌아보기에 휙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재차의가 아주 작게 웃었다.
“왜. 혼자 있기 싫어?”
“…….”
아니요, 혼자 있을 수 있어요. 혼자 있는 건 익숙해요. …그렇게 대답했어야 하는 건데, 타이밍을 놓치고야 말았다.
“걱정하지 마, 송모래. 나 금방 다녀올게.”
툭, 재차의의 손바닥이 내 머리에 닿았다. 그는 내 머리칼을 휘휘 흔들어 흐트러뜨렸다. 키우는 개의 재롱이라도 본 듯 웃는 그가 부담스러워, 나는 작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밖에 누가 있어요.”
차창에 얼굴을 들이대며 내가 말했다. 정말이었다. 바깥에 누군가 있었다. 괴수가 아닌 사람의 인영 같은 것이 아주 얼핏, 조그맣게 보인 것 같았다.
“괴수겠지.”
재차의가 대꾸했다. 나는 고개를 크게 흔들고는 다시 차창 너머를 노려봤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가운데에 주황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니 그 위에서 흔들거리는 검은 촛불이 보였다.
“사람, 사람이….”
재차의는 내 이마를 덥석 쥐더니 고개를 창에서 완전히 떼어 내게 했다. 당황하며 나는 그의 몸에 기대듯이 끌려갔다. 내 입김이 서린 창은 회색 장막을 내려 더는 보이지 않게 됐다.
“이 게이트에 생존자 따윈 없어, 송모래. 다 죽었다고. 게이트가 너를 속이려는 거야. 현혹되지 마.”
그의 말이 나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 보았던 그 인영은 그다지 괴수 같진 않았다. 만일 위협적인 상대였더라면 나도 직감적으로 알아챘을 터였다. 그러나 주황, 색… 그건 구명보트가 틀림없었다. 촛불처럼 흔들리던 검은 형체는 사람들이었다. 살려 달라고 팔을 흔드는 사람들. 그리고 개중엔 아주 조그만 촛불도 섞여 있었다.
“생존자예요, 재차의 님. 생존자가 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커다란 장비로 인해 몸이 무거워, 비틀비틀 다리를 움직였다. 재차의는 만류하려는 듯 내 어깨를 붙잡아 쥐었는데, 그보다는 내 손바닥이 선실 벽면의 스위치에 닿는 게 더 빨랐다.
2초의 정적 끝에 선실의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로즈의 문이 개방되어 하늘의 빛이 끼쳐 들어온 것이었다. 밀폐된 공간으로 스며들어 온 것은 게이트의 공기뿐만이 아니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차의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괴수의 메아리 따위가 아닌, 젊은 여자가 흐느끼며 내는 목소리였다.
‘생존자야…! 내 말이 맞았어.’
대슈망에 온 뒤로 나는 주체적인 일이라곤 해 보질 못했다. 게이트를 훨훨 날아다니는 재차의를 볼 때면 가이딩에 성취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크게 내 성공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재차의조차 알아채지 못한 생존자를 발견한 건 분명 대단한 업적이었다.
작은 기쁨에 휩싸여 나는 재차의를 돌아보았다.
‘어….’
그런데 재차의의 표정은 조금도 밝지 못했다. 그는… 다소 토라진 듯 보였다.
나는 그 표정을 알았다. 재차의의 낯에 걸려 있어 아주 조금 어색할 뿐, 그 표정은 마치 수업 시간이 끝나 갈 때에 ‘지난주에 내 주신 숙제 있었어요’를 외친 범생이를 흘기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