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지금부턴 주 3회만 일해. 가랑이를 벌리든지, 가이딩을 하든지 그건 너 좋을 대로. 뭐가 됐든 일주일에 세 번만 하면 돼.”
“…….”
눈앞이 빨개지는 희롱이 아무렇게나 섞인 말에, 나도 모르게 윤도곤을 힐끔 살폈다. 그리고 더욱 열이 오르고야 말았다. 윤도곤은 눈앞에서 오가는 이야기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여전히 무표정했다. 무심한 얼굴로 입 꾹 닫고, 얌전히 재차의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나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태도였다. 내가 재차의에게 가이딩을 해 주든, 가랑이를… 벌리든, 윤도곤에겐 그것들이 당연한 일인 모양이었다.
그가 재차의와 나눌 행위도 나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일요일은 어떻게 할까. 뭐…, 네 상태 봐 가면서 내가 골라야겠지. 이번 주는, 윤도곤.”
“…….”
나는 순 멍했다. 일주일의 반은 내 가랑이를 벌리거나…, 가이딩을 받고, 나머지 반은 윤도곤을 찾겠다는 재차의의 말이…. 너무나 쉽고 단순한 이야기인데도 쉽게 소화되질 않았다.
‘나랑… 여기 이 남자를… 번갈아 오가면서… 자겠다고.’
가까스로 이해를 마치고 나니, 당장 화를 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냐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으며 발정 난 변태라고 손가락질을 할까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만 싶었다, 내 존재까지도.
“송모래. 내 말이, 또 이해가 안 돼?”
재차의가 나를 타박했다. 목구멍을 조여 오는 핀잔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여태껏 나는 재차의와 무얼 하고 있다고 생각해 온 걸까? 내가 재차의의 무어가 되었다고 여겨왔던 걸까. 대단한 파트너라고? 재차의에겐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의 옆에만 있으면 나도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뭐가 됐든 전부 오해였다. 나 혼자서 애를 쓴 삽질이었다. 그 삽질 끝에 내 무덤을 파 버렸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젠 냉정해질 차례였다. 전신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뼛속까지 시린 이 순간에, 나는 재차의의 편리한 상비약으로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게 ‘프로 가이드’의 태도라면…, 내가 모르는 엘리트들의 세계라면,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 어른스러운 업무라면, 재차의가 그리 말한다면 나는 그래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재차의에게 무어, 건네고픈 질문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나한테 왜 화가 났냐고, 왜 기분이 상하셨냐고….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말을 건네려고 연습도 중얼중얼 했던 것, 같다….
희미한 기억을 뒤편으로 밀어 치우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입니까?”
“금요일.”
“그….”
얼른 대답을 마치고 이 불편한 회의실을 떠나고 싶은데, 목이 메었다. 입을 다물고 마른침을 삼키려 했으나 건조한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론 침보다 공기가 더 많았다. 결국 형편없는 목소리를 부들거리며 흘릴 따름이었다.
“그럼, 저는… 월수금…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더니 재차의가 내 어깨에 두른 팔을 거뒀다. 쥐고 있던 얼굴도 쉽게 놓아주었다. 한 번도 이렇게 간단히 나를 풀어 준 적 없던 사람인데, 오늘은 달랐다.
고개를 움직여 나는 윤도곤을 쳐다봤으나, 그와 눈을 맞출 순 없었다. 작은 눈짓이라도 나눈다면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텐데, 내게는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면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회의실 원탁을 빙 돌아 걸어가는 동안 재차의는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윤도곤에게 꽂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살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늦었네. 방에 가서 쉬고 있어, 송모래. 난 풀어야 할 회포가 남아서.”
윤도곤을 바라보는 데에 어찌나 몰두했는지 재차의는 내가 ‘네’라고 대답하지 못해도 신경 쓰질 않았다.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회의실 문을 힘주어 밀며, 느리게 밖으로 나서는 나를 붙든 건 ‘아’ 하는 탄성이었다. 대뜸 던져진 큰 소리에 나는 휙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윤도곤이 보였다.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던 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달라진 태도로, 그는 앉은 자리에서 상체만 옆으로 꺾어 나를 봤다. 그리고 말했다.
“송모래 님.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문득 생각났다는 듯한 말투였다.
나로서는 그 질문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평생 E급으로 굴러먹던 나로서는, 대슈망에 끌려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엘리트 출신 가이드는 똥도 안 싸는 요정인 줄 알았다. 그처럼 희한한 색을 지닌 사람이라면 특히나 만나 본 적 없었다. 눈은 여우 같고 머리 색은 눈사람처럼 흰 남자를 만나 놓고 잊어버렸을 가능성도 전무했다.
‘아뇨, 그럴 리가.’
그래서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내겐 대답할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다.
“가, 송모래.”
날 향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재차의가 명령했다.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 내쫓는 듯한 그의 태도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은 죄 없이 마음이 켕겨, 도망치듯 밖으로 나서야만 했다. 무겁고 커다란 회의실 문은 내 등 뒤로 아주 천천히 닫혔다. 너무 천천히 닫혀서, 문 틈새로 재차의의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도 남았다.
“말했잖아. 송모래랑은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방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승강기를 내버려 둔 채 나는 계단을 타고 움직였다. 어서 내 방으로 돌아가 처박히고 싶으면서도, 그 길에서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 그랬다. 본관 4층에서 바깥까지, 다시 호텔 로비에서부터 8층까지 터벅터벅 다리를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론 월, 수, 금…. 다시 월, 수, 금…. 재차의가 나를 찾겠다던, 주 3회의 ‘업무일’을 한 칸 두 칸 되새겼다.
‘월, 수, 금….’
재차의가 ‘시간이 늦었다’고 말한 만큼이나, 자정이 가까워 오는 금요일인 오늘 내겐 할 일이 없는 셈이다. 월요일이 오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 …이틀이었다.
8층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내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몹시도 분명한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다 그만두자.’
월요일이 오기 전에, 대슈망에서 사직해야겠다. 차라리 외톨이인 채 사체 청소부로 밤을 새우던 그, 시궁창 쥐새끼 같던 밤이 그리워졌으니까. 윤도곤의 가이딩을 받고, 그와 주말 내내 배를 맞대며 뒹굴어 댄 재차의가 그 빌어먹을 몸으로 내게 좆 머리를 들이미는 월요일엔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테니까.
차라리 짐승이고 싶다. 짐승만도 못한, 버러지 떨거지 취급을 끝끝내 재차의에게 받게 된 이 순간에는.
주먹을 불끈 쥔 다짐은 그러나 허무하게 정지했다. 수치심과 성화, 배신감으로 얼룩져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소파에 누워 잠들어 버렸다. ‘사직’도 혼자 움직일 기운이 있고 갈 곳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만신창이인 몸을 끌고 어떻게 할까 싶었다.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쪽잠을 자다 깼을 때엔 얼굴을 붙인 소파 쿠션에 지도 같은 핏자국이 흥건했다.
‘다 그만…. 그만두고 싶어.’
코피를 닦을 힘은 없고, 강한 충동을 짓씹을 불만은 많았다. 줄줄 흐르는 코피를 콧물처럼 생각하며 나는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볼을 타고 옆으로 흘러내리는 액체를 손끝으로 슥 문질렀다가, 피가 빨갛다 못해 검은 것을 확인하곤 뒤늦게 티슈를 뽑았다. 그리고 축축해진 얼굴 반절을 움켜쥐다시피 하며 닦아 냈다.
“하아….”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재차의와 윤도곤은 지금쯤 어떤 식으로 회포를 풀고 있을까? 쓸모없고 초라하게도 그게 궁금했다. 지나간 재차의의 말을 되새김질하자면 급 떨어지는 가이드일수록 섹스를 해야 한다는 주의인 듯한데, A0급인 윤도곤이라면 단연 몸을 섞는 방식으로 그를 달래 줄 게 뻔했다.
‘아,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러웠구나, 나를 아무렇게나 굴러먹던 구멍 취급 하던 게. 남의 엉덩이에 제 샅을 퍽퍽 쳐 대고, 뒷구멍에 좆 머리를 밀어 넣으며 추삽질을 잘 하던 게. 키스며 애무, 섹스 자체는 물론이고 새롭고도 놀라운 음담패설을 쉽게 읊어 놓던 게. 남자랑 존나 많이 자 봐서 그런 거였구나. 윤도곤이랑 매번 하던 짓거리라 그런 거였어.
초면에 나를 개버러지 남창 취급 하더니, 진짜 더러운 건 재차의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의 정확한 나이조차 모른다. 파수꾼 생활만 20년째란 것밖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긴 세월이다. 20년간 그는 수많은 가이드와 살을 붙이고 몸을 섞고, 땀과 정액을 묻혀 댔을 터였다.
그 생각을 하니 황당했다. 그런 사실을 이제야 자각한 나도 우스웠다. 당장은 그의 가이드라 불릴 만한 상대가 나뿐이니 일부러라도 궁금해하지 않아 온 사실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뇌리에 싹을 피웠다. 사방에서 피어올라 내 이성을 흐리게 하고 실망을 더욱 커지게 했다.
‘좆같다, 진짜.’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대슈망 센터 밖으로 뛰쳐나가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남의 뒷구멍에 박아 넣었던 좆을 빨거나 내 뒷구멍에 처박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
그러나 충동과 행동 사이에는 아주 큰 괴리가 존재했다.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엔 용기가 필요한데, 나에겐 용기가 없었다. 비겁자라면 자산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취직 이후 받은 월급들은 사채 빚을 탕감하는 데에 전부 써 버렸다. 거지가 성실하려면 기운이라도 남아돌아야 하는데 내겐 그마저도 없었다. 석유처럼 검어진 코피를 뚝뚝 흘리며 두통에 시달릴 따름이었다.
“재차의….”
개새끼! 입 안으로 되뇌는 순간, 내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소파 등받이 너머로 머리를 내밀어 문간을 살폈다. 카펫 위에 구둣발을 슥슥 닦아 문지르는 불청객은 다름 아닌 개새끼, 아, 아니, 재차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