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52)화 (52/76)

52.

“왜 그러고 있어, 송모래. 방에 없는 줄 알았잖아.”

내 방문을 퉁 소리 나게 닫으며 재차의는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현관 복도에 놓인 옷장 안에 반듯하게 걸어 넣었다. 그의 기다랗고 시커먼 몸으로 복도의 사각 공간이 가득 차서, 그 자체가 어둠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내 재차의가 두 팔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이리 와.”

그리고 손짓했다. 토라진 강아지 부르는 듯 쉽고 가벼운 동작이었다.

“…….”

개새끼인지 재차의인지가 나를 등졌다는 생각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배신감은 어딜 갔나 모르겠다. 나는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러자 재차의가 나를 안았다.

그의 넓고 단단한 품이 나는 어느새 편안했다. 등허리를 꽉 조이는 팔뚝이며 어깨를 움켜쥐는 손아귀, 와이퍼처럼 슥슥 움직이며 내 목덜미를 간질이는 엄지의 감촉까지 모든 게 만족스럽다. 잃어버렸던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고, 사무치던 감정은 저 멀리 가라앉는다. 재차의가 준 상처를 재차의로 치유하는 내가 미친놈 같단 자조마저 들었다.

긴 포옹 끝에 재차의가 내 얼굴을 살폈다. 눈높이를 맞추느라 양발을 넓게 벌리고 서서는, 깊이 고개 숙이는 태도가 다정하다. 조금 전 내게 모멸을 준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저녁은?”

재차의가 물었고,

“…아직입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벌써 열한 시인데. 이왕 늦은 거 그럼 더 늦게 먹어.”

그리고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입술을 다물고 잠깐 버티려다가, 나는 금세 반항을 포기했다. 재차의가 원하는 대로 입을 열고 밀려드는 그의 혀를 맛봤다. 내 두 손은 재차의의 허리춤에 가만히 붙었고 재차의의 두 손은 내 뺨이며 목, 가슴을 순차적으로 쓰다듬고 주물럭거리기 바빴다. 이내 그의 손이 내 엉덩이에 달라붙었다.

볼기를 잡힌 채 마구잡이로 얽는 혀가 감미롭게 느껴졌다. 뇌진탕의 부작용일까. 혹은 오늘 보고 들은 것들이 온통 충격적이어서 오히려 잊어버린 걸까. 내가 미쳐 버렸나 보다.

재차의의 손에 이끌려, 나는 포장지 뜯기듯 옷을 벗으며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흰 커튼 틈새로 보이는 창문 밖은 온통 어두웠고 초침은 분주히 달리고 있었다. 재차의는 제한 시간이라도 주어진 사람처럼 빠르게 내 속옷을 벗겨 내렸다. 조급함이 느껴지는 그의 손길에 나는 묵묵히 속옷 밖으로 발을 빼내며 호응했다.

여전히 속이 쓰라리긴 했지만, 딱 그만큼 불안했다. 당장은 그 불안을 식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재차의가 윤도곤이 아닌 나를 찾아와 안심이 됐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파트너가 아닌 나를 안고 싶어 하고, 내 허리를 쓰다듬으며 발기하며, 내 침대에서 나와 몸을 섞고 함께 잘 것이라 생각하니 오늘의 첫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피어올랐다.

제 옷을 아주 빠르게 벗어 던진 뒤, 재차의는 거의 나신이 되어 내 침대에 풀썩 앉았다. 검은 양말과 구두만 신은 채였다. 몸을 쭈그리고 앉아 구두를 벗겨 주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그가 내 팔목을 잡아당겼다. 반항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나는 재차의의 굵은 허벅다리 위에 앉혀졌다. 더는 가까워질 수 없도록 바짝 밀착하며 서로를 마주 보는 자세였다.

그대로 멍하니, 나는 재차의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이마 위로 흘러내려 온 흑발은 감촉이 매끄러웠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손으로 빗어 주는데, 재차의는 그런 내 허리를 꽉 움켜쥐는가 싶더니 제 몸을 뒤로 옮겨 침대 헤드에 등이 닿도록 깊이 앉았다. 길쭉한 다리를 일자로 뻗어 놓고 편안한 듯 웃으며 날 보는 그의 얼굴은 드물게도 내 시야 아래에 위치했다. 낯선 각도로 바라보는 얼굴이 또 아름답다고 생각되어, 나는 몰입하여 그의 눈과 코와 입술을 차례로 감상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되도록 여유를 부리고픈 나와 달리 재차의는 성급했다. 그는 내 허리에서 골반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더니, 양쪽 엉덩이를 움켜쥐고 좌우로 벌렸다. 저릿하다 싶게 벌어진 엉덩이 밑으로 발기한 성기가 툭 닿았다.

그리고 삼촌이 생각났다.

‘헉, 허억, 모래야, 아, 모래야!’

약에 절어 쓰러진 내 위에 올라타듯 앉아서, 제 엉덩이를 자진해서 벌리던 삼촌이….

“아.”

작은 탄식을 내뱉으며 나는 고개를 떨궜다. 불에 덴 사람처럼 급히 재차의를 밀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재차의가 인상을 구기며 잡았던 엉덩이를 놓더니, 대신에 내 어깨를 내리 눌렀다.

풀썩 내려간 볼기 밑에 닿는 딱딱한 성기가 뜨끈했다.

“뭐 하자는 거야, 송모래? 아직 금요일이야.”

말 안 듣는 짐승 다루듯이 재차의는 나를 을렀다.

“네가 비실비실해져선 가이딩을 못 하겠으니까 섹스를 하자는 거 아냐. 응? 일주일에 세 번으로 줄여 줬는데 이것도 안 하겠다고 내빼?”

재차의는 아주 빠르고 또 강했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숨통이 막혀 손발이 묶인 느낌인데, 그는 그런 내 엉덩이를 잡아 뜯을 듯이 움켜쥐고 억지로 벌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비문이 아릿했다. 전보다 훨씬 강압적이고 거친 손길에 나는 허리를 뒤틀며 재차의의 어깨를 밀쳤다.

‘자, 세…. 자세가, 이러면, 꼭….’

열이 오르는 듯, 재차의는 이마를 찡그리며 더운 콧김을 내쉬었다. 이내 그의 손바닥이 내 허벅다리에 철썩 소리를 내며 내리쳐졌다.

“악…!”

허벅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과 함께 고개가 휙 뒤로 꺾였다. 재차의가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뒤로 젖히도록 당긴 것이었다. 아, 아… 의미 없는 음성만 흘릴 뿐 나는 제대로 된 문장을 꾸려 내지 못했다. 그대로, 막무가내로 강한 손길이 내 허벅지를 움켜쥐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억지로 버텨 보려 해도 무리였다. 결국 엉덩이 골 사이에 뻑뻑한 물건이 바짝 맞닿고야 말았다.

“하, 씁….”

흥분 섞인 숨을 잇새로 들이마시며, 재차의가 허리를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나 그의 굵은 물건은 내 뒤로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고 헛돌기만 했다.

애초에 가능할 리 없었다. 아무런 준비도 대처도 없이 무턱대고 그의 물건을 받는 짓 같은 건. 내 몸은 고무가 아니다, 그리 유연하지조차 못했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들쑤셨다간, 찢어진다고….

무어라 말을 해 보려 나는 입을 열었다. 문득 팔뚝이 따갑고 입 안이 텁텁했다. 침은 쓰고, 머리는 무겁고, 성기에 쏠린 피는 빳빳했다. 곰팡내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약물 주사를 받고 뻗은 느낌이다. 이미 지난 일에 불과한 기억이 썰물처럼 밀려들며 나를 괴롭게 했다. 강제로 발기한 채 손발이 마비된 내 위로 올라타던 삼촌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꼭, 그 추잡하고 더러운 변태 새끼, 빌어먹을 삼촌과 똑같다는 사실도.

“송모래.”

잡았던 머리채를 놓아준 대신, 재차의는 내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엉덩이 살이 쓸린다는 느낌이 들도록 뻑뻑하게 내 비문에 바짝 자리한, 그의 성기 끝이 몽둥이처럼 느껴졌다.

“내 앞에서 딴생각하면 안 되지.”

그대로 내 몸이 밑으로 무작정 내려앉았다. 재차의가 허리를 붙들어 쥐고, 억지로 잡아 내린 탓이었다.

“하아, 대화가 안 통하니… 별수 없네.”

“아, 악…!”

재차의의 가슴팍 위로 내 무릎이 서로 맞붙고 발가락이 다 굽었다. 허리에 닻처럼 박힌 재차의의 두 손을 주먹으로 연신 내리치면서, 나는 꺽꺽거렸다. 딱딱하고 더운 이물감을 억지로 받아 내느라 뻑뻑한 비문이 찢어지는 것 같다. 아니, 몸이 찢어지는 것 같다.

“네가 좋아하는 것부터 하자. 그래…. 송모래는 섹스를 제일 좋아하니까.”

“아, 악…. 헉, …허윽!”

‘소리….’

이를 악물며 나는 숨을 참았다. 이런 건 싫었다. 남의 몸 위에 올라타서, 발기한 좆이나 받으면서, 너저분한 신음을 지르는 일 같은 건. 이런 짓은, 이런 더러운 짓은….

“하아, 송모래.”

끅, 끅… 힘주어 다문 잇새로 목구멍을 긁으며 올라온 숨소리만 빠져나갔다. 내 몸 안으로 침범해 온 재차의의 성기에 배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내 장기들이 위로 울렁거리며 밀려나고 심장이 입 밖으로 뱉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씁…. 힘 좀, 풀어.”

“…….”

“하아, 힘 풀어. 좋은 건 알겠는데, 하아…, 너무 조르지 마.”

끅, 윽… 신음을 씹으면서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차마 눈을 뜨고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앞으로 모아 오므렸던 다리를 억지로 다시 벌려야 했다. 그리고 재차의의 옆구리 양쪽에 무릎을 대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자 다시금,

짝!

근육이 불거져 팽팽해진 허벅다리에 다시금 손바닥이 갈겨졌다.

“악…!”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나는 파드득 고개를 흔들었다. 큰 아픔에 전기마저 오르는 것 같았다. 고작 두 대 만에 시뻘게진 허벅지가 아른아른 보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나는 어깨를 떨며 연신 끅끅거렸다.

재차의가 도통 왜,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다. 왜 분풀이를 하듯이 나를 괴롭히는지, 도대체 뭐에 심기가 비틀렸기에 토라진 아이 같은 기운을 풍기며 내 존엄을 위협하는 건지. 왜 기분이 상했어요? …그렇게 물어보고 싶다. 물어보고 싶은데, 멀쩡한 척 연습했던 음성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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