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상체를 꽉 옥죈 압박감이 무겁다. 오래 산 나무뿌리에 감긴 듯 굵고 딱딱하고 거칠다.
평생이 어지러운 나는 꾸는 꿈마저도 얼 타는 악몽이었다. 가만히 누워 쉬려는 나를 괴롭히는 악당들이 너무 많았다. 검은 가면을 쓴 악당은 ‘왜 네가 살아남은 거야’ 하고 손가락질하는 가족들이었다가, 가위를 들고 ‘그거라도 나 주고 가’ 하며 내 성기를 노리는 삼촌이었다가, 내 모가지를 마구 움켜쥐고는 가지고 놀다 휙 내버리는 재차의였다.
종국에는 나를 상처 입힌 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어선 나를 욕하고 때리고 짓밟다가 내 몸을 뜯어 갔다. 한 움큼씩 욕심내어 쥐어뜯는 손길에 나는 심장도 잃고 좆도 잃고 엉덩이도 잃어버렸다. 결국에는 두 눈과 코도 뺏겨 버려 앞도 볼 수 없고 숨도 들이마실 수 없게 됐다.
‘모래야, 입은 두고 갈게. 어차피 있어 봐야 쓰지도 못하잖아.’
검은 가면 너머로 삼촌이 비아냥거렸다.
‘송모래랑은 대화가 불가능. 대화가 불가능.’
거인이 된 동생들이 내 주변을 뛰어다니며 노래 불렀다.
입을 크게 벌리고서 나는 헐떡거렸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부 돌려 달라고 소리치려 노력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뱉어져 나오는 소리가 없었다. 무어라 말하고자 노력할 때마다 날숨이 헐떡헐떡 뱉어져 나갔다.
종국에 나는 숨을 들이켜는 법을 잊어버렸다. 목을 긁으며 허둥지둥 호흡하려 해도 몸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없었다. 괴로워서 몸부림치면 칠수록 나를 묶은 나무뿌리의 힘이 강해졌다.
끝내 나는 화가 났다. 차마 놔 달라는 말은 뱉지 못하고서, 컥컥 기침하며 사지를 힘껏 버둥거렸다. 나뭇가지를 주먹으로 치고, 기둥을 발로 차 댔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아무렇게나 닿는 대로 껍질을 깨물고 씹어 대기도 했다.
허억, 허억…. 문득 커다란 숨소리가 꿈과 현실의 경계선을 꿰맸다. 쿵쿵거리는 심장이 납작하게 눌리는 게 느껴졌다. 나를 껴안은 나무가 몸을 휙 뒤집어, 흙바닥에 내 전신이 파묻히도록 누른 것이었다. 허억… 괴로운 숨을 뱉고 또 뱉으면서 나는 납작해지고 또 납작해졌다. 산 채로 종잇장이 되는 것 같다.
문득 나무가 말했다.
“꼬마야. 숨 쉬어.”
흐윽, 허윽… 질식하는 고통에 작게 몸부림치며 나는 그의 음성을 좇았다. 내 등 뒤를 바짝 짓누르며, 그는 큰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하고, 구토하듯 숨을 뱉기만 하는 내 입을 제 입으로 덮었다. 그리고 날숨을 크게 불어 넣었다.
일순 손끝, 발끝이 힘껏 펴졌다. 완전히 쪼그라 붙었던 폐에 타인의 숨결이 가득 들어찼다.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단숨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아…, 흡! 하아….”
가까스로 나는 숨 쉬는 법을 되새겼다. 진이 빠진 몸의 눅눅함도 피로감도 전부 잊어버린 채 그저 호흡에만 집중했다. 그러고 나니 현실 감각이 퍼뜩 돌아왔다.
“그래, 그렇게…. 할 수 있잖아. 잘하잖아.”
두 눈을 뜨고 보니 나는 흙바닥이 아닌 푹신한 침대 위에 엎어져 있었다. 내 몸을 납작하게 짓누른다고 생각되던 무게감은 상상보다 크지 않았다. 땀에 젖어 흐릿한 시야로 굵은 팔뚝이 보였다. 제 체중을 내게 싣지 않으려, 엎드려 뻗치듯 매트리스 위에 괸 팔뚝에 힘줄이 돋아 있었다.
멍하니 고개를 돌려 나는 나무의 얼굴을 확인했다. 재차의였다.
“잘했어.”
그가 휘휘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개 다루듯 만지는 손길에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침대에 있으면… 안 되는데. 재차의랑… 나랑, 침대에….’
그대로 앞으로 기어, 침대 밖으로 벗어나려 했다. 자진해서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내 옷깃을 재차의가 뒤로 잡아당겼다. 도로 주르륵 시트 위를 미끄러지며 나는 허둥지둥했다.
‘왜’, 그리고 ‘어디’. 묻고픈 말은 많았으나 나오는 질문은 없었다. 좌우를 두리번거려 살핀 방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온통 베이지색, 검은색, 혹은 흰색 가구들로 채워진, 몹시도 무난하고 큰 방이었다. 그러나 현관으로 통하는 복도에 놓인 일체형 옷장, 소파 자리를 비추는 전신 거울이나 스탠드형 전등의 배치, 부엌으로 통하는 길목에 놓인 작은 바의 위치가 전부 눈에 익숙했다. 대슈망 센터 호텔의 가이드 층, 808호 방의 구조와 완전히 똑같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내게, 재차의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착하지, 송모래.”
그러면서 내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는다.
그러나 ‘송모래’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절대로 착해져선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삼촌에게 많이 당해 보면서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가만있어. 착하지?’
거짓 칭찬은 그저 나를 달래어, 손쉽게 착취하려는 수작질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간 숨을 고른 끝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순종하며 재차의를 방심시키는 게 먼저였다. 얌전한 척 눈을 내리깔고 자세를 고쳐 눕자, 재차의도 내 등허리를 덮었던 몸을 떼어 냈다. 그가 허리를 일으키는 틈을 타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정확히는, 뛰어내리려 시도했다.
“하….”
상의 티셔츠가 죽 늘어나도록 옷의 덜미를 잡혀, 나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등줄기가 오싹해진 나를 한 손으로 덥석 움켜쥐고서 재차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 눈길이 짜증스럽고 성질나 보여, 나는 다시금 두 눈을 내리깔아야 했다.
“꼬마야. 뭐 하자는 거야?”
재차의가 물었다.
“일어나자마자 어딜 가려고. 응?”
날카로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이 따로 없었다. 잠시간 머뭇거리다가, 나는 거짓말했다.
“화장실….”
그러자 재차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 모양으로 ‘화장실’ 하고 내 말을 따라 외우기에, 나는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쑤욱, 내 몸이 위로 번쩍 들렸다. 재차의가 내 옆구리를 두 손으로 덥석 쥐더니, 그대로 집어 든 것이었다. 나는 놀라고 당황해 말문이 다 막히는데, 그는 저벅저벅 큰 방을 가로질러 욕실까지 걸어갔다.
매트 깔린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진 뒤에야 나는 그 이상행동의 이유를 깨달았다. 고개 숙여 살펴본 내 몰골이 희한했다. 상의는 반소매 티셔츠에 하의는 벙벙한 반바지인데, 아래로 드러난 두 다리 모두 성치 못했다. 오른쪽 다리에는 밴드를 군데군데 붙여놓았고 왼쪽 다리는 무릎부터 발목까지 깁스붕대를 대 놓아 딱딱했다. 조금도 굽히거나 까딱일 수 없어, 혼자 움직이려니 어기적거리며 다리를 힘주어 들고 옮겨야 했다.
이내 재차의가 불쑥 손을 뻗었다. 내 바지 허리춤을 잡고 벗겨 내리려는 그 손길을 나는 반사적으로 틀어막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림이 우스워졌다. 반바지 하나를 둘이서 움켜쥐고, 그는 내리려 하고 나는 올리려 하며 낑낑대는 꼴이었다.
“왜 이래. 꼬마야, 화장실 오고 싶다면서.”
“호…, 혼자. 혼자 할 수 있어요.”
“안 돼. 쉬하다 넘어져서 대가리까지 깨지면 어쩌려고? 너 싸는 동안 내가 뒤에서 잡아 줄게.”
‘이걸 상냥하다고 해야 돼, 미친 또라이 새끼라고 해야 돼?’
속이 막막해져 나는 입을 크게 벙긋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로 크게 흔들며 말을 바꿨다.
“쉬… 아, 아니! 볼일 안 봐요! 세수…. 세수하려고 한 거예요.”
“…아. 세수.”
그제야 재차의가 내 바지를 놓아주었다. 그러더니 피식 실소하며 중얼거렸다.
“섹스라는 줄…. 좋다 말았네.”
“…….”
남의 머리 뚜껑 열리는 소리를 아무렇잖게 뱉어 놓고, 그는 뒤로 물러나 욕실 문짝에 어깨를 기댔다. 그런 재차의는 너무나 큰 남자였다. 그의 몸이 마치 나를 가로막은 문짝이나 벽처럼 느껴져 영 부담스러웠다.
별수 없이 세면대 앞에 서, 나는 대뜸 세수했다. 핑계에 충실하고자 마지못해 하는 세수일지라도 찬물로 얼굴을 헹구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잠기운을 전부 내쫓고 나니 내 두 발이 작금의 현실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고개를 들자 거울 속의 내가 참 어렸다. 스무 살이면 미성숙할지언정 성인인데도, 거울 속의 나는 스물여섯 살의 나와는 생판 남처럼 달라 보였다. 특히 맑아진 눈빛이며 뺨의 생기가 별났다.
‘나… 정말 어려 보이네.’
거울을 통해 나는 내 뒤편에 선 재차의를 힐긋거렸다. 그런데 그가 불쑥 몸을 움직였다. 수건을 집어 들고 다가오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잡고 물기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
새 수건의 감촉은 부드러웠고 이마부터 뺨과 턱을 보듬는 재차의의 손길 또한 무척 다정했다. 영 미심쩍은 다정이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딱히 젖지도 않은 귀까지 한참 닦아 주는가 싶더니, 재차의는 수건을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작은 개나 고양이 옮기듯이 다시 나를 집어 들었다. 발밑이 붕 뜨는 감각에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아, 머리털이 삐죽삐죽 서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소 혼미해졌다. 이러지 마세요! 그렇게 소리칠 때였다. 제 발로 걷겠습니다,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매칭 테스트고 나발이고 저는 당신이랑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 안으로 그렇게 웅변하면서도,
“제가, 제, 제 발로….”
실제로 흘린 목소리는 껌 종이만 못했다.
‘아, 씨….’
말이 마음대로 나오질 않으니 답답했다. 자기주장 하나 못 펼치는 나 자신이 바보천치 같았다. 자괴감에 잠긴 나를, 재차의는 부엌으로 데려갔다.
그 즉시 내 기분은 속절없이 회복됐다.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들 덕분이었다. 스테이크며 파스타를 비롯해 버터 향이 나는 양식 요리들이며 뚝배기 가득 든 찰밥과 또 비싸 보이는 조개구이, 갈치구이와 새알미역국, 된장찌개, 갈비 한 대접이 훈훈했다. 장정 여섯 명을 불러도 배부르게 먹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앉아.”
그러면서 재차의는 나를 의자에 직접 앉혔다. 무거운 탓에 옆으로 툭 뻗은 깁스 찬 다리까지 제대로 옮겨 주었다.
‘밥….’
윤기 넘치는 갈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 너무 맛있겠다. 김까지 모락모락 풍기잖아…. 입천장이 흥건해지도록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허기지다 못해 위장이 조여들어 아팠다.
‘그래, 밥 정도는 먹을 수 있잖아. 분위기 망치지 말고 일단… 밥부터 먹고, 그다음에 도망치자.’
대슈망에 와선 고생만 밥 먹듯 하고, 진짜 밥은 마음 편히 먹어 보질 못했다. 그간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융털이 다 떨린다. 갈비 한 대접으로나마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 그렇고말고.
그런데 식탁 위 어디에도 수저가 없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수저통을 찾는데, 바로 곁에서 덜그럭 소리가 났다. 식탁 의자에 커다란 몸을 풀썩 앉힌 재차의가 보였다. 두 발은 나를 향했고, 한 손에는 가지런한 수저 세트를 움켜쥔 채였다.
“자, 꼬마야.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할 때마다 숟가락, 젓가락, 포크를 하나씩 받는 거야.”
“…….”
메트로놈 추처럼 움직이는 수저를 따라 시선을 좌우로 굴리다가, 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세 가지 질문쯤이야 바보천치인 나라도 대답할 수 있지 싶었다. 정 어려우면 ‘예’, ‘아니요’ 라고만 말해도 되겠지.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이 떨어졌다.
“멀쩡하게 잘 있다가 갑자기 숨을 못 쉬던데, 너는 대체 뭐가 문제야?”
“…….”
‘예’, ‘아니요’… 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인 게, 내게 문제라면 문제다.
재차의의 손에 들린 숟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식탁 위의 뚝배기를 다시 살폈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전복구이가 밥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알기로 전복은 아버지랑 형만 먹을 수 있는 비싼 음식인데…. 여기 놓인 게 형이 먹던 것보다 더 커 보인다.
침묵 끝에 재차의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숟가락 하나를 식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