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71)화 (71/76)

71.

만일 우리가 햄스터였더라면 둘이서 쳇바퀴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을 거다. 그는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등을 지고 의미 없이 발을 굴러댔을 게 분명하다. 이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도 말이 통하질 않는 걸 보면 뻔한 일이다.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꿀꺽 삼키며 나는 말했다.

“가이딩 해 드릴까요?”

그러자 재차의가 내 턱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흔들었다.

“방금 어지러워서 토했다며.”

“네.”

정확히는 어지러워선 아니고, 아파서 그런 거지만… 뭐, 이유 같은 게 중요할까.

“그런 주제에 어떻게 가이딩을 해주겠단 거야? 입술 빨게 해줘.”

“…….”

나는 구토한 입이 더러우니 입맞춤은 싫다고 하고, 재차의는 구토한 내 상태를 못 믿으니 가이딩이 싫다고 한다. 말이 통하질 않는 답답함에 나는 입술을 슬며시 비틀었다.

‘아무튼 나는 경고했어, 더러우니까 조심하라고.’

그래도 접촉으로 가이딩을 대신하겠다면, 재차의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재차의의 입술이 곧바로 내 입술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예고한 것과 같이 내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윗입술이며 아랫입술이 번갈아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당겨지고, 더운 혀끝에 살갗이 눌리고 쓸리고, 사탕처럼 핥아 올려지는 감각이 진득했다. 눈이 절로 꽉 감겼다.

입술 사이를 몇 번이고 핥아대더니, 그는 아쉬운 듯 낮은 신음을 흘렸다. 아주 분명한 의도를 담아 혀를 비집어 넣어 앞니를 건드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를 꽉 다물고 버텼다. 냄새 나는 입안까지 재차의의 혀를 들이느니 가이딩을 해 주고 기절하겠단 마음이었다.

내 거절이 퍽 못마땅한 듯, 재차의가 침음했다.

“으음.”

그러곤 제 입을 크게 벌려, 내 입술을 집어삼키다시피 하며 두어 번 살짝살짝 깨물었다. 문득 나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우두머리 늑대가 어린 늑대의 주둥이를, 딱 이렇게 입에 넣었었는데….

입술이 퉁퉁 붓는 느낌에 어깨를 움츠리자, 넓고 말랑한 혓바닥이 내 입에 이어 뺨을 핥아 올렸다. 깜짝 놀라 목을 굳히며 쭈뼛거리는데, 재차의는 연이어 내 뺨을 싹싹 핥고 또 핥더니 몇 없는 볼살을 쪽 소리 나게 빨았다. 혹시 내 몸에 꿀이라도 발려있나 싶을 정도였다.

짐승 같은 입놀림은 뺨에 이어 귀로 옮겨왔다. 물렁한 귓불을 핥고, 귓바퀴에 입을 맞춘 순간에는 그의 숨결이며 촉촉한 혀가 내는 긴밀한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려 등줄기가 찌릿찌릿했다. 전철 좌석에 둔 손이 주먹으로 꽉 말리고 발가락까지 다 굽었다. 간지럽고, 소름이 오르고, 머릿속에 열이 올랐다.

그대로 한참 간, 재차의는 내 귓가에 제 콧대가 뭉개지도록 깊이 고개를 묻었다.

“하, 으음….”

그리고 체취를 연신 들이마시며 신음했다. 나는 두 눈을 꽉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벌겋게 흥분한 기색이 열기가 되어 내 낯에 꽂히는 듯했다. 낮은 숨소리가 꼭, 내 목구멍에 제 성기를 깊이 쑤셔 박으며 내던 신음 같다….

머릿속은 붉어지고 피부는 창백해진 내 허벅다리에, 재차의가 두 손을 얹었다.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맨살을 자연스레 쓰다듬는가 싶더니 불쑥, 바지 밑단을 파고들어 단숨에 사타구니까지 침범해왔다.

속으로 크게 욕설하며 나는 그의 손을 허둥지둥 가로막았다. 그러나 재차의의 손은 벌써 바지 깊숙이, 속옷 위를 우악스럽게 붙들어 쥔 채였다.

“아….”

정신이 반쯤 빠져버려 나는 헛발질을 했다.

“그만 해요….”

잇새로 빠져나온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재차의에게 들리긴 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형편없었다.

이내 재차의가 높은 코끝으로 내 볼을 쿡 쑤셨다. 그러더니 한 번 더 ‘쪽’ 입맞춤을 남기며 뒤로 물러났다. 바지 속을 파고들어 대놓고 성기를 움켜쥐던 손도 뱀처럼 스르륵 빠져나갔다.

“…….”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앉은 자세 그대로 굳어버려 움직이질 못했고, 이렇다 할 표정조차 짓질 못했다. 재차의도 입맛만 다셔댈 뿐 내게 무어라 건네는 말이 없었다.

짧은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재차의의 손에 잡혔던 내 성기가… 조금도 발기하질 못한 채라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수치심을 느껴야 할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내 입술이며 귀를 빨던 재차의의 행동이 애무라는 건 분명했다. 보통의 남자였다면, 그러한 접촉에 흥분해서 좆을 세웠을까? 당연히 그랬어야 정상인 건가? 재차의도 내게 그런 반응을 바랐을까…?

아둔하게 얼어있기를 한참 만에, 나는 뒤늦게 말려 올라간 반바지를 꾹꾹 눌러 허벅지 반절을 가렸다. 그리고 바닥에 처박아 둔 시선을 천천히 올려, 재차의의 눈치를 살폈다. 암울한 걱정과 달리 재차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나를 업신여기는 기색 따윈 조금도 없었다.

커다랗고 너른 어깨를 보란 듯 으쓱이며, 그는 난데없이 패배 선언을 했다.

“내가 졌다, 꼬마야. 안아 달라고 말 안 해도 안아줄게.”

그러더니 두 팔을 뻗어온다. 그가 내 허리며 무릎 밑에 굵은 팔뚝을 비집어 넣고, 번쩍 들도록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비인간적일 만큼 크고 단단한 몸에 안기고 나니 솔직히 안심됐다. 괴수에게 붙잡혀 날아오다시피 한 그 먼 거리를, 도저히 혼자 힘으로 걸어갈 엄두가 나질 않아 그랬다.

뜻밖에 재차의는 얌전한 내 반응에 놀란 듯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살피는가 싶더니, 그는 인상을 팍 구겼다.

“송모래. 뭐야? 왜 반항 안 해.”

예상치 못한 핀잔이었다.

“…네?”

“어디야. 어딜 다쳤어?”

우와, 귀신인가 보다. 이럴 땐 눈치가 빠르네….

두 팔을 가볍게 움직여 나를 고쳐 안는가 싶더니, 재차의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훤히 드러난 다리를 눈길로 훑어 올린 뒤, 앞을 꽉 여민 점퍼를 어깨너머로 젖혔다. 그 바람에 나는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다친 날갯죽지가 크게 흔들리며 통증이 일었다.

재차의의 까만 눈이 빠르게 내 표정을, 그리고 검은 점퍼로 가려놓았던 상처 부위를 살폈다. 그를 따라 시선을 내려 본, 흰 셔츠엔 이미 갈색이 된 피 얼룩이 짙었다. 피를 흘린 줄은 나조차도 지금에야 알았다.

별종, 약골…. 그밖에 또 어떤 말로 비아냥거릴까 싶어 나는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괴수에게 끌려간 것도, 어깨를 다친 것도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방심한 내 책임도 부인할 순 없으나, 거짓말로 나를 속인 당신 탓도 있지 않으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딱딱한 말로 시시비비를 가릴 엄두가 쉽게 나질 않았다. 재차의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전철 바닥에 버려질까 봐 걱정됐다.

끝내 입 밖으로 뱉어낸 말은 투정이었다.

“현장 체험이라고 그러셨잖아요.”

그러자 재차의가 ‘하’ 하고 큰 한숨을 터뜨렸다. 눈알을 모로 굴려 그의 눈길을 회피하면서, 나는 구시렁거렸다.

“위험도 낮은 게이트라면서요….”

“…….”

“미리 말해 주셨으면 더 조심했을 텐데요.”

“…….”

못마땅한 한숨을 연신 내쉬면서도 재차의는 화를 내진 않았다. 다만 속도를 높여 뛰기 시작했다.

산책이고 자존심이고 따질 필요 없이 진작 그에게 안길 걸 그랬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나 빨리 달리는 파수꾼에게, 목발을 짚는 내 걸음이 얼마나 느려 보였을까.

‘아, 목발….’

그러고 보니 목발을 잃어버렸다. 제대로 사용하기론 오늘이 처음이라 거의 새것인데, 더는 필요조차 없게 됐다. 내 무릎이 전혀 낫지 않았다고, 아주 비싸고 큰 수술이 필요하다고… 재차의는 왜 거짓말을 한 걸까?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시뻘건 괴수가 재차의로부터 나를 완전히 떨어뜨려 끌고 가기에, 그만큼 무섭고 포악한 놈인 줄 알았다. 이렇게 죽나보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재차의는 동요 한 곡을 부를 만큼 짧은 시간 만에 괴수를 처리해 버렸다. 힘의 차이가 이토록 분명한데, 애초에 왜 나를 놓쳤던 걸까.

‘내가 느릿느릿한 게 짜증 나서… 엿 먹이려고 그랬나?’

대슈망 센터로 돌아가거든 이것저것 따져봐야겠다.

휙휙 날리는 머리칼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꼭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탄 것 같다. 달리는 속도는 몹시 빠른데 내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친 어깨를 움켜쥔 재차의의 손 또한 부목을 대신하는 듯 미동조차 없어 편안했다.

한참 전부터 우리 앞에 있던 문소여의 목소리가 어느새 저 멀리, 등 뒤에서 ‘같이 가요’ 하고 들려왔다.

허무할 만큼 쉽고 빠르게, 우리는 임시 기지에 도착했다. 전철 세 칸에 걸쳐 기계 장비와 조명등, 철제 박스들을 빗살처럼 줄지어 놓은 공간이었다.

“아! 재차의 님!”

“재차의 님, 와주셨군요.”

반가워하는 목소리며 오가는 시선을 모두 제치면서 재차의는 쭉 직진했다. 그러곤 임시 기지 가장 안쪽의 간이침대에 나를 내려놓았다. 피로감에 힘이 죄 빠져 버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점퍼를 벗고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어깨, 그리고 또?”

재차의가 내게 물었다. 저 멀리 위에서 들려야 할 목소리가 어째선지 귓가에 아른거렸다. 베개에 처박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잘생긴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자세를 한껏 낮추며 접이식 의자에 앉은 채였다. 재차의의 덩치가 너무 큰 탓에, 불쌍한 접이식 의자는 앙상한 철제 다리만 겨우 보였다.

어디가 아픈지 설명해보라는 듯 그가 가볍게 턱짓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간이침대를 중심으로 사각형을 그리는 틀을 따라 흰 커튼이 순식간에 쳐졌다.

“…….”

커튼 하나 치는 데에 염력을 낭비하는 재차의를 향해, 나는 모자란 답을 내놓았다.

“모르겠어요.”

“뭐라고?”

그의 반듯한 미간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도 화난 기색만큼은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기분이 상한 듯 사나워진 재차의의 눈매에 속이 탄다. 도통 설명하기 힘든 부상에 대해, 나는 최대한 솔직한 답을 빨리 내놓으려 노력했다.

“분명 아프…, 아팠거든요. 그런데 어딜 다친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 아프긴 했다고? 어떻게, 얼마나?”

“그냥….”

눈물, 콧물, 침을 흘리며 토할 만큼 아팠었다. 그런 종류의 아픔은 난생처음이었다. 매섭고 낯선 그 고통을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냥, 존나 아팠다.

차마 욕을 할 순 없어,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말했다.

“엄청 많이요.”

“엄청 많이?”

재차의가 내 말을 따라 외웠다. 나는 멍청해진 심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듣기에도 영 바보 같은 소리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줄도 모르는 주제에 ‘그냥 엄청 아팠다’니. 그러잖아도 나를 꼬마 취급하는 재차의 입장에선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애먼 오해를 받을까 봐 나는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꼭 불…. 불똥이 튄 것 같았는데요.”

“…….”

“불에…. 불에 맞은 것… 같았는데요.”

“…….”

흐린 말을 더듬더듬 외는 날 두고, 재차의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툭 뱉었다.

“다음엔, 송모래. 눈을 꼭 감아. 이 세상엔 네가 봐 줄 가치가 없는 것들 투성이야.”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저 먼 곳을 바라봤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겨도 내 눈에는 커튼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재차의는 그 밖의 무얼 보는 듯 까만 눈동자를 미세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커튼을 벌컥 열어젖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