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1권)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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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국도를 달리던 은색 승용차가 방향을 틀어 서행을 시작한 것은 오후 4시 반 경이었다. 아직 한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아스팔트 위를 천천히 움직이던 차는 곧 인적 없는 좁은 도로로 접어들었다. 시퍼렇게 솟구친 풀과 나무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희미한 그림자를 던지는 샛길이었다.

돌을 튕기며 차가 멈추고, 앞좌석에서 내린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곧이어 내린 얼굴이 하얀 여자는 남편의 어깨와 허리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피곤하지?”

묻는 아내의 말에 그는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날리며 씩 웃었다.

“휴가철치고는 생각보다 괜찮은데?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하겠다.”

열어놓은 뒷문으로 노란 반바지를 입은 남자아이가 내려섰다. 젊은 부부의 외동아들이었다. 아이는 오줌이 마려운 듯 발을 구르더니 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몇 번 흔들었다. 남편의 허리를 주무르던 그녀는 수풀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제 다 컸으니 혼자서도 눠야지. 휴게소가 요 앞인데, 그것도 못 참고. 아빠 힘들게 이게 뭐니.”

입을 몇 번 비죽거리던 아이는 바지춤을 잡고 풀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굴과 팔이 여리고 하얀 전형적인 서울 아이었다. 자갈과 검은 흙이 얇은 샌들 아래로 딱딱하게 밟혔다. 몇 걸음 들어가자 빳빳한 잎들이 손등과 무릎을 찔러댔다. 아이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처음 보는 나무들이 위협적일 만큼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보던 기운 없는 단풍나무나 화초들과는 너무 달랐다. 바닥에는 잔가지와 떨어진 잎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길게 올라온 풀들은 꼭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꼿꼿했다.

지금까지 깨끗한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볼일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어디에서 어떻게 오줌을 눠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와 아빠는 차 옆에서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엄마가 뭐라고 말하자 아빠가 하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둘 다 이쪽은 좀처럼 쳐다보지 않았다. 단념한 아이는 풀이 적게 난 곳을 찾아 몇 걸음 더 들어가 바지를 내렸다. 젖은 낙엽이 쌓여 푹신했다. 낯설어서인지 오줌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오줌을 누면 항상 바지에 묻혔었다. 바지를 바짝 잡고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 아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옆에 있는 큰 나무는 아파트 주변에 있는 가느다란 가로수들과 같은 나무라고 하기에는 완전히 달랐다. 딱딱하고, 거칠고 만지면 뜨거울 것 같은 두꺼운 기둥이 하늘까지 뻗어있었다.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뜨거운 땀이 흘러 등이 축축해졌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왈칵 들었다.

엄마가 바다에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아직 바다가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TV에서 봤던, 들어왔던 이미지의 기대감은 지금 당장 답답한 차 안과 더위, 오줌이 마려워 불편한 것들에 눌렸다.

서서히 소변이 주위 흙과 풀 사이로 축축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검은 얼룩이 퍼져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던 아이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로 큰 새가 지나가며 뭐라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이는 분명 새 이외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뭔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것 같은 소리였다. 서걱서걱 땅을 밀고 파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것은 앞쪽의 그늘진 잡초 사이에 있었다. 다섯 발자국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아이는 얼른 일어나 바지를 입고 소변이 고인 웅덩이를 피해 돌을 하나 주었다. 조용한 덤불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뱀일지도 몰라. 아이는 망설이다 잇 사이로 슛, 하는 소리를 내고는 비틀려 자란 나무 옆을 조준해 돌을 던졌다.

소리가 멈췄다. 그러나 잠시 후 그것은 더 큰 소리로 킁킁거리고 풀을 흔들어댔다. 아이는 겁이 나서 가만히 그 자리에서 그만 엄마 옆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서 있는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차가 있는 곳은 밝고 더워 보였다. 허리를 굽힌 엄마가 샌들을 벗고 돌 위에 맨발을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풀 속에서는 여전히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이쪽으로 올 기미는 없었다.

어쩌면 TV에서 보았던 아기 너구리나 흙 속에서 움직이는 두더지일지도 모른다. 아침방송에서 보았던 인형극을 떠올리며 썩어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가까이 가 풀을 갈라보았다. 처음에는 풀에 가려 무엇이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이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이상하게 생긴 동물을 발견했다.

해가 닿지 않는 젖은 땅 위에 ‘그것’은 누워있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그 이상한 것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털도 없고, 꼬리나 솟아오른 귀도 없었다. 그것은 개나 고양이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TV에서 봤던 어떤 동물과도 달랐다. 아니 알고 있는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그냥 썩은 나뭇잎이 달라붙은 검고, 웅크린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아이는 순간 혐오감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천천히 숨만 쉬던 그것이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니, 그냥 그런 것 같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에는 코가 없었다. 눈도 없었다. 몸의 끝 부분에 그저 커다랗게 뻥 뚫린 구멍 같은 것이 하나 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구멍은 마치 벌름거리는 콧구멍처럼 아이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서서히 벌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 기괴한 모양을 가만히 쳐다보던 아이는 한발 물러났다. 꿈틀거리던 그 까만 동물은 바닥을 기어 이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얼른 뒤돌아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몸이 차갑고 기분이 나빴다. 무척 좋지 않은 것을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해 아래 엄마가 마시던 캔을 접어 비닐봉지에 넣는 것이 보였다.

엄마, 하고 부르려던 아이는 순간 발을 멈추었다. 뒤에서 첩첩 하는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름이 쭉 끼치는 불쾌한 소리였다. 뒤돌아본 아이는 숨을 삼켰다. 그 까만 동물은 어느새 아이가 앉아있던 장소까지 이동해있었다. 그리고 뻥 뚫린 얼굴을 오줌이 고인 곳에 붙인 채 첩첩거리며 게걸스럽게 빨아먹고 있었다.

“……엄마?”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에 버렸다.

“엄마?”

그놈은 이제 오줌이 묻은 주변의 흙과 풀까지 삼키기 시작했다. 서벅서벅하고 흙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흡입하던 것은 아쉽다는 듯 주변 풀들을 하나하나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쩍 고개를 들어 아이를 향해 뻥 뚫린 큰 구멍을 열었다. 흙과 풀이 범벅이 된 그것은 꼭 입처럼 보였다.

“엄마!”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아이는 뒤돌아 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이번 여름 휴가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소소한 잡담을 늘어놓던 여자는 당황했다. 차로 돌아온 아들은 창백하게 질려서는 빨리 집으로 가자는 말만 반복했었다. 아이 생애 처음으로 떠나는,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될 여행이었다. 도로에서 내내 오줌이 누고 싶다고 징징대는 것이 얄미워 혼자 보낸 것이 실수였던가. 달래보려고 시도했지만 아이는 무작정 소리를 지르며 빨리 집에 가자고 울기만 했다. 왜 그러는지 묻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동안 아이는 뒷좌석에 낮게 엎드려 제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쯤에야 일어나 뒤쪽 유리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응?”

“도연아, 왜 그래?”

입을 꾹 다문 채 아이는 점점 어두워지는 도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멀어졌는지 궁금했다. 묻다 지친 부모가 뜻 모를 시선을 주고받은 줄도 모르고, 차가 가는 방향이 집이 아니라 낯선 바다인지도 모르는 채.

“어디 아픈 건가. 가다가 병원 있으면 잠깐 들르자”

“그냥 멀미하는 거 아냐?”

“애가 얼굴이 창백한데…….”

보는 게 아니었어. 돌을 던지는 게 아니었어. 휴게소까지 참는 건데 그랬어. 후회가 자꾸만 반복되었다. 차가운 유리에 바짝 코를 댄 채 아이는 점점 어두워지는 도로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디선가 몰려온 차들이 도로 위를 가득 메웠다. 노란 중앙선은 서서히 어둠 속에 묻혀,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로 마치 길게 늘어진 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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