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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격렬한 열기가 온 도시를 뜨겁게 달구는 오후, 노년의 남자가 병원 문을 들어섰다. 오랜 농사로 단단하게 마른, 희끗한 머리가 부스스하게 자란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팔뚝까지 둘둘 걷어붙인 낡은 와이셔츠 주변에서는 금방 밭에서 뽑혀진 야채처럼 시골 흙냄새가 풍겼다. 도시의 건물에는 어울리지 않는 체취였다.
흙 묻은 신발을 바닥에 몇 번 탁탁 턴 남자는 로비 한쪽에 서서 주머니에 구겨뒀던 종이를 꺼내 들었다. 갈겨쓴 글씨로 짧은 주소가 적힌 쪽지였다. 알아낸 것은 며칠 전이었지만, 도무지 결심이 서지 않아 삼일을 서울에서 하는 일도 없이 뭉갰다. 농사로 일손이 모자란 집에서 그의 외출을 참아주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꺼림칙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척 간에 모르는 척할 수도 없고…….
손등으로 이마를 슥 닦아내며 그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 로비를 둘러보던 남자는 곧 매점에서 작은 음료수 박스 하나를 사들었다. 문병 준비가 서툰 사람들을 위한 병원의 장사였다. 익숙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지나 502호실 앞에서 발을 멈췄다. 뒷주머니에서 갈색 손수건을 꺼내 콧잔등과 이마를 닦으며 남자는 못마땅하게 쯧, 하고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었다.
소란스럽고 더운 밖과는 다르게 병실 안은 조용하고 서늘했다. 문병을 온 사람들 몇 명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며 과일을 깎고 있었다. 들어서는 남자를 향해 몇몇이 눈길을 던지고는 이내 자기들끼리 얼굴을 돌려 뭐라고 수근거렸다. 듣지 않아도 대강 짐작은 가는 대화였다.
창가 쪽 침대 옆에는 젊은 남자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흰 티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져 운동으로 다져진 등과 어깨가 단단하게 드러났다. 꽤 깊이 잠이 들었는지 한쪽 팔이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있었다. 긴 다리가 의자와 침대 사이에 끼어 꽤 불편해 보였다.
의자 뒤로 다가간 그는 음료수를 내려놓고 큼, 하고 짧게 헛기침을 했다. 잠든 청년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불편한 자세로 앞으로 깊게 수그린 채 색색 숨이 골았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침대 머리 쪽으로 향했다. 침대에는 얼굴이 동그랗고 이마가 반듯한 어린 여자가 잠들어 있었다. 미인은 아니지만 병색이 가신다면 무척 귀염성 있을 이목구비였다. 그러나 지금은 피부가 온통 트고 입술에는 피가 맺혀 엉망이었다.
남자는 살짝 찡그린 얼굴로 그녀의 눈가를 유심히 살폈다. 얼마나 깊이 잠이 든 것일까. 이렇게 잠들어있는 걸 보면 일어나도 저 여리한 몸이 무슨 힘이 있을까 싶지만, 병원에 온 첫날 본 광경은 나이 많은 남자를 무섬증에 걸리게 만들었다. 그 난장판은 아마 두고두고 못 잊을 것이다.
남자는 떠오르는 기억에 작게 몸서리를 쳤다. 처음 병원을 찾은 날, 하필이면 그녀가 링거 병을 부수고 복도로 나가려는 때에 부딪혔었다. 품으로 달려들던 형형한 눈빛에 놀라 그만 손주 뻘인 그녀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말았다. 달려온 영준이 제때 받아 안지 않았다면 어디가 다쳐도 심하게 다쳤을지 모른다. 뭐라 욕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자신이 아닌 누구라 한들 그 상황에서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평온하게 잠든 여자의 눈가는 파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녹색 같기도 하고 푸른색 같기도 했다. 아무리 보아도 낯설지 않은 안색이었다. 몇 가지 오래된 기억이 스쳐갔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끙, 하는 얕은 신음을 흘렸다. 그 기척에 앞쪽의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주춤 상반신만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상대를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다시 누웠다. 뭐라고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어이구, 간 떨리고 무서워서 어디 잠을 자겠어. 에이, 추워라, 왜 이렇게 추워.
남자는 손에 힘을 풀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다. 창피한 일이었지만 더 이상 길게 끌고 싶지는 않았다. 결정을 내렸다면 빨리 하는 것이 좋았다.
“자냐?”
그는 잠든 청년의 어깨를 쥐며 말했다. 담배를 오래 펴 가래 끓는 소리가 거친 음성이었다.
뚝 떨어지던 고개를 퍼뜩 든 영준이 멍한 얼굴을 들었다. 짙은 눈썹 아래 검은자가 큰 선해 보이는 눈이었다. 자신을 부른 사람을 확인한 영준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있으라. 피곤하겄지.”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다. 거 앉아라.”
남자는 손을 내저었다. 영준은 침대 밑에서 의자 하나를 더 빼 내놓았다.
“앉으세요.”
“밤새 여기 있었나?”
“네.”
“학교는…….”
“사정은 말해뒀어요.”
“니도 그 뭐냐, 곧 방학이고 할 턴디. 그 전에 시험 치고 그러지 않여?”
“지금은 그게 급한 게 아니니까 괜찮아요. 나중에 볼 수도 있는 데요 뭘. 이거 하나 드세요.”
영준은 망고 쥬스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미지근한 음료를 몇 모금 마신 뒤 그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소영이는?”
“그냥 그래요.”
영준은 침대에 누운 여동생을 돌아보며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이 잠든 채였다. 밤새 옆에서 손을 잡고 눌러주었다. 자신도 지쳤지만 동생은 더 할 것이다. 이제 갓 스물, 아프기에도 쓰러지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였다. 영준은 시트 위에 놓인 그녀의 작은 손을 한번 꽉 잡았다 놓았다.
“식사는 하셨어요?”
“내려갈라믄 성가시지 않게 미리 먹어둬야지.”
“오늘 내려가세요?”
“그래야지. 언제까지 서울에 있음 되겠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영준은 자기 몫의 캔을 따서 마셨다. 입안이 텁텁해서 맛이고 뭐고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왕래 없이 지내는 친척 중에 그래도 찾아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며칠 사이에 정이 붙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때 어른이 한 명 있어 주는 것은 큰 위로였다. 소용없는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럴 때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지금과는 좀 달랐을지 모른다.
영준은 침침한 눈을 비비고 어깨를 쭉 폈다. 우두둑 하고 굳어있던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루 이틀 정도 밤새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는데, 맥이 쭉 빠지는 것을 보아 지치긴 지친 모양이었다. 벌써 3주째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3주, 떠오른 날짜에 영준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영준은 손에 쥔 캔을 바라보며 지난 3주 내내 반복했던 의문을 생각했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동생과 나에게 일어난 것일까. 처음에는 대학 입학식의 흥분에 고단한 수험기간이 끝난 기쁨이 겹쳐 좀 들뜬 탓이려니 생각했었다. 첫 엠티에 다녀와 지쳤던 모양이라고도 생각했다. 갑자기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유난히 더위를 탔다. 하루 종일 누워있더니 헛소리를 시작했다. 결국 욕조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이 주일이나 잘못되는 것도 모르는 채 있었던 것이다.
“이상시리 춥구만.”
“네?”
상념에 잠겨있던 영준은 얼결에 대답한 뒤 얼굴을 붉혔다. 막 사과하려던 영준에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저었다.
“아무리 안이라지만 이상하게 추워. 여하고 밖하고 기온 차이가 너무 나는구만. 대낮에 훤히 불을 켰는데도 컴컴하게 어둡고.”
불편한 얼굴로 그는 앞쪽의 침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봐라. 이 한여름에 이불을 목까지 둘러쓰고 있잖여. 이래서야 아픈 사람은 고사허고 멀쩡한 사람도 드러눕게 생겼구만. 냉방을 어떻게 하기에 이렇게 추워.”
“에어컨은 안 튼다고 들었어요. 추우세요?”
“안 튼다고?”
“네.”
영준은 그제야 병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니 다른 방에 비해 좀 서늘한 편이기는 했다. 습도도 높았다. 그저 해가 안 들어서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영준의 대답에 표정이 굳은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가 중요한 것을 기억해 낸 표정으로 그는 서둘러 물었다.
“몇 시지?”
“세 시요. 몇 시 차신데요?”
“일어나야지.”
“역까지 배웅할게요.”
“그냥 있……. 아니, 아니다, 그래 그럼 요 병원 앞까지만 같이 가는 거이 낫겄다.”
병실을 나온 그가 영준의 팔을 잡은 것은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잠깐만, 저서 얘기 좀 하자.”
뭔가에 쫒기는 것처럼 말한 그는 영준의 팔을 움켜쥔 채 복도 한쪽의 의자로 잡아끌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따라온 영준은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초조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흰 세치 무더기가 검은 머리 사이로 희끗하게 보였다. 오랜 농사로 손톱과 손마디가 새카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뭔가 묻고 싶은 듯 입을 몇 번 달싹이던 영준은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살갑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아버지뻘의 어른에게 용건이 뭐냐는 소리를 어떻게 물어야 할지 감이 안 왔기 때문이다. 실은 영준이 먼저 말을 꺼내주었으면 했던 남자는, 결국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유순한 자신의 조카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너, 너 혹시 굿 같은 거 생각해 본적 있나?”
“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 병원비나 기타 경제적인 것에 대해 묻지 않을까 예상했던 영준은 놀라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반문했다.
“굿이요?”
무릎 위에 올려뒀던 손이 바지를 꽉 틀어쥐었다.
“그게 대체 무슨……?”
잠깐 후회하는 눈치였던 남자는 곧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아무렇게나 쓸었다.
“긍께 굿 말이다. 겨우 사흘 지켜본 나도 알겄는 것을, 니는 더 잘 알겄지. 그래서 하는 말이여.”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딱딱하게 대답한 영준은 복도 반대편을 노려보았다. 속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어제 새벽 다른 병실의 환자가 찾아와 비슷한 소리를 했었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성경이었다. 믿음으로 극복하라며 마귀를 뽑으라고 충고했었다. 겨우 잠든 소영의 옆에 서서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을 간호사를 불러서야 내보낼 수 있었다. 비록 부적과 방울은 없었지만 영준에게는 결국 다 같은 소리였다. 미쳤다는 소리나 귀신들렸다는 소리나, 다 거기서 거기였다. 병실 사람들도 매일 조언이랍시고 잘 아는 점집이 있다고 거들어댔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생각해 하는 헛소리들이다.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시간 놓치시겠어요. 전 그만 들어가 볼게요.”
“앉아봐라. 나도 공한 소리나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닌디.”
“소영이는 병이에요. 치료하면 낫습니다. 제 동생이니 제가 다 알아서 할 거예요.”
“병? 무슨 병? 아무 이상도 없다지 않어?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딨냐, 의사도 퇴원하라지 않디!”
영준은 이를 악문 채 외당숙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서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도로 앉어!”
영준을 억지로 끌어 앉힌 뒤 남자는 주머니를 뒤져 종이를 꺼냈다. 몇 번씩 접혀진, 노트 한쪽을 찢어 만든 쪽지였다. 고개를 돌린 영준의 손에 종이를 쥐어준 남자는 한 발자국 물러나 말했다.
“펴 봐라.”
“…….”
“이런 썩어빠질……. 시방 보라니까!”
종이에는 두 줄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처음 보는 이름과 지명이었다. 김도연, 낯선 이름이었다. 용한 무당 이름이라고 내밀 줄 알았는데 언뜻 보기에는 남자 이름이었다. 요즘은 남자 무당도 많다고 하니 어쩌면 예상이 맞는지도 몰랐다.
영준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쓸었다. 며칠을 못 자서 머리가 멍했다. 무례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화가 치밀었다.
그래, 실은 자신도 소영이 이상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이미 지나있었다. 의사가 아무 이상도 없으니 그만 돌아가라고 한 것만 벌써 몇 번째였다. 그나마 식사를 못 하니 영양제라도 놔달라고 빌고 빌어 눌러 앉힌 입원이었다.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난데없이 자신을 붙들고 한 소리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내림굿을 받아라, 정신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라……. 동생이 미쳤다거나, 귀신이 들렸다고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전화번호는 모른다. 아예 잊고 살다시피 했던 터라 네 일 아니믄 다시 꺼낼 일도 없었을 거여. 그래도 안사람이 용케 알아냈지. 하필 저번 달이 제사였다고 연락은 한 번 했던 모양이다. 주소를 자주 바꾼다고 허니 서둘지 않으면 영영 못 찾을지도 모른다.”
“……?”
남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병원 내 금연 같은 소리는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인연 없이 살았다지만 그래도 핏줄은 핏줄이니 한 번 찾아가 보드라고. 우리는 몰라도 젊은 사람끼리면 말은 통할지 모르니까.”
“핏줄이요?”
영준은 전혀 뜻밖의 말에 되물었다. 어디 잘 나가는 무당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핏줄이라니. 아무리 왕래가 없는 친척 간이라지만 굿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남자는 의아한 표정의 영준을 가만히 바라보며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축 처진 눈 주위에서 가는 경련이 일었다.
“나가 쓸데없는 짓을 허는 게 아닌가 하고 계속 망설였었는디……. 아까 저 앞에서도 그냥 가야 허나 말아야 허나 했었고. 이미 십 년 가까이 못 본 얼굴이고 사람 기억이라는 게 워낙 오락가락하니 나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고. 그라고 작은 불 잡것다고 더 큰불 끌어오는 거는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고. 근디 뭐라도 하나 잡을 구석이 있으면 잡아 보는 게 좋지 않나 해서 큰 맘 먹고 알려주는 거니 잘 들어보드라고. 낫살 먹어서 허튼 소리나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여.”
연기를 길게 뿜어낸 남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영준의 옆에 앉았다. 거칠한 손바닥을 마주 비빈 그는 빨리 끝내버리겠다는 듯 서둘러 입을 열었다.
“거 적힌 이름이 김도연이지? 처음 듣는 이름이겠지만, 니 먼 친척 중 하나다. 16년 전에 큰 사고가 있었는디, 그때 지 부모는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애여. 긍께 이제 23살인가 24살인가 하겄지. 어렸을 때라 큰 집이다 작은 집이다 해서 아를 입양하기로 했는디 일이 잘 안되었어. 결국 이집 저집 전전하다가 형님 손에 우리 집으로 왔거든. 살러 온 거는 아이고 잠깐 며칠만 맡겨 놓기로 한 거였지. 긍께 그게 아마 14년 전일 거여. 그때 갸가 온지 삼일이 좀 안되었는데 집에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딸내미가 밤마다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허고…….
여튼 지금 생각하믄 못할 짓이기는 했다만 그때는 다들 갸 헌티 귀신이 붙었다고 피하고 그랬었지.”
영준은 그의 다음 말에 아직 남아있던 잠의 흔적이 싹 걷히는 것을 느꼈다.
“나가 이 얘기를 너한테 왜 하냐면, 갸가 고쳤던 적이 있단 말이다. 꼭 니 동생이랑 비슷하게 아팠던 사람을 말이여. 우리 뒷집에 살던 기범이라는 놈이었는디, 갸가 산에 가서 뭘 잘못 건드리고 와서는 그날로 다리를 못 쓰고 앓아누웠었어.
그 기범이 놈이 꼭 지금 소영이 쟈처럼 퍼르스름 허니 하루 종일 잠만 자고, 한여름이었는데도 집 안이 냉냉하고 어두웠었다. 베름빡마다 만지면 손이 시리게 차갑고,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 없다 했는데 갈수록 뼈만 앙상허니 말라가고 말이여. 저러다 죽는다, 죽는다 해도 방도가 없어 생목숨 넘어가게 생겼었는디, 그걸 고쳤어! 어떻게 고쳤는지는 모르지만, 나가 그걸 옆에서 봤으니 그건 분명하다.”
말을 마친 남자는 짧게 남은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지그시 비볐다. 아래를 내려 보는 그의 눈가는 침침하게 어두웠다.
“…… 갸를 마지막으로 본 게 그 일주일 후지. 조카 고쳐준 게 고맙다고 쌀이랑 돈을 들고 왔던 양반이 뒷간 쪽에서 뭘 봤다고 하는 소리에 갸가 거의 발광을 하다시피 했어. 잡는 사람들을 물고 할퀴고는 산으로 달아나버렸다. 연락을 받고 온 형님이 삼일이나 걸려서 찾아서 그대로 서울로 데리고 올라가 버렸지. 산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하도 헤매고 다녀 거의 사람 꼴이 아니었었다.
그 뒤로는 나도 들은 이야기다만, 아가 귀신이 씐 모양인지 신병을 앓는지 영 요상한 소리를 허고 헌다고 결국 고아원에 맞겨 버렸다 허드라. 그래도 핏줄인데 어찌 그러냐고 허도 뭔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말도 안 해주고 말이여. 그럼서 허는 말이 나보고도 자꾸 갸에 대해 신경을 쓰지 말라고 허드라고. 귀신이 들린 아라고, 그 놈아 땜에 집에 화초며, 키우던 개며 싸그리 다 죽었다고 말이여…….”
말을 끝낸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그는 땀이 맺힌 이마를 문질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진 영준은 손에 든 쪽지를 다시 보았다. 김도연. 낯선 이름과 이상한 이야기였다. 여름철에 늘어놓는 괴담 같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에 그런 친척이 있다는 말은 생전의 부모님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왠지 빈 소리로 치부하기에는 흘려들어선 안 될, 아주 중요한 기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김도연, 이름을 외는 영준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 후로는 아무 연락도 허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아주 가끔, 지 부모 제삿날에나 전화 한 번 해서 돈을 내헌티 보내는 정도지. 뭔 일을 허는지,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 이쪽에서 찾아본 적도 없다.”
남자의 떨리는 입가에는 희미한 죄책감과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눈을 빠르게 깜빡인 그는 손수건을 대충 접어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영준은 직감적으로 그가 말하지 않은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물을 수가 없었다. 답해 주지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영준은 쪽지를 다시 보았다. 김도연, 친척이라지만 성조차 다른 그와 자신 사이에, 같은 것은 비슷한 나이뿐이었다.
배웅하려는 영준을 만류하며 그는 혼자 일어났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머뭇거리며 말을 남겼다.
“……나가 방법이 없다 싶어서 니한테 이 이야기를 허긴 헌다만, 잘 허는 짓인지는 모르겠다. 니도 도시 아고 허니 다 믿을 것 같지는 않고, 생각을 더 해보고 찾아가고 싶으면 그렇게 허드라고. 너무 늦지만 않게 혀.”
병실로 돌아온 영준은 창턱에 기대어 앉아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잠든 소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흰 피부 주변으로 파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눈 주변은 언뜻 보면 마치 탁한 물감을 발라놓은 것 같았다. 안색이 나쁘다거나 눈 밑에 그늘이 졌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영준은 의자에 거꾸로 걸터앉아 등받이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아저씨가 남기고 간 몇 가지 단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굿, 귀신, 신병……. 그에게는 낯설기만 한 단어들이었다. 예전에 알던 친구 하나가 오컬트 쪽에 관심이 있어 했지만 그건 UFO였고, 더구나 중학교 시절이었다. 영준은 답답함에 머리를 마구 긁었다. 병이다, 낫는다, 스스로에게 장담하듯 몇 번이나 말했지만 실은 자신을 잃은 지 오래였다.
소영의 병은 이상했다. 사람이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아파진다니. 멀쩡히 식도로 넘긴 물이 왜 폐에 들어가 찬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치료 방법을 모르는 병.
영준은 침대 한쪽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깨끗한 노트와 펜을 꺼내 쪽지에 적힌 주소를 옮겨 적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일단은 잡아보는 것이다. 떨어지게 되면 다소 아프겠지만 설마 죽지는 않겠지.
* * *
태풍이 지나간 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내리꽂히는 듯 뜨거웠다. 온 거리가 그림자 하나 없는 여름의 열기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영준은 쓰고 있던 야구 모자를 벗고 젖은 머리를 털었다. 지독한 더위였다. 마치 찜통 속에 들어온 것 같이 온통 후끈거렸다. 병원에서부터 사 들고 온 선물용 음료수 세트는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 버렸다.
영준은 삼거리 길에 도착한 뒤 머뭇거렸다. 결국 슈퍼에서 얼려놓은 생수를 사면서 길을 물었다. 뺨이 붉은 주인은 가게에서 보이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아파트 단지를 쭉 가로질러 가면 큰 나무가 있거든. 그 옆에 좀 오래된 빌라가 보일거야. 거기가 행운 빌라야. 근데 요 아파트 길이 좀 이상하게 꼬여서 돌아서 가면 너무 머니까 그냥 이리로 쭉 질러가는 게 훨씬 빨라. 그냥은 우체부도 못 찾아가서 다시 오니까 잘 보고 가. 거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이상하게들 헤매고 그런다니까.”
그녀의 말은 길을 마치 직선처럼 표현 한 것만 제외하면 옳았다. 영준은 내내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걸어야 했다.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로 난 길을 지나야 하는 일도 있어 신경을 놓으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것 같았다. 빙 둘러갔다면 두, 세배는 걸릴 거리였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오래된 집들과 그 집보다 더 오래된 나무들이 나타났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두 그루가 기대듯 가까이 서 있었다. 그 바로 옆에 붉은 벽돌의 오 층 빌라가 있었다. 발로 한 대 차면 그대로 허물어지기라도 할 듯 허름한 건물이었다. 빌라에 붙어있는 화단에는 누군가 들어가 마구 발로 밟아놓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흙구덩이 안에 둥근 돌이 놓여있었다. 부처가 조각된 돌 표면은 비바람에 닳아 형태가 흐릿했다.
“후우…….”
영준은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단의 끝에 작은 놀이터가 보였다. 나무와 건물에 고립된 위치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잘 정돈된 놀이터였다. 깨끗하게 색이 칠해진 미끄럼틀은 얼마 전에 누군가 손질 한 것처럼 말끔했다. 여러 개로 연결된 빨간 미끄럼틀과 노란 시소, 주위와의 부조화 탓인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영준은 아무도 없는 놀이터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모래는 희고 깨끗했다. 김도연의 주소는 이 빌라 3층이었다. 고개를 들어 3층을 살피자 커튼이 쳐진 창문이 보였다. 한여름답지 않게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깨진 시멘트가 드러난 빌라 입구에는 잡초가 돌을 뚫고 자라 있었다.
영준은 입을 꾹 다물고 입구의 세 칸짜리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리며 자신의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먼지를 뒤집어쓴 흰 운동화와 천천히 헤져가는 끈, 신발의 코 부분에 어디서 묻었는지 모를 얼룩이 길게 나 있었다. 어딘가 가서 한바탕 뛰고 오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니 실은 그냥 돌아서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영준은 자리에 멈춰 서서 부서진 계단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난 시멘트를 세게 찼다. 그리고 에이 하고 짧게 내뱉은 후 빌라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단숨에 계단을 올랐다. 주소의 문은 낡은 녹색 철문이었다. 노트에 적어놓은 주소를 대조해 본 뒤 크게 숨을 쉰 뒤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초인종이 없었다.
초인종이 있어야 할 자리는 뻥 뚫린 채 가닥가닥 잘린 전선들만 삐져나와 있었다. 손이 행방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영준은 좀 망설이다가 주먹을 쥐고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약하고 느리게,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더 세고 빠르게 두들겼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잠시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던 영준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크게 말했다.
“김도연 씨! 안에 계세요?”
순간 자신이 꼭 우체국이나 택배 직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준은 피식 웃었다. 아마 상대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까. 잡상인이 아니라는 걸, 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그들의 인척관계는 또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하는 걱정이 뒤늦게 스쳤다. 아무튼 부딪혀보면 알 일이었다. 영준은 다시 문을 두드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김도연 씨!”
사람이 없을 거란 예상은 못했었는데. 영준은 혀를 찼다. 기왕이면 전화번호도 알려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때 안쪽에서 뭔가 인기척 같은 것이 들렸다.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문 저편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미지의 사나이를 만나게 되는군. 영준은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철문은 그대로 굳게 닫힌 채였다.
“저기요, 잠깐 문 좀 열어주세요!”
안쪽에서 도어 뷰를 통해 살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무섭다는 말을 자주 듣던 인상이 신경 쓰여, 영준은 최대한 해사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저기, 안녕하세요. 최영준이라고 합니다. 잠깐 이야기 좀……, 윽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저기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요? 김도연 씨 댁 맞죠?”
이때다 싶어 영준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엉뚱한 오해를 살 것 같았다.
“처음 뵙긴 하는데 저 김도연 씨하고 친척이에요. 여수에 사시는 아저씨 소개로 왔습니다. 보세요, 주소를 받았거든요.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영준은 작은 유리알 앞에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어 보였다.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문 안쪽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마침내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얼굴이 흰 남자가 한 뼘 정도 열린 문 사이로 나타났다.
영준은 그에 대해 들었을 때 나름대로 모종의 이미지를 상상했었다. 영준이 상상한 김도연은 안색이 검고 미간에 큰 사마귀 같은 것이 마치 제3의 눈처럼 자리 잡은, 눈매가 치켜 올라가 척 보기에도 신통한 도사형의 남자였다. 그리고 사람을 쳐다볼 때는 뭔가 꿰뚫는 듯한 눈빛을 하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애써 이야기하지 않아도 불쑥, 문제와 원인과 답을 내놓을 거라는 상상.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아 처음 만나면 그 순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열린 문 사이로 나온 남자는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무슨 일입니까?”
말끔한 사내였다. 약간의 의아함이 섞인 무심한 눈빛으로 영준을 바라보는 김도연은, 평범했다. 색색의 무당 옷 대신 흰 셔츠에 부드러운 청바지를 입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신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 경계하는 듯한 서늘한 눈매가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단정한 이목구비였지만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김도연 씨?”
“네.”
영준은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사람이…….
“무슨 일입니까?”
영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네. 그게요.”
영준은 주머니에서 주소가 적힌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쪽지를 받아 본 김도연이 거기에 적힌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확인했다. 표정을 살피며 영준이 말했다.
“여수에 사는 김범용 씨 아시죠? 저하고 7촌뻘인 분이신데, 그러니까 좀 멀긴 하지만 저희도 친척인 셈이거든요.”
“그래서요?”
왜 귀찮게 하냐는 투였다. 영준은 머쓱해져 벗어 든 모자를 비틀었다. 그리고 일단 가져온 음료수를 내밀었다.
“그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분 말씀으로는 절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하셔서 왔거든요.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아뇨.”
“네?”
서늘한 눈매로 아래위를 천천히 훑던 김도연이 다시 말했다.
“그냥 여기서 얘기하죠.”
예의 바르지만 완강한 태도였다.
“그분하고는 친척이라지만 생판 남보다 못한 사이입니다. 무슨 부탁인지 모르지만 제 앞가림하기도 힘든 상황이니 도와드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
“잠깐만요!”
닫히는 문을 손으로 잡은 영준이 서둘러 말했다.
“무슨 일인지 듣지도 않고……!”
“들으나 마나한 소리겠죠. 귀신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 틀립니까?”
영준의 손을 밀어낸 김도연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친척이랍시고 어쩌다 연락하면 하나같이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고. 사람을 무당 취급하는데도 질렸으니 적당히 좀 하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요. 젊은 사람이 허무맹랑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냉한 표정으로 쏘아붙인 그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쫙 찢었다. 코앞에서 철문이 쾅 하고 닫혔다. 영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냉랭한 복도 바닥에는 찢긴 쪽지만 남아있었다. 무릎을 꿇고 주워보니 이름 한 중간이 잘려 ‘도’ 자가 반쪽이 나 있었다.
* * *
핸드폰 벨이 끝없이 울린다. 영준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달렸다. 복도 끝, 병실 앞에 모여 있던 환자와 가족들이 영준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안쪽을 향해 손짓했다. 뭐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헤치고 병실 앞에 선 영준은 눈앞의 광경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병실은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았다. 입원실 내 의자며 철제 침대는 온통 뒤집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부서진 가습기와 기타 환자들의 물건이 엉망으로 굴러다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저기 피까지 튀어있었다.
소영은 창가에 서 있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것이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듯, 혹은 그대로 쓰러질 듯 균형을 잃은 이상한 모습이었다. 텅 빈 캔과 보온병이 소영의 발치에 굴러다녔다. 마구잡이로 뽑아냈는지 링거를 맞던 손목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흐른 피는 방울지며 계속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무엇을 찾는지 병실 이곳저곳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문 쪽에 쓰러져 있던 간호사가 영준을 보고는 바지를 붙들고 꽥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얻어맞았는지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보호자 맞죠? 어떻게 좀 해봐요!”
동생을 붙들려던 영준은 눈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번뜩이는 눈에 짐승처럼 시퍼런 안광이 흘렀다.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있었지만, 병실 안에 바람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소영의 긴 머리가 사방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이 온 사방에서 그녀를 향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소, 소영아!”
그녀는 영준이 부르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창가에 놓여있던 화병을 집어 들었다. 출렁,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소영은 화병에서 꽃을 뽑아 바닥에 팽개쳤다. 젖은 꽃이 바닥에 철썩 떨어졌다. 그녀는 화병을 기울여 안의 물을 정신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흙과 먼지로 흐려진 물이 앙상한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 넘김이 계속될수록, 그녀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창가 쪽에서 낮게 찌직, 찌직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막 일어나려던 간호사의 눈이 창문의 한 곳에 멈췄다. 커튼이 걷힌 창가에 손자국이 찍혀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였으나, 곧 둘로 늘었다. 그리고 다시 셋, 넷…… 머리끝이 삐죽 곤두섰다. 아무리 봐도 바깥에서부터 찍힌 것이었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게……?”
수십 개의, 각자 크기가 다른 손이 어둠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때마다 뿌연 손자국이 유리창에 새겨진다. 그것은 보고 있는 와중에도 새로 찍히고 있었다. 탁탁탁탁 하고 무서운 속도로 창문을 가득 메우는 손바닥 자국에는 지문과 손금까지 선명했다. 홀린 듯 그 광경을 보던 간호사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얼굴이었다. 이마와 코, 입술의 분명한 윤곽이 창가에 천천히 찍히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이쪽을 들여다보다 입김을 불어넣은 것처럼 코와 입부터 천천히 드러났다. 간호사는 바닥을 기어 병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꺄아악-!”
허겁지겁 병실을 나온 그녀는 마침 너스콜을 듣고 달려온 동료를 와락 끌어안았다. 엉엉 울기 시작하는 그녀를 달래던 다른 간호사들은 창문을 보고는 핏기가 가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절감했다.
영준은 넋 나간 사람처럼 소영이 흙탕물을 남김없이 빨아 마신 뒤, 그 어느 때보다도 초췌해진 얼굴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젖은 입가를 핥는 혀는 실핏줄이 터져 잔뜩 부어있었다. 소영은 다 마신 화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남은 흙탕물이 바닥에 퍼졌다. 그녀는 옆 침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침대 한쪽에 걸려있는 식염수 병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영의 입가가 길게 가로로 비틀렸다. 물, 하고 조그맣게 말하는 목소리에 긴 울림이 뒤따랐다.
“아……!”
식염수 팩을 움켜쥔 소영이 이로 투명한 비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팩을 움켜잡은 모습은 날고기를 탐하는 동물이었다. 손톱을 세워 마치 새의 발처럼 구부러졌다. 영준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마시게 두어서는 안 됐다. 비닐을 물어뜯는 소영의 입에서 팩을 잡아 당기자 순간 그녀는 찔린 것처럼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놔아!”
“이러지 마, 소영아!”
그녀는 영준의 손이 몸에 닿자 휙 꺾인 허리를 바로 잡지도 않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영준은 소름 끼치게 차가운 그녀의 체온에 놀랐다. 얼음장 같았다. 비정상적인 것은 체온만이 아니었다. 동생은 작고 근육이라고는 없는 체형이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영준이 이기지 못할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마른 몸이 튕겨져 나갈 듯 버티고, 튀어 오르고, 비틀어댔다.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뜨는 여동생의 힘은 놀라웠다.
“누가 좀 도와줘요!”
“놔! 아아악!”
의사들 몇이 뒤늦게 달려들어 소영의 팔을 잡았다. 소영이 영준에게 잡힌 팔을 빼 자신을 붙잡는 의사의 얼굴을 세게 할퀴었다. 악, 하고 얼굴을 감싼 의사가 뒤로 물러나자 그녀는 영준의 몸을 밀치고 반대편 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아침까지만 해도 제대로 목도 가누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도약이 엄청났다.
“싫어! 저리 가 이 새끼들아! 씨-발 새끼들! 개잡놈들! 죽어! 뒈져! 아, 아파!”
침대 위로 올라간 소영은 사방으로 손을 내저으며 생전 입에 담아 본 적도 없는 욕설을 외쳤다. 바닥에 떨어진 식염수 팩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길게 울었다.
“아…… 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가는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시트를 움켜쥔 그녀는 앞뒤로 상체를 흔들고는 무서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쁜 새끼들! 싫어! 전부 싫어! 주, 죽이고 싶어! 죽고 싶어! 죽고 싶어!”
몸을 흔들 때마다 침대가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옆자리에서 이불을 걷어낸 영준은 침대 위로 올라가 팔로 소영의 몸을 단단하게 안았다.
“정신 차려, 야! 정신 좀 차려봐. 소영아!”
“너, 다 너 때문이야. 너도! 죽일 거야, 찢어, 찢어, 죽을 거야,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아아아아----!”
침대를 흔들던 소영이 몸을 둥글게 만 상태로 마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영준이 당혹감과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옆을 보자, 맞은편에서 의사가 급히 주사기에 안정제를 채우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사를 움켜쥔 의사와 영준의 눈이 마주쳤다.
“잡아 봐요!”
의사의 말에 따라 급한 대로 팔을 눌러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소영은 그 자리에서 튀어 오르는 것과 주저앉는 것을 동시에 하려는 것처럼 몸부림을 쳤다. 침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영준은 소영의 몸 위로 올라가 있는 힘을 다해 체중을 실었다. 의사가 주사를 꽂기 위해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실패했다. 경련하듯 팔을 떨고 휘저어 잡기조차 힘들었다. 갑자기 의사가 달려가 바닥에 떨어진 식염수팩을 집어 왔다.
“지금 뭐하는……!”
기겁한 영준이 외쳤다. 그는 대꾸도 없이 그걸 소영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침대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던 그녀는 차가운 비닐의 감촉에 번쩍 몸을 일으켰다. 두 손으로 우악스럽게 의사에게서 팩을 뺏은 소영은 이를 드러내고 비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질긴 팩이 터졌다. 눈을 꼭 감고 꿀꺽꿀꺽 삼키는 소영의 팔에 의사가 서둘러 주사를 꽂았다. 주삿바늘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영준은 소영이 잡고 있는 팩을 잡아 뺏다.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던 그녀는 개처럼 으르렁거리고 욕을 내뱉다가 갑자기 눈을 뒤집더니 의식을 잃고 푹 고꾸라졌다. 영준은 허겁지겁 동생의 목을 안아 똑바로 누였다.
“야, 소영아!”
뺨을 가볍게 쳐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영준을 밀어낸 의사가 호흡과 맥박을 체크 했다. 축 늘어져 아무렇게나 몸을 늘어트린 것이 꼭 죽은 것 같았다. 쇼크나 심장마비 같은 무서운 생각이 영준의 뇌리를 스쳤다.
그동안에도 약한 발작 비슷한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소란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불안감에 의사를 쳐다보자 그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여기 좀 와 봐요. 빨리, 간호사!”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던 의사는 뒤를 돌아보고는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병실 문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있었다. 누구도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복도 가득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은 분명했다. 원래 이 병실을 쓰던 사람들뿐 아니라, 간호사, 안전요원, 다른 병실의 환자와 병문안을 온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이쪽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병실 문은 경계선처럼 그들과 이쪽을 나누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좀 와서 도와요!”
신경질적으로 외친 의사가 제일 가까이에 서 있는 간호원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영준이 안고 있는 소영을 한 번 보고, 안쪽 창가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한발 물러섰다.
“뭐하는 거야!”
“이거, 괜찮은 겁니까? 상태가 왜 이런 거죠?”
불안해진 영준이 물었다.
“……호흡은 괜찮습니다만, 맥박이 약해요. 아, 거기 서 있지만 말고 빨리 도우라고!”
짜증을 확 내는 의사의 말에 뒤쪽에서 남자 간호원들이 주춤 다가왔다. 이동 침대에 눕혀진 소영이 복도를 따라 지나가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영준은 그 뒤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기운이 빠져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귓가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미간에 손을 댄 채 잠시 서 있던 영준은 비틀거리며 병실 쪽으로 걸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지나갈 수가 없었다.
방금 전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 흘낏거리며 닿는 것을 피하느라 알아서 비켜섰지만, 소동을 전해 듣거나 뒤늦게 온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만 돌아가라고 누군가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무시당했다.
영준은 병실에서 먼 복도 한쪽의 의자에 앉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이럴까, 얼이 빠진 것처럼 멍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고 자문해 보았지만 답 없는 질문일 뿐이었다.
“최영준 씨.”
온 것은 방금 전 의사였다. 왼쪽 뺨이 온통 긁힌 자국과 함께 부어있었다. 방금 전 몸싸움에 다친 것이 분명했다. 영준과 마주 선 채로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한번 시선을 던지고는 입을 열었다.
“동생 분은 지금 다른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퇴원시키시는 게 아니라면 다른 분들과 같이 병실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어쩔 수 없었기는 했지만, 상당량의 수분을 섭취했으니 몇 가지 검사를 끝낸 후에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일이라면…….”
“증세가 전혀 호전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신과 치료가 병행되지 않는 한 진전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다니, 부드러운 표현이었다. 말한 의사 본인도 민망한 표현이었다. 소영은 하루하루 심해지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동생의 몸은 이제 곧 부스러질 것 같았다. 더구나 가끔 일어나던 ‘발작’은 급격하게 심해지고 있었다.
“정신과 치료라면 치료가 된다는 말인가요?”
“함부로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복합적으로, 심인성 조갈증이 동반된 정신분열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일종의 뚜렛 증후군도 의심되는 상황이고요. 확실한 것은 물론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시는 쪽이 좋습니다.”
의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물론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고요.”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갑자기 복도 끝에서 나이 든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나기 시작했다. 영준과 의사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 무리 가운데, 오십 대 초반의 부인이 두꺼운 성경을 손에 들고 고개를 숙여 계속 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움켜쥔 성경을 향해 계속하여 기도문을 읊어댔다. 영준은 그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밤에 병실에 찾아와 신의 힘으로 악귀를 쫒으라던 사람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문 옆에 꼼짝없이 붙어 선 간호사에게 다가간 의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빨리 병실 정리하고 사람들 보내요!”
“……저길 들어가라고요?”
기막힌 소리를 들었다는 듯 간호사는 도리어 반문했다.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그녀는 문 옆 벽에 비켜선 채 안쪽을 손가락질했다. 손을 따라 병실을 한번 휙 둘러본 의사가 그래서 무슨 문제냐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엉망이기는 했지만 위험한 것은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깨진 도자기와 바닥에 흩어진 물, 피가 조금 흘러 있을 뿐이었다. 어려운 일은 자신이 다 해결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마주 보는 간호사의 표정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는 가슴에 안고 있는 차트를 마치 생명줄이라도 된다는 듯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창을 본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흡, 하고 숨을 들이키고는 뒤로 물러섰다.
온몸의 피가 발치로 싹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굳어있는 의사의 옆을 스쳐, 영준은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를 남긴 채 멈췄다.
어두운 창문 너머에는 한밤의 어둠뿐이었다. 누군가 올라올 수 있을 높이도, 발 받침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창문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밖에서 찍은 듯 손바닥 자국이 가득 나 있었다. 마치 기름진 손이 온 병실의 유리를 두드리고 밀어댄 것 같은 광경이었다. 각각의 손금과 주름까지 보일 정도로 자세했다. 몇 개의 자국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누군가 창에 얼굴을 바짝 댄 채 숨을 몰아쉬기라도 한 흔적이었다.
복도에 선 사람들이 저마다 뭐라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참지 못하고 달아나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숨을 멈추었다.
문득 찌지직, 하고 종이 찢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소영의 침대가 있던 쪽의 창가였다. 가까이 다가간 영준의 눈이 부릅떠졌다. 유난히 빼곡한 손바닥 자국 사이로 유리에 가늘고 긴 금이 가 있었다. 유리창은 그 금을 중심으로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어…….”
뭐라고 말을 이으려던 영준의 바로 앞에서, 순간 창이 폭발하듯 터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막은 그의 몸으로 유리조각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