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24)

3

도연은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영준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작은 사거리까지 나갔을 때, 도연은 그의 머리에서 모자를 벗겨냈다.

“봐, 저 거리에서부터 여기까지 뭐가 보이지?”

영준은 너무나 익숙했던, 그러나 이제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거리를 눈으로 훑었다.

평일 오후의 거리에는 주부와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사거리의 작은 슈퍼 옆에는 아이스크림 트럭이 한 대 서 있었다. 아이들 몇이 슈퍼 안에서 과자를 고르며 떠들고 있었다. 익숙하고 평범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아이스박스 안에 아이스크림을 쏟아 넣던 중년의 남자는 자신의 어깨에 걸터앉은 채 머리에 팔을 두르고 있는 여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등에 부러진 식칼이 꽂혀 있는 여자의 피가 연신 남자의 이마와 상체로 흘러내렸지만,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허공으로 증발해버린다.

과자를 들고 막 슈퍼에 나온 아이들 무리 속에는 명백하게 수십 년 전에 유행했을 법한 옷을 입은 아이가 하나 껴있다. 아이의 한쪽 얼굴은 불에 타 쪼그라들어있다.

좁은 골목길에는 온통 멍투성이의 젊은 여자 하나가 맨발로 흐느끼며 자신의 터진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그리고 길 건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호프집 앞에는 지난주 위암으로 죽은 주방 할머니가 볕이라도 쬐는 듯 눈을 감은 채 졸고 있었다. 유난히 큰 할머니의 가슴팍은 활짝 열려 등뼈가 다 들여다보였다. 모든 것이 태양 아래 숨길 수 없이 적나라했다.

“말도 안 돼.”

영준은 신음했다.

“저 사람들은.”

도연은 영준의 시선이 머무는 사람들을 확인한 뒤 천천히 말했다.

“모두 죽은 사람들이야. 혼령이지.”

등을 밀자 흠칫 떨린다. 그들은 건물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네가 길에서 본 것도 저런 혼령들이었을 거야.”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한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몸은 이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때 눈을 감고 볕을 쬐던 할머니가 이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가늘게 떠진 눈이 그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영준은 흐억, 하고 짧게 비명을 지르고 자기도 모르게 도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도연은 그를 돌려 세워 벽을 향하게 했다. 축축하게 젖은 등이 긴장으로 딱딱해진 것이 손바닥 전체로 느껴졌다. 이 덩치로 기절이라도 하면 곤란하다. 도연은 혼령들이 보이는, 그러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광경을 향해 눈을 고정시켰다.

“걱정 마.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되니까. 여기 골목 중에 해가 전혀 들지 않게 그늘진 곳 있어?”

“이, 있어.”

“앞장 서.”

그들은 골목 뒤쪽의 구부정한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가자 큰 건물에 가려 어둡고 축축한 공터가 나왔다. 도연은 멈춰 선 채 공터를 살피다 끝을 가리켰다.

“봐.”

거기에는 작게 웅크린, 회색의 혼령이 있었다. 영준은 처음에 그게 아주 어린아이의 혼령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그것은 기형적으로 작긴 했지만 분명 성인 남자였다. 엄청난 힘으로 사람을 사방에서 누르고 강제로 접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은 채 잡초가 우거진 공터 한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방금 본 이들이 죽은 자들이라 무서웠다면, 이건 다른 쪽으로 아주 싫은 예감이 들었다.

“저, 저건 뭐야?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영준은 자신도 모르게 소근거렸다.

“저건 큰 죄를 지은 사람의 영혼이야. 살인, 강간, 여러 사람들을 상처 입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형돼.”

혼령은 무어라 말하듯 입을 뻥긋거리고 있었다.

“저게 아무래도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들을 필요 없어, 뭐가 됐든 원망이나 저주 같은 흉한 소리뿐일 테니까.”

도연은 영준의 팔을 잡아끌었다. 한 걸음씩 공터에서 물러나 어느 정도 거리까지 왔을 때, 공터 끝에서 큰 쥐 하나가 나타났다.

“봐.”

영준은 숨을 죽인 채 쥐가 혼령의 근처로 천천히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쥐는 혼령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동물이 귀신을 볼 수 있다던 말이 진짜는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을 때, 돌덩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혼령이 움직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뒤틀린 얼굴을 쥐에게 향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입과 거의 하나로 보일 만큼 모인 눈이 쥐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가로로 늘어났다. 영준은 자기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몹시 기분 나쁜 생각이지만, 그것이 마치 웃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손을 뻗어 쥐의 머리를 붙들었다. 움찔, 하고 몸을 떤 쥐가 허공을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 이제 완전히 쥐의 몸 위로 올라탄 혼령은 몸의 반만이 보이는 상태로 쥐의 귀를 잡아당겼다. 쥐는 그가 조종하는 쪽으로 움직여 하수구 구멍을 찾아 자취를 감췄다.

“형태를 잘 봐.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을 띠지 못하는 것들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하는 건 바로 저런 놈들이야.”

해가 드는 거리까지 나왔을 때에야 도연은 입을 열었다.

“보통 혼령들은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크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 그냥 그 자리에서 자기가 죽은 이유를 고민하거나, 죽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있을 때 했던 일을 반복하거나 할 뿐이지. 하지만 저런 놈들은 달라.”

영준은 완전히 차가워진 손을 천천히 폈다 쥐었다 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한 짓에 대한 결과도 모두 남에게 돌린 채, 악의로 똘똘 뭉치고, 죽어서도 유난히 추한 의지만 남은 놈들이지. 혼자서는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면, 의식이 약한 생물에게 올라타. 가끔은 사람에게도. 악령이란 저런 걸 말하는 거야.”

“악령이라면.”

영준은 상처 입은 손을 들여 보였다.

“그럼 이것도……?”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

도연은 대답하지 않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중간중간 몸의 일부만 남은 무언가가 벽에서 솟아 있는 것을 목격했지만, 가능한 시선을 고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대다수는 사람이 죽어서 생기지만 가끔은 오래된 동물이 죽어서 변하는 경우도 있어. 마음이 약하거나 쓸데없이 눈이 열린 사람들이 아니라면 평생 모르고 살 수 있는 존재들이지. 하지만.”

도연은 말을 한 번 끊었다.

“세상에는 말 그대로 땅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생기고, 절대 없어지거나 죽지 않는 것들도 있어. 도깨비나 요괴에 대한 말은 들어 봤을 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어제 도로에서 보았던 놈처럼.”

거대한 그림자, 크게 울리던 구두 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던 검은 코트의 육중한 존재감은 지금 보는 혼령들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존재들이야. 나름대로의 육체가 있고, 살아가는 방식과 규칙이 있지. 재수 없는 곳이나 터가 나쁜 곳에서 만나 해를 입히는 혼령들은 너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거나 무당을 찾아가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해. 하지만 그런 놈들하고 만약 마주치게 되면…….”

도연은 나이프를 들었다. 잘 벼른 칼은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살고 죽는 건 순전히 자기 운에 달린 문제가 되는 거지.”

마당에 들어서기 전 영준은 앞서 걷고 있는 도연의 팔을 잡았다.

“넌 ……두렵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가 있지?”

“당연히 두려워. 끔찍하고, 무서워. 지금 이 순간도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서 뒹굴고 싶은 기분이야.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담담한 얼굴로 대답한 도연은 손을 뿌리치려 몇 번 팔을 움직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생각이야, 무서우면 포옹이라도 해줄까?”

창백하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영준은 발끈해 팔을 놓고는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도연은 잠시 멈춰 서 바람이 자신의 등과 목덜미를 스쳐 식은땀을 날리게 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팔이 저려 왔다. 시선을 내려 보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칼집을 꽉 쥐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자 영준은 마루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지금 네가 본 광경은 빙산의 일각이야. 여기서 그냥 물러나고 모르는 척 지내다 보면 더 이상 안 보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가혹해질 뿐이다. 도연은 달콤한 희망을 미끼를 먼저 던졌다.

“하지만 나하고 있으면 더 악화되기만 해. 내 주위로는 마치 피에 이끌린 상어들처럼 꼬여드니까.”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 내가 아까 말한 다른 한 사람, 자살했다는 사람은 내 친구였어.”

아니, 친구라고 생각했었지.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없다면 서서히, 빨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덜해질 거야. 그동안만 조심하면 돼.”

입술을 깨문 채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도연은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도박을 하기엔 잃는 게 더 많아. 아직도 내가 널 도와주길 원해?”

무거운 침묵이 거실에 가득 찼다. 영준은 이제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무릎만 노려보고 있었다. 뚝, 하고 땀방울이 떨어졌다. 땀을 닦으려는 듯 올린 손은 이내 머리를 움켜잡는다.

도연은 지금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정, 죄책감 같은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바늘처럼 그를 콕콕 찔러댔다.

한참을 말이 없던 영준이 이쪽을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물기가 어린 까만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쳐, 도연은 황급히 눈을 피했다. 이를 악문 영준은 잠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토할 것 같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준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게워내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리더니 물이 두 번 내려갔다. 그러고도 영준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도연은 그가 자리에 없는 지금 이대로 가는 것은 어떨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그만두었다. 나중 일을 생각한다면 결정은 확실히 하는 편이 낫다고 냉정한 자신이 속삭인다.

몇 분 후 화장실에서 나온 영준은 수건을 입에 댄 채 잔뜩 찡그린 채였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루로 온 그는 낮게 욕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바닥을 향한 시선이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서성였다.

그렇게 몇 분 뒤 영준은 창가에 두었던 배낭을 집어 들어 거칠게 도연의 가슴팍으로 던졌다. 배낭의 육중한 무게에 잠시 휘청거린 도연은 안도도 아니고 실망도 아닌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익숙하지만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그것은 빠르게 사라졌다. 인사 같은 것은 필요 없으리라. 가능한 빨리 사라져 주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잘 생각 했…….”

“필요한 물건 있으면 지금 꺼내.”

영준은 쓰린 배를 문질렀다.

“바로 병원으로 갈 거니까.”

“뭐, 뭐?”

배낭을 어깨에 메려던 도연은 깜짝 놀랐다.

“……전혀 몰랐었어.”

땀에 젖은 이마를 쓸며 영준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은 있었어. 동생이 MT에 다녀온 후로 집안이 항상 어둡고 축축했거든. 한여름에 해가 드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오한이 들곤 했지. 게다가 가끔 소영이 목소리 같지 않은 음성으로 나에게 말을 걸 때가 있었는데, 난 신경을 쓰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동생한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른 채 소중한 시간만 보낸 거야.

더 심해지기 전에 알았다면 다른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굿이든 뭐든 하는 데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싸웠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

“그건…….”

“내가 어떻게든 했어야 했던 거야. 나 같은 사람한테는, 안 보였으니까 증거도 없고,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했어야 했어. 물론 보이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솔직히 태어나서 이렇게 무서운 일은 처음이야. 하지만 지금 그만두면 절대 날 용서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혼자가 되어 버리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서울 거라고 생각해.”

말끝에 크게 숨을 들이킨다.

“그러니까.”

영준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배낭을 안은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도연의 팔을 붙잡았다. 놀랐지만 뿌리치지는 않았다.

“도와줬으면 해.”

뜨거운 손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진 놓아줄 기미가 없었다. 기세에 눌려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영준은 환하게 웃더니 안도감에 기운이 쭉 빠진다는 듯 무릎을 짚었다. 그리고 몸을 숙인 채로 고마워, 하고 말했다.

“이번엔 택시를 타고 가자.”

모자를 쓴 영준은 흐읍, 하고 각오를 다지듯 기합을 넣고는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현관을 나섰다.

도연은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을 돌려 달려나가는 반응을 기대했다. 친절하게 그를 인도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준의 결정은 그의 기준에서는 몹시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다소 불쾌하기까지 한 놀라움. 그것은 몇 년 전의 상처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저 현관을 열고 길을 나서면 아직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한 옛 친구가 서 있을 것만 같았다. 혐오와 경멸의 빛을, 그리고 동정의 미소를 지으며…….

* * *

여름을 대목으로 하는 흥겨운 댄스곡이 거리에 크게 울렸다. 청춘과 사랑을 노래하는 신나는 가사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옆을 보자 도연은 검은 선글라스 위에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수상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경질적으로 음악을 고르고 있었다. 보지도 듣지도 않기 위한 무장이었다. 순간 병실에서 목격한 휠체어의 기묘한 광경이 떠올랐다. 얼른 머리를 흔들어 떨쳐내었으나 진드기처럼 붙은 이미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긴 언덕을 따라 죽 나열된 택시의 행렬 끝은 응급실 앞이었다. 마침 유행하던 병 탓인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성이고 있었다. 도연이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옆에 섰다.

“내가 앞서 갈 테니 내 뒤만 보고 따라와. 계단으로 갈 거야.”

“계단으로?”

“보면 알아.”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그는 손을 저었다. 영준은 그냥 끄덕였다.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피해 도연의 귀에 얼른 말했다.

“왼쪽으로 돌아서 바로 직진이야.”

어깨를 움츠린 도연이 영준을 찌릿 흘겨봤다. 도연은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응급실 반대편으로 빠르게 걸었다. 뒤따르던 영준은 순간 충격으로 병원 밖으로 뛰어나갈 뻔했다.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무서울 정도로 많은, 투명하고, 몸의 일부분이 없거나 일부분만 남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하마터면 도연의 위치를 잃을 뻔 해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스스로 당부하며 허겁지겁 뛰었다.

앞서 가는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영준은 이것이 그가 말했던 ‘더 악화된다’는 뜻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디에도 눈을 둘 수 없는 어두운 길, 자신이 발을 들인 도연이 걷는 길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을 지나며 영준은 그가 왜 계단으로 가자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열리는 엘리베이터마다 이미 만원이었다. 갈 곳 없이 병원을 헤매던 이들이 그 좁은 사각의 상자 안에서 빼곡히 서 있었다. 수술 중 숨을 거뒀는지 어떤 이는 피를 흘리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사람들은 우르르 밀려들어 간다. 누구 하나 불평의 말을 하는 이 없었다.

소영을 면회하기 위해 수없이 오르내리던 엘리베이터다. 그러나 앞으로 두 번 다시는, 그것이 병원이든 아파트가 되었든 탈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알 수 없을 광경들이 여기저기에서 돌발적으로 펼쳐진다. 서둘러 지나치기 위해 노력한 응급실 또한 그랬다. 참지 못하고 흘낏 곁눈질을 한 그곳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게 했다.

복도, 대기실 할 것 없었다. 환자복을 입은 이와 미처 입원조차 못 하고 떠난 이들이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처럼 사방을 더듬으며 떠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 되지 못한 외침들이 쩌렁쩌렁했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비명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빠르게 걷는 것뿐이었다.

비상구 계단을 찾은 도연이 뒤를 향해 크게 물었다.

“몇 층이야?”

“10층.”

영준은 정신없이 대답했다.

“몇 층?”

“10층이라고.”

어깨를 친 도연이 자신을 보게 하며 다시 물었다. 그제야 영준은 그가 자신의 입술을 읽고 있음을 알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음악이 큰소리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단숨에 2~3칸씩 뛰어넘어 계단을 올랐다. 조용하고 쓸쓸한 비상구였지만 이곳이 차라리 편안했다. 그러나 4층을 지나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육체적 피로 탓은 아니었다. 영준은 중학생 때부터 운동을 해 체대를 다니는 육체파였다. 이 정도로 지칠 정도의 체력은 아니었다. 문제는 압박감과 시선이었다. 지나온 층수 저 아래에서 누군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앞으로 가야 할 위에서는 내려 보고 있었다. 그들은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이쪽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공기는 끈적끈적하여, 목덜미에 축축한 혀처럼 들러붙는다.

10층에 오르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복도로 뛰어나왔다. 나온 곳은 4방향으로 뻗은 복도의 가운데였다. 안내 데스크에서 차트를 정리하던 간호사들 몇이 이쪽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 큰 남자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들어오자 놀란 듯했다.

소영의 입원실에 가는 중 도연은 연신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따라오는 것을 염려하는 듯한 태도에 영준도 덩달아 두리번거리다 옆구리를 찔렸다. 그는 츳, 하는 혀 차는 소리를 내고는 선그라스 너머로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지나가던 간병인들이 그들을 대단히 수상하단 눈으로 흘기고 지나간다. 병실 앞에 도착한 영준은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전에 잠깐 머뭇거렸다.

“저기, 놀라지는 마. 동생이 가끔…… 자해를 해서 손이랑 발을 묶어놨더라고.”

잠깐 눈이 커졌던 도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섰다.

도연은 열리는 문 사이로 밀려오는 옛 기억과 마주했다.

-교복을 입은 소년이 응급실로 뛰어들어오자, 여기저기에서 깜짝 놀란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하얀 셔츠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땀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은 연신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다가온 간호사 한 명이 소년의 어깨를 잡자마자 힘이 빠져 바닥에 드러눕는다. 눈이 풀린 채 헐떡이는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애원의 소리가 새어나온다.

거너에 실려 가면서도 소년은 자신의 몸 위로 허리를 굽히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손을 휘저어댔다. 제발 누군가, 나를 도와주세요, 나를 낫게 해주세요, 하고 외치면서…….

15살의 봄에 자신의 발로 스스로 병원에 뛰어들었던 당시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도연의 뇌리에 선명히 박혀있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악몽 같이만 느껴지던 어린 시절. 도연은 자신이 정신병이라고 믿고 싶었다. 병이라면 고칠 수 있을 테니까. 중학교에 들어간 직후 한계까지 밀어붙여져 결국 자기 발로 병원에 들어가 입원을 요청했다.

보호자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급한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자해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갇히고 묶이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여자의 하얀 손목이 구속구에 묶인 채 늘어져 있다. 야윈 몸 위에 덮인 이불은 눈부시게 하얗고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게 얇다. 그녀는 파리한 입술 사이로 가늘게 떨리는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다. 도연은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금 침대에 묶여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소영아, 일어나봐.”

낮은 목소리로 여동생을 깨우는 영준의 손길이 부드럽다. 그는 큰 손에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여자의 뺨을 쓰다듬는다. 그러나 단단히 감은 눈은 떠질지를 모른다. 도연은 문가에 선 채 싸늘한 냉기가 가득한 병실을 살펴보았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무리해서 넣었을 것이 분명한 2인실은 하루의 입원비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니?”

철제 의자를 끌어 옆에 앉은 영준은 익숙하게 링거 병의 조절을 확인한 뒤 동생의 가느다란 손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마른 나뭇가지 같이 가느다란 손가락은 꽉 쥐면 그대로 부서질 것 같다. 바늘에 멍든 팔은 여러 번 보았음에도 눈에 들어올 때마다 시큰거린다.

도연은 아무리 해도 깨지 않는 동생의 옆에서 불안해하는 영준의 팔을 잡아끌었다. 눈짓으로 잠시 비키라고 하자 그는 천천히 문을 등지고 섰다. 도연은 소영의 머리맡에 서 그녀를 살펴보았다. 병적일 정도의 핏기가 없는 안색과 여기저기 난 상처들이 위태롭게 보인다. 몸을 파고드는 것 같은 냉기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도연은 잠시 망설이다 소영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의 눈이 거짓말처럼 떠졌다. 까만 동공은 마치 약을 먹은 사람처럼 비정상적으로 활짝 열려있었다. 놀란 도연이 뒤로 물러나려 하자 소영이 고개를 휙 돌렸다. 정면으로 마주한 얼굴 가득히 미소가 떠오른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듯, 오래 기다렸던 이를 만나기라도 했다는 듯 다정한 환한 웃음이었다. 그리고는 올려보는 얼굴 그대로 그녀가 변하기 시작했다.

야윈 뺨에 천천히 살이 올랐다. 둥글게 변한 얼굴에 이어 온몸도 부어올랐다. 끝없이 부푸는 그녀의 얼굴은 곧 눈과 코가 묻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헐렁하던 옷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순식간에 차오른 흐물흐물한 피부는 살이 쪘다기보다는 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입처럼 보이지도 않게 된 입 사이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쏟아졌다. 흐물거리는 피부와 거대하게 부어오른 몸, 소영은 방금 물에서 건져낸 오래된 익사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등에서부터 물이 새어나왔다. 침대를 푹 적시며 흐르는 물의 양은 점점 많아졌다. 똑, 똑 소리를 내며 병실 바닥에 흥건하게 떨어진 물은 검고 악취가 풍겼다. 신발을 적시는 물을 피해 뒤로 물러나는 도연을 향해 소영에게서 웅웅 울리는 듯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민요 같은 가락을 지닌 노래였다.

“으으으으이이이이이 으으이이이 으이으 으으이 이리온 모다 나와 함께 헤엄치고 있어 모다 우리 함께 있어 내 다솜도 우리 아고도 이리오렴 생은 생이되 거름거름 더훈 날만 힘들지 이리온 우리 아고…….”

노래에 맞춰 그녀의 배에서부터 긴 손이 튀어나왔다. 반투명한 손은 무언가를 찾듯이 침대 주변을 휘젖기 시작했다. 끈적하고 습한 기운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온몸에 휘감기듯 비릿한 민물 냄새가 안개처럼 바닥에서 차올랐다.

“나가!”

도연은 영준을 밀어붙였다. 놀란 영준이 뭐라 하기도 전에 도연은 기다리지 않고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부터 수십 명의 음성이 겹쳐져 울리며 따라왔다. 거대한 무리를 이룬 파리 떼처럼 귀를 막아도 파고드는 소리에 순식간에 시야가 까맣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던 도연은 복도의 끝 벽에 있는 힘껏 쾅 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지는 도연을 엉겁결에 받은 영준까지 나뒹굴고 말았다.

“……연, 김도연!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부르는 소리가 끊기듯 이어진다. 뿌연 시야 앞에 놀란 얼굴의 남자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봤다고 어느새 익숙해진 얼굴에 반가운 기분이 든다. 뭐에 저리 놀라서 수선을 떠는 걸까?

멍하니 몸을 일으키자 입안 가득 피 맛이 느껴진다. 혀로 더듬어보자 입술이 찢어지고 아랫니가 하나 흔들거렸다. 순식간에 현실이 얼굴을 들이민다. 도연은 급히 주머니를 뒤졌지만 빈손만 잡혔다.

“내 MP3……?”

복도 저편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앞에 선 간호사 하나가 부서진 작은 기계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저거 없으면 안 되는데…….”

“일단 일어나봐.”

영준의 손을 잡고 일어선 도연은 비틀거리며 비상구를 향해 걸었다. 간호사에게서 부서진 MP3를 받으려던 영준은 깜짝 놀라 도연의 뒤를 따랐다.

“잠깐만, 너 그러고 어딜 가려고 그래?”

“나가야 돼. 여기서 나가야.”

“하지만……!”

계단 앞에서 그는 동생에게로 돌아가고 싶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본 것 같았다. 오직 자신만이 보고 들은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조금 놀랐다.

“지금은 병실에 가지 마.”

“왜?”

“병원에서 나가면 말할게.”

영준은 답답한 마음에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곧 알았어, 하고 뒤를 따랐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이 자꾸만 꼬인다. 몸이 급한 마음을 못 따라가서였다. 구르듯이 계단을 내려온 둘은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정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도연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쉬지 않고 달렸다. 내리막길을 정신없이 내려와 병원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야 겨우 발을 멈춘 도연은 그대로 허리를 굽힌 채 욱 하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웩웩거리고 난 뒤에야 쓰러지듯 인도 한구석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진 도로에 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었다. 붉고 주황의 빛이 긴 선을 끌며 서서히 몰려드는 어둠을 물들였다.

도연은 씩씩 숨을 몰아쉬며 입에 남은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잠깐 자리를 비웠던 영준이 슈퍼에서 사 온 생수병을 내밀었다. 입을 헹구고 뱉어내는 것을 몇 번 반복하자 조금씩 진정이 되어갔다. 도연의 옆에 앉은 영준이 모자를 벗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불안하고 겁먹은 눈으로 도연을 바라보았다.

“뭐였어? 왜 난 아무것도 안 보인거지…….”

“…….”

“뭐였는데 그래!”

“동생이 MT갔던 데가 한탄강이라고 했지?”

“그래.”

“거기서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어.”

“무슨 뜻이야?”

영준은 몸을 돌렸다.

“익사한 영들이 주렁주렁 달라붙었단 말이야. 그것도 아주 악질로.”

말문이 막힌 영준은 더듬거리며 익사? 하고 되물었다.

“그래, 긴 세월이 사람이었을 때의 것들은 다 앗아가고 남은 건 원망과 후회 같은 찌꺼기만 남은 자살한 영들. 기회만 닿으면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려고 혈안이지.

심약한 사람한테 그 소리는 독이야. 순식간에 파고들어서 자기를 잃게 만들어 버려. 네가 이 이상 나빠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보다 더 악화시키는 거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결국에는 스스로 뛰어들 때까지.”

도연은 새카만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말했다.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잦아들었다.

“그게 왜 나한테는 안 들렸던 거지?”

“죽고 싶다는 생각해본 적 있어?”

“그거야 누구나 한 번쯤은…….”

“아주 절실하게?”

“절실까지야……. 없어.”

“좋겠네.”

부정의 말에 도연은 미처 숨기지도 못하고 부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그럼 넌 소영이한테 씌웠다는 귀신들을 봤어?”

“그래.”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게 나아.”

그가 쓸데없는 충격을 받길 바랄 정도로 비틀린 인간은 아니었다.

“그럼…….”

영준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짝 다가앉았다. 도연은 움찔 몸을 뒤로 뺐다.

“익사든 뭐든 결국에는 귀신이다 이거잖아? 유명한 무당이나 퇴마사 같은 사람들을 찾아서 굿이라든가 뭐든지 하면 나아질 수 있는 종류의 문제인 거야? 당신은 그 사람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금방 알겠지.”

영준은 희망에 차 물었다. 도연은 순간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니. 보통 악귀라면 진짜 무속인을 찾아가면 어떻게 되겠지만 네 동생이 걸린 건 다른 문제야. 그건 더 이상 사람의 영이라고 할 수도 없이 돼 버린 놈들이야. 사람이었을 때의 기억도 이름도 잊었을 정도로 오래된 영들이지.

서로를 구분할 육신이 없이 혼만 남아 엉겨있던 탓에 하나의 살아있는 뭣처럼 되어버렸어. 그리고 내 경험상 그 사람들은 저런 것들은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어. 말했었지, 그렇게 표현하기는 싫지만 세상에는 요괴나 도깨비 같은 것들이 있다고.”

“그럼……?”

“만약 동생이 저걸 달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강바닥 밑에서 뭐가 되도 되었을 거야. 오십 년 정도만 더 지나가면 나름대로 형태도 갖췄겠지. 도대체 어쩌다 저런 게 붙게 된 건지…….”

영준은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도연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짐작이 갔다. 때문에 말을 이어가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어떤 각오가 필요했다.

“……저런 놈들은 물이 집이야. 동생 몸에 들어있는 건 그 일부분일 뿐이지. 본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 그걸 찾아서 없애지 않으면 동생은 곧 죽을 거야. 죽고 난 뒤에는 저놈들의 일부가 돼. 그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일부가 된다고?”

영준은 그의 말에 크게 놀라지 않는 자신이 싫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영의 상태는 심각했고, 그게 빙의가 되었든 희귀병이 되었든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런데 마신 물이 모두 폐에 가서 차고, 그로 인해 죽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병원비는 한계에 다다랐고, 그보다 소영의 체력이 먼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부모님의 사고 때에는 충격과 슬픔이 먼저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서울 정도의 무력감이 있었다. 또 다시 그런 상실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도연의 말은 차라리 희망에 가까웠다.

“찾아내서 없애버리면, 괜찮아지는 거야?”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야.”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 그럼 해야지!”

“그거야……."

분명치 않은 대답에 영준이 조바심을 낸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야.”

중얼거린 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자.”

도연은 어두운 밤거리를 불안하게 살피며 말했다. 빈 택시 한 대가 둘의 옆으로 느리게 서행했다. 영준은 차 문을 열고 도연이 먼저 타게 했다.

“우이동이요.”

차가 교차로를 지나 세 개째의 신호등을 지날 때까지 영준은 창밖으로 병원의 불빛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밤 영준은 혼자 마루에서 자겠다고 하는 도연의 바로 옆에 굳이 자신의 이불을 끌고 와 깔았다. 질색을 했지만 밤에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밀어낼 수도 없었다. 싫은 티를 내는 도연에 영준도 결국 조금 화가 난 듯 이불을 확 덮고 누웠다.

도연은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았다. 바짝 붙어 돌아누운 등은 불규칙하게 숨을 내쉰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익숙한 불면에 도연은 그냥 눈을 감은 채 여느 때처럼 밤의 거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떠돌이 고양이의 울음, 도로를 지나는 육중한 자동차,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느리게 쏟아내는 한탄의 말들……. 그리고 한숨 소리. 숨죽인 한숨이 사이를 두고 흘러나온다.

도연은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그러나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좋은지는 알 수 없었다. 위로? 충고? 응원?

도연은 자신을 스스로 돌보면서 살아온 사람은 알아볼 수 있었다. 혼자 살아야 하는, 혼자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면 몇 가지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책임지고, 가장이 되려 하는 사람의 무엇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병실에서 그가 동생을 대하는 태도에는 진짜 애정이 있었다. 진짜 애정, 도연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마음은 알지만, 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도연은 사실 그의 마음이 어떨지 정말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의 앞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런 생활을 감수하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자문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저기.”

불을 끄고 40분쯤 지났을 무렵, 뒤척이던 영준이 말을 걸었다.

“자?”

도연은 얼른 눈을 감고 잠든 척 숨을 느리게 조절했다.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영준이 몸을 굴려 가까이 다가왔다. 기척에 참지 못하고 눈을 뜨자 깜짝 놀랄 정도로 얼굴이 근접해 있어서 도연은 왁, 하고 일어났다.

“뭐하는 거야?”

“자나 하고."

“대답 없으면 자는 거지!”

영준은 엎드린 채 팔을 베고 비스듬하게 누웠다.

“오늘이 며칠이지?”

“12일.”

“아직 그것밖에 안 됐나? 한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데.”

심적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긴 하루였다.

“……병원에서.”

한참 만에 영준이 다시 말을 꺼냈다.

“뭐?”

“병원에서 봤던 사람들 말이야.”

“사람들?”

“그러니까, 죽은 사람들.”

“아.”

“그 사람들은 왜 거기에 있는 거지?”

“거기서 죽었으니까.”

도연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왜 아직도 그 병원에 있냔 말이야. 더 이상 병원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잖아? 뭔가 더, 보고 싶은 사람이나 가고 싶은 장소가 있을 텐데, 왜 그런 곳에 계속 있는 걸까.”

“……그거야 어쩔 수 없어.”

도연은 똑바로 누운 채 말했다.

“시간이 필요하거든. 인간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야. 그러다 때가 되면 각자 떠나게 되겠지.”

“어디로?”

도연은 살짝 인상을 썼다. 밤이건 낮이건 큰 상관은 없지만 깊게 나누고 싶은 화제는 아니었다.

“저세상, 천국, 지옥, 내세, 뭐가 됐든지! 그런 게 있는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그대로 머무는 경우도 있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조차 모를 때도 있고.”

“모른다……?”

“사고의 충격, 너무 오래 지난 시간, 기억해야 할 사람이 없고 기억해줄 사람도 없어서. 몰라.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 사연 없는 무덤 없다는 말 몰라? 어쨌든 자기가 죽은 곳이나 알고 있는 유일한 장소에만 머물면서 죽기 전에 반복했던 일을 되풀이 하는 경우가 많아.”

영준은 한참 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어둠 속에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을 해주면 어때?”

도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죽었다고, 이제 그만 좋은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을 해주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왜 그래야 하는데?”

“왜?”

영준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고통 받고 있는 거잖아, 죽고 나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고.”

“이 도시에서만 하루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고 있어. 아까 그 병원에 있는 것만 해도 아마…… 족히 백 오십은 넘을걸. 서울에 병원이 몇 개인지 알아? 네가 그 사람들을 다 찾아가서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

“꼭 모든 걸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세상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눈앞의 도움마저 거절해야 할까?”

“네가 말하는 건 그동안의 세상의 이야기야.”

“…….”

“이제부터는 내가 살아온 세상의 이야기야. 그게 앞으로 네 세상이 되기도 하겠고.”

냉정한 말은 딱 자르듯 차가웠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정말 큰코다치고 싶지 않으면 선을 긋는 게 좋아. 혼령이 산 사람에게 바라는 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때로는 자기들도 모를 때가 있지. 다짜고짜 몸을 빼앗겠다고 덤비는 경우도 허다해.

동정심에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위험할 수 있어. 넌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일단 뛰어드는 타입이지? 그런 무모한 행동의 끝이 대부분은 동반 익사라는 걸 기억해.”

“하지만 만약 물에 빠진 사람이 너나 나라도 그 순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네가 구하려고 하는 게 사람인지 물귀신인지 모른다고 한다면?”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

“나라고 같은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야.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아직 경험이 적을 때, 시도해봤었어. 어쨌든 사람이니까 말을 걸고, 친절하게 대화를 하면 통할 거라 생각했지. 흔히 하는 말처럼 한을 풀고 못다 한 소원을 이뤄주고…… 다 개소리야. 내 동정의 대가가 뭐였게? 자길 알아본다는 걸 알자마자 근방의 놈들이 다 몰려와서는 내 몸으로 들어오려고 했어.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고인 물에 얼굴을 쳐 박힌 채 죽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 귓가에 들린 목소리라곤 죽어라 뒈져라 밖에 없었지. 그것도 대화라면 대화였겠지만.”

아연실색한 영준의 표정은 볼만했다. 도연은 더 독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와 그가 왜 애초에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짐작이 가 생기는 연민 사이에서 잠시 망설였다. 사고로 죽은 무수한 자들이 병원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것이 교통사고였다.

“그래도 역시 뛰어들어서 같이 허우적대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어. 하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알 정도로 대책 없는 놈이야 너? 지금 느끼는 양심이나 동정 같은 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집어치워 둬. 그 대가가 다소의 욕설이나 폭력 정도라면 모를까 지금 걸려있는 건 목숨이라는 걸 잊지 마.”

“널 죽이려고 했다고?”

“그래.”

“……모든 죽은 사람들이 다 그래?”

영준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도연은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던 차가운 손을 떠올렸다. 그래,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는 아니야.”

도연은 헛기침을 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빨리 사라지는 것 같았어. 누군가 그리워하고 기도하면서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들 말이야. 그렇다고 병원에 있던 이들이 다 버려진 사람들이란 말은 아니야.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잊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필요도 있는 거고,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알아야 할 필요도 없어.”

집에 돌아온 그가 방문을 모두 열고 혹시나 하는 눈으로 그리운 얼굴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들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과, 곁에 있음을 ‘알면서’ 사는 것은 다른 일이야.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 도연은 혀를 깨물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상대는 들었는지 아닌지 대꾸도 없었다. 옆을 흘깃 보자 영준은 팔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우는 건가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문득 쓸데없는 소리를 잔뜩 지껄이고 난 뒤의 자기혐오 같은 것이 밀려왔다.

“잠이 안 오면 눈이라도 감고 있어.”

“그래.”

쏘아붙이는 말에 선선히 대답을 한 영준이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 위를 창백한 손이 부드럽게 토닥인다. 도연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눈을 감은 아들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중년의 부부가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듯 웃는다. 슬픈 눈으로 아들을 쓰다듬던 그들은 곧 어둠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멋대로 시야로 뛰어들면서, 정작 가장 그립고 보고 싶은 이들은 항상 한 발짝 멀리 있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이라고 해도 세상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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