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24)

5

안개가 있던 날씨는 늦은 오전에 들어서부터 개기 시작했다. 도연은 서울 외각으로 들어서자 운전을 바꿀 것을 요구했고, 그 뒤로는 계속 보조석에서 야구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잠을 잤다.

평일이었지만 도로에는 의외로 차가 많아 생각만큼 속력을 내기는 어려웠다. 마음은 급한데 여건이 따라주지 않자 잡념만 많아진다. 더구나 시퍼렇게 자란 풀과 밭들 사이에서 가끔씩 움직이는 것들에 신경이 쓰였다. 대부분은 로드킬 당한 너구리같은 작은 짐승이었다.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도로를 건너려 하거나 풀이 우거진 곳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다녔다. 다행히 사람의 영처럼 보는 이를 두렵게 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비정상적인 광경인지라 이상한 악몽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현실감, 현실감을 찾아야 해. 영준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조심스럽게 그들을 피해 운전했다. 중형차 한 대가 쌩 하고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방금 전까지 도로 이를 배회하던 너구리 몇 마리가 터진 비눗방울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자?”

“……눈 감고 있으면 자는 거라니까.”

“자는 거 아니면 일어나봐.”

“일어나서 뭐하라고.”

툴툴대면서도 도연은 의자를 당겨 몸을 일으켰다. 모자를 벗은 이마에 땀에 젖은 앞머리가 살짝 달라붙어 있다.

“뭐든 좋으니까 얘기 좀 해봐.”

“졸리면 라디오를 틀어.”

“졸려서가 아니야. 그냥, 어쨌든 아무 말이나 해봐.”

“무슨 얘길 하라고?”

“글쎄…….”

영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친구 이야기는 어때.”

“무슨 친구?”

영준은 붕대로 감은 손을 들어 보였다.

“그 죽었다던…….”

“별로 얘기할 거리도 없어. 옛날에 알던 사람이었고, 우연히 너처럼 보면 안 될 것들을 보게 됐지. 그리고 못 견뎌 하다 자살했어. 끝.”

“몇 살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해?”

“나 하고 비슷한 상황이었다면서. 안 궁금하면 그게 이상하지.”

아무 대답이 없다. 옆을 보자 도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중학생이었어.”

“어렸네. 친했어?”

“별로.”

“친구였다면서.”

도연은 대꾸 없이 열린 창문에 팔을 올리고 머리를 기댔다. 정신없이 부는 바람에 앞머리가 흩어져 얼굴에 부딪혔다.

“……그렇게 생각했었지. 정확히 말하면 친구는 아니야. 그냥 동급생이었어.”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물어도 돼?”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 잠도 못 자게 귀찮게 했거든.”

높낮이도 없는 어조로 툭 던진 도연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팔짱을 끼었다.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였다.

영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라디오를 틀었다. 조금 울컥 하긴 했지만, 도연을 상대하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귀에 익은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몇 개의 시시껄렁한 사연과 농담이 지나갔을 무렵 도연이 툭 던지듯 말했다.

“너 말이야.”

깔깔대는 진행자의 요란한 웃음이 터졌다. 영준은 라디오 볼륨을 얼른 줄였다.

“어.”

“아니다.”

“말 해봐.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부탁이니 뭐든지. 진짜야, 내가 운전하다가 도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 뭔가 집중할 게 필요하다고.”

영준은 흠칫 놀라며 방금 창에 부딪히며 사라진 작은 새의 영혼을 가리켰다

“너 전에는 귀신이니 이런 거 본 적 없지?”

“없지.”

“그럴 줄 알았어. 넌 좀 둔해 보이거든. 아마 흉가 같은데 데려다 놔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걸. 눈앞에서 뭐가 지나가도 모르고 헤집고 다니겠지. 본인은 모르니까 속은 편하겠네.”

“……그게 나쁜 거야?”

“넌 머릿속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아.”

가시 돋친 말에 영준은 김빠진 소리로 웃었다.

“갑자기 왠 시비야? 그래도 뭐,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 말 몇 번 들어봤어. 특히 내 동생한테. 돌덩이는 처음이지만, 심심한 놈이니 지루하니, 애늙은이 같은.”

큰 키에 다부진 몸, 멀끔한 얼굴을 보고 다가온 사람들 중 꽤 많은 이가 그랬다. 생각보다 보수적이네, 좀 더 다른 걸 기대했는데.

“그런 뜻은 아니지? 알아. 너무 그러지 말라고. 그래도 나 정도면 선방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원래 눈에 보이는 거 말고는 전혀 안 믿었어. 사주나 타로 같은 거 다 사기라고 욕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영준은 쓰게 웃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러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동생하고 크게 싸운 적이 있어. 대판 싸워서 울고불고…… 걔가 안 그렇게 생겨서 성격이 있거든. 집에 있는 현금을 싹 들고 나가서 일주일인가를 안 들어왔어.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날 뭐라고 해놨는지 몰라도 아무도 상대도 안 해주더라. 어디 갔는지는 커녕 말도 안 받아주더라고. 그쯤 되니까 나도 화가 나서 그래, 네 인생 네 마음대로 해봐라. 나도 이제 지겹다 뭐 그랬지.”

트럭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영준들이 탄 차를 추월했다. 움찔한 도연이 몸을 운전석 쪽으로 기울였다. 영준은 차의 속도를 살짝 줄여 주었다. 몇 대의 트럭이 줄지어 그 뒤를 따라 고속도로를 질주해 사라졌다. 도로 한산해졌을 무렵 차는 다시 제 속도로 돌아왔다.

“아예 그렇게 맘을 잡으니까 의외로 편하더라고. 누군 좋아서 참고 사나, 나라고 힘든 게 없는 줄 아나……. 주변 사람들은 죄다 나더러 네가 잘해야 한다, 네가 가장이다. 네가 동생을 잘 챙기고, 힘들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뭐 이런 소리나 해대고. 전에는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는데 정작 그러니까 아 나도 아직 미성년자인데 나더러 뭘 더 어쩌라고 하게 되더라고.”

도연은 아무 대꾸도 없었지만 더 이상 자는 척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일주일 만에 동생이 돌아왔는데, 한단 소리가 다짜고짜 돈이 필요하대. 이천만 원이 당장 필요하다나. 무슨 소린지 상상이 가? 일주일 동안 가진 돈으로 서울에 있는 점집이란 점집은 다 다닌 거야. 처음에는 그냥 심란해서 내 인생이 왜 이러나 하고 갔었대. 그런데 거기서 죽은 부모님이 이승을 못 떠나고 배회하고 있더라는 거야. 애초에 사고도 조상 묏자리 문제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고, 지금도 초췌한 모습으로 내 동생을 따라다니고 있다고. 그래서 굿을 해서 저세상으로 보내주질 않으면 계속 그렇게…….”

영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생수병을 들어 물을 마셨다. 미지근해진 물은 희미하게 거품을 내고 있었다.

오래전 기억들이 가끔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 그리 가슴이 아픈 것도 아니지만 말이 목에 걸린 것처럼 덜컹거리며 튀어나온다.

“……동생을 끌고 그 점집이라는 데를 갔어. 난 시장통에 있는 궁상맞은 쪽방 같은 걸 상상했는데 웬걸, 오 층짜리 건물에 있는 으리으리한 오피스텔이더라고. 사십 평도 넘어 보이는 거실에 십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할 거 바글바글……

그거 알아? 세상에는 비서를 두는 무당도 있어. 웃기지? 너같이 진짜는 훔친 차를 타고 다니는데 말이야. 어쨌든 밀고 들어가서 가장 안쪽 방에 갔더니 그럴싸하게 차려놓은 방에 웬 남자 하나가 앉아있더라고. 생각보다 젊은 놈이었어. 점을 보는 중이었는지 모녀를 앞에 앉혀놓고 뭐라 뭐라 하고 있었어. 두 사람은 울고 있고.

동생한테 이놈이 그랬냐고 했더니 울기만 하더라. 내가 창피했나 봐. 더 볼 거도 없이 멱살을 잡고 끌어다 팼어. 어디 네가 말하는 신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죽은 사람을 빌미로 돈을 버는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고.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금방 경찰이 오긴 했지만 어쨌든 딱 죽기 직전까지 패줬어.”

“……그래서?”

영준은 흐흐, 하고 웃었다.

“그 일로 팀에서 잘릴 뻔했지. 난 야구부였거든. 코치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 내가 불쌍한 놈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대로 쫓겨났을 거야.

근데 진짜 웃긴 건, 내가 그 뒤로 다른 점 집을 찾아갔다는 거지. 이건 비밀이다. 내 동생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그 헛소리가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도 같은 말을 하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서, 다녔어. 여기저기.

그때마다 말이 미묘하게 달라지더라. 때로는 조상 묘 때문일 때도 있고, 우리 조상 중에 신기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둥, 자살한 친척이 없냐고 하지 않나, 아니 대한민국에 자살한 사람 하나 없는 집안이 있을까? 하여튼 결론은 다 하나였어. 돈을 내고 굿을 하라고. 돈 돈 돈…….”

영준은 시니컬하게 웃었다.

“절이든 교회든 그거 하나는 같더라, 돈 말이야. 그렇게 대단하고 신통력 있는 것들이 돈 만큼은 마음대로 안 되는 거야! 그 후로는 아무것도 안 믿었어. 세상에 하느님이 어디 있고, 부처님이 어디 있어. 신이고 귀신이고 그런 거…….있다면 꿈에라도 한 번은 나와 줬어야지. 남들은 잘만 꾼다는데 정작 동생하고 난 꿈 한 번 꿔 본적이 없어. 다 웃기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일이 참 알 수가 없어.”

흠, 하고 도연은 대답인지 한숨인지 모를 짧은 반응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뭐라 긴 대답을 했으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도연은 좋은 청자는 아니었지만 자신도 좋은 화자는 아니니 괜찮았다. 가슴 한켠에 남은 무거운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말 잘하네. 내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었던 것 아니야?”

“난 항상 묻기만 했잖아. 왜, 지루해?”

“지루하지, 대단한 얘기도 아니구만 장황하게.”

뚱한 대답에 영준은 웃어버렸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받아 줄 만한 상대로 김도연 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왠지 한결 편해진 것도 같았다.

“웃지 마, 돌머리.”

도연은 다시 모자를 눌러 쓰고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누워버렸다. 영준은 라디오 채널을 돌려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방송을 찾아 볼륨을 약간 올렸다.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자 뭐가 못마땅한지 도연은 또 발로 좌석을 쿵, 하고 걷어찼지만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을 하지는 않았다.

* * *

“왜 불렀어?”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질 무렵에서야 나타난 그는 약속 시간에 1시간 이상 늦었다는 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가 자신과 도연이 함께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될까 걱정되는지 사방을 살피고 난 뒤

“빨리 말해.”

라고 재촉할 뿐이었다. 축구부에 들어 운동을 한 덕에 단경호는 1년 새에 키가 훌쩍 크고 피부가 타 벌써 꽤 남자 냄새를 풍기는 외모로 변해 있었다. 도연은 갑자기 자신 혼자 어린애로 남아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불러낸 이유도 아무 가치 없는 유치한 투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들어야 했다.

“왜 그랬어?”

“뭐가?”

“왜 그랬냐고.”

똑바로 묻는 시선에 단경호는 잠시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뭐야, 여자애처럼 징징대려고 불러낸 거야? 난 또 네가 맞장이라도 뜨자는 줄 알고 다시 봤었는데.”

“…….”

“할 말 없으면 간다.”

뒤돌아서던 단경호가 도연의 얼굴을 흘깃 보더니 안색이 바뀌었다.

“재수 없게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넌 그게 문제야, 알아?”

“뭐가?”

그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것을 쏟아내는 듯 와륵 화를 냈다.

“재수가 없다고, 네 눈이! 사람을 꼬나보는 게 꼭 고양이 새끼 같아서 짜증난다고! 솔직히 처음에 네가 반 애들에 대해서 줄줄이 설명할 때 얼마나 소름끼쳤는지 아냐? 왕따같이 만날 혼자 있는 놈이 그런 건 어떻게 다 알았어?”

“내 기억에 넌 꽤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단경호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애들이 너보고 뭐라는 지 알아? 귀신이 씌었대. 너 무당집 아들이라며?”

“그건 네가 하고 다닌 말 아니었어?”

“……난 그냥 네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해줬을 뿐이야.”

불편한 표정으로 대꾸한 그는 잠시 신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어차피 비밀이란 말도 한 적 없잖아?”

언제나 단정하고 머리 좋아보이던 얼굴이 그렇게 비열하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화가 났는지 얼굴이 빨개진 단경호가 쏘아붙였다.

“따질 거 있으면 따지고 아니면 꺼져. 내가 어쨌든 말든 솔직히 뭐 바뀐 거라도 있어?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학교생활 지옥 아니었어? 오십 보 백 보잖아.”

“그걸 물은 게 아니야. 그리고 이 정도로 지옥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여유 있는 척하시네. 그럼 뭔데?”

도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

“친구라고 했던 말, 거짓말이었어?”

안 된다, 입 밖에 내고나니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최악이었다.

단경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의 질문에 놀랐는지 잠시 말문이 막혀있던 그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너, 겨우 그런 걸 물으려고…….”

실실 흘리던 웃음은 곧 폭소로 변했다. 그는 배가 아파 죽겠다는 듯 허리까지 숙이고 깔깔 웃었다. 도연은 떨리는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너 나 좋아하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애들이 그러더라. 네가 날 보는 눈이 이상하다고. 꼭 여자애처럼 본다고 말이야. 너 호모야?”

“너……!”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간다. 호모에 무당새끼하고 말 섞고 싶지 않거든.”

비웃음이 남은 얼굴이 돌아선다. 단경호의 등이 몇 걸음 멀어졌을 때였다.

“내가 어떻게 반 애들에 대해서 알았는지 궁금해?”

“뭐?”

돌아보는 눈에는 희미하게 호기심과 두려움이 빛난다. 태양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광채가 주황빛으로 단경호의 이마와 목덜미를 빛냈다. 서서히 땅끝으로 물러나는 저녁은 곧 밤을 불러올 것이다.

“알려줄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 * *

덜컹, 하고 차가 흔들렸다. 갑작스런 요동에 도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코앞에 영준의 얼굴이 있었다. 코와 턱이 스치듯이 옆을 지난다. 의자에서 뛰어오르듯 놀란 도연이 숨을 들이켰다.

“깼어?”

“무, 뭐 하는 거야?”

“뭐가?”

영준이 그대로 손을 뻗어 보조석 앞에 있던 물티슈를 집었다. 그리고 한 장 뽑아 이마와 목을 닦았다.

“쓸래?”

“……됐어.”

물티슈를 몇 장 더 뽑은 영준은 도연의 무릎 위로 던져 주었다. 도연은 이마의 땀을 슥 닦아냈다.

“마침 딱 맞게 일어났네. 길이 엉망이야 여기.”

도연은 창밖을 보고는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강과 사람들이 보였다. 도착한 것이다.

“왜 그래?”

“아니, 내가 언제부터 잤지?”

“한 시간 전쯤 부터였던 것 같은데.”

도연은 당황하다 못해 불쾌한 것 같았다. 그러나 더는 별다른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먼저 내린 영준은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털고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뭔가 불편한지 갸우뚱 고개를 숙이더니 곧 허리를 편다.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하늘은 여름 특유의 이글거리는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바닷가 같은 모래사장과 짙은 녹색의 강 너머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높이 서 있다. 장관이라든가 그림으로 그린 광경이란 말이 어울릴 법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기분 탓인지 영준에게 작렬하는 강은 참을 수 없이 스산할 뿐이었다.

비교적 한산한 쪽으로 왔음에도, 강가에는 다슬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 사이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차에서 내린 도연은 뭔가 맘에 안 든다는 듯 찝찝한 표정이었다. 그 속을 누가 알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슬렁슬렁 걸어온 도연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강 쪽을 보며 말했다.

“여기 생긴 걸 좀 봐. 모래, 물, 바위까지 새 하나 앉을 자리 없이 날카로워. 터 자체도 그런데 이젠 살기까지 흐르니…….”

“풍수도 볼 줄 알아?”

“이런 건 풍수까지 갈 필요도 없어.”

잔잔히 흐르는 강은 얇은 비닐조각을 뿌려놓은 듯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러나 그 물의 흐름에는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빛나는 표면을 볼수록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물과 함께 뭔가 흘러내려 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에도 섞여 있었다. 차갑고 비릿한 증오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악의 그 자체였다.

온몸을 내리누르는 압력 속에서 둘은 시간이 갈수록 말이 없어졌다. 침묵 속에 일단 소영들이 있었다는 상류를 향해 걸었다. 십오 분 정도 갔을 쯤 한 무리의 낚시꾼들이 이른 시간부터 술을 마시는 것이 보였다. 낚은 물고기를 물통 안에 넣고 매운탕을 끓이던 사람들이 그들을 흘깃거렸다.

무작정 헤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이쯤에서 길을 묻는 것이 좋으리라. 도연은 모르는 척 뚱하니 딴청만 했다. 영준은 피곤한 얼굴을 슥슥 문지르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꾸벅 인사를 했다.

“많이 잡으셨어요?”

씩 웃는 얼굴이 순하게 벌어진다. 영준은 서글하니 다가가 낚시꾼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불콰하게 마신 남자들은 밤새 낚시를 했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에이 예전만은 못하지. 안 그래?”

소주를 마시던 중년 남자 하나가 옆의 친구를 툭 치며 말했다. 뿌듯해 하는 것이 내기라도 걸었는지 그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치근치근 놀려댔다.

“그래도 밤새 이 정도 올렸으면 괜찮지 뭘.”

“여기도 이제 텄어. 예전만 못해.”

“한 번 볼 텐가?”

남자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어망을 가리켰다. 영준은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힘이 붙은 듯 미끈한 고기 몇이 펄떡이며 물을 튀겼다. 순간 창백하게 질린 영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재미 좀 보셨네요. 역시 꺽지랑 쏘가리는 밤에 나와야죠.”

“어쭈, 젊은 친구가 좀 아네? 아침은 먹었나?”

“아, 예. 친구랑 요기는 했습니다.”

“그럼, 술 한 잔 받을래?”

“아니 괜찮습니다. 여긴 다른 일 때문에 왔거든요. 혹시 이 근처에서 이 정도 높이의 시멘트로 된 낡은 다리 못 보셨어요?”

“난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저 분이 여기 민박 주인이니까 한 번 물어보지.”

남자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낚싯대를 고정하고 있는 이를 가리켰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는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참견과 설명을 듣고는 상류 쪽을 가리켰다.

“그거라면 저어기 위로 한참 올라가서 물길이 갈라지는 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가면 보일 거야. 그런데 거긴 왜 찾나? 거는 영 찜찜해서 여기 사람들도 잘 안 가는 곳인데…….”

“친구가 근처에 갔다가 흘리고 온 게 있다고 부탁 받았거든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많이 잡으세요.”

멀뚱히 서 있던 도연은 영준이 인사를 하자 엉거주춤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낚시꾼 무리와 헤어져 상류를 향해 오 분쯤 걸었을 때였다. 영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꽤 멀어진 이들은 연신 왁자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누군가 강에 대고 소변을 누자 웃는 이와 가벼운 욕설로 타박하는 이들로 휘청거렸다. 어망 안을 떠올리자 쓴 침이 올라왔다.

“어망에 있던 물고기들 말이야.”

“……?”

“죄다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어. 그, 인면어처럼.”

도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있었는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먹는다고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도연은 자신 없이 말했다.

“뭐…… 물고기는 물고기일 뿐이니까.”

영준은 진저리를 쳤다.

“이제 두 번 다시 낚시는 못 다닐 것 같다.”

도연은 잠시 뜸을 들이다 물었다.

“낚시도 해?”

“아버지 따라서 좀 다녔었어. 중학생 때까지는.”

쓴 약을 먹은 듯 인상을 쓴 영준은 팔뚝을 벅벅 쓸었다.

“일요일마다 잠도 못 자고 끌려나가는 게 싫어서 반항도 많이 했는데.”

영준은 운동화 아래 미끄러지는 자갈을 걷어찼다. 아버지는 밤낚시를 좋아하셨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꼭 자신을 데리고 새벽 낚시를 갔다. 몇 시간이고 앉아있는 것보다 뛰고 움직이는 것이 좋았던 영준은 영 건성이었다.

내켜하지 않는 영준에 비해 동생은 자신을 빼놓고 가는 것이 차별이라며 화를 냈었다. 그럼 바꾸자고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게 부자간의 돈독한 시간을 위한 것이라고 끝내 양보하지 않으셨다.

언젠가는 너도 낚시 맛을 알게 될 거라고 하셨었지. 하지만 결국 그 언젠가는 오기도 전에 끝나 버렸다. 아버지의 낚싯대는 다른 물건들과 함께 창고로 들어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시간을 좀 더 소중히 했을 텐데. 하다못해 즐거운 척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순간순간 영준이 방심하고 있을 때마다 가슴을 찌르고 지나갔다.

영준은 씁쓸한 기억을 떨치기 위해 더 빠르게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것은 후회였다. 다시 반복할 수는 없었다.

물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자 강폭이 좁아졌다. 그리고 날카로운 수직의 벼랑이 솟았다. 강변은 더 이상 자갈과 모래가 아니라 바위로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게 협소했다. 녹색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은 여기저기 소용돌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물살을 만들었다. 피서객뿐 아니라 낚시, 레프팅, 어떤 것을 위해서도 올 것 같지 않은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일반 대학생들이 이런 곳까지 어두운 밤에 어떻게 찾아 왔을까.

주변을 살피던 영준이 손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저거, 다리같이 보이지 않아?”

우거진 나무 사이로 언 듯 보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런가……?”

“가보면 알겠지.”

몇 미터 정도 더 가자 낡은 다리가 확실히 보였다.

“맞는 것 같아. 이 근처에 다른 다리는 없어.”

“길도 없는데 여길 어떻게 올라가?”

그들 앞엔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덤불이 막고 있었다. 깎아지른 두 개의 절벽을 잇는 다리는 굉장히 높이 이어져 있었다. 영준은 손으로 해를 가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쪽으로 돌아가 보자. 걔들이 먼저 올라갔었으니 여기 어디 있을 거야.”

오래된 수양버들이 2층 건물 높이로 늘어져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흔들리는 수양버들은 나이든 여자의 긴 머리처럼 보였다. 덤불을 뚫고 올라갈수록 하늘을 가린 나무들로 인해 어두컴컴한 길은 좁고 음침했다. 급격한 오르막을 올라가며 영준은 내심 그들이 도대체 한밤중에 여길 어떻게 갔는지 궁금해졌다. 손전등이 있었다 해도 낮에도 어려운 길이었다.

“이거 봐.”

도연이 뭔가를 발견했다. 여성용 샌들이었다. 누군가 발에 걸려 벗겨졌는지 샌들 한 짝이 풀숲에 떨어져 있었다.

겨우 언덕을 벗어나 올라가자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길이 나타났다. 돌과 자갈로 바닥을 닦은 길은 오랫동안 이용되지 않아서인지 풀과 쓸어내린 흙으로 엉망이었다. 어디로 이어졌는지 궁금했지만 너무 멀었다.

덤불을 헤치자 다리가 나타났다.

“이건…….”

둘은 완전히 질려 말을 잃었다.

다리로 향하는 입구 전체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철조망 한가운데 붙은 표지판이 이곳이 출입금지구역임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그냥 사람의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발부된 푯말이었다. 그리고 푯말 주위에는 부적이 셀 수도 없이 붙어 있었다.

노란 종이에 쓰인 붉은 글씨는 제각각으로, 한 사람이 다 붙였다고 보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비바람으로 찢기고 흐려진 부적 위에는 새로운 부적이 겹겹이 겹쳐있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철망의 한쪽이 밀려 벌어져 있었다. 그 와중에 떨어져 찢긴 부적이 발자국과 흙으로 엉망이 되어 바닥에 온통 흩어져 있었다.

도연이 나직하게 신음했다.

“위험한걸.”

“이런 말은 없었는데.”

영준은 자신 없이 말했다. 비록 지금 당장 딱히 보이는 것은 없다 해도 이 광경의 위압감은 상당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을 마주하면 그냥 뒤돌아서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어난 곳은 바로 저 안이었다.

도연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바로 몇 미터 앞이건만, 철조망 안은 이상할 정도로 어두웠다. 철조망을 밀자 겨우 한 사람이 몸을 밀어 넣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생겼다. 먼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간 영준이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영준의 말에 선뜻 대답은 못 했지만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던 도연은 칫, 하고 혀를 찼다.

“됐어. 여기까지 와서 빼진 않아.”

도연은 영준이 벌려놓은 철조망 안으로 어깨를 들이밀었다. 내심 안도한 영준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떨리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다리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오래되고 작은 육교 같았다. 누가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랫동안 관리 되지 않아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입구 쪽에는 누군가 부수려 시도했던 것처럼 쇠망치와 함께 부스러진 손잡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별로 길지 않은 길이였지만 숲 그림자로 반대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먼지와 흙, 낙엽이 쌓여있는 바닥에는 최근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남긴 흔적으로 보아 소영들이 분명했다.

느린 전진의 한발 한발이 조심스러웠다. 무엇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긴장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저거 보여?”

멈춰선 도연이 영준이 가리킨 곳을 유심히 살폈다. 거대한 나무 아래 뭔가 있었다. 바위나 작은 나무 기둥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인공적이었다.

“그 집이야.”

메스꺼운, 아주 기분 나쁜 장소 특유의 냄새가 났다. 도연이 천천히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벨트에서 군용 나이프를 꺼내 쥐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작은 한옥이 나타났다.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 있는 그것은 얼핏 정취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 한지로 만들어진 창살과 마루까지 섬세했다. 그리고 집 주변에는 마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되는 양 저고리까지 차려입은 인형들이 늘어져 있었다. 하얀 무명천으로 만들어진 인형에는 눈코입이 없이 그저 머리와 사지만 표현되어 있었다. 그저 하얗기만 한 둥근 얼굴, 그러나 그들이 모두 이쪽을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연은 이 장소를 알아보았다. 아주 예전에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곳은 말하자면 사당이다. 죽은 이들을 모셔두는 인공의 마을이기도 했다. 죽은 자들의 원한을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이용하려는 도구였다.

도연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활짝 열려있는 집의 안을 보았다. 금박을 입힌 나무가구들과 작은 항아리들이 보였다. 실소가 터졌다. 이 얼마나 비굴한 비위 맞추기인가.

한 무리의 새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허리를 편 도연은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았다. 긴장에 차갑게 식은 몸에 땀이 흐른다.

“텅 비었어.”

도연은 집과 주변에 놓인 인형들을 가리켰다.

“이미 다 빠져나갔어. 이젠 여길 나가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활개를 칠 테니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야.”

“여긴 도대체 뭐야?”

“오래 묵은 귀들에게 집을 지어준 거야. 이렇게 오랜 기간 사당처럼 차려놓고 모시다 보면 비록 잡귀라 해도 점점 힘이 세지지. 아주 옛날 사람들이 만들어낸 편법으로, 무당들 중에 신이 떠나버린 자나 혹은 아예 처음부터 신을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이 허주를 만들어 낸 거야. 혼령을 모시고 힘을 키워줘 가짜 신을 만들어 신 노릇을 하게 하는 거지.”

 “왜 그런 짓을 하는데?”

“돈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인간들 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이게 처음도 아니고 유일한 방법도 아니야.”

 도연은 문 안쪽에 줄지어 앉아있는 작은 인형들을 가리켰다.

“여기 있던 놈들은 자기들끼리 너무 오래 뭉쳐 있던 탓에 아예 다른 게 되어버려, 이 집으로는 더 이상 가둬둘 수도 없게 된 것 같아.”

“그게 소영이 안에 있단 소리구나.”

“일부. 아마 진짜 몸은 이 산 어딘가에 있을 거야.”

“어떤 새끼들이 이딴 짓을…….”

영준이 이를 악물며 읊조렸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스산하게 움직이며 아직 푸른 잎을 떨군다. 영준은 갑자기 음산하게 느껴지는 산이 거대한 덫 같다고 느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악의에 찬 감정들은 마치 바람처럼 끝없이 밀려왔다 사라지고 있었다.

“거기 누구냐!”

어디선가 새된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놀란 영준이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다리 건너편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 셋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중년의 여성과 얼굴에 흉이 있는 길고 마른 몸을 가진 젊은 여자, 그리고 넙대대한 서른 중반의 남자였다. 셋 다 색은 다르지만 한복을 입고 있었고, 어떻게 봐도 보통 사람 같지는 않았다. 무속인들이 분명했다. 그들은 거침없이 와서는 한옥 집과 둘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네놈들! 겨우 잡았구나!”

뒤에 서 있던 남자들 하나가 이를 드러내며 외쳤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눈을 부릅뜨고 호령을 하는 여자의 태도는 살기 등등했다.

“어쩐지 산 기운이 다시 이상해졌다 했더니 이게 무슨……!”

중년의 여자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녀는 품에서 방울을 꺼내 들고는 눈을 감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여긴 사유지다! 너희 같은 것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당신, 여기 주인이야?”

영준의 눈이 당장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당신들이……!”

흥분해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도연이 얼른 영준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옆에 다가와 서며 빠르게 속삭였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대꾸를 하기도 전에 중년의 여자가 영준들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호랑이 같이 치켜 올라간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질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셋 다 마치 죽일 듯이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말해라! 누가 시켜서 이런 짓을 한 거지?”

“무슨 소리예요? 다짜고짜.”

도연이 나서 대답했다.

“네놈들이 여길 어지럽히지 않았냐는 말이야!”

“우린 모르는 일입니다.”

여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거짓말!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는 신제자들이다. 이곳은 일반인들이 오면 절대로 안 되는 곳이야! 옛날부터 지켜온 곳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뭐 하는 덴데요 여기가?”

“당장 털어놓지 못해!”

“아니 뭘, 아 나갈게 나가면 되잖아요.”

도연은 결백하다는 얼굴로, 다소 겁먹은 듯한 표정까지 그럴싸하게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한발 뒤에 선 영준을 돌아보고는

“야 여기 진짜인가 보다.”

하고 흥분해 말했다. 가만 보고 있던 남자 하나가 여자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얼핏 담력, 대학생 같은 단어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가로 저으며 낮은 음성으로 날카롭게 대답했다.

“하지만 다시 왔을 수도 있어!”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도연과 영준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거짓말이 분명해.”

영준은 입을 꾹 다문 채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다시 뒤의 남자가 소근거렸다. 그녀는 영 인정할 수가 없는 눈치였다.

“너희들, 그럼 여기에서 뭘 한 거냐.”

“우린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신기한 곳이 있다기에 잠깐 구경 좀 하려고…….”

“저 문을 너희가 연 것이 아니라고?”

“철조망은 왔을 때부터 열려있었어요. 그러니까 들어왔죠. 아 나 참, 진짜 우리가 연거 아니거든요.”

“……그럼 여길 연 사람들은 알고 있느냐?”

“몰라요.”

“거짓말하지 마라. 아까 듣고 왔다고 했잖아!”

“저 아래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여기 신기한 게 있다고 해서 온 거라니까요.”

자못 신경질 난다는 듯 말한 도연이 언성을 높였다. 영준은 그 연극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건 도연의 특기였다. 길을 묻거나 가게에서 점원과 이야기하는 건 못하면서 이럴 때는 능수능란하다.

여자가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 방울을 든 손을 들어 영준과 도연의 어깨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모으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영준은 내심 움찔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분 후 그녀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 아니라고?”

“그렇다니까요.”

“너!”

여자가 영준을 향해 물었다.

“네가 말해봐!”

눈이 마주치자 영준의 입가가 씰룩 움직였다. 얼굴을 마주하자 아직 삼키지 못한 분노가 목구멍까지 솟아오른다. 병원에 누워있는 동생, 훌쩍이며 울던 초췌한 아이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들의 원흉이 눈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옆에 선 도연에게서 그러지 말라는 신호를 받았다. 영준에게 있어 그는 신호등이고,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안내문이나 다름없었다.

“저도 별로…….”

그를 믿는다. 그뿐이다. 도연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해 자신이 한 실수가 벌써 많다. 분명 후에 설명이 있으리라. 영준은 최대한 결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어주었다.

여자와 회의에 찬 남자가 도연과 영준의 주변을 빙빙 돌며 뭔가가 느껴지거나 보이는지 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는지 갸우뚱거리며 뭔가 막이 처져 있다거나 이럴 리가 없다거나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발을 구르는 중년의 여인 뒤에 서 있던 이들의 표정이 점차 곤란한 듯 일그러졌다. 곧 뒤에 서 있던 이들 중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눈가에 흉이 진 젊은 여자였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그놈들이 다시 올 리가 없지요.”

“찢어 죽일 놈들…….”

곧 남자도 나서 무어라 중년의 여자의 귀에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남자와 말을 주고받은 그녀는 한옥 주변을 보며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여기에 뭐가 있었는데요?”

도연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다가가며 물었다. 경박한 질문은 무시당했다.

“저게 뭐길래 그러는데요?

“너희 같은 놈들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그녀가 경멸의 눈으로 도연과 영준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혀를 찬 그녀는 치마를 거칠게 털어냈다. 더러운 것이라도 대하는 태도였다.

“됐다. 이럴 시간도 없어!”

그녀는 남자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받아 바위 위에 내려놓고는 풀기 시작했다. 안에서 오래된 책과 종이를 꺼낸 뒤 그들은 그것들을 태우며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흉흉한 태도에 더 이상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인형과 집 근처에서 찢어낸 책을 한 장씩 태우며 뭔가 경 같은 것을 읽어 내려갔다. 핸드폰을 꺼낸 남자 하나가 상대방에게 과일과 술 이름을 확인했다. 당장, 저녁에 같은 단어가 사이사이 들렸다. 갑작스럽게 분주해진 그들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을 느낀 영준은 천천히 다리 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도연에게 낮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나가자.”

둘은 천천히 뒷걸음으로 다리를 건넜다. 소위 신제자라는 세 사람은 한옥집 주변의 흰 천을 걷고 주변에 술을 뿌리며 바빴다. 철망에 가까워졌을 쯤 뒤늦게 둘의 부재를 알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따라오는 멈추라는 고함에 그들은 쉬지 않고 달음박질을 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래로 이어진 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갑자기 나무그늘이 열리며 낯선 농촌 마을의 정경이 펼쳐졌다. 산 아래 납작하고 몰개성한 건물이 모여 있었다. 지방 어디에나 있을 법한 광경이 주는 익숙함이 발을 멈추게 한다.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길 한쪽의 바위 위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달리기에 옆구리가 쓰려왔다. 처음에는 피하려던 것이 뛰다보니 뒷덜미가 시려와 멈출 수가 없었다. 영준이 멈추지 못해 도연이 더 뛰었고, 도연이 멈추지 못해 영준이 따라 뛴 꼴이었다.

“저 사람들이, 그러니까.”

어느 정도 호흡이 돌아왔지만 말끝에 연신 기침이 난다. 도연은 얼른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애초에 저 집을 짓고 허주를 만든 것들은 저 치들이 아닐 거야. 천하의 선무당들이라 처음부터 그럴 능력도 없고 아마 물려받은 거겠지. 보아하니 꽤 오래된 것 같아.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이어지다 보니 정말 신이라고 믿을 확률이 커. 네 동생 일을 알게 된다 해도 엉뚱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신병이라고 부르며 이용하기 위해 달라붙을지도 모른다고.”

영준은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놈들을 족쳐 무엇이든 답을 내놓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연의 말대로 그들이 정말 무능력하다면 그것은 화풀이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화풀이만이라 해도 충분히 유혹적이긴 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

왜 나는 스스로 답이 나오는 게 하나도 없지. 영준은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도연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자업자득.”

“뭐?”

“아니, 잠깐 생각 좀 했어.”

도연은 손을 내저었다.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저 사람들을 만난 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겠어.”

“기회?”

도연은 끄덕였다.

“저 집을 짓고 일을 벌인 것은 아니라도 꽤 정성스럽게 관리한 사람들이야. 그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수습은 해보려 하겠지. 아까 하던 꼴이나 통화 내용을 봐서는 마침 오늘 판을 벌일 것 같아. 일단은 하는 대로 두고 따라 다녀보자고. 영감은 없어도 형식은 알고 있으니 이 산 저 산 쑤시고 다니다 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본다고 하지 않았어?”

“땅군이 풀숲을 뒤질 때 꼭 뱀을 보고 하는 건 아니야.”

“뱀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지 몰라. 솔직히 난 무당을 보면 뭔가 내 상태에 대해 언급이 있을 줄 알았어.”

영준은 꽤 실망스러웠다.

“저 사람들은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야. 정말 신내림을 받은 무당들은 뒤에 뭔가 하나둘은 달고 다녀.”

“달고 다녀?”

“노인네도 있고 동자도 있고…….”

“그게 신이야? 그런 게 정말 있구나.”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고…….”

도연은 말끝을 흐렸다.

“설사 제대로 신을 받았다 해도 어차피 무당들은 우리를 못 알아봐.”

“왜?”

“나중에 보면 알 거야. 거기서 모시는 신들은 내 앞에선 얼굴을 가리고 피하지. 무당들은 신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듣게 해주는 걸 듣는데 나는 내가 보이는 데로 볼뿐이거든.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어. 숨기고 싶은 걸 들키는 게 싫은 건 사람뿐이 아니야.”

“뭘 감추는 건데?”

“자기들이 신이 아니라는 것.”

“……좀 쉽게 말해봐.”

“쉽게 말했잖아?”

영준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한 번쯤은 매달려볼 끈이었는데 잡아보기도 전에 잘려나간 기분이다. 그러나 경험에서 비롯된 회의다. 도연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버려두고 일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고.”

영준은 따라 일어서다 무심코 따끔거리는 팔을 쓸었다. 희미하게 피가 배어 나왔다. 그리고 보니 달리는 중 몸을 스친 잎에 배인 상처가 팔과 얼굴 곳곳에 시큰거렸다. 도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염처럼 얼굴에 난 연한 붉은 선이 곳곳에 긁혀 있었다.

앉은 자리 주변을 보니 풀잎, 나뭇가지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곤두서있었다. 강에서 느낀 그 악의가 산 전체에도 흐르는 것일까.

“……괜찮은 거야?”

“뭐가.”

“아니 뭔가 느낌이 안 좋아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 죽여 버릴 기세더니 이젠 걱정이야?”

“그게 아니라…….”

불안했다. 물론 소영의 일도 그렇고, 방금 보고 온 사당의 형태나 모든 것이 마음에 걸릴 정도로 스산했다.

“자기들이 벌인 일이잖아. 책임 정도는 져야지.”

도연은 냉정하게 말하고는 앞장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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