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시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은 십 대 후반의 일이다. 병원도 무속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종교를 찾았던 시기였다. 교회도 아니었고 성당도 아니라면 절에 가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가야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절은, 자신이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고 산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도연은 젖은 낙엽을 긁어모아 몸을 덮었다. 가능한 자신의 체취를 없애야 했다. 나무뿌리 옆의 흙을 긁어 목덜미와 얼굴에 바르는데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멍청하기 짝이 없다. 남을 얼간이, 바보 멍청이라고 욕하더니 실상 세상에 나보다 더 멍청한 인간이 있을까.
도연은 눈을 찡그리고 가파른 경사면 위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정신을 잃은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달이 뜬 것을 보아서는 한두 시간 이상은 지난 것 같은데.
녀석을 봤다고 생각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짐승의 길 근처에서, 움직이는 검은 물체를 보았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 번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자신은 또 8살 어린아이로 돌아가 버렸다.
놈이 벌써 이곳에 도착했을 리가 없다. 불완전하지만 육체를 가진 이상 최소한……. 이삼일 이상은 더 걸릴 것이다.
아직 더운 여름, 더 이상은 떨어진 잎도 없는 바닥을 맨손으로 긁어 흙을 파낸다. 할 수만 있다면 땅속에 몸을 파묻고 밤을 지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금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도연은 기대고 있던 나무로 몸을 끌기 위해 상체에 힘을 주었다.
“윽…….”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조심성을 잃고 뛰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며 다리를 다쳤다. 부러진 것인지 단순히 삔 것인지는 몰라도 움직일 수가 없다. 몇 번이나 일어서려 했으나 결국 꺾였다. 사람 몸의 나약함이 새삼 한심해진다. 흙 묻은 손으로 머리를 온통 문지르고 난 뒤 거친 밑동에 쓰러지듯 기댔다. 숨을 깊게 들이쉬니 축축한 흙냄새가 짙게 난다.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가늘게 깔깔대는 소리는 얇은 파장을 내며 먼 곳까지 울린다. 저것들은 별문제가 아니다. 도연은 자신을 계속 따라오며 연신 조롱을 던지던 이북의 영들에 대해서 이내 관심을 끊어냈다. 산에서 두려운 것은 짐승이나 사람의 영이 아니다. 그보다 두려운 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연, 도시의 사람들은 자연이 마치 인간에게 친밀하고 다정한 어떤 것이라도 되는 양 착각에 빠진다. 휴일에 산에 오르고, 강에 발을 담그며 흙을 밟고 싶어 안달을 낸다. 그러나 진짜 자연이란 그렇게 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를 길러내고, 짐승을 길러내듯이 산귀신을 낳아 기른다.
이제 자연을 밀어내고 만든 도시에서 그런 야생의 괴물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물론 도시에 적응해 살아가는 사냥꾼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훨씬 약하고, 사람의 길에서 살아가는데 도가 튼 도연에게는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산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도연은 허리에 감춰두었던 칼을 꺼내 쥐었다. 운이 좋다면 쓸 일이 없으리라.
구름이 달을 가렸다. 이미 어둠이라 생각했으나 희미한 달빛이 사라진 후에는 그야말로 장막을 친 듯한 암흑이 찾아왔다. 어디선가 수군거리는 소리, 풀이 흔들리고 무언가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잠에서 깬 것처럼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것들 중 대부분은 먹이를 찾아 혹은 야성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 사이 이질적인 숨소리가 섞인다. 도연은 문득 자신이 운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칼을 가슴 위로 올린 채 가능한 숨을 느리게 쉰다. 산의 밤은 다행히 추워 땀은 나지 않는다.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번 것은 조금 더 귀기가 서려있다. 흐느끼듯 길게 이어지는 웃음이 머리 위를 지나간다. 밤의 색이 달라졌다. 낮을 태우며 이어진 독한 더위와 어둠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풀 숲 사이로 창백하고 뿌연 손이 살그머니 나타났다. 뱀처럼 길게 이어진 팔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손은 풀뿌리 하나하나를 샅샅이 훑고 지나간다. 밤벌레가 울고 있는 돌 위를 가느다란 손가락이 더듬듯 통과했다. 손가락 끝이 발 위로 올라왔다. 도연은 숨을 멈췄다. 그것은 기대고 있던 나무뿌리로 옮겨가 다시 기어올랐다. 이내 차가운 손은 둘, 셋으로 늘어났다.
누구의 원한이고 누구의 기억인지 모를 존재들. 처음 가야산에서 이것들과 마주했을 때는 마치 뱀 같은 형태와 많은 수에 놀라 기함을 했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그 무수한 손은 무엇을 찾는지 어둠을 더듬으며 끝없이 헤맨다.
‘흐으……흐으…….’
오래 전 산을 찾아와 목을 맸던 여자, 아주 오래전 총을 맞고 죽은 군인 등 시간이 갈수록 많은 것들이 손의 길을 따라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그들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서성인다. 거의 평생을 보며 살아온 원혼들, 그러나 두려움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다.
숨을 죽이고 있는 도연의 뒤, 이번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뭔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목이 잘려 죽은 머리가 없는 남자였다. 어깨와 가슴팍에 시커멓게 달라붙은 것은 핏자국이 분명했다. 오래된 군복의 여기저기는 헤고 낡았다. 분명 죽은 자이지만 아직도 비릿한 피와 소변 냄새가 풍겨온다. 이건 질이 나쁘다.
도연은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산에서 밤을 지낸다 해도 이런 것들과 마주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 한기를 느낀 뒤 이내 자신의 상상이 지나치다며 마음을 바꾸리라. 그러나 도연은 마치 바다에 떨어진 피투성이 살점처럼 많은 것들을 끌어들였다.
감은 눈 위로 후회와 가벼운 자책, 원망이 앙금처럼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생각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오래전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은 자는 죽은 자일 뿐이다.
그를 돕는다고 해서 무엇도 보상되거나 돌이켜질 수는 없었다. 공터에 남겨놓고 떠났던 남자를 떠올리며 도연은 쓴 한숨을 조용히 삼켰다. 그를 돕는다고 해서, 내 과거가 희석될 수 있을까?
‘나한테 왜 이래? 네가 한 짓이잖아, 다 알고 있어!’
죽기 하루 전 자신을 찾아와 울부짖던 소년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사람의 안색이 그 정도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신이 동경하던 모든 것이 무너진 모습의 그에게서 희미한 쾌감을 느꼈던 것을 도연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악다구니를 쓰는 그에게 어떤 해답을 준다는 것은 그 당시의 도연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단경호에게 찾아온 불행은 실마리가 되었다. 이유를 안다 해서 해결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창백하게 질린 채 그래도 끝내 맞서보겠다고 결정을 내리던 영준의 얼굴에서 자신은 단경호를 보려 했다. 자신이 저지르고 또 외면했던 과거를 왜 다시 꺼내 억지로 뒤집어씌운 걸까. 그것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영준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도연은 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연은 차가운 손이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차 하는 생각에 서둘러 머릿속을 비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후회와 원망 같은 어두운 감정은 언제나 영들을 끌어들인다. 죽은 자들은 가장 인간다운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감정에 이끌려 온 뒤에는 체온에 매료된다.
도연은 온몸에 소름이 쭉 돋게 만드는 혐오감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찬 손이 도연의 뺨과 목덜미를 더듬어왔다. 눈을 뜨자 수십의 긴 손이 도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그의 몸에 닿은 찬 손가락들은 마치 그의 형태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얼굴과 턱, 가슴 위로 올라왔다. 몸의 기운이 쑥 빨려 들어간다. 점점 밀려오는 손은 끝이 없다. 자체로 큰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극도의 불쾌한 경험을 밤새 하게 되리라. 도연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조각난 영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기가 급격히 축축하게 변했다. 산 전체의 온도가 3도 이상 떨어진 듯 서늘해진다.
이곳에서 죽은 이들은 차곡차곡 매 계절 낙엽이 쌓이듯 혼을 쌓아왔다. 제 형태를 온전히 갖춘 영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많은 수가 여럿 모여 서로 기댄 채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도연은 밀어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것들을 피하려 급하게 몸을 틀었다.
“쳇…….”
발목에서 밀려온 아픔에 집중력이 흐려진다. 비척이며 다가온 이들이 도연의 얼굴 가까이 접근했다.
머리 한쪽이 날아간 남자가 도연의 얼굴을 마주했다. 온전한 하나의 눈으로 차마 눈을 감지 못한 도연의 눈을 응시하던 남자가 뭐라고 입을 달싹인다. 등을 기대고 앉은 나무를 양손으로 움켜잡은 남자가 갑자기 울컥, 몸을 숙였다.
도연의 몸에 겹쳐진 남자의 상반신이 쑤욱 들어왔다. 젤리같이 물컹한 감촉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들어가, 들어가!’
이를 박박 갈며 남자는 연신 외쳤다.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
밤하늘을 향한 도연의 눈동자에 낯선 풍경이 스쳤다. 이 기억은 내 것이 아니다. 파란 하늘, 미간을 노리고 다가오는 검은 총구.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틀었다. 섬뜩하게 날이 선 낫이 가슴에 꽂힌다. 귓가에 자신의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내 죽음이 아니야.
“저리 가!”
도연은 이를 갈며 밀어냈다. 정신을 집중하고 지켜내야 했다. 또 다른 이가 도연의 다리와 팔을 붙들고 자신의 몸을 강제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얼음물에 몸을 담군 것처럼 순식간에 체온이 내려간다.
“웃기지 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잡아끌듯이 젖혔다. 기대고 있던 나무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이 정도의 빙의 시도 정도는 지금껏 수백, 수천도 넘게 당해왔다. 지금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 그래, 특별한 일도 아니다.
자박, 하고 잔디 밟는 소리가 났다. 쓰러진 도연의 앞에 멈춘 몇 개의 다리가 아직 생생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은 육신의 기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숨이 끊어진지 길어야 하루도 안 되었으리라.
고개를 들자 한복을 입은 남녀들이 무표정하게 도연을 내려 보고 있었다. 색색의 무복이 반투명하게 숲을 왜곡하여 비춘다. 공터에서 죽은 자들이었다. 비틀린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고통스러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지만 땅에 닿기 전에 증발되듯 사라져 버렸다.
“……나 때문이 아니야.”
이를 갈며 내뱉은 말의 독기에 반응하듯 네 명의 영이 일제히 시선을 맞춰왔다. 몸이 뒤틀려 죽은 이들은 아직 사지의 엉김이 풀리지 않은 듯 어색한 걸음이었다.
“……자업자득이잖아.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간 건 너희들이야!”
검은 돌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가 소름끼치게 차가운 시선을 맞춰온다. 참지 못하고 눈을 피한 순간 울컥 하고 파도처럼 빙의의 서늘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너무나 많은 영들이 쏟아져 들어온 탓에 도연은 이제 그들이 십 년 전에 죽은 회사원인지, 혹은 몇십 년 전 총에 맞아 죽은 남자인지, 아이를 유산해 친정으로 쫓겨나 목을 매고 죽은 여인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도끼와 칼, 주먹이 번뜩이며 스쳐지나 간다. 그들은 더욱 자신의 죽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네까짓 것들이…….”
도연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렀다. 겹쳐진 혼령들의 무게가 압사시킬 듯 찍어 내려왔다. 실제로 숨이 막혀 안간힘을 다해 몸을 틀었다. 젖은 낙엽과 흙이 뺨을 찔렀다. 숨이 막혀온다. 산소가 모자란 뇌는 몽롱한 흐릿함을 불러온다.
도연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다. 이대로 얼마나 오래 견뎌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미처 생각이 완성되기도 전에 익숙한 자포자기가 이어진다. 누구도 도울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것도,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자신뿐.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자신뿐.
불현듯 무서우리만치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내 삶에 그럴 가치가 있을까. 어쩌면 정말 이대로 끝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누구도 찾지 않는 채 끝장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실로 어울리는 마지막이 아닌가.
그래, 견디는 것도 지겹지 않아? 언제까지 뒤를 돌아볼 때면 앞을, 앞을 볼 때면 뒤를 두려워하며 살 생각이야? 이대로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야. 지겹지? 진저리쳐지지? 속삭이는 목소리는 나른하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눈꺼풀이 무겁다.
포기하면 정말 편해지는 것일까. 모두 모르는 채, 잊은 채 있을 수 있을까.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찮기만 하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아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큰 어린아이인가. 무슨 일이 있어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걸까.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귀가 따갑다. 죽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산에 버려져서, 혹은 유괴당하여, 가끔은 제 부모의 손에 이끌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죽었는지 혀 짧은 소리로 울기만 할 뿐이다. 태어나 그토록 짧은 삶을 살았음에도 여전히 미련이 남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이토록 하찮은 것인데…….
그때 울음소리 너머, 아주 먼 곳에 부터 무어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비……기다…….”
먼 터널 너머에서 흔들리는 불빛처럼 가늘고 작은 소리였다. 섞여든 목소리에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무……짓……내버…….”
흐릿한 시야 너머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도연은 천천히 눈을 깜빡여 보았다. 버스럭 대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하얀 운동화. 환각치고는 이상한 광경이다.
“……도……차려……!”
불쑥 가까워진 목소리가 비린 밤공기를 가른다. 이윽고 날카로운 회초리가 허공을 후려쳤다. 쉭쉭대는 위협적인 소리가 밤공기를 헤치며 나무와 풀숲을 내리쳤다. 후두둑, 흩어진 이슬이 도연의 뺨 위로 떨어졌다.
“비켜!”
동시에 욕설과 위협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아야, 이놈, 이 육시럴놈!’
‘그만! 창자를 찢어죽일 새끼, 그만!’
‘아이고 이 눔이, 개살을 떠네, 아이고 이 살무새 새끼가!’
긴 나무 회초리가 그들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러진다. 시커멓게 모여든 영들은 비록 육신은 없었지만 정말 맞기라도 하는 양 아파하며 소리를 올렸다. 저주와 욕설을 뱉어내면서도 그들은 도연의 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늘러 붙었다.
“저리 비켜!”
공기를 찢는 매서운 소리를 따라 도저히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무리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고함과 비명, 구슬프게 우는 소리 사이에서 멈추지 않는 회초리질이 이어졌다. 그것은 영들이 도연의 몸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한 치도 멈추지 않았다. 씩씩 몰아쉬는 숨의 끝으로, 악에 받친 듯 사람도 짐승도 아닐 소리를 내며 영들은 그림자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듯 숨어들었다.
“꺼져!”
집에 들어온 벌레를 내몰듯, 영준은 마지막 한 조각의 그늘까지 쫒았다. 영들은 울음 섞인 원망을 허공에 남겨놓고 거품처럼 흩어졌다.
“헉……헉…….”
숲을 꽉 채우듯 커다란 숨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영준은 몇 초가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몸을 가득 채우던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빠져나가자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몇 킬로를 전력 질주한 뒤처럼 숨을 들이쉴 때마다 높게 부풀어 오르는 가슴 안에서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도연은 아직 엎어진 모습 그대로였다. 수많은 영들에게 둘러싸여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던 조금 전의 광경이 떠오른다. 덜컥 불안해진 급한 걸음이 발을 꼬이게 만든다. 영준은 거의 쓰러지듯 도연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괜찮아?”
창백하고 작은 옆얼굴이 멍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한다. 대답은 없었다. 다행히 움직이는 대로 시선은 따라와, 의식이 있다는 증거는 그것뿐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영준은 도연의 머리를 살그머니 만졌다. 땀에 달라붙은 앞머리, 차갑게 젖은 이마를 뜨거운 손끝이 스치자 멍하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빠르게 깜빡이는 속눈썹 위, 맺혀있던 이슬이 콧잔등을 따라 흘러내린다.
“……진짜냐.”
쉰 목소리로 겨우 뱉은 말은 쿨룩대는 기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토기가 올라오는 듯 도연은 새우처럼 몸을 구부려 침을 뱉어냈다.
“어, 어떤 멍청이인가 했더니…….”
“일어날 수 있겠어?”
땅을 짚은 손이 힘없이 허우적거렸다. 영준은 도연의 몸을 잡아 돌려, 목 뒤에 손을 받혀 일으켜 앉혔다. 어린아이처럼 쉽게 들린 도연은 순간 놀랐는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걱정스럽게 등을 받힌 팔에서 빠져나오려 급하게 몸을 휙 돌리던 도연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야!”
“왜, 왜 그래?”
더듬거리며 뒷주머니를 뒤진 영준이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너 다리가…….”
앞으로 숙인 채 끙끙대는 도연의 발에 불을 비추자, 한쪽 발목이 옆으로 꺾여있었다.
“다쳤잖아.”
영준의 미간이 확 찡그려졌다. 비틀린 각도는 보는 것만으로 자신의 다리까지 아픈 것 같다. 이래서는 걷는 것은 무리다.
산으로 다시 올라오는 것은 정신이 빠질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다. 사실은 길이 엇갈려 그가 이미 산을 내려갔을 수도 있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만의 하나에 걸었던 것이 무단한 일은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어쩌다가 다친 거야?”
“…….”
“그보다 왜 아직 이런 곳에……?”
혹시, 하는 생각에 영준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넘어졌어. 착각하지 마.”
쏘아붙이는 차가운 대답. 영준은 순간 머쓱해졌다. 몸을 일으킨 도연이 신경질적으로 흘깃거렸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차에 가방이 그대로 있기에…….”
“너, 설마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이거야?”
“응.”
“미쳤구나.”
뭉개진 풀잎과 흙으로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이 다시 한 번 미쳤어, 하고 중얼 거렸다. 밤의 냉기와 불안으로 빼앗긴 체온으로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산에서 보았던 이북의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영준은 말을 꿀꺽 삼켰다. 소리 내어 꺼내고 싶지 않은 화제다.
“어쨌든…… 일단은 여기서 내려가자.”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시라도 좋으니 밝은 곳에, 사람들이 있는 일상의 풍경으로 돌아가고 싶다. 몰려들었던 영들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방에는 쏟아놓은 새끼줄처럼 흐리멍텅한 색의 손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잠시 물러났던 것들은 금세 뱀처럼 서로 엉켜가며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섬뜩한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쥐고 있던 유일한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회초리처럼 휘두르던 것은 가늘고 바짝 마른 나뭇가지였다. 믿을 만한 것은 이것뿐이다. 영준은 위협하듯 손들을 향해 휙, 하고 휘둘러주었다. 여러 번 사람의 손이 닿은 듯 매끈한 나뭇결이 번뜩이며 허공을 가른다.
“너 그건…….”
“올라오기 전에 손전등하고 같이 가방에서.”
손전등을 찾으려 연 도연의 배낭 한쪽, 천으로 둘둘 말려있던 것은 가느다란 나뭇가지였다. 왜 이런 것을 가지고 다니는지, 어떻게 도움이 될지도 몰랐지만 필히 이유가 있으니 보관하고 있던 것이리라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가 무작정 꺼내 들었다. 칼도 몽둥이도 아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한 번에 부러뜨릴 수 있을 굵기의 물건을,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효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영준은 급한 마음에 휘두른 이것에 영들이 물러났던 것을 떠올렸다.
“이거, 왜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거야?”
도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일그러진 얼굴은 찰나로, 금새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쓰기 시작했다.
“무리 하지 마. 지금은 서기도 힘들 거야.”
영준은 손전등을 뒷주머니에 꽂았다. 그리고 도연의 앞에 등을 돌려 앉았다.
“업혀.”
“뭐?”
“업히라고.”
손을 뒤로 돌린 채, 재촉했지만 통 움직임이 없다. 뒤를 보니 도연은 잠자코 앉은 채 영준의 등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빨리, 하고 말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라면 오지 않았을 거야.”
영준은 못들은 척 도연의 팔을 잡아끌어 자신의 목을 두르게 했다. 예상과 달리 그는 순순히 이끄는 데로 업혀왔다.
작지 않은 그의 키에 비해 짊어진 무게는 견딜 만하다. 영준은 하늘을 올려 보았다. 조금씩 얼굴을 비추던 달이 흐린 그림자만을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 올라오면서 몇 번을 웅크리고 울었다. 절망이 단단한 콘크리트 벽처럼 걷는 걸음마다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등에 닿는 미지근한 체온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연은 업힌 채 손전등을 들었다. 직선의 빛은 어둠을 밝히기 보다는 구멍을 뚫듯 앞을 비추었다. 희미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은 마치 반딧불 같으리라.
아마 그는 미쳤다고 하겠지만, 다리를 다친 그와 함께 한밤중의 숲을 헤매야 하는 상황이 혼자 차 안에서 핸들을 잡고 있었을 때보다 몇 배는 낫다고 느낀다. 더 이상 한심하다고 생각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영준은 입을 다물고 걷는 것에 집중했다.
어머니는 등산을 좋아했다. 바다나 강을 좋아하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산이나 들을 더 즐겼다. 전문등산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등산용품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올라갔다 내려와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오는 당일 등산부터, 1박 2일 내지는 2박 3일까지 걸리는 긴 코스를 계획하기도 했다.
가끔씩 어머니는 영준과 소영에게도 같이 산에 오르자고 권하곤 했지만, 항상 거절당했다. 어차피 내려올 곳을 굳이 올라가는 이유가 뭐야? 평소에는 자주 다퉜으면서 남매는 그럴 때만은 마음이 맞았다.
허리까지 오는 잡목이 파사삭 하고 흩어지는 소리를 낸다. 어렴풋이 무박 산행이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길 들은 기억이 난다. 지리산 대피소에서 헤드랜턴을 낀 자칭 산행 전문가들이 야간에 산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며, 어머니는 그들이 꼭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형광의 뱀 같았다고 했다. 어떤 정취를 찾아 모인 사람들이었을까. 아마도 달빛과 벌레소리, 조용한 밤의 공기 같은 것이리라. 숨 막히게 뒤틀린 원망으로 가득 찬, 도저히 이해하거나 화해 불가능한 종류의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겠지.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라’
길게 늘어진 나무 아래를 지나다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오래전에 목을 매고 죽었는지, 여자는 이제 영으로도 몸의 절반 정도 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고도 끈질기게 차갑고 불쾌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여자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몇 번이나 설명하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대상 없는 원망뿐이다.
‘죽어, 나 죽어. 더러운 것들, 남자, 여자, 더러워, 한심해…….’
피가 가시는 것 같다. 영준은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차가운 얼음물, 밝은 형광등, 자판기, 편의점, 에어컨, 모기장, 수박…….
나무뿌리에 걸려 잠깐 균형을 잃자 도연의 몸이 주루룩 미끄러진다. 목을 감은 팔이 깜짝 놀라 매달려 왔다. 영준은 영차, 하고 그를 추어 올렸다. 미안, 하고 말하자 그는 응도 아니고 어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지금은 몇 시쯤일까. 기분상으로는 산에서 며칠은 보낸 것 같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도 캄캄하니 장막 같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 산이 이렇게 깊었나.”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도연도 지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때 손전등이 불안하게 점멸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틱, 하는 맥없는 소리를 내고는 꺼졌다. 앗, 할 낼 새도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끈적한 어둠이 엉겨붙어 왔다.
“……잠시 쉴까.”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은 도연이 한숨 끝에 말했다.
“글쎄.”
내키지 않는다. 지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다리도 팔도 후들거린다. 그러나……
영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밤 저편을 노려보았다. 겨우 의지하던 빛이 사라지자 무어라 표현하기도 힘든 암흑만이 가득하다. 한 발짝도 더 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여기에 있고 싶지도 않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 서로 결정을 미루는 침묵이 이어졌다.
문득 불쾌한 냄새가 스친다. 비릿하면서도 코를 찌르는 기분 나쁜 악취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시작되어 순식간에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영준은 위화감을 느꼈다. 주위가 지나치게 조용했다. 방금 전까지 계속 따라오던 혼령의 말소리가 어느 사이엔가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몰려오는 불안에 영준은 긴장 속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눈만 돌리고 있었다. 달조차 숨어버린 어둠 그 이상의 어둠 속에서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기……기이……기……기기……기이…….’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앞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종류의 것이었다. 최대한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녹슨 쇠붙이가 부딪히는 것처럼 거친 금속성의 소리였다. 오래된 철문이 힘겹게 닫히고 열리는 듯 끽끽대는 뭔가가 저 앞에서부터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기기……기기……기이……기이이……기기…….’
마치 심하게 더듬는 사람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를 말하려는 듯 서툴게 한 가지 소리만 반복한다. 또 다른 혼령인가, 하는 생각이 일순 스쳤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 어디선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단순히 무섭다거나 소름끼친다는 정도의 표현으로는 불가능한 감정. 위험하다,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연달아 떠오르는 것은 고작 이런 것 뿐이다.
“쉿…….”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느리게 귀에 붙는다. 촉촉한 입김이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도연이다.
“최대한 빨리……여기서 벗어나자.”
“알았어.”
그의 말에 얼어있던 몸이 주문처럼 풀린다. 영준은 어둠 저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물러났다. 도저히 등을 돌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빨리……빨리…….”
목을 감은 팔이 꽈악 힘을 주어 끌어안는다. 등에 닿은 그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영준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들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속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캄캄한 어둠 속 불안정한 산길을 눈이 아닌 감으로 내딛는 걸음은 하나, 하나가 불안이었다. 업은 몸을 받치고 있는 팔의 감각이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지친 몸은 한없이 속도를 늦춰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불로 지지는 것 같다.
두려움은 순식간에 전염되어 사람을 사로잡는다. 어깨를 잡은 도연의 손이 영준의 옷을 거의 쥐어뜯다시피 당기고 있다. 등에 닿은 그의 심장이 얼마나 심하게 뛰는지, 온몸이 함께 쿵쿵 울리는 것 같다. 자신의 박동과 얽혀 누구 것인지도 모를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고 있었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속눈썹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린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자 뺨을 타고 미지근한 흔적을 남긴다. 설마 내가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영준은 자신 없이 자문해 보았다.
영준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호흡을 유지했다. 숨이 턱까지 올라 씩씩대는 소리와 함께 단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흐흑, 하고 흐느끼듯 숨을 들이마시자 폐 속 가득 축축한 냄새가 밀려들어 왔다. 이 비릿한 악취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조금도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 나쁜 기, 기 하는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분명.
저게 도대체 뭐야? 뭐가 오고 있는 거지, 저 어둠 너머에 있는 것의 정체가 뭐야?
금방이라도 입 밖에 내고 싶은 질문을 억지로 삼키며, 영준은 필사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알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된다. 물에 젖은 솜 같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하나다. 저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멀어지고 싶다는 바람.
‘기기……기이……기……기기.’
위험해, 저건 아주 위험한 거야.
본능이 소리 높여 외친다. 옛날 산에서 호랑이를 마주한 사람들의 심정이 이랬을지 모른다.
푸스스- 바람이 불자 나무와 풀이 동시에 몸이 떨었다. 옛날 초나 손전등을 켜놓고 하던 그림자 놀이처럼 산의 모든 것들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일렁이는 것 같다. 자신의 뒤를 거대한 여우와 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따라오는 상상을 해본다.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이상해.”
“……뭐가?”
되묻는 말의 끝이 떨린다. 대답하지 않자 도연은 다시 뭐가? 하고 물었다. 그제야 영준은 자신이 입 밖으로 말을 냈다는 것을 알았다. 뭐가 이상했더라,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어 본다. 이상한 것, 그랬다.
영준은 발을 지익- 하고 바닥에 잠깐 끌었다.
“바닥이 평평해. 아까부터 길이 너무 고르게 평지야. 걷기가 이상하리만치 수월해…….”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뒷덜미에서 넘어간다.
“언제부터?”
“모르겠어, 몰라. 언제부터지? 등산로나 산책길 같은 건 아니잖아. 산인데, 주변은 다 산인데…….”
주변을 둘러보아도 소용없었다. 어둠 속에서 겨우 분간이 가는 것은 나무의 그림자 정도로, 빽빽하게 솟아난 기둥 사이에는 사람은커녕 짐승 하나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의 틈뿐이다. 갈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쭉 나 있는 이 길뿐이다. 좁고, 캄캄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도 없는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여긴 어디지…….?”
망연자실해 하늘을 보자 기괴하리만치 크고 붉은 달이 떠 있었다.
“……귀도야.”
“귀도면……귀신이 다니는 길?”
서툰 한자로도 이해하기 쉬울 정도로 상황은 분명했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어떻게 이런 곳에 들어오게 된 거야?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다시 나가야지!”
“안 돼. 왔던 길로 다시 간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하지만…….”
“뒤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봐.”
갑자기 도연이 쿡, 하고 얼굴을 영준의 목덜미에 묻었다. 그리고는 이마와 눈을 꾸욱- 눌렀다. 좌절감인 걸까, 그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영준은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계속 가…….그 수 밖에 없어.”
담담하게 뱉는 말에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들어오려고 해서 들어와지고, 나가려고 해서 나가지는 곳이 아니야 여긴. 방법이 없어.”
도연은 조용히 덧붙였다.
“지금 부터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
“응.”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해서도 안 돼. 이 길은 사람이 아닌 것들도 다니니까.”
“그래.”
“내가 걸을 수만 있으면…….”
“괜찮아. 아직 거뜬해.”
“따라잡히면 안 돼.”
목을 감은 팔이 꽈악, 안듯이 힘을 준다.
“저건 혼령 같은 게 아니야. 산귀신이지. 잡히면 먹힐 거야.”
“……응.”
아래턱이 덜덜 떨린다. 이를 악 물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겨울의 일처럼 이뿐이 아니라 몸 전체가 와들와들 떨려왔다. 계절이 혼란하고, 현실과 비현실이 섞이고,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그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어둑한 산 한복판에서 무언지도 모를 존재에게 쫒기고 있다니.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꿈일까. 소영이 아픈 것도 꿈일지 모른다. 그래, 귀신 때문이라니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어디 있어. 그럼 도연도 꿈일 것이다. 등에 업힌 신비스러운 이 남자, 성마르고 냉정한 것 같아도 가끔 보이는 뚱한 표정 뒤에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은. 그도 꿈일 것이다.
눈을 뜨면 그곳은 집으로, 자신은 아직 고등학생이고 여동생은 중학생일 것이다. 아버지는 거실 한쪽에서 낚싯대를 다듬고 어머니는 좋아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과일을 깎고 있겠지. 여름이니까 냉장고에는 갈린 토마토가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겨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 이렇게 목이 마르니 깨고 나도 그렇겠지. 몇 그릇이고 먹을 수 있을 거다.
걸음을 더 빨리해본다. 마음일 뿐이다. 공포가 피로를 잊게 하자, 피로가 고통으로 변해 온몸을 부서질 듯 두드린다.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다리, 꿈속에서 흔히 그렇듯 쫒기고 있지만 한없이 느린 내 속도가 그럴듯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헤매던 영준의 눈앞에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분홍색 등산조끼를 입은, 사십 대의 주부로 보이는 여인이 길 한쪽에 서 있었다. 곤란한 듯 입가에 손을 대고 발을 구르던 그녀는 이쪽을 보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머뭇머뭇 다가왔다.
“총각들, 사람……맞죠?”
“…….”
의심스러운 마음에 영준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유, 맞네. 난 또 귀신인 줄 알고 놀랐잖아. 이런 밤중이라…….다행이다. 이런 데서 혼자 어떻게 하나 하고 있었는데.”
살갑게 말을 건 그녀는 영준의 옆에 서서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산행을 하다가 일행을 잃었지 뭐에요. 혼자 헤매다가 해는 지고 길은 모르겠고……. 여기서 아침까지 기다리려는데 나 혼자는 무서워서 혼났는데 듬직한 청년들을 만나니까 살겠네.”
잡티가 조금 있는 피부에 웃을 때면 눈가에 주름이 지는, 선한 인상이다.
“등에 청년은 친구야? 어디 다쳤나 보네? 그래 이렇게 어두운 데서 잘못 하면 넘어지기 십상이지 뭐.”
“…….”
“친구는 잠든 것 같은데 무겁겠네, 이쪽에 내려놔요. 내가 좀 거들어 줘요? 이래 뵈도 힘은 세거든.”
영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못들은 척 앞만 보고 걸었다.
“어유 왜 그래요 정말, 무섭게.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울상을 지으며 여자는 가슴을 손으로 가볍게 내리쳤다. 땀 냄새에 섞여 익숙한 헤어스프레이 향이 코를 스친다. 모과향, 어머니도 같은 것을 썼었다.
“나 안 보여요? 진짜……. 어딜 가려고 그래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그러지 말구 나랑 여기서 해 뜰 때까지 같이 있어요!”
영준은 이를 악물고 앞만 바라보았다. 몇 걸음 따라오던 그녀는 아유 마음대로 해! 하고 팽하니 토라진 듯 외치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대로 아침이 오길 기다리려는 듯했다.
어쩌면 정말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신들도 이런 곳에 들어섰으니 다른 사람이라고 그러지 못할 리 없다. 만의 하나의 경우가 있으니 뒤에 뭔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까?
망설이며 2,3미터쯤 멀어졌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갸아아아악--꺄악-!”
영준은 놀라 멈춰 섰다.
자지러지는 비명 끝에 뭔가와 몸싸움을 벌이는 기척이 거칠게 이어졌다.
“아이고,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은 점점 처절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숨이 막혀온다.
“아아악-! 이게 뭐야, 사람 살려! 하지 마- 나 좀 살려줘요!”
식은땀이 뒷덜미를 축축하게 적신다. 당장 돌아보고 싶다,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설마 놈이 벌써 이렇게나 가까워진 걸까, 경고를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일까.
“영민 아빠, 주영아! 엄마 좀 살려줘!”
우두득- 하고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피가 솟구쳐 머리가 핑 돈다. 어떻게 하지? 영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앞이 캄캄하다. 연신 아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여자는 울고 있었다. 영민아, 주영아, 엄마, 엄마아 나 좀 구해줘.
영준은 있는 힘을 다해, 움직이지 않는 발을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었다.
갑자기 비명이 뚝 멈췄다.
‘에이- 씨발 더러운 것!’
퉤!
침을 탁 뱉는 소리와 함께 다시 욕설이 터졌다.
‘독하디 독한 새끼들, 에이 오뉴월 개불알 같은 자식들아! 에이 퉤!’
돌변한 여자가 째지는 음성으로 악을 써댄다.
‘개--잡놈의 종자들 같으니, 육시분할을 해버릴 것들!’
정신없이 비틀거리는 영준의 뒤에서 조그맣게 도연이 잘했어, 하고 속삭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가는 할머니의 그림자에는 머리 양옆으로 긴 뿔이 나 있다. 바로 이 앞이 산장이니 등에 진 친구는 자신이 업어주겠다며 권하는 남자는 군침을 삼키느라 정신이 없다. 안달복달을 하며 채근하는 달콤한 설득 사이사이로 꾸루룩- 하고 배곯은 술렁거림이 끼어든다.
‘그럼 다리 하나만 다오. 어차피 걷지도 못하는데 무게도 줄일 수 있고 좋지 않니.’
넋이 빠질 것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다. 무시하고 모르는 척하자 남자는 독이 오른 얼굴로 화를 냈다. 울컥, 일그러진 얼굴이 더 이상 사람인 척할 필요가 없어진 탓인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놈아 보이면서 왜 모르는 척하니. 그런다고 속을 줄 알고?’
이제는 구분이 갔다. 이렇게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몹시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반딧불이 자체적으로 빛을 뿜어내듯 지나치게 확실하다. 여기가 바다 밑이라면 저놈들은 초롱아귀쯤 되는 존재였다. 사람의 마음의 약한 곳을 노려 그럴싸한 미끼를 달고 넘어오기를 기다린다. 자칫 방심하면 삼켜질 것이다.
보면 안 된다. 무서워하면 안 된다. 하지만 보이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척, 모르는 척하는 것뿐.
“잠깐만…….”
끈질기게 길을 물어오는 어린아이를 피해 반은 뛰다시피 한 영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길가로 향했다.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내려줘, 걸어볼게.”
“지금 앉으면 못 일어나.”
“걸어갈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있어 바보야, 더 가까워졌단 말이야.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그 속을 뒤집어놓을 것 같은 냄새며, 기묘하게 발음하는 금속성 소리는 느리지만 꾸준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단순히 모르는 척하거나 보지 않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일종의 ‘거물’이라는 것이 도연의 설명이었다. 마땅히 갈 곳도, 피할 방법도 없는 때에 몸이 풀어지면 마음도 풀어질 것이다. 한 번 꺾이면 다시 일어서는 것은 두 배, 세 배로 힘든 법이다.
“……나 때문에 이런 곳에 들어와 버렸잖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네 주제에 무슨. 귀도는 아무나 들어와지는 줄 알아?”
결국 영준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가벼워진 몸이 푹 쳐진다. 숙인 이마를 따라 땀이 뚝뚝 떨어진다.
일어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것과는 달리 도연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다친 다리는 보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무섭게 부어올라, 업힌 상태에서도 몸이 흔들릴 때마다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전달했다. 더구나 몸을 빼앗길 뻔한 탓에 귀 울림과 방향감각이 혼란해 구역질이 올라온다.
보통 그 정도로 심하게 사로잡히면 기가 빨려 한나절 이상은 쉬어야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자꾸만 의식이 흐려져 중간중간 정신을 놓았다 깰 때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업혀있음에 매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차라리 팔이나 갈비뼈가 부러졌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아프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걸을 수 없다면 한쪽 발로 뛰면 된다. 일어나기만 하면, 영준에게 어깨를 빌려달라고 하면 된다. 도연은 소용없는 각오만 되풀이하며 바닥을 긁어댔다.
“조금만 있어 봐. 숨 좀 돌리면 괜찮으니까…….”
그때였다.
‘기기……기기기이기이이기기…….’
갑자기 소리가 가까워졌다. 급히 일어나려는데 조금 전까지의 불분명한 목소리가 느닷없이 바뀌었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출현에 그들은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얼어붙은 시선 끝, 짙은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장막 같은 어둠 너머 천천히 크고 긴 손가락이 솟구친다. 마디가 굵고 나무껍질처럼 거친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굽어져 나 있다. 거대한 손은 느린 곡선을 그으며 도연의 어깨를 잡으려 뻗었다.
도연은 멍하니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 영준이 도연의 몸을 잡아당겼다. 간발의 차로 벗어난 도연은 옆으로 쓰러졌다.
“일어나!”
우와악 하고 소리를 지른 영준이 도연의 몸을 질질 끌었다.
사냥감을 놓친 손이 매처럼 허공을 움켜쥔다. 그리고는 다시 휘적휘적 다가오기 시작했다.
“빨리!”
붉은 달 아래 나달나달해진 천이 흔들린다. 그 아래 검고 굵은 다리가 슬그머니 드러났다. 손과 똑같이 짐승의 발톱이 휘어져 나 있다. 똑바로 볼 수도 없을 만큼 추한 광경이다.
“보지 마! 얼굴을 보면 안 돼!”
빽 소리를 지른 도연이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빼 들었다.
“혼자 가.”
“뭐?”
“두고 가라고, 이대로는 둘 다 죽어.”
“무슨 헛소리야!”
화가 난 영준이 도연의 멱살을 잡았다.
“이놈은 느려. 혼자라면 갈 수 있어. 무조건 빛이 보이는 쪽으로 가면…….”
덜덜 떨면서 도연은 영준을 밀어냈다. 아니, 밀어냈다고 생각했다.
영준은 자신의 허리춤을 보았다. 도연은 영준의 셔츠를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마지막 힘을 다 짜낸다. 영준은 도연의 몸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무슨……!”
일어서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먹어주겠으니 울고 먹히니 웃어라 인간의 아이야 너에게는 좋은 일이다 먹어주겠으니 울고 먹히니 웃어라 인간의 아이야 너에게는 좋은 일이다 먹어주겠으니 울고 먹히니 웃어라 인간의 아이야 너에게는 좋은 일이다 먹어주겠으니 울고 먹히니 웃어라 인간의 아이야 너에게는 좋은 일이다 ’
노래처럼 음율을 담아 웅얼거리며, 놈은 다시 긴 손가락을 뻗었다. 그것을 피하자 새된 목소리의 여자가 욕설을 쏟아냈다.
‘이 잡놈들 눈알은 내가 먹을 거야!’
어느새 따라온 것들이 주변을 둘러싸려 한다. 영준은 젖 먹던 힘을 내 도망쳤다.
‘다리는 내가! 다리는 내가!’
광기가 가늘게 내린 이슬비처럼 온몸을 적셔온다. 이대로라면 죽기 전에 먼저 미쳐버릴 것 같다. 한 걸음마다 무릎이 경련하듯 떨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갑자기 일직선으로 뻗어있던 길이 사라졌다. 눈앞에 깜깜한 벽이 솟아오른 것처럼 동서남북을 구분하기 힘들다. 이대로 발 밑이 꺼져 끝없는 어둠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왁자하게 따라오는 무리를 피해 무작정 뛰며 영준은 절망적으로 외쳤다.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다.
그때 저 앞에 희끄무레한 형체가 나타났다. 여자였다. 하얀 무복을 입은 마른 여자가 작게 구겨진 종이인형처럼 얇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고개를 바닥으로 푹 숙인 여자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 얇은 입술, 아래를 향해 내리뜬 눈 옆에는 흉터가 져 있다. 공터에서 자신의 품에 안겨 죽은 무속인 처녀였다.
“너는…….”
슥, 하고 한쪽 팔이 올라간다. 그녀는 부러진 손가락들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오른쪽 방향을 가리켰다.
영준은 여자와 여자가 가리킨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저기? 저쪽으로 가란 말이야?”
대답 없이 뻗은 손은 단호했다.
“믿을 거야?”
도연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더 나빠질 것도 없어.”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다. 악다구니를 쓰는 괴물들이 뒤를 바짝 쫒고 있다.
“고마워.”
여자를 지나치며 고개를 슥 숙였다. 창백한 얼굴은 표정 없이 그대로 굳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일그러져 있지도, 고통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여자가 가리킨 방향은 지금까지와 달리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했다. 더구나 평지가 아닌 오르막길이었다. 느려진 걸음에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돌아보면 안 돼, 돌아보면 안 돼.
주문처럼 외우지 않으면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버릴 것만 같다. 몇 걸음이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그 변형된 육체의 모습은 얼마나 흉측한 것일까, 보고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무엇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낚아채지는 않을지 가능성의 범위를 줄여두고 싶었다.
붉은 달빛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온다. 그것은 탐스러운 꽃처럼 흔들리며 어둠에 유영의 흔적을 남겼다. 빛을 향해 가라고 했다. 무조건, 하지만 그대로 화르륵 타버릴지도 모르지.
부쩍 키가 낮아진 나무들이 좁은 길을 막아선다. 팽팽하게 당겨진 나뭇가지와 덤불이 얼굴을 후려쳤다. 달이 더 가까워진다. 더 이상 달이라기보다는 불덩어리 같았다.
사람 하나 빠져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진 덤불 사이로 몸이 걸린다.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회색의 긴 손이 뒤에서 뻗어 영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긴 손가락은 이마까지 휘감는다. 두 개, 세 개의 손이 머리와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어깨에 매달려 있던 도연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거 놔!”
영준은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회초리를 꺼내 무작정 뒤로 휘둘렀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불덩어리 같은 달이 바로 저기에 있다. 일렁이는 빛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영준은 있는 힘을 다해 수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와사삭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러진 가지들과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안 돼……!”
비릿한 냄새가 가까워진다. 뒷덜미를 잡은 손이 어깨, 등으로 수를 늘여 들러붙는다. 거세게 저항해보지만 유리한 싸움이 아니었다. 짐승의 발톱 같은 손이 사정없이 얼굴을 할퀴고 몸을 잡아 당겼다. 으드득, 청바지 위로 뜨거운 고통이 느껴졌다. 물어뜯은 것이다. 산채로 먹히는 것인가, 몸이 겨우 빠져나온 나무 덤불 속으로 다시 질질 끌려간다. 한쪽에 나동그라져 있던 도연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훠어이-! 이놈! 이놈들 훠어어이!”
숲이 술렁거리더니 달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훠어이-! 저리 가라, 이놈들 저리 가!”
빛이 눈을 찔러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달 주위로 사람 그림자가 일렁인다.
“흩어져라, 흩어져!”
긴 지팡이의 움직임에 따라 몰려들었던 것들이 달아난다.
“흩어지래도 이놈들, 흩어져!”
몸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처럼 영준과 도연의 몸을 지팡이가 마구 후려쳤다. 그런데 아프지 않고 도리어 시원했다.
“어이구? 사람인가?”
갑자기 매질이 멈추었다. 휙, 하고 둥근 불이 얼굴 옆에 다가와 비춘다. 눈이 부셔 손을 들어 빛을 가리고 찡그리자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 손님들이구만!”
둥글게 깎인 머리가 불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번들거린다. 주름진 얼굴이 하회탈처럼 활짝 웃었다. 회색의 낡은 승복은 흙과 나뭇잎이 붙어 엉망이었다. 손에 든 환하게 빛나는 것은 등불이었다. 주름진 종이 사이로 딴 세상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