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며칠을 계속해 비가 내렸다. 멈출 기미가 없는 폭우가 여름의 산을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해서 쏟아져, 바람에 기와가 무너지고 천장에는 누런 얼룩을 따라 빗물이 흘러 내렸다. 두 달 전부터 앓던 폐병은 이제 뼛속까지 파고들어 왔는지, 기침을 할 때마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뿌연 빗속에는 부를 사람도, 부른다고 와줄 만한 이도 떠오르지 않는다. 속가의 가족들이 생각나 누운 채 관세음보살을 외워보지만 오직 그뿐이다. 긴 세월의 정진도 때때로 찾아오는 그리움을 옅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질기고도 질긴 사람의 마음, 또 하나 벗어내야 하는 꺼풀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어찌 애틋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센 빗소리 속에서 벼락과 천둥에 무너지는 나무의 울음이 크게 메아리친다. 하루하루 거르지 않는 백팔참회, 빗속을 도는 도량전기도, 이 늙은 육신이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계속되는 기침에 지친 몸을 누인다. 감은 눈 위로 하얗게 번뜩이는 하늘의 불이 날카로운 빛을 비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거짓말처럼 멈춰 어찌나 날이 맑았는지, 하늘이 청명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네. 비와 함께 내 폐병도 개었어. 부처님 자비로 육신의 고통이 사라졌으니 연지연향(燃指燃香)은 못하더라도 처음 행자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마음으로 공부할 생각이라네. 처음 먹물 옷 입던 그 마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환하게 웃으며 노스님은 용머리를 닮은 주장자(좌선할 때에나 설법할 때에 가지는 지팡이)를 다른 손에 옮겨 쥐었다.
“그 날 아침부터 영가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네. 처음에야 혼비백산 했지만 이제는 뭐…….”
“네.”
바람이 청량한 공기를 담아 머리를 스친다. 영준은 차분하게 대답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고 있었다.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등에 업힌 도연은 스님이 있는 쪽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꺾고 있다. 절에서 나온 뒤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스님의 마음에서 나온 환상임을 알고 나자 더 이상 암자는 제 모습을 속이지 못했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허물어지기 직전의 폐사찰이 아침 공기 속에 드러나고, 그 쓸쓸함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불경 소리에 도연의 표정이 순간 얼마나 참담했는지. 충격 속에서도 영준은 그 순간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사람의 몸이 썩어 하얀 뼈를 드러낸 것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사람이 그런 모습이 되는 걸까. 얼마나 오래전에- 지내 왔을까.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낸 것일까. 그 믿음이 얼마나 깊으면 자신뿐 아니라 도연에게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상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옆에서 길을 안내하는 스님은 어제 그들을 구해주었을 때와도, 날씨가 좋을 것이라 웃던 때와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백골을 본 뒤, 법당에서 나온 스님을 마주했을 때 섬뜩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괴담에서처럼 금방이라도 이쪽의 깨달음을 추궁하며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영준은- 슬펐다.
“이 소롯길을 따라 쭉 가면 계곡이 나오는데, 봄이면 그 바위틈에 수달래(물가에 피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다네. 본래 수달래는 주왕산이나 지리산이 좋긴 하지만 여기도 볼만 하거든. 다음에 올 때는 가을이나 봄에 오시게. 겨울에는 고생스러워 지내기에는 좋지 않아.”
다정한 말은 도연을 향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처사님들한테 미안하기는 한데…….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라네. 보다시피 여기서부터는 길이 없어서 어찌 가야 할지 모르겠어. 사람이 다녀 생긴 길은 발길이 끊어지면 없어지는 모양이야. 다른 길로 돌아서 가봐야 마찬가지라, 이 근처 지리는 내가 잘 모르겠네만……. 어쩐다?”
한참을 앞서 걷던 노스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발을 멈추었다. 영준은 따라 멈춰서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발로 만들어놓은 자연스러운 길은 울창한 숲 가운데에도 확연히 황토색 흙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마치 눈앞에 거대한 벽이라도 서 있는 것처럼 한치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분명 내 기억에 이 근처에 가는 곳이 있었는데 말이야. 큰 노송의 왼쪽을 따라가면 강가로 가는 돌길이 있었고 말이지.”
“…….”
“어쩌시겠나?”
“여기서부터는 저희들끼리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려고?”
“생각해둔 곳이 있어서요. 거기부터 들려야 할 것 같아서…….”
영준은 말끝을 흐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노스님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범상치 않은 처사님들이니 내게 말 못할 사연도 분명 있으실 게야. 비록 하룻밤 만난 인연이나 그 끝이 어디에 닿을지는 오직 부처님만 아시겠지. 부디 감관을 잘 다스려 소망 다 이루시고, 아픈 동생분께서도 꼭 일어나시길 기원 드리겠네. 비록 세월 가면 허물어지는 덧없는 육신이라 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꼭 기억하시고…….”
“감사합니다.”
“처사님께서는.”
주장자를 짚고 한발 다가온 노스님이 도연에게 다가갔다. 도연은 고개를 들었으나 스님과 눈을 맞추지는 않았다.
“부디 마음을 옭아매는 모든 것들에게서 벗어나기를 빌겠네.”
“…….”
“가보겠습니다.”
대답 없는 도연을 대신해 영준이 인사를 하자, 스님은 싱긋 웃으며 주장자를 한쪽 팔에 끼우고 합장을 했다. 그리고는 기다리지 않고 뒤로 돌아왔던 길을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햇살이 부딪히는 승복이 희미하게 빛을 그대로 품은 듯 투명하게 빛난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영준은 혹시라도 자신이 무언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분명 눈앞에 이어진 길을 스님은 볼 수도 갈 수도 없는 길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는 거겠지. 저 절에 지박령으로 붙어있는 모양이니.”
마음을 읽은 듯, 도연이 툭 뱉어냈다.
“지박령?”
“한 장소에, 말하자면 저 절에 붙어 있단 소리야.”
영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
“지박령일 뿐이야.”
도연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싸늘하고 냉정하게 반복했다.
“제가 죽은 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가 아니었어도 보였을까?”
“그런 건 나도 몰라.”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스님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중이 되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렇지만, 가끔은 성불만이 다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어쩌면 다 이루지 못한 길을 위해 공부를 하며 이승을 헤매는 것도…….
“너 지금, 저런 귀신이라면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
“글세…….”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전에는 어떻게든 힘을 빌려보고 싶었는데, 진실을 알고 나니 순순히 스님이 떠나준 것에 안심하게 된다.
“어쨌든 우리를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잠시 말이 없던 도연은 영준이 좁은 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야 침묵을 깼다.
“아무리 좋은 혼령이라고 해도, 곁이 있어서 득이 될 건 아무것도 없어.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가 빼앗기고 내 생명을 갉아 먹혀 결국에는 독이 될 뿐이야.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참을 걷자 거대한 소나무가 나왔다. 뿌리가 다 드러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소나무의 잎은 반은 누런색으로 죽어 있었다. 좁은 길은 그 소나무를 한 바퀴 돌아 이어진다.
아침이지만 나무 그늘 아래, 흔들리는 잎사귀 아래의 수근거림은 여전했다. 모험심 강한 등산객이나 올 법한 좁고 외진 길을 한참을 걷자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계곡이 아니라 능선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맞았는지, 조금씩 사람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방향 표지판이 나타났을 때는 어찌나 안도를 했는지 도연을 업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을뻔 했다.
생각보다 쉽게 산을 빠져나오자 어젯밤의 일이 정말 있던 일이었나 싶었다. 곧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계곡이 발아래 보였다. 차를 두고 올라왔던 곳에서 아래쪽으로 빠져나온 것 같았다.
“병원으로 먼저 가자.”
“차로 가.”
“발 그대로 두면 안 돼. 병원부터 가서…….”
“배낭 두고 다니고 싶지 않아. 일단 차로 가. 너 이대로 날 업고 병원까지 갈 생각이야?”
그도 그랬다. 택시를 타고 싶어도 지갑은 차에 두고 내려 주머니는 텅 비었다.
웃옷은 벗은 채 남자 하나를 업고 자갈길을 걷고 있자니, 물안개 핀 한탄강 주변을 산책 나온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부지런 한만큼 호기심도 많은 사람들은 저 둘은 무슨 사이이고, 어쩌다 저런 꼴이 되었는지 반짝이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대단한 상상력도 진실의 근처 가까이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겨우 차에 도착하자 팔다리가 천 조각처럼 흐물거렸다. 앞좌석을 열어 도연을 내려놓고 난 영준은 차에 기대듯 누웠다. 그리고 끙끙거리며 허리를 쭉 폈다.
함부로 주차된 꼴을 본 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렇게 쳐 박아 놓듯 세워진 차는 어제 영준이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보여줬다. 괜히 마음이 울렁거린 도연은 뒷좌석에 있던 자신의 배낭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배낭은 반쯤 열려 있었다. 따로 없어진 것은 없었다. 손전등을 찾기 위해 영준이 열어 놓은 것 같았다. 간단히 짐을 확인한 도연은 안쪽에서 티셔츠 하나를 꺼내 영준에게 내밀었다.
“입어.”
“잠깐만…… 세수 좀 하고 올게”
영준은 팔로 이마를 슥 훔치고는 물가로 향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고는 해도 더위는 여전해서, 영준은 내려오는 동안 땀을 꽤 흘렸었다. 강가로 내려가는 영준의 맨 등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허리를 따라 움푹 한 등뼈의 곡선이 극적으로 파여 있다.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의 몸이다.
흐트러진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여대생 몇 명이 식기를 헹구다 말고 드러난 상체를 흘끔거렸다. 허리를 숙여 몸에 팔과 가슴을 닦은 영준은 그대로 물을 떠 뜨거운 머리를 식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움찔하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 얼어붙어 있다 뭔가를 털어내듯 몸을 비빈다.
이내 진저리를 치며 물에서 멀어진 영준은 일그러진 얼굴로 차로 돌아왔다. 굳게 닫힌 이 사이로 참지 못한 욕설이 비집고 튀어나온다.
“왜?”
도연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물기가 남은 이마를 쓱 밀어 올린다. 그러나 흔들리는 눈은 동요하고 있음을 숨기지 못했다.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마.”
빨갛게 충혈된 눈이 마주쳤다. 도연은 모르는 척 옷을 내밀었다.
“뭐가 됐든지 말이야.”
옷을 받은 영준은 양팔을 끼우고 티셔츠에 목을 밀어 넣었다. 다소 좁게 빠져나온다 했더니 몸에 타이트하게 붙는다. 명백히 도연보다 한 사이즈는 큰 것이 분명하다. 얇고 하얀 천은 몸의 선을 오히려 벗었을 때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제부터 자꾸만 의식하게 되는 육체적 차이에 날카로워진다. 열등감 같은 것은 아니지만……. 도연은 찡그린 얼굴로 물가로 시선을 돌렸다.
다리를 훤히 드러낸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얇은 샌들을 신고 강 속에 선 하얀 종아리 아래, 찰박거리는 물이 서늘한 안개를 피워 올린다. 그 속에서 솟아 나온 투명하고 하얀 손가락은 여대생들의 무릎 바로 아래까지 휘감아 더듬는다. 불쾌한 광경이었지만 물이 낮은 만큼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준에게는 그 광경이 통 못 견딜 것인지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가 안절부절못했다. 참견이 하고 싶은 건가 했지만 어제부터 유독 짙어진 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기 전에 전화 해볼래?”
“어딜?”
“병원에.”
모르는 척하던 영준이 피식 웃었다.
“됐어. 핸드폰 약 다 돼서 켜지지도 않아.”
“저쪽에 공중전화 있는 것 같던데.”
“나중에 하지 뭐…….”
도연은 발을 쭉 뻗어 뒷좌석에 가로 앉았다.
“말해 두는데, 앞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때 하는 습관을 들여. 뭐가 됐든 시간이 있을 때, 생각이 났을 때 바로 하란 말이야. 네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중요한 일을 미루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예측 가능한 생활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도연은 자신의 발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 했다. 그답지 않게 밝은 행동과 배려에 반해 도연의 꼴은 말이 아니다. 어제의 일이 다시 악몽의 파편처럼 마음을 찔러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충분히, 여러 번 죽었을 수도 있었다.
영준은 앞좌석 컵홀더를 열어 동전 몇 개를 꺼냈다.
“오 분만 있다 출발하자.”
철컥, 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낡은 공중전화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적은 탓인지 여기저기 벗겨져 검게 얼룩져 있었다. 영준은 눈을 감고 이마를 숙여 전화기 몸체에 기댔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단단하게 머리를 누른다. 냉기가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존재의 묵직함이 가지는 특유의 현실성이 필요한 때다.
뚜르르 하는 긴 벨 끝에 전화가 이어졌다. 사무적인 말투의 직원에게 언제나처럼 간략한 확인 절차를 진행하자 익숙한 대기시간이 이어졌다. 최소영 환자, 특별한 차도 없음 정도면 최선일 것이다. 긴 고군분투는 기대치를 최대한 낮추게 만든다. 이제 바라는 것은 현상유지일 뿐이다.
안면을 익힌 간호사에게 혹시 또 발작은 없었는지 확인하고- 같은 생각을 할 무렵이었다. 긴 대기 끝에 전화기 너머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소영 환자……보호자……잠시만……이리 줘봐요!”
끊기던 음성이 불현듯 확실해졌다. 전화기 너머 누군가 여보세요 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여보세요? 무슨 일이죠?”
“최소영 환자 보호자님? 최영준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연락이 안 됐습니까!”
“예? 핸드폰이 꺼져서…… 무슨 일이 있나요? 무슨 일이에요?”
“최소영 환자가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없어졌다구요!”
폐 속의 공기가 한순간 빠져나갔다. 산소가 부족해진 뇌는 핑 하는 실이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순간을 정지시킨다.
“무…… 뭐라고요?”
“여보세요, 최영준 씨! 듣고 계시죠?”
“듣고, 듣고 있습니다. 소영이가 없어져요? 어떻게요? 언제?”
“어젯밤에 사라졌습니다. 나가는 걸 본 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감쪽같이……. 구속구도 풀어져 있었어요. 핸드폰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계속 닿지를 않아서 저희 쪽에서도 어떻게 손 써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변명하려는 것도 아니고, 의사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요!”
“밤…… 밤이면.”
영준은 머리를 움켜잡았다.
“환자분이 갈 만한 곳을 찾아보세요. 멀리 갈 수 있을 만한 체력은 아니니 어쩌면 댁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실을 비웠다고 해서 신고하거나 찾기 위한 능동적인 방법을 취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시겠지만, 동생 분은 지금, 그게…….”
전화기 너머 의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 내에 이미 퍼져 있을 ‘그날’의 목격자이기도 한 담당의는 결국 두서없는 말을 쏟아내고 만다.
전화를 끊은 영준은 잠시 입을 막은 채 공중전화기를 노려보았다.
차에서 영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도연은 깜짝 놀라 차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지는가 싶더니 전화를 끊은 영준이 느닷없이 공중전화기를 후려친 것이다.
“뭐하는 거야?”
가만 보면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 대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다른 물건에 화풀이를 한다. 저러면 결국 자해 밖에 되지 않을 텐데.
빠르게 다가오는 영준의 표정은 본 적도 없이 굳어 있었다. 그대로 운전석에 타더니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왜?”
바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자갈을 튕겨냈다. 핸들을 잡은 손등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소영이가 없어졌대.”
“언제?”
“어젯밤에.”
밤이라면 어제 둘이 아직 산에 있을 때다. 기어를 당기는 손이 거칠다. 덜컹거리며 차가 도로 위로 올라섰다. 방향을 급하게 돌리자 타이어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도연도 당황스러웠다. 병원에서 보았던 것으로 미루어 혼자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어려워 보였는데. 차가 크게 뒤뚱거려 도연은 얼른 앞좌석 등받이를 잡았다.
“어디로 가려고?”
“일단 집으로 가봐야지. 혹시 거기로 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 다음에 병원으로 갔다가…….아니다 병원부터 가야겠구나.”
“내 발목은 집어치워. 그보다 집으로 간다고? 고작 집에 가려고 병원에서 나왔을 것 같아?”
“그럼?”
“일단 멈춰봐. 진정하라고.”
도연은 등받이를 잡고 있던 손으로 영준의 머리를 툭 쳤다.
“세워.”
명령조에 차가 끽 하는 짧은 소리를 내며 멈췄다. 돌아보는 영준의 눈이 빨갰다. 긴 밤을 보낸 피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수면부족과 함께 머릿속이 엉망일 것이다. 이럴 때는 누가 어떻게 하라고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차라리 반가운 일이다.
“잠깐만, 생각 좀 해보자.”
“……왜 하필이면 내가 없을 때.”
핸들에 팔을 올린 영준은 두 눈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머리 안쪽에서부터 압력이 높아져 안구가 터질 것 같다.
“왜 갑자기 병원에서 나왔지? 왜 하필 지금이냐고. 우리가 여기 오자마자 병원에서 빠져나왔다는 거잖아.”
“혼령들은 대부분 죽고 나서도 살아 있을 때의 일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자기가 주로 지냈던 장소나 집착하던 사람의 주변을 배회하지. 자살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살자가 나고, 사고가 많이 난 곳에서 연속해서 사고가 나는 게 바로 그런 이유야. 그건 죽은 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마찬가지야.”
도연은 산 쪽을 향해 한쪽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밤을 지낸 절이 있는 방향이었다.
“너도 봤다시피.”
“그럼 도대체 어디로 갔다는 거야?”
“글쎄…….”
도연은 불확실한 예감을 안고 뒷좌석 창을 통해 강을 바라보았다. 물고기 비늘처럼 조각조각 흩어진 수면은 여름 햇살 아래 평화롭게 흐르고 있다.
“어?”
영준의 몸이 멈칫했다. 앞 유리창에 고정된 눈이 순간 커진다.
노란 택시 하나가 도로를 따라 나타났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던 택시는 도로 한쪽에 비스듬하게 멈춰 섰다. 이내 뒷좌석 문이 열렸다. 마르고 가느다란 발이 차 밖으로 내려선다. 맨발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흙 위에 내려놓은 두 개의 얇은 다리에는 자잘한 흉터가 가득했다.
흐느적 차 밖으로 나온 여자의 어깨에는 분홍색의 긴 가디건이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처럼 걸쳐져 있었다. 가디건 안에는 하늘색의 자잘한 글씨로 대일 병원이라고 새겨진 환자복이 보였다. 여자는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충혈된 눈을 돌린다. 형형한 빛을 뿜어내는 눈 아래에는 뺨까지 길게 내려온 그림자가 멍처럼 시퍼런 색을 띄고 있었다. 그 아래 온통 하얗게 터진 입술에는 피딱지 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병색이 짙어 보였다.
여자는 무표정하게 자신이 내린 주변을 느리게 훑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걸음으로 택시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졌다.
앞문이 열리고, 중년의 기사가 따라 내렸다. 머리가 반쯤 샌 남자는 움푹 들어간 소 같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자신의 승객을 겁먹은 얼굴로 불렀다.
“아가씨!”
그러나 생각보다 작게 나온 음성은 여자에게 닿지 않았는지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 아가씨!”
용기를 내어 재차 불렀을 때였다. 몇 미터 앞에 세워져 있던 차의 문이 열리고, 젊은 건장한 남자 하나가 뛰어내렸다.
“소영아!”
놀란 얼굴로 달려온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았다. 폭 감싸진 여자의 뒷머리를 한 손으로 감싼 남자가 눈을 감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일행이 있었네. 아이고…….”
택시기사도 그를 따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하고 길게 담배를 빨아들인 기사는 깊이 삼켰던 연기를 동그랗게 말아 뱉어냈다.
“아니 컴컴한 새벽에 웬 아가씨가 택시를 잡기에 난 또 별생각 없이 태웠지. 그런데 태우고 보니 뭔가 이상하잖아. 어디로 가냐고 하니까 한탕강으로 가재. 이 새벽에? 시경계 넘어서면 십만 원은 족히 나올 거라는데도 괜찮다고 해서 일단 출발은 했는데, 이상한 거야. 처음에는 바람난 남편 잡으러 가는 새댁인가 했는데 행색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뭐가 캥겨. 그래서 차 섰을 때 백미러로 자세히 보니 아 웃옷 안에 입은 게 환자복이네? 아 이런 염병할, 걸렸구나 싶은 게 식은땀이 죽죽 흐르는데 아주…….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 어디까지 가주세요, 해서 가봤더니 그날이 제삿날이었더라 뭐 이런 거. 다른 기사들이 가끔 귀신을 봤다느니 누가 어디서 귀신을 태워서 그랬다느니 할 때 뭔 놈의 염병할 거짓말이냐고 했었는데 아 내 일이 되니까 이게 진짜구나 싶은게. 거기다 하필이면 가자는 곳도 강이야. 여기가 제가 죽은 곳이에요 하면 어떡 하냐고. 뒤돌아보면 뒷좌석에 물만 흥건하니 젖어가지고 없어져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모골이 다 송연하더라고.
아 거기다 아직 새벽 네 시라 길은 깜깜하지, 이미 출발했는데 중간에 내리라고 하는 것도 무섭고. 이러다 갑자기 없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가는 내내 백미러로 확인을 했는데 그럼 뭐해. 정작 뒤돌아보면 없을 수도 있는 걸.
오만가지 별의별 생각이 다 나고, 늙은 감자 같은 마누라에 싸가지 없는 애새끼들 얼굴까지 아른아른 거리는데……. 오금이 저려 환장을 하겠는 거야. 일단 혹시 모르니 죽으나 사나 한탄강으로 가는데 하필 오늘따라 도로에 차도 없고 다른 손님도 없고. 나중엔 언제 없어지나 차라리 빨리 사라져라 하고 빌었다니까. 기름값이라도 안 버리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기사는 투덜투덜 하소연을 쏟아낸다. 도로 한 쪽에 쪼그리고 앉아 숨 돌릴 새도 없이 간밤의 일을 떠들어대 기사는 은근히 진짜 사연은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귀신은 아니라니 다행이지만, 그럼 도대체 어쩌다 다 큰 아가씨가 저런 꼴로 다닌거야? 묻고 싶은 눈치가 가득하지만 상대하는 것은 이빨도 안 먹히게 차가운 표정의 도연이다.
“여기요.”
만 원짜리 열 장을 세어 건네주자 기사는 얼른 담배를 털어 바닥에 던졌다. 주머니에 돈을 넣은 기사는 아무래도 궁금하단 얼굴로 영준과 소영을 흘끗거렸다.
“운전 조심해서 가세요.”
등을 떠미는 인사에 기사는 결국 호기심을 채우지 못하고 주춤주춤 차로 돌아갔다. 택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지자 도연은 푹 한숨을 쉬었다.
낡은 가죽 지갑 안에는 이제 천 원짜리 두 장뿐이다. 지갑 한쪽에 꽂힌 가족사진에 눈이 간다. 얼마나 꺼내 보았는지, 빠져나온 모서리가 나달나달했다. 영준의 집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사진이다. 가족사진 위에는 각각의 증명사진이 함께 끼워져 있었다. 도연은 지갑을 접어 앞좌석에 던졌다.
영준은 차 앞좌석에 소영을 앉혀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녀가 한사코 차에 타기를 거부하는 통에 운전석에 겨우 엉덩이만 걸쳐놓은 상태였다. 그 앞에 무릎을 꿇다시피 하고 앉아 열심히 말을 걸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차 밖으로 빠져나온 맨발은 영준의 허벅지 위에 올려 있었다. 맨발로 얼마나 걸었는지 온통 상처투성이다.
도연은 차에 기대 한 발로 일어났다. 영준은 한 손은 그녀의 손에, 한 손은 발에 올려두고 있다.
“소영아.”
“…….”
말을 걸고 손을 잡아도 그녀에게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멍한 눈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는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병원에서 보이던 수귀는 나오지 않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혼자서 병원을 나와 밤의 도로를 계속해서 걸었단 말인가. 이곳에 오기 위해서?
갑자기 소영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는다.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미소였다.
도연은 영준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잠깐 가서 술 한 병만 사와. 도수가 제일 높고 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걸로.”
“술?”
“그래. 동생은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
“여자애 하나쯤은 잡고 있을 수 있어. 빨리 갔다 와.”
영준이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도연은 잡고 있던 소영의 손목을 놓았다. 툭 하고 떨어진 손이 차 문에 부딪혔다. 그러나 소영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진저리를 치며 바지에 손을 슥슥 닦아내자 꼭 닫혀있던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저 남자는 정이 깊구나. 이용하기 쉽겠어.”
“…….”
못들은 척 도연은 강가를 살폈다. 아직 아침이지만 사람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곳에 있다가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 것은 질색이다.
“하지만 정이 깊다 해도 남자는 남자, 믿어서는 안 되지.”
상류로 가는 것이 좋을까 하류로 가는 것이 좋을까.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야 한다. 어제의 다리 쪽으로 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역시 하류가 답이다.
“친동생이라고 해도 여자아이, 마음속으로는 어떤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손을 잡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니 몸을 만지는 것에도 거리낌 없…….”
“어디서 이렇게 썩은 냄새가 나지.”
“…….”
도연은 자갈을 집어 도로 건너편으로 던졌다.
“여름이니까 뭐가 썩어도 썩겠지만, 지독한 냄새네.”
말이 나오는 순간 쳇, 하고 혀를 깨물었다. 순간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무시하고 못 들은 척 했어야 했는데. 운이 좋다면 혼잣말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쪽을 노려볼 뿐이다.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얼굴로.
잠시 후 영준이 돌아왔다. 손에는 두 개의 소주가 들려 있었다.
“가게를 찾지 못해서 휴가 온 가족에게 빌렸어.”
“도수는?”
“오리지날이니까 21%일 거야.”
“동생, 술 잘해?”
“아니. 전혀 못 해.”
“두 병이면 되겠네.”
“먹이려고?”
“아니, 내가 먹으려고. 날이 더워서 그런가 목이 타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란다. 무표정한 도연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영준에게서 긴장이 살짝 풀어졌다.
“농담을 다 하네.”
“일단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자.”
“지금?”
“응.”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병원부터 가자. 전화도 해줘야 하고. 얘도 그렇지만 너 지금 걷지도 못하잖아.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는데 방치하면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어.”
“지금은 별로 안 아파.”
도연은 차에 기댄 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짓말 하지 마. 너 거짓말 할 때 눈썹 드는 건 알고 있어?”
영준이 한쪽 손으로 오른쪽 눈썹을 가리켰다. 도연은 뜨악한 얼굴로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의외로 알기 쉬워. 처음에야 깜빡 속았었지만.”
다시 소영의 앞에 앉은 영준은 그녀의 발을 들어 부드럽게 쓸었다. 작고 날렵한 발이 커다란 손안에 쏙 들어간다. 보기와 다르게 상냥한 손길이었다.
“일단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자. 되는지 안 되는지 한번 보자고.”
도연은 뻘쭘하게 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