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동생은 다른 병실에 있어. 너보다 먼저 깨어났어. 의식은 돌아왔는데 폐수종 때문에 집중 치료가 필요하대. 그래도 의사들이 놀랄 정도로 빨리 회복하고 있다고 했어.”
영준이 눈을 뜨자마자 도연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눈이 부신지 영준이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눈 떠!”
도연의 일갈에 영준의 눈이 반사적으로 반짝 떠졌다. 그리고는 잔뜩 찌푸린다.
“감지 마! 뜨고 있어! 아무리 피곤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쓰러져서 20시간을 쳐 자는 놈이 어디 있어?”
“여기가…… 어디야?”
“병원이지 어디겠어.”
보면 모르냐는 식으로 도연이 링거와 병원커튼을 가리켰다. 영준은 손등을 들고 꽂혀있는 바늘을 확인했다.
“어쩐지 아프더라…….”
다시 베개로 머리를 파묻은 영준이 중얼거렸다.
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에 쳐놓은 커튼을 들추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병실 복도로 나가 마침 지나가는 간호사를 불렀다.
“최영준 환자 깨어났어요.”
“네- 잠시만요.”
바쁘게 의료용 카트를 밀고 가던 간호사는 그대로 데스크로 직행했다. 다시 커튼을 열고 침대 옆에 앉자 영준이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보고 있었다.
푹 들어간 눈 밑이 갈색으로 그림자가 져 있다. 얼굴 여기저기에는 여기저기 긁힌 자국과 멍이 가득했다. 몸은 더 했다. 목과 어깨에는 심하게 물어 뜯겨 살점이 아예 패인 곳도 있다. 그러나 가장 의사들을 놀라게 한 것은 영준의 발이었다. 발목과 종아리,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빽빽하게 난 그 시커먼 손자국들…….
멍이라고 하기에도 심할 정도로 피부에 새겨진 수십의 불가사의한 흔적에 간호사부터 의사까지 번갈아가며 영준의 병실을 들락거렸다. 나중에는 소문이 퍼져 일반 환자들까지 도연이 화장실을 간 틈을 타 시트를 들춰보러 들어왔다.
의사들은 결국 그것이 강바닥의 수초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억지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 설명에 납득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간혹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도연에게 넌지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도연 특유의 차갑고 싸늘한 눈빛에 그만 기가 죽어 물러났다.
결국 사방을 벽처럼 커튼으로 막고 가능한 자리를 비우지 않고서야 비로소 사생활이 지켜졌다. 그리고 이 커튼은 병원에 득실거리는 혼령들로부터 둘을 가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아니, 눈을 가려주는 것일까. 지방 병원이라고 해서 사정이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참을 수 있었다.
큼큼, 하고 영준이 목을 울렸다. 통증이 오는지 얼굴을 찌푸린다.
“물 좀 마실래?”
“됐어. 앞으로 최소한 한 달 정도는 물은 입에도 안 댈 거야.”
지친 얼굴로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에 도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영이 괜찮다고?”
“그래.”
“완전히 의식을 차린 거야?”
“차렸어.”
“폐수종 말고는……. 괜찮대?”
“그래. 상태가 조금 악화되긴 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빨리 낫고 있다고 했어. 이 병원 사람들도 이런 건 처음 본다고 말하더라. 생각보다 강에서 물도 많이 마시지 않았대.”
“폐수종은 전부터 있었어. 서울에 있을 때부터…….”
중얼거리던 영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건.”
“나갔어.”
“완전히?”
“그런 것 같아.”
“어느 정도 확실한 거야?”
“80% 정도. 물속에서 소영이가 숨을 멈췄을 때, 들어왔던 잡귀들까지 모두 나간 것 같아. 아마 죽었다고 생각해 다른 몸을 찾아 떠난 거겠지.”
조심스러운 도연의 대답에 영준의 얼굴에 안도가 스며든다.
“네가 80%이라고 말하면 99%인 거네.”
“80%야.”
“99%라고 믿을게.”
“왜…….”
도연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살짝 비튼 고개로 도연은 영준이 덮고 있는 침대 시트를 노려보았다.
“믿지 마, 내가 하는 말.”
겨우 내뱉은 소리에 영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소리야?”
“강에서 난 아무것도 못 했어. 애초에 널 그곳으로 데려간 것도 특별한 이유나 해결책이 있어서가 아니야. 아마 내가 뭔가에 속았든가 홀렸었던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구조하러 온 사람들도 내가 부른 게 아니야. 우연히 지나가던 레프팅 배가 정말 우연히 너를 본 거야.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둘 다 거기서 죽었을 거야. 난 그냥 거기에 앉아 있었어. 아무것도 못 하고, 심지어 119를 부른 것도 다른 사람들이었어. 난 그냥 앉아서, 네가 죽고 나면……. 앞으로 또 이 짐을 어떻게 지고 살아가야 할지, 오직 내 걱정만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내 말 믿지 마.”
단숨에 쏟아낸 말의 끝에 도연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것도 전부를 털어놓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스스로 싫어진다.
“네가 하는 말, 뭐?”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영준이 다시 말했다.
고개를 든 도연은 방금 자신이 털어놓은 고백이 자신의 상상 속의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다.
“왜 믿지 말라는 거야? 네가 아니었으면 난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네 덕에 동생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어. 어디로 와야 할지도 알았고, 결국에는, 물론 좀 그런 방법이긴 했지만 동생은 이제 나았잖아. 그래, 그 물귀신……. 그놈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난 이걸로 대만족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우리 셋 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솔직히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찬찬히 생각해볼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해서라도, 평생에 걸쳐서라도 꼭 갚을게.”
“……그건.”
“난 종교가 없어. 신을 믿어본 적도 없고. 소영이 일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밤새 기도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빌어도 봤지만 대답해준 건 아무도 없었어. 너뿐이야. 나한텐 네가 종교고, 기도의 보답이고, 믿음이야. 모르겠다, 내가 어쩌면 아직 정신이 좀 없어서 오버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난 이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고르라면 제일 먼저 널 고를 거야.”
말문이 막힌 도연은 그저 입을 벌린 채 영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영준이 팔을 들어 이마에 올렸다.
“너 말이야……. 목 아픈 사람한테 이렇게 말을 많이 시키면 안 돼. 그냥 고맙다 한마디로 끝내려고 했는데 쓸데없는 말을 이렇게 많이 했잖아.”
“어…….”
뭔가 말하려는데 커튼이 차악- 하고 열렸다. 뿔테 경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차트를 들고 발치에 서 있었다. 그는 침대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보고는 ‘최영준 씨?’ 하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네.”
“유명인사께서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눈이 마주치자 영준이 ‘무슨 소리야?’ 하듯 찌푸렸다.
소영은 침대에 얇은 종이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안색도 좋지 않고 몸에는 이것저것 줄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맑고 목소리도 또렷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지방에 있는 병원이야.”
“왜 서울이 아니라?”
“아무것도 기억 안 나니?”
“응. 무슨 꿈을 꾼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은 안 나. 아우……몸이 왜 이렇게 온통 아프지…….”
“좀 쉬어. 나중에 설명해줄게.”
“오빠.”
“응?”
“저 뒤에 있는 분은……누구야?”
소영이 도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병실에 들어오기 싫다고 한사코 거부하던 도연은 결국 병실 문 밖에 서 있었다. 반만 보이는 뒷모습을 용케 발견한 것이다.
“저 사람은, 그러니까. 저기, 친척이야. 우리를 도와준.”
“그래? 그렇구나…….”
소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계속 오빠 혼자는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아직 몸을 덮고 있는 두꺼운 피로에 갑작스럽게 몰려온 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도연은 병실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영준이 동생의 손가락을 살그머니 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병실을 나와 과장되게 씩씩한 얼굴로 ‘멀쩡하네!’ 하고 말했다.
“네, 지금은 병원입니다. 상태도 많이 호전됐어요. 아직 움직이지는 못해서 이번 주는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네,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그럼요. 네.”
통화를 끝낸 영준이 지친 얼굴로 전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왜?”
“아니 그냥.”
여차, 하고 영준은 전화기 옆의 의자에 앉았다. 1층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기는 환자들이 주로 사용해서인지 푹신한 의자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등받이는 없었지만 일단은 서 있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지치네.”
“그래.”
“너도 앉아.”
영준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도연은 발목 염좌용 석고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목발도 권유받기는 했지만 한사코 싫다고 거부했다. 어찌 되었건 남이 쓰던 물건은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영준은 자신의 바지를 살짝 걷어 올렸다. 발목부터 바지 단 속까지 보라색이다 못해 검은색으로 보이는 멍 자국이 제 피부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누르기는커녕 가만히 있어도 피가 몰린 것처럼 하체가 온통 쑤셨다.
“징그러워.”
“서서히 없어질 거야.”
“아야야…….”
다리를 보느라 몸을 굽히자 이번에는 갈비뼈가 아팠다.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영준은 잠깐 동안 숨을 멈췄다.
물에서 건져졌을 때 응급처치로 받은 심장마사지는 목숨은 건져줬지만 갈비뼈를 몇 대 부러뜨려 놓았다.
“엉망진창이구만.”
도연은 혀를 쯧쯧 찼다.
“멀쩡한 곳이 없네.”
영준이 문득 웃었다.
“소영이 이 안 부러졌나 몰라.”
목에 난 상처는 몇 바늘을 꿰맸다. 살점이 뜯긴 부분은 살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반창고를 붙여놓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 침이라는 게 그렇게 독한 거예요. 상처를 치료하며 간호사가 새삼스럽게 말했지만 그걸 몸으로 경험한 사람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올라가자.”
“잠깐만……. 조금만 더 쉬고.”
영준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참기 힘들지?”
도연은 별다른 대답 없이 자신의 기브스만 빤히 바라보았다. 병원 로비는 비록 문으로 분리되어 있기는 했지만 장례식장과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죽은 이들에게 문은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로비를 헤매고 다니는 혼령들 중 대부분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이들은 더 했다. 그들은 사고 당시의 부상 모습 그대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들리지 않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를 봐- 무시하지 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병실에 있으라니까…….”
“괜찮아.”
“한 번 죽었다 깨서 그런지, 체력이 엉망이야. 1에서 50, 100으로 올리는 건 쉬운데 마이너스면 뭐가 참 어려워…….”
“그런 소리 하지 마.”
도연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영준이 그렇게 말하는 게 싫었다. 그는 자신이 강에 있을 때 죽었던 것 같다고 했다. 몸에서 빠져나와 물속의 광경을 외부에서 바라보았었다고 말이다.
도연은 착각일 뿐이라고 했다. 의식을 잃었을 때 잠시 동안 꾼 환각일 뿐이라고.
“가자.”
영차하고 일어난 영준이 먼저 앞서서 계단으로 갔다. 5층을 올라가야 한다. 발이 불편한 도연이나 여기저기 금이 간 영준이나 남들이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결정일 것이다.
띵-- 하는 소리를 내며 그들이 지나쳐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르르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내린 사람들만큼 엘리베이터 안으로 몰려들었다. 그 빽빽한 사람들 사이로 아래턱이 없어 식도가 그대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도, 옆에도. 아무리 사람들이 내려도 병원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다.
비상구 문을 열고 겨우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영준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엎어졌다.
땀이 비 오듯 흘러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병원 공기 정말 지겹다.”
“퇴원부터 해야지.”
보호자용 침대에 앉은 도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쯤이면 마당이 밀림이 따로 없을 거야.”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린다.
“왜?”
“봤잖아 우리 집. 마당 정원에 화초하고 풀을 워낙 아무렇게나 심어놔서 조금만 손질 안 해줘도 금방 허리까지 자라. 소영이 아팠던 뒤로는 손을 놓고 있었는데 거기다 지금쯤이면 말도 못 하겠지 아마…….”
“얼마나 지났다고 그래?”
“얼마?”
“병원에 입원한 날까지, 이제 며칠이나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말하면서도 내심 도연은 놀라고 있었다.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은 것인가. 삼사일의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서인지 일주일 정도는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주일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좀 번잡스러웠어야지.”
“그래.”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아무렇지 않게 나누던 대화가 갑자기 뚝 끊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각자의 침묵이 아닌,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던져져 있고, 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누군가 먼저 설명해주길 바라는 어색한 정적이었다.
도연은 손을 뻗어 입원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집었다. 그리고 서둘러 뚜껑을 열었다. 따가각 하는 소리와 함께 주스가 바닥으로 흘렀다.
“앗……!”
“아.”
영준이 몸을 일으켜 물티슈를 집었다. 그리고 몇 장을 뽑아 도연에게 건네주었다. 얼마 들어 있지 않던 비닐포장지 안은 금세 비었다.
도연은 물티슈로 먼저 옷과 주스가 흐른 기브스를 닦아냈다. 그리고 영준에게 손을 뻗었다.
“더 줘봐.”
“잠깐만.”
영준은 서랍을 열어 새것을 다시 꺼냈다. 한꺼번에 안에 든 것을 거의 다 뽑아낸 도연이 바닥에 흘린 음료수를 슥슥 문질렀다. 그리곤 아직 마시지도 않은 병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렸다. 꼼꼼히 바닥을 닦아낸 뒤 남은 한 장을 마저 뽑아 자신의 손을 닦았다.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듯 경건하기까지 한 집중이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주스를 집은 영준은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안 먹지? 나 다 마신다.”
“어…….”
꿀꺽꿀꺽 들이키는 노란 음료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아쉬운 듯 입을 땐 영준이 빈 병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양이 왜 이렇게 적어.”
“물은 한동안 안 마신다며?”
“이건 물 아니잖아.”
그러던지, 하고 말한 도연이 빈 물티슈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어디랄 데도 없이 시선을 던지던 도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차는 내가 쓸게. 곧 신고가 들어갈 테니까 어차피 오래는 못 몰지만. 번호만 떼면 서울까지 가는 데는 문제없을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구한 차잖아. 어차피 팔기도 애매한 문제고.”
“그게 아니라.”
영준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가려고?”
“일단은 빌라로 가야지. 짐을 챙기고, 그다음에…….”
“다음에?”
도연은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는데.”
“우리 집으로 와.”
“너희 집?”
“그래. 네가 말한 것처럼 나무도 있고, 집이 낡아서 그렇지 커서 남는 방도 있잖아. 내가 여러모로……. 어쨌든 지내고 싶을 때까지 있으면 돼.”
“그게.”
도연은 손가락에 붙은 스티커를 만지작만지작하며 망설였다. 내가 왜 차 이야기를 꺼냈더라.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게?”
도연은 입술에 힘을 주고 말을 골랐다.
“나하고 있으면 그, 너뿐 아니라 네 동생까지도 영향이 갈 수 있거든.”
“영향이라면……. 이거 말이구나.”
영준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이제 움푹 파인 상처 위에는 검붉고 두꺼운 딱지가 앉아 있었다. 아직도 건드리면 아프고, 피와 진물이 배어나오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
“하지만…….”
“나하고 같이 있으면, 전혀 못 보는 사람도 보이는 경우가 있어.”
도연은 쓴 약을 삼키는 기분으로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매일 다니던 길에서 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럼 나도 그렇겠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영준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거잖아.”
“모르겠어.”
“……그럼 소영이가 퇴원할 때까지만이라도 있어.”
영준은 살짝 인상을 썼다.
“서울 올라가도 한동안은 병원에 있어야 할 거야. 나도 그런 영향을 주는지 아닌지는 동생 퇴원 후에야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어차피 난 상관없잖아, 같이 있어도. 차라리 혼자 있는 것보다 그게 좋아. 물론 너야 어떨지는 모르지만.”
쭉 확실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말하던 영준이 갑자기 자신 없는 표정이 된다.
도연은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짧게 끄덕였다.
“그래. 며칠이라면. 머물 곳을 찾을 때까지만은 있어도 되겠지.”
“기브스도 10일 정도는 하고 있어야 할 거야. 그 후에 재활치료도 해줘야 자꾸 삐는 경우가 없어.”
“그래.”
순순히 대답한 도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볼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무표정. 영준은 그가 아까부터 만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게 뭐야?”
“뭐가.”
“손에 만지고 있는 거.”
“손?”
도연은 깜짝 놀라 자신의 손을 펴 보았다. 무의식중의 일이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영준은 도연에게 양손을 펼치게 했다. 그리고 집게손가락에 붙은 것을 떼어냈다.
“그게 뭐야?”
“스티커인데.”
작은 하트 무늬의 촌스러울 정도로 새빨간 스티커였다.
“그게 어디서 난 거야?”
침대 옆의 테이블 위에 구겨진 물티슈 봉지를 들자 똑같은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입구를 고정하는 용인 것 같았다. 도연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손장난을 지워버리려는 듯 양손을 한 번 슥 비볐다.
“화장실 다녀올게.”
도연이 절뚝거리며 병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영준은 잠시 손에 붙은 스티커를 보다가 쓰레기통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을 비벼 스티커를 때어내려던 순간 잠시 멈칫, 망설였다. 어쩐지 내키지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영준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리고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스로도 이해 못 할 변덕으로 약이 다 되 꺼져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든다. 조심스럽게 손에서 스티커를 떼어낸 영준은 그것을 핸드폰 윗부분 정 가운데에 붙였다. 흔한 핸드폰 고리 하나 붙이지 않고, 액정 보호용 비닐도 없는 검은색의 네모난 핸드폰에 느닷없이 빨간 불이 켜졌다.
저녁을 먹고 둘은 소영의 병실로 갔다. 낮이 길어서인지 노을은 내리고 있었지만 아직 창밖은 밝았다. 하지만 복도마다 켜놓은 형광등 탓에 병실 안은 벌써부터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긋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병실에 그냥 있으라고 했지만 도연은 한사코 영준을 따라 나섰다. T자형 구조의 복도에 그녀의 병실은 중앙에 위치한 비상계단 바로 옆이라 오르내리기에 편했다.
“왔어?”
폐기종 치료로 진을 뺀 탓인지 소영은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이 다를 정도로 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 병실에는 나 혼자라 심심해. 하루 종일 들리는 건 이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뿐이라니까.”
그녀는 머리맡에 있는 산소통을 가리켰다.
“왜 이렇게 병실에 자주 안 와……. 오빤 걸어 다닐 수도 있으면서 하루 종일 간호사하고 노는 거 아냐? 나 봐. 앞니도 흔들거리고, 손톱도 두 개나 빠져있고. 이런 꼴로 오빠 말고 또 누굴 볼 수 있겠어.”
짐짓 한숨을 포옥 쉬면서 그녀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한탄을 늘어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서울에 가서 설명해주기로 한 터라 영준은 그냥 웃기만 했다. 마음 같아선 소영의 병실에 같이 있고 싶었지만, 도연이 반대했다.
“지금은 비록 다 빠져나갔대도, 아직 네 동생은 불안정한 상태야. 집으로 치면 대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은 거라고 할 수 있어. 그 상태에서 너나 내 영향으로 혼령을 목격하게 되면, 충격으로 다시 활짝 열려 빙의되기 쉬운 체질로 바뀔 거야. 그것도 이런 병원에서.”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목적 없이 배회하는 죽은 자들이 가득한 건물. 영준은 그냥 치료와 함께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다고 둘러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이 빠졌던 곳은 사실 수영금지 구역으로, 강가에만 해도 두 개가 넘는 <익사사고 잦은 곳! 수영금지>란 푯말이 걸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이라 특별히 걸어놨다는 현수막까지 있었다. 못 봤다고 말해도 믿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워낙 익사자가 많이 발생해 아예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하려던 곳에서 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때 아닌 조사도 받아야 되게 생겨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저기요.”
베개를 받쳐달라고 말한 소영이 머리를 정리하고는 문밖에 서 있던 도연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이런 꼴이라 죄송해요. 저희 오빠하고 저를 도와주셨다고 해서,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쌕쌕 숨을 몰아쉬며 소영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도연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으레 그러듯 굳은 얼굴로 조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초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이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도연이 그동안 보았던 소영의 모습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 이었으니까.
“친척이라고 들었어요. 저희는 친척들하고는 별로 왕래가 없어서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특히…….”
순하게 웃는 얼굴로 소영이 손을 내밀었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멍든 손가락은 가늘지만 곧았다.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저희 또래 친척은 처음 만나 봐요. 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이도 비슷하니까 친구처럼 지낼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서글서글한 인사에는 사람의 마음에 단숨에 들어서는 힘이 있었다. 도연은 얼결에 손을 마주 잡았다. 처음 그녀를 만졌을 때와는 달리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이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모로.”
눈을 똑바로 보며 웃는다. 웃는 입매가 오빠와 비슷했다. 도연은 갑자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손을 놔버렸다.
“한 것도 없는데…….”
그리고 갑자기 병실에 있던 가습기를 집어 들었다.
“물 채워 가지고 올게.”
웅얼거리는 말은 병실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순식간에 멀어진 도연에 소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내가 뭐 잘못 했어?”
“아니, 그냥……. 쑥스러워서 그럴 거야.”
도연은 복도의 정수기에 가습기 입구를 데고 물을 틀었다. 조로록 흘러내린 물이 정수기에 다 채워지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몇 분이면 이 동요도 가라앉게 되겠지.
갑자기 초조한 기분이 들어 도연은 목을 뒤로 젖혔다. 어깨와 뒷목이 뻐근했다. 낯선 피로감이 몰려왔다. 등줄기를 타고 무언가 욱신거리는 것이 지나간다. 감은 눈 뒤로 형광등의 빛이 작렬하듯 붉은 그림자를 남긴다.
손이 따뜻했다. 아직 손바닥에 남은 감촉은 온기를 전하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저희 또래 친척은 처음 만나 봐요. 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이도 비슷하니까 친구처럼 지낼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환자복을 입고 거리에서 흔들리던 그녀는 산송장 같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그녀를 살리거나 돕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또다시 나는 실패를 되풀이하고, 악몽을 반복할 뿐이라고-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연은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자신의 실패를 조롱하던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난 이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고르라면 제일 먼저 널 고를 거야.’
들리는 것은 그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들척지근하고, 지나칠 정도로 친밀한 말이다. 그것이 들쑤시는 감정은 불쾌할 정도로 낯설었다.
“아차차.”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정수기의 물이 넘쳤다. 손을 타고 찬물이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당황하는 도연의 뒤에서 대걸레를 든 아주머니 하나가 다가왔다.
“비켜요, 내가 할게.”
“감사합니다.”
묵직해진 플라스틱 통을 들고 복도를 걷는데 머리 위에서 파지직, 하고 파열음이 들렸다. 그리고 이내 불이 탁 하고 나갔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 중 몇이 꺼진 전등을 올려 보았다.
“…….”
도연은 걸음을 조금 늦춰 걸었다. 다음 형광등 밑을 지날 때였다. 다시 한 번 머리 위에서 파지직,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머리 위로 부드러운 베일처럼 어둠이 떨어졌다.
누군가 의혹에 찬 몇 마디를 꺼냈다. 뭐야,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다음 형광등은 소영의 병실이다. 도연은 아주 느리게 전진했다. 어느새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고 있었다. 축축한 목덜미는 잔털까지 모두 곤두서 있었다.
충분히,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형광등을 한 번에 갈아 끼워 한꺼번에 수명이 다한 것뿐이다.
손에 들고 있는 가습기에서 걸음마다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묵직한 짐의 무게가 걸을 때마다 온몸을 함께 흔들었다.
느린 걸음이 망설이며 앞을 내딛었다. 차마 더는 가지 못하고 멈춰 섰을 때였다. 병실에서 영준이 고개를 슥 내밀었다.
“뭐야, 여기 있었네. 하도 안 오기에 혹시 먼저 돌아갔나 했지.”
“…….”
“왜 그래? 너 안색이…….”
걱정스럽게 말한 영준이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영준의 등 뒤, 복도 저 끝에서부터 갑자기 형광등이 탁 탁 탁 탁 탁 하고 순서대로 꺼지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도 않았는데, 불이 꺼진 복도는 터널처럼 끝없는 암흑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순식간에 다가오는 어둠에 도연은 입을 크게 벌렸다.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껏 그가 낸 소리는 꺽, 하는 삐걱거림에 불과했다. 복도가 비틀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마치 조그만 은박지처럼 단숨에 구겨지고 있다.
고통과 공포에 홉떠진 도연의 눈에 영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탁 탁 탁 소리와 함께 복도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불이 꺼지고 있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자연스러운 정전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이질감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불쾌하고 축축하게 젖은 색채의 어둠은 단순한 빛의 유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저편 어둠 속에 가능한, 그리고 불가능한 모든 상황이 도사리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영준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머리 위의 빛이 파열음과 함께 사라졌다. 바로 앞 마주친 도연의 눈 또한 빛이 사라져 있었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읽을 수 없는 회색의 눈동자.
영준은 손을 뻗었다. 복도가 끝없이 비틀리고 잡아당겨져 말도 안 되게 길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뻗어도 그에게 손이 닿지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어째서…….
“와장창!”
플라스틱 가습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도연이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물기가 남아있는 길고 긴 복도를 가로지른 그는 비상구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발치에 나동그라진 기계에서 울컥울컥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영이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뭐야!”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병실에서 나와 두리번거렸다.
“정전?”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복도의 전구는 모두 산산조각이 나 깨져 있었다. 그 끝 조금 전까지 끝없이 입을 벌리고 있는 터널에는 네모나고 커다란 창문이 복도까지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찬란하게 그려내고 있다.
“기, 김도연?”
영준은 그가 간 길을 따라 달렸다. 비상구 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상구 계단은 조용했다. 저 아래에서 불빛 하나가 빠르게 점멸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도연!”
쩌렁쩌렁한 외침이 건물을 메아리치며 울렸다. 단 몇 분 사이에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2권에서 계속>